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나라가 망할 무렵 크게 유행했던 〈무향요동랑사가(無向遼東浪死歌: 요동으로 가지 마라 개죽음이 부른다)는 아직도 대륙 도처에 나돌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유사 이래 고구려를 치기 위해 흘린 피가 무릇 몇 말이며, 그렇게 싸워온 세월은 장장 몇 해였던가! 이는 만천하가 이미 다 아는 일로서 고구려는 누가 뭐래도 누대에 걸친 중국의 숙적이며 천적이었다.
대륙의 수많은 인접국들과는 처음부터 격이 다른 나라가 고구려였다. 수가 망하고 당이 들어서는 과정은 물론, 대륙의 역사가 굽이치고 소용돌이치는 중요한 고비고비마다 항상 그 배후와 이면에는 고구려가 있었다. 고구려와 싸운 나라치고 온전하게 사직을 보전한 나라가 없었고, 요동으로 군사를 낸 황제치고 뒤에 후회하는 경구를 남기지 않은 이가 드물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자신의 아버지 이세민만 하더라도 번번이 요동에서 대패하여 들개처럼 쫓겨다니다가 결국 안시성에 이르러서는 고구려 성주의 화살에 한 쪽 눈마저 잃지 않았던가. 그 이후 요동에서 시작돼 탁군과 낙양에까지 널리 유행한 노래가 있었다.

새야 새야 무당새야 안시성에 앉지 마라
샛바람 부는 깃이 눈동자를 가릴레라
친정살이 좋다더니 고생 고생 말도 마라
비단 백 필 짜내다가 남 좋은 일 한단 말가

실명(失明)한 이세민이 패배를 자인하고 안시성 성주 양만춘에게 비단 1백 필을 주어 사죄했다는 치욕적인 사실을 풍자한 노래였다.
-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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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선거에서 볼 수 있듯이, 오늘날 선거는 정치를 바로잡고 민주적으로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에서 이탈하는 수단이 되었다. 트럼프를 뽑은 거의 6,200만 명에 달하는 미국인은 트럼프에게 찬성표를 던짐과 동시에 민주주의에 반대표를 던졌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이탈’에 찬성했다. 모디의 선거, 에르도안의 선거, 푸틴을 지지한 사이비 선거도 마찬가지였다.
이 모든 경우와 유럽의 많은 포퓰리스트 지역에서 민주주의 자체의 약화가 일어나고 있다. 민주주의 약화는 각 국가별 민주주의 형태에서 자유와 심사숙고와 폭넓음이라는 요소를 폐기하겠다고 공약한 지도자가 당선되는 토대다. 모든 포퓰리스트 지도자가 민주주의에 대한 이런 불만을 자양분 삼아 성공하고 출세했고, 스탈린과 히틀러와 페론을 비롯해 각자의 시대와 장소에서 민주주의 실패를 이용한 20세기 전반기의 다른 많은 지도자의 전철을 밟는다고 한다면 반론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민주주의 약화에서 새로운 점은 무엇일까?

오늘날 민주주의 자체에 진저리를 치는 정서가 독특한 논리와 맥락을 갖는 방식은 3가지가 있다. 첫째, 갈수록 증가하는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이용 인구와 웹 기반 동원, 선전, 정체성 형성, 친구 찾기의 유용성이 누구나 원하는 대로 또래, 동료, 동지, 친구, 협력자, 전향자를 찾을 수 있다는 위험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둘째, 모든 개별 국민국가가 어떤 형태로든 경제 주권을 유지하려는 노력에서 설자리를 잃었다. 셋째, 이방인과 외국인과 이주자가 어디로 이동하든 냉정한 반응과 가혹한 상황에 부딪치겠지만 인권이 전 세계로 확산된 덕에 사실상 모든 국가에서 그들에게 최소한이나마 발을 디딜 토대가 제공된다. 이 3가지가 결합해 민주주의 체제에 늘 필요한 정당한 법 절차, 신중하고 합리적인 행동, 정치적 인내심에 대한 알레르기 증상이 전 세계에서 심해졌다. 여기에 세계경제 불균형의 악화, 전 세계 사회복지의 붕괴, 우리 모두가 재정 재앙에 빠질 위험에 처해 있다는 생각의 확산 덕분에 번창하는 금융산업의 세계적인 침투까지 더해지면, 민주주의의 더딘 행보에 대한 조급증은 끊임없는 경제공황 분위기로 인해 더욱 악화된다. 그런데 번창을 약속한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은 흔히 고의로 이런 공포를 조성한다

우리가 여전히 (결코 뻔한 결론이 아닌) ‘발전’을 믿는다면, 이제는 발전을 축복과 저주의 혼합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 경우 축복은 갈수록 줄어들고 드물게 나타나는 반면 저주는 꾸준히 증가한다. 최근의 우리 선조들은 희망을 투자할 가장 안전하고 유망한 곳이 미래라고 믿었지만, 지금 우리는 주로 다양한 두려움과 불안과 우려를 안고 미래를 예상하는 경향이 있다. 미래에는 일자리 부족이 증가하고, 소득이 떨어져 자녀를 위한 삶의 기회가 줄어들고, 사회적 지위가 대폭 하락하고, 삶의 성취가 일시적이고, 마음대로 이용 가능한 도구와 자원과 기술에서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중대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리라고 말이다. 무엇보다 삶의 통제권이 우리 손아귀에서 빠져나가서, 우리 요구에 무관심한 모르는 사람들 손에 좌우되어 앞뒤로 움직이는 장기판 졸의 신세로 전락한다고 느낀다. 그나마 이 정도면 나은 신세다. 심하면 장기판을 좌지우지하는 사람들이, 대놓고 적대시하거나 잔인하게 굴지는 않는다 치더라도, 자신들의 목표를 추구하려고 우리를 희생시킬 수도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래는 더 편하고 덜 불편하리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업무에 서투르고 부적합한 사람으로 파악되거나 분류되어 가치와 위엄이 부정되고 그런 이유로 하찮은 존재로 취급받고 소외되고 따돌림당하는 섬뜩하고 위협적인 상황이 자주 떠오른다.

프란치스코 교황(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오늘날의 악, 혼란, 무기력의 근원을 파헤쳐서 드러낼 용기와 투지를 지닌 권위자)은 2016년 샤를마뉴 상 수상에 즈음하여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가 절대 싫증내지 않고 반복해야 하는 말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대화입니다. 우리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통해 대화의 문화를 촉진해서 사회구조를 재건해야 할 소명이 있습니다. 대화의 문화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타당한 대화상대로 보게 하고, 외국인과 이주자와 다른 문화 출신자를 경청할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존경하게 하는, 견습 기간과 훈련을 요구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대화를 만남의 한 형태로 특별 대우하는 문화"를 형성하고, "공정하고 민첩하게 대응하고 모두를 포괄하는 사회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한편 동의와 합의를 이끌어내는 수단"을 만드는 작업에 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시급히 참여시켜야 합니다.(『복음의 기쁨』, 239) 우리가 아이들을 대화로 무장시키고 만남과 협상이라는 유익한 싸움을 하도록 가르치는 그런 정책을 펼치는 한 평화는 지속될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아이들에게 죽음이 아니라 삶의 전략을, 배제가 아니라 포용의 전략을 창안할 능력이 있는 문화를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9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대화의 문화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으며 사실상 필수 불가결한 조건인 또 다른 메시지가 포함된 문장을 덧붙인다. "이 문화는 (……) 학교 교육의 구성 요소가 되어야 하며, 우리가 익숙해져 있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을 어린이들에게 안겨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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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책 사용법
연약한 청소년들이 도서관에서 성장하고 있다. 그들은 키케로, 로크, 베이컨의 사상을 받아들이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믿는다. 하지만 키케로, 로크, 베이컨도 그 책을 썼을 때 도서관에 있던 청년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모른다.
이로 인해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책벌레’가 생겨난다. 책 자체를 존중하는, 책에만 박식한 계층이 생겨나는 것이다. 잘 사용하면 책 이상의 것은 없다. 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책보다 나쁜 것도 없다. 그렇다면 책을 잘 사용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책은 다만 영감을 얻는 데에만 유용하다. 책에 매혹돼 자기 삶의 궤도에서 벗어나거나 스스로 체계를 만들지 않고 위성(衛星)이 되어버릴 바에는 차라리 책을 안 읽는 것이 낫다.

창조적인 독서와 창조적인 가르침
마음이 배우고자 하는 열정과 창의력으로 긴장해 있으면, 어떤 책을 읽든 모든 페이지에서 다양한 암시를 받고 정신이 명료해진다. 모든 문장은 두 배의 의미로 다가오고, 저자의 식견도 세계만큼이나 광대하게 느껴진다.
눈이 밝은 사람은 플라톤이나 셰익스피어의 책에서 아주 적은 부분만 읽는다. 신의 참된 말씀이 적혀 있는 부분만 읽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현명한 사람도 꼭 읽어야 할 독서의 영역이 있다. 역사와 정밀과학은 애써 읽고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마찬가지로 학교도 필수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 읽기, 쓰기 같은 기초적인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학교가 숙달이 아닌 창조를 목적으로 가르칠 때에만 도움이 된다.
사상과 지식은 본질적인 것이라서, 그것을 얻는 데 제도나 형식 같은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오히려 그 속에 빠져서 창조성을 잃어버린다면, 화려한 교수복이나 황금의 도시를 쌓을 만한 기부금으로도 지혜 넘치는 말 한 마디, 문장 하나 만들어낼 수 없다. 이러한 점을 잊으면, 대학은 해마다 재산을 늘려도 사회적인 중요성은 점차 잃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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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군주가 이웃 나라를 정벌하려는 뜻은 땅을 취하기 위함이지만 현군은 백성들을 얻고자 군사를 일으킵니다. 보통 임금은 성곽과 구루에 연연해 군사로써 민심을 해치지만 성군은 민심을 취하는 일이라면 오히려 성곽 따위는 내어줄 수도 있습니다. 물건을 훔치는 자는 도둑이며 마음을 훔치는 이는 성인입니다. 천하를 탐내는 자는 오히려 망하고 천하를 이롭게 하는 이는 크게 흥한다고 하였나이다. 덕은 칼보다 무디지만 만인을 한꺼번에 복종시키는 가공할 무기요, 성군의 덕업이 빛을 발하면 천군만마가 하지 못하는 일도 일시에 일어날 수 있는 법입니다. 삼한의 일도 마찬가집니다. 삼한 강역을 탐하는 자가 아니라 삼한 백성들을 덕업으로 감복시킬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삼한은 비로소 한나라가 될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무엇이 아쉬워 이웃 나라를 창칼로써만 치려고 하십니까? 백제의 살림은 이만하면 부족함이 없고, 백제 백성들은 사람마다 넉넉하고 행복합니다. 대왕께서는 조원에서 풀을 뜯는 남의 짐승들을 모두 죽이고 내 집 소와 양들로만 초원을 채우려 하십니까? 아니면 세상 모든 짐승들이 배불리 먹고 삼라만상이 골고루 풍요롭기를 원하시나이까? 이제는 대범하고 넓은 마음으로 천하 민심을 노려볼 만한 때입니다. 군사를 내어 영토를 넓히고 계책을 써서 양적을 멸하는 일은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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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계의 탄생은 46억 년 전 어느 날 어떤 큰 별이 운명을 다해 초신성으로 폭발하면서 시작됩니다.

  이 초신성이 폭발하면서 그동안 별 내부에서 핵융합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던 다양한 물질들이 우주에 흩뿌려졌다가 중력에 의해 다시 한데 모이면서 태양이 만들어졌고, 그 주위의 부스러기들이 모여 각각 행성과 위성이 되었지요. 그 초신성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감사드려요. 그 아빠 별님의 뜨거운 핵에서 우리 태양계가 탄생한 것이고, 지구의 모든 구성물질 역시 그 초신성에서 유래된 것이니까요. 즉, 우리 지구의 모든 물질과 생명체는 모두 46억 년 전 우주에 흩뿌려진 어느 별부스러기의 후손인 것이죠. 

  원래 138억 년 전 우주가 처음 탄생했을 때 출현한 물질이라고는 수소(H)와 헬륨(He), 두 가지 기체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이 최초의 물질들이 공간에 골고루 퍼지지 않았기에 많이 뭉친 곳에서는 인력으로 서로 끌어당기면서 은하가 만들어지고, 그 내부에서 항성(恒星, 스스로 빛나는 별)들이 탄생했습니다. 영원히 빛날 것 같은 별도 생명체처럼 수명이 정해져 있기에 언젠가는 소멸하는데, 이 과정에서 별의 내부에서 뜨거운 열과 압력에 의해 수소와 헬륨의 양성자와 전자가 분리되고 다시 결합하는 과정을 통해 점점 더 무거운 원소들이 탄생하게 되죠. 또 거대한 별일수록 내부에서 핵융합이 더 빨라져서 마지막 순간에 부풀어오르다가 대폭발하는 초신성이 되면서 새로운 무거운 물질들을 우주로 뿜어냅니다. 하지만 우리 태양 같은 평균치 이하의 작은 항성은 초신성이 되지 못한 채 마지막 순간 적색 거성으로 부풀어올랐다가 백색 왜성으로 작아지게 되고, 태양 내부의 온도로는 가장 무거운 원자라도 철(Fe, 원자번호 26번) 정도밖엔 생성하지 못한답니다.

인류가 수렵생활을 하던 원시시대엔 대규모 감염병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감염병은 신석기시대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좁은 지역에 많은 사람들이 모인 환경이 갖춰지고, 정착생활과 함께 키우기 시작한 가축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파되면서 비로소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지요.

  원래 동물과 인간의 생체 구조가 다르기에 동물 바이러스가 인간의 몸에 정착하기 어렵지만, 동물에 적응해 살던 바이러스가 어쩌다 인간의 몸에 적응하게 되면 인류에겐 신종 감염병이 되는 것입니다. 최근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인류를 괴롭혀온 전염병 중, 홍역, 결핵, 천연두는 소에서 기생하던 바이러스가 인간의 몸에 적응하면서 시작된 것이고, 백일해와 인플루엔자(a.k.a 독감)는 원래 돼지에 있던 바이러스가 전파된 것이라네요. 또한 감기 역시 3가지 다른 계통에서 유래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이런 감염병 문제로 인해 인류 최초의 4대 문명이, 모두 건조한 기후대이지만 풍부한 수량을 가진 강 주변 지역에서 발생했다는 이론이 존재하지요. 최근 고고학이 발전하면서 홍산 문명, 불가리아 문명 등 다른 지역에서도 초기 문명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지만, 오랜 기간 존속하지 못한 것은 사막이 아닌 습윤한 지역이어서 가축으로부터 유래한 전염병이 빨리 퍼져 집단 사망 사태가 일어났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된다고 합니다. 

  실제로, 동물에서 유래한 감염병은 인간의 몸에 정착한 초기엔 아주 강한 사망률을 보이다가 세대가 지나면서 점차 약화되는 양상을 보이지요. 이는 원래 숙주 동물에 적응해 있던 바이러스가 인간이라는 새 숙주에 정착할 때, 독성이 강한 부류는 숙주를 죽이며 자기들도 같이 소멸하는데, 반면 숙주와 공생할 수 있게 잘 적응한 바이러스는 후손이 번창하게 되면서 결국 인간을 죽이지 않으면서 공존하게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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