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아내
K.L. 슬레이터 지음, 박지선 옮김 / 반타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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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아내 - K.L. 슬레이터

p.46 우리 부부는 대체로 모든 일이 제때 진행되고 예측 불가한 일이 거의 없는, 조용하고 질서있는 삶을 살고 있었다.
적어도 몇 시간 뒤, 새벽 2시 직전에 칼이 나를 흔들어 깨우기 전까지는 그랬다. 잠에서 깨 침실에 경광등의 푸른빛이 가득한 걸 보자마자 내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p.73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그 애의 말이 분명히 들렸다.
“거기…가지…마세요.”

p.128 나는 무릎 위에 떨어진 작고 구겨진 검은색과 금색 무늬 스카프를 내려다보았다.
경찰이 계속 찾고 있는 스카프와 똑같았다.

p.230 정신이 번쩍 들며 내 아들의 본모습이 어떤지 퍼뜩 깨달았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순진했는지 알게 된 지금, 주먹으로 배를 얻어맞은 것처럼 아팠다.
정말 파커가 스카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p.247 "제게 선택권이 있는 것 같지는 않군요.”
니콜라가 침울하게 말했다.

p.301 파커가 나와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을 때 왜 그렇게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는지 알아내야 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아들을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사고로 모든 게 달라지기 전에 파커가 의지하려고 했던 사람은 여전히 나였다.
아내나 아빠가 아니었다. 처가 사람들도 아니었다.
내 아들이 나를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p.478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고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우리가 함께 가야 할 길이 멀고 치유해야 할 상처가 가득하며 삶은 불확실한 일들로 가득할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다. 어떻게든 우리는 새로운 삶을 함께 일궈 나갈 것이고 살아남을 것이다.

[남편과 아내]는 아들 부부가 디너 파티에 참석한 뒤 집으로 돌아오던 길,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시작된다. 파커의 어머니 니콜라는 손자를 돌보기 위해 필요한 짐을 챙기러 아들 부부의 집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우연히 스카프 하나를 발견한다.
문제는 그 스카프가 이미 알려진 살인 사건의 증거물과 같다는 사실을 니콜라가 알아차리면서부터다.
이 책은 일어난 사건의 본질보다도, 그 사건을 둘러싼 말과 침묵, 그리고 서로의 시선이 엇갈리는 순간들에 집중한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묶인 두 사람은 서로의 행동과 습관을 통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믿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알고 있다’는 상대에 대한 확신이 얼마나 허술한지 드러난다.
남편과 아내라는 이름 아래 쌓아온 시간과 신뢰가 얼마나 쉽게 방심으로 변하는지도 보여준다.

부부 관계, 가족이라는 설정은 이 불안을 더욱 날카롭게 만든다. 사랑과 신뢰, 보호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감정들이 언제든 통제와 의심으로 바뀔 수 있음을 이 소설은 조용히 드러낸다.
상대를 위해 내린 선택이 정말 상대를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변명은 아니었는지 묻게 된다.

[남편과 아내]는 반전이 많은 심리 스릴러지만, 끝내 남는 것은 사건의 진실보다 관계에 대한 질문이다.
관계를 둘러싼 반전이 끝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말, 가장 가까운 사람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남편과아내 #K.L.슬레이터 #반타 #오팬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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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서울에서는 무슨 일이
정명섭 외 지음 / 한끼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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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서울에서는 무슨 일이-

1️⃣사라진 소년 - 정명섭
p.23 "진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어. 다 같이 돌아왔는데 왜 걔만 돌아오지 못했는지, 그리고 진짜 이 잡듯이 뒤졌는데 왜 흔적도 못 찾았는지도 말이야."
"그래서 온갖 소문이 돌았죠?"

p.27 "불가능한 것을 제외하고 나서 남는 것이 아무리 믿기 힘들다 해도 그것이 진실이다."

2️⃣선량은 왜? - 최하나
p.108 "그럼 저 이렇게 불안해하면서, 떨면서 있어야 해요? 어떻게 살아요… 어떻게 살라고요…“

p.134 "그럼 내 새끼를 죽였는데 살인마지."
-
"자식을 잃었는데 아무런 죄도 없다뇨!"
"그게 법이 그래요. 선생님, 법을 만드는 데다 따지세요. 반려견 은 사유재산으로 봅니다. 생명으로 치는 게 아니라요. 그래서 저희도 어쩔 수 없어요.”
(제발 법개정좀…)

3️⃣천사는 마로니에 공원에서 죽는다-김아직
p.166 "핵심을 못 짚으시네요, 형사님. 서로에게 원하는 바가 달랐던 거죠.-“

p.231 그 시절의 순이도, 지금의 한 형사도, 세상을 떠난 샹지도, 모두 꿈과 미래를 찾아 서울로 올라온 젊은 노동자들이었다.

4️⃣(신촌에서) 사라진 여인 - 콜린 마샬


이 책은 그 시절 서울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서로 다른 인물들의 시선으로 엮어낸 기록이다.
돈 앞에서 가족이 가해자가 되는 선택을 한 이기심,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다수에 맞서는 여성의 선택, 단순 사고로 처리될 뻔한 죽음에 의문을 제기하는 여고생의 집요함, 그리고 두 번의 만남 이후 사라진 여자를 찾는 미국인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각기 다른 사건과 인물들은 ‘그날’을 통과한 사람들의 상처와 침묵을 드러내며, 하나의 답 대신 끝나지 않은 질문을 남긴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크게 와닿았던 이야기는
〈선량은 왜?〉였다. 남편과의 이혼 후, 선량은 반려견 홍시와 함께 지낼 공간을 스스로 선택한다. 하지만 이사 시작부터 택시 기사의 말은 날카롭다. 재개발이 들어가는 동네 아니냐, 젊은 사람이 돈을 많이 벌었나 보다 같은 말들. 그 말들은 호의처럼 들리지만, 선량의 선택을 쉽게 단정 짓는다.

그러나 선량은 재개발에도, 시세에도 관심이 없다. 그저 도시의 아파트에서 지친 삶을 벗어나 사람 사는 냄새가 남아 있는 동네를 택했을 뿐이다. 선량의 소원은 정말 별것 아니었다.
반려견 홍시와 함께, 조그만 자신의 공간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것.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 소박한 바람조차 주변은 가만두지 않는다.
선량의 공간은 조금씩 침범당하고, 결국 유일한 가족이었던 홍시마저 잃게 된다. 그 장면에서 마음이 크게 내려앉았다. 선량에게 홍시는 단순히 반려견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지켜야 했던 삶의 이유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공간을 빼앗긴 것도 모자라, 유일한 가족까지 잃은 순간 선량은 이성의 끈을 놓게 된다. 그리고 그 선택 앞에서 작가님이 말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된다.
✔️선량은 왜?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또 하나,
✔️‘선량’이라는 것은 왜 이렇게 쉽게 짓밟히는 것인지.
이 단편의 제목은 그래서 이중적으로 읽힌다. 한 사람의 행동에 대한 질문이자, 선량함이라는 가치 자체에 던지는 물음처럼 느껴진다.

[그날, 서울에서는 무슨 일이-] 제목 끝에 붙은 ‘-’는 이 책의 정체성처럼 느껴졌다. 이야기가 끝났다는 표시가 아니라, 아직 말을 다 하지 못했고 끝낼 수 없다는 뜻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결국 완결을 거부하고 마무리 대신 질문을 남기고, 우리에게 그날을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든다.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그날서울에서는무슨일이 #정명섭 #최하나 #김아직 #콜린마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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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게임
마야 유타카 지음, 김은모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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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게임 - 마야 유타카

p.17 "꼭,꼭,범인 잡아야 해.”

p.34 "난 인간이 아니야."
"하지만 외계인도 아니잖아. 아까 그렇게 말했으면서“
그러자 스즈키는 비로소 대걸레질을 멈추더니 얼굴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와서 말했다.
"난 신이야."
"신이라고?"
"그래." 스즈키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p.52 "어떻게." 그렇게 말하다가 그만두었다. 신이니까 아는 게 당연하다. 어떻게 아느냐고 물어도 결코 가르쳐주지 않으리라.

p.102 “•••저기, 신이 있다고 생각해?" 나는 겨우 얼굴을 들고 중얼거렸다.

p.194 신한테 보답을 받다니, 그런 사람은 나뿐이리라.
모두 여기에 신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테니까.

p.206 신이 가르쳐다고 해도 믿지 않으리라. 만약 엄마가 웃어넘겼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다. (스포방지) 스즈키는 신이니까.

p.233 신은 진실을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차라리 추리인 편이 낫다. 추리라면 뒤집을 가능성이 남아 있으니까. 하지만 진실은•••• 어떻게 흔들 방법이 없다. 신이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의 진실이 화살로 변해 내 가슴을 꿰뚫었다.

p.234 신과 헤어지는 것이 슬퍼서가 아니다.
신과 만난 것이 후회스러웠기 때문이다.
나도 전부 다 잊고 싶었다.

p.246 다만 딱 하나 확실한 것이 있다. 이것은 신이 내린 천벌의 결과이고, 신은 틀리지 않는다는 사실.
아무리 믿기지 않더라도 오직 이것만이 진실이다.
오직 이것만이••••••.

🐈
요시오는 열 살, 탐정단의 일원이다.
화장실 청소를 하던 중 말이 없는 전학생 스즈키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대화였지만, 스즈키는 자신이 신이며 과거와 현재, 나아가 미래까지 모두 알고 있다고 말한다. 요시오는 그 말을 그저 허풍 또는 놀이 정도로 여긴다.

하지만 요시오가 사는 마을에서는 고양이 학살 사건이 계속 되고 있었고, 아직 범인은 잡히지 않은 상태였다. 장난처럼 범인이 누구냐고 묻자, 스즈키는 망설임 없이 이름을 말한다.

진짜 신인가?

탐정단의 일원인 요시오에게 중요한 것은 ‘답’이 아니라 ‘증거’였다. 그러던 중, 탐정단의 본부인 우물에서 요시오의 가장 친한 친구 히데키가 시체로 발견된다.

📌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신이 왜 지루하다고 말하는지, 요시오는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신과의 대화를 거듭하며, 요시오는 알게 된다. 자신이 알게 된 몇 개의 진실조차 버거운데,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는 존재는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요시오에게 진실은 감당해야 할 무게였고, 신에게 지식은 끝나지 않는 형벌에 가까웠다.

📌 신과 탐정단의 가장 큰 차이는 태도에 있다.
신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것을 설명할 필요도, 설명해야 할 이유도 없다.
반면 탐정단은 다르다. 단순히 정답을 맞히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어떻게 그 일이 가능했는지를 끝까지 밝혀내야 한다. 탐정단에게 중요한 것은 ‘답’이 아니라 ‘과정’이다. (요시오 본인한테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범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독자를 헷갈리게 하는 장치를 쓰지 않는다. 오히려 요시오와 신의 대화를 통해, 비교적 이른 시점에 이미 ‘답’을 알게 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왜 그런 짓을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에 집중해야 할 순간, 이야기의 리듬은 의도적으로 흐트러진다. 그 틈을 파고들어 이 소설은 집중을 무너뜨리고,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놀라운 반전을 선사한다.
(나 역시도 마지막에 어..? 하면서 반전에 놀랐던 것 같다.)

*본 도서는 모도님의(@knitting79books) 서평단 자격으로 내친구의서재(@mytomobook)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신게임 #내친구의서재 #마야유타카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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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낙원에서 만나자 (10만 부 기념 윈터 에디션) - 이 계절을 함께 건너는 당신에게
하태완 지음 / 북로망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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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낙원에서 만나자 - 하태완
❄️ 10만부 기념 윈터 에디션 ❄️

그 자리에서 글을 써줬으면 좋겠다고. 나는 그 말의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가며 속에 숨은 알맹이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곳이 되어달라는 것. 약점을 들키고 몰래 묻어도 괜찮은 곳으로 있어 달라는 것. 더 나아가 어떻게든 함께 살아보자는 것,

사는 게 여간 쉽지 않고 소중한 것들이 멀어지는 기분에 초조해도, 불안마저 삶의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용기를 품고 살기를.

금전적 가난을 반기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나 또한 다를 바 없지만, 슬픔과 어둠에 있어서만큼은 찢어지게 가난해지고 싶다. 호주머니를 아무리 헤집어도 작은 슬픔 하나 발견되지 않는 삶이고 싶다.

빛이 부서지는 모서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습기 어린 창문에 기대어 앉은 오후. 사소한 장면이 유난히 마음에 오래 앉는 날. 살아간다는 건 거창한 이유보다는 그런 장면을 오래 지켜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아무렴 좋다. 그대로 괜찮다. 내일 당장 풀썩 주저앉게 되더라도, 나는 오늘에 퍽 열심히 임한 나를 사랑하고 싶다. 누군가에게는 버려진 것들이 내게는 큰 성공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하루를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되, 삶 전체를 두고 본다면 흐르는 대로. 그러면 그런대로.

삶이 나를 밀어낼 때마다 생각한다. 언젠가는 사라질지 몰라도, 지금 이 순간은 분명히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고. 더 이상 잃어버릴것을 걱정하며 멈춰 있지는 말자고. 이별이 두려워서 조심스레 브레이크를 밟지 말고, 마음껏 사랑하고 아파하고 그리워하며 살아보자고.
그러니 너무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 조금은 할퀴어져도 된다. 삶이란 결국 내가 시작해서 나만이 끝낼 수 있기에. 단지 내가 운전하는 택시처럼 타고 내리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오가는 손님에 아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자. 내가 그렇듯 그들도 나름의 여정에 바삐 간 것일 테니.

실패하고, 넘어지고, 이기적이고, 멈춰있는 건 정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패한 만큼 도전하고 넘어진 만큼 일어서고 이기적이었던 것만큼 배려하고 멈춰있었던 만큼 나아가면 된다. 내가 나를 아주 놓지 않으면 기회는 언제라도 온다. 내가 나를 꽉 붙들고 있으면, 도망도 포기도 휴식과 깨달음이 된다.

🌲

하태완 작가님의 책을 읽으며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위로와 함께 공감을 얻고, 잠시나마 자신의 삶에서 숨을 돌릴 시간을 선물받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태완 작가님의 문장은 무언가를 강하게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이미 지쳐 있는 마음 옆에 조용히 앉아, 괜찮다는 말조차 부담스러울까 봐 그저 함께 있어준다.

책에서 말하는 ‘낙원’은 특별한 장소가 아니다.
완벽해진 뒤에 도착하는 목적지도 아니고, 모든 것이 해결된 후에야 허락되는 보상도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의 낙원은 상처를 가진 채로도 머물 수 있는 공간에 가깝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면서 가깝게 다가온다.

우리는 간혹 무언가를 시도하거나 도전할 때, 그와 관련된 앞선 사람들의 선례를 찾아보곤 한다. 도전이라는 용기 앞에서,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완화시키기 위해서다.
하태완 작가님의 책은 내가 가진 상처와 그 이후에 맞닥뜨리게 될 감정들까지도 본인이 먼저 지나온 길 위에 남겨둔 흔적처럼
충분히 괜찮다고, 그 길을 건너도 된다고 말해주는 책처럼 느껴졌다.

[우리의 낙원에서 만나자]는 당장 삶을 바꿔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를 조금 느슨하게, 조금 늦춰준다.
애써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 무너지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이 아니라 무너져도 괜찮다고, 별거 아니라고 말해주는 책이다.
강함과 무너지지 않음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어쩌면 이 책이 말하는 ‘낙원’이란 다시 강해지는 곳이 아니라 잠시 약해져도 되고, 얼마든지 풀어진 모습을 보여줘도 되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 윈터 에디션 단독 수록! ☃️
하태완 작가님의 미발표 원고 13편이 실린 겨울 소품집 中

왜 청춘은 영원하지 못하는지.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우리의낙원에서만나자 #하태완 #에세이 #베스트셀러 #에세이추천 #책추천 #베스트셀러추천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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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럽혀진 성지 순례에 대하여
세스지 지음, 전선영 옮김 / 반타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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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럽혀진 성지 순례에 대하여 - 세스지

p.81 "난 중립파니까. 그나저나 자넨 왜 초현실적인 존재를 믿지 않나?"
"짜증 나잖아요. 설명할 수 없는 것을 그런 존재 탓으로 돌리고 안심하다니. 전 용납이 안 됩니다."
"내 눈에는 부정하는 거 자체가 목적처럼 보이는데. 게다가 초현실적인 걸 부정하는거치고는 그런 걸 날조해서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그건 뭐, 비즈니스니까요.”
"…그렇군."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무섭다’가 아니라 불편함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책이 너무 무서웠다🫢)
귀신이나 저주보다,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먼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더럽혀진 성지 순례에 대하여]는 성지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지만, 그 출발점에는 믿음도, 기도도 없다.
조회 수와 화제성, 이야기로서의 재미가 우선이며 괴담은 만들어지고, 장소는 소비된다. 그 과정은 너무 익숙해서 아무렇지 않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하지만 공포물을 종종 보는 나는 어어.. 이러면 안되는데 생각만 무한반복 ♾️)

그렇기에 어쩌면 예견된 이 소설의 공포는 서서히 시작된다.
갑작스러운 비명이나 충격적인 장면이 아니라, 가볍게 던진 말, 대충 덧붙인 설명, ‘설마 진짜겠어’라는 태도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되돌릴 수 없는 지점에 다다른다.

이쯤 되면 이야기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끝까지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중요한 건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다루었는가다.
존중 없는 관심, 이해 없는 호기심, 그리고 책임지지 않는 말들.
책은 공간을 더럽힌 대가가 결국 사람에게 되돌아온다는 구조를 보여준다.
성지는 특별한 장소라기보다 사람의 감정과 기억, 소문과 욕망이 쌓인 곳이다. 그리고 그 위를 아무렇지 않게 밟고 취급할 때 공포는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그래서 이 소설의 공포는 어쩌면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기보다 인간이 만들어낸 결과처럼 느껴진다.

[더럽혀진 성지 순례에 대하여]는 무섭게 읽히지만, 사실은 조심하라고 말하는 이야기에 가깝다.
이야기를 대하는 태도, 그리고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어떤 ‘성지’들에 대해.
가끔 공포영화나 책을 보다 보면, 특정 장소를 만만하게 여기고 우습게 대하며 끝내 존중하지 않은 태도로 화를 입는 장면들이 떠오른다.
📌하지 말라고 하는 데는, 그리고 가지 말라고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더럽혀진성지순례에대하여 #세스지 #오팬하우스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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