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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커 ㅣ 래빗홀 YA
이희영 지음 / 래빗홀 / 2024년 5월
평점 :
서른둘의 나우는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검은 고양이를 따라 이름조차 없는 바(bar)에 가게 되고, 그곳의 바텐더가 만들어 준 무알콜의 칵테일을 마신 후, 다음 날 눈을 뜨니 열아홉의 어느 날 이었다. 유치원 시절 처음 만나 형제만큼 가까운 친구였지만 사고로 이제 세상에 없는 이내가 자신의 눈 앞에 있고, 지금은 나우의 여자 친구이지만, 친구의 여자친구였던 하제. 항상 후회하던 과거의 한 시점으로 되돌아 와 그리워하던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이 현실이 되었지만 나우는 사랑과 우정이라는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에 빠진다.
- “어차피 시간이란 다 허상일 뿐이죠. 잡을 수도, 되돌릴 수도, 어디에 보관할 수도 없으니까요. 공기처럼 보이지 않고, 물처럼 끊임없이 흐를 뿐입니다.” (p. 64)
- “억지로 지우려 하다가는 더 큰 얼룩만 되는 경우가 있죠. 해변의 자갈이 파도와 바람에 마모되어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잘게 부서져 모래가 될 뿐이죠. 인간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추억이든 아픈 상처든 빛이 바랠 뿐입니다.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죠.” (p. 125)
이희영 작가님의 첫 타임슬립 판타지 소설 <셰이커>는 과거의 미련과 미래의 불안으로 현재를 잃어 가던 나우가 알록달록 화려한 색상의 칵테일을 마시고 다섯 번의 시간 여행을 떠나 이내를 살리고 하제를 먼저 만나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 새로운 기회를 마주하며 당시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고, 현재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시간에 관한 소설이다.
- “이미 지나간 날들을 아쉬워하며 묶여 있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하며 걱정하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닐까요?” 바텐더가 셰이커 틴에 필터를 끼운 후 조심스레 뚜껑을 덮었다.
“아니면 양쪽 모두지요. 늘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두려워하며 살지 않습니까. 결국 손님의 시간도 언제나 과거와 미래가 뒤섞여 있을 뿐입니다.” 희고 긴 손이 천천히 셰이커를 흔들기 시작했다.
“현재는 없죠.” (p. 141)
- 생각해 보면 인간의 삶 자체가 시간 여행이었다. 원해서 태어난 것도, 원해서 자라는 것도, 원해서 늙어 가는 것도 아닐 테니까. 내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났고 내 바람과 상관없이 학생이 됐으며 내 희망과는 전혀 상관없이 어른이 되어 버렸다. 체스판의 폰이 된 듯, 장기판의 졸이 된 듯, 누군가 이 시간대에서 저 시간대로 옮겨 버린 것 같았다. 정작 나는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는데, 책가방을 메어 주고, 교복을 입히더니, 졸업했다고 멋대로 성인이라 불렀다. (p. 219~220)
- “다 지난 후에 뒤돌아보니, 아! 내가 그 시간을 어떻게 버티고 견뎠을까? 하지. 막상 그때는 그저 하루하루 사느냐고 그런 생각도 안 들어. 어른들이 그러잖아. 살면 다 살아진다고. 뒤돌아 볼 것도 없고 너무 멀리 내다볼 것도 없고, 그냥 지금 발끝만 보고 가면 어디라도 도착해 있는 거야. 결국 사는 건 다 위대한 일이야.” (p. 252~253)
살면서 ‘만약 그 때 그랬다면……’이라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해보게 된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다시 되돌아 간다면 다른 선택을 해 지금과 다른 현실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상 하고,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생각하며 불안해 한다. 이 책에 나온 문장처럼 우리는 지금, 현재를 살고 있지만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련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 때문에 가장 충실히 보내야 하는 소중한 현재는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고 흐지부지 흘려 보내고 마는 건 아닐까 되돌아보게 한다. <셰이커>는 “어떻게 하면 미래의 나에게 미안해하지 않을까.” (p. 46) 란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롸잇 나우!!!
- 한번 지나간 시간은 결코 되돌아오지 않는다. 인생에 ‘만약’이란 시간이 절대로 존재할 수 없듯이. (p. 1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