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웃의 식탁 오늘의 젊은 작가 19
구병모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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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의 검사대에 올라가는 여자라면 누구라도, 자신의 몸이 어떤 자극이나 모욕에도 반응하지 않는, 동요나 서글픔 따위를 제거한 무생물에 가까운 오브제라는 사실을 철저히 인식하지 않고 지나갈 수 없었다. 그 과정을 흔히 정상 내지는 보편이라고 간주되는 경로를 거쳐 통과한 이는, 타인과의 어지간한 신체적 접촉 정도로는 눈을 부라리지 않게 되는 것이었다. 일일이 그래 봤자 성격 까다롭다는 조소를 감당하고 비참함을 곱씹는 쪽은 자신이라는, 차라리 스스로를 오브제로 간주했을 때 피로의 역치가 그나마 높아진다는 사실을 몇 번이나 확인한 자로서의 체념, 그 끝에 마침내 일말의 안식처럼 찾아드는 무감각 같은 것이었다. (p.82~83)

 

결혼을 한 친구가 많다. 아이도 둘이나 낳은 친구도 있다. 만나면 시댁 이야기랑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사는 친구들이 대단하다. 정부에서는 신혼부부에게 임대주택도 주고 아이가 있으면 우선 대상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도 결혼을 꼭 해야 할까 생각이 든다. 건강검진을 할 나이는 아니어서 산부인과에 대한 이 부분은 무척 소름이 돋고 무서웠다. 구병모 작가의 <네 이웃의 식탁>은 독특하고 근사한 표지와는 다르게 잘 와닿지 않았다. 결혼한 친구들이 읽으면 어떨까 궁금하기도 하다.

 

언젠가 텔레비젼으로 마을 전체 어른이 선생님이 되고 이집 저집 아이를 돌보는 걸 본 기억이 있다. 처음 땅을 사고 집을 지을 때부터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기로 했으니 좋은 모습만 보였던 것 같다. 방송이니까 잘은 모르지만. 경기도 외곽에 꿈미래실험공동주택에 모여든 네 부부가 이웃이 된다. 출근길에 자가용을 함께 타고 쓰레기 분리 배출도 같이 한다. 이론과 현실은 언제나 다른 법. 꿈미래실험공동주택이란 말에서 실험이라는 말에 공포를 본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가족인데 공동육아라는 말에 서로의 이해를 따지면서도 뭐라 할 말이 없는 경우도 생긴다. 아이를 낳으면 다른 아이도 모두 귀하게 여겨진다고 친구는 말했지만 내게는 와닿지 않는다. 출산 가능성이 있는 여자라서 그런지 소설이 소설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구병모 소설을 종종 읽었는데 역시나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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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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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의 의견은, 당신은 당신이 그리도 좋아하는 그 호텔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오. 하지만 절대 착각하지 마시오. 만약 당신이 한 걸음이라도 메트로폴 호텔 바깥으로 나간다면 당신은 총살될 테니까.  (p.17)

 

남은 인생을 호텔에서만 살아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몰래 도망을 쳐야 할 것 같은데. 그러다 죽을 수도 있으니 그냥 호텔에서 사는 걸로 만족해야 할것 같기도 하다. 700페이지가 넘는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서 솔직히 얼마나 재미있겠냐 생각했다. 그런데 세상에나, 지룰할 것 같은 예상을 깨고 너무 너무 재미있었다. 호칭부터 읽기도 힘든 성 안드레이 훈장 수훈자이자 경마 클럽 회원, 사냥의 명인인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이 호텔에서 생활하면서 겪는 일들이 너무 흥미진진했다.

 

호텔에서 지난 4년 동안 최고의 대우를 받았지만 이제는 위원회의 감시를 받는 수감자라 생활이다. 감옥은 아니지만 긴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백작은 노란 색을 좋아하는 당돌한 소녀 니나를 만나면서 4년 동안 한번도 몰랐던 새로운 공간이 있다는데 놀랐다. 니나는 어디서 구했는지 마스터키도 갖고 있었다. 니나랑 시간을 보내면서 백작은 조금씩 스위트 홈이 아닌 지붕 밑 다락방에 적응한다. 백작은 이제 백작이라는 과거의 화려했던 시절은 잊고 단골 식강의 웨이터가 된다. 이게 가능한가. 나라면 이럴수 있을까. 웨이터로 일하며넛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숨고 싶을 텐데.

 

걱정은 그만. 로스토프 백작은 적성을 찾은 것 같았다. 삼인조(에밀, 안드레이)의 회의에 빠지지 않고 손님들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위해 열심히(?)일한다. 시간은 흘러 로스토프 백작은 청년이 아니고 중년의 신사가 되었다. 노란 색을 좋아하던 소녀 니나는 혁명 동지와 결혼을 했고 딸 소피야를 백작에게 데려왔다. 두달 정도만 맡아주면 데리러 오겠다고 했지만 니나는 돌아오지 않았다. 중년의 신사는 소피야의 아버지가 되었다. 어느 날 공연장에서 피아노를 배우는 소피야와 빅토르를 본 로스토프 백작은 여느 아버지처럼 둘 사이를 걱정하고 화를 낸다. 소피야의 재능을 발견한 스승인데.

 

소피야는 피아노 대회에서 우승을 한다. 어린 소피야를 돌본 호텔의 모든 친구들이 축하해주는장면은 정말 멋졌다. 그리고 곧 연주를 위해 프랑스 파리로 떠날 예정이다. 딸을 격려하는 아버지의 말은 인생 선배의 조언이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도 마찬가지란다. 우리는 종종 두려움이 엄습하는 순간들과 대면할 수밖에 없어. 그게 의사당의 연단에 올라서는 것이든, 경기장에 들어서는 것이든, 아니면…… 콘서트홀 무대에 올라가는 것이든 말이지. (p.606)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박수 갈채를 받느냐 못 받느냐가 아니야. 중요한 건 우리가 환호를 받게 될 것인지의 여부가 불확실함에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지니고 있느냐, 하는 점이란다. (p.609)

 

스포일러가 될까 쓰지 못하지만 대박 반전까지 진짜 재밌게 읽었다.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끝나는 게 아쉬운 소설이었다. 친구에게도 꼭 읽어보라고 추천한다. 700페이지, 금방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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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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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를 마셨다는 이유만으로, 죽은 56명의 아이들이 왜 추모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하는가 생각했다. 그런 이유가 어떤 존재의 죽음을 완전히 덮어버릴 정도로 대단한가.그런 이유가 어떻게 죽음을 덮고 그것이 지니는 슬픔을 하찮게 만들 수 있는가. (p.71)

 

김금희의 소설 <너무 한낮의 연애>가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었다. 양희역에 궁금했는데 최강희라고 한다. 선배역을 맡은 남자 배우는 잘 모르는 사람이다. 어쨌거나 오늘도 사랑하죠. 라고 엉뚱하면서도 당당하게 말하는 최강희를 빨리 보고 싶다. 드라마 방영시간을 놓치지 말고 봐야겠다. 이번엔 단편소설이 아니라 장편소설이다. <경애의 마음>에서 경애는 소설에 주인공 이름이다. 경애, 흔한 이름 같으면서도 내 주변에는 경애란 이름이 없다. 처음엔 모르고 읽었는데 인천의 호프집 사건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는 걸 알았다. 그것도 내가 사는 인천이다. 김금희 작가가 인천 출신이라 그럴수도 있겠다. 낙하산 상수와 만념 주임 경애. 경애는 힘들 때마다 '언니는 죄가 없다'란 연애 상담 페이지에 메일일 보낸다. 언니가 보낸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란 따뜻하고 뭉클한 답장.

 

소설을 읽다가 '언니는 죄가 없다'란 말을 검색해보았다. 인천에서 태어나서 여기서 학교를 다니고 직장생활을 해서 그런지 이번 소설은 소설같지 않다.상수도 경애도 친구 같고 선배 같다.  경애가 더이상 상처를 받지 않고 살아가면 좋겠다. 경애의 마음이 아프지 않기를 바란다. 다음에도 김금희 소설 꼭 읽어야지,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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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 오늘의 젊은 작가 17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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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의 <딸에 대하여>를 읽었다. 나도 딸이다. 할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엄마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 할머니를 간병하기도 하고 한참은 요향보호사 일을 하셨다.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보지 않았는데 소설을 읽고 대충 짐작이 되었다. 소설 속 딸처럼 엄마랑 심각하게 다투거나 하지는 않는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도 않았다. 사회문제에 직접적으로 나서거나 공개적으로 지지를 하지도 않는다. 선거를 할때면 공약을 잘 읽어보고 투표는 한다. 소설을 읽다가 궁금해졌다. 만약 내가 남자가 아닌 여자를 좋아한다고 하면 엄마의 반응은 어떨까? 시위현장에 나가서 크게 구호를 위치거나 하면 뭐라고 할까? 엄마는 미친년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네가 하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은 이미 많이 들었다. 무슨 말을 또 얼마나 해서 가슴에 대못을 치려는지 모르겠지만. 나한테도 권리가 있다. 힘들게 키운 자식이 평범하고 수수하게 사는 모습을 볼 권리가 있단 말이다.” (p. 66)

 

“엄마, 여기 봐. 이걸 보라고. 이 말들이 바로 나야. 성소수자, 동성애자, 레즈비언. 여기 이 말들이 바로 나라고. 이게 그냥 나야.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나를 부른다고, 그래서 가족이고 일이고 뭐고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들어 버린다고. 이게 내 잘못이야? 내 잘못이냐고.” (p. 107)

 

엄마와의 세대 차이를 느끼니까.  제목은 딸에 대하여인데 엄마에 대하여 같기도 하다. 나도 엄마를 잘 모른다. 엄마랑 친한 편인데도. 쉽게 판단하고 말하는 게 무섭구나 싶기도 하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을 해도 늦지 않다. 엄마랑 친구처럼 잘 지내야겠다. 딸이라서 그런지 많이 와 닿은 소설이다.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작가 시리즈를 좋아하는데 이번에도 성공한 기분이다. 이번에 나온 구병모 소설은 어떨까.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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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박민정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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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젋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으려고 하는데 이제 나와 세대가 점점 멀어진다. 등단 10년 이내 작가.  그래서 이해하기 힘든 소설이 나오는 건가, ㅎ

 

박민정의 소설집을 읽다가 말았다. 나한테는 너무 어려운 책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젊은작가상 수상은 박민정이었다. <세실, 주희>도 지난번 소설집<아내들의 학교>에서처럼 잘 모르겠다. 나만 어려운 건지. 소설이 재미도 있어야 하는데 역사적 이해와 함께 공부하는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시 읽으면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여하튼 지금은 그렇다. 그래도 여성의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는 것 좋다. 임현의 <그들의 이해관계>는 인상적이었다. 버스 사고로 아내를 잃은 남편, 사고를 피한 버스 운전자. 매일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지만 교통사고는 내 일이 아니다. 모두 사고에 노출되었지만 당사자가 되었을 때 마음은 다르다. 피해보상금, 합의금. <고두>와 비슷하면서도 달라진 것 같다. 임현의 소설을 더 읽어보고 싶어졌다. 소설집이 나왔는데 찾아봐야지. 박상영와 임성순의 소설은 처음 읽었다.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잘 모르겠다.아, 이번 수상작품집은 좀 모르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기적? 기적이라니. 사고를 피한 게 기적이라면 그러지 못한 쪽은 무엇인가. 기적의 반대말이 뭐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 그게 기적 아닌가? 그러면 뭐, 해주는 그래도 된다는 말인가? 그게 다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일이었다는 건가? 그냥 그럴 수 있는 사고였다는 거야 뭐야. <그들의 이해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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