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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 드링크 - 인류사 뒤편에 존재했던 위대한 여성 술꾼들의 연대기
맬러리 오마라 지음, 정영은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6월
평점 :
실비아 플라스는 말했다.
“뱃속으로 보드카가 넘어가는 느낌은 신기했다. 차력사가 칼을 삼키면 이런 느낌일까? 강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신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술만 있으면 없던 용기도 생긴다. 술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대담해지고 속을 드러내는 일이 쉬워지며 노래 부를 때 고음도 잘 올라간다. 나에 대한 자신감까지 밀려오면 여러 번의 건배에도 지칠 줄 모른다. 신나는 일이다. 이런 기분을 처음 느껴보는 순간이라면 차력사가 칼을 삼킬 때 찢어질 듯한 고통을 맛본 자의 칼칼한 용기가 쑤-욱 올라오는 쓴 미소가 떠오르면서 실비아 플라스의 말이 떠오를 것이다.
느낌적인 느낌을 술술 풀어낸 걸리 드링크는 수천 년에 걸쳐 술을 만들고, 팔고, 마셔 온 여자들의 이야기이자 생생한 역사였다가 드라마면서 짜릿한 누아르로 돌변하기도 하는, 무엇보다 절절한 로맨스에 짠~하고픈 미깡작가의 추천사에 기대가 더 컸다. 침묵과 겸손은 개나 줘버리고 독한 걸로 한잔 더 달라는 외침은 걸리쉬를 막 던져버린 걸크러쉬가 느껴졌다.
음주에 성별을 갖다 붙였다는 게 어이없어 웃었지만, 한 잔의 술이 기억하는 여성 술꾼들은 위대한 연대기를 펼칠 수밖에 없을 시대적 배경에 쓴 술을 넘기는 기분이었다. 미국에서 여성이 최초로 바에서 술을 마실 수 있게 된 시기가 금주법 시대였다고 한다. 당시 바는 불법인 주류를 밀매하는 장소였고, 금주법 시대는 온갖 사회적 규범이 전복되는 시기였으니 여성의 술집 출입도 가능했다는 사실에 이 책의 저자 맬러리 오마라는 외쳤다. “이거야! 바로 이런 걸 알고 싶다고!”
여성 위스키 증류업자, 맥주 양조업자, 바텐더, 무엇보다 알코올이 탄생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에 여성 음주자들이 존재해 왔다는 사실이 이 책 안에서 펼쳐진다. 태고의 시간부터 중세 초기 힐데가르트 수녀의 일용할 맥주 이야기, 1920년대 금주법에 맞선 밀주의 여황제, 2010년대 모든 술이 여성의 술이 되기까지 여성의 음주를 허용하는 문화와 여성의 자유를 허용하는 문화가 강하게 연결되어 인류사 뒤편을 장식했다.
“업계에 더 많은 여성이 진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든 여성이 포함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술뿐만 아니라 지금껏 여성은 많은 걸 바라지 않았다. 당연한 걸 요구할 뿐이다. 함께 어우러지는 것, 포함되는 것을 막지만 말라는 말이다. 맬러리 오마라가 위대한 여성 술꾼들의 연대기를 통해 인류사 뒤편에 어둠게 가려졌던 외로운 술주정을 역사로 만들어 버렸다. 정말 통쾌한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생각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