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디지털로 구현된 메타버스 안에 가상자산이라는 새로운 가치의 축적 수단이 등장하고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가 거래 수단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가상경제는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될 가능성과 파괴적 혁신성을 가지게 되었다. 디지털이 그동안 세상을 바꾼 원리는 무한히 복제되고 전송할 수 있는 능력이었는데 이제는 반대 속성을 가지게 되면서 제한되고 소유될 수 있는 디지털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NFT는 대체 불가능한 토큰이다. 물리적 공간에서 대체 불가능한 것은 세상에 하나뿐인 미술 작품이나 직접 쓴 악보, 소설 원본 등이 있는데 디지털에서는 이러한 유한성이 존재하지 않았다. 디지털 저작권 관리DRM: Digital Rights Management 같은 것을 걸어 복제가 되지 않게 한다거나 재생하는 데 라이선스를 필요하게 하는 등의 기술들은 존재했으나 만드는 주체는 얼마든지 복수의 데이터를 만들 수 있었다. 화폐는 실물이든 디지털이든 얼마든지 대체 가능하고 교환 가능한 충분한 수량이 존재해야 하며 유통되어야 하지만 NFT는 세상에 하나뿐인 디지털 데이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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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곧 자기 생각과 마음이다. 말이 바뀌면 생각과 마음이 바뀌고, 생각과 마음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현실이 바뀐다. 모든 것이 말한 대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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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적하라, 축적하라, 이것이 모세의 말이고 예언자들의 말이다’는 마르크스가 남긴 인상적인 문장이다. 하지만 이 말이 자본가가 투자하고 저축하는 동기를 정확히 설명한 것이라면, 부자들이 자산을 축적하도록 만드는 요인이 단지 미래의 소비를 실현하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기업금융을 지속하려는 관성, 경제적 안정에 대한 만족을 모르는 탐욕, 사회적 정체성의 확보, 미래의 막대한 부나 다른 구조적 필요성에 의한 심리적 환상 때문일 것이다.

 


일종의 지대로서의 수익


예를 들어 아서 듀잉Arthur Dewing은 20세기 중반의 기업금융에 관한 권위 있는 논문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기업을 확장하도록 유도하는 동기는 대체로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심리적인 것(……) 인간의 귀중한 유산인 ‘포식자 만행’이다"라고 지적했다. 여기에는 상속 동기도 포함되어 있는데, 축적의 한 가지 중요한 원동력은 유산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떠나 자녀들에게 부를 전달하고자 하는 욕구다. 그런데 이를 성격 변화라는 측면에서 생각해봐도 도움이 된다. 수명이 길어지면서(특히 부자의 경우) 유산과 미래 소비 간의 규범적 경계가 모호해졌다. 당신의 자녀가 당신과 다른 것처럼, 75세 때 당신의 자아가 현재의 당신과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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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상처 한가운데서도 인간들끼리 따뜻한 유대를 맺는 일이 가치 있고 아름답다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처지에 따라 정도는 조금씩 다를지언정, 자신이 속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부터 무한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는 단 하나의 진실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누구든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일 것이다. 시시각각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온몸으로 체험하며 살아가는 호메로스의 영웅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 역시 ‘삶의 덧없음’이라는 슬픔과 고통이었기에 그들에게는 수금과 노래, 그리고 봉분과 석비라는 기념비의 위안이 절실했다.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이 유한성과 무의미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진리에 헌신하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가 진리의 형태로 꼽은 예술에도 정치에도 학문에도 사랑에도 송두리째 헌신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는 나처럼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이 광대하고 영속적인 세계와 무시로 접속을 시도하며 가능한 한 세계를 넓고 깊게 향유하기 위한 노력이라도 아끼지 않는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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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단 하나의 본질적인 수수께끼예요. 다른 것들은 신비스럽지만 본질적인 수수께끼라고 할 수 없을 거예요. 공간은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는 공간 없는 우주를, 예를 들면 음악으로 이루어진 우주 같은 것을 생각할 수 있어요. 우리는 물론 듣는 사람이죠. 그러나 시간에 대해서 말하자면, 정의를 내리는 것에서부터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한 말이 기억나는군요. "시간은 무엇인가? 나에게 묻는 사람이 없으면 나는 그게 뭔지 안다. 그러나 누가 나에게 물으면 나는 모르게 된다." 시간의 문제가 ‘진짜‘ 문제라고 생각해요. 시간의 문제는 자아의 문제, 자아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포함하지요. 자아는 과거고, 현재고, 다가올 시간에 대한 예측, 바로 미래에 대한 예측이기도 해요. 그 두 가지 수수께끼가, 불가사의가 철학의 본질적인 과제예요.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결코 그 과제를 풀지 못할 것이고,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히 계속할 수 있지요. 계속 추측할 수 있는 거예요.
그 추측을 우리는 철학이라 부르는데, 그건 정말 순전히 추측일 뿐인 것이랍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이론을 만들 것이고,
그 이론들에 매우 즐거워할 것이고, 그런 다음에는 그 이론을 풀고 다시 새 이론을 만들겠지요.
- P204

나는 죽음을 희망이 가득한 것으로 생각해요. 소멸의 희망이지요. 잊힌다는 희망. 나는 때때로 기분이 울적할 때가 있어요.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그러면 나는 이렇게 생각하죠. 그런데 내가 왜 울적해야 하는 거지? 어느 순간에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데 말이야. 그러면 편안함이 찾아온답니다. 나는 죽음을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니까요. 죽음 이후에도 계속 존재하고 싶지 않아요. 난 너무 오래 살았어요. 왜 사후에도 계속 존재해야 하나요? 그건 과장된 거예요.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희망하며 살아간답니다.
- P237

시를 읽을 땐 감동을 받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시를 육체적으로 느끼지 않는다면 시를 전혀 느끼지 못한거나 마찬가지예요. 그런 사람은 교수나 비평가가 되는 게 낫지요. 나는 시를 매우 사적이고 중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답니다. 물론 그걸 느낄 수도 있고 못 느낄 수도 있죠. 만약 느낀다면 그걸 설명할 필요는 없어요.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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