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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귀족 2 세미콜론 코믹스
아라카와 히로무 글.그림, 김동욱 옮김 / 세미콜론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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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의 왕국 홋카이도에서 일본 식량공급에 일조하는 집안이 있었으니, 바로 만화가 『아라카와 히로무』의 친정입니다. 『강철의 연금술사』라는 불세출의 소년만화를 그린 작가가 여자였다는 걸 알고 놀랐던 만큼, 빵빵 터지는 개그 센스를 보면 농촌 출신이라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물론 "촌에서 왔다고 오해하지 마라, 이래봬도 개그만큼은 특별시다"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말이죠. 그런 작가가 강철의 연금술사의 진지함을 싹 걸러내고 고농축의 개그 엑기스만 담아낸 후속작을 냈으니, 일본판 전원일기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무정한 문제작 『 백성귀족』입니다.

 

백성귀족』이라는 제목은 『 백성의 탈을 쓴 귀족』의 줄임말로 (여기서 백성은 일본에서 농민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귀족처럼 냉동실엔 100% 국산 쇠고기가 가득한데도 농촌에 있을 땐 물물교환 해서 공짜로 먹던 야채를 도시에선 비싼 돈 내고 사먹어야 하는, 고기에 야채를 싸 먹어야 하는 상황이라 백성귀족입니다.

 

개척농민의 후손으로 가훈이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지어다』인 아라카와 가문에 태어나, 교칙이 『노동』인 휴식이 용납되지 않는 농고를 나오고, 어릴 때부터 송아지 출산을 지휘하고 웬만한 중장비는 면허 없이 몰고 다녔던 『농가의 상식은 사회의 비상식』이라는 모토로 더러운 얘기(소똥=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유기비료)와 살벌하고 섬뜩한 얘기(소는 맛있는 애완동물, 피 철철)를 음흉한 표정으로 그려내고 있는 농가 에세이입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저로서는 생소하고 신기하기만 한 에피소드들이지만, 거의 제자리인 우유매입가나 못생겨서 상품 가치 없는 B급품 얘기는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에서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농가의 처지는 비슷비슷한 모양입니다. 맛이나 영양가는 훨씬 좋은데도 반듯한 모양이 아니어서 쓰레기로 취급된다니 제대로 된 먹거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돈 주고도 못 사먹는 그런 맛좋은 B급 작물과 우유는 농가에서만 맛볼 수 있다니 한번 먹어보고 싶어지네요. 소비자가 먹는 출하용은 화학비료와 농약이 듬뿍~ 들었다니 더더욱 그렇습니다.

 ........△................△
_____△△_________△△______낭만이라곤 없지만 개그로 가득한 아라카와 일가 이야기에서
▼▲▼▲▼.........................../ 단연 인기있는 캐릭터는 작가의 친정 아버지 되시겠습니다.
..▼▲▼ ━━.......━━.....__/ 이 폭주 캐릭터는 빤스 바람으로 다니면서 딸을 민간치료법의
......ㅣ....○.........○.....ㅣ 실험 대상으로 삼는 무대포인 양반입니다. 이랬다 저랬다
......ㅣ.......o o..\.....ㅣ 부조리의 표상이시죠. 양촌리 김회장과는 달라도 너~무 달라!
......ㅣ......./┍┑\......ㅣ ...반복되는 골절과 내장파열에도 살아남은 엄청난 생존력의 소유자로
........\.......┕┙......‡ /  ← 턱의 흉터는 말에 걷어차여 턱이 부서져서 생겼다는군요.
............\ _________/.......그런데 목숨이 오락가락할 일이 생기면 꼭 소나 다른 동물들이

............\- / □ \-  /.......알 수 없는 이유로 죽는다니 연금술의 등가교환 아이디어는

.............../ /.....\\........부친에게서 얻었나 봅니다.

 

똑같은 노동의 무한반복인 연중무휴 농가의 생활이 힘들어 보이긴 하지만, 백성귀족의 고농축 개그 에피소드로 채워진 일상이라면 귀농도 한번 도전해 볼만할 것 같습니다. "고기, 고기!"를 외치는 저희 집안이라면 얼른 달려가 우리나라 식량공급에 일조할 수 있지 않을런지...

 

누구나 한번쯤 교과서에 그려봤을 법한 책장을 빨리 넘기면 움직이는 귀퉁이 애니메이션은 보너스입니다. 구석 구석 깨알 같은 재미로 꽉꽉 채워진, 농가 에세이의 탈을 쓴 개그만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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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하루 - 실록과 사관이 미처 쓰지 못한 비밀의 역사 하루 시리즈
이한우 지음 / 김영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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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에게 소원을 빌면 항상 바라던 것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사건에 휘말리곤 합니다. 부귀영화와 권력을 누리며 좋은 옷, 좋은 음식에 남을 복종시키고 싶어 왕이 되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었다간 아마 <왕의 하루>에 나오는 권력투쟁과 암투에 휘말리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인지상의 1인자가 되고 싶은 건 누구나 한번쯤 꿈꿔 봤을 겁니다. 바로 그 '누구나'가 잔인하고 비열하기까지 한 왕좌의 게임에서 칼을 뽑게 만든 빌미가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조선은 시작부터 왕자의 난이라는 흑역사를 기록했습니다. 신덕왕후 강씨가 이방원을 볼 때마다 "어찌해 내 몸에서 나지 않았던고?"하며 한탄했을 정도로 출중한 재능을 지녔고, 조선 건국에 큰 공이 있는데도 적장자가 아닌 세자를 세웠으니 불만이 컸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의 난 이후 적장자라는 빌미로 정종을 허수아비 왕으로 세웠죠. 이방원은 죽음을 무릅쓰고 명나라에 인질로 가있었던 반면, 정도전은 동료들의 죽음에도 가기를 거부하고 요동 정벌을 주장했으니 이방원에게 제거당할 빌미를 제공한 셈입니다.

 

이성계는 왜 목숨의 위협 속에도 명나라에 갔던 이방원의 공을 인정하지 않았을까 하는 문제에서도 정몽주를 절대 죽이지 말라는 1인자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2인자 뜻대로 처리했으니 이방원을 경계하고 멀리했던 빌미가 됐을 겁니다. 이방원 역시 무자비한 이미지와는 달리 이방번을 살려주려고 했으나 이방간, 이거이 부자, 조박이 자기들 맘대로 처리했다가 후에 이방원에게 제거 당하게 되죠.

 

처가를 몰살했던 태종이기에 세종의 처가에 권력이 쏠리자 역시 조치를 취합니다. 국혼은 힘을 키울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빼앗길 수 있는 재앙의 원인이 되기도 하니까요. 물론 그것도 총애를 받고 못 받고, 아들을 낳는냐 못 낳느냐, 적장자냐 아니냐에 따라 갈리지만 말이죠. 임금이 되기전 혼인했느냐 되고난 후 됐느냐도 중요했는데 단종의 어머니는 전자로, 세자(문종)의 후궁 신분으로 죽었기 때문에 단종을 적장자로 보지 않고 서자로 본 게 수양대군 거사의 명분이 됐습니다. 오랑캐 옷을 입고 청나라에 항복해야 했던 치욕을 겪은 인조가 소현세자를 독살한(걸로 알려진) 이후 왕실에 아들이 귀해졌습니다. 적통은 끊어지고 방계승통으로 이어지며 피는 묽어져 가고 정통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빌미가 됐습니다. 종사를 부탁할 사람을 얻기 위해 뒤지고 뒤지고, 핏줄을 찾아 위로 위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했으니 천벌을 받은 걸까요?

 

독살은 임금을 갈아치우는 방법입니다. 이쯤 되면 바람돌이에게 왕이 되겠다는 소원은 못 빌 것 같습니다. 은수저로 기미를 봐도 27명중 8명이나 독살 가능성이 있다고 하네요. 물론 독살처럼 은밀히 처리할 수도 있지만, 연산군과 광해군처럼 왕위 계승의 정통성이 있어도 '성리학의 명분'을 빌미로 반정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왕이 신하 눈치를 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왕권과 신권의 갈등은 얼마나 많은 이들을 유배 보내고 다시 불러들이게 만들었을지...

 

바람돌이에게 왕이 되게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피와 죽음 때문만은 아닙니다. 올빼미족인 저로서는 새벽4시부터 파루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일과를 시작하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매일 경연에 참석하는 일도 자신 없습니다. 학식이 있었던 태종이 경연을 꼭 해야 하는지 묻자 김과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신은 전하께서 호학(好學)하시는 것을 아옵니다. 하지만 여러 어진 신하들과 더불어 강론하지 않고 오로지 소신과만 더불어 읽으면 경연은 장차 폐지될 것입니다. 후세의 자손 중에 반드시 이를 본받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혹 어둡고 용렬한 임금이 있어 간사하고 아첨하는 신하가 날마다 깊은 궁중에 들어와서 하지 않는 일이 없고, 나가서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임금께서는 글 읽기를 좋아한다'고 하면 딱한 일이 아닙니까? 이것은 교훈을 삼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호학하시는 것과 같이 하기가 어렵습니다."
결국 태종이 경연을 안했다는 빌미로 후손들이 공부를 안할지도 모른다는 말에 마지못해 수락한 겁니다.

 

사료를 통해 왕들의 학문적 수준을 추측할 수 있으니 요즘 같으면 성적표가 공개되는 셈입니다. 그러니 사관을 보는 왕의 시선이 고울 리 없습니다. 파파라치처럼 귀찮은 존재였겠죠. <왕의 하루> 속 왕의 시점에서 '나'는 권력에 욕심낸 적도, 권력 때문에 희생당한 적도 없다고 말하는 순간들은 사관과 역사를 배우는 이들의 시각과는 차이가 커 보입니다. 하루 하루가 살얼음판 같은 왕의 자리에서 빌미 제공을 안하려고 현종처럼 무리수 두지 않고 조용히 무난하게 지내면 큰 실정도 없었지만 큰 업적도 없었다는 평가를 받기 마련입니다. <왕의 하루>에는 역사의 흐름을 바꾼 긴박한 순간들을 저자의 풍성한 지식을 통해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지식을 쌓고 보관한 사관들의 수고에 박수를 보냅니다.

 

왕이 되면 잃을 게 너무 많습니다. 아버지를, 아들을, 부인을, 어머니를. 만일 제가 왕이 되는 대가로 내놓을 수 있는 게 있다면 충치 정도입니다. 치통으로 고생한 왕들이 많았다는군요. 이의 갯수가 많아 잇금이 임금이라는 말이 된 걸 생각하면 재미있습니다. 아무튼 조선의 왕들을 보며 바람돌이가 왕이 되게 해달라는 소원을 들어준다면, 적어도 이 책에 있는 하루는 아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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