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보의 사랑 달달북다 12
이미상 지음 / 북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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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 달달 서포터즈 4기]
3️⃣잠보의 사랑 - 이미상

p.52 나는 죽을 무렵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그는 틈만 나면 병원을 빠져나가 병원 건너편에 있는 '애견숍'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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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갇힌 개들에게 수시로 갔다. 그러나 정작 아버지는 개들을 똑바로 본 일이 없었다. 개로부터 완강히 등을 돌린 채 앞만 노려보았다. 병원 관계자와 마찬가지로 나도 아버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아 짜증만 났다. 그러나 연인이 부여한 새로운 시각으로 보자, 아버지가 사람들의 침범으로부터 개들을 보호하려 했다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아버지가 손수 적어 창문에 붙여 두었던 공지가 떠올랐다. 두드리지 마세요. 토끼처럼 놀라지. 토끼처럼 놀라••• 누나의 시선을 거치지 않았다면 나는 아버지와 애완숍의 개가 창문을 통해 노출된 취약한 존재들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자 누나는 갑자기 거의 내 나이로 보였다.

잠보의 사랑에서 가장 오래도록 머문 장면은, 다름 아닌 애견숍 앞에 선 아버지의 뒷모습이었다.
병원에서 틈만 나면 애견숍 앞으로 가는 아버지를 주인공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아버지는 개들을 향해 등을 돌린 채 앞만 바라보고 있었을까. 주인공도 병원 관계자처럼 그 모습이 답답하고 짜증났을 뿐이다.
그러나 누나의 시선을 통해 그 장면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며, 주인공은 처음으로 아버지의 마음에 닿았다.
아버지는 강아지들을 보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끊임없이 두드리는 사람들, 관람의 이름으로 개들의 안정을 침범하는 시선들로부터. 어쩌면 아버지는 자기처럼 예민하고, 나약한 존재들을 지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생전의 아버지는 관리실 겸 숙직실의 창문에 두드리지말라고 경고문도 붙였지만 사람들은 그 경고문을 무시하고 두드린다. 그래서 아버지는 그런 사람들의 행동에 토끼처럼 놀란다고 말했었는데 이 장면은 주인공이 아버지를, 그리고 스스로를 새롭게 인식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주인공은 마치 그 예민함을 자신이 고스란히 이어받았다고 믿는다. 그러나 나는 주인공이 삶의 무게를 피하고 싶은 마음에, 아버지의 예민함을 방어막처럼 끌어온 것은 아니었나 생각을 했다. 현실에서 멀어지기 위해, 책임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자신이 닮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의 그림자에 일부러 발을 들인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기에 누나와의 만남 역시, 어떤 절실한 사랑보다는 무료한 삶 속에 불쑥 들어온 자극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자신보다 나이 많고, 감정의 결이 다른 상대. 처음엔 그 자극이 새롭고 흥미로웠지만, 관계가 깊어질수록 주인공은 다시 익숙한 회피의 세계(잠 속으로) 숨어버린다.
누나는 처음부터 그런 기질을 알아보았기에 주인공에게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았고, 최종적으로 회피하는 주인공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이 소설은 사랑을 말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사랑조차 외면하고 도망칠 수 있는 인간의 내면을 보여준다.
그것이야말로 이 책이 말하는 가장 잔인하고도 정직한 진실이다.

💡누나는 무심한 듯 아버지의 직업을 묻는데 그 순간, 주인공은 그것을 무례라고 받아들이며 지나치게 날서게 반응한다. 나는 그 반응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단지 아버지의 직업을 묻는 질문이었을 뿐인데, 왜 그렇게까지 방어적인 감정이 튀어나왔을까? 그건 아마도, 주인공이 아버지를 기억하는 게 아니라, 아버지를 방어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삶을 회피하기 위해 꺼내든 아버지의 예민함이라는 무기, 그 허약한 방패를 누나가 무심히 건드렸기 때문에 그는 본능적으로 화를 냈던 것이다.
주인공이 아버지를 진심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이해했다고 착각하며 그 뒤에 숨어 있는 채로 살아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이 책은 로맨스 × 비일상이라는 장르의 외형을 띠고 있지만, 그 내부는 훨씬 더 복잡하고 애매하다.
주인공은 진정한 감정이나 관계를 맺기보다는, 무료한 일상을 견디기 위한 임시적 접속을 통해 현실을 회피한다.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달콤한 로맨스나 낯선 비일상이 아니라,
익숙한 일상이 무너지는 순간에 찾아오는 낯설고 불편한 감정들을 다루고 있다.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북다 #달달서포터즈#잠보의사랑 #이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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