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
울리히 알렉산더 보슈비츠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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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지워진 이름 위에 찍힌 세 글자 '유대인'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이 박해받았다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그들은 '존재 자체가 욕설(p19)'이 되어, 한 곳에 발붙이지 못하고 떠돌아 다닐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정체성이 자신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세상에서, 생존을 위해 자신과 같은 이들을 증오하며 끝없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저곳에서 이곳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질버만의 이야기, <여행자>. 유대인 당사자의 초기작이자, 책의 표지처럼 그간 우리 역사가 얼마나 어두운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는지 폭로하는 고발 문학이다. 이 책이 이제서야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다. 그만큼 소수자들의 역사가 풍화되고 있다는 거겠지.


 국가는 힘없는 유대인에게 '선전포고'를 내린다. 그들이 이전에 각각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국가에게 중요한 건 그들이 '유대인'이라는 사실 하나 뿐이다. 홀로 외로운 전쟁을 치러야 하는 유대인들. 그러나 그들의 몸부림은 역으로 국가에 대한 저항이자 선전포고로 매도되고, 이는 또다시 공격받는 이유가 되는 뫼비우스의 띠에 갇히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설령 반유대주의자들과 결탁했다고 해도 어쨌든 정부(p72)'라며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질버만의 발악을 누가 비난할 수 있겠는가.

 친한 친구 한 명만 등을 돌려도 마음 아프고 괴로운데,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라고 믿었던 국가가 거꾸로 자신을 향해 칼을 겨눌 때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어떻게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자신이 가진 돈에 집착하는 질버만의 애처로운 모습에 감히 손가락질할 수 없는 이유이다. 


 국가는 유대인을 한 곳에 있지 못하고 움직이게 하고, 또 언제든지 멈춰세운다. '여행'이라는 단어는 대개의 경우 우리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과연 이 책에서의 '여행자' 또한 그럴까? 어디에서 출발하든, 도착지는 '핍박과 억압'이다. 덜컹거리는 기차와 함께 흔들리며, 점점 이성적인 사고를 잃어가고 취약해져 가는 질버만의 모습을 매 순간 따라가는 것은 그 어느 비극보다 고통스러웠다.

 책의 시간은 비교적 천천히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하기보다는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언제 어디서 반유대주의자들이 등장하여 질버만의 목을 조여올지 모르는 상황. 100년 전 그때는 얼마나 더 긴박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 이 책을 보고 있는 우리는 마음 놓고 질버만의 이야기를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볼 자격이 있을까? 누군가의 목을 조르는 것을 가만히 지켜본 적이 있지는 않은가? 젠더, 인종, 학벌, 경제적 지위 등을 이유로 한 차별들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이름을 지워내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 '우리 뜻이 아닙니다', '세상사가 다 그래요', 이 말로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부정의가 정당화되어 왔던가. '무위는 사실상 무력이다(p7)'라는 말이 내 가슴을 아프게 찌른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렇게 기약 없는 여행을 할 수밖에 없는 이들은 누구인가? 씁쓸한 질문을 남기며 책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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