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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미술 이야기 - 피렌체편 - 김태권의 미술지식만화
김태권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시오노나나미 여사의 십자군이야기와 김태권 작가의 십자군이야기(만화)를 비교해보며 매우 흥미롭게 읽었던 적이 있다. 그 때의 감흥을 못잊어 김태권 작가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다. 특히나 그의 역사를 보는 관점과 패러디의 향연은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풀어 나가는데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서울대 미학을 전공한(진중권과 같지만 약간 다른) 실력과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읽는 언어감각을 지닌 김태권 작가는
1546년 35세의 화가 <조르조 바사리>가 펴낸 책 [르네상스 미술가 열전](*원제:탁월한 화가, 조각가, 건축가들의 생애)을
세부적으로 참고하여 바사리를 르네상스 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나보내 탐정의 역할을 맡긴다.
그가 독자의 궁금증을 대신 짊어지고, 마치 추리를 하듯이, 혹은 퍼즐을 맞추듯이 조각조각 단편들을 결합하여 르네상스의 풍경을 스케치해내듯이 말이다.
오늘날까지도 이 책은 미술사학이라는 학문의 효시로 여겨지고 있다. 그 시대에 최초로 ‘르네상스‘라는 명칭을 부여한 것도 바로 바사리였다니, 대단한 책임에 틀림이 없다.
사실 이 책은 몇달간 띄엄띄엄 읽다가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완독하고 자신감이 붙어 읽었더니 확실히 풍부한 시야로 그림을 볼 수 있었다.
특히나 피렌체 출신 미술가는 워낙 유명하여 익숙한 그림이 많은지라 더 흥미로웠다. (보티첼리, 도나텔로, 레오나르도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미술에 대한 책으로 리뷰를 쓸려니 도판을 올리고 싶으나
북플로 작업하여 글로만 감상을 적는 한계를 이해해주셨음 한다.ㅠ.ㅠ(북플로 글을 써도 방법이 있는지요? 행여나..)
* 배틀1 : 도나텔로 vs 브루넬레스키(승)
르네상스 최고의 조각가들의 싸움이다.
둘은 나무로 십자가상을 조각하여 도나텔로가 패배를 인정하며
브루넬레스키의 승리로 대결을 마감한다.
<도나텔로>
<브루넬레스키>
* 배틀2 브루넬레스키 vs 기베르티(승)
둘은 세례당 청동문 프로젝트를 노리고 <이삭의 희생>이라는 주제로 청동 부조를 제작하여 격돌한다.
우아미와 적은 제작비로 기베르티의 승리로 대결을 마감한다.
<브루넬레스키>
<기베르티>
˝탁월한 인물이 태어날 때면, 자연은 종종 그의 라이벌을 같이 시대 이웃한 지역에 내곤 한다. 그들끼리 경쟁과 재능으로써 서로에게 도움이 되도록 말이다.-64쪽(바사리의 마사초전기에서)
하지만 기베르티의 독무대가 될 듯한 시대도 두오모공사를 혼자서 총 지휘하게 된건 아이러니하게도 브루넬레스키였다.
츠지히토나리와 에쿠니가오리 부부가 쓴 <냉정과 열정사이>로
유명해진 바로 그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이다.
이탈리아를 가면 반드시 가고 싶은 곳 중의 하나였다.
와이프와 결혼초기 남녀의 입장에서 쓴 이 책을 서로 번갈아보고, 감흥이 채 가시지 않은 채 영화까지 봤으니 OST와 어우러진 그 때의 아름다운 추억을 두오모 성당의 꾸불꾸불한 꼭대기의 계단을 밟으며 현실화시키고 싶은 열망의
발로때문이리라.
최근 들어 가장 많이 봤던 작품 중의 하나를 꼽으라면
보티첼리의 작품이다.
이윤기의 그리스로마신화에 등장하는 바로 유명한 그림.
<비너스의 탄생>이다.
당시의 천재 폴리차노는 이렇게 묘사했다.
‘장난꾸러기 제퓌로스 신은 조개껍질을 해변으로 둥둥 떠미네, 그대는 보리라, 반짝이는 여신의눈을, 하늘도 함께 웃음짓누나. 여신은 오른손으로 머리를 만지고, 왼손을 내려 부끄러운 곳을 감추네. 님프들이 여신을 영접하네, 여신께 별과 같은 망토를 입혀드리네.‘-88쪽
이 그림과 비슷한 브리마베라(봄)이란 그림에도 묘사를 남겼다.
‘복수를 이룬 사랑의 신은 검은 하늘을 날아, 그곳은 미의 여신들이 즐거워 머리에 화환을 두른 곳, 그 곳은 바람의 신 호색한 제피로스가 꽃의 여신 플로라의 뒤에 날아다니는 곳, 봄날(프리마 베라)은 사라지지 않는다.-86쪽
또 하나의 흥미로운 그림이 있었다.
물론 <서양미술사>에서도 봤던 그림이었다.
작품<동방박사의 경배>였다.
이 책의 설명에선 오른쪽 끝에서 정면을 바라보는 사람이 보티첼리이고, 재미있는 건 메디치가문의 3대의 인물이 한 그림에 다 들어가 있다는 서술이었다.
하지만 김태권 작가는 그림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권위있는 저작물을 바탕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보티첼리야말로 수수께끼로 가득한 대가라는 말로 어떤 도상에 대해서도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질문을 던진다.
특히나 프리마베라 그림을 두고 학자의 산문, 철학자의 시 등을 인용하며 등장인물이나 수많은 꽃들의 상징에 대해서
확정적인 단언을 하지 않고 의문의 메시지를 남긴다.
아, 미술이란것도 사실 그 당시 작가의 머릿속에 들어가보지 않으면 적시한 문헌이나 증거 이외에는 그 무엇도 100%단정지어서는 안되는구나 하는 감상의 자세를 배웠다.
드디어 로렌초 시대를 맞이하여 학자와 예술가를 후원하는 일에 적극적인 황금시대를 연다.
˝로렌초는 미켈란젤로를 자기 친아들처럼 키우겠다고 약속했고...소년에게 자기 저택의 방을 내줬다. 미켈란젤로는 언제나 로렌초의 친아들이나 신분높은 측근들과 함께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었다.-119쪽(바사리의 미켈란젤로 전기중에서)
24살의 나이에 만든 시대의 걸작 <피에타>를 자세히 보여준다.
‘이 조각이야말로, 미켈란젤로가 자기 이름을 새겨넣은 유일한 작품이다...미켈란젤로는 촛불과 끌을 가지고 예배당에 몰래 들어가서, 성모 마리아가 두른 띠에 자기 이름을 새겨넣었다.-바사리 163쪽
평생 여러 점의 피에타(자비를 베푸소서란 뜻)를 제작하는데
1972년 라슬로 토트라는 정신병자가 ˝나는 죽음에서 되살아난 예수 그리스도다˝라고 소리치며 망치로 여러 차례 내리친 사건이 있었다 한다.
겨우 복원하여 그 다음부터 유리로 막아놓는 바람에, 로마 바티칸에 가도 가까이에서는 볼수 없다 ㅠ.ㅠ
미친노무시키..
그래도 바티칸에서 공인하는 레플리카(복제품)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다고 하는데, 그 중 한점이 우리나라 분당 요한 성당에 모셔져 있다하니 다행스럽다.
그리고, 미켈란젤로는 밧줄에 묶여 피렌체에 도착한 4m정도의 대리석을 가지고 그 유명한 <다비드 상>을 조각해낸다.
바사리는 누가 조각을 하려다 상처만 낸 버려진 이 대리석을 갖고 다비드 상을 창조해 낸 미켈란젤로에 대해 ‘미켈란젤로는 죽었던 것을 되살려내는 기적을 행하였다‘고 칭송했다.
그림을 확대하여 눈 모양을 보면 검은 눈동자가 하트모양이다 ㅎㅎㅎ. 음영을 표현하려니 하트모양이 되었는데, 정말 신기했다. 본래 하트뿅뿅의 의미가 아니라, 골리앗을 잡기 위한 이글이글한 눈빛을 표현하기 위해 하트모양이 되었다니, 참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16세기 최고의 대결을 보자.
서로 심하게 경멸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vs 미켈란젤로의 대결이다.
흔히 그라치아(우아하고 고운 그림) vs 데리빌리타(무시무시한 힘)의 매력의 싸움이라 한다.
나이가 많은 레오나르도다빈치의 사후 이들은 다시
그라치아를 이어받은 라파엘로 vs 미켈란젤로로 피렌체에서 무대를 로마로 바꾸어 계속된다니 미술사의 흥미는
여타 다른 책들을 뛰어넘는 구석이 있다.
둘 중에 나의 취향을 고르라면, 미켈란젤로를 꼽겠다.
지나치고 무모한 도전정신으로 물감의 활용을 남용한 나머지 <앙기아리 전투>벽화에 물감이 녹아내리고, <최후의 만찬>에 검증 안된 물감을 사용하여 그림이 상한 건 둘째치고라도, 스푸마토 기법(눈꼬리와 입가를 미묘한 색조와 그림자에 숨기는 기법)을 활용하여 역작 <모나리자>를 창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습작이 많아 미완성의 작품이 많은 이유에서이다. 물론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와 <다비드 상>이 워낙 내 눈엔 너무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여러분은 미켈란젤로의 박력인가요. 아니면 레오나르도와 라파엘로의 우아함인가요?
<미완의 천재 레오나르도를 위한 변명>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완성한 작품보다 완성하지 못한 작품들이 훨씬 많습니다. <스포르차 기마상>은 십여 년 동안 붙들고 있었지만 거의 진행하지 못했고, <동방박사의 경배>니 <성 안나와 성 요한과 성모자>니 하는 걸작들은 평생 동안 밑그림만 그렸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요즘 말로 ‘먹튀‘하는 작가였을까요? 그렇다고 하기에는 레오나르도는 매사에 너무나 열심이었습니다. 오히려 모든 사소한 일에 지나치게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그의 문제였을지도 모릅니다. 바사리가 쓴 레오나르도를 위한 변명을 읽어봅시다. "우리는 지나친 도전정신 때문에 그의 위대하고 비범한 재능이 고초를 겪었닥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그의 작품들이 대부분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진정한 이유는 탁월함을 넘어서는 탁월함과 완벽함을 넘어서는 완벽함을 추구하던 그의 노력 때문이리라. ‘큰 열정은 작업을 저해한다‘고 페트라르카가 읊은 것처럼 말이다"(바사리,<레오나르도 전기>) 그런데 정작 바사리는 모든 마감을 칼같이 지키던 모범 작가였단 말이죠. 레오나르도를 위한 그의 변명에는 어딘지 묘한 어조가 배어 있습니다. 바사리는 레오나르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요? -2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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