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천 개의 직업 - 박원순의 대한민국 희망 프로젝트
박원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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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몇장 읽는데 웃음이 났다. 생각해보면 내가 박원순의 목소리를 들은건 나꼼수 한 화, TV토론 잠시 뿐이었다. 외모부터 수더분하고 사투리가 여실히 남아있는 억양은, 그리고 그 자신의 목소리보다 옆에서 지지하는 목소리들이 컸기에 나는 그를 '겸손한 사람'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거, 책 몇 장 읽으면 그가 참 '자신의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란 것을 대번에 알 수 있다.
 
 
사실 처음 박원순이 시장에 당선된 후 지하철 출근 기사를 읽으며 '며칠이나 가겠어?'라고 단순 퍼포먼스로 끝날까 삐딱하게 바라보기도 하고 서울시립대 반값등록금, 시와 산하기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등을 보며 '너무 성급한거 아니야?'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들기도 했다. 그만큼 난 정치권에 믿음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그는 그럴만한 배포와 추진력을 가진 사람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책을 몇장 읽는데 웃음이 났다는건 그러니까 이 사람 한번 지켜볼만 하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 사람 한번 믿어볼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랄까.
 
 
(자꾸 박원순 박원순 해서 죄송하다. 박원순 시장님, 존경합니다. *^_^*)
 

 

이 책 자체는 '읽을만 하고 시간이 아깝진 않지만 별 다섯개 정도는 아닌'이다. 초반엔 의욕에 차서 글을 쓰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필력이 약해지는 것 같은 책이 있는데 내겐 <아프니까 청춘이다>도 사실 그랬다. 그래도 박원순이 소개하는 천 개의 직업이 '직업'을 '기업의 이름'에서 벗어나 조금 더 넓게 사고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확실하다. 이런 게 수익이 날 수 있는 사업인가? 의문이 들지만 실제로 문화복덕방 매니저라든지 심부름센터 대표같은 직업은 지금 존재하고 있기도 하니까. (물론 그들이 어떻게, 얼마나 수익을 내는지는 난 모르지만.)
 
 
내 블로그의 방문 유입 1위가 <아프니까 청춘이다>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별 네개 책장에 꽂은 나로서는 어안이 벙벙한 통계이지만 그만큼 아파하는 청춘들이 많기 때문이겠지. 청춘이 아프지 않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 불가능해보이는 일에 불씨가 박원순 시장의 행보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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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문제들
안보윤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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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든 모든 생각은 결국 한 가지로 귀결됩니다. 요즘 애들 무..무섭다... 몇 번이나 황순구가 중딩이고 아영이가 초딩인걸 확인했는지 몰라요. 황순구 그놈은 고등학생 애들한텐 빌빌 기면서 초딩 애들 앞에선 지가 왕인줄 압니다. 초등학생 여자애들 성매매까지 주선해요. 아영이가 PC방 아저씨 그..그거.. 하는 장면에선 진짜 제 입에서 다 욕이 나오더라구요. 다음번엔 '제대로' 하자는 말에 오학년 아영이는 가출합니다. 
 
가출한 아영이가 숨어든 헌책방. 헌책방 주인 두식은 서른아홉 아저씨인데요. 책장을 넘기며 설마했는데 진짜 게이입니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건 명백해요. 아니, 정말 사소한 문제들인데 말이야, 세상은 왜이렇게 차별하고 문제삼고 뜯어먹고 울궈먹고 그러는거야?! 아영이가 뚱뚱한게 죄야? 두식이가 게이인게 죄냐구?  아영이 엄마가 마트에서 일하는게 죄야?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미대생 천연코발트색 물감 못사오는게 죄야? 두식이가 게이이지만 잘생기지 않은게 죄야?
 
아... 죄 맞는거같은데요. 죄송하게 됐습니다, 이거 참. 이따위 대답밖에 못해주는 세상 앞에서 말더듬이 딸아이가 왕따를 당하는 연구주임 아저씨는 결국 호주로 뜹니다. 저한테 그게 죄냐고 따져물으냐면요? 아... 저도 다이어트 중이라... 쫌 살아보니까 예쁜게 좋은거 같더라구요... 조금 통통한 제 친구는 길에서 아이스크림도 맘대로 못먹어. 주위 사람들이 다 자기한테 욕하는거같대요. 뚱땡아, 그렇게 처먹으니까 뚱뚱하지.
 
 
 


"가출한 이유가 뭔데?"
"엄말 좋아하니까."
"그런 거 말고 진짜 이유."
"진짜 그거예요. 너무 좋아하니까 돌아갈 수 없는 거예요. 진실을 알고 상처받는 것보다 오해한 채로 살아가는 게 더 나아요. 나를 미워하는 동안은 최소한 자책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163p.
 

 
안보윤 작가의 처녀작 <악어떼가 나왔다>에선 음, 한국 소설이군. 생각했다가 <오즈의 닥터>에서 눈이 번쩍 귀가 쫑긋 말초신경이 아~!!!!!!!!!! 주저하지 않고 읽은 안보윤 작가의 신작 <사소한 문제들>은 음 음. 괜찮았어요. 일단 독자들을 '불편하게' 만들었으니까 괜찮은 소설 맞는거죠?
 
이 소설의 교훈 : 뚱뚱하다고 놀리지 맙시다. 말더듬는다고 왕따시키지 맙시다. 게이라고 뜯어먹지 맙시다. 근데 이건 내가 뚱뚱하지 않으니까, 내가 말더듬지 않으니까, 내가 게이가 아니니까 거들먹거리며 '너네 아직도 그러니?' 그러는게 아닐까요? 어디선가 여성 인권을 위하는 남자들이야말로 스스로가 여성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어요. 아, 세상 착하게 살기 참 어렵네요. 그래도 노력하고 고민해봐야죠. 그러라고 문학이 있는거구요. 힘냅시다. 문학 하는 사람들은 세상이 더 아름다워진다고 믿는 사람들이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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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서툰 사람들
박광수 지음 / 갤리온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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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들은 2009년에 출판되었습니다. 2002년 재혼 후 5년만의 신간. 근데 모든 글들이 이별과 그 후의 아픔, 기다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사랑이란 환희의 순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첫 설렘부터 마지막 그리움까지 포함하는 '과정'을 의미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어요. 그래도 그렇지, 이별이란 언제나 고통스럽고 그리움은 슬프고 잊혀짐은.. 안타까운 것 같아요. 그래서 아무리 이혼했더라도 그대를 잊지 않고, 그대가 마치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것처럼 지워버리지 않고,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당시의 유치한 감정들을 고스란히 엮어 낸 박광수씨가 한편으론 존경스럽기까지 하더라구요.

 





비바람을 맞고,

추위를 견디고,

비를 맞고,

뜨거운 태양을 견디고,

오랜 시간 외로움을 견디며,

꽃이 핀다.

 

세상의 그 어떤 꽃도

흔들림 없이 피는 꽃은 없다.

지금 흔들리는 것,

다 괜찮다.

 

 



어릴 적 전영록의 노래 중에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라는 노래가 있었어요.

우리 사랑은 무엇으로 썼나요?

당신이 우리 사랑 힘들다고 하니,

당신이 힘들면 필경 나도 힘들 터이니,

당신이 지우개를 들고 우리 사랑을 지우려고 한다면,

 

전 그저 가만히,

오직 당신 뜻대로 가만히 지워지는

그런 사람이 되겠어요.

 

 

 

 

첫 번째 글은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을 조금 변형한건데, '괜찮다'라는 말은 언제나 가슴을 울컥하게 만드네요.

여기 있는 짤막한 글토막들을 통틀어 가장 좋았던 글은 바로 마지막 글.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라는 노래 가사를 들으며 연인들은 단연코 '우리는 매직펜으로 쓰자'고 다짐할 터이지만 '저는 당신 뜻대로 가만히 지워지는 그런 사람이 되겠어요'라니. 소설이든 시든 흐름을 읽으며 독자들이 '당연히 다음엔 이런 내용이 나오겠지'란 예상을 깨는 이런 반전이 정말 독자의 기억에 남는 글이 되는 것 같아요. 저한테는 그러니까, 이 글 한토막만으로도 이 책을 읽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니까요. 

 

 

 

 

정말 사랑이 뭐기에 이별이 뭐기에, 그리고 당신이 뭐기에. 참 아리송하네요.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은 꼭 잡아둘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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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방일기
지허 지음, 견동한 그림 / 불광출판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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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73년 월간 <신동아>에 연재되었던 작품입니다. '지허'도 법명이 아닌 필명이라 언제 출가를 했는지도 묘연합니다. 서울대라는 말도 있지만 분명치 않습니다. <선방일기>는 지허스님이 오대산 상원사 선방에서 10월 15일부터 1월 5일까지 진행되는 동안거를 난 이야기입니다. 안거란 일 년 네 철 중에서 여름과 겨울철에 산문(절) 출입을 금하고 수도에 전력함을 말합니다.

 

처음 선방에 입방할 때 조실스님으로부터 화두(話頭)를 받습니다. 화두란 참선할 때 정신적 통일을 기하기 위해 붙드는 하나의 공안입니다. 세상에 화두 아닌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그 종류가 무한합니다. 하지만 그 많은 화두 가운데서 자기에게 필요한 화두는 단 하나입니다. 단 하나일 때 비로소 화두라는 결론입니다.

 

초하루 보름의 별식 찰밥과 만둣국을 도에 넘치게 먹고 체하는 스님도 있습니다. 감자를 몰래 구워먹기도 합니다. 자신의 묵상법이 맞다고 언쟁하기도 합니다. 만두를 빚을 때 남자와 여자의 성기를 흉내 내 빚기도 합니다.

 

동안거의 절반이 되는 섣달에는 일주일동안 잠자지 않고 장좌불와(長座不臥)하는 용맹정진을 합니다. 용맹정진에 탈락한 스님은 스스로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뒷방을 차지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무사히 넘긴 스님들은 힘을 얻어 더욱 분발합니다.

 

동안거가 끝난 후 층층계 밑에서 스님들은 "성불하십시오." 인사와 함께 흩어집니다.

 

 

 

#2

 

슬며시 웃을 수 있는 책입니다. 소복하게 쌓인 눈을 동자스님이 싸리비로 쓰는 정도의 소리만 가만가만 들립니다. 내가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잠자기 전에 한 장 한 장 남기며 '그래 앞으로 채식을 하자'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그러나 다음날 치킨을 시켜먹은 적이 또 몇번이나 되는지ㅠ_ㅠ) 조금 덜 가져도 되겠다는 생각. 조금 더 나누어도 되겠다는 생각. 천천히 가도 되겠다는 생각들이 머리를 쓰다듬습니다.

 

오늘 내가 욕심으로 먹고 행한 것들을 떠올립니다. 그 욕심을 채우고 나니 이상하게 차오르는게 아닌 후회만 밀려옵니다. 몸은 더 둔해진 느낌입니다. 애타게 열반을 위해 힘쓰는 스님들도 욕망 앞에서 킬킬대는걸 보니 욕심내지 않기란 어쩔 수 없이 정말 어려운 것이다란 생각도 들지만,

 

용맹정진을 무사히 넘긴 스님은 더욱 분발하고 탈락한 스님은 오히려 열등의식에 사로잡히는 모습을 보고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단 한번 나태해지고 나면 끝도없이 나태해지고 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 인내하면 내일 인내의 씨앗이 되지만 지금 이 순간 포기하면 내일도 포기하게 되어버립니다. 아니, 한 번 사는 인생 뭐하러 인내해? 즐기면 되는거지? 그러나 감히 말하자면 스님들이 잠을 자지 않고 용맹정진하는 이유는 단지 육체를 혹사시키기 위해서가 아닌 '자발적 노력'의 체험과 '생각할 시간의 확보'라고 생각합니다. '만족'은 '성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노력'에서 옵니다. 그 '노력'을 응원하는 것이 바로 '생각'이구요.

 

요즘 많이 소홀했는데, 내일은 꼭 중국어학원에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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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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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은근하나 끝은 뜨거워

 

제5회 세계문학상 심사평이다. 이 한 문장이 한 권의 장편 소설을 정확히 설명해준다. 초반엔 정신병동을 배경으로 한 여러 소설이나 영화가 겹쳐 떠오르며 고만고만하게 읽히지만 등장인물들과 친숙해지면서부턴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한 편의 영화나 연극을 보는 것 같아,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나 2009년에 발간된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연극이 불과 저번 달까지 공연되고 있었고 현재는 <미인도>, <식객>을 연출한 전윤수 감독이 영화화 중이라고 한다.

 

정신병동. 내겐 정말 익숙치 않은 풍경이 생생히 그려진다. 작가가 처음 이 이야기를 구상한 게 대학실습을 나간 3학년 때라고 했으니 간호학과쯤 되나보다. 그제야 아, 그래서 이렇게 생생했구나 이해가 되었다. 국문학과나 문예창작과와 같은 학과가 아닌 다른 전공에서 문학에 흥미를 가진다는 것은 대단히 굉장한 일이다. 그 세계의 이야기를 보다 효과적으로 소설에 드러낼 수 있고 진짜 현실을 고발할 수도 있다. 독자에게는 그 세계를 간접체험해볼 기회를 준다. 가끔 내가 국문학과인 게 너무 이상적으로만 보이는 이유다.

 

운명이 내 삶을 침몰시킬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파란 바탕에 '분투하는 청춘들에게 바친다'라는 하얀 글씨로 시작되는 책장. 25살의 젊은 청년 둘. 88만원 세대, 유산싸움, 성폭력, 충동, 권력, 억압, 두려움, 좌절. 희망은 아편일 뿐인 현실에, 자신을 조준하고 있는 세상의 총구들을 향해 외친다. 내 심장을 쏘라고. 그래야만 나를 가둘 수 있을 것이라고.청춘은 살아있고 나는 자유롭다.

 

언제부터인가 친구들이 하나둘씩 공무원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난 내가 하고싶은 걸 하고 싶어!' 반짝이는 눈빛에 맥주를 시원하게 마시던 언니는 현재 취업준비생으로 잠수를 탔다. 패러글라이딩, 질주하는 보트, 프랭클린, 히말라야, 숨이 막힐만큼 아름다운 별들의 바다... 현실과 동떨어진듯한 소재가 더욱 두근거리는 이유이다. 나도, 별들의 바다를 찾을 수 있을까? 두근거려도 될까? 영어, 취업, 대학과 직장이 정하는 은근한 서열, 사회적 시선 등에 눈치보며 요령껏 숨어있던 의문들이 꿈틀 차오른다.

 

침을 질질 흘리고, 하고 싶은 말은 꾹 참고, 때리면 잠자코 맞고, 말더듬이가 심하던 이수명은 정신보건심판회에서 네 시간 넘게 또박또박 얘기한다. 자신의 이야기로 노트 열 권을 채우며 자유를 맛본다. 그의 첫 비행이다.

 

우리도, 날 수 있다. 

 

 

 

ps. <내 심장을 쏴라>와 1위 대결을 벌였던 <나의 블랙 미니 드레스>도 출간되었고 드라마화되면서 윤은혜가 주연을 맡았다고 한다. 다음에 읽을 책은 이거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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