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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시작은 은근하나 끝은 뜨거워
제5회 세계문학상 심사평이다. 이 한 문장이 한 권의 장편 소설을 정확히 설명해준다. 초반엔 정신병동을 배경으로 한 여러 소설이나 영화가 겹쳐 떠오르며 고만고만하게 읽히지만 등장인물들과 친숙해지면서부턴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한 편의 영화나 연극을 보는 것 같아,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나 2009년에 발간된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연극이 불과 저번 달까지 공연되고 있었고 현재는 <미인도>, <식객>을 연출한 전윤수 감독이 영화화 중이라고 한다.
정신병동. 내겐 정말 익숙치 않은 풍경이 생생히 그려진다. 작가가 처음 이 이야기를 구상한 게 대학실습을 나간 3학년 때라고 했으니 간호학과쯤 되나보다. 그제야 아, 그래서 이렇게 생생했구나 이해가 되었다. 국문학과나 문예창작과와 같은 학과가 아닌 다른 전공에서 문학에 흥미를 가진다는 것은 대단히 굉장한 일이다. 그 세계의 이야기를 보다 효과적으로 소설에 드러낼 수 있고 진짜 현실을 고발할 수도 있다. 독자에게는 그 세계를 간접체험해볼 기회를 준다. 가끔 내가 국문학과인 게 너무 이상적으로만 보이는 이유다.
운명이 내 삶을 침몰시킬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파란 바탕에 '분투하는 청춘들에게 바친다'라는 하얀 글씨로 시작되는 책장. 25살의 젊은 청년 둘. 88만원 세대, 유산싸움, 성폭력, 충동, 권력, 억압, 두려움, 좌절. 희망은 아편일 뿐인 현실에, 자신을 조준하고 있는 세상의 총구들을 향해 외친다. 내 심장을 쏘라고. 그래야만 나를 가둘 수 있을 것이라고.청춘은 살아있고 나는 자유롭다.
언제부터인가 친구들이 하나둘씩 공무원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난 내가 하고싶은 걸 하고 싶어!' 반짝이는 눈빛에 맥주를 시원하게 마시던 언니는 현재 취업준비생으로 잠수를 탔다. 패러글라이딩, 질주하는 보트, 프랭클린, 히말라야, 숨이 막힐만큼 아름다운 별들의 바다... 현실과 동떨어진듯한 소재가 더욱 두근거리는 이유이다. 나도, 별들의 바다를 찾을 수 있을까? 두근거려도 될까? 영어, 취업, 대학과 직장이 정하는 은근한 서열, 사회적 시선 등에 눈치보며 요령껏 숨어있던 의문들이 꿈틀 차오른다.
침을 질질 흘리고, 하고 싶은 말은 꾹 참고, 때리면 잠자코 맞고, 말더듬이가 심하던 이수명은 정신보건심판회에서 네 시간 넘게 또박또박 얘기한다. 자신의 이야기로 노트 열 권을 채우며 자유를 맛본다. 그의 첫 비행이다.
우리도, 날 수 있다.
ps. <내 심장을 쏴라>와 1위 대결을 벌였던 <나의 블랙 미니 드레스>도 출간되었고 드라마화되면서 윤은혜가 주연을 맡았다고 한다. 다음에 읽을 책은 이거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