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프 클림트.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걸쳐 활동했던 그는 세기말의 화가답게 탐미적이었고 화려한 그림을 그려왔다. 클림트의 <유디트> 역시 장식적이고 현란한 문양을 바탕으로 퇴폐미의 극을 시현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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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타이밍에 잘못된 장소에 있었던 게 아니라 있어야만 할 바로 그 타이밍에 거기 있었다는 거지요. 우리가 있음으로 해서 완성이 된 겁니다."

윤리는 둑과 같다. 어느 정도까지는 자아를 지켜주지만 한번 터지면 격렬한 방류가 뒤따른다.

사실에서 출발한다고 다 사실은 아니고 상상에서 시작됐다고 다 허구는 아닌 것이 소설의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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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불편하다는 생각이 먼저 안 들고, 상대의 입장만 먼저 떠오른다는 거죠?」「정말 부도가 났는지 어떻게 알아요?」「그 생각이 나중에 들더라구요. 상대에 대한 연민 먼저, 그 다음에 내가 불편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고, 아주 나중에야 상대방의 말이 진실일까 아닐까 의심하는 마음이 들고요.」
「왜 자신의 불편보다 남의 입장을 먼저 생각할까요? 첫째, 잘나서?」「아니요.」
「둘째, 인격이 고귀해서?」
「아니요.」
「셋째, 멍청해서?』
「맞아요. 제게는 나를 먼저 챙기는 감각이 없는 것 같아요.」
「없는 게 아니라 발달되지 않은 거죠. 싹부터 잘라 버렸으니까.」
「그래요.」
「왜 그렇다고 생각해요?」
「모르겠어요. 제가 이해받고 배려 받고 싶던 마음이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드는 게 아닌가 싶지만……. 자기연민의 투사 같은 거요.」
면담자는 고개를 끄덕이기만 할 뿐 더는 말이 없었다. 그 감각이 발달하지 않은 것이 애착이나 집착이 형성되지 못한 것과 동일 선상의 문제인가 싶기도 했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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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이 꿈, 언어, 신체적 증상 등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책을 읽을 때 ‘무의식의 언어화‘라는 것이 어떤 상태인지 짐작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말이 나오는 걸 들으면서, 그 말을 하는 걸 그토록 힘들어하는 자신을 보면서 바로 이것이구나 싶었다.
억압된 무의식이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쉬웠다. 화병이나 이명, 실명 같은 심인성 증상들이 그것이라 믿었다. 그렇지만 내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증상들, 이를테면 목에 돌멩이가 걸린 듯한 뻐근함, 가슴이 꽉 막히는 듯한 통증, 명치가 뒤틀리는아픔, 그것들이 모두 무의식이 표출되는 한 방법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무의식이라는 게 그토록 가까운 곳에서 그토록 지속적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니. 무의식이 표출되는 두 가지 방식을 한꺼번에 체험하면서, 반복되는 질문으로 그것을 이끌어 낸 면담자의 솜씨에 놀랐다.
내가 끝내 완성하지 못한 문장의 전문은 이것이었다. ‘내가 타인의 호의나 친절을 별 저항감 없이 받아들이게 된 것은, 이젠 무슨 일이 있어도 무너지지 않겠구나 하는 확신이 내 속에서 생긴 이후부터 였다."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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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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