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책읽기의 괴로움 (고전파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9496129</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at, 23 May 2026 15:25:02 +0900</lastBuildDate><image><title>고전파</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89496129487198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9496129</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고전파</description></image><item><author>고전파</author><category>행복한 책읽기</category><title>소설을 쓰고자 마음 먹은 당신에게 필요한 한 권의 책 - [소설 쓰고 앉아 있네 - 문지혁 작가의 창작 수업]</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9496129/17285875</link><pubDate>Tue, 19 May 2026 17: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9496129/1728587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32933127&TPaperId=1728587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795/30/coveroff/k83293312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32933127&TPaperId=1728587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소설 쓰고 앉아 있네 - 문지혁 작가의 창작 수업</a><br/>문지혁 지음 / 해냄 / 2024년 09월<br/></td></tr></table><br/><br>소설을 쓰고자 마음 먹은 당신에게 필요한 한 권의 책<br><br><br><br>학창 시절 급식실에서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난 이 반찬을 제일 좋아해."그 말을 들은 친구는 물었다."너 어제는 다른 반찬을 '제일' 좋아한다고 했잖아?"<br>아마 이때부터였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어떤 분야에 있어서든 '이건 정말 최고다.'라는 식의 표현을 최대한 지양하려고 노력한다. '제일', 그리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최고'와 같은 비교 형용사는 다른 모든 것들을 배제한다. 단 하나의 대상을 최고라고 확정짓는 순간, 다른 모든 것들은 최고 미만의 것이 되어버리니까. 내가 그 대상의 카테고리에 속하는 모든 것들을 경험해본 것도 아니기에 어쩌면 훗날 정말로 "제일"이라는 단어를 써야 하는 경우에 쓰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br>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작법서를 다 읽어본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쓰기에 관심을 가지면서 대체로 이름난 작법서들을 제법 들춰보았다. 그중에는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도 있고, 데이먼 나이트의 『단편소설 쓰기의 모든 것』 이디스 워튼의 『당신의 소설 속에 도롱뇽이 없다면』 , 이승우의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라거나 『소설창작론』 교과서도 들춰보기도 했다. 이런 개론에서부터 제임스 우드가 자유간접화법에 대해 집중적으로 파헤친 『소설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같은 책도 읽었다. 웹소설 작가 한산이가 작가의 『웹소설의 신』을 비롯한 웹소설 작법서와 근래에는 김호연 작가의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를 읽었다.<br>고백하자면, 소설 쓰기는 공부와는 달라서 교과서를 반복해서 읽는다고 결코 잘 쓰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만 배웠다. 작가 역시 이 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br><br>물론 작법서가 작가 대신 글을 써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보르헤스가 말했잖아요."예술이란 불과 수학의 결합이다."<br>『소설 쓰고 앉아 있네』, 86쪽<br><br>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작법서를 펴드는 건 일종의 동병상련을 느끼고 싶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글쓰기가 행복하다는 작가는 자주 보았지만, 쉽다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대체로 많은 작법서에서 작가들은 글쓰기가 너무 어렵고, 자주 고통스럽다고 고백한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큰 위안을 얻고 나는 다시 초고를 쓰러 간다.<br>이렇게 내가 읽었던 작법서를 구태여 꺼내놓은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나는 지금 내 원칙을 깨고, 아주 조심스럽지만, 한 가지 단언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지혁 작가의 『소설 쓰고 앉아 있네』는 여태껏 "내가 읽었던 작법서" 중에서 최고의 작법서였다. 나 자신의 원칙마저 저버리고 이런 무시무시한 문장을 적었으니 나는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해야 할 것이다. 그게 설령 실패한다고 하더라도.<br><br><br>* * *<br><br><br>지금은 이상문학상을 수상할 정도로 문단 내에서도 자리를 잡은 문지혁 작가지만, 그가 등단 때부터 내부인으로서 평가받은 것은 아니다. 장르문학 작가로서 알게 모르게 차별을 받아왔으며, 꽤 오랜 기간을 방황한 내용이 『소설 쓰고 앉아 있네』에 적혀있다. 이러한 작가 개인의 경험과 더불어, 그가 그간 해왔던 글쓰기 수업의 요체를 담은 책이 『소설 쓰고 앉아 있네』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에 등단한 지 제법 오래되고 좋은 작품을 많이 발표한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면에서 습작생들의 마음을 잘 아는 것 같다.<br>때로는 선행 연구를 한다는 명목으로 지원하는 공모전의 이전 수상작이나, 신인문학상의 수상작들을 살펴보며 시간을 축낼 때가 있다. 이런 작가 지망생들에게 문지혁 작가는 뼈아픈 충고를 날린다.<br>독서는 작가에게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면서 동시에 공부이자 연구이지만, 독서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간혹 도장 깨기를 하듯 독서를 하고 있다는 작가 지망생들을 만나게 돼요. (…) 과연 그 독서 목록을 모두 격파하고 나면 그들은 훌륭한 작가가 되어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는 데 계란 한 알을 걸겠습니다. (…) 독자로서 읽는 것이 아니라 작가로서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소설 쓰고 앉아 있네』, 82쪽<br>또한 백지로 된 한 편의 논문이 존재할 만큼, 작가들에게는 불치병이나 다름 없는 '라이터스 블록(Writer's block)에 대해서도 간결한 처방을 내린다. 일단 한 문장이라도 쓰라고.<br><br>"딱 한 문장만 쓰자."『소설 쓰고 앉아 있네』, 50쪽<br>내일 당장 다 지워버릴 지 모르지만, 일단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쓰는 것이 맞다. 못난 글을 써도 작가이지만, 못난 글조차 쓰지 못하면 작가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포성 소리가 울리고, 화약냄새가 진동하는 전선에서도 작가들은 글을 썼다. 어쩌면 써야만 살 수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그런 사람들이야 말로 작가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쓰지 않고선 작가가 될 수 없다. 게다가 요즘에는 그들에 비하면 얼마나 편한 시절인가. 그저 손에 든 휴대폰에 타이핑을 하기만 하면 되는데 말이다.<br>다시 한번 말하지만, 작가들은 어디에서나 씁니다.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쓰고자 했기 때문에 작가가 되었습니다. 역사 속 작가들이, 작가들의 역사가 그 사실을 증명합니다. 그들은 전쟁터에서, 장례식장에서, 신혼여행지에서, 키즈 카페에서, 직장에서, 화장실에서, 지하철과 버스, 비행기에서, 아픈 와중에도 그냥 썼습니다. 쓸 시간이 없다고, 방해하는 사람이 많다고 불평하는 대신 말입니다.『소설 쓰고 앉아 있네』, 67쪽<br><br>기본적인 마인드에 대해서 다잡아준 후, 『소설 쓰고 앉아 있네』는 실제적인 내용으로 접근해 들어간다. 그리고 내가 이 책이 정말 좋다고 생각한 부분이다. 특히나 시점에 대한 설명, 엔딩에 대한 설명이 그랬다. 우선 시점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소설 쓰고 앉아 있네』는 자동차와 운전자의 비유를 가져온다.<br>시점은 작가와 인물(화자와 주인공), 그리고 독자 사이의 아주 복잡한 관계, 궁극적으로는 그들 사이에 어떤 '특정한 거리'를 만들어주는 장치거든요.『소설 쓰고 앉아 있네』, 114쪽<br>우선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화자는 운전자다. 그리고 독자는 조수석에 앉아 있는 동승자다. 운전자는 스스로 운전을 해나가면서 하는 모든 생각, 감정을 쏟아낸다. 차 안에 있는 독자는 들을 수 있지만, 바깥 세상은 들을 수 없다.1인칭 관찰자 시점에서도 화자는 운전자고, 독자는 동승자인 건 동일하지만, 지금 이 두 사람은 차 밖에 있는 누군가를 따라가는 중이다. 그래서 주인공의 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그가 무슨 행동을 하는지를 관찰할 수 있고, 그것에 대한 화자(관찰자)의 생각은 들을 수 있다.<br>3인칭 객관적 시점에서는 독자는 누구의 차도 타지 않는다. 다만 그들을 내려다보는 카메라처럼 그저 지켜볼 따름이다. 3인칭 제한적 시점에서는 1인칭 시점처럼 차 안에 들어가서 살펴보고, 운전자가 하는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다. 그러나 "제한적"이라는 수사처럼 도로(소설 안의) 위의 차량 단 한 대에만 적용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3인칭 전지적 시점은 모든 차 안으로 마음대로 들어가 운전자의 마음을 살펴볼 수 있는 시점이다.<br>요약하자면, 시점이란 결국 "A(작가)/N(화자)/P(주인공)/R(독자)" 사이의 거리를 어떻게 설정하고 조절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br>『소설 쓰고 앉아 있네』에서는 엔딩을 네 가지로 분류한다.우선 아이러니, 독자가 작품을 읽고 "깊이"를 느끼고 생각하게 만드는 요소는 외면적 목표와 내면적 목표 사이의 격차에 있다. 주인공에게 "외면적 목표"(100억 모으기 등)와 "내면적 목표(첫사랑 찾기)"가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 둘 모두를 달성하면, 동화적 엔딩이 된다.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식의 결말은 뒤에 벌어질, 그리고 그 끝에 이르기까지 내재된 많은 문제들을 모두 쉬쉬하게 만든다. 그 다음으로 외면적 목표는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내면적 목표를 달성한 경우에 "해피엔딩"이 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김금희 작가의 『대온실 수리보고서』가 이에 해당할 것 같다. 대온실 수리보고서 작성(외면적 목표)에서는 빠져야 했지만, 과거의 상처 회복(내면적 목표)은 달성했으니 말이다.<br>그 다음으로는 외면적 목표는 달성했으되, 내면적 목표는 실패한 경우는 새드엔딩에 해당한다. 100억을 모아 부자가 되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는 이루어지지 못하면 공허함만 남는다. 어쩌면 현진건 작가의 「운수 좋은 날」이 이에 해당할 것 같다. 그날 하루 수입은 좋았지만, 결국 그 수입을 나누어 쓸 아내가 죽었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는 외면적 목표 달성, 내면적 목표 달성 모두에 실패한 '우울한 엔딩'이다. 꿈도 희망도 없는 엔딩이 아닐까 싶다.<br>이러한 분류 방법은 작가마다 다를 수 있지만, 나에게는 굉장히 직관적이고 쉽게 와닿았다.<br>또한 자서전에 대한 정의 역시 이 책에서 처음 접해서 흥미로웠다. 자서전은 세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고 한다. 이름의 동일성, 참조 기능, 독자의 규약. 그리고 작가와 화자, 주인공이 모두 일치하는 작품의 경우에 자서전이 된다.<br>① 이름의 동일성② 참조 기능③ 독자의 규약<br>A(author, 작가)=N(narrator, 화자)=P(protagonist, 주인공)『소설 쓰고 앉아 있네』, 104쪽<br><br>또한 소설의 뼈대를 이루는 플롯에 대해서도 다룬다. 플롯은 주인공을 향한 음모라고 정의하면서, 주인공이 이를 극복하고 헤쳐나가는 과정을 유기적으로 배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br><br>플롯은 주인공을 향한 음모입니다.『소설 쓰고 앉아 있네』, 146쪽<br>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계속 똑같은 플롯만 주야장천 써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역사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차이를 수반하는 반복이잖아요? 그 작은 '차이'를 만들어주면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트위스트'와 '디테일'에서 나옵니다.『소설 쓰고 앉아 있네』, 166쪽<br>또한 "돈 텔, 벗 쇼 (Don't tell, but show)"라는 유명한 창작 격언을 가져와 장면을 만들 것을 강조한다. 장면은 또다시 서술, 묘사,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이에 대한 이해하기 쉬운 설명이 담겨 있다. (물론 당연하게도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직접 실천에 옮겨 적어보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다.)<br><br>묘사는 감각을 감정으로 이어주는 통로입니다.『소설 쓰고 앉아 있네』, 50쪽<br><br><br>* * *<br><br><br>앞서 언급했다시피, 이 책이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이유 중 하나는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것들과 비슷한 생각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소설의 평범함과 비범함에 대한 이야기. 근래의 길란 작가의 소설들을 읽으며, 길란 작가는 평범하지만 비범한 행동을 하는 주인공들을 내세워 매력적인 이야기를 쓴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문지혁 작가 역시 소설은 '평범하지만 위장된 비범함'이어야 한다는 언급을 한다.<br>따라서 우리가 쓰는 이야기는 우리의 평범함이 실은 위장된 비범함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어야 합니다.『소설 쓰고 앉아 있네』, 100쪽<br>또한 특정 주제나 장르에 대해 글을 쓰고 싶어서 이미 전에 나온 기라성 같은 작품을 읽다보면 당연히 이런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이렇게 좋은 책이 많은데, 굳이 내가?" 라는 생각 말이다. 문지혁 작가 역시 그런 고민을 적어두었고, 그런 책들 사이에서도 "차이를 수반하는 반복"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한 발짝 더 나아간 이야기를 만들자고 격려한다.<br>선행 연구를 하다 보면 내가 레퍼런스로 삼을 만한 작품들을 어김없이 발견하게 됩니다. 때로는 그 목록이 너무 길고 방대해서 읽다가 '그냥 쓰지 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이렇게나 좋은 이야기들이 이미 세상에 나와 있는데, 거기에 내 것을 하나 더한다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으니까요.『소설 쓰고 앉아 있네』, 168쪽<br>또한 합평에 대한 견해 역시 비슷하다. 나는 합평을 해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다른 예술 장르와 다르게 문학은 특히나 창작자가 창작물에 대한 동일시가 강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영화, 음악, 미술 분야의 창작자와 창작물 사이의 거리보다도 문학 작가와 작품 사이의 거리는 더 가까워보인다. 어떤 경우에는 거의 동일해보이기까지 한다. 그리하여 합평에서 글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을 곧 창작자 본인에 대한 비판적 의견으로 받아들이고 감정이 격앙되는 경우도 종종 보아왔다.<br>그러나 합평에서 중요한 것은 합평을 통해 타인의 시각을 빌려 자신의 작품을 객관적으로 보는 메타인지의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목적은 어쨌든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한 것이지, 남을 깎아내리기 위해 소중한 시간을 할애해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br>① 우리와 우리가 쓴 것은 아주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다. 마치 부모와 자식처럼.<br>② 우리는 자기 자신(그리고 자신의 자녀)을 정확하게 보기 어렵다.<br>③ 누군가 정확하게 보아주면 기분이 상하거나 상처를 받는다.『소설 쓰고 앉아 있네』, 241쪽<br>또한 문지혁 작가는 책 내내 "차이를 수반해 반복"하여 "퇴고"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한다. 이를테면,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모든 초고는 다 쓰레기다." 라는 헤밍웨이의 말을 언급한다. 이는 내가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늘 잊어버리곤 하는 말인데, 나는 퇴고를 잘 하지 못한다. 그건 내 글이 완벽해! 라는 생각과는 전혀 반대로 내 글이 너무 못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들춰보기도 힘들 정도로. 그래서 퇴고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그냥 새로운 글을 써버리는 쪽을 선택하는데, 이는 퇴고라는 중대한 문제 앞에서 도망치는 것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퇴고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반성한다......)<br>또한 퇴고에 있어서 작가는 "당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죽여라(kill your darlings)"는 윌리엄 포크너의 말을 인용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때로는 그 소설을 시작하게 만든 부분이라 할지라도 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br>작가가 된다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초고는 다 비슷하게 별로입니다. 이를 누가 더 많이, 오래, 될 때까지 끈질기게 고칠 수 있느냐가 우리를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로 나누는 기준입니다. 초고의 완성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고치기를 싫어하거나 두려워하는 사람은 결코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없습니다.『소설 쓰고 앉아 있네』, 29쪽<br><br>여담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원고, 초고, 퇴고의 한자에 대해서 알 수 있었는데, 내가 어렴풋이 알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한자여서 놀랐다. 원고와 초고는 모두 '볏집 고'를 쓰고, 퇴고는 '밀 퇴'와 '두드릴 고'를 쓰는 고사성어라고 한다.<br><br>퇴고란 무엇일까요?수업에서 학생들에게 '퇴고'라는 단어가 어떤 한자로 이뤄져 있을 것 같냐고 물어보면, '퇴'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오지만, '고'는 원고(原稿)나 초고(草稿)에 쓰이는 '볏짚 고(稿)'일 거라고 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소설 쓰고 앉아 있네』, 249쪽<br><br>당나라 시인 가도(賈島,779~843)가 말을 타고 길을 가다가 문득 좋은 시상(詩想)이 떠올라서 즉시 정리해 보았다. 제목은 '이응(李凝)의 유거(幽居)에 제(題)함'으로 정하고, 다음과 같이 초(草)를 잡았다.<br>閑居少隣竝(한거소린병) 이웃이 드물어 한적한 집草徑入荒園(초경입황원) 풀이 자란 좁은 길은 거친 뜰로 이어져 있다.鳥宿池邊樹(조숙지변수) 새는 못 가의 나무에 깃들고僧敲月下門(승고월하문) 스님이 달 아래 문을 두드린다.<br>그런데 초를 잡고 나니 결구(結句)를 민다(推)로 해야 할지, 두드리다(敲)로 해야 할 지를 이리저리 궁리하며 가다가 자신을 향해 오는 고관의 행차와 부딪혔다. 그 고관은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이며 부현지사(副縣知事)인 한유(韓愈, 768~824)였다. 가도는 먼저 길을 피하지 못한 까닭을 말하고 사과했다. 역시 대문장가인 한유는 뜻밖에 만난 시인의 말을 듣고 꾸짖기를 잊어버리고 잠시 생각하더니 이윽고 말했다. "내 생각엔 '두드리다.'가 좋을 듯하네." 이후 이들은 둘도 없는 시우(詩友)가 되었다고 한다.<br>퇴고 고사성어 (출처: 나무위키)<br><br>또한 문지혁 작가는 필립 로스의 말을 인용해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라고도 말한다. 이것도 나에게는 꽤나 뼈아프게 다가오는데, 나는 종종 무엇인가가 그럴 듯한 이야기거리가 떠오를 때까지 쓰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는 아마추어이끼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렇지만 이제라도 일정한 시간을 배정해 억지로라도 써보야할 것 같다.<br><br>때로는 따뜻하고, 때로는 냉정한 조언을 아끼지 않던 작가는 마지막에 이르러서 중요한 고백을 한다. 스스로를 작가로 만든 것은 글쓰는 재능보다도 '재능이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었다고. 정말로 우리에게는 재능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학상을 수상하고 베스트셀러를 써낸 작가도 습작기만 12년을 가졌다고 한다. '작가가 되는 것'에 있어서 정말로 중요한 재능은 나 스스로 재능이 있다고 믿으며 포기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br><br>여러 의미로 문지혁 작가의 『소설 쓰고 앉아 있네』는 친절하고 따뜻한 품성의 친구가 내 옆에 앉아 글쓰기에 관해 들려주는 이야기 같다. (실제로 이 책의 도입부에서 작가는 그런 구도를 설정하고 있다.) 가끔 무슨 작법서를 봐야하느냐는 물음에 나는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이나 쿤데라의 『소설의 기술』을 주워섬기곤 한다. (다른 무엇보다 그게 간지가 나니까. 그리고 너무 어렵기 때문에 다 읽기도 어려울 것이다... 아마도.)<br>그러나 이제 누군가 내게 또 무슨 작법서를 써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문지혁 작가의 『소설 쓰고 앉아 있네』를 추천할 것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795/30/cover150/k83293312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7953083</link></image></item><item><author>고전파</author><category>행복한 책읽기</category><title>상실을 애도하는, 봄밤의 모든 것 - [봄밤의 모든 것]</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9496129/17278248</link><pubDate>Fri, 15 May 2026 15: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9496129/1727824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3507&TPaperId=1727824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918/62/coveroff/893204350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3507&TPaperId=1727824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봄밤의 모든 것</a><br/>백수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02월<br/></td></tr></table><br/><br>상실을 애도하는, 봄밤의 모든 것<br><br><br><br>소설가 백수린의 『봄밤의 모든 것』을 읽었다. 작년 봄에 나오자마자 사두고는, 결국 일년이나 지나 올해 봄이 끝나기 전에야 다 읽을 수 있었다. 『봄밤의 모든 것』은 총 7편의 단편소설들이 묶여 있다.<br><br><br>· 「아주 환한 날들」· 「빛이 다가올 때」· 「봄밤의 우리」· 「흰 눈과 개」· 「호우豪雨」· 「눈이 내리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br><br><br>『봄밤의 모든 것』을 읽으면서 앤드루 포터의 작품을 읽는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실제로 앤드루 포터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한국어판에는 백수린 작가의 추천사가 적혀 있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백수린 작가가 앤드루 포터에게 받은 영향이 작품 전반에 스며 있는 듯하다. 특히나 3인칭 서술로 진행되는 작품에서 이렇게 질문이 돌출되는 작법은 영미 문학의 냄새를 짙게 만든다. (비슷한 느낌을 주는 작가로는 손보미 작가가 있다. 손보미 작가는 줄표/대시(-)를 자주 사용한다.)<br><br><br>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자신에게 누군가의 완전한 신뢰와 사랑을 받는 일의 기쁨과 두려움을 처음으로 알게 해준 개가 더 이상 곁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기억해냈다. 아, 다들 이 부재를 어떻게 견디는 거지?「봄밤의 우리」, 95쪽<br><br>딸에게 결혼을 아주 잘했다고 말하면,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단 말인가?「흰 눈과 개」, 129쪽<br><br>누구나 다 안다고? 대체 누가 다 안다는 말인가?「흰 눈과 개」, 133쪽<br><br><br>『봄밤의 모든 것』을 읽으며 느낀 것은 백수린 작가의 섬세한 시선이 드러나는 문체였다. 근래에는 다양한 시도를 하는 작가나 작품들이 있지만, 소설은 서사 문학이다. 『봄밤의 모든 것』은 특이하게도 서사성이 강하다는 느낌을 주진 않는다. 소설 속 인물들이 겪는 사건 역시도 지극히 평범해서 "사건"이라 하기도 어렵다는 인상을 줄 정도다. 하지만 이를 상쇄해 작품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은 백수린 작가가 포착하는 감정의 단면과 이를 표현해내는 문장이다.<br><br>책을 읽으면서 소희가 느꼈던 것은 비밀스러운 기쁨이었다. 책을 펼치면 만나게 되는 세계는 상상 속에서 실재했고, 소희는 자신이 겪는 고독과 괴로움이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호우豪雨」, 150-151쪽<br>그 시절 소희의 마음 속에서는 무엇인가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과 누구의 눈에도 띄고 싶지 않다는 바람이 하루에도 몇 번씩 충돌했다. 낯선 세계로 모험을 떠나고픈 욕망과 아무 데도 갈 엄두를 내지 못하며 주저하는 기질이 날마다 엎치락뒤치락하며 전쟁을 벌였다.「호우豪雨」, 151쪽<br>주변부로 조금씩 밀려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조차 다혜의 마음 속에는 어쩌면 사실은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끈질기게 살아남아 있었다.「눈이 내리네」, 182쪽<br>스물이었던 다혜에게 당시 스물일곱 살이던 준우는 까마득한 어른 같아 보였는데, 그건 그때 다혜가 이십대 후반까지의 삶만을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눈이 내리네」, 191쪽<br>다혜는 그 당시 관계가 끝났음을 자신이 그토록 받아들이지 못하고 시간을 끈 건 틀림없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끝에 대한 두려움. 사랑을 다시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 다혜는 아는데, 당시 이별을 계속 유예했던 건 무엇보다 젊고 예뻤던 시절의 자신을 그가 상기시켰기 때문이었다.「눈이 내리네」, 198쪽<br>어둠 속에서 친구의 숨소리가 전에 없이 아주 가깝게 느껴졌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이만큼이나 가깝게 앉아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워할 날이 올거라는, 이 순간으로 되돌아오고 싶지만 절대로 그러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할 날이 오리라는 예감이 들었다.「그것은 무엇이었을까?」, 239쪽<br><br>이처럼 삶의 여정 속에서 문득 느끼고 지나가는 감정들에 주목한 문장들을 읽어나가며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그런 경험들은&nbsp;이 작품들을 읽어나가는 "비밀스러운 기쁨"을 주었다.<br>소설집 후반에 실린 세 편의 단편 소설, 「호우豪雨」, 「눈이 내리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는 연작 소설이다. 대학교 동기들인 "소희", "다혜", "상아"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런 연작 작품들을 읽는 재미 중 하나는 각각 독립적인 작품이 어떻게 서로 다른 작품과 연계되는지 찾아보는 일일 것이다. 각 작품의 화자가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사실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지만, 이런 점들은 작품의 혈연 관계를 더욱 짙게 만들어준다.<br>「눈이 내리네」의 화자 다혜는 「그것은 무엇이었을까?」에서 술에 취해 울먹인다. 그리고 자신의 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데, 이는 「눈이 내리네」에서 만났던 애인이 자신에게 남겼던 강렬한 기억 중 하나가 은연중에 영향을 끼친 듯하다.<br>차가운 발을 두손으로 감싸 쥐며 "작은 새 두 마리 같아"라고 말한다는 사실은.-「눈이 내리네」, 195쪽<br>"이거 봐라, 나 발 진짜 못생겼지?" (…) "내 발 진짜 아빠 발이랑 똑같거든. 근데 우리 아빠는 새끼발가락 하나가 없다? 옛날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그렇다는데, 어렸을 때는 맨날 나한테 악어가 물어 가서 한 개가 없다고 그랬어. 나는 그걸 또 오랫동안 믿었어."<br>-「그것은 무엇이었을까?」, 228쪽<br><br>또한 노련한 작가는 독자를 애태울 줄도 아는 것 같다. 이 작품집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흰 눈과 개」에 있다. "아버지"가 카페에서 늘 보던 개의 놀라운 진실을 알게 되는 순간. 작가는 그 "진실"이 무엇인지를 바로 말해주지 않는다. 독자는 도대체 무엇을 보았길래 냉랭하던 딸을 불러서 같이 보려고 하나? 하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장면에서 잠시 지연시켜놓았던 진실을 보여준다. 이는 「호우」에서도 노인의 죽음에 대해서 곧장 말하지 않고 조금 지나 알려주는 것으로 재현된다.<br><br><br>* * *<br><br><br><br>사랑만큼 인류의 역사상 오래된 이야깃거리는 없을 것이다. 불멸의 고전 속에도 사랑은 등장하거니와 지금도 무수히 쏟아지는 문학과 노래, 영화에는 사랑이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사랑과 상실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러므로 상실과 애도 역시 무수한 변주를 겪으며 예술가들의 절망스럽게 사랑스러운 뮤즈가 되어왔다.<br>『봄밤의 모든 것』은 상실을 애도하는 소설로 읽힌다. 소설 속 인물들에겐 모두 당면하거나 충분히 지나왔다고 여긴 상실이 있다. 그것은 처치 곤란한 동반자였던 앵무새나, 개로 표상되기도 한다. 할머니거나, 토끼거나, 이모할머니거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이거나, 젊은 시절에 친구들과 나눠가졌던 소중한 시절이거나. 소설 속 인물들은 제각기의 방법으로 이 상실을 껴안고 살고, 애도하면서 견딘다.<br>우리는 그런 소중한 봄과 같은 시간들이 곁을 스쳐지나갈 때는 미처 자각하지 못한다. 우리는 섣불리 그 봄이 영원할 것이라 믿어버린다. 그래서 무심코 이런 말을 내뱉고 마는 것이다.<br>"우리가 몇 번의 봄을 더 함께 볼 수 있을까?"「봄밤의 우리」, 94쪽<br>인생은 가혹하게도 봄이 영원할 것이라 믿어버리게 된 직후에 봄을 빼앗는다. 그리하여, 소설 속 어떤 인물들은 이런 생각도 하는 것이리라. 내가 먼저 겪은 봄의 상실을 내 자식이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미 숱한 봄을 잃어본 아버지와 그 봄을 만져도 보고 잃어도 보고 싶었던 딸은, 끝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8년이라는 긴 시간을 단절된 채로 지낸다.<br>"헤어지는 게 얼마나 괴로운지 아니까."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잠시 후,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덧붙였다."그렇지만 사실 전 제가 직접 겪어보고 알고 싶었어요."「흰 눈과 개」, 128쪽<br>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다리가 한 쪽 없는 개가 뿜어내는 생명력을 보면서 이 부녀는 화해에 이른다. 이 대목에서 아버지는 이런 생각을 갖게 된다.<br>상처를 받지 않고 산 사람만이 사랑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사랑을 주는 법에 대해 오래 생각해본 사람뿐일지도 모른다고.「흰 눈과 개」, 140쪽<br><br>모든 상실은 고통스럽다. 그래서 우리에겐 1~3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한 걸지도 모른다. 조선에서도 그러했듯이 많은 문명에서 삼년에 걸친 장례가 문화가 발견되는 것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인간이 사랑하는 이의 고통을 완전히 씻어내는 데 필요한 시간이 3년 정도라는 뜻일 것이다. 그만큼 상실은 고통스러운 일이다.<br>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각자만의 봄밤이 필요하다. 찬란하게 빛나는 봄, 생명이 움트는 봄의 낮을 보내고, 세상이 쓸쓸하게 젖어드는 봄밤. 다가오는 여름과는 무관하다는 듯이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 그 봄밤은 우리를 상실에서 구원한다.<br>그리고 다음날이 찾아오면, 다시 찾아올 다른 봄을 기대하는 것. 상실의 고통을 알고 있음에도 다시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것. 그것이 어쩌면 우리에게 봄밤이 필요한 이유인지도 모른다.<br><br><br>* * *<br><br><br>한 가지 의문스러웠던 옥의 티는 「눈이 내리네」에 있다. 이모 할머니는 글을 모른다고 밝혀지고, 생의 마지막에 다와가서 한글을 배운다. 그런데 그런 이모할머니가 어떻게 메시지를 남길 수 있었을까? 설정 구멍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선해하자면, (음성) 메시지인 것 같기도 하다.<br>"이모할머니한테 늦는다고 말 안 하고 나왔더니 메시지를 벌써 일곱 개나 남기셨어."「눈이 내리네」, 184-185쪽<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918/62/cover150/893204350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9186288</link></image></item><item><author>고전파</author><category>행복한 책읽기</category><title>어서오세요, 환상적인 경성에 - [경성 환상 극장]</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9496129/17255613</link><pubDate>Sun, 03 May 2026 19: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9496129/1725561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22939046&TPaperId=172556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695/87/coveroff/k32293904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22939046&TPaperId=1725561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경성 환상 극장</a><br/>최지원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4년 03월<br/></td></tr></table><br/><br><br>어서 오세요, 환상적인 경성에<br><br><br><br><br>'다이쇼 로망'이라는 말이 있다.<br>다이쇼 로망(大正ロマン、大正浪漫)은 일본에서 다이쇼 시대(1912~1926)의 낭만주의 사조를 뜻한다.<br>일본에서 다이쇼 시대는 메이지 유신 이후 팽창한 국세가 안정기에 접어들던 시기로, 군국주의로 인해 사회 분위기가 경직되고 대공황과 중일전쟁·태평양 전쟁의 영향으로 살기가 팍팍했던 쇼와 시대 초기의 1930년대~1940년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는 살기 좋은 시대였다.때문에 일본인들에게는 이 시대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으며, 다이쇼 시대를 배경으로 한 그 시대의 분위기를 살린 창작물들도 많이 나오는데 이를 다이쇼 로망이라고 한다. 유럽의 벨 에포크, 빅토리아 시대와 비슷한 느낌이다. 국가적으로 위세를 떨쳤다는 것과 문화적으로 융성했다는 이유로 현대에는 곧잘 미화되지만, 실상은 유럽과 마찬가지로 식민지에 대한 수탈로 이룬 번영이었다는 점과 하층민들의 삶은 궁핍했다는 점 등에서 비슷하다.<br>- 나무위키, 다이쇼 로망 항목 중<br><br>위 설명에도 언급되듯이, '벨 에포크', '빅토리아 시대'와 같은 향수를 주는 시대이다. 이때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특히 좋아하는 마니아층이 있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비슷한 시기를 '경성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다이쇼 로망'처럼 명확한 장르로서 규정되기보다는 투여서 부르는 정도인 것 같다. 근래에 이 시기를 그린 작품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은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 &lt;미스터 션샤인&gt;이다.<br><br>개인적으로 일제강점기에 깊은 흥미를 느낀다. 그때에 태어났다고 한들, 내가 독립운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나는 타고난 겁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기의 이야기를 접하고 분개하거나 같이 가슴을 졸이는 일에는 자신이 있다.<br>『경성 환상 극장』은 특이한 앤솔로지 단편집이다. 최지원, 전효원, 장아미, 김이삭, 한켠, 이 다섯명의 작가들이 모여서 각자 작품을 쓰는데, 그 작품들이 일종의 연작처럼 이어진다. 크게 세 가지 지점을 공유하는데, 시간대로는 '식민지 시기 경성'이라는 점, 공간대로는 경성의 &lt;카르멘&gt;을 상영하는 "환상극장"이라는 점, 그리고 소설의 주제가 모두 사랑, 로맨스라는 점이다.<br>각각의 단편은 순서대로 다음과 같다.<br><br>최지원, 「경성의 카르멘」<br>전효원, 「좋아하는 척」<br>장아미, 「무대 뒤에서」<br>김이삭, 「사랑의 큐피드」<br>한켠,「빛으로 빛으로」<br><br>이 작품의 서두에 수록된 「경성의 카르멘」은 이후 작품에서도 반복적으로 나오는 &lt;카르멘&gt;의 대본을 쓴 작가에 대한 이야기다. &lt;카르멘&gt;은 원래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소설을 토대로 만든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다. 전세계에서 모차르트의 &lt;피가로의 결혼&gt;과 베르디의 &lt;라 트라비아타&gt;와 더불어 극장에 가장 많이 올려지는 레퍼토리다. 이번에 조금 찾아보았는데, 생각보다 익숙한 곡들이 이 오페라에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lt;투우사의 노래&gt;, &lt;하바네로&gt;, &lt;서곡&gt; 등이 그러했다.<br><br>* * *<br><br>『경성 환상 극장』 내에서는 오페라 &lt;카르멘&gt;을 연극으로 올린다. 그러기 위해선 대본의 수정이 필요한데, 이 수정을 맡은 작가에 대한 이야기가 「경성의 카르멘」이다.<br>이어지는 전효원 작가의 「좋아하는 척」은 조연 배우와 연극의 투자자를 조명한다. 『니자이나리』에서도 느껴졌듯이 대화를 생동감 있게 잘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br>장아미 작가의 「무대 뒤에서」는 &lt;카르멘&gt;을 공연하는 극단 '유월회'의 의상을 담당하는 '보헤미안' 사장과 무대 배경을 그리는 인물의 이야기다.<br>김이삭 작가의 「사랑의 큐피드」는 환상극장 매표소 직원과 베일에 쌓인 신비로운 인물인 극장주가 주인공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br>마지막으로 한켠 작가의 「빛이여 빛이여」는 환상극장의 초연 공연에서 벌어졌던 10년 전 일을 다루고 있다. 그 공연에서 '카르멘' 역을 맡았던 여주인공과 무대 조명 담당자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유일하게 과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도 하지만, 앞선 작품들과 다르게 희곡의 형태를 띠고 있다. 작중의 주요 배경으로 설정된 장소가 '환상극장'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재밌게 다가온다.<br>『경성 환상 극장』이 동시기를 다루는 작품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 앞서 언급했던 &lt;미스터션샤인&gt;이 독립운동을 서사의 큰 축으로 삼아 이야기와 주제가 진행된다면, 『경성 환상 극장』은 그렇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서 독립 운동 같은 거대 담론은 완전히 배제하고 사랑과 같은 이야기에 집중한 것은 아니다. 『경성 환상 극장』에도 (의열단을 모티프로 한 것처럼 보이는) '열혈단'이라는 무장 투쟁 단체가 등장하고 이들의 이야기가 단편들 곳곳에 흩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중심 주제가 '사랑'이다보니, 식민지 경성의 시대상 같은 것에 조금 더 집중이 된 느낌이었다.<br>또한 구성적으로 5편의 작품들이 다른 작품의 꼬리를 물고 있는 구조라 흥미로웠다.예를 들어, 「좋아하는 척」에서 보헤미안 의상실에서 일하는 환희가 요새 자주 안 보인다는 언급이 나오는데, 그동안 환희가 무엇을 했는지는 「무대 위에서」에서 밝혀진다. 또한 「무대 위에서」에서는 티켓걸 란주가 &lt;카르멘&gt; 상영 직전 준비 기간동안 출근을 하지 않는다고 언급되는데, 그동안 란주가 무엇을 했는지는 「사랑의 큐피드」에서 밝혀진다.이런 식으로 앞 작품의 떡밥이 뒷 작품에서 해소되는 부분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었다.<br>다만 시간대가 서로 겹치고 벌어지고 하다보니, 「경성의 카르멘」의 말미에 죽음을 맞은 정호진이 「좋아하는 척」에서는 살아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이 지점은 세계관을 맞물리던 작업 중에 미처 확인하지 못한 옥의 티인듯 하다. (이후 이어지는 「사랑의 큐피드」(214쪽)에는 정호진의 죽음이 드러나있다.)<br><br>"이런 시대에 생각 없이 살면 총 맞아야지."<br>-『경성 환상 극장』, 277쪽<br><br>처음 접해보는 연작 형식의 엔솔로지 작품집이라 서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읽는 재미가 있었다. 다만 「무대 위에서」는 읽기가 조금 어려웠는데, 아무래도 적은 분량에 다양한 인물들의 서사와 감정을 담으려다보니 인물들의 심정을 모두 공감하기 어려웠다. 더 긴 분량이었다면 더 매력적인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695/87/cover150/k32293904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6958708</link></image></item><item><author>고전파</author><category>행복한 책읽기</category><title>비가시적인 것들의 가시화 -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9496129/17252145</link><pubDate>Fri, 01 May 2026 13: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9496129/1725214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135433&TPaperId=1725214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43/4/coveroff/k76213543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62135433&TPaperId=1725214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a><br/>전효원 지음 / 안전가옥 / 2026년 02월<br/></td></tr></table><br/><br>비가시적인 것들의 가시화<br><br><br><br>전효원 작가의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을 읽었다. 마장동 축산시장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은 처음인지라 흥미로웠다. 전효원 작가의 소개 문구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잘 벼려낸 칼을 쓰는 직업을 갖고 있으며, 손에서 칼을 내려놓은 동안에는 글을 쓴다." 그래서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에 묻어 있는 마장동 축산 시장의 생생한 현장이나, 도축 과정의 면밀한 묘사를 통해 짐작하건대, 아마도 전효원 작가가 축산시장에서 일하리라 생각했다. 인터뷰 기사를 읽어보니 과연 그랬다. 현업자가 아니고서야 나오기 어려운 핍진성이었다. 또한 작품에서도 언급되듯이 같은 마장동 축산 시장 내에서 차별이 존재한다는 점(육류, 내장, 기름, 칼갈이 등의 일종의 계급 구조)은 내부자가 아니면 알기 어려운 점이다.<br>​<br>"그랬다니깐용. 백인들 사이에서 차별당한 거야 말할 것도 없고요. 한국에서도 클래식 음악 쪽에 워낙 쟁쟁한 집안 애들이 많잖아요. 저야 옛날 말로 백정 딸내미고요. 게다가 사실 마장동 시장 내에서도 내장은 약간 그런 게 있거든요. 치란도 그렇지 않아요? 마장동이라고 하면 한우 등심, 갈비, 아니면 삼겹살 같은 고기류를 떠올리지 곱창이나 대창을 먼저 생각하진 않죠. 내장류는 공식 명칭이 부산물이에요."<br>『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 93쪽<br>​<br>상상의 나래를 좀 더 펼쳐보자면, 아마도 개인적으로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 내의 민수 삼촌이라는 인물이 작가 본인의 자캐가 아닐까, 짐작해본다.&nbsp;<br><br><br>사실 처음에 이름을 들었을 때는 남성일거라고 생각 못했다. 그래서 내가 그린 이미지 속의 작가는 이두박근이 매력적인, 도축 칼을 잘 쓰는 여성이었다……. 또한 내 생각보다도 나이가 좀 있으셔서 놀라웠다.&nbsp;<br>​<br>* * *<br>​<br>『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은 재밌다. 처음부터 끝까지 막힘없이 읽어나갔다.<br>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핵심 동력은 다름 아닌 주인공 "부응옥란"이다. 유약해 보이는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되어 아이를 낳고, 김제에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시어머니와 맹랑한 딸을 키우는 베트남 여자. 뽀글머리와 꽃무늬 옷을 고수하지만, 한국어 실력과 발음만큼은 송혜교를 똑닮은 시골 여자. 평소에 범죄 드라마를 즐겨 보며, 자신은 이미 한국 국적을 취득했으나 다른 이주 노동자들이 어려움에 처하면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드는 무대포 성격까지 지녔다. 근래에 읽었던 작품에 등장한 인물들 중 이처럼 입체적인 인물은 찾아보기 어려웠다.<br>​<br>『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은 마장동 축산시장에서 내장을 취급하는 사장의 딸 "김유정"이 중국인 이주 노동자이자 자신의 애인인 "문소평"을 찾아달라고 "부응옥란"을 찾아오면서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른다.<br>​<br>등장 인물이 한 명씩 차례대로 용의선상에 올랐다가 의혹이 벗겨지거나 강화되는 전형적인 추리극의 형식을 띤다. 제목인 "니자이나리"는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라는 뜻이라고 한다. 제목과 표지, 작중 배경은 어쩐지 영화 &lt;범죄도시&gt;를 떠올리게끔 한다. 이에 대해 소설 내에서도 자조적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인물들의 강렬한 캐릭터성 때문에 이런 부분이 얼마간 중화된다. (다만, 이 점이 나에게는 다소 아쉬웠는데, 나는 제목이나 소재만 보고는 &lt;범죄도시&gt;처럼 좀 더 어둡고 딥한 범죄극을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부응옥란은 평소엔 한국말에 능통하지만, 불리할 땐 한국말을 모르는 척 굴기도 할 정도로 능청맞고 유쾌하다. 김유정 역시 "넹"과 같은 애교 섞인 말투를 구사하며 분위기를 둥글게 만든다. 게다가 속담과 사자성어를 좋아하는 정재훈의 캐릭터성도 눈에 띈다.&nbsp;<br>​​<br>하지만 아쉬운 점도 남는다. 우선 부응옥란의 강렬한 캐릭터성이 사건 전개의 개연성에 집중도를 떨어뜨린다. 부응옥란은 작중 내내 결코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는다. 마치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 참전용사의 아우라를 지닌다. 억척스럽다는 전반부 묘사에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체를 발견하고 나서도 지극히 덤덤해서 의아하다. 그것도 연속으로 두 번이나 발견하게 되는데 말이다. 그런 반응은 직업적으로 시신을 자주 보게 되는 인물에게나 어울릴 법하다.<br>​<br>게다가 최종전 국면에 이르러 누군가에 의해 냉동창고로 나가게 되는데, 나는 이 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부응옥란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라면,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이 위험한 장소에서 단 둘이 보자는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나갈 리 없다. 아무리 억세고 똑똑하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여성이고, 그녀를 불러낸 인물 역시 산전수전 다 겪어본 전사가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nbsp;<br>​<br>정재훈의 캐릭터에 대해서도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정재훈이 용의선상에 오르게 되는 이유는, 그가 갑작스럽게 부응옥란과 김유정을 돕지 못하게 됐기 때문인데, 추후에라도 그때 왜 그랬는지는 밝혀졌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정재훈이 누명을 벗는 장면은 어딘지 모르게 얼렁뚱땅 지나가는 장면이다. 다소 클리셰적인 사연을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부응옥란이 그를 용의선상에서 제외하는 건 다소 논리적이지 못하다. (물론, 직후에 리본 아줌마가 증언을 해준 덕에 혐의를 벗기는 하지만 그 전에 이미 사연을 듣고 부응옥란은 정재훈을 좋은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용의 선상에서 배제해버렸다.)<br>​<br>또한 결말의 진범을 잡는 부분도 의문이다.&nbsp;<br>"진범을 진범으로 확정지을 수 있는 증거가 나왔는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소설 안에서 발견할 수 없었다. 부응옥란이 녹음하고 있는 줄 알고 있던 진범은 범행을 자백하지도 않았다. 부응옥란이나 김유정이 가지고 있는 증거라곤 다잉 메세지나 심증 뿐이다. 다잉 메세지는 그다지 위력을 발휘하지도 못한다. 이연화 사건이 다른 사람의 범행으로 마무리된 걸 보면, 진범이 DNA를 남길 정도로 어수룩한 것 같지도 않다. 이 결말은 충격적이긴 했지만, 꼭 그만큼 현실성이 없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마장동 축산시장에 대한 생생한 묘사만큼이나 작품의 중심축인 사건의 해결에 좀 더 심혈을 기울였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br>​<br>나아가 작품 전체에 작가의 목소리가 너무 큰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작가는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을 통해서 이주 노동자들이 처한 실태에 대해서 고발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서 소설을 쓴 것이다. 하지만 종종 그 욕구가 소설이라는 외형을 튀어나가려고 하는 지점들이 존재했다. 그때마다 내가 지금 소설을 읽는 것인지, 아니면 르포르타주를 읽는 건지 헷갈리기도 했다.<br>​<br>"사실? 이주민들에게 사실이라는 단어만큼 큰 함정도 없답니다. 사실을 밝히는 것만으로 누명을 벗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특권인 줄 모르죠? 사실이 사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하기도 어려울 거야. 뭐, 아가씨는 해외 생활을 오래 해서 사회 분위기를 더 모를 것 같긴 하지만."<br>『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 41쪽<br>물론,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은 전효원 작가의 첫 장편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런 아쉬운 점들이 보이는 것 같다. 아쉬운 점이 있지만 이게 이 작품 전체를 폄하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전부 충분히 개선될 수 있는 지점처럼 보여진다. (고백하건대, 나는 읽은 책에 대해선 전부 서평을 작성하진 않는다. 정말로 형편이 없거나 쓸 말이 없는 작품은 리뷰를 안 쓴다. 아니, 못 쓴다.)&nbsp;<br>​<br>어쨌든,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을 막 덮은 내 손엔 『경성 환상 극장』이 있다. 이건 경성이라는 소재에 끌려서 샀는데, 공교롭게도 이 작품집 안에도 전효원 작가의 글이 있다. 전효원 작가의 다음 글을 읽으러 가기 위해 이만 리뷰를 마친다.<br>​<br>도대체 왜인지 몰라도 진심이란 건 당사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들었을 때 더욱 강하게 마음을 뒤흔든다.<br>『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 133쪽​]]></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43/4/cover150/k76213543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430490</link></image></item><item><author>고전파</author><category>행복한 책읽기</category><title>『2026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고 - [눈과 돌멩이 - 2026년 제49회 이상문학상 작품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9496129/17239048</link><pubDate>Sun, 26 Apr 2026 10: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9496129/1723904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22135312&TPaperId=1723904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96/16/coveroff/k62213531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22135312&TPaperId=1723904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눈과 돌멩이 - 2026년 제49회 이상문학상 작품집</a><br/>위수정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6년 01월<br/></td></tr></table><br/>올해로 제49회를 맞이한 &lt;이상문학상&gt;의 대상은 위수정 작가에게 돌아갔다. 역대 최초로 수상자 전원이 여성이라고 한다. 이번 작품집을 살펴보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예심 심사위원에 해방촌 독립서점 &lt;고요서사&gt;의 주인인 차경희 씨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문학사상사에서 다산책방으로 상의 운영권이 넘어온 이후로 여러가지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는 듯하다. 개인적으론 수상작들과 일반 독자 사이의 괴리감을 줄이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nbsp;<br>- 위수정, 「눈과 돌멩이」<br>대상을 수상한 위수정 작가의 「눈과 돌멩이」는 여러모로 &lt;젊은작가상&gt;을 수상한 「귀신이 없는 집」과 닮아있다. &lt;젊은작가상&gt; 수상 소감에도 적었듯이 하나의 일본 설화에서 뻗어나온 두 소설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코요"라는 이름을 쓰는 등장인물이 두 소설에 모두 등장하고, 두 사람은 모두 크로스드레서(CD)이다. 그 설화에 기반한 작품을 한 편 더 쓰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br>「귀신이 없는 집」과의 이런 교차점을 제외하고도 「눈과 돌멩이」는 김지연 작가의 등단작인 「작정기」를 떠올리기 한다. 「작정기」 역시 여행을 함께 준비했던 친구가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해서 혼자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는 이야기다. 「눈과 돌멩이」 역시 수진이 주도했지만 차마 이루어지지 못했던 여행이 재한과 유미가 수진의 뼛가루를 뿌려주는 일종의 애도 여행으로 전환된다.<br>또한 작년에 &lt;김승옥 문학상&gt;을 수상한 최은미 작가의 「김춘영」을 얼마간 떠올리게도 한다. 눈으로 인하여 산에서 고립이 되어, 재한과 유미는 결국 CD인 코요의 집에 하룻밤 머물게 되는 설정에서 그러하다. 눈으로 온통 둘러싸인 산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웃음을 동반하지만 쓸쓸하다.&nbsp;<br>난 곱게 늙고 싶다.<br>유미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꼭 늙어라, 곱게.<br>-&nbsp;「눈과 돌멩이」, 46쪽<br>"꼭 늙으라"는 당부는 "죽지 말고 오래 살라"는 의미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귀신이 없는 집」을 읽을 때도 위수정 작가가 쓰는 대사가 기억에 남았는데 이 작품에서도 그런 점이 눈에 들어온다.&nbsp;<br>​근데 나, 열나는 거 같아. 수형이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내 이마를 짚었다. 그러네.&nbsp;추운데 땀 흘려서 그런가 보다. 그런데 아이스크림은 왜 먹냐. 약 먹자. 수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이 없어.사 오면 되지.아니야, 그냥 앉아 있어. 기분이 좋거든. 몽롱한 게.&nbsp;<br>- 위수정, 「아무도」<br>개인적으로 위수정 작가의 「아무도」를 인상적으로 읽었는데, 「눈과 돌멩이」에서도 이와 유사한 감각이 소설에서 드러난다. 「눈과 돌멩이」 속 재한은 비행기를 타고와 폭설 속 산행이 주는 피로, 전날밤 잠을 자지 못한 노곤함, 거기에 맥주가 주는 노곤함이 더해진 상태로 하루를 마감한다. 이렇듯 신체의 감각이 중력을 잃어 현실 감각이 떠다니는 듯한 상태는 「아무도」의 화자에게서도 발견된다.&nbsp;<br><br>세계가 나뉘는 데 한 발짝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재한은 이해했다.&nbsp;<br>(…)<br>재한은 망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단 한 번의 결단으로 모든 것을 망가뜨릴 수 있다. 끝낼 수 있다. 수진도 이런 마음이었을까.<br>「눈과 돌멩이」, 45~46쪽<br>소설을 읽는 동안, 그리고 다 읽고 나서도 도대체 "수진"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독자는 알기 어렵다. 이 점은 소설 속 인물인 재한과 유미에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이 여정은 먼저 떠난 이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남겨진 자들의 여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애도를 하기 위하여서는 그 애도가 누구를 향한 것인지, 그리고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부터 전제되어야 하는 까닭이다.&nbsp;<br><br>- 김혜진, 「관종들」<br><br>김혜진 작가의 미덕은 아무것도 아닌 일상의 순간들에서 소설적인 순간을 건져 올려내는 거라고 말해도 될까? &lt;김승옥문학상&gt;을 수상했던 「빈티지 엽서」나 장편소설 『오직 그녀의 것』, 그리고 「관종들」은 우리 주변의 흔히 있을 법한 이야기다.&nbsp;<br>게다가 김혜진 작가의 소설들은 술술 읽힌다. 사람들은 종종 "가독성"에 대하여 한 가지 오해를 하는 경우가 있다. 너무 쉽고 뻔하게 쓰여진 거 아니냐는. 기실 그건 문장이 담고 있는 서사에 달려 있는 문제다. 문장 자체만 놓고 보았을 때, 술술 읽히게 쓴다는 건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쉬운 문장 같은데도 문장의 호흡이나 구성, 단어선택 등에 있어서 독자의 "읽기"를 방해하는 작품들이 더 많다. (물론, 실험적이거나 전위적인 작품에 대해서는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만 한다.)<br>​<br>그러나 자신만만함은 잦아들고 다시금 미심쩍은 마음이 올라오고 있었다.자신이 유별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문제는 바로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br>「관종들」, 141쪽<br>​<br>「관종들」의 주인공들은 아이러니하다. 그들이 "관종"이라는 멸칭을 얻게 된 이유가 그렇다. 그저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좋은 "정해"와 고치는 것이 좋은 "영기"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실한 사회구성원이라고도 볼 수 있다.&nbsp;<br>​<br>그들이 타인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길 원해서, 주목 받는 걸 즐겨서 이웃을 불편하게 만드는 걸까? 오히려 정반대의 이유 아닐까. 타인에게, 사회에 너무 많은 "관심"을 가져서. 그들에게도 나름대로 항변의 이유는 마련되어 있다. 자신들의 소홀함으로 인하여 영구적인 장애를 얻은 딸에 대한 죄책감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죄의식이 그들이 자꾸만 눈에 보이는 사소한 불의에 대해 눈감지 못하게 만든다. 이는 일견 어린 자식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던 자신들에 대한 분노와 원망을 애꿎은 주변 사람들에게 전가시키고, 사소한 공동체 윤리를 지키지 않는 이웃들에게 투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잘못된 곳을 향하는 원망은 결국 주변인들 입에서 "관종"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하며, 친언니인 정미마저도 정해를 나무라게 만든다.<br>​정해야, 다른 사람들 심기를 건드리면 좋아? 다른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좀 나아?<br>「관종들」, 152쪽<br>&nbsp;이에 대하여 정해도 항변을 하지만, 그 항변은 어쩐지 자신을 향해 되돌아오는 것처럼 들린다.<br>​<br>원래 손가락질하는 건 쉬워. 언니처럼 말하는 건 쉬운 일이라고. 무슨 일이든 터지고 나서 후회하면 무슨 소용이야! 안 그래?<br>「관종들」, 153쪽​<br>이 대목에서 정해와 영기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 딸 호정에 대한 무거운 죄책감이고, 그들이 여전히 후회라는 지옥 속에 살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그리하여 그들은 "관종들"이라는 모멸적인 호칭 속에서도 타인에 대한 관심을 거두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그것이 그들이 비가역적인 장애를 얻은 딸에게 할 수 있는 "사과"이므로.<br>​<br>- 성혜령, 「대부호」<br><br>성혜령 작가의 「대부호」는 수상작품집 중에서 제일 좋았던 작품이다. 이전의 작품집 『버섯농장』을 읽을 때에는 그저 하드보일드적이거나, 불길하고 서늘한 분위기를 즐겨 쓰는 작가로 기억했다. 「대부호」는 이전 작품들과는 조금 결이 다르게 읽혔다.<br><br>12·3 비상계엄은 사회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역사상 두 번째로 대통령의 탄핵이 이루어졌으며, 이로 인하여 정권이 바뀌었고, 사회는 여전히 극단적인 사상을 지지하는 집단으로 나누어 싸우기를 멈추지 않는다. 문학에서도 마찬가지다. &lt;김승옥 문학상&gt;을 수상한 최진영 작가의 「돌아오는 밤」이나, 이희주 작가의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 길란 작가의 「법의 아름다움」은 그 당시의 혼란상을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넓게 보면 성해나 작가의 「스무드」 역시 이 안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nbsp;<br>「대부호」 역시 이른 바 '반탄 진영'에 열려한 지지를 보내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다. 오빠도 나어린 채로 죽고, 아빠도 돌연 사망했을 때, 세상에는 엄마와 '나'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엄마는 광화문 집회에 나갔다가 사고를 당해 응급실에 실려온다.<br>​나는 내심 엄마가 깨닫기를 바랐다. 몸이 아플 때 의지할 사람이 이제 나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그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도.(…)나는 아주 오랫동안 한국을 떠나고 싶었다. 오빠가 죽은 뒤에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나라를, 우리 가족만 조용히, 아니, 요란히 무너지고 있는 이 폐허를, 나도 한 번쯤은 버리고 싶었다.<br>「대부호」, 183쪽<br><br>요양이 필요한 엄마를 보살피면서 '나'는 격조했던 시간이 빚어낸 엄마의 변화가 낯설다. '나'는 오랫동안 한국을 떠나 외국 기업에 취직하는 걸 목표로 삼아왔다. 하지만 그게 성사된다면 엄마를 홀로 한국에 둬야 한다는 사실이 부채의식처럼 발목을 붙잡았다. 그러나 엄마와의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그 부채의식마저 털어버린다. 오빠의 죽음을 덮는 데 일조한 정치 세력을 지지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런 사람들을 지지할 수 있느냐고 묻는 '나'에게 엄마는 반문한다.<br><br>떠나고 싶은 게 이 나라야, 나야? 아니면 너야?<br>-「대부호」, 190쪽<br>번번이 최종 합격에 실패하던 본사 관리직 자리에 마침내 합격한 나는 이제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렇게 결심을 세웠지만,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또다시 '나'의 결정을 흔들어놓는다. 자신의 자취방으로 돌아가려는 '나'의 캐리어는 도무지 닫히지 않는다.&nbsp;<br><br>나는 캐리어를 주먹으로, 발로 내리쳤다. 왜, 안 닫히냐고, 왜. 엄마가 인기척도 없이 내 방에 들어와서 캐리어 위에 앉았다. 엄마의 무게로 캐리어가 겨우 맞물렸다. 나는 재빠르게 지퍼를 채웠다.<br>-「대부호」, 195쪽<br>말없이 들어와서 앉는 장면도,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재빠르게 지퍼를 채우는 것도, 가족이 겪는 갈등과 해소의 구조를 경제적으로 그려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마침내 엄마는 왜 '반탄 세력'을 옹호하는지 고백한다.<br><br>뭔가 바꾼다고 말하는 사람들, 엄마는 꼴보기 싫더라. 노동자, 인권, 그런 말 하는 사람들, 진짜 싫어. 바꿀 수 있었으면, 우리 현식이가 안 죽어도 됐잖아. 그런 생각 하면 엄마는 살 수가 없어.<br>-「대부호」, 196쪽<br>작품 뒤에 달려 있는 대담에서 성혜령 작가는 '엄마'의 입을 빌려 너무 쉽게 이야기해주는 장면이 아닌가 고민했다는데, 나 같이 미욱한 독자에게는 이 장면이 더 크게 와닿았다. 사실 나 역시 '반탄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이 장면을 읽고는 저 수많은 이들 중에는 이런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nbsp;<br><br><br>"소설이 지금 시대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은 사실상 "무엇을 할 수 있는가"로 왜소해졌다. 앞으로도 더 그럴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소설이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불가해한 타인을 이해하는 일"이다. 나에게 「대부호」는 그런 이해의 지평에 가닿은 소설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br>​<br><br>- 이민진, 「겨울의 윤리」/ 정이현, 「실패담 크루」/ 함윤이「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br>​<br>이민진 작가는 이번에 처음 이름을 들어보았다. 심사평에 의하면, 「겨울의 윤리」가 「눈과 돌멩이」와 막판까지 대상의 자리를 놓고 겨뤘던 작품이라고 한다. 이 작품은 주인공 '해진'이 "과거"를 버리는 이야기다. 그 과거에는 자기 자신도 있으며, 자신을 버린 어른들도 포함된다. 이런 과거를 "해진"이라 이름 붙여주고 타인처럼 대하는 서술 구조가 인상적인 작품이었다.<br>정이현 작가의 「실패담 크루」는 계간지에 실렸을 때 읽었는데, 그때도 재밌게 읽혔다. 김혜진 작가의 경우처럼 정이현 작가도 작품 활동을 오래한 연륜이 있는 작가인데, 이들을 보면서 소설은 이렇게 써야하는 구나, 배우게 된다. 실패담을 풀어내는 데 완벽하게 실패하여 오히려 성공하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nbsp;<br><br>함윤이 작가의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는 &lt;젊은작가상&gt; 수상집에서 읽었기 때문에 따로 읽지 않았다.&nbsp;<br>​<br>​모든 작품들 역시 수상할 이유가 있는 좋은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한 가지 우려스러운 부분은 남성 작가가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지금 남성 작가를 위한 쿼터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게 아니다.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 문학을 읽는 "남성" 독자가 극히 드물다는 점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읽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 믿는다. 그렇다면, 한국 문학을 읽는 독자의 대부분이 "여성"이기에 쓰는 사람도 여성이 더 많은 건 당연하게도 보인다. 다만, 한국 문학이 남성의 이야기까지 포괄할 수 있으려면, 좋은 남성 작가들도 더 많이 등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 수상 작품집에선 남성 작가들의 이름을 볼 수 있기를 고대하며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을 덮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96/16/cover150/k62213531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4961655</link></image></item><item><author>고전파</author><category>행복한 책읽기</category><title>한국 문단의 과거, 현재, 미래 - [당선, 합격, 계급 - 장강명 르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9496129/17230616</link><pubDate>Tue, 21 Apr 2026 20: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9496129/1723061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36884&TPaperId=1723061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4461/76/coveroff/893743688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36884&TPaperId=1723061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당선, 합격, 계급 - 장강명 르포</a><br/>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8년 05월<br/></td></tr></table><br/>한국 문단의 과거, 현재, 미래<br><br><br><br>소설가 장강명도 좋고, 방송에 나오는 장강명도 좋지만, 에세이스트 장강명은 독특한 매력이 있다.<br>칼로 무를 자르듯이 명쾌하게 분류할 순 없지만, 개인적으로 느껴온 바 소설가의 에세이는 의외로 시를 닮는다. 반대로 시인의 에세이는 소설적인 경우가 많다. 나는 이러한 서로 상반된 경향성을 발견할 때마다, 서로가 평소에 쓰지 않는 장르에서 자연 발생하는 갈증이 아닌가 짐작한다.<br>그러나 장강명의 에세이는 그의 소설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첫 르포인 『당선, 합격, 계급』에서도 밝혔듯이 기자로서의 글쓰기가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소설도 건조하고 냉정한 문체로 이루어져 있고, 그의 르포르타주 역시 직관적이고 사실을 전달하고 주장을 펼치는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다.<br><br><br>장강명 작가를 딱 한 번 직접 본 적이 있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북토크에서였다. 아마도 2015년의 가을, 강남이었던 것 같다. 이때 나는 그 자리에서 구입한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에 사인을 받으며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br>그때 당시 문단에서는 신경숙 표절 사태와 성비 사건으로 인하여 '문단 권력' 논쟁이 한참 진행 중이었다. 논란의 중심에 있던 출판사 문학동네에서는 계간 &lt;문학동네&gt;를 통해 &lt;한국문단의 구조를 다시 생각한다&gt;라는 제목으로 좌담을 열었다. 김도언, 손아람, 이기호, 장강명, 신형철(사회)이 참여한 좌담에서 장강명 작가는 그맘때쯤 황금가지에서 발간된 『이웃집 슈퍼히어로』라는 책에 대해서 언급했다. 이 엔솔로지에는 진산, dcdc, 좌백, 김수륜, 김이환, 이수현, 듀나, 김보영, 이서영 작가 등이 참여했다. 개중 좌백 작가가 쓴 「편복협 대 옥나찰」이 오래 기억에 남는데, 슈퍼맨과 배트맨을 음차하여 이름을 바꾸고 무협 세계관으로 쓴 작품이다.<br>계간 &lt;문학동네&gt;의 좌담도 읽었고, 『이웃집 슈퍼히어로』도 읽었던 나는 북토크 후 사인을 받는 자리에서 장강명 작가에게 질문을 했다. 대충 이런 질문이었다.<br>"&lt;문학동네&gt; 좌담에서 『이웃집 슈퍼히어로』 후속작이 나오면 참여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언제쯤 나올까요?"<br>장강명 작가는 신기하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br>"제 주변에 계간지랑 『이웃집 슈퍼히어로』를 같이 읽는 사람은 못 봤는데 신기하네요."<br>계간지는 주로 문단 문학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이 읽고, 『이웃집 슈퍼히어로』는 장르소설 애호가들이 읽을 법한 책이어서 그런 것이리라. 계간지의 경우에 학부 시절 교수님께서 계간지 하나는 구독해야 한다고 하셔서 구독했던 것이다. 『이웃집 슈퍼히어로』는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왜 사서 읽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장강명 작가가 정작 내 질문에 해준 대답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br>이 문답 외에도 이 북토크는 『당선, 합격, 계급』과도 관련이 있다. 북토크에서 장강명 작가는 "등단 제도에 관한 르포를 쓰고 있다"고 말하며 설문지를 돌렸다. 그렇다. 나도 『당선, 합격, 계급』에 나오는 몇 개의 항목에 응답을 제공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 책을 샀다.<br>하지만 그즈음, 나는 문학 자체에 냉담한 편이었고 그래서였는지 등단 제도에 대한 관심도 많이 없었다. 산다 해도 읽지는 않을 것 같았다. 다만, 장강명 작가의 책이라는 이유로 구매했다. 왜냐하면, 그 북토크에서 사서 읽었던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한동안 장강명 작가의 신작은 일단 다 구매했기 때문이다.<br>쉽게 말하면, 『당선, 합격, 계급』에서 지적하는 간판효과다. 장강명이라는 이름만으로 일단 샀으니까.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장강명 작가가 쓴 모든 책을 구매하진 못했는데, 일단 문학에 흥미를 잃었기도 하거니와 장강명 작가는 게으른 나에겐 대단한 '하드워커'였다. 사둔 책을 읽기도 전에 신간 알림이 왔다.)<br>* * *<br>한국 소설만 놓고 보았을 때, 2015년은 "장강명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표백』으로 2011년 한겨레 문학상을 수상한 후, 2015년에만 『열광금지, 에바로드』로 수림문학상을, 『댓글부대』로 4·3평화문학상을,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했다. "또 장강명이야?" 라는 반응과 "진짜 대단하다."라는 반응이 동시에 튀어나왔다.<br>나는 이중 『열광금지, 에바로드』를 제외하고는 다 읽어봤다. 『표백』은 그저 그랬고, 『댓글부대』는 재밌었다. 그래서 영화도 봤는데 영화는 실망스러웠다. (원작을 읽을 때, 흑막 회장이 &lt;아름다운 강산&gt;을 부르는 장면이 가장 강렬해서 영화를 볼 때도 이 장면을 어떻게 연출했을까 기대했는데 안 나왔다. 애당초 각색이 많이 되기도 했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은 인생작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장강명 작가의 전체적인 작품 성향에서 가장 동떨어져있는 작품이라는 생각도 한다.<br>장강명 작가는 『당선, 합격, 계급』에서 "간판"이 주는 효과, 그리고 간판이 만들어내는 "성"을 비판하는 데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당선, 합격, 계급』을 읽을 때도 일종의 간판 효과가 작용했다고 본다. 장강명 작가가 신문 기자 출신이라는 점에서 일차적인 신뢰가 있을 것이고, 나아가 유수의 문학상을 거머쥔 당사자이기에 독자들이나 취재원들이 더 신뢰를 가졌을 것이다.<br>그렇기 때문에 『당선, 합격, 계급』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취재하여 문제의 원인을 추적해나갈 수 있었다고 보인다.<br>『당선, 합격, 계급』에서 장강명 작가는 90년대 이후 생겨난 "장편소설공모전"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등단 제도를 고찰한다. 이를 위해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있었던 과거 제도부터 시작하여 현재 대기업들의 공채 시스템, 그리고 로스쿨 문제 등을 취재한다. 모든 제도에는 명과 암이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공채 제도는 제너럴리스트를 뽑는 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반대로 스페셜리스트를 뽑는 데는 제약이 생긴다. 문제는 "장편소설공모전"이 대상으로 하는 소설가, 넓은 의미의 예술가는 엘리트들이자 스페셜리스트 기질이 크다는 것이다.장편소설공모전이 이렇게 우후죽순으로 생긴 이유는, 그게 여러 영역의 이해관계자들에게 모두 좋은 제도였기 때문이다. 적어도 초창기에는 말이다.<br>『당선, 합격, 계급』, 48쪽<br><br>장편소설공모전의 경우, 등단을 꿈꾸는 작가에는 당선과 동시에 상금과 함께 단행본 출간의 기회가 주어진다. (신춘문예나 문예지 신인상은 단편소설을 대상으로 하기에 단행본이 나오려면 청탁을 2~3년은 꾸준히 받아야 한다.) 출판사의 경우, 양질의 원고들을 확보할 수 있으며, 문학상이라는 타이틀을 바탕으로 마케팅 포인트를 잡을 수 있다. 독자의 경우, 수없이 많은 책들 중에서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간판이 주는 권위에 안심하고 책을 고를 수 있게 된다.<br>대표적인 문학상을 운영하는 출판사 대표들의 신념도 인상적이었다. "오늘의 작가상"을 운영하는 민음사의 창업주 고 박맹호 회장은 "작가들이 돈을 벌어야 한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오늘의 작가상"을 제정한 70년대 당시에는 책의 판매가 외판원들을 통해 "전집"을 위주로 돌아갔기 때문에 작가들이 단행본을 낼 기회가 마땅치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단행본을 낼 수 있는 상을 제정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그리고 이문열 작가의 대표작인 『사람의 아들』이 세상에 나왔다.<br>문학동네의 창업주 강태형 전 대표는 "작가들이 장편을 써야한다"고 생각했고, 이에 장편소설 공모전을 열었다고 한다. 이 공모전에서 수상한 김영하, 은희경, 박민규, 천명관 작가는 한국 문학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br><br><br>장강명 작가는 한겨레문학상와 수림문학상 심사를 맡은 경험도 『당선, 합격, 계급』에 가감없이 적었다. 독자 입장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은 문학상 접수 마감일 취재 풍경을 보지 못한 것이었다. 작가 스스로도 그날 풍경이 흥미롭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한겨레출판사 측에서 심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166쪽)<br>또한 본심 심사는 너무나도 치열하게 진행되었다고도 밝혔다. 심사위원들이 제각각의 문학적 취향과 문학관을 가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합의에 이르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대목들은 지망생들이 우려하는 형평성, 공정성, 문단 카르텔 등에 대한 우려를 일정 부분 씻어주기도 한다.<br>그러나 대놓고 드러난 차별은 없더라도, 보이지 않는 차별은 존재하는 듯하다.<br>심지어 어느 매체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느냐, 거기에 대한 영향도 큰 것 같거든요. 똑같이 문예지 신인문학상 출신이라도 어떤 문예지냐를 따지는.<br>『당선, 합격, 계급』, 213쪽<br><br>창비장편소설상을 받기 전에 있었던 일인데, 등단 작가들하고 나란히 원고를 게재했는데 다른 사람은 다 '소설가'라고 쓰는데 저는 '작가'라고 적더라고요. 작가가 비하의 의미는 아닌데, 당하는 입장에서는 왜 나만 표기가 '작가'라고 돼 있나, 싶죠. '너는 정식 소설가가 아니다' 라는 말을 드는 기분? 2등 시민인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소설가 정세랑)<br>『당선, 합격, 계급』, 279쪽<br><br>지금은 넷플릭스에서 드라마화도 된 『보건교사 안은영』을 쓴 정세랑 작가 역시 "창비장편소설상"을 받기 전에는 차별적인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인지 몰라도 여전히 대다수의 지망생들은 문학상이라는 문단이 주는 합격증을 받고 싶어한다. 자신이 쓰고자 하는 문학에 대한 소신을 잠시 꺾어두고서라도 일단 합격하고 생각하자는 마음으로 "공모전용" 소설을 쓴다.<br>개인적으로는 지금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 중에도 이런 식으로 등단작과 그 이후에 쓰는 작품의 결이 확연히 다른 작가들이 있다고 생각한다.<br><br>심사평에는 만날 "신인다운 패기를 보고 뽑았다." 이렇게 적혀 있는데 저희는 그거 보고 비웃거든요. 이게 무슨 신인다운 패기야, 하면서. '젊고 새로운 감각' 그런 말들도요. 제가 젊어서 젊은 대로 쓰면 되는 게 아니라 '어른들이 이걸 보면 젊다고 생각하겠지?' 그런 걸 써야 등단하게 되는 거 같아요.<br>『당선, 합격, 계급』, 223쪽<br>그렇다고 해서 등단제를 폐지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어떤 지망생이나 독자들은 투고 제도가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데, 이는 &lt;해리포터 시리즈&gt;가 준 환상일지도 모른다. 이 작품의 원고가 수차례 반려되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 출간하게 된 계기에 대해선 『당선, 합격, 계급』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nbsp;<br>『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어린이용 소설로는 지나치게 길었다. 대사가 너무 적고 지문은 너무 많았다. 아이들은 점점 더 책을 안 읽는데 말이다. 게다가 그즈음 아동문학 트렌드는 따돌림 문제 등을 다루는 현실적인 책이었는데,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완전 딴판이었다. 그러면 블룸즈버리 출판사는 왜 조앤 롤링과 계약을 맺었을까? 신생출판사라 아동문학 출간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담당 편집자는 그냥 원고가 재미있다고 생각했다.<br>『당선, 합격, 계급』, 135쪽<br><br>이런 경우를 본다면, 투고 작품의 희망인 &lt;해리포터 시리즈&gt; 역시도 출간에 엄청난 운이 개입했음을 알 수 있다. 투고는 해당 작품을 읽은 편집자 한 명에게 전적으로 작품의 운명을 맡기는 셈이지만, 공모전은 같은 작품을 여러 명의 심사위원들이 논의할 여지가 있다는 점이 좀 더 나을 수도 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투고 작품으로 성공한 작품을 찾아보기 어려운데, 『82년생 김지영』 말고는 잘 알려진 것이 없다.<br><br>* * *<br><br>한동안 독자, 출판사, 작가 모두에게 좋은 제도였던 "장편소설공모전"은 유일한 기회의 장이 되어버림으로써 부작용을 낳았다. 지망생은 물론이거니와 기성 작가들도 "장편소설공모전"에 도전한다. 근래 "장편소설 공모전"을 통해 등단한 신인 작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상금과 단행본이 주는 매력에 신인, 기성 작가들은 계속 지원하게 되고, 출판사는 관성적으로 문학상을 유지한다.<br>물론 이는 장편소설공모전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이를테면, 대표적인 단편소설 문학상인 &lt;젊은작가상&gt;의 경우, 근 몇 년동안 이게 정말 수상작이 맞느냐는 비판도 무수히 들어왔다. 한국 문학을 읽는 독자들과 한국 문학을 만드는 출판사의 온도 차가 있다는 뜻이다.<br>현재 남들이 선망하는 간판을 부여하는 기관은 몇몇 문학 출판사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을 취향 공동체로 간주한다. 비슷한 '문단문학적' 가치를 추구하는 문인들이 동인을 이루고, 자신들의 가치에 맞는 신인을 발굴하며 알리는 행위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비평 행위는 매우 치열하게, 공정하게 이뤄진다고 강조한다.반명 상당수 작가 지망생과 독자들은 이들을 취향 공동체가 아니라 일종의 인증 기관으로 바라본다. 여기에서 괴리가 발생한다. '이 작품도 충분히 훌륭한데 너희는 왜 인정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터져나온다.'내가 보기에는 별로 재미없는데……'라는 취향 공동체 구성원다운 변명은 종종 오만하다거나 시야가 좁다는 반발을 산다.<br>『당선, 합격, 계급』, 298쪽<br><br><br>이 대목을 읽으면서 "문학과지성사"가 생각났다. 문학과지성사는 김현, 김치수 등을 중심으로 시작된 문학 동인에서 출발한 출판사다. 그래서 그런지, 문학과지성사는 여전히 이런 스탠스를 강하게 유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이게 잘못됐다고는 보지 않는다. 문학과 언어의 전위성, 실험 정신을 강조하는 출판사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꾸준히 기존의 문학 질서와 대립하고, 이를 갱신하여 새 지평을 여는 혁신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br>다만 이 대목을 읽으며 내가 떠올린 건, 이런 경험이다. 신종원 작가와 김채원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나는 "아, 이건 문학과지성사 스타일인데?"하고 느꼈다. 그리고 출판사를 확인했더니 신종원 작가의 『전자시대의 아리아』와 김채원 작가의 『서울 오아시스』는 모두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낸 책들이었다. 그래서 꼭 그와 마찬가지로 올해 출간될 예정이라는 김기태 작가의 신작 장편이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어, 정말? 상상이 잘 안되는데." 싶기도 했다.<br>일정 부분 한국 소설을 읽어온 독자들에게는 각 출판사가 추구하는 문학적 지향성에 대한 얼개는 있을 것이다. 예외적인 작품들이 튀어나올 수 있다곤 해도, 그 얼개가 그다지 틀린 것 같지도 않다.<br>독자들의 문예운동은 공모전을 포함해 우리 문학계의 기존 시스템으로는 발견할 수 없거나 묻히기 쉬운 작가들을 일반 독자의 눈높이에서 찾아내고 응원하는 운동이다. 독자들은 늘 그런 일을 해 오긴 했지만, 그 힘을 더 키우고 좀 더 효과적으로 영향력이 발휘되게 활동을 조직하자는 게 나의 제안이다.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모르겠다. 이 책이 나온 뒤 논의가 이어져, 시스템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장치들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오길 기대한다. 뼈대가 되는 것은 '독자의 언어'와 데이터베이스다. 독자들이 출판인이나 평론가와는 다른 주체적인 관점으로 작품에 가치를 부여하고 의견을 나눠야 한다. 그런 토론 내용을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먼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야 한다.<br>『당선, 합격, 계급』, 374쪽<br><br>장강명 작가는 『당선, 합격, 계급』의 후반부를 통해, 독자들에게 희망을 거는 것처럼 보인다. 출판사, 혹은 문단이 만들어낸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선 독자들의 역할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쉽게 별점을 남기고 평가를 하는 영화처럼 독자들이 서로 책에 대한 평가를 활발히 남겨야 한다는 점이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책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는다면 명확한 평가를 내리기 어려운 "경험재"이기 때문이다.<br>문단도 명확한 형체가 없는 상상의 공동체에 가깝긴 하지만, 독자는 그보다 더 하다. 출판사 입장에선 1,000권도 안 팔릴 거라고 예측했던 책이 증쇄를 거듭하기도 하며, 호응을 얻을 줄 알았던 작품이 1쇄도 다 못 팔 수도 있다. 영화의 관람객들도 마찬가지다. 박찬욱 감독이 &lt;헤어질 결심&gt;이 흥행할 것이라고 자신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br>그렇기 때문에 장강명 작가는 독자들이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한 활발하게 평을 남기고 그 데이터를 축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독자들의 니즈를 생산자/공급자인 출판사 측에서 파악하기 용이해질 것이고, 다른 독자들 역시 자신이 미처 몰랐던, 또는 알았어도 쉽게 손이 나가지 않던 책을 무람없이 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br>현재에는 주로 트위터(X)의 독서계, 그리고 디시인사이드 독서 갤러리에서 주로 이런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br><br>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읽을까 말까'라고 망설이는 사람에게 유용한 정보를 주는가, 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한국 서평 문화는 여러 가지로 아쉬운 점이 많다. 그 내용을 들여다봐도 그렇다.우선 문학평론가들의 글은 일반 독자에게 대개 도움이 안 된다. 일단 너무 어렵고, 쉽게 찾을 수도 없다. 다루는 폭도 좁아서, 대체로 문단문학 작품으로 영역이 한정돼 있다. 그나마도 썩 솔직하지 않다.<br>(…)<br>또 나는 언론 서평 역시 별로 솔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새로 나온 한국 소설에 대한 악평을 신문에서 본 일이 있는지?<br>『당선, 합격, 계급』, 330-331쪽<br><br><br>장강명 작가는 "님들이 좀 알아서 해보셈"이라고 말하고 무책임하게 손을 털지 않았다. 이 책이 나온 뒤 장강명 작가는 아내와 함께 &lt;그믐&gt;이라는 커뮤니티를 직접 출범했다. 독자들이 모여서 함께 책을 읽고 평을 나누는 사이트다. 사이트가 생겼을 때부터 몇 번 들어가 보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책을 같이 읽는다는 행위가 어색해 잘 이용해보지는 못했다.<br>2017년에 이 책이 나온 이후로 햇수로 10년이 흘렀다. 슬프게도 이 책을 읽는 2026년의 상황도 이 책이 묘사하는 2016~2017년과 그다지 다른 것 같지는 않다. 여전히 소설가 지망생들은 문예지나 신춘문예에 매달린다.<br>그 사이에 한국 문학의 변화 중 두드러지는 현상을 꼽아 보자면, 우선 독자와 쓰는 사람이 여성 비중이 커졌다는 점이다. 올해 이상문학상이나 젊은작가상만 해도 전원이 여성 작가다. 냉정하게 장강명 작가 이후로 대형 신인 작가 중에 남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김기태 작가가 분전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내가 모든 작가들이 발표하는 소설을 샅샅히 찾아 읽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죄송하다.)<br>그리고 쓰는 사람이 읽는 사람보다 많아졌다는 생각이 든다는 점이다. 이는 어쩌면 AI의 발전으로 인한 착시 현상일 수도 있다. 또한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 같은 베스트셀러는 40만 부나 팔리는 걸 보면, 아직은 읽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다. 소설을 쓰는 사람이 절대 40만 명이나 될 리는 없으니까.<br>현재 장강명 작가는 2023년에 출간했던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의 후속편을 작업하고 있다. 그 연재분을 알라딘이 운영하는 투비컨티뉴드에 올리고 있다. 생각날 때마다 챙겨보는데 흥미롭다. 역시 장강명 작가는 에세이를 잘 쓴다.<br>혹여나 장강명 작가가 여력이 된다면, 『당선, 합격, 계급』에도 후속편을 써주길 바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 사이에 꽤 많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전에 이미 사둔 『먼저 온 미래』를 읽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또 미루다 보면, 『당선, 합격, 계급』처럼 10년 뒤에 읽을지도 모른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4461/76/cover150/893743688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44617681</link></image></item><item><author>고전파</author><category>행복한 책읽기</category><title>현실적인 상상력이 가득한 3.5차원의 소설  - [멜론은 어쩌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9496129/17227589</link><pubDate>Mon, 20 Apr 2026 09: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9496129/1722758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82030157&TPaperId=1722758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093/31/coveroff/k28203015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82030157&TPaperId=1722758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멜론은 어쩌다</a><br/>아밀(김지현) 지음 / 비채 / 2025년 09월<br/></td></tr></table><br/>'아밀'이라는 작가명은 '김지현' 번역가의 필명이다. 평소에는 주로 영미 문학을 번역하고, '아밀'이라는 이름으로 소설과 에세이 등을 작업한다고 한다. 2018년, 2020년 SF어워드에서 수상하기도 했으며, 웹진 &lt;거울&gt;의 필진이기도 하다.<br><br>『멜론은 어쩌다』는 총 8편의 소설이 묶여 있다.<br><br>「나의 레즈비언 뱀파이어 친구」<br>「어느 부치의 섹스 로봇 사용기」<br>「아이돌 하려고 태어난 애」<br>「노 어덜트 헤븐」<br>「성별을 뛰어넘은 사랑」<br>「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br>「인형 눈알 붙이기」<br>「야간 산책」<br><br><br>처음에 목차를 훑었을 때는 SF 퀴어소설집이라 섣불리 생각했다. 처음 두 편을 읽을 때도 기존의 퀴어 소설들과는 다르게 "유쾌하고 웃긴 SF 퀴어소설집"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세 번째 소설부터 이 책에 대한 견해를 수정해야 했다. 『멜론은 어쩌다』는 단순히 웃긴 퀴어 소설이 아니라 "현실에 발을 붙인 채 상상력으로 내달리는 소설"이다. 이를 3차원(현실)과 4차원(상상)의 사이에 있는 "3.5차원의 소설"이라고 이름붙여 보고 싶다.<br>8편의 소설을 모두 읽고 찬찬히 되짚어보면, 「나의 레즈비언 뱀파이어 친구」, 「어느 부치의 섹스 로봇 사용기」 이 두 편에도 3.5차원의 흔적이 있다. 「나의 레즈비언 뱀파이어 친구」는 주인공의 오랜 친구가 주인공을 좋아하는 레즈비언이자 뱀파이어다. 그리고 아밀 작가는 뱀파이어가 인간과 무리 없이 공존을 하고 있는 세계관을 그리고 있다. 뱀파이어는 인간의 혈액을 얻기 위해서 "중고 거래 사이트"를 이용하기도 한다.<br>「어느 부치의 섹스 로봇 사용기」는 생성형 AI의 대화 기능이 탑재된 성인용 로봇이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이 소설은 AI에 대한 이야기로 읽힌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고, 오히려 로봇에게서 위안과 자신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주인공을 통해 다가온 AI 시대에 사람은 무엇이며, 관계는 정말로 어떻게 맺어져야 하는가를 고민하게끔 만든다.<br>마찬가지로 퀴어적인 요소가 담긴 「성별을 뛰어넘은 사랑」은 『멜론은 어쩌다』에서 가장 재밌게 읽혔다. 현실의 관념을 정반대로 뒤집은 게 인상적이다. 이 세계관에서는 "동성애"가 주류이고, "이성애"가 성소수자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그대로 존재해서, 이성애자들은 자신들의 취향을 숨기고 남몰래 연애를 한다.<br><br>이런 게 바로 성별을 뛰어넘은 사랑이구나. 은아는 처음 맛보는 신세계에 경탄했다. 어떻게 사람이 자신과 다른 성별과 사랑을 한다는 비틀린 욕망을 품을 수 있는가. 그건 뭔가 남다른 기질을 타고난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일 아닌가 생각했는데, 자신처럼 평범한 여자도 이성애에 빠질 수 있는 걸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구나 싶었다. 아니면 자신이 사실은 평범한 여자가 아니었거나.<br>「성별을 뛰어넘은 사랑」, 166쪽<br><br>「아이돌 하려고 태어난 애」는 퀴어적인 요소는 없지만 「어느 부치의 섹스 로봇 사용기」나 「성별을 뛰어넘은 사랑」와 함께 묶어볼 수 있을 듯하다. 세 소설 모두 지금 이 상태로 기술이 발전해나간다면 얼마든지 도래할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어느 부치의 섹스 로봇 사용기」는 특이점이 와 일상적인 대화나 감정의 교류가 가능한 AI가 등장한 소설이고, 「성별을 뛰어넘은 사랑」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하여 인공 수정을 통해서 출산이 가능해져서 성애의 주류가 동성애로 변했기 때문이다.<br>「아이돌 하려고 태어난 애」에서는 유전자를 편집해 탄생한 최고의 아이돌 "강모아"가 등장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그 최고의 아이돌과 같은 그룹의 멤버다. 사람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강모아에게 애증을 느낀다. 그러나 강모아에게 빛만 내리쬐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내세워 유전자 편집에 반대하는 운동가들이 있고, 그들과 강모아는 다투게 된다. 주인공은 그 날, 문득 이상한 메세지를 보게 된다. 그 작은 사실을 접한 주인공은 충격에 빠진다. "아이돌"로서 겪어야 했던 모든 어려움을 강모아는 유전자가 편집됐기 때문에 선천적으로 잘 극복해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br><br>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br>마태복음, 18장 3~5절<br><br>「노 어덜트 헤븐」은 "천국은 어린아이들과 같은 자들의 것"이라는 성경 말씀에서 시작한다. 사람은 죽어 천국이나 지옥에 가게 되는데 이를 위해 재판을 받게 된다. 이 소설에서 작품집의 제목인 "멜론은 어쩌다"가 나온 것 같다. 주인공 "멜론"이 엄마의 재판에 증인으로 불려나가게 되는 게 소설의 전체적인 골자다. 천사와 악마가 신 앞에서 치르는 법정 다툼이 생생하다. 하지만 이 소설에 있어서 나는 문득 결말에 조금 의문을 품었다. 작가의 의도를 짐작해보건대 따뜻한 결말을 쓴 것 같지만 어쩐지 나는 의심을 거두기 어려웠다.<br><br>「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과 「인형 눈알 붙이기」에는 "마녀"가 등장한다.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은 손가락이 짧아서, 혹은 재능이 부족해서 고통받는 피아니스트가 주인공이다. 자신의 라이벌이 마치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어느 날 만난 마녀가 이 사차원의 벽을 넘게 만들어준다고 한다. 남들은 인식하지 못하지만, 손의 좌우를 반전시켜서 연주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이 제안을 수락하면서, "3차원의 세계에 머물렀을 때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성공을 거머쥐면서, 주인공은 자신이 치른 댓가가 무엇이었는지를 깨닫는다.<br><br>「인형 눈알 붙이기」는 "3.5차원"의 소설이라는 말이 적합한 소설이다. 마녀는 마녀인데, 사업자등록증도 내고 세금도 내고 법적인 규제도 받는 마녀다. 주인공 마녀는 "가늘고 길게 사는 것"이 일생의 목표다. 그래서 흑마법과도 거리를 두고 살면서 축복 인형에 눈알을 붙이며 생활을 영위한다. 그러던 어느날, 신비주의 컨셉 아이돌의 축복 인형을 만들어 달라는 오타쿠를 만나게 되고 자신의 목표가 흔들리게 된다. 현실에 붙어 있기는 한데, 반쯤 몸이 떠 있는 것만 같은 세계관이 이 소설집의 미덕이란 점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br>「야간 산책」은 이 작품집에서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한 작품이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묘하게 현실적이면서도 기발한 상상력으로 직조해낸 세계관이 이 작품집의 강점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야간 산책」은 전반적으로 상상의 세계에 많이 치우쳐 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편지 형식으로 된 고백체 문학을 잘 읽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br><br>* * *<br><br>『멜론은 어쩌다』는 3.5차원의 소설이다. 이런 소설들이 재밌는 이유는 현실과 상상력의 절묘한 결합에 있다. 현실은 일종의 제약이 되어주는데, 상상력이 제멋대로 튀어나가는 걸 얼마간 제지해준다. 게다가 현실적인 조건들이 주인공에게 보다 쉽게 공감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겁이 많아 인형에 눈알만 붙이게 된 마녀처럼.<br>게다가 "아이돌 하려고 태어난 애",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노 어덜트 존", "성별을 뛰어넘은 사랑"과 같은 제목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평소에 작가에게 대중이 쓰는 유행어를 재조립하고 싶어하는 "언어유희적 욕망"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대중은 흔히 재능이 넘치는 아이돌(또는 가수든 배우든)을 보고는 "저 친구는 아이돌을 하려고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리고 작가는 그걸 가지고 정말로 아이돌을 하기 위해 태어난 아이를 소설에 등장시킨다.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역시 "넘사벽"이란 줄임말로 자주 쓰였던 유행어였는데, 작가는 정말로 차원을 넘나드는 피아니스트를 등장시킨다. "노 어덜트 존" 역시 "노키즈 존"을 뒤집고 성경 말씀을 가져와 천국이 노 어덜트 존이라는 설정으로 재탄생시킨다. "성별을 뛰어넘은 사랑" 역시 "어떻게 사람이 성별을 뛰어넘은 사랑을 할 수가 있어, 사랑은 당연히 같은 성끼리 하는 거지."와 같은 농담을 가져와 만들어낸 세계관이다.<br>하지만 이 상상력에서만 끝나지 않고 작가는 작품마다 좀 더 깊게 고민해보아야 할 것들을 남겨놓는다. "아이 같다는 것은 진정 무슨 의미인가?", "성별을 뛰어넘거나 뛰어넘지 않거나 사랑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과 교감할 수 없는 음악적 재능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나를 온전히 이해해주는 로봇과 나를 온전히 이해해주지 못하는 인간 중 어느 쪽이 더 가치 있는 관계인가?" 등등. 그리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책을 덮고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든다.<br>현실적인 상상력이 풍부한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093/31/cover150/k28203015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0933164</link></image></item><item><author>고전파</author><category>행복한 책읽기</category><title>염치를 아는 이들이여, 이리로 오라 - [안녕이라 그랬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9496129/17203938</link><pubDate>Wed, 08 Apr 2026 11: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9496129/1720393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62039240&TPaperId=1720393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66/52/coveroff/s63213595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62039240&TPaperId=1720393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안녕이라 그랬어</a><br/>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06월<br/></td></tr></table><br/>염치를 아는 이들이여, 이리로 오라<br><br><br>김애란 작가의 단편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었다.<br>김애란 작가는 기존의 『바깥은 여름』, 『비행운』 등의 작품집으로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지금 활동하는 작가들 중에서 단편소설을 가장 잘 쓰는 작가로 꼽는 독자들도 많다.&nbsp;<br>그런 작가의 작품이기 때문인지, 교보문고가 매년 실시하는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에서 2025년에 1위를 차지했다. 또한 유튜브 채널 &lt;이동진의 파이아키아&gt;에서 이동진 평론가 역시 2025년에 읽은 올해의 책 중 한 권으로 『안녕이라 그랬어』를 꼽기도 했다.<br><br>소설은 총 7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각 소설집들이 주로 코로나 시기 전후로 하는 시대상을 지니고 있다. 동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 으레 그렇듯, 단절, 격리로 인해 사회나 관계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일에 초점을 두곤 하는데, 김애란의 시선은 조금 다른 곳을 향해 있다. 작품의 해설에도 적혀 있듯이 김애란 작가는 『안녕이라 그랬어』의 주제를 '돈과 이웃'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안녕이라 그랬어』의 주제 의식은 '돈과 (돈이 많은) 이웃'에 초점이 맞춰진 듯하다.<br><br>그렇다면, 왜 코로나 시기여야 했는가, 하고 질문을 던져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작품집에 수록된 「좋은 이웃」에서 전면적으로 드러내고, 「홈파티」에서 보충하는 것처럼, 전염병은 건강에 대한 경각심뿐만 아니라 경제적 계급에 대한 간극이 부각된 시기다.&nbsp;<br>​코로나 시기는 '블랙 먼데이', '경제 대공황' 등을 떠올리게 할 만큼 역사적인 하락장이 발생했던 때다. 사람들이 격리를 하게 되면서 경제활동이 일시적으로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정부와 중앙은행이 대대적으로 구원투수로 나섰던 때이기도 하다. 돈을 "합법적으로 찍어낼 수 있는" 기관에서 주도하는 구제금융이 시작되자 시장에는 어마어마한 자금이 밀려들었다. 백신 접종과 더불어 코로나 확진세가 점차 안정이 되기 시작하자 경기는 안정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주식 시장은 역대급 호황을 보였다. 한국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으로 인하여 부동산 가격도 가파르게 상승하던 시기다.<br>​주식 시장의 호황을 만드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코로나 시기를 주도했던 건 기업들의 눈부신 성장이라기보다는 밀려드는 "현금"에 기인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밀턴 프리드먼의 유명한 격언을 되새겨볼 만하다.<br>​<br>​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다.<br>(Inflation is always and everywhere a monetary phenomenon.)<br>밀턴 프리드먼<br>​<br><br><br>현금, 화폐 공급량이 증가하면 물가는 오를 수밖에 없다. 물가가 상승한다면, 화폐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하락할 것이고 그렇다면 사람들은 현물, 즉 주식이나, 금, 부동산으로 몰리게 된다. 그래서 또다시 주식 시장이나 부동산 시장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가 되었다. 거기에 더해 FOMO 역시 한몫을 했다. 2025~2026년, 미국-이란 전쟁 발발 전까지만 해도 역대급 호황을 자랑하던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주식 시장에 뛰어들었던 것처럼 말이다.<br><br><br>지나간 이야기들을 복기한 것은 이러한 현상을 배경으로 『안녕이라 그랬어』의 작품들이 쓰여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믿기지 않는 일엔 "너무 소설 같다"고 말한다. 반대로 형편없는 소설을 읽을 때는, 이 소설은 "너무 현실성이 없다"고 말한다. 이 기묘한 평가 기준은 종종 모순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자아낸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사실에 기반하지만, 결과물은 허구여야 한다. 핍진성을 갖추면 좋지만, 그게 꼭 전부인 것만은 아니다.<br>​<br>『안녕이라 그랬어』는 현실에서 주워든 재료로 만든 탁월한 가짜다. 진짜들을 조각해, 마침내 실제보다 더 실제 같아진 가짜들. 이런 인상을 구성하는 기본 골조는 대개의 사람들이 일상에서 한 번쯤은 느껴봤을 만한 감정이다. 이를테면, 「숲속 작은 집」에서 벌어지는 팁을 주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얼마를 주어야 하는가, 나아가 어떤 방식으로 주어야 하는가, 와 같은 사소하지만 중요한 문제가 바로 그 예다. 게다가 얼마간은 우리 모두가 느끼고 경험하지만 애써 무시하려고 하는 아픈 지점도 김애란은 송곳처럼 찝어낸다.<br>​<br>그러자 수명이 다한 행성처럼 천천히 멀어지던 둘의 관계가 눈앞에 떠올랐다. 둘 중 누구도 그걸 막으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함께. 그렇다고 기태에게 아직 희주를 향한 미련이 남은 건 아니었다. 한때 가까웠으나 '이별의 형식' 없이 헤어진 친구를 바라보는 심정으로, 그 친구의 삶을 질시하지도 폄하하지도 않는 마음으로, 기태는 희주의 삶을 응원했다.<br>「이물감」, 155쪽<br>​​<br>나는 정작 가장 중요한 이유인 '외국어 공부를 하다보면 아직 내게 어떤 가능성과 기회가 남은 것 같은 착각이 들어서……'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br>「안녕이라 그랬어」, 226쪽<br>​<br>​<br>또한 김애란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만 보이는 경제적 차이를 포착한다. 그리고 그 차이가 인간 내면에 끼치는 영향을 관찰하는 데 독보적이다. 이와 같은 미시적인 감정을 포착해 이를 적확한 문장으로 치환한다. 나아가 「좋은 이웃」의 화자는 이 간극 속에서 괴로워한다. 도덕적 우월감과 물질적 우위 속에서 갈등하며, 마침내 그 우월감이 자기 모멸감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담아낸다. 이러한 과정은 "정의는 힘없는 자들의 자기 합리화"라는 말이 주는 뉘앙스를 날카롭게 파고든다.<br>​<br>내가 연민하던 대상이 혼자 반짝이는 세계로 가버렸기 때문일까? 아니, 나는 시우를, 시우 어머니를, 그들이 사는 집을 내려다본 적 없는데. 그럼 마주보는 건 괜찮지만 올려다보는 건 싫은 걸까?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br>「좋은 이웃」, 130쪽<br><br>얼마 전 남편이 내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잘살게 되면 남을 돕고 살자." 그런데 여보, 우리가 잘살게 되면 우리가 '더' 잘살고 싶어지지 않을까? 그때도 이웃이 생각날까?<br>「좋은 이웃」, 141쪽<br>​<br>​<br>『안녕이라 그랬어』에 수록된 7편의 작품을 읽으며 얼마 전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염치를 아는 사람일 수록 세상을 사는 게 어렵다.'는 말이었다. 안면몰수하고, 적당히 모른 척도 하며 살아야 세상을 살기 쉽고 돈도 잘 벌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사람만 있다면 이 세상은 홉스가 말했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가 될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속일지, 어떻게 이득을 취할지만 생각하는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상태. 그게 정말 좋은 세상일까.<br>​<br>어쩌면, 어수룩하고 멍청해보여도 염치를 아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세상이 돌아가는 게 아닐까. 무엇이 올바른 일인지, 무엇이 맞는 일인지,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당장 옳은 게 무엇인지를 따져보고 이를 감당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직면할 수밖에 없는 상처를 김애란은 서슴없이 짚는다. 염치를 아는 이들은 자신들의 상처와 고뇌를 숨기려 한다. 이를테면, 「좋은 인물」의 화자처럼, 자신의 우월감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그게 혹여나 잘못된 것은 아닌지를 되새겨보면서 '부끄러워' 하기 때문이다. 윤동주 시인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 했'듯이 말이다.&nbsp;<br>​<br>그러니, 숱한 밤을 침대에서 뒤척이며 고뇌하는 염치를 아는 이들이여, 이리로 오라. 당신과 함께 앓아줄 소설이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게 바로 당신과 우리 모두가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어야 할 이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66/52/cover150/s63213595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5665217</link></image></item><item><author>고전파</author><category>100자평</category><title> ‘인간’ 프로이트의 행적을 따라가는 친절한 안내서. - [지그문트 프로이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9496129/17191533</link><pubDate>Thu, 02 Apr 2026 00: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9496129/1719153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22136920&TPaperId=171915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04/99/coveroff/k32213692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22136920&TPaperId=1719153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지그문트 프로이트</a><br/>김석.지크문트 프로이트 지음 / arte(아르테) / 2026년 02월<br/></td></tr></table><br/>* 이 서평은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습니다.<br><br><br>‘인간’ 프로이트의 행적을 따라가는 친절한 안내서.<br><br><br>구스타프 말러, 반 고흐, 니체, 윤동주, 괴테, 아인슈타인 등 인류사에 족적을 남긴 인물들에 대해 깊이 알아가는 아르떼의 시리즈 '클래식 클라우드'의 39번째 주인공은 '지그문트 프로이트'다.<br>국내 정신분석학 석학 김석 교수가 빈, 런던, 파리 등 정신분석학 창립자인 프로이트의 족적을 따라가는 여정이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담겨 있다.<br><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color: rgb(34, 34, 34); font-size: 15px;"><br><br><br><br><br>20세기를 연 세 권의 책이 있다.<br>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그리고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다.<br>생물학, 정치/경제학, 심리학 분야에서 기존의 인간에 대한 이해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 갱신해낸 기념비적인 저작들이다.<br><br><br>『종의 기원』은 여전히 진화론에 있어서 성경과 같은 위치를 차지하지만, 『자본론』이나 『꿈의 해석』은 등장 당시 안겨주었던 충격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진 못하는 것 같다.<br><br><br>정신분석학은 발전 과정에서 신경증, 히스테리, 억압, 그리고 무의식과 같은 개념으로 범위를 넓히며 신체적 증상의 원인이 심리적 기저에 자리잡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하지만 그 시작은 '꿈'이었다. 자연스럽게 프로이트 자신의 '꿈'이 주요한 해부의 대상이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꿈의 해석』이다. 그러나 지금은 몇 가지 기본 개념을 제외하고는 그 실효성에 대해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br><br><br>"그렇다고 해서 프로이트와 그의 학문을 완전히 구시대의 유물로 치부해 버릴 수 있을까?"<br>이 질문을 다음과 같이 표현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br><br>지금 프로이트를 읽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br><br>나는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았다.<br><br><br><br><br><br>김석 교수의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단순히 정신분석학이나 프로이트가 주창한 '리비도',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같은 개념을 설명하는 이론서들과는 다르다.<br><br>대신, '인간' 프로이트의 행적에 보다 집중한다.<br><br>책에서도 언급되듯이, 창시자가 이토록 명확하게 알려져 있는 학문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런 연유로 '정신분석학'은 곧 프로이트이며, 프로이트가 곧 '정신분석학'처럼 여겨진다. 인간이라는 종의 기원 때부터 꿔왔을 '꿈'에 대한 진지한 분석을 시도한 것은 분명 프로이트와 정신분석학의 업적이다. 그러나 때로 정신분석학은 그 학문적 성취나 역할보다는 창시자인 프로이트의 결함 때문에 저평가를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br><br><br>서두에서부터 저자는 불완전하고 모순투성이인 '인간' 프로이트에 대해 솔직하게 적는다. 자신의 딸을 평생 비서로 두게 만들면서 통제하는 모습, 수제자 융과의 불화, 아들러와의 갈등, 담배에 중독되어서 구강암으로 고생하게 되는 말년 등등. 프로이트는 이를 빗대어 '찬란한 고립'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세상과 불화하는 영혼을 가진 인간이 택할 수 있는 용기 있는 결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br><br><br>위와 같은 사실들을 종합해나가면서 책을 읽어나가자 희미한 결론 하나가 떠올랐다.<br>만약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결함이 없는 인간이 제시한 학문이라면, 정신분석학이 인간을 이토록 솔직하게 해부할 수 있었을까?<br>프로이트가 '문제적 인물'이기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br>개인적으로도 문제적인 인물에 크게 흥미를 느끼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읽어나가는 내내 그러한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br><br><br>나아가서 이런 생각도 해보게 됐다. 우선, 이 책을 읽으면서 '정신분석학'에 대해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다음과 같다.<br><br><br>정신의학과 비교해 정신분석의 가장 큰 차이는 임상의 본질을 내담자가 자신의 무의식을 마주할 수 있고, 그를 통해 새로운 주체로 정립하게 도와주는 것을 본질로 삼는 점이다. 카우치(소파)는 정신분석의 원리를 반영한다. 카우치는 환자 스스로 연상을 통해 자기도 모르는 진실을 탐구하고 분석의 끝에는 스스로 분석가가 되어야 한다는 정신을 보여준다.<br><br>김석, 『지그문트 프로이트』, 17-18쪽<br><br><br>프로이트의 소파는 굉장히 유명하지만, 단순히 환자의 편안한 기분을 유도하기 위한 장치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br><br><br>근래 대화형 AI의 발전으로 인하여, AI를 심리상담사, 정신과 의사와 같은 용도로 사용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AI는 하루가 다르게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하지만 상담의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바로 사용자인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br><br><br>AI에게 상담을 받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프로이트의 소파'가 아닐까 한다. 단순히 AI에게 위로와 공감을 받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무의식과 억압적 요소를 찾아내고 이를 치유하는 것. 프로이트의 이론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되지 못할지언정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불가해한 스스로와 더 깊은 대화를 나눠보고 싶은 사람, 숨겨져 있는 고통을 알아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프로이트는 유용한 도구가 되어줄 수 있다.&nbsp; 또한 저자도 책의 말미에 밝혔듯이, "아프고 연약한 나의 모습이야 말로, 나를 빛내는 아름다움의 원천"(236쪽)이므로 이는 한 번쯤은 대면해봐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에게 프로이트는 여전히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br><br><br>『지그문트 프로이트』를 덮으며 그런 결론에 이를 수 있었다.<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04/99/cover150/k32213692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7049911</link></image></item><item><author>고전파</author><category>행복한 책읽기</category><title>경계선 위에서 태어난 소설들 - [자개장의 용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9496129/17147152</link><pubDate>Fri, 13 Mar 2026 00: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9496129/1714715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694&TPaperId=1714715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789/42/coveroff/893204469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694&TPaperId=1714715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자개장의 용도</a><br/>함윤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1월<br/></td></tr></table><br/><br>함윤이 소설가는 「되돌아오는 곰」을 통해 202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2025년에는 단편소설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를 통해 이상문학상 우수상, 이효석문학상 우수작품상, 2026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br>또한 같은 해 장편소설 『정전』으로 제31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위수정 작가와 더불어 근래 가장 뜨거운 주목을 받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br><br><br>함윤이 소설가의 첫 소설집 『자개장의 용도』에는 총 7편의 소설이 실려있다. 특이하게도 신춘문예 등단작인 「되돌아오는 곰」은 실려 있지 않다.<br><br>「자개장의 용도」<br>「구유로舊遊路」<br>「강가/Ganga」<br>「수호자」<br>「규칙의 세계」<br>「나쁜 물」<br>「천사들(가제)」<br><br><br><br><br>「자개장의 용도」<br>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자개장이 이 소설의 주요 장치로 등장한다. 증조모때부터 물려받은 자개장은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는 특별한 물건이다. 그러나 돌아올 때는 늘 스스로의 힘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러한 제약은 "떠남"의 의미에 대해서 곱씹어 보게끔 한다. 돌아오는 방법을 염두에 둔 채 떠나는 것은 정말로 떠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다녀옴"의 일부일 뿐.<br>진정으로 떠난다는 것은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과 현실성을 버린 순간에야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자개장의 용도」의 말미에 이러한 의미가 엄마의 입으로 드러난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엄마가 그랬듯이 아주 멀리, 쉽사리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다녀오지 않고" "떠난다."<br><br>엄마는 말했다. 예전에 너더러 자개장을 쓸 때는 돌아올 거리를 꼭 염두에 둬야 한다고 했지. 사실 그건 거짓말이야. 돌아올 길을 생각하면 자개장을 제대로 쓸 수 없어. 오히려 그걸 전혀 개의치 않아야만 자개장을 잘 쓸 수 있다. 누구한테도 이 말은 하지 않았어. 그게 나를 떠날 방법으로 쓰일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야.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는 곳으로 너희가 떠날까 봐.<br>「자개장의 용도」, 41쪽.<br><br>「구유로舊遊路」<br><br>두 번째 소설인 「구유로」에도 "걷는 사람"이 등장한다. '나'는 함께 무대를 꾸미던 동료들의 무대를 보기 위해서 무작정 걷는다. 걸어서 그들에게 도착하면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희망과 함께. 도대체가 걷는다는 행위가 소원 성취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br>오랜 시간 걷는 행위는 통증을 동반한다. 통증은 죽어감이나 문제적인 징후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때때로 살아 있음을 증거하기도 한다. 국토종주, 삼보일배 등 몸을 혹사시키는 단순한 방법들은 수행의 한 방편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나의 신체에 고통을 가해 마음을 닦고, 그리하면 초월적인 존재가 소원을 들어줄 거라는 단순한 바람의 발로 아닐까.<br>「자개장의 용도」에도 걷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엄마'와 '나'가 그렇다. 왜 이 여자들은 걸어야만 했을까?<br>걷는다는 건 이족 보행이 가능하게 진화했음을 의미하며, 그로 인해 두 손이 자유로워져서 도구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인류는 다른 짐승들을 제압할 수 있었다…… 라고 퉁쳐서 말해도 될까?괜찮다면, 이는 곧 '진보(進步)'를 의미한다. 진보의 한자가 '나아가는 걸음'이라는 점과 함께 곱씹어볼 만하다.<br>걷는 행위는 결국 아무 데도 기댈 곳 없는 이들이 절박하게 더 나은 삶을 기대하게끔 기능하는 듯하다.<br>나는 구유로를 생각한다. 그 집을 떠나온 날 이후로 매일 그래왔듯이, 그 마당과 복도 그리고 방 들을 떠올린다. 푸른 빛으로 일렁이던 방 한가운데에 서 있던 몸을 그린다. 어깨와 배 등 가슴 그리고 무릎과 허벅지 사이까지 파란색으로 물들어 있다. 사라의 몸은 항성과 위성이 겹치는 순간처럼 아주 잠시 드러나며, 다시는 잊히지 않는다.<br>「구유로」, 83쪽.<br><br>「강가/Ganga」<br><br>"강가"에는 크게 3가지 뜻이 있다.<br>강가, Ganga/강가/명사힌두교의 하천(河川)의 신(神). 갠지스 강(Ganges 江)을 신격화(神格化)한 것임.<br>강-가, 江-/강가,-까/명사강줄기가 육지와 잇닿은 곳. 또는, 그 부근. 강변(江邊). 하반(河畔).<br>강ː가, 降嫁/강가/명사왕족의 딸이 신하의 집안으로 시집가는 것.<br><br>「강가/Ganga」는 이 소설집 안에서 조금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남자를 사러 낯선 도시에 온 여자의 이야기다. 주체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여성을 내세워 독립 영화와 같은 분위기를 낸다. 소설 속의 '나', 또는 '강가'는 남성이 필요하다고 느낀다는 점에서 얼핏 남성 의존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내내 남성을 "사겠다"는 태도를 견지한다. 이는 '강가'의 3번째 의미와는 정반대되는 태도다.<br>이러한 독립 영화적인 특성과 더불어 고전 영화 같은 분위기도 동시에 갖고 있다. 여성과 그가 만나는 남성들의 다소 연극적인 상호작용을 보고 있노라면 70~80년대 흑백 영화의 향수를 자아내기 때문이다.<br>이 소설이 흥미로운 지점은 이번에 출간된 함윤이 작가의 『정전』이 여공들의 이야기기 때문이다. 이 여공의 이야기가 이 소설이 씨앗이 되었을지 살펴보는 점도 재밌는 독법이 될 것 같다.<br><br><br>「수호자」<br>「수호자」는 작중 화자가 뉴질랜드에서의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떠나가던 함윤이의 인물들은 이제 돌아온다. 다만, 돌아온 화자는 혼자가 아니다. 귀신과 함께다. 표제작인 「자개장의 용도」와 비슷하게 환상성을 지닌 작품이기도 하며, 언뜻 퀴어적인 요소가 엿보인다.<br>귀신과 사람은 죽음과 삶이라는 명백한 경계로 갈려진 존재들이기도 하다. 「수호자」를 기점으로 앞의 세 작품에서는 강가, 늪처럼 물리적으로 존재하던 "경계"가 추상적인 단위로 확장되기 시작된다.<br>여자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소름이 척추를 따라 번졌다. 여자가 말했다. 이걸 귀신이라고 부르는 건 네 자유지만, 떼어내려고는 하지 마. 무조와 똑 닮은 눈이 나를 응시했다.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너무 힘들면요? 바닥에 주먹질하는 기분으로 매일 버터기는 싫어요. 귀신이든 뭐든, 붙잡고 사는 게 너무 어려우면 어떻게 해요?<br>「수호자」, 152쪽.<br><br><br>「규칙의 세계」<br>「규칙의 세계」는 쉐어하우스처럼 여러 사람이 한 곳에 모여산다는 설정에서 「구유로」와 묶어볼 수 있으며, 미신이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핵심 기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자개장의 용도」, 「수호자」의 냄새도 난다.<br>또한 "거울"과 "산"은 이쪽 세계에서 저쪽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경계"의 이미지가 짙게 작용한다.<br><br>「나쁜 물」<br>「나쁜 물」은 「천사들(가제)」와 함께 이 단편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선과 악은 얼핏 절대적이며 객관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가치판단은 대체로 주관적이다. 선악의 문제가 명확할 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가 생기는 지점들은 언제나 선악이 흐릿해지는 경계에 놓여져 있을 때다. 윤리의 경계라고 말해볼 수 있을까. 이를테면, 「나쁜 물」에서 '너'가 '범죄자'에게는 '좋은 사람'이 되었던 순간처럼. 이렇게 선의가 죄책감으로 돌아오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 이 소설의 미덕이라고 볼 수 있다.<br>「천사들(가제)」<br>「천사들(가제)」은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기차 안에서 꾸는 꿈이 주를 이룬다. 꿈에서 친구와 내가 같이, 또 따로 알던 사람들이 두 사람이 만드는 영화 배역의 오디션을 보기 위해 등장한다. '나'는 자꾸만 꿈에서 깼다가 다시 잠에 들었다가 하는데, 이처럼 이 소설에서 "경계"는 현실과 꿈의 사이로 옮겨지고 자꾸만 흐릿해진다. 마침내, 3개의 배역에 지원한 9명의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사람들 사이의 경계마저 지워버리려고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br><br><br>목 이모님은 자신이 옛 영화들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좋은 영화들이 오래 남아 옛것이 되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도 그런 거 만들어. 이모님은 종종 덕담처럼 말했다. 오래가는 거 말이야.너희가 죽은 후에도 길이길이 남는 거.<br>「천사들(가제)」, 264-265쪽.<br><br><br><br>G a n g a.글자들은 잘 지은 집처럼 견고해 보인다. 입속으로 또 한 번 발음한다. 강가 - 이 단어는 보통 강줄기와 육지가 맞닿는 부분을 의미한다. 강과 땅 모두의 가장자리지만,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않는다.<br>「강가/Ganga」, 92쪽.<br>이처럼 함윤이의 소설집 『자개장의 용도』에서 "경계"는 여러 차례 모습을 드러낸다. 경계가 가지는 본질적인 의미, 무언가를 가르는 기준이라기보다는 그 경계를 사이에 둔 두 공간, 두 가치를 이리 저리 옮겨다니는 과정과 그 의미에 집중하는 듯하다.<br>앞의 세 작품에선 강을 건너고(강을 건너도 여전히 강 건너임에도), 늪에 빠지고, 마침내 강물에 빠진다. 중후반에 배치된 작품에 이르게 되면, 경계는 서로 다른 세계, 선과 악의 윤리, 꿈과 현실, 생과 사처럼 추상적인 영역으로까지 확장된다. 이를 위해 환상적인 요소를 마음껏 끌어들이며 적재적소에 표현한다. 그리고 그 위에서 경계를 넘는다는 의미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br>그렇다면, 이렇게 말해볼 수 있을까. 함윤이가 그려낸 인물들은 모두 "경계선 위에서 태어났다고." 나는 이 작가가 그려놓은 다음 경계선을 쫓아서 『정전』을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자개장의 용도』를 덮는다.<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789/42/cover150/893204469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7894266</link></image></item><item><author>고전파</author><category>행복한 책읽기</category><title>내부자가 지켜본 엔비디아의 성공 방정식 - [엔비디아 DNA]</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9496129/17134284</link><pubDate>Fri, 06 Mar 2026 17: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9496129/1713428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82135333&TPaperId=1713428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37/55/coveroff/k58213533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82135333&TPaperId=1713428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엔비디아 DNA</a><br/>유응준 지음 / 모티브 / 2026년 02월<br/></td></tr></table><br/><br>*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된 리뷰입니다.<br><br><br><br><br><br><br><br><br><br><br><br>올해 2월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lt;레이디 두아&gt;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br><br>사업가나 사기꾼이나 매한가지긴 해.근데 사업가가 사기꾼이랑 다른 게 딱 한 가지 있어.<br>시작은 허풍일지라도 끝은 아니라는 거지.<br><br>모든 성공한 기업들에는 대체로 이 말을 적용할 수 있다. 빌 게이츠가 차고에서 윈도우 개발을 시작했을 때, 제프 베조스가 인터넷으로 도서 배송을 시작했을 때, 일론 머스크가 페이팔을 매각하고 테슬라를 사들이고, 스페이스X를 창업했을 때.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을 때, 정주영 회장이 갯벌 사진을 들고 그리스 선박업주 리바노스를 찾아가고, 영국 은행에 찾아갔을 때. 너무 먼 이야기인가? 김병훈 대표의 APR 사례도 있다.<br>그들의 비전은 남들이 보기엔 허풍에 가까웠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어떤가. 빌 게이츠, 제프 베조스, 일론 머스크, 정주영 회장, 이병철 회장 등 각국 경제에는 물론, 세계 경제에도 막강한 영향을 끼치는 인물들이 되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 남들 눈에는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비전을 현실화시키는 게 '기업가 정신' 아닐까.<br>엔비디아의 젠슨 황도 다르지 않다.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리니지 등의 열풍으로 인해 PC방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던 1990년대 젠슨황은 한국의 용산전자상가를 찾았다. 엔비디아가 생산한 그래픽카드를 팔기 위해서였다.<br>제품을 팔기 위해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 발품 팔기를 마다하지 않던 젠슨 황의 엔비디아는 이제 애플을 제치고 전세계 시가총액 1위의 기업이 되었다.<br>모티브에서 출간된 『엔비디아 DNA』는 엔비디아 코리아 지사장 출신인 유응준이 직접 이런 엔비디아의 폭발적인 성장을 내부자의 시선으로 담아낸 책이다.<br><br><br>CPU와 GPU 차이를 명확히 보여준 레전드 시연회<br><br><br>『엔비디아 DNA』에서 저자가 수차례 강조하는 지점은 젠슨 황의 유연한 판단, 그리고 변화에 대한 과감한 베팅이다. 엔비디아의 기존 주력 상품은 그래픽카드였다. 용산전자상가를 돌아다니면서 팔려고 했던 제품도 그래픽카드였다. 그러나 현재의 엔비디아의 핵심 상품은 그래픽카드에 연산 기능이 더해진 GPU다.<br>반면 진짜 통찰을 가진 리더는 시장이 아직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간다. 그곳에는 숫자도, 사례도, 확신도 없다. 대신 기술의 방향성과 구조적 필연성만 존재한다. 젠슨 황은 늘 이 필연성에 베팅해 왔다.<br>『엔비디아 DNA』, 21쪽.<br><br>저자는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을 본 후에야, AI 시대가 열렸음을 깨달았고 그동안 젠슨 황이 강조했던 방향성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고 밝힌다.<br>고사양 게임을 돌리기 위한 부품을 만드는 회사로만 알려진 엔비디아가 세계의 이목을 끌게 된 건 3가지 사건이 있다. 비트코인 채굴 열풍, 테슬라 자율주행 시연, 생성형 AI의 등장.<br>이 셋 모두 고성능 GPU를 필요로 하고, 이에 맞춰 젠슨 황은 재빠르고 과감한 결정을 통해서 엔비디아를 성장시켰다. 『엔비디아 DNA』에서 특히 강조되는 젠슨 황의 2가지 사고 방식이 있다.<br><br><br><br><br><br><br><br><br><br>1. TOP 5 Things<br><br><br><br>엔비디아 회의에서 젠슨 황은 "Top 5 things"를 강조한다고 한다. 이는 지금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한해서 당장 "집중해야 할 5가지 목표"를 선정하고 이에 대해서 몰두하는 것이다. 엔비디아는 당연하게도 비슷한 규모의 대기업들을 상대하는 기업이고, 두 대기업 간의 이해관계를 모두 따지다보면 업무는 지연될 수밖에 없다. 내부적으로도 마찬가지다. 공룡 기업은 필연적으로 관료제적 문제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엔비디아 DNA』에 자주 보여지는 젠슨 황의 면모는 경직된 분위기를 타파하고, 업무를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직원들을 독려하는 데 열중하는 것처럼 보인다.<br><br><br><br>2. 실패를 두려워 말고 실패에서 배워라.<br><br><br><br>마찬가지로 회의에서 젠슨 황은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한다고 저자는 밝힌다.<br>"Good. Now we know."<br>『엔비디아 DNA』, 90쪽<br><br>이러한 젠슨 황의 태도를 저자는 "지적 정직성"이라고 표현한다. 직원들이 실패했을 때는 문제 삼지 않지만, 그 실패에 대한 구구절절한 변명이 시작되면 젠슨 황은 질책한다고 한다. 실패에 대해 변명하기 시작한다면, 실패에서 무언가 의미 있는 결과물을 도출해 낼 수 없고, 실패를 두려워해 소극적으로 업무에 임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이 책을 읽는 동안 들었다.<br>어떤 프로젝트가 실패했을 때, 젠슨 황은 직원들을 질책하기보다 이제 문제를 더 정확히 알았다고 말한다. 이는 마치 에디슨이 "나는 실패하지 않았다. 작동하지 않는 1만 개의 방식을 알았을 뿐이다."라고 한 말과 겹쳐진다.<br>이러한 "지적 정직성"이 이 회사를 급격히 변하는 기술, 경제 상황 속에서 굳건히 자리매김한 회사로 만든 것이 아닐까 짐작하게 된다.<br><br>이 회사(엔비디아)는 항상 가장 먼저 성공한 기업이었던 적은 없었다. 그러나 가장 먼저 틀렸음을 인정한 기업이었고, 그래서 가장 먼저 방향을 바꿀 수 있었던 기업이었다.<br>『엔비디아 DNA』, 42쪽.<br><br><br><br><br>하루마다 달라지는 시대<br><br><br><br>요즘의 시대는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하루만에 모든 게 달라지는 시대 같다. 이란과 미국의 전쟁, 코스피의 급격한 급등, 생성형 AI들이 점점 빠르게 장악하는 인간의 영역, 현대차의 아틀라스 등등. 하루만 관심을 갖지 않으면, 나만 빼고 전부 변한 것 같다는 착각이 들게끔 만든다.<br>이러한 상황 속에서 저자는 엔비디아, 그리고 젠슨 황이 보고 있는 더 먼 미래를 독자들에게 살며시 보여준다. 이 지점은 상당히 흥미롭다. 앞서 언급했듯이, 엔비디아는 숱한 격변을 성공적으로 넘어온 기업이고, 이 변화의 최전선에서 진두지휘하고 있기 때문이다.<br><br>"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GPU가 아니라 데이터센터 그 자체다."<br>(…)<br>이제 엔비디아는 더 이상 GPU 회사가 아니다. 그들은 시스템을 설계하는 회사다. 그리고 그 시스템은 단순한 하드웨어 묶음이 아니다. 지식이 흐르고, 연산이 축적되며, 시간이 압축되는 구조다. 칩을 넘어 시스템으로, 시스템을 넘어 공장으로. 엔비디아는 이렇게 스스로를 재정의해왔다.<br>『엔비디아 DNA』, 108쪽, 123쪽.<br><br>이 모든 변화가 모이는 지점이 바로 AI Factory 개념이다. 젠슨은 데이터센터를 더 이상 IT 인프라가 아니라, 지능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정의했다. AI Factory는 GPU, 네트워크, 스토리지, 전력, 냉각, 소프트웨어가 하나의 생산라인처럼 결합된 구조이며, 여기서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AI 토큰', 지능의 단위다.<br><br>『엔비디아 DNA』, 301쪽.<br><br><br><br>그래픽카드, GPU, 시스템, 피지컬 AI, AI 팩토리.<br>서두에 언급했듯이, 누군가는 허풍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 역시 허풍까지는 아니어도, 그게 과연 무엇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그래서였는지, 이 책을 읽는 내내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미래를 꿈꾸고 실현시키는 엔비디아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커졌다.<br><br>동시에 이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에 대한 경각심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이를테면, 이런 대목이다.<br><br>엔비디아가 B Player를 허용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AI 시대에는 평균이 곧 한계이기 때문이다.<br>『엔비디아 DNA』, 74쪽.<br>AI 시대는 이미 열렸다. 엔비디아에선 평균적인 능력을 가진 B player를 채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모든 기업이 더 나은 직원을 뽑으려고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AI 시대에 오면서 평범의 기준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이전 시대보다 더 높은 기준을 요구 받고, 그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지 못할 것이라는 자극을 주는 대목이었다.<br><br>이러한 변화를 예견했기에 젠슨 황은 오래 전부터 이런 말을 해온 듯하다.<br><br>"나는 여러분이 충분히 고통받기를 바란다."<br>『엔비디아 DNA』, 29쪽.<br><br>끊임없이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고, 거기서 생기는 고통을 극복하는 것만이 새로운 시대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A Player가 될 길인지도 모르겠다.<br>성장하는 기업을 창업하고 싶거나, 엔비디아, 젠슨 황, 또는 다가올 AI가 주도하는 새로운 미래가 궁금하다면 『엔비디아 DNA』가 상세한 해설서가 되어줄 것이다.<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37/55/cover150/k58213533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375518</link></image></item><item><author>고전파</author><category>행복한 책읽기</category><title>간첩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 [우리가 몰랐던 간첩 잡는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9496129/17128506</link><pubDate>Tue, 03 Mar 2026 21: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9496129/1712850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72930305&TPaperId=1712850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857/91/coveroff/k97293030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72930305&TPaperId=1712850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우리가 몰랐던 간첩 잡는 이야기</a><br/>하동환 지음 / 에스엠디자인 / 2024년 04월<br/></td></tr></table><br/><br>전직 국정원 대공수사 요원 출신인 하동환의 『우리가 몰랐던 간첩 잡는 이야기』를 읽었다.2024년 1월 1일부로, 국정원은 그동안 해오던 대공수사 업무를 경찰로 이관했다. 『우리가 몰랐던 간첩 잡는 이야기』는 소를 잃은 농부가 외양간을 고치는 마음으로 쓴 책처럼 읽힌다.<br><br>『우리가 몰랐던 간첩 잡는 이야기』에 실린 간첩 수사의 역사는 흥미롭다.1970~1990년대까지는 "연고선" 간첩들이 활동했다고 한다. 주로 한국전쟁 당시 헤어진 가족의 혈연을 이용한 공작 방식이다. 이때 이후로 완전한 북한 출신인 "새세대 공작원"들이 등장했으며, 놀랍게도 근래까지 "자생 간첩"이 활동하다가 검거되기도 했다. 『우리가 몰랐던 간첩 잡는 이야기』에서는 "남조선노동당 사건", "민혁당 사건", "일심회", "RO" 등 굵직한 사건들을 아우른다.<br>특히 내 이목을 끈 부분은, 요즘 북한의 문화교류국은 "유튜브" 댓글을 이용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또한 "스테가노그라피"라는 암호 생성기, 해독기를 사용한다는 점 역시 인상적이었다. "유튜브" 댓글 부분을 읽으면서 예전엔 "네이버 지식인"을 통해서 익명의 사람들이 특정한 좌표를 주고 받는다고 의혹을 제기한 글을 본 적이 있었는데, 다시 찾아보니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드보크 좌표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br><br>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br><br>국정원의 실체에 대해선 잘 몰라도 원훈만큼은 유명하다. (현재의 원훈은 이재명 정부에 들어서 "정보는 국력이다"로 교체되었다고 한다.) 이 원훈처럼,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끊임없이 북한의 대남공작과 치열하게 싸움을 전개해온 국정원은 국회의원들의 입법에 의해 수사권을 잃었다. 여러모로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주는 문제다. 저자가 주장하듯이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를 입법시킨 다수당 의원들 중 많은 수가 국가보안법에 저촉된 이력이 있고,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에서 상당한 고초를 치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가 몰랐던 간첩 잡는 이야기』, 210쪽)<br>하지만, 저자가 언급했다시피, 국정원은 FBI의 수사권과 CIA의 정보력을 동시에 지닌 막강한 권력기구이기도 하다. 중정이나 안기부에 대해 말할 때,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 "남자를 여자로 바꾸는 것만 빼고는 뭐든지 가능하다."와 같은 묘사가 나오는 건 그런 면모를 더욱 부각시킨다. 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된 강압 수사의 결과물들이 축적되어 대공 수사권 폐지에 한몫했음도 부정할 순 없다.<br>실질적으로 통진당 사건, 이태원 참사 시위 지시문 등을 살펴볼 때, 북한은 여전히 우리나라에 실제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 나 역시 저자의 의견대로 이러한 북한의 야욕을 저지하기 위해선 국정원이 대공 수사를 맡아야 한다고 본다. 다만, 앞서 언급한 강압 수사나, 저자가 책에서 고백했듯이 잘못된 정보를 재판에 사용했던 문제 등은 국정원의 자승자박이었다. 따라서 이 수사권을 국정원에게 돌려주되, 무소불위의 권한을 주기보다는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방안을 정치권이 마련해주었으면 하고 바란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857/91/cover150/k97293030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8579126</link></image></item><item><author>고전파</author><category>행복한 책읽기</category><title>먼나라 이웃나라, 가깝지만 또 먼 나라, 일본 - [지극히 사적인 일본 - 전 아사히신문 기자가 솔직하게 말하는 요즘 일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9496129/17115964</link><pubDate>Thu, 26 Feb 2026 19: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9496129/1711596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22039018&TPaperId=1711596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484/94/coveroff/k22203901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22039018&TPaperId=1711596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지극히 사적인 일본 - 전 아사히신문 기자가 솔직하게 말하는 요즘 일본</a><br/>나리카와 아야 지음 / 틈새책방 / 2025년 05월<br/></td></tr></table><br/>먼나라 이웃나라, 가깝지만 또 먼 나라, 일본<br><br>『지극히 사적인 일본』의 저자 나리카와 아야는 오사카 태생이다. &lt;아사히신문&gt;에서 기자로 근무하면서 일본 곳곳으로 파견을 나가서 근무하면서 일본의 여러 모습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에 두 차례 유학을 와 한국 문화에도 친숙한 편이다. 근래에는 한국의 방송에 출연하는 등 한국와 일본 양국을 오가면서 한국에는 일본을, 일본에는 한국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br>『지극히 사적인 일본』은 틈새책방이라는 곳에서 출간되었는데, "지극히 사적인" 시리즈를 밀고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 방송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이탈리아의 알베르토, 러시아의 일리야, 영국의 피터 번트가 각각 『지극히 사적인 이탈리아』,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 『지극히 사적인 영국』을 집필했다.<br><br>『지극히 사적인 일본』는 전체적으로 통통 튀는 문체로 구성되어 있다. 통번역도 할 수 있는 저자의 역량 덕분에, 번역체 느낌보다는 저자 고유의 언어가 살아 있는 것 같다. 『지극히 사적인 일본』을 읽는 내내, 한국말을 정말 잘하는 일본인 친구가 있다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br>『지극히 사적인 일본』은 전반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문화를 비교한다. 당연하게도 그 무엇이 우월하고 열등하다는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종종 인터넷에서 한국은 "서일본", 일본은 "동조선"이라고 부를 때가 있다. 대체로 서로의 안 좋은 사회적 문화나 특성에서 공통점을 발견했을 때 사용한다. 그만큼 한국과 일본은 비슷한 점이 많은 이웃나라다. 북한이나 중국, 대만과 함께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이웃이기도 하며, 안 좋은 역사로도 묶여 있는 사이기도 하다.<br>하지만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비슷하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다르다는 점을 새롭게 배울 수 있었다. 일본에 관심이 많아서 대체로 알고 있는 이야기도 많았지만, 이런 지점은 정말로 양쪽 문화를 깊숙이 체화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알려줄 수 없는 내용 같았다. 호칭의 문제는 한국 사람도 헷갈리는 경우가 많은데, 서로 다른 문화권이라면 더 헷갈리기 마련이다.<br><br>한국어를 배우는 일본 사람 중에 '씨'와 '상(さん)'을 같다고 생각해서 쓰는 사람이 많은데 씨보다 상이 훨씬 쓸 수 있는 범위가 넓다. 상은 총리에게도, 사장님에게도, 후배에게도 쓸 수 있다. 한국에서 직원이 김 사장님을 "김 씨"라고 부르면 실례가 되겠지만, 일본에서는 직원이 다나카 사장님을 "다나카상"이라고 불러도 괜찮다.<br>『지극히 사적인 일본』, 392쪽<br>또한 일본에는 "2세대 대출"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한국에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생소한 개념이라 신기했다.<br><br>친척 중에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큰아버지 집 벽에 금이 갔다. 단독 주택이었는데 지진 몇 년 후에 '2세대 대출'을 받아 다시 집을 지었다. 큰아버지가 정년퇴직 때까지 갚고 그다음에 이어서 장남이 갚는 대출이다.<br>『지극히 사적인 일본』, 313쪽<br><br>"유도리"라는 말이 양국에서 가지는 뉘앙스 차이도 재밌었다. 유도리는 한국어에 남아 있는 일본어의 잔재라고 한다. 한국에서 "유도리 있게 하자.", "저 사람은 유도리가 없다."라고 하면, "융통성 있게 하자.", "저 사람은 융통성이 없고 꽉 막혔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물론, 이는 일본어의 원래 의미인 "여유"와도 의미는 대략적으로 통하긴 한다. "여유 있게 일을 하자.", "저 사람은 여유가 없다." 정도로 표현해도 말의 뉘앙스는 알아들을 수 있다. 정확한 의미는 "융통성"이 맞다.<br><br>한국에서는 '유도리'를 '융통성'이라는 뜻으로 사용하는데, 원래 '여유'를 뜻하는 일본어 발음은 '유토리'에 가깝다. 일본에서는 1987년부터 2004년에 태어난 세대를 '유토리 세대'라고 부른다. (…) 유토리(여유)가 있는 학교 생활을 보낼 수 있게 한 것이다.<br>『지극히 사적인 일본』, 303쪽<br><br>일본만의 고유한 놀이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는데, 술게임이다. '기쿠노하나'라는 놀이라고 하는데, 술자리 인원에 맞게 술잔을 뒤집어 놓는다. 그 중 하나에는 '국화'를 숨겨놓는다. (상상해보자면 그러고나서 아마도 야바위 게임을 하듯이 잔을 마구 섞지 않을까?) 그때부터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잔을 뒤집는다. 국화가 있는 잔을 뒤집은 사람이 그때까지 뒤집어진 잔만큼의 술을 마셔야 한다고 한다. 저자의 말처럼 정말로 "어떻게든 마시게 하겠다는 의지가 충만한 음주문화"다. (77쪽)<br><br>「여성 천황의 가능성」이라는 꼭지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일본에선 역대 8명의 여성 천황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천황의 계보는 과거로 갈수록 정확한 편은 아니긴 하다.) 그러나 메이지 유신에 의해 공포된 '일본국 헌법', 그리고 미군정 시절 반포된 '일본국 헌법'에 의거한 '황실 전범'에서는 남성의 세습만을 인정한다.<br>지금 나루히토 천황에게는 딸밖에 없어서 만약 나루히토 천황이 자리에서 물러나면, 동생인 왕세제가 물려 받거나, 왕세제도 고령인 점을 감안하여, 승계 2순위인 왕세제의 아들이 물려받을 수도 있다고 한다.<br>이 책이 쓰여진 건 2025년 여름인데, 그 이후 2025년 10월에 사상 처음으로 여성인 '다카이치 사나에'가 취임했다. 게다가 2026년 2월에는 의회를 해산하고 개헌 의석수까지 확보할 만큼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이번에 새로이 취임하면서 '황실기본법'도 고치겠다고 하는데, 근대화 이후 사상 첫 여성 총황이 탄생하게 될지도 귀추가 주목된다. '평화 헌법'이 얼만큼 고쳐질지를 예의주시하면서 같이 관심을 갖고 챙겨볼 만한 사안인 것 같다.<br><br>「외면하는 가해의 역사」 꼭지도 흥미로웠다. 우리는 피해자의 입장이어서 더 흥미로웠는지도 모르겠다. 『지극히 사적인 일본』은 전체적으로 중립적인 관점에서 쓰여졌다. 어느 한 쪽을 일방적으로 편들지도 않고, 나리카와 아야 개인이 한일 양쪽에서 불편한 점은 솔직하게 말하고, 좋았던 점 역시 솔직하게 적었다. 하지만 회색 지대에 선다는 것은 언제나 양쪽 모두에게서 공격을 받을 여지가 있다. '적이 없다면 친구도 없다'는 말을 생각해본다면, 중립의 어려움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br>나리카와 아야는 일본에서 개봉한 한국 뮤지컬 영화 &lt;영웅&gt;의 팜플렛에 글을 기고했다고 한다. 이때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이라는 문구를 편집자가 수정을 요청했다. (363쪽) 저자의 말대로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건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한 가해의 역사를 불편하게 여기고 숨기려는 모습이 일부 일본인들에게 보일 때마다 독일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다.<br><br>특히 (한국의) 연예인들은 10대부터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 대학에 안 가는데, 한국은 연예인도 대부분 대졸인 상황을 보면 일본인 입장에서는 신기한 일이다. 확실히 한국이 일본보다 학력 사회다.<br>『지극히 사적인 일본』, 322쪽<br>이 부분에는 사족을 달고 싶었다. 이 해석에서는 중요한 변수 하나를 빼먹은 것 같다. 바로 군대다. 물론 한국이 일본보다 대학 진학율이 높고, 연예인들도 대학에 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요새는 10대 때부터 활동하는 아이돌 가수나 배우들은 대학에 가지 않는 경우도 많아졌다. 그렇지만, 이건 여자의 경우다. 남자 연예인의 경우에는 크게 학업에 뜻이 없더라도 대부분 대학에 진학한다.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으면 한창 활동해야 할 시기에 영장이 날라오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징병제에 낯선 저자가 간과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다.<br><br><br>『지극히 사적인 일본』은 한국에 사는 일본인 친구와 대화를 하는 기분이었다. 밤에 침대에 누워서 전화를 하거나, 아니면 카페에서, 이자카야에서 만나서 일본에 대해서, 한국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죽 듣는 기분이었다. '먼나라 이웃나라'라는 호칭이 딱 맞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일상적이고 가볍게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484/94/cover150/k22203901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4849406</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