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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 문체부 제작지원 선정작
복일경 지음 / 세종마루 / 2025년 11월
평점 :
한 가족의 불행의 시작은 과연 어디서부터일까.
사업 문제로 방문한 말레이시아에서 현지 가이드와의 마찰로 결국 목숨을 잃은 ‘윤주’의 남편 ‘재훈’. 남편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그들에게 닥친건 삶의 문제였다. 사업으로 인한 ‘대출’과 남겨진 ‘카드 빚’, 앞으로 들어가야 할 무수히 많은 ‘돈’ 문제들.
사회에서 ‘싱글맘’으로 그것도 ‘워킹맘’으로 살아가기는 너무나도 어렵다. 그런 와중에 정말 큰 맘 먹고 찾아간 ‘친정엄마’는 윤주의 도움 요청을 매몰차게 거절한다. 결국 딸 ‘예린’이 폐렴으로 입원하게 되고, 절묘한 타이밍에 찾아온 ‘시어머니’의 전화로 그들은 같이 살게 된다.
근 10년의 세월을 시어머니의 희생과 보살핌 위에 살아오면서 윤주와 예린이의 삶은 평안을 찾아가는 듯 보였으나, 계속해서 보이던 시어머니의 이상행동으로 인해 결국 찾게 된 병원에서 ‘중증 치매’ 판정을 받게 되면서 그들 가정은 급속도로 피폐해져가기 시작한다.
곧 고등학생을 앞둔 예린이는 그런 할머니를 보살피는 역할을 하게 되면서 몸에 밴 냄새들과 불행의 서사들로 인해 친구들도 잃고 힘겨운 나날을 살아간다. 그러나 한 집안의 가장이 된 윤주의 삶도 녹록치는 않다. 결국, 시어머니를 요양원에 입소시키지만, 채 두 달이 지나기도 전에 퇴원조치를 취하게 되고, 다시 급속도로 그들의 삶은 엉망이 되어가기 시작한다.
뒤늦게 그들 가정을 찾아온 친정엄마는 다시 그들의 삶을 안정되게 만들어 주지만, 그 또한 결국 또 다른 파멸이 찾아오기 전의 유예였을 뿐이었다.
과연, 누가 그들을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몬 것일까.
그들 가정의 불행의 시작은 결국 어디서부터 일까.
처음에 이 소설의 도입부에서는 윤주가 두 어머니를 살해한 줄 알았다. 왜냐하면, 마치 ‘기억’이 삭제된 것 같은 뉘앙스와 그들을 잊어버리고 싶어한 것 같은 묘사가 있었기 때문이였다. 물론, 책을 읽다가 그러한 분위기는 아니였기에 바로 삭제한 가설이지만.
아마 현존하는 질병 중에서 가장 슬픈 병은 ‘치매’가 아닐까. 치매를 단순히 기억의 퇴보로만 생각하면 안된다. 초기의 치매 수준에서는 그저 건망증 같아 보이기 십상이다. 가스렌지 위에 불을 켜놓은 걸 잊는 다든가, 날짜를 헷갈린 다든가의 수준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중증 수준으로 갈수록 사람이 이상하다. 일단, 안광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흐리멍텅 하다든가, 아니면 안광이 이상하든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수준이거나 알아보더라도 극히 일부분일 수 있다. 책에서 묘사된 것처럼 망상에 사로잡힌 듯한 모습 또한 보이기 십상이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치매 환자를 요양원이나 요양병원 같은 곳에 모시려고 한다. 물론, 지금 세태에서는 그것이 맞는 실정이라고 생각한다. 불과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부모님을 모시는 것은 엄청난 불효라고 생각하는 세대였으나 요즘은 실정이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것은 맞다. 특히나, 치매 환자들의 보호자의 경우에는 자신의 부모님이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듯한 행보를 보인다. 노인의 경우에는 ‘피부’의 질감 또한 일반 성인과는 다르다. 쉽게 밀리고, 상처나고, 멍이 잘 든다. 일반적으로 주사를 맞거나 링거를 맞는 행위를 할 때, 보통의 사람들도 멍이 들기 쉬운데 노인의 경우에는 피멍이나 울혈이 잡히기 쉽다. 하지만, 그러한 것을 생각지 못하고 무조건 ‘학대’나 ‘폭력’의 경우로 몰고 가는 경우는 제대로된 CCTV가 존재하지 않는 한 입증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아무튼, 이 책은 한 가족의 끊임없는 불행들을 보여준다. 아버지의 죽음, 남편의 죽음, 시어머니의 치매, 친정엄마의 위암, 그리고 두 어머니의 실종과 경찰의 전화까지. 그러나 그러한 불행의 연속에서 삶을 지속해오고 지탱해온 윤주와 그의 딸 예린에게 감탄과 찬사를.
특히나, 사춘기 소녀였던 예린이 중증 치매의 할머니를 보살피기란 엄청나게 어려웠을 텐데도 책의 결말까지 자신의 엄마와 할머니를 보살핀 그녀의 희생엔 감탄 밖에는 표할 길이 없다.
한 가정이 평탄하게 흘러가기 위해서는 그 속에서 항상 ‘엄마’의 희생이 깔려있다. 청소는 청소기가, 빨래는 세탁기가, 밥은 밥솥이 하더라도 그러한 것들이 자동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항상 깨끗한 옷, 잘 차려진 밥상, 정리 정돈 된 집. 이 모든 것들이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항상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결국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단지, 마음을 나눌 누군가가 곁에 있어 주길 바라는 것일지도.
📖 언제나 곁에서 묵묵히 삶을 지탱해 주고, 기꺼이 고통의 일부가 되어주던 사람. 힘겨운 시간을 함께 걸어준 유일한 존재였다._91p
📖 자신이 진정으로 바랐던 것은 화려한 성공이나 독립이 아니라, 단지 엄마가 곁에 있어 주는 것이었다는 걸._188p
📖 가족 사이의 돌봄은 때론 한 사람의 삶을 깎아내는 일이 되기도 했다. 어쩌면 두 어머니가 정말로 바랐던 건, 어쩌면 그 끝없는 굴레를 끊어내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_285p
📖 돌봄이란 이름으로 자신을 잃지 않는 법과, 책임과 존재 사이에서 자신을 놓치지 않는 법을. 자신을 살피는 일은 결코 이기심이 아니었다._28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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