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떠나도
윤이나 지음 / 유유히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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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떠나도 - 윤이나

p.40 "속였든 속았든, 앉아서 얘기하죠. 밤은 기니까." 크지도 높지도 않지만 주목하게 만드는 목소리였다. 상대를 강아지쯤으로 취급하는 무례한 행동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목소리에 홀린 듯 의자를 끌어 재림 앞에 앉게 됐다. 귀신일지도 모른다. 이 정도로 사람을 흘리고 있는 걸 보면. 언젠가 들어봤던,
말 한마디로 자기 이야기 속으로 초대한다는 귀신.
이야기는 늘 질문으로 시작한다. 알고 있어요?
"여기 무연맨션, 터가 좋아요."

p.57 작두에 오르지 않고 점점 더 어두워지는 무거운 회색빛 하늘 멀리를 바라보는 재림의 이마 위로 똑, 빗방울이 하나 떨어졌다. 물방울이 피부에 닿는 느낌도, 차가운 감각도 들지 않았다. 잽이들이 연주하고 있을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굿이 시작되고 절정으로 향해갈 때까지 끊임없이 고조 될 선율이 들려와야만 했다. 그 소리 역시 아득히 멀었다.
재림은 손에 든 포도송이 모양의 무령을 내려다보았다. 재림이 느끼지 못하는 사이 떨리는 손이 무렁을 흔들며 내고 있을 찰랑이는 맑은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신이, 떠났다.

p.107 무속이 종교가 되면 사기가 되는 게지.

p.124 재림은 알고 있었다. 신은 직유로 오지 않고 은유로 온다는 것을. 오는 것처럼 느껴지거나 올 것 같은 게 아니라, 왔거나 와 있다. 그러니 다시 눈을 감고 이렇게 되뇔 수밖에. 올 것이다. 오게 되어 있다.

p.156 보지 않고도 믿어야 복된 것은 3대 종교의 일이었다. 무속에는 증거가 필요했다. 과거를 읊으며 공수를 시작하는 이유였다.

p.195 "그 어떤 신도 자기가 정한 이름으로 살기로 한 사람을 탓하지 않아요."

p.213 "선생님 하시는 일은요?"
"우리? 넓게 봐서 운명을 점치는 산업이라고 하면, 여긴 불황이 없지. 인간이 자기 운명을 궁금해하지 않는 날은 오지 않으니까."

p.285 "무당의 능력도 some kind of, super power. Right? 그러니까 재림도 히어로. 둘은 히어로즈."
가라, 세상을 구하러. 한 사람마다 한 세상이니까.

p.348 망한 무당은 어디로 갈까.

p.356 "답보다 푸는 과정이 중요한 문제도 있지 않습니까."
어쩌면 살아가며 풀어야 할 대부분의 문제가 그랬다.
살아가는 게 과정이었다.

💡신을 모시던 무당이 사라지고, 인간이 남았다

[신이 떠나도]를 읽는 내내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신이 떠나간 자리에는 무엇이 남을까?”라는 질문이었다. 무속이라는 세계는 늘 신비롭고 두렵고, 그래서 감히 가까이 가지 못할 것 같은 영역이었지만, 윤이나 작가님은 그 경계를 조용히 흐트러뜨린다. 그리고 거기에는 신을 잃어버린 한 인간의 남은 삶과 마음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소설의 중심에는 한때 세상을 뒤흔들 정도로 잘나가던 무당 ‘현재림’이 있다. 모든 것이 손닿는 듯, 꿰뚫어 볼 듯 화려하던 때가 있었지만, 신이 떠나면서 삶은 돌연 비어버린다. 명성도, 돈도, 믿음도 흐려지고, 남은 건 “어제까지는 당연히 있던 것들이 오늘은 없다"라는 잔혹한 공백뿐이다.

떠나간 신을 다시 돌아오게 하기 위해 찾아 나선 그 시작점인 무연맨션에 들어와 아등바등 신의 흔적을 찾는 현재림의 모습은 볼 때마다 안쓰럽지만, 또 묘하게 단단하다. 윤이나 작가님은 무당을 신비한 존재로만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더 인간적이고, 더 고단하고, 때로는 무력한 사람으로 그려낸다. 그래서 장면 하나하나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오가면서도 전혀 멀리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이 소설이 신을 모시던 “초월적 존재의 힘”보다 신이 떠나간 뒤 인간이 버티는 힘에 더 집중한다는 점이다.
신이 있어야만 움직일 수 있는 삶이 아니라,
신이 떠난 순간부터 진짜 삶이 시작된다는 관점.

[신이 떠나도]는 무속 판타지 소설이지만, 결국 인간에 관한 이야기다.
누구나 잃고, 흔들리고, 다시 꾸려가는 과정을 살아낸다는 아주 단순하지만 당연한 본질적인 이야기.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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