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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유용주 지음 / 솔출판사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2006년 3월 달쯤 책장을 정리할 때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를 다시 한 번 읽자고 생각했었다. 왠지 지금이라면 약 3년 전에는 알 수 없었던 글의 깊이를 알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제는 알 수 있겠다 싶은 자신감을 확인하기 위한 치졸한 선택이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3일 동안 꾸준히 읽고 내린 결론은 ‘아직 내가 부족하구나.’하는 안타까움 이었다. 유용주 시인의 글을 이해하기에는 아직 내가 덜 살았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미흡한 감상을 적는다는 것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는 유용주 시인의 인생 한 조각이 떡 하니 떨어져 있는 것과 같았다. 그 속에 담긴 구구절절한 인생살이 속에는 삶을 향한 끈질김이 담긴 유용주 시인의 발이 있었다. 신발과 양말에 꽁꽁 감싸여 날카로운 땅을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발이 아니라, 그것을 꿋꿋이 견뎌내 가시바늘도 못 뚫을 정도로 단단한 갑옷을 입은 발이 말이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선 문학하는 사람의 발이었다. 세상의 부조리를 멀찍이 서서 방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을 불 싸지르고 목이 쉬어라 사람됨을 외치는 문학인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의 단단한 발이 아니라, 그가 살아온 인생의 굴곡이다. 그것은 무기력한 아버지 밑에서 보았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말하지 않아도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 그가 전전했던 곳의 이름만 적어도 눈치 빠른 사람은 다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식당주방, 과자 공장, 세일즈맨, 독서실 청소부, 막노동판에 시다. 변변한 것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정말, 처절한 경력이다. 하지만, 묘하게도 그는 이런 것들 덕분에 더욱 알찬 글을 쓰고 있다. 이것저것 포장해서 이리저리 숨긴 인생사가 아니라 질기게 살아왔기 때문에 다른 이의 고통을 알고, 세상의 숨어있는 병폐를 속속들이 찾아내 글로 쓸 수 있는 것이다.
그의 글을 읽고 내가 처음으로 한 일은 웃기게도 제기 닦이다. 책을 반쯤 읽었었고, 그의 누나 역시 평탄한 삶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제사가 있었다. 얼굴도 모르지만 고조부 할아버지가 상 뒤에 떡하니 앉아 있는 모습이 생각났고 그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내가 이 나이 먹도록 제기 하나 닦지 않은, 정성어린 삶이라고는 모르는 허무한 녀석 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퍼뜩 작은 엄마께 행주를 받아 있는 힘껏 박박 닦았다. 이리저리 돌리며 구석구석 닦는 것에 난 책을 읽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제사가 끝나고 밖으로 나가 조상들을 배웅 할 적에도 감기가 들 정도로 오랫동안 멍하니 서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이 소설이나 시집이 아니라 산문집이었기 때문에 훨씬 뚜렷하게 유용주 시인을 만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고 걸걸한 목소리로 옛 이야기를 술술 흘려놓는 옆집 아저씨를 옆에 둔 것 같은 그 친근함은 1인칭 소설로도 보여줄 수 없는 내면이 있었다. 그래서 쉽게, 쉽게 넘어가면서도 가끔 찡한 무엇이 있었다. 특히, 그의 누나를 말 할 때는 가슴이 저릿한 것이 뭣을 그렇게 잘못했기에 그 나이 먹도록 설거지통을 부여잡고 자기 속처럼 벅벅 긁어야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참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가끔 길거리에서 노점상을 하는 할머니들을 바라볼 때 들었던 그 애절한 마음이 겹쳐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해지고 끝내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갔기에 그들에게 그렇게 무거운 짐이 지어졌나 하는 비탄까지 하게 되었다. 또한 그가 가끔씩 자연주의자 같은 말을 꺼낼 때면 1년 전에 보았던 ‘바다’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떠오르면서 거미줄을 쳐대며 ‘땅값도 안 내는 녀석들.’이라는 친구 녀석의 말에 ‘사실 지구의 주인이 꼭 인간이라는 법은 없잖아’ 하며 되받아 말하면서도 ‘밤 거미는 해롭지만 낮 거미는 좋은 거다.’라는 할머니 말도 무시한 채 휴지를 돌돌 말아 가차 없이 내리치던 내 이중적인 모습이 떠올라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던 적도 있었다. 그것에 마치 화답이라도 하듯이 이면우 시인의 [거미]라는 시를 떡하니 올려놓고 생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마치 뒤통수를 맞은 듯도 하고 귀신에 홀린 듯도 하여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유용주 시인의 글에는 자신이 아닌 세상을 위한 글이 있었다.
그러나…. 그 한 단어에 담긴 미래지향적임은 바로 그것에 다다르기 전의 무수한 고비들을 단숨에 일축하는 날렵함이 있다. 그래서 유용주 시인의 산문집은 고달픈 인생살이를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따뜻하다. 또한 마지막 힘을 쥐어짜낸 듯한 ‘나는 살아가리라’는 말 속에는 저자가 지향하는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살아가는 것. 비록 삶이라는 것이 삶은 달걀처럼 물컹하지도 않고 속을 듬직하게 해주지도 못하지만 그래서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겸허히 자신의 신념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일종의 진리라고 말하는 것 같다.
학교를 결석 하고 9시 정도에 병원을 찾아 간적이 있었다. 그 때 대기실에 꽉 차 있던 환자들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세상에는 아픈 사람들이 많구나.’하는. 유용주의 글은 그렇게 잊고 있던 것들을 새록새록 떠올리게 하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잊고 있었던 것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들을 고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기쁜 일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책은 일종의 교서다. 그렇다고 해서 거창하게 뭔가를 꾸며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살면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하는 것 중에 이런 것들도 있다고 슬며시 귀띔만 해줄 뿐이다. 그래도 난 그 귀띔이 교서에 나오는 거창한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책을 읽다가 제기를 닦았던 나의 모습을 기억하며 이 책을 가슴속에 고이 간직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