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황제
오션 브엉 지음, 김지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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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황제 - 오션 브엉

p.15 우리는 변두리에서 살지만 중심부에서 죽는다. 우리 꿈의 영안실이 되는 강 옆, 가라앉는 둑 위에 서 있기 위해 우리는 모든 세금을 낸다.

p.19 그리고 아침마다 당신은 서리 깔린 관람석에 앉아 무릎에 낡은 《등대로》 책 한 권을 올려놓고서, 경기장을 뛰어다니는 선수들의 유니폼에서 흔들리는 푸른 도끼 모양 로고를 바라보고 그들의 어깨 패드가 안개 속에서 덜컥거리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러다 당신이 책장을 넘기면 종이가 떨어져 나와 경기장으로 펄럭펄럭 날아갈 테고, 종이는 축축한 잔디를 굴러다녀 잉크가 번지고 소년들의 다리 사이에 뒤엉키다 검은색 스파이크 운동화 아래에서 분해될 것이다. 언어는 땅으로 사라진다. 그 마을에서는.

p.32 소년은 구멍이 승승 난 비닐 식탁보를 보며 엄마가 지어준 이름을 생각했다. 그 생각이 그를 가라앉혔다. 자기 이름이 싫은 것은 아니었고, 다만 그 이름을 강에다 내던지려 했다는 게 문제였다. 이름을 버리고 싶었던 적은 없다. 이름에 달린 호흡을 버리고 싶었을 뿐. 결국 그가 엄마에게 받은 것 중에서 망가뜨리지 않고 간직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이름밖에 없었다.

p.42 “당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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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갈 의지를 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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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채소잖아. 뿌리는 우울을 막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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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봐, 땅속이 너무 캄캄하니까 당근이 선명한 주황색을 띠지. 햇빛이 그렇게 깊은 데까지는 안 닿으니까 당근 스스로 빛을 내는 거야. 바닷속에서 빛을 내는 어떤 물고기들처럼 말이야. 그러니까 당근을 먹으면 위로, 하늘로 올라가려는 당근의 의지를 흡수하게 돼."

베트남계 미국인 청년 하이는 약물 중독과 가난, 가족 붕괴속에서 삶의 의미를 잃고 살아간다. 어느 날 그는 삶의 끝에서 치매를 앓는 노인 그라지나를 만나게 되고, 둘은 서로의 외로움과 결핍을 자연스럽게 채워주는 관계로 이어진다.
하이는 그라지나를 돌보는 일을 통해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홈마켓에서 일을 하며 같은 도시의 소외된 이들(이민자, 약자, 상처 입은 사람들)과 연결되며,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온기를 느끼게 된다.

삶의 끝자락에서 죽음을 고민하던 하이는 그라지나를 만나고, 그라지나부터 확장된 홈 마켓 사람들, 사촌 소니와 어울리고살아가며 삶에 조용히 스며드는 연대와 작은 친절의 힘을 배우게 된다. 그 과정에서 그는 더 이상 홀로 무너지는 존재가 아님을 깨닫고, 상처와 결핍 속에서도 누군가와 함께라면 살아갈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받아들인다.
하이에게 기쁨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삶의 틈새 속에서 발견되는 아주 작은 온기였다.

기쁨의 황제는 결국 상처 입은 사람들이 서로의 그림자가 되어주는 이야기라고 느껴졌다.
이 소설에서 말하는 ‘기쁨’은 밝고 화려한 감정이 아니라, 삶이 툭툭 부서지는 순간들 사이에서 잠깐 스며드는 미세한 온기 같은 것이다.

오션 브엉은 대단한 구원을 말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완전히 바꿔놓는 사랑이나, 삶을 통째로 들어올리는 기적도 아니다. 그 대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가는 아주 작은 친절에 집중한다. 그 작은 행동이 서로를 살리고, 절망 속에서도 사람을 다시 걷게 만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가장 취약하고 가장 조용한 사람들이 서로에게 기대고, 잠시 머물고, 손을 얹어주는 일 그게 이 책이 말하는 인간성의 본모습이다.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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