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스미스 스타일 - 가장 영국적인 디자인 폴 스미스 A to Z
폴 스미스, 올리비에 위케르 지음, 김이선 옮김 / 아트북스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프랑스의 한 잡지 편집장이 서문에 적은 폴 스미스에 대한 글이 재미있다.  

 

폴 스미스는 과대망상에 사로잡히지 않은 드문 디자이너다.

그는 동료들에게 괴팍하거나 신경질적이지도 않다.

중독 치료를 받은 적도 없고, 전용 제트기를 타고 다니지도 않으며,

같은 여자와 40년째 살고 있다.

 

디자이너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특이하길래...

피식 웃음이 난다.  

 

편집장은 그러면서도 그가 절대 평범하지 않다고 말한다.

 

 

 

 

런던에 있는 그의 사무실

-수천 권의 책과 로봇, 색 자전거가 들어찬 카오스적 공간-

주부의 눈엔 악몽과도 같은 곳이다.

저녁 식사 자리에는 짝짝이 양말을 신고 등장하기 일쑤다.

 

정말 그렇다.

내가 읽은 폴 스미스는 디자이너로서 지극히 보통의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동시에 경영인으로서 평범하지 않은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그러니까, 자신이 난독증이라는 고백이나 열다섯살에 학교를 떠났다는 것보다

컴퓨터나 이메일을 사용하지 않는다거나

자신이 아는 휴대폰 번호가 여덟 명뿐이라는 점이 더 괴짜인 듯 보인다.

 

 

 

 

 

폴 스미스는 그동안 찍은 사진과 단편적인 생각들을

A에서 Z까지의 순서대로 배열해 놓았다.

 

난독증에 여러가지 일을 한번에 처리하는 과잉활동 장애를 겪고 있다는 그는,

아마도 알파벳 순서에 기대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처음 철자만 순서대로지, 내용은 그야말로 제멋대로다.

마구 섞여 있고 쌓아올린 모습이 마치 그의 작업실과도 닮았다.

 

그런데 그 안에 폴 스미스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이 정도의 성과를 거둔 디자이너가 자신의 일생을 정리하는 것 치고는

텍스트의 분량이 너무나도 적다.

 

다시 말해서,

그는 단 수십장의 사진과 한 주제마다 한 페이지를 넘지 않는 편집으로

일생을 정리한 걸 보면 편집 능력은 프로 중 프로다.

 

이 남자, 스타일이 확실하다.

그래서 다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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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배꼽, 그리스 - 인간의 탁월함, 그 근원을 찾아서 박경철 그리스 기행 1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그리스 하면 파란색이 떠오른다.  

나는 이것은 '그리스 파랑'이라 부른다.

 

하늘과 바다가 하나를 이루는 쪽빛은 사진으로 봐도 눈이 시리다.

그 푸른빛을 마주한 하얀 집들은 선명한 대비를 이루면서

그리스만의 풍광을 만든다.

 

이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리스를 꿈꾸게 된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었다면 몸살은 더 심해진다.

거침없는 자유의 기운에서 짭조름하지만 시원한 바닷바람이 느껴진다.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있기란 어려울 정도다.

 

거기다가 크레타식 식사법의 주 메뉴인 포도주와 올리브, 문어 숙회는

그리스라는 나라의 매력을 더해준다.

 

이런 점을 기대하고 박경철의 기행을 읽는다면 크게 실망할지 모른다.

4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에 내용도 말랑말랑한 힐링 여행과는

다소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기행문이지만, 요즘 쏟아지는 여타 기행문과는 성격이 다르다.

박경철 자신도 프롤로그에서

'이 책에서 나는 문명과 역사를 다루되 여행기의 형식을 빌려

공간 이동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고자 한다.

즉 시간에 따른 공간 이동이 아니라

공간에 따른 시간 이동을 하는 셈'이라고 밝힌다.

 

저자가 그리스에서 행한 체험

문명 이야기를 하기 위한 도입 정도라고 보면 된다.

 

그는 자신의 영웅,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함께 그리스 여행을 했다.

(박경철은 니코스의 무덤 앞에서 술을 따르고 절을 하는 자신에게

현지인이 왜 절을 하냐 묻자, "그는 나의 영웅"이라고 대답했다.)

 

니코스의 저작에 나온 문구들에서 여행할 곳을 정하고,

여행 중에 생기는 다양한 의문에 대한 해답 역시

책 속에서 찾는 방식을 사용했다.

 

즉,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저작들은

박경철을 그리스로 데려온 관광 홍보 책자이자

현지 안내 가이드인 것이다.

 

니코스의 책이라면 앞서 말한 '그리스인 조르바' 정도를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인용 문구를 보니 그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영국의 문예비평가 콜린 윌슨이 그를 두고

"이름이 '카잔초프스키'였고, 러시아어를 작품을 썼더라면

그는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는데,

책에 나오는 명문들을 읽다 보니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스파르타에 대해 설명한 부분)

 

 

저자가 여행한 도시는 코린토스, 올림피아, 아르고스, 스파르타 네 곳이다.

낯선 듯 익숙한 이름들이다.

신화를 읽을 때, 서양 역사를 배울 때 심심치 않게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이름 말고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이름이라는 뼈대만 남고 도시들이 품었던 문명은 사라진 느낌이다.

 

 

 

 

(올림피아 박물관의 백미인 헤르메스상)

 

 

 

 

(올림피아 박물관)

 

박경철은 굳이 뼈대만 남은 도시들을 찾아갔다.

그리고 부서진 돌, 방치되다시피한 유적들 속에서

먼 옛날의 영광을 재현한다.

 

동시에 남들이 많이 가 보지 않은 곳들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마을 사람들과의 끈끈한 정을 확인하는 대화나 식사와 같은

흥미로운 에피소드도 종종 나온다.

(그런데 꽤나 깊이 있는 현지인과의 대화를 과연 영어로만 가능했을까?

아니면 그리스어를 배우고 간 것일까?)

 

 

 

 

 

 

문명의 배꼽, 그리스.

생명줄인 탯줄의 흔적이 바로 배꼽이다.

우리는 새로운 문명을 만들고 진화하면서 배꼽을 감추고 살았다.

배꼽을 보이는 옷차림도 이제는 흔한 패션이 됐지만,

그것은 성적 매력을 부각하려는 의미 말고 다른 것은 없다. 

예쁜 배꼽을 만드는 수술이 있을 정도니 말이다.

 

그리스 역시 멋진 복근을 드러낼 때 슬쩍 보이는 배꼽,

혹은 너무 뚱뚱해 뱃살에 묻혀 버린 배꼽 정도가 되어 버린 게 아닐까?

 

박경철은 이 책에서 배꼽을 신체 부위 그 자체를 응시한다.

독자들에게 탯줄이 잘린 흔적, 배꼽을 느린 호흡으로, 친절히 설명한다.

 

그래서 책을 막 읽기 시작할 때는 그리스에 대한 환상이 푹 꺼져 버린다.

쪽빛의 파란 그리스는 보이지 않고

뿌연 하늘색, 또는 회색빛만 가득하다. 

 

조금 지나면 나도 모르게 독서 속도가 빨라진다.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금세 다 읽어 버렸다.

저자의 사색 속도만 따라가면 나 역시 사색에 몰입하게 된다고나 할까?

 

 

 

 

 

다른 여행 가이드책처럼

읽는 즉시 심장이 콩닥거리면서 당장 가방을 꾸리기보다는,

명상을 하듯이 차분하게 내면을 바라보게 된다.

 

다소 낯설고 밋밋하면서 어려기도 한,

그러나 여행 중 흘린 땀, 정신적 고뇌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책이다.

 

 

책을 덮으니 '박경철 그리스 기행 1'이라는 표지 말이 눈에 들어왔다.

이것이 1권이라...

에필로그에서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 준다.

펠로폰네소스(3권)를 들여다 본 것을 시작으로,

아티카(4권)의 테살로니키(1권), 마그나 그리이키아(2권) 등이

남았다니 길고 긴 여정이 더욱 기다려진다.

 

아마 그리스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볼 수 있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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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6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 엄마가 죽었다.

 

소설 '이방인'의 첫 문장은 꽤나 유명하다.

엄마가 죽은 사건은 또한 이 소설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주인공은 엄마의 죽음을 알고도 눈물 한 번 흘리지 않았으며

엄마의 나이도 정확히 대답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장례를 치르고 난 바로 다음 날 여자를 만나

(검사의 표현대로라면) 난잡한 관계를 맺기도 한다.

 

그는 휴양지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이러저러하게 다투게 된 아랍인을

결국 총으로 쏴 죽이는 죄를 저지른다.

 

이것은 명백히 죄다.

 

그러나 그가 법정에 섰을 때

검사와 배심원, 판사, 변호사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 보면

그가 사형선고를 받게 된 이유는,

사람을 죽인 죄가 아니라

그가 엄마의 죽음에도 냉담한 모습을 보인 것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법정에서 알려지는 그의 일련의 행동들은

세상 천지에 둘도 없는 극악무도한 사람이라는 결론의 증거가 되고 만다.

 

알베르 카뮈도 미국판 서문에서

"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사형 선고를 받을 수 있다"는 말로 작품을 요약한다.

 

그의 시각, 그러니까 그가 주인공인 시점으로 소설을 읽다 보면,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했다.  

펑펑 울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간절히 위로를 구하는 행동을 보여야지만

진정으로 슬퍼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재판정에서 그는 아주 다른 관점을 대하게 된다.

검사가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를 언급하고 그것을 판단한다.

변호사마저도 "나는~"이라는 주어를 사용하며 그를 대변한다.

 

나는, 그것도 또한 나를 사건으로부터 제쳐 놓고

나를 무시해 버리는 것이고,

어떤 의미로는 그가 나 대신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인공은 법정에 있으나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이방인일 뿐이다.

 

그의 적-검사-도 그가 아닌 다른 상대-변호사-와 논쟁하고

변호사는 이미 그가 되어 버렸다.

 

사형선고 이후 사제가 찾아오지만 그는 어떤 회개도 거부한다.

신부 역시 "나는 당신 편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마음의 눈이 멀어서 그것을 모르는 것입니다"라며

끊임 없이 그에게 하느님의 자녀로서 마음을 열 것을 권유한다.

 

그것조차 그에게는 재판의 세계와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면으로 공격받고 있는 대상은

윤리가 아니라 재판의 세계입니다.

재판의 세계란 부르주아이기도 하고 나치이기도 하고

공산주의이기도 합니다' 라는 카뮈의 편지글에서

주인공의 거부의 근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재판에서 죄인이 된 한 영혼을 회개를 거쳐 올바르게 교정하려는 힘 역시,

그에게는 거부 대상이었을 뿐이다.

 

그는 저항하지 않는다. 자신이 이방인임을 받아들일 뿐이다.

주인공은 이 때서야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었다고 말한다.

 

정다운 무관심. 그 얼마나 따뜻한 말인지 곱씹어 보게 된다.

사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냉혹한 관심'으로 가득 차

오히려 하루하루가 눈치와 가식,

위선과 겉치레로 이어지지 않는가 말이다.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소설은 이렇게 끝이 난다.

 

많은 구경꾼들의 증오의 함성이 한바탕 몰아치고 나면,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만이 그와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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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유럽에서 클래식을 듣는다 - 테너 하석배의 힐링 클래식
하석배 지음, 김효정(밤삼킨별) 사진 / 인디고(글담)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시중에 나오는 음악 관련 서적을 하나둘 사서 읽고 있다.

 

대부분은 음악가를 시대순으로 훑으면서

시대의 특징과 그의 대표곡을 소개한다.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중간중간에 끼워 넣음으로써

클래식의 친숙함을 더한다.

 

이 책은 그에 비하면 유럽 도시 이야기의 비중이 크다. 

저자가 테너로 활동하며 오간 유럽 여행기에 음악이 얹어진 느낌이랄까?

그런데 다른 어떤 책보다 음악의 깊이가 전해온다.

신기하다.

 

저자가 경험한 여행담을 무심코 듣다 보면

어느새 음악의 세계로 와 있는 것이다.

그만큼 유럽 곳곳이 예술

(미술이나 문학으로 이처럼 썼어도 비슷했을 것이다)과 가까운,

아니 예술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저자 자신이 성악가이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를 썼든지

그 속에서는 음악이 묻어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시작해, 오스트리아, 헝가리, 폴란드, 독일,

프랑스, 스페인, 핀란드까지의 럽을 매우 감미롭게 그린다.

각 나라마다 음악의 특징이 있어서,

이탈리아는 '사랑의 클래식', 프랑스는 '창조의 클래식',

스페인은 '열정의 클래식'으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그 구분의 예로 나오는 음악가들이

어찌나 형용과 적절하게 어울리는지 놀랍다.

 

 

 <나는 오늘도 유럽에서 클래식을 듣는다>의 부제는

'테너 하석배의 힐링 클래식'이다.

 

클래식과 여행은 힐링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이 책 앞날개에는

'음악은 마음의 상처를 고쳐주는 약이다'라는

알프레드 윌리엄 헌트의 말이 적혀 있다.

 

저자의 설명은 더 구체적으로 와 닿는다.

'클래식은 "무슨 일 있어?"라고 묻지 않고

가만히 마음을 어루만져 줍니다'라고.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클래식의 힐링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말한 힐링을 어렴풋하게나마 경험했다.

한 곡씩 소개가 나올 때마다 곡을 검색해 틀어놓고

음악을 배경 삼아 유럽 도시를

책장을 통해 엿보는 것의 힐링 효과는 나름 컸다.

 

 

 

게다가 내게 이 책이 더 유용했던 것은,

그동안의 음악 책과는 다르게

성악가들에 대한 정보가 잘 나와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자신이 몸 담고 있는 분야의 비중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금난새가 작곡가나 지휘자 중심의 음악,

바이올리니스트 조윤범이 연주 중심의 음악을 소개하는 것과 같이,

테너가 쓴 이 책에는 평소 몰랐던 실력파 성악가 얘기를 접할 수 있다.

 

분더리히나 몽세라 카바예, 베니아미노 질리,

주세페 디 스테파노와 같은 대가를

만나는 기쁨이 무척 컸다.

 

저자의 말처럼 음악도 여행도 힐링 에너지를 준다.

나 역시 저자가 경험한 음악과 여행에서의 힐링 에너지를

책으로 만나고 힐링을 경험했다.

책 한 권으로 이리도 많은 신선한 마주침이 생긴다는 것이

늘 즐겁고 놀랍다.

 

역시 나에게는 음악과 독서가 힐링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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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 - 잠자는 열정을 깨우는 강수진의 인생수업 인플루엔셜 대가의 지혜 시리즈
강수진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십여년 전 못생긴 발 사진 하나가 화제가 됐다.  

울퉁불퉁 흉하게 튀어나온 뼈와 굳은살,

곧 빠질 듯 시커멓게 멍이 든 발톱, 오래보기 힘든 사진 속 모델은

발레리나 강수진이었다.

 

 

 

비단결 슈즈 안에 숨겨진 발이 공개되자

세상 사람들은 자신 안에 숨겨졌던,

자신도 모르고 있었던 열정이 터져 오름을 느꼈다.

 

동시에 진짜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했다.

강수진의 발은 흉하기는 커녕 너무나 아름다워서

눈물이 그렁 맺힐 만큼의 감동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 즈음에 나온 책이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다.

한 무용평론가가 세상이 궁금해하는 강수진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이번에 나온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

강수진이 스스로를 풀어낸 자서전 형식이다.

이전 책과 중복되는 이야기도 있지만,

조금 더 그녀의 내면과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를 알 수 있다.

 

 

 

강수진은 아름답다.

외모도 그렇지만 그녀의 열정이 무엇보다 아름답다.

30년 가까이 발레를 하면서 하루 평균 18시간 연습을 빼 놓은 적이 없다.

누군가 계산해 보니 20만 시간에 달했다.

놀라며 그녀에게 알려 주었을 때 그녀는 오히려 담담했다.

어떤 성공이나 특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숨가쁘게 달려온 것이 아니라,

어제보다 더 나은 자신을 위해 오늘을 완전히 불태우며 살아왔을 뿐이라는 것.

그녀는 경쟁 상대도 주변도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단지 자신과의 싸움을 하는 하루하루를 이어왔다.

그것이 오늘의 그녀를 만들었다.

그런 그녀에게 숫자의 총합은 흥미롭긴 하나

그다지 중요한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동시에 강수진은 순수하다.

이렇게 '발레'라는 하나의 대상에, 이토록 오랜 시간,

너무나도 일관되게 열정을 보이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싶다.

 

아무리 사랑해도 아무리 몰입해도 이 정도면 됐다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강수진은 예외다.

그 열정은 더 뜨거워지고 사랑은 점점 깊어진다.

그만큼 순수하다.

어떤 것도 재지 않고 자신의 열정과 사랑의 끝을 확인하고자 한다.

끝이 절망이나 초라함일지라도 그녀는 감내할 만한 용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강수진의 아름다움은 그래서 위험하다.

그녀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몸이 욱신거리지 않으면

전날 연습을 덜했구나, 스스로 반성하며 그 날 더욱 강한 훈련에 자신을 내몬다.

발레리나 생명을 위협하는 부상에도 남몰래 연습하고 무대에 오른다.

 

글로 읽을 때조차 통증이 전해지는 듯한데,

그 고통을 직접 몸으로 받아내고 또한 참아온 그녀의 삶은

자치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아가는 것을 권하는 메시지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나를 뜨겁게 한다.

아름다움과 순수라는 절대적인 이상을

내 삶에서도 추구해 볼 수 있지 않나 하는 힘을 불어넣어 주기 때문이다.

 

순수함과 열정, 아름다움은 늘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위험을 이겨낸 자만이 진짜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다.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

나의 문장으로 만들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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