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늘보가 사는 숲에서 The Collection Ⅱ
아누크 부아로베르.루이 리고 글.그림, 이정주 옮김 / 보림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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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llection

나무늘보가 사는 숲에서 ​

 

 

 

 

 

소장 가치를 지닌 그림책.

재미와 독특함, 주변 환경을 고민하게 하는 그림책.

 

보림출판사가 신작으로 내놓은 <나무늘보가 사는 숲에서> & <바다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보림극장에 공연 관람갔다가 책방에서 만난 팝업북 <나무늘보가 사는 숲에서>를

펼쳐보는 순간 '와아~~하하' 탄성을 질렀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꼭 숲속을 산책하는 느낌

포크레인에 숲속이 휘청거리는 느낌

다시 숲이 회복되는 느낌

 

이런 과정이 세심하게 표현된 느낌이 참 좋았던 책이랍니다.

 

 

 

<나무늘보가 사는 숲에서> 는 '자연의 보존과 회복,  지구환경의 공존'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팝업이라는 시각적 느낌을 빌려 다양한 생명체가 살아가는 지구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전달하고 있죠.

 

많은 말을 담아내기 보다는 이 작품은 시각적인 섬세함이 공감으로 다가옵니다.

나무 한그루를 이룬 숲속, 그곳에서 쉬거나, 놀고있는 듯한 새와 고슴도치,  사람들. ​

'나무늘보'를 메인으로 설정하고 있지만, 아주 작은 생명체로 그려놓은 작가의 의도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모든 생명체의 존재가치를 평등하게 그려놓았어요.

그래서 장면마다 등장하는 '나무늘보'를 찾아보는 즐거움도 맛 볼 수 있습니다.

 

 

 

'나무늘보가 사는 숲은

모든 것이 푸르고, 생명이 넘쳐요.... '

 

오픈 멘트입니다.

 

나무늘보가 존재하는 숲은 푸르고, 생명이 넘친다.

그 숲에 곧 무슨일이 일어날 것 같은 ​암시가 느껴지죠??

 

 

숲을 개발하기 위한 거대한 기계장비들이 등장합니다.

그래도 잠꾸러기 '나무늘보'는 꼼짝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지요.

 

4살된 아들은 나무보다는 포크레인과 톱니바퀴에 흥분합니다.

지구의 환경에 대해 운운하는 건 아들에겐 아직 어렵겠죠.

다만, 숲속의 나무들이 새들이 그리고 나무늘보가 다치게 될 것 같다고 말해줍니다.

그래서 엄마는 참 슬프다고.. 숲속에 나무가 행복해야 '나무늘보'도 행복 할 수 있다고 합니다.

 

"행복숲"

요즘 '행복'이라는 단어를 어디에나 붙이는 녀석입니다.

"행복밥" "행복사탕" "행복엄마"

그러고 보니 '숲이 행복해야 사람도 행복하다'라는 이쁜 말이 떠오르는군요.​

 

 

 

숲의 초록색과 기계의 붉은계열이 대조를 이룹니다.

산업화된 세계는 현재 모든 숲들을 이렇게 고갈 시키고 있겠지요.

 

 

<나무늘보가 사는 숲에서>을 제작한 작가 아누크 부아로베르(Anouck Boisrobert)와

루이 리고(Rouis Rigaud)

프랑스 출신의 삽화가이자 장식미술학교에서 시청각 교수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

그래픽 디자인과 멀티미디어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이력에서 '숲'을 표현한 섬세한 입체감과 예술성,

담아내고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어렵지 않고, 누구나 공감 할 수 있는 팝업북의 완성도를 높인 것 같습니다.​

 

 

 

 

우공이산(愚公移山) 이고 했던가요.

많은 사람들이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숲을 자연을 지구를 황폐하게 하지만,

나무를 심는데 희망을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리석은 희망인 듯 하지만, 씨를 뿌리고, 싹을 피우면서 '나무늘보'는 다시 돌아옵니다.

 

 

 

'나무늘보가 사는 숲은 모든 것이 조화롭고, 생명이 넘쳐요.

나뭇가지에 나무늘보가 흔들흔들 매달려 있어요.

보이나요? '

 

 

 

우리들에게 '나무늘보'는 그냥 동물이 아니라 지구에 공존하는 가족입니다.

숲의 생명력은 우리 삶의 전부입니다.

<나무늘보가 사는 숲에서>는 섬세한 예술적인 감각으로 재미있고, 희망적으로 전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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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로 산다는 것 - 잃어버리는 많은 것들 그래도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
제니퍼 시니어 지음, 이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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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리는 많은 것들 그래도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

부모로 산다는 것

 

 

 

ALL JOY AND NO FUN

 

제니퍼 시니어 지음 | 이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 |

2014년 04월 19일 출간

노란색 표지에 선명하게 박혀있는 서명 '부모로 산다는 것'을 보는 순간 현기증이 일어난다.
'All Joy No Fun 모든 게 기쁨, 그러나 재미는 전혀 없음'
'그래도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
겉표지의 메시지 만큼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최고의 역할이 '부모노릇'이 아닐까? 
41개월이 막 시작된 ​아들이 눈뜸과 동시에 이유없이 짜증을 낸다.
분명 뭔가 이유는 있겠지만, 정확한 이유를 서로 찾기 힘든상황.
달래고, 윽박지르고, 방귀소리에 깔깔 웃다가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아침의 풍경.
화났다가 웃음짓는 이런상황이 육아중에 얼마나 비일비재 한지.
이건 아주 단순하고, 유쾌한 에피소드에 불과할 것 같다.
영유아 시기를 지나 아동의 시기, 사춘기로 이어지는 성장의 단게에서 부모는 숱한 갈등과 고뇌의 시기를 살아내야 한다.
아마도 자녀가 죽거나, 부모 본인이 죽음에 이르지 않으면 생애서 놓을 수 없는 연민의 관계가 아닐까.
<부모로 산다는 것>은 육아서가 아니다. 부모지침서도 아니다.
2010년 '뉴욕 매거진'의 커버스토리 베테랑 기자인 제니퍼 시니어가 쓴
'모든 게 기쁨, 그러나 재미는 전혀 없음 All Joy and No Fun'이라는 특집기사가 발표 되었는데
반응이 뜨거웠다. 에너지를 이어 추가 조사와 연구 끝에 2014년 1월에 책으로 출간되었다.
인류학을 전공한 저자는 <부모로 산다는 것>에서 다양한 측면에서 부모와 자녀 관계를 다루고 있다.
철학, 문학, 역사, 심리학과 인류학 등 각 분야의 서적과 저자들의 인터뷰, 부모모임의 사례들을 리얼하게 담아내고 있다.
1장~6장으로 나눠진 목차만 읽어도 무엇을 설명하는지 짐작이 간다.
1장 나의 삶은 어디로 간 것일까?
2장 조급한 엄마, 야속한 아빠
3장 소박한 선물
4장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5장 사춘기 아이들
6장 행복이란 무엇인가?​
부모가 되는 순간 자신의 정체감이 상실된다. ​일상생활에선 수면부족, 몰입의 방해, 무수한 걱정과 갈등으로 격정의 시간을 보내는
육아기는 양육한 경험이 있으면 공감이 갈 것이다. 2장에서는 부부가 자녀를 두고 갖는 교육관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
부부관계의 소원함에 관하여 기록한다. 3장은 아이들이 주는 일상의 작은 행복과 기쁨을 4장은 어떤 교육적 모델을 제시
해야할지에 대한 고뇌가 5장은 사춘기를 맞게 되면서 부모와 자녀의 끈임없는 부딪힘이 리얼하다.
6장은 숱한 갈등과 기쁨의 교차를 그래도 부모이기 때문에 경험하는 행복을 말하고 있다.
개인적으론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었다. 빨간 밑줄을 이곳저곳 그어가며 저자가 예리하게 지적하고,
통찰력있게 펼쳐보인 역사, 심리학, 문화인류학, 사회학, 경제학, 철학적 바탕의 가족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어떤 소설보다 더욱 감성적이고 어떤 심리학, 경제학 서적보다 현실감있게 다가온 것 같다.
몇녁간의 육아를 통해서 겪었던 고립감, 몰입부재, 심신의 피곤함, 부부의 갈등, 양육비용의 버거움을
전방이적 자료로 제시하니 객관적 사고를 갖게한다. 사춘기관련 내용의 부모 인터뷰와 자료 역시 흥미롭다.
<부모로 산다는 것>에는 많은 학자와 부모 인터뷰가 실려있다. 
예를 들면, 애덤 필립스는 한 예세이에서
"워즈워스나 프로이트나 블레이크나 디킨스와 같은 다양한 작가들은 모두" 사람들이 어릴 때 느끼는 격동과 
격렬함이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어른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했다고 썼다.  ​
필립스는 애널리스트 도널드 위니콧의 말을 빌려
"위니콧에게 어린아이는 문자 그대로 미친 존재다"라고 썼다.
"위니콧이 안고 있던 질문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제정신으로 돌아오게 만들 수 있을까?'가 아니라
'만일 어른이 어린 시절에 가졌던 것과 동일한 수준의 광기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였다. ​
​스타인버그의 '엇갈린 길들' 중에
"사준기의 부모들은 자기가 가진 물리적인 통제력과 거기에 따르는 위안을 단계적으로 포기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한때는 자기의 것이었지만 이제는 그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
​저자는 필립스외에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 이야기 많이 들려주고 있다.
 미드의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육아중인 독자에게 아주 중요한 메세지를 전하고 있다. ​
​예전에는 부모 역할이 자기 방식의 삶을 살도록 분명한 역할모델이 되었지만, 현대는 그렇지 않다.
미드는 미국인 부자관계를 상징적으로 '가을의autumnal'로 표현하고 있다. 미국의 아버지들은
자식들이 자신을 추월하기를 바라며 교육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전세계가 그럴것 같다. ​
 
​불확실성의 미래는 불안을 가중 시키고, 계층간의 교육열은 계층별로 다양한 양상을 보이며 사교육 시장이 확장되어간다.
모든 삶이 경쟁이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양육이란, 교육이란, 부모로 산다는 것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듯이 19세기 넘어 자녀는 노동인력의 대상이 아닌 보살핌과 기대주 입장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부모교육서로 보기엔 너무나 철학적인 문제제기와 사고를 요구한다.

불확실한 시대에 '부모로 산다는 것'은 불안과 초조의 연속이다. 자녀는 나 자신과는 또 다른 보살핌의 존재로서 버겁다.

그러나 부모이기에 느껴보는 생의 환희를 우리는 느낄 것이고, 성장하는 아이의 모습에서 희망을 보기도 한다.

어떤 모습이든 많이든 적든 아이를 키우면 본표적으로 느끼는 행복의 기쁨.

필립스 에세이 <균형에 대하여>의 글은 옮기며 '부모노릇'에 대해 성찰해 본다.

 "성장해 가는 아이들에게 인생은 온갖 놀라움들로 가득 차 있다.

이런 놀라움이 트라우마로 남지 않고 그저 놀라운 일들로만 남을 수 있도록 어른들은

헌신적인 노력과 주의를 기울인다. 그러나 아무리 건전한 보살핌이라고 하더라도

자기 아이를 보호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는다.

인생에서 설계가 가능한 부분은 아주 조금밖에 없다는 깨달음을 피해 갈 수는 없다. " 3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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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난 위위야 중국 아동문학 100년 대표선 12
거빙 지음, 김명희 옮김 / 보림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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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雨的桃花源

'위위는 인간쥐이다' 시작되는 이야기는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감과 추리적 상상력을 요구한다.

유전자 변형으로 탄생한 인간쥐는 인간의 얼굴과 사고를 하고, 몸은 보통 생쥐이다.

발명 초기에는 애완용으로 인기를 얻지만, 너무 많은 개체수 증가로 무작위로 죽임을 당한다.

결국 인간쥐들은 시궁쥐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하지만, '미친천재'라 불리는 어느 교수는

슈퍼 인간쥐를 비밀리에 실험하고 있었고, 주인공 '위위'도 실험쥐 중의 한마리였다.

실험실의 사고로 교수는 죽고, 겨우 살아남은 '위위'는 비교실험 대상인 천재 동생 '펑펑'을 찾아 길을 떠난다.

'프롤로그'는 강한 인상을 남긴다.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인간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가의 상상력이 뛰어남과 동시에 기괴하다는 느낌이다. 실험실을 벗어난 '위위'는 동생을

찾는 여정에서 겪는 모험과 시궁창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쥐의 사연을 공유하며 성장해간다. ​

대왕쥐의 굴에서 만난 음식독을 감별하는 스승 '은젓가락'​, 춤추는 뱀을 살리기 위해 죽어간 '널빤지',

헤어디자이너와 살아가는 '헤어스타일', 침몰한 배에서 자신이 배가 되어 새끼들을 구조한 '엄마 담비'​ 등

인간들의 사연 만큼이나 구구절절한 인간쥐들의 스토리는 감동과 재미를 더해준다. ​

거빙의 <안녕, 난 위위야>라는 작품을 읽으며,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이 떠올랐다.

황선미 작가는 <마당을 나온 암탉>의 주 독자를 어린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주제를 '생명'에 두었다고 ​

강연장에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작가 거빙 또한 <안녕, 난 위위야> 독자를 한정한 것 같지 않다.

다양하게 담아낸 메시지는 묵직하다. 유전자 변형의 문제점과 생명존엄의 위협, 삶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자세, 펑펑이 찾아 떠난 '도화원'까지 삶의 철학적 사고를 요구하는 것 같다.

​'거빙'이라는 작가를 기억하고 싶을만큼 상상력이나 이야기를 끌어가는 에너지는 놀라웠다.

등장하는 생명체들, 은젓가락, 널빤지, 담비, 춤추는 뱀, 사냥꾼 칼자국, 헤어스타일의 사연을

액자구성으로 이야기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작가의 감성적인 상상력이 돋보인다.

 ​

천재동생 '펑펑'과 비교되는 평범한 형 '위위'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의도가 눈여겨 보이고,

아내를 잃은 슬픔을 조각으로 완성하는 '은젓가락'과 뱀을 살리기위해 피리를 불어주는 '널빤지'

의 예술적 혼은 감동이었다. ​'펑펑'이 그토록 찾았던 '도화원'은 과연 어디일까?

그곳은 한 공간을 뜻하지 않으며, 엄마 담비가 남긴 마지막 유언처럼 머리에 맴돈다.

 

"사랑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가장 강한 무기란다." 우리가 찾는 유토피아가 '사랑'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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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질간질 아기 그림책 나비잠
최재숙 글, 한병호 그림 / 보림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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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북 | 24쪽 | 170*150mm | 205g | ISBN(13) : 9788943309749​

 

 

간질간질 | 아기 그림책 나비잠 21

최재숙 (글) | 한병호 (그림) | 보림출판 | 2014-03-17

 

'좋은 아빠' 되기 프로젝트??가 꽤나 확산되는 분위기입니다.

일만하고, 돈만 벌어다 주는 아빠는 어느순간 손님처럼 됩니다. 그러다 가족의 이방인이 되었죠.

행복하자고 죽어라 돈벌어,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던 아빠의 책임만으론 행복 할 수 없음을 알기 시작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다행이죠.

행복하려면, 함깨 공유하는 추억과 이야기가 많아야 되는거 아닐까요?

물질적으로 풍요하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것보다 더 소중한건 자녀의 삶에 공감입니다.

아기 일때는 놀아주고, 좀 크면 대화하고, 선택앞에 조언하고, 경청하고, 지지해주는 것.

좋은부모, 좋은아빠, 좋은엄마..의 가장 큰 조건이겠죠?​

보림출판사에서 오랜만에 '아기 그림책 나비잠' 시리즈 <간질간질>이 출간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그림책 시장에서 꽤 인지도가 높은 '최재숙 작가'의 글에 '한병호 작가'의 그림이 함께합니다.

​아빠와 사내아이가 등장해 몸놀이를 하는 이야기 구성이 친근함과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유아의 심신의 발달상황 따른 몸놀이 효과를 극대화 시킨점이 좋습니다.

의태어와 의성어를 결합하여 소리의 즐거움을 전합니다.

아빠의 행위를 따라 비슷한 곤충과 동물의 변형이 조화를 이루며 재미를 더하는군요.

이 그림책은 목적이 아빠와 유아 자녀의 신체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이를 사랑하고, 잘 해주고 싶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음을 육아를 해본 부모들은 잘 압니다.

단순한 것 같지만, 놀이의 방법은 쉽지가 않죠?

그럴때 요런 그림책은 어색함을 조절해주기에 딱 안성맞춤입니다.

들춰보다가 함께 간질러보고, 동물울음이나 움직이는 특징을 따라하는 것도 좋겠죠. ​

그러다보면 '깔깔깔' 웃고, ​떠들며 친밀감이 돈독해 질겁니다.

몸으로 부딪히는 놀이만​큼 서로에 대한 친밀감과 신뢰감을 더해주는게 있을까요.

최근에 EBS에서 재방하는 <퍼팩트 베이비>를 시청했는데 아기들도 부모 특히 엄마와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애착의 정도가 엄청난 차이를 보이더라구요.

부모와 잘 놀았던 아이들이 심신이 건강하다는 육아의 기본입니다. ​

서툴다고, 어색하다고, 뭘 하며 놀아줄지 방황하지 마세요 ^^

<간질간질> 그림책 한 권으로도 충분히 아이와 즐거운 놀이의 추억을 만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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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의 즐거움 - 인문학자 김경집의 중년수업, 개정판
김경집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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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이 즐겁나요? 반신반의한 견해이다. 사회적 기반, 가정의 안정감,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 등 이런게 충족 된다면 모를까.'인문학자 김경집의 중년수업' 이라는 부재를 단 <나이듦의 즐거움>을 읽으며, 지루하기도 하고, 깜박 잠이 들기도 한다. 마흔의 나이를 훌쩍 살아낸 중년의 사내가 ​조근조근 들려주는 잘 늙어가자는 조언은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내 나이 불혹을 맞아, 격조있는 언어에 대한 불편함이 가슴바닥에서 닿아오른다. 다 옳은 말이며, 참으로 우아한 깨달음의 경지. ​이런 경험과 깨우침이 있다면 나이듦이 늙음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저자는 마흔의 중반에 <나이듦의 즐거움>을 첫 발행하여, 쉰 중반에 재발행되었다. ​마흔 중반에 초판을 내고는 서명이 다소 '건방지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다. 그러나 그건 나이듦을 뜻한다기 보다는 '제 나이를 살아내자'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재발행 서문에 밝힌다. 1장에서 3장으로 구분하여 1장은 나이들어가며 잃거나 얻는 것들에 대한 깨달음을 기록하고, 2장은 일상속에 접하게되는 다양한 상황에서 현재의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들어낸다. 3장은 여전히 살아가야 할 삶의 지속성을 말하며 새로운 길의 여정을 희망하는 속내를 보여준다. 저자는 자신이 계획한 대로 25년은 배움을, 25년은 가르침을, 25년은 세상과 교감하는 글씀을 실천하고 있다.

​젊은이가 <나이듦의 즐거움>을 읽는다면 지루할까? 아니면, 공감이 될까?  늙어가는 누군가 읽는다며 백배 공감 될까?

허튼소리 말라고 나무랄까?  첫장을 들추면서 '교수 정도의 삶을 살았으니"라며 편견의 잣대로 곱게도 늙어간다 여기고 싶었다. 그러나 사람살이란게 어디서 어떤상황을 살아가든 깨달음의 차이는 각자의 몫인걸 알게 된다면 편견을 내려놓고 객관적으로 개별적 인간의 삶을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결국 저자가 재발행 서문에서 밝힌 것 처럼, 나이든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나이를 먹어가는 모든 독자들에게 '나이듦의 태도'를 말하고 있음을 알고서야 제대로 읽을 수 있었다. ​

시력은 잃었으나 심력이 굳어진 깨달음, 아내의 암투병으로 죽움의 문턱을 함께 견뎌낸 동지애,  쉰의 문턱에서 강효 교수를 닮고 싶다는 자아, 스스로 시간을 배반하지 않으려고 쓴다는 설날의 유서 등은 잔잔한 감동으로 닿았다. 인문학자의 경험이 물씬 풍기는 문학적인 표현과 생텍쥐페리, 카프카, 원효, 이효석 작가의 묘사를 담아낸다.

영화와 미술, 쿠바 음악가들인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에 대한 감상은 물질적인 삶에 퇴색된 사고에 자극으로 다가온다. 일상의 모든것들을 마주대하며 뾰족했던 심성이 뭉퉁해지면서 얻어지는 혜안을 간결하고, 담담하게 풀어내는 저자의 글맛이 책장을 덮고야 전해진다.  

 

이십대 시절, 입에 붙이고 살았던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책의 엔딩에서 마주 대하니 감회가 새롭다.

마흔에 읽어보는 프로스트는 ​또 묻는다. "너는 너의 길을 잘 가고 있는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여전하고, 가고있는 길도 어딘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불혹'에 공자는 흔들림이 없다했나. 피식 웃음이 난다. 프로스트의 시와 공자의 성어가 오래도록 이어지는 것은 길은 계속 가야하고, 흔들림은 유효하기 때문이겠지. 그래. 나이듦이 즐겁다고 단정하기도 어렵지만, 고통스러운 것도 아니지 않은가? ​

 

 

불혹이란 그저 물리적 가늠일 뿐, 여전히 뜻을 세우는 한 서른 청년의 모습을 잃지 않습니다.

늙은 청년. 그 부조화가 끝까지 삶에 진지할 수 있는 마흔여덟을 버텨줍니다.

이제야 제대로 된 삶을 사는 또 다른 출발점이기에 저는 스스로에게 이 시간을 축복해주고 싶습니다.

246쪽

 

 

 

속도를 얻으면 풍경을 잃고 풍경을 얻으면 속도를 잃기 쉽다는, 삶에서의 경험이 자꾸만 우리를 엉거주춤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무심하게 흘러가기만 한 줄 알았던 시간은, 어쩌지 못하는 그 곤경도 조금은 덜어내며 살 수 있음을
가르쳐줍니다.  그게 삶이라는 걸, 미련 하게도 참 늦게 깨달았습니다.
11쪽

 

 

 

 

 

 

가지 않은 길
 
프로스트
 
노란 숲 속 두 갈래 길.
두 길 다 가지 못하는 것 못내 안타까워
한참을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 볼 수 있는 만큼 멀리 바라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거기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어간 자취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생각했던 게지요.
그 길 걷게 되어, 어차피 그 길도 거의 같아지겠지만.
그날 두 길엔
낙엽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해 한 길은 남겨두었습니다.
이어진 길 끝 없어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훗날 먼 훗날 나는 어디선가
한숨 쉬며 말하겠지요.
​숲 속에 두 갈래 길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 애써 잡았노라고
그리고 그것이 내 삶을 바꿔놓았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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