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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눈동자 안의 지옥 - 모성과 광기에 대하여
캐서린 조 지음, 김수민 옮김 / 창비 / 2021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네 눈동자 안의 지옥_모성과 광기에 대하여
이 이야기는 작가가 아들을 낳고 3개월 뒤 자신이 비자발적으로 정신병원에 입원에 있음을 깨닫고 쓴 자전적 이야기이다. 그녀는 산모 1,000명 중 1,2명에게 발생하는 산후정신증을 경험했다.
주인공은 한국 전통을 모두 무시하고 첫 끼니로 미역국이 아닌 초밥을 먹었으며, 집 문을 활짝 열고 손님을 초대하고 눈이 내리는 날 아이를 여러겹으로 싼 다음 산책을 나가기도 했다. 심지어 아들이 태어난 지 두달이 되었을 때 런던을 출발해 아메리카대륙을 횡단하는 장기 여행길에 올랐다. 그리고 그녀가 아들의 눈에서 악마를 보기 시작했을 땐 백일 잔치를 8일 앞두고 있었다. 그로 인해 응급실로 이송되어 병원에 입원했으나 계속되는 불면에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결정이 내려졌다. 하지만 과연 그녀가 한국전통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지금의 상황에 빠지게 된 것일까는 의문이다.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 주인공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남편이 남기고 간 노트에 그녀가 기억하는 것들, 진실임을 아는 것들을 기록하는데, 그녀가 말하길 '내 기억으로부터 나 자신을 재구성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라고 했다. 마치 자신의 몸에서 유체이탈을 한 사람처럼 그녀는 끊임없이 현실과의 괴리감을 느끼며 자신에게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낯설게 느끼기도 하고 남편과 전화를 할 때에도 굉장히 목소리가 먼 곳에서 들려오는 느낌을 받는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현실에서 자신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고 기이한 괴리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나의 경우에도 가끔씩 거울을 보면 내 모습이 낯설어지고 눈을 감으면 내 얼굴이 쉬이 떠오르지도 않는다. 친구를 만나서 신나게 이야기를 하면서도 문득 말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생경하게 느껴진 적도 여러 번 있다. 내가 살아가면서 나 자신조차도 낯설게 느껴지는 경험을 수십번 하게 되는데 여성의 몸으로서 임신을 하고 아이를 출산하게 된다고 해서 곧바로 아이에 대해 모성애가 생기는 건 말이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책에서도 그녀는 '한걸음만 더 가면 엄마가 된다. 엄마가 되는 것이 어떤 기분일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상상이 가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나는 출산을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경험자이신 나의 어머니께도 이 책을 읽어보시라 권유했는데 어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무리 내 뱃 속에서 열 달을 품고 세상에 나오게 했다고 해도 이 아이가 정말 내 아이라고? 라는 생경한 기분이 든다라고 하셨다.
주인공은 순식간에 엄마가 되었고 한순간에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그녀의 존재는 더이상 그녀만의 것이 아니었고 그녀는 이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경고를 듣지도 못한 채 변해버린 것이었다. 정신병원에 입원할만큼 심각한 산후정신증에 걸리는 주인공의 케이스가 흔한 건 아니겠지만 출산 후 85%에 달하는 여성들이 일시적으로 우울감을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대부분은 일상적 생활에 장애를 초래할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다고 하지만 그건 개개인의 차이이기 때문에 그 심각성은 확신할 수 없다.
너무나도 사실적이고 적나라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써내려간 작가님이 대단하게 여겨졌으며 한 번쯤은 결혼과 출산을 앞둔 사람들이라면 성별 상관없이 꼭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았다. 아이가 생긴다는 건 개인에게 상상 그 이상의 일이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전통에 따르면 아기를 낳은 산모는 아기와 함께 삼칠일(21일)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고추와 숯을 엮은 새끼줄을 대문에 걸어놓아 손님의 출입을 삼가고 악령을 쫓아낸다. 세이레(21일째 되는 날)에는 삼신에게 제를 올리며 백설기 등의 음식을 바친다.
그래서 한국인에게 사랑은 슬픔이고 상실이다. 사랑의 달콤함은 이야기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쓴맛이 가미되면서 그 맛을 잃어버린다.
내 정신 이상은 파괴와 분노를 담고 있지만 모두 사랑과 관련이 있었다. 희생의 이야기였고, 강박적으로 남편을 찾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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