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61 | 62 | 63 | 6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아파야 산다.

 

 

 

 

p. 128

질병이란 특수한 고통과 결여의 상태가 아니라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선 반드시 수반해야 할 필연적 조건이다.

(.....)

 

모든 존재는 원초적으로 질병을 안고 태어날 수 밖에 없다. 아니 질병이 곧 존재의 표현방식이다.

(.....)

 

완벽한 조건에선 차이가 형성되지 않고 차이와 균열이 일어나지 않으면 에너지나 열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

 

그런 점에서 평형상태란 곧 정적과 죽음을 의미한다.

 

 

p.130

일찍이 르네 듀보가 말했듯이, 건강은 근대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환상이다

"그에 따르면 건강은 생명체와 환경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인 적응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시적 균형일 뿐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니다"(강신익, <건강은 없다:복잡성의 진화와 의학>_인문의학 1집, 20쪽)

근대 이전에는 건강이라는 말이 없었을뿐더러 "영어단어 헬스(health)의 어원은 신성함, 전체성, 치유의 뜻에 있어 종교적 뉘앙스가 강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17세기 이후 해부병리학이 확립되면서 "질병을 신체의 부분적 현상으로 축소시켰다. 그리고 세균을 발견하여 병의 '실체'를 확인하 18-19세기, 항생제와 각종 첨단장비를 발명해 병의 실체에 직접 접근할 수 있게 된 20세기를 거치면서 건강은 점차 '질병의 부재'를 뜻하게 되었다.

(.....)

하지만 진화론적 관점에 의거하면 기본적으로 정상적인 몸의 상태라는 건 있을 수 없다.

진화란 거창한 설계하에 이루어지는 장엄한 작업이 아니라, 국소적 차원에 따른 우연한 변화들이 뒤엉킨 비뚤비뚤한 세계다.

이런 과정속에선 무엇이 정형이라 규정할 수가 없다. 또 인간은 질병이 있음으로 해서 고통을 받기도 하지만, 그 질병 때문에 목숨을 유지할 수도 있다.

<아파야 산다>의 저자 샤론 모알렘에 따르면 혈색증이나 당뇨는 분명 치명적인 질병이지만, 인간은 이 병들이 있었기 때문에 페스트를 이겨 내고 빙하의 추위를 견뎌낼 수 있었다.

결국 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병이 "있음으로 해서" 내가 살 수 있는 것이다.

 

 

------------------------

 

 

공염불 정도로 치부하느냐,

공감하긴 하는데, 모든 내용을 은유와 상징으로 받아들이느냐.

저자는 이 2가지 반응에 다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공염불로 치부하지 않는 사람도 인간과 우주 사이의 긴밀한 연관성에 대해 깊이 공감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헛다리를 짚고 온갖 신비주의적 망상을 싹틔운다고 우려한다.

우주에 지수화풍(地水火風)이 있듯이 곡기에 지수화풍, 음양오행의 기운이 다 담겨있고, 자신의 몸이 곧 자연이고, 우주임을 사무치게 깨달아야만 동양의학을 이해할 수 있다.

 

암에 걸린 사람들이 "질병은 죽을때까지 안고 가는 친구다"라는 말.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죽음 앞에서 첨단 의료 시술을 거부하고 자연으로 들어가는 이의 내면적 고뇌와 그 이면의 통찰도 

함께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이정호 그림 / 알마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질병을 처음으로 병력이라는 맥락에서 바라본 사람은 히포크라테스였다.



인간미 넘치는 임상체험을 글로 남기는 습관은 19세기에 절정을 이룬 후 신경학이라는 객관적인 과학의 도래와 함께 쇠퇴하였다.


겉으로 나타나는 장애은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종종 거짓말쟁이나 얼간이로 취급된다.
우리 사회에서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숨은 감각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같은 취급을 받는다.



'열등한'반구라고 불리는 멸시를 당할 정도로 우반구에 대한 연구가 소홀하게 다루어진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좌반구의 손상 부위와 그에 따른 증상을 밝혀내는 것이 비교적 쉬운 일이었던 데 반해, 우반구의 각 영역에 해당하는 증후군은 알아내기가 어렵다는 사실이었다.
우반구는 좌반구보다 좀더 '원시적'인 것으로 비하되곤 했다.
반면 좌반구는 인간의 진화가 만들어낸 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 주장이 옳다.
좀더 정교하고 전문화되어 있으며 영장류의 뇌, 특히 인간의 뇌에서는 가장 나중에 발달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을 인식하는 능력 즉 생명체가 생존하는 데 반드시 있어야 할 능력을 담당하는 것은 우반구이다.



우반구를 연구하는 일이 어려운 까닭은 환자 스스로 자신의 증상을 알 수가 없고 게다가 외부 관찰자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반구 증후군에 시달리는 경우, 환자 본인은 자기 자신에게 일어난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기가 어렵다.
불가능하다고 말해도 좋다.



판단은 고등한 생활이나 정신을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능임에도, 고전적인(계량적인) 신경학에서는 무시되거나 잘못 해석되어 왔다.


우리는 다리나 눈을 잃으면 다리가 없고 눈이 없다는 사실을 의식한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면 그 사실 자체를 모른다. 왜냐하면 그것을 깨달을 자신이라는 존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사물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그것이 너무도 단순하고 친숙하기 때문에 우리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늘 눈앞에 있기 때문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가장 기본적으로 탐구해야 하는 것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법이다. - 비트겐슈타인
(....)
자기 몸을 통제하고 움직이는 것만큼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이 우리에게 또 있을까? 그러나 그런 일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데다 아주 익숙한 일이기 때문에 정작 우리는 그것에 대해 관심도 갖지 않는다.
(....)
고유감각이야말로 매우 중요한 제육감이다. 그것이 없으면 몸은 느낄 수 있는 실체이기를 멈추고 본인 자신은 자기의 몸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우리 스스로 자부심을 느껴도 될 만한 오감이 있다.
그리고 그 오감 덕분에 감각세계를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오감 말고도 다른 감각이 있다. 그 비밀스러운 감각은 제육감이라는 것이다. 오감만큼이나 중요한 것이지만, 제대로 인정도 대접도 못 받고 있다.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으로 발휘되는 이 제육감은 역사적으로는 상당히 늦게 발견되었다.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이를 가리켜 막연히 '근육감각'이라고 불렀다.


1885년 샤르코의 제자인 질 드 라 투렛은 놀라운 증후군에 대해 발표했다.
그 중후군은 발표되자마자 바로 투렛 증후군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
투렛 증후군을 앓는 환자 역시 뇌 속의 흥분성 전달 물질, 특히 도파민 과잉 상태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중독이나 병에 의해 해방과 각성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정신과 상상력은 무뎌진 상태로 잠들어 있다는 사실, 그 얼마나 역설적이고 잔인하며 아이러니한 일인가!


실제로 '길거리 신경학'에는 존경받을 만한 선구자들이 있다.
그 가운에 한 사람인 제임스 파킨슨은 찰스 디킨스보다 40년 전이나 앞서 런던의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관찰했다.
그는 후에 자신의 이름이 붙게 된 병을 진료소가 아니라 런던의 혼잡한 길거리에서 발견했던 것이다.
사실 병원 안에서는 파킨슨병을 제대로 보거나 이해하기가 불가능하다. 원초적이고 충동적인 행동, 경련, 온몸의 마비현상, 도착증 등 이 병 특유의 성질이 충분하게 드러나는 것은 복잡한 상호작용이 일어날 수 있는 길거리에서이다.
파킨슨병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생활하는 장소를 관찰해야 하는 것이다.



앞에서도 인용했지만 흄은 이렇게 썻다.
감히 말하자면 우리는 무수하고 잡다한 감각의 집적 혹은 집합체에 불과하다.
그러한 감각은 믿기 어려운 속도로 차례차례 이어지고 움직이고 변화하고 흘러간다.
흄의 생각대로라면 개인의 정체성은 허구에 불과하다. 우리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감각 혹은 지각의 연속에 불과한 것이다.


도스토옙스키는 때때로 '정신발작'을 일으켰고 발작시에는 '복잡한 정신 상태'가 되었다.
그 점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처럼 건강한 사람들은 우리와 같은 간질 환자들이 발작을 일으키기 직전에 느끼는 행복감을 상상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지극한 행복감이 몇 초 만에 끝날지 아니면 몇 시간, 몇 달 동안 계속될지는 우리도 모릅니다.

그러나 설령 인생에서 맛볼 수 있는 모든 기쁨을 준다고 해도 이것과 바꿀 마음이 없는 것만은 확실합니다.(T.알라주아닌,1963년)


피아제가 어린아이의 마음을 연구해서 밝혀낸 것과 레비스트로스가 미개인의 마음을 연구해서 밝혀낸 것은, 형태가 다르기는 하지만 지적장애인들의 마음과 정신세계에서도 그대로 인정된다.


우리는 환자의 결함에 너무 많은 주의를 기울였던 것이다. 그래서 변화하지 않는, 상실되자 않고 남아 있는 능력을 거의 간과했다.
내게 이 점을 처음으로 깨닫게 해준 사람이 리베카였다. 우리는 소위 '결함 연구'에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여서 '내러톨로지(서사학)쪽에는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내러톨로지'야말로 지금까지 무시되었지만 반드시 필요한 '구체성의 과학'인 것이다.



니체는 "철학자는 우주에 내재한 교향곡의 메아리를 자기 내부에서 들은 뒤, 이를 관념의 모습으로 뒤바꾸어 다시금 외부세계로 투사하려는 사람이다"라는 글을 남겼다.



---------------------------------------------------------------




인간의 의식과 두뇌 기능을 이렇게 소설로서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는 올리버 색스의 능력이야말로, 
평소 뇌 질환으로 고통을 겪는 이들을 치료하는 만큼이나 훌륭한 것이다.
우린 겉으로 드러난 외상과 그에 따른 불편한 거동에만 반응할 뿐 내상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내상 중에서도 뇌 속의 결핍이나 과잉의 결과물인 병력적 상태뿐 아니라 내면의 감추어진 부분까지 파고들어 질병 때문에 달라진 인간의 존재방식까지 들여다 보게 해 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가장 큰 보람이 아닐까.
병은 곧 개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다.
개인을 이해하는 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병력, 그리고 그에 따른 증상, 특히나 정신과 질환 쪽에 속하는 뇌 신경의 내밀한 오류들.
책을 읽는 것이 '공감'능력을 키우는 것이라면
상대의 병을 이해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공감' 의 첫번째 단추이지 않을까?






덧붙임.
많은 대중들이 이 책을 읽게 하기 위해서는 
비슷한 사례의 일화들을 과감히 삭제,  분량을 줄이는 것이 낫지 않을까.
물론 다 훌륭한 임상 스토리이긴 하지만 말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9-09-21 1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몸의 증상을 말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몸의 증상을 이야기하는 것도 곧 내 몸을 이해할 때 말할 수 있는 삶의 서사예요. 그런데 건강을 강조하는 사회는 그런 이야기를 ‘개인의 건강 불만족’ 정도로 생각합니다. 이러면 건강한 사람은 아픈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해요.

북프리쿠키 2019-09-22 14:16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시루스님.
사람들은 남의 아픈 이야기를 듣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방송에 응급실이나 환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보면..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절로 나는데.
그때 뿐이자나요. 남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다가서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의 몸상태에 대해 귀를 기울이는 것 또한 함께 하는 삶의 하나겠지요.~
 




p.325 

고구려, 백제가 망한 뒤에 신라 역사가들이 그 두 나라 인물의 전기적 자료를 말살해 버리고 오직 김유신만을 찬양했다.

<삼국사기>(열전)에 김유신 한 사람 전기가 을지문덕 이하 수십 명 전기보다도 그 양이 훨씬 많고, 부여성충 같은 이는 그 열전에 끼이지도 못했다.

<김유신전>에 화려하고 아름다운 말이 많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p.326

<삼국사기>(김유신전)을 보면, 유신은 전략과 전술이 모두 남보다 뛰어나 백전백승의 명장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대개는 그 패전은 가려 숨기고 조그만 승리를 과장한 거짓 기록들이다.




p.328

김유신은 지혜와 용기 있는 명장이 아니라, 음험하고 사나운 정치가요, 그 평생의 큰 공이 싸움터에 있지 않고, 음모로 이웃 나라를 어지럽힌 사람이다.





-----------------------------------------


가끔씩 흥미롭게 보는 TV 프로그램 선을 넘는 녀석들(리턴즈)에서 경주편을 방영하였다.

설민석쌤과 패널 몇명이서 경주 유적지를 찾아가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내용이었는데, 마지막에 김유신묘를 찾아가 

설민석쌤이 김유신에 대하여 특유의 감동적인 화법으로 일화를 풀어냈다.

완전 영웅의 탄생이었다. 사실 그 영웅담 자체만으로도 평소에 잘 몰랐던 역사적 사실을 공부하기에는 충분했을 것이다.

TV를 꺼고 조선상고사를 뒤적여 김유신을 찾아보았다.

발췌한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에 나오는 김유신에 대한 평은 설쌤의 이야기에 살짝 감동을 받은 나를 머쓱하게 하였다.

설쌤이 김유신 장군에 대한 기록을 그 사리에 맞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분별하고 검토할 만한 실력이 없진 않았으리라.

정해진 방영 시간내 다루어야 할 내용들을 편집하고 그 내용의 방향성,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감안하여 또 다른 김유신의 평가를 내리기엔 

프로그램 성격상 맞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눈물까지 그렁그렁해져 열변을 토한 설쌤에게 약간 배신감이 들었다. 역시나 스타강사일뿐 학자는 아니지 않은가..이런 자괴감?

<조선상고사>의 평을 읽어보지 않았더라면, 나 또한 찬양일변도로 김유신의 모습이 머리속에 박혀 있지 않았을까.

우린 이토록 미디어에 압도당하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다시 한번 느끼며, 애정해 오던 프로그램에 살짝 아쉬움을 토로해본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19-09-16 07: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방송인에게 재미 이상을 기대하면
안된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주는 케이스였다고 생각합니다.

북프리쿠키 2019-09-16 08:26   좋아요 0 | URL
네 레삭매냐님 예능은 예능일 뿐이라는 사실을 또 깜빡했네요.^^

cyrus 2019-09-16 1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등학생 때 국사 선생님이 사극을 보면 국사를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맞긴 한데 저는 그 말에 100% 동의하지 않아요. 시청자들이 좋아할만한 이야기와 장면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어 사극을 제작하면 역사적 인물에 대한 긍정적인 면이 지나치게 부각될 수 있어요. 이런 보정 작업(?)이 너무 심하면 진실을 왜곡하는 내용까지 나오게 되지요... ^^;;

북프리쿠키 2019-09-20 15:00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ㅎㅎ
동의보감 관련 책을 읽다보니 허준의 스승인 유의태. 이 분도 실제 인물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예진아씨는 두말할 것도 없구요..^^;
그리고 스승을 직접 해부한 사건이랑, 해부학이 마치 과학적 의술의 총아로 인식되게끔 하는 오류도 우리에게 남기더군요..항상 책을 읽을때 사실 확인은 필요할 듯 합니다..
 
천년의 질문 3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코올에 중독되고, 마약에 중독되고, 도박에 중독되면 그 중독들이 고치기 어렵듯 권력 중독도 치료약이 없었다.

단 한가지 방법이 있었다. 고질병이 죽어야 고쳐지듯 권력 중독도 완전히 잃어야 고쳐지는 것이다.




"정치인 3대 거짓말?"

"아 거 있잖아. 모든 권력자들이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해대는 세 가지 거짓말. 국민위해 일한다, 돈 안먹는다. 거짓말 안한다."




"정치인들이 가장 무시하는 것은 흩어져 있는 국민이고,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뭉쳐서 외치는 국민입니다."




"국민을 개돼지라고 했다가 파면당한 교육부 국장 있잖아요. 그 사람이 억울하다고 소송을 낸 것도 뻔뻔하기 이를 데 없는데, 판사가 승소 판결을 내려 한 직급 낮춰서 복직시킨 것은 도대체 뭡니까. 그 판사야말로 국민을 개돼지 취급한 국민 무시의 극치 아닌가요?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죠?"





경제 민주화는 곧 재벌 해체다. 재벌 해체는 경제를 망치고, 모두 잘 살 수 없게 된다. 이것은 바로 재벌쪽에서 만들어낸 음모이고, 그 거짓말을 기업들의 광고에 얽매인 대다수 언론들이 줄기차게 반복해서 주입하는 바람에 국민 대중들은 막연한 두려움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악의적 음모부터 깨야 합니다. 경제민주화는 재벌 해체가 아니라 재벌 개혁입니다. 재벌 개혁은 한 마디로 기업을 선진국 수준으로 투명하고, 합법적이고, 양심적으로 운영하라는 것입니다.





그 어떤 정권에서도 '축적의 시기가 끝나고 이제부터는 분배의 시기다!'라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참고 견디며 묵묵히 열심히 일했던 국민들만 배신당하고 사기당한 거지요. 그 사기의 명백한 증거가 30대 기업이 가지고 있는 사내유보금이 900조가 넘는데, 그들 기업의 비정규직이 평균 42퍼센트라는 사실입니다.


----------------------------------------------------------




아쉬웠던 3권이다.

마무리가 급해 보였고, 왠지 소설보다는 정치부 기자가 쓴 칼럼 성격의 글 느낌이 풍겼다.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들 모두가 가슴에 와 닿지 않은 것도 아니고 책을 다 읽고 나서 무언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지 않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조정래 작가에게 아쉬움이 남는 걸까.

1,2 권에 비해서 3권은 전형적인 인물이 그 전형성을 완전히 굳혀 독자들에게 정답은 바로 이런 것이다를 줄기차게 설파하고 있는 느낌?

국민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다가,

독자에게 소설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될 줄은.

그럼에도 존경하는 작가 중에 세 손가락안에 드는 작가라 또 다른 작품으로 만나게 될 날을 기다린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알벨루치 2019-09-15 0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명절 잘 보내셨어요? 전 이 책 빌려읽으려는데 늘 갈때마다 대출중이라 기다리고 있네요 ㅎㅎ 편히 주무세요

북프리쿠키 2019-09-15 16:26   좋아요 1 | URL
예 맞아요. 저도 대출예약이 밀려있어서 전자책으로 다 읽었네요~잘 계시죠 ^^
 

 

 

p4.

나의 병은 나의 모든 습성을 바꿀 수 있는 권리를 나에게 부여하였다.

(프리드리히 니체 <이 사람을 보라>)

 

 

 

 

p5.

병처럼 낯설고 병처럼 친숙한 존재가 있을까.

병이 없는 일상은 생각하기 어렵다.

(...........)

병은 저 먼곳에서 우연히, 실수로 들이닥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한 메시지를 들고 찾아오는 전령사라는 것을,

하지만 이제껏 나는 그 봉인조차 뜯어 보지 않고 쓰레기통에 넣어버렸다는 것을.

(..........)

살만하다,는 게 늘 문제다.

계급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웬만큼 살 만하면 인간은 자신이 얼마나 무지하고 얼마나 게으른가를 정직하게 볼 기회를 놓쳐 버린다. 그래서 아파야 한다. 아파야 비로소 '보게'된다.

 

 

 

p6.~p7.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마주치다 보니 몸이야말로 그 사람의 과거와 미래를 고스란히 담지하고 있는 보고(寶庫)임을 깨닫게 된다

(..........)

그런데 정말 변하지 않는 것은 따로 있다. 사람의 습관이다.

습관처럼 지독하고 습관처럼 확고부동한 것이 또 있을까.

어떤 이념과 명분도 이 습관의 중력장을 해체하지는 못한다.

어떤 논리와 이성도 습관의 리듬을 절단하기란 거의 물가능하다.

그래서 어느 순간, 이런 탄식이 터져 나온다. "사람이 어떻게 변하니?"

처음엔 타자들의 몸에서 그걸 발견한다.

그런데 점차 그 거울에 내 모습이 투사되기 시작한다.

참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타자들의 욕망과 습관이 전부 내 안에 있다.

아니, 내 몸이 저토록 무겁고 저토록 끔찍한 존재였다니.

(.........)

니체가 왜 습속의 혁명을 부르짖었는지, 루쉰이 왜 중국에선 의자 하나를 옮기는데도 조물주의 채찍이 필요하다고 절규했는지를 결코 실감하지 못했으리라.

습관의 거처가 몸이다. 공동체란 이 이 몸들이 자신의 정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격전지다.

 

 

 

p.8

그만큼 <동의보감>으로 가는 입구는 매끄럽다

하지만 그 입구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눈앞에 엄청난 고원이 펼쳐진다.

병은 하나의 단서에 불과하다. 거기에는 몸과 생명, 그리고 자연과 우주가 생생하게 살아 숨쉰다.

하여, 그것과 접속하는 순간, 앎의 모든 경계는 해체되고 만다.

<동의보감>을 만나고 내게 벌어진 최고의 사건은 바로 그것이었다.

천문학과 물리학, 불교와 인류학, 고대 그리스철학과 생물학 등 이 모든 것에 대한 '앎의 의지'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모든 앎들 사이의 견고한 장벽이 눈녹듯 사라져 버린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아는 만큼 들리고, 아는 만큼 느끼고 아는 만큼 살아간다.

 

고로, 앎은 운명이다!

 

----------------------------------

 

고미숙님의 2번째 책이다.

 

꾸준히 좋지 못한 신호를 주는 건강검진 결과에 대해 합리화하고,

나태와 게으름으로 동글동글하게 되어버린 몸의 모양에 대해 지극히 관대하고,

질병으로 힘든 싸움을 겪는 이들에게 평소에 건강좀 챙기지.라고 내로남불의 전형이 되어버린 나를,

 

이제는 아끼자.

그리고 외면하지 말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61 | 62 | 63 | 6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