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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낳는 것은 얼굴에 문신을 하는 것이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속 대사이다. 아이를 낳은 후에는 출산 전의 삶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으며, 출산이 여성의 삶에 주는 변화는 너무나 확연하기에 그만큼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갓난아기를 키우고 있는 초보 엄마가 아기가 없는 여주인공에게 건넨 명언이다. 얼마 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자기 자신을 찾겠다며 이탈리아, 인도, 발리로 1년 동안 여행을 떠난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니, 그것도 1년씩이나! 그야말로 얼굴에 문신하지 않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지 않은가. 영화를 보는 동안 여행을 결심한 여자 주인공이 앞으로 무엇을 발견하고 알아가게 될까 하는 데에는 큰 관심이 가지 않았다. 영화 초반부터 마음껏 여행 다녀서 좋겠다라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딸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여행이라고 생각했던 친정아버지 덕분에 나는 어려서부터 이곳저곳 꽤 많은 곳을 다녔다. 그런데 슬프게도 임신하고부터는 여행을 통 할 수 없었다. 임신 초기와 중기에는 건강상의 이유로, 그리고 후기에는 논문을 마무리하느라 가까운 곳으로의 여행도 쉽지 않았다. 아기가 태어난 후로는 감히 떠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아기를 데리고 여행을 가자니 내가 너무 고생스러울 것 같았고, 그렇다고 부모님께 아기를 맡기고 가자니 죄송함과 걱정이 앞서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요즘은 갓난아기를 데리고 여행을 떠나는 가족도 많이 있던데, 겁 많고 체력 약한 나 같은 엄마는 그저 그들을 부러워할 뿐이다.

 

대신 아기가 잠든 틈에 인슈전(尹秀珍, 1963~) 작가의 휴대용 도시시리즈를 떠올리며 머릿속으로나마 이 나라 저 나라를 여행해본다.

 

어디로든 내 마음대로, 휴대용 도시

 

휴대용 도시시리즈는 여러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입던 옷을 받아서 조각조각 자른 뒤, 바느질 작업을 통해 세계의 도시들로 만들어 여행가방 안에 설치한 작품이다. 도쿄의 후지산이나 상하이의 동방명주, 파리의 에펠탑,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싱가포르의 사자상과 같은 랜드마크들을 찾으며 도시 이름을 맞춰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휴대용 도시시리즈 작업 중인 작가 인슈전

 

인슈전, 휴대용 도시시리즈 중 <뒤셀도르프>, 2012

 

인슈전은 마오쩌둥이 중국을 이끌던 1963년에 태어났다. 그녀 세대에게 여행은, 특히 해외여행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덩샤오핑 집권 후 중국이 개방정책을 시작하고 중국현대미술이 국제적 관심을 받게 되면서, 인슈전 또한 작가로서 국제적 인지도가 점차 쌓여갔다.

1990년대 말부터 세계 여러 도시에서 열리는 전시에 초청을 받았던 그녀는, 그때부터 자신이 방문했던 도시들을 여행 가방에 담는 작업을 시작했다.

여행을 많이 하는 그녀는 자유로운 싱글의 몸일 것 같지만, 사실 딸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도 하다. 딸이 태어난 후로도 그녀는 쭉 세계를 돌아다니며 전시를 해왔는데, 생각해보면 작가로서 국제 미술무대에 지속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일 때문에 계속해서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엄마로서 집을 계속 비울 수밖에 없는 것은 분명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보통 일은 아니다.

 

딸의 세번째 젓가락

 

그래서일까. 인슈전은 2013, 당시 열한 살이던 딸과 함께 여행하며 공동 작품을 만들었다. 동료 작가인 남편 송동(宋冬, 1966~)과 딸 송얼루이(2003~), 그리고 인슈전이 함께한 <세번째 젓가락>이다.

 

 

 인슈전, 송동, 송얼루이, <세번째 젓가락>, 2013

 

젓가락시리즈는 인슈전과 송동 부부가 2002년부터 간헐적으로 선보여 온 공동 작업으로, 크기와 형태만 합의한 채 각자의 스튜디오에서 젓가락 한 짝을 만들어 함께 전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는 서로의 작업을 볼 수 없다. 그래서 개별적이면서도 통일감 있는 작품이 완성되는데, 이는 서로 다른 개인이 만나 짝을 이루는 부부의 속성을 대변한다.

 

<세번째 젓가락> 역시 같은 원칙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이번에는 작가가 세 명이라 젓가락이 세 개가 되었다. 딸 송얼루이가 자신도 작업에 참여하게 해달라고 부모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두 개가 한 쌍을 이루는 젓가락이기에 부부는 처음에 고민하다가, 고심 끝에 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빠 송동은 GPS를 부착한 커다란 리모콘 모양의 젓가락을, 엄마 인슈전은 자동차에 장착하는 플루트에서 고안한 젓가락을, 그리고 딸 송얼루이는 반려견의 털을 이용하여 늑대를 형상화한 젓가락을 만들었다. 그렇게 세 개의 막대기로 이루어진 그들만의 젓가락이 완성되었다. 이들의 작품은 미국 필라델피아의 옛 저택을 개조한 체임버스 아트 갤러리에 전시되었다.

 

작품과 그 전시를 위해 인슈전의 가족은 함께 여행을 했다. 어디에 전시되는가, 하는 장소적 특성이 중요한 전시였기 때문에 함께 사전답사를 한 뒤, 베이징으로 돌아가 작품 준비기간을 가졌다. 그리고 또 함께 필라델피아로 건너가 작품을 설치했다.

 

본래 젓가락시리즈가 부부 콜라보레이션에서 출발했고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는 점에서, 딸 송얼루이가 세번째 젓가락을 추가한 것은 이 시리즈의 완성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여행은 기억이 아니다

 

요즘 나는 인슈전처럼 딸과 함께 여행하는 꿈을 꾼다. 일곱 살 딸아이와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는 여행기, 초등학생 아이와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돌아다닌 이야기, 남매와 함께 제주도에서 한 달을 체류했던 체험기 등등의 책을 읽으며 남편과 딸과 함께 갈 여행 후보지를 하나둘 꼽아본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연습하는 아기이지만 조금만 더 크면 여기저기 열심히 돌아다니고 싶다. 멀리가지 않아도, 새로운 곳이 아니어도 괜찮다. 딸과 함께라면 어디든 처음인 듯 설레고 흥미진진할 것 같다.

 

딸의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함께 80일 동안 유럽을 여행했던 일곱 살 여행의 저자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종종 아이는 기억도 못할 텐데 뭘 그렇게 열심히 데리고 다니느냐는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는 아이가 무엇을 보았고 어디를 갔는지를 기억하는 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아이의 머리가 아닌, 마음에 차곡차곡 쌓여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도 동의한다. 아이가 나중에 어디를 갔고 무엇을 봤는지 기억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여행의 목적은 아이와 함께 특별한 날들을 보내는 것, 손잡고 새로운 곳을 탐험하는 것, 그리고 추억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 자체로 큰 축복이다. 혹시라도 아이가 여행을 통해 평소 자신을 둘러싼 세상보다 조금 더 큰 세계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다름과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낼 수 있게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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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매일 식탁에서 딸과 전쟁을 치렀다.

먹고 먹이는 문제로 끼니마다 실랑이를 벌인 것이다.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는 아기들도 많던데 우리집 아기는 어쩜 그렇게 먹지 않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내 마음에 들도록 먹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육아서에서 권장하는 적정량을 채운 적도 거의 없었다. 고형식이 주식이 되어야 할 때가 왔는데도 숟가락에 놓인 것은 뭐 하나 열심히 먹지 않으니 답답했다. 재료나 입자를 아무리 다양하게 해봐도 조금 씹는 척하다가 혀로 뱉어내기 일쑤인데다, 몇 입 받아먹나 싶으면 이내 입술을 꼭 다물고 손으로 숟가락을 탁 쳐버리곤 한다. 얄밉게 시리. 내가 만든 것이 맛이 없어서 그런가 싶어 시판이나 배달 이유식도 여러 종류로 시도해보았지만 어느 것 하나 그녀의 맘에 드는 눈치가 아니었다.

 

친정엄마는 아기가 다 자기 양에 맞게 먹고 있는 거니까 너무 애닳아 하지 말라고 한다. 나도 안다. 제대로 먹지 않았다면 저렇게 잘 자라고 있지 않겠지. 그래, 나름 충분히 먹었으니 안 먹는 것일지도 모르지

 

그러나 마음이 머리와 같을 리가 없다. 딸내미가 밥을 잘 먹지 않을 때마다 엄마인 내 마음은 타들어간다. 소아과 의사에게 아기가 잘 먹나봐요라는 말을 듣는 우리 딸이 내 걱정처럼 영양 부족 상태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엄마로서 아기가 충분히 영양을 섭취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을 떨치기가 힘들다.

 

가끔은 부족한 엄마라며 나 스스로를 탓하기도 한다. 밥도 하나 제대로 못 해주고 못 먹이는 엄마라니 한심한 느낌이 든 달까. 분명 과대망상이겠지만, 딸이 밥을 거부하면 꼭 나를 거부하는 것 같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싶어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 날도 있다. 아기를 먹이고 키우는 일, 모유수유부터 이유식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친정엄마다. 우리 엄마는 손녀가 잘 안 먹는 것에 대해서 다 자기 양에 맞게 먹고 있는 거다라며 나름 의연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내가 많이 안 먹는 것은 늘 불만이다. 그렇게 안 먹어서 아이를 어떻게 키우겠느냐며 성화고, 너 닮아서 딸이 그런 거라며 핀잔을 준다. 함께 모여 식사할 때 나의 딸내미가 찡찡대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엉덩이를 떼는 사람은 아기 엄마인 내가 아니라 외할머니인 친정엄마다. “마저 천천히 먹어라. 엄마는 배 별로 안 고파라는 말로 나를 안심시키면서.

 

엄마가 나를, 내가 아기를 조금이라도 더 먹이려 애쓰는 것은 자식을 향한 사랑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더 먹어서 더 건강해지길 마음. 밥은 이렇게 사랑의 대명사 노릇을 한다.

 

 

사랑의 밥 먹여주기

 

김혜연(1985~)<먹여주기>라는 영상 작업에는 마주앉아 서로에게 밥을 먹여주는 남녀가 등장한다. 여자는 한 알이라도 흘릴 새라 남자 쪽으로 몸을 한껏 기울이기 위해 무릎까지 꿇고 밥숟가락을 한 손으로 떠받치고 있다. 어서 먹으라는 듯 자신의 입도 동그랗게 모았다. 남자도 쉴 새 없이 여자에게 밥을 떠먹여준다.

 

 김혜연, <먹여주기>, 2012

 

 

 

여기서 밥을 먹여준다는 것은 사랑을 주는 의미라고 그녀는 설명한다. 작가는 상대에 대한 사랑, 또는 관심을 표현하고 싶을 때 우리가 쉽게 선택하는 방법이 밥을 먹이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이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녀의 말처럼 우리가 가장 편하게 관심을 표현하는 방법은 많은 경우 이다. “같이 밥 먹을래?” “식사하셨어요?” “좀더 드세요등의 다양한 말로 상대에 대한 내 마음을 표현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영상 속 남녀 또한 자신의 사랑을 담뿍 담은 밥 한 숟가락을 마주 앉은 이에게 끊임없이 건네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밥을 받아먹는 두 사람 다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에게 밥을 먹여주는 것은 언뜻 보면 로맨틱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 작품의 남녀는 로맨틱과는 거리가 멀다. 도리어 영상이 진행될수록 그들은 고통스러워 보인다. 배는 불러오고, 상대방이 방금 입에 넣어준 밥은 아직 다 씹어 넘기지도 못했는데 더 먹으라는 밥숟가락이 쉬지 않고 들어온다.

 

두 사람 사이에 놓인 밥솥의 밥이 다 없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들어올 기세다. 받아먹는 쪽은 사랑하는 이의 마음이 담긴 그 숟가락을 차마 거절할 수 없다. 그리고 자신도 밥, 아니 사랑을 한가득 떠서 사랑하는 상대에게 숟가락을 건넨다.

 

사랑을 줄 때는 받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작가의 메시지가 선명하게 읽힌다. 사랑의 밀도가 높을수록 표현은 더욱 지혜로워야 한다는 만고의 진리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눈 가리기

 

사랑을 전하는 일은 이렇게 쉽지 않다. 사랑이 깊을수록 더 어렵고 그래서 더 조심스러워야 한다. 김혜연은 사랑의 표현이 때론 폭력적일 수 있음을 또다른 비디오 작업인 <눈 가리기>에서 보여준다.

 

 김혜연, <눈 가리기>, 2011

 

화면에는 작가 자신과 당시 그녀의 연인이었던 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들은 처음에 조심스럽게 서로에게 접근한다. 하지만 상대의 눈을 가리려고 애쓰는 중에 손짓과 발짓은 점차 거칠어진다. 얼굴을 때리거나 발차기를 하는 등 몸싸움은 점점 격렬해지고 때로는 화면 밖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이 비디오를 통해 관람자는 잘못된 사랑의 표현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제3자의 입장에서 안전하게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주고받았던 사랑의 표현에 대해 되짚어보게 된다. 내가 표현한 사랑이 상대방에게 폭력적이지는 않았을지, 또 내가 받은 사랑 중에 거칠다 느꼈던 것은 없었는지. 비디오에는 연인이 등장하지만 작가는 이것이 꼭 남녀 간의 사랑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라고 말한다. 이 작품의 해석은 사랑하는 모든 관계로 열려 있다.

 

 

적당량의 밥을 먹는다는 것

 

소아정신과 의사 오은영 교수는 엄마 입장에서 아이가 잘 먹지 않으면 애가 타서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 애쓰게 되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자기 입으로 들어오는 것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것만큼 큰 스트레스가 없다고 설명하면서, 싫다는 아이에게 밥을 먹이는 것이 어쩌면 폭력일 수 있음을 경고한다. 엄마가 날카로운 포크나 딱딱한 숟가락을 들고 무서운 얼굴로 먹을 것을 강요한다거나 안 먹으면 혼난다고 겁을 주면, 아이는 그것을 공격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사랑의 숟가락이 때론 폭력이 될 수 있다어찌 숟가락뿐이겠는가. 사랑하니까 하는 바른말이 잔소리가 되기도 하고 사랑하기에 건네는 손길이 간섭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내 사랑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니, 이런 비극이 세상에 또 있을까. 누구나 자신의 사랑이 상대에게 왜곡되어 받아들여지지 않기를 바란다. 세상 그 누구보다 깊고 진하게 사랑하는 내 아이라면 더더욱. 그러니 아이가 엄마의 마음을 언제나 사랑으로 느낄 수 있도록 아이에 대한 엄마의 관심과 돌봄은 늘 적당해야 한다. 적당이 어디까지인지 체득하는 것이 아마 평생의 숙제가 될 테지만 말이다.

    

 

<엄마의 시간을 시작하는 당신에게>는 2월27일에 출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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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동서가 아기를 가졌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축하와 함께 내가 가장 먼저 건넨 말은 지금 많이 자두라는, 조언 같지 않은 조언이었다.

 

그 말은 나 또한 친구들에게 임신 소식을 전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들었던 것이다. “그깟 잠 좀 못 자는 게 뭐 대수야라며 코웃음 치며 귓등으로 흘려들었던 그 말.

 

임신 기간이었을 때만 해도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는 건 별로 걱정되지 않았다. 신생아는 두 시간에 한 번씩 먹어야 한다는 것, 밤낮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 따라서 엄마는 하루종일 잠을 제대로 푹 자지 못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다만 이 지식이 되었을 때의 힘겨움은 미처 알지 못했다.

 

잠을 제때 잘 수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 그저 힘들다, 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야속할 만큼. 이론적으로는 아기가 잠이 들었을 때 엄마도 같이 잔다면 성인의 적정 수면 양은 채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론일 뿐이었다. 나는 아기가 자는 동안이 작은 생명체가 신기해서 쳐다보느라, 또 숨은 잘 쉬고 있는지 살피느라 도통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더구나 같은 양을 자더라도 한 번에 쭉 이어서 자는 것과 몇 번에 걸쳐 끊어 자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달랐다. 하루에 서너 시간의 잠으로도 충분하다는 숏 슬리퍼short sleeper’라는 부류의 사람이 있다는데 나는 그런 종족은 아니었다. 낮과 밤의 구분 없이 아기를 먹이고 돌보는 생활은 한동안 쭉 이어졌고 피로는 매일매일 누적되었다.

 

더불어 내 일과를 내가 통제하거나 계획할 수 없다는 상실감도 육체적 피로만큼 괴로웠다. 자고 일어나는 시간을 스스로 정할 수 없다는 것은 삶의 전반에 대한 결정권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았다. 계획적인 삶의 방식을 유난히 좋아하던 나는 이를 받아들이기가, 아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다. 아기를 안고 밤낮으로 집안을 서성거리며 내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 울기도 많이 울었다.

 

전공이 그림을 보는 일이라 마음을 기댈 곳을 찾고 싶어 머릿속으로 잠자는 아기와 엄마를 그린 작품을 열심히 떠올려보았지만 어느 것 하나 마땅치 않았다. 평온히 자고 있는 아기 옆에 예쁜 엄마를 그린 그림들이 몇 점 떠올랐지만 나의 상황과는 너무도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아기들은 새근새근 잘도 자고, 엄마들은 너무 행복해 보이기만 했다. 그런 그림들은 위안이 되기는커녕 내 현실을 더 보잘것없이 보이게 했다. 오히려 나는 아름다운 모자상보다 쓸쓸하고 적막한 빌헬름 함메르쇠이(Vilhelm Hammershøi, 1864~1916)의 그림 <휴식>을 보고 위로를 받았다.

  

 

빌헬름 함메르쇠이, <휴식>, 1905

 

작품 속 여인은 고개를 숙인 채 의자에 비스듬하게 몸을 기대어 앉아 있다. 휴식을 취하고 있으면서도 휴식이 필요해 보이는 여인의 두 어깨가 낯설지 않다. 겨우 아기를 재운 후 지쳐 앉아 있던 내 모습이 그녀의 뒷모습에 겹쳐 보였다. 그녀도 나처럼 나지막하게 깊은 숨을 내쉬고 있을 것만 같았다.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숨막히는 적막감은 함메르쇠이 그림의 특징이다. 차분하고 정갈한 실내 풍경 속에 인물들이 종종 등장하지만, 그 어떤 인물도 그림 속의 정적을 깨려고 하지 않는다. 함메르쇠이는 굉장히 내향적이고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작품이 화가를 꼭 닮았다. 그의 작품에서는 침묵이 만져질 것만 같다.

 

그 침묵 덕분일까.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처럼, 함메르쇠이 작품 앞에서만큼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게 된다고 고백을 하는 관람자가 많다. 조용히 이야기를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으면 쉬이 내 속마음을 이야기하게 되는 법이다.

 

 

엄마의 밤과 뭉크의 밤

 

아기가 잠든 후 모든 게 멈춘 것 같이 고요한 밤. 아기를 간신히 재운 후 몰려오는 안도감과 아기가 언제 다시 깰지 모르는 긴장감이 뒤섞인 그 밤의 무거운 공기를 기억한다. 홀로 깨 있는 적막한 어둠 속 느껴지던 왠지 모를 막막함과 쓸쓸함도 선명하다.

 

언젠가 나와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은 한 친구는 이런 말을 했다. 남편마저 잠든 한밤중, 혼자 아기를 재우던 중에 건너편 아파트의 어떤 창에서 새어나오는 희미한 불빛을 보았다고. 그녀는 혹시 저 집도 자신처럼 엄마 혼자서 갓난아기를 어르고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괜스레 눈물까지 났다고 회상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건너편 집의 그 빛이 그녀에게 적잖은 위로가 되었단다. 힘든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라는 그런 종류의 위로였다. 다른 누군가도 이 밤을 그렇게 보내고 있다는 위로.

노르웨이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1863~1944)의 그림에도 어두운 밤의 창밖을 보는 사람이 등장한다.

 

에드바르 뭉크, <생클루의 밤>, 1890

    

 

뭉크는 자신의 아버지를 그렸다고 했지만 학자들은 이 형상이 실은 뭉크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 해석하곤 한다. 그림이 그려진 1890년은 뭉크가 유학 중이던 파리에 콜레라가 창궐해 생클루로 몸을 피한 때였다. 모든 것이 낯설었고 마음을 나눌 친구도 없었다. 그리고 이로부터 불과 몇 달 전, 뭉크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들었다. 다섯 살 때 사망한 어머니, 열네 살 때 죽은 누나에 이어 스물여섯에 또 한번 맞은 가족의 죽음이었다. 유학중이었기에 그는 고향 노르웨이에 가서 아버지의 임종을 지킬 수도 없었다. 어둠 속의 창밖을 바라보는 실루엣에는 이런 상황 속에서 뭉크가 느꼈을 고독이 투영되어 있다. 당시 그를 매료시켰던 인상주의의 짧은 붓터치를 사용하면서도, 태양의 빛 아래 시시각각 변하는 외부 세계의 인상을 포착한 인상주의자들과 달리, 달빛 아래 침체된 마음의 인상을 담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고독한 이 남자, 아니 뭉크의 마음은 깜깜한 바다 위를 떠다니는 불빛을 쳐다보고 있다. 자신과 비슷한 이유로 불을 켜놓은 누군가에게서 위로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밤이 알려준 것들

 

수면 부족은 초보 엄마라면 모두가 치러야 할 신고식 같은 거라고들 한다. 언젠가, 신은 왜 엄마에게 이런 통과의례를 주었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아기들이 잠투정 없이 수월하게 잠든다면, 밤에도 중간에 깨지 않고 오래 잔다면, 엄마라는 역할에 적응하기가 훨씬 수월할 텐데

 

그 시간을 통과하면서 어렴풋이 들었던 생각은, 잠과의 사투를 벌였던 날들이 나를 서서히 엄마로 빚어낸 건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수면욕을 온전히 내려놓아야만 하는 그 시간을 보내면서, 엄마가 된다는 것은 나의 욕구보다 아기의 필요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것임을 몸으로 처절하게 익혔던 것 같다. 한 생명을 돌본다는 것의 무게만큼 혹독한 이 훈련은 어쩌면 엄마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몸으로 배운 것, 특히 고통을 동반하며 깨우친 것은 쉽게 잊히지 않으니 말이다.

 

아빠도 더 적극적으로 이 훈련에 동참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만은 여전하지만, 어차피 받아야 할 훈련이었다면 기꺼이 맞이할 것을, 하는 후회가 밀려든다. 행복한 훈련이려니 하면서 말이다. 그랬다면 밤을 지새울 때 몸은 피곤할지언정 마음은 조금 편안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아기 때문에 잠 못 자는 날들은 긴 인생 중에 아주 짧은 시간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더라면 짜증도 덜 내고, 더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도 든다.

 

머지않아 우리 아기는 잠들 때 나의 품도, 나의 자장가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밤에 벌떡 일어나 두리번거리며 엄마를 찾는 일도, 엉금엉금 기어와 내게 코를 박고 잠드는 일도 없을 거다. 그때가 되면 아기를 뉘여놓고 잠깐 숨을 돌리던 찰나의 순간들, 작은 아기를 안고 먹색의 창밖을 바라보던 밤들마저 많이 그리울 것 같다. 그렇게 길게 느껴지던 시간들이 이제와 돌아보니 참 짧았구나 하고 그리워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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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소개 : 정하윤

 

이화여자대학교 회화과와 동 대학원 서양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샌디에이고 캠퍼스에서 중국현대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 논문 1980년대 상하이의 추상미술(Abstract Art in 1980s Shanghai)을 비롯해 1930 년대 상하이와 서울의 잡지에서 재현된 모던 와이프 연구(Searching for the Modern Wife in 1930s Shanghai and Seoul Magazines)」 「유영국의 회화: 동양의 예술관을 통한 서양미술의 수용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공저로한국현대미술읽기』 『한국동시대미술 1990년 이후가 있다.

현재 아이를 키우며 이화여대와 추계예대에서 현대미술사 강의를 하고 있다. 한국현대미술사에 대한 책을 집필 중이다.

   

 

 

작가의 말

 

삶의 전환점을 맞을 때마다 더욱 더 그녀다운 작품을 선보였던 핀란드의 화가 헬레네 스키예르벡. 평생을 충만하게, 자기 자신으로 살았던 스키예르벡의 자화상에서 나는 왠지 기대와 두려움이 교차하는 감정을 느낀다. 엄마라는 인생의 새로운 문 앞에 선 나의 마음이 담겨서일까. 그림을 보며 내게 묻는다.

 

나는 과연 나를 잃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계속 나답게 살 수 있을까?”

 

  헬레네 스키예르벡, <자화상>, 1912

   

 

 

 

엄마이기 전에 여성인,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

 

주신 글을 읽고 있으니, 마음이 왜 차분해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척박한 현실을 넘어 그래도 날아오르려 끊임없이 애를 썼던 젊은 날의 내 모습을 당신의 글에서 보았습니다. 그때 그 무모한 도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조차 불명확했겠지요. 작가이기 때문에 살아간다는 그런 자신감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셈이지요. 나한테 그림 그리기는 숨쉬기와 똑같은 것입니다.

작업을 하는 이 시간이 정말 소중할 뿐입니다. 이 작업을 통하지 않으면, 나는 당신과 소통할 아무런 재능이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작업을 계속하는 것이지요. 여기 추천 글을 보냅니다. 감히 이런 청탁을 받은 것이 과분하지만 글 몇줄 보냅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너무나 큰 행운입니다. 삶은 사소하다고 여겨지는 일의 가치를 자신에게 부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여성이 엄마의 위치와 여성의 독립적인 삶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넘어서 여성의 독립적인 삶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하는 의문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생이 소중한 여성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이유입니다.”

 

 

_ 한국 여성주의 미술 1세대 작가 윤석남이 저자 정하윤에게 보낸 편지 중

    

 

<엄마의 시간을 시작하는 당신에게>는 2월27일 출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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