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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마, 소슬지
원도 지음 / 한끼 / 2026년 2월
평점 :
#도서제공
죽지마, 소슬지 - 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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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는 귀신인지 침입자인지,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녀의 이름을 떠올렸다. 이름 소슬지, 나이는 29세로 자신과 동갑. 반나절 전 욕실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세입자가 죽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자신의 손으로 사망 사실을 확인한 사람.
‘아, 결국 귀신도 사람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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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수사대 안에 과학수사팀이 있는 구조예요. 저는 거기서 현장 감식을 담당하고 있고, 통칭으로는 K-CSI라고 합니다.”
“거기도 케이가 붙어요? 케이팝이나 케이 푸드처럼요?”
“온 세상이 뭐만 하면 케이잖아요.”
“오오… 그럼 저도 케이 귀신인가요?”
“예, 뭐… 한국 분이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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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이 아니라 완전 선무당이에요. 그 사람 사기 전과 있는 거 아니에요? 방에서 나와서 뭐 어쩌라는 거야. 내가 갈 데가 어딨다고. 티머니 충전이나 해주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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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요. 뭐 하며 살았더라. 뭐든 기다리기만 했던 것 같아요. 사람도, 언젠가 기쁠 날도….”
“기쁜 날이 없었어요?”
“방금은 되게 기뻤어요. 오랜만에.”
“왜요? 변기를 실컷 내려서요?”
“경찰관님이 저 찾으러 와주셔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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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슬지는 웃고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산 사람은 모두 울고 죽은 사람만 웃고 있는 풍경일 것이다. 빗방울마저 통과해 버리는 슬지의 몸은 젖을 수조차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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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사는 내내 아파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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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빌라에서 변사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 변하주는 자신과 동갑인 소슬지의 시신을 화장실에서 발견한다. 그런데 그날 밤, 소슬지의 귀신이 하주의 원룸에 나타나게 된다.
“경찰관님, 주무세요?”
소슬지의 귀신이 하주의 원룸에 나타난다. 사람이 죽고 귀신이 되면 냄새도 맛도 느끼지 못한다는데, 소슬지는 단 하나, 변하주의 똥 냄새만 맡을 수 있다. 그래서 따라왔다. 이유는 황당하지만, 그 황당함 덕분에 이야기는 가볍게 시작된다.
이미 죽은 소슬지는 승천하지 못한 채 이승에 남아 있고, 오직 하주에게만 보이고 대화가 된다.
하주는 만성 과민대장증후군을 앓으며 밤낮없이 일하는 경찰이다. 지쳐 있고, 예민하고, 혼자 사는 삶에 익숙해져 있다. 소슬지는 죽었지만 왜 아직 여기 있는지 모른 채 떠돌고 있다.
각자만의 사연으로 지쳐 있던 한 사람과 한 귀신.
그들의 동거는 그렇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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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이 산 사람의 집에 찾아온다.>
설정만 보면 기묘한 웃픈 동거물 같지만, 이 이야기는 귀신보다 살아 있는 사람의 버거움에 더 집중한다.
경찰인 하주는 타인의 죽음을 수습하는 일을 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삶은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만성적인 신체 증상, 고립된 생활, 정리되지 않는 감정들.
하주는 분명 살아는 있지만, 어딘가 이미 지쳐 있다.
그런 그의 집에 나타난 소슬지는 죽었지만, 끝내 사라지지 못한 존재다. 승천하지 못한 채 머무는 귀신. 그런데 둘 중 더 위태로워 보이는 쪽은 죽은 소슬지가 아니라, 살아 있는 하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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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주와 소슬지의 시작은 원치 않은 동거였다.
죽은 사람과 산 사람, 경찰과 귀신. 이 조합은 애초부터 불균형하고 불편하다. 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 두 사람은 어느새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는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어간다.
이 소설이 특별한 건, 관계의 속도가 빠르지 않다는 점이다.
처음엔 침범이고, 귀찮음이고, 불청객이다. 그런데 조금씩 서로의 균열을 알아본다. 소슬지가 승천하지 못하는 이유는 삶에 대한 미련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자신을 이해해 줄 단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죽음 이후에도 남아 있을 만큼, 이해받고 싶은 마음은 질기다.
그리고 하주 역시 자신의 공간을 침범한 귀신을 쫓아내고 싶어 하면서도, 완전히 혼자가 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혼자가 편하다고 말하지만, 완전한 고립은 또 다른 공포다.
그 두 감정이 부딪히면서, 이 기묘한 동거는 단순한 설정을 넘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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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돌봄을 충분히 받지 못한 채 자라난 소슬지.
그리고 부모가 있긴 하지만 밑으로 동생만 셋인 장녀로서 책임까지 짊어져야 했던 변하주.
둘은 전혀 다른 자리에서 서 있었지만, 공통점이 있다.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들이라는 점.
소슬지는 돌봄을 받지 못한 삶을 살았고, 하주는 돌봄을 해야만 했던 삶을 살았다. 공통점은 정작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판타지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결국 현실을 더 또렷하게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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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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