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인 내게는 두 종류의 책이 있다. 읽을 이유가 보이는 책과 보이지 않는 책들. 아무리 좋다고 광고와 추천이 날아다녀도 어른이 된 이제는 이 책이 나에게 무슨 이유로 다가오는지가 중요하다.딸 아이에게 내가 권하는 책도 그러할 것이다. 매번 설명해주지는 않지만 의외의 책을 함께 읽고, 어떤 책은 나만 읽는다. 나도 잘 모르는 내 기분을 연령별 권장도서라고 해서 모든 걸 시원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초등학생만의 사랑과 우정, 관계 스트레스의 모양새 같은 건 아무래도 탐독하면서 예습하듯 익히는 모습를 보고는 한다.남유하 작가의 나무가 된 아이는 내가 먼저 완독을 했다. 아이가 읽던 걸 가져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한 편씩 읽었다. 읽을수록 이 책은 단숨에 읽을 책이 아니라고 느꼈다. (6편 뿐이라서, 단편이라서 아쉬웠다. 한 번은 시간이 좀 남아서 길게 읽고 싶었는데 이렇게 강렬한 이야기가 벌써 끝났다는 게 아쉬운 점도 있었다. ) 어린이문학을 읽을 때는 우리집 어린이들의 반응을 살피거나 스케줄 따라 후다닥 읽게 되는 편이었는데 이번 책은 기존의 내 생각을 완전 바꿔버렸다.사실 코로나 시대를 살면서 인류가 절반의 SF적인 변화를 겪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 속의 6가지 이야기들은 그런 우리의 상상을 잘 다듬어 보여주었다. 이상하고 놀라운 광경을 아이의 눈으로만 보게 되고(나무가 된 아이), 갑자기 아이 눈에 들어오게 되는데(구멍 난 아빠) 주인공은 너무나 외로운 상황 속에 빠진 것이지만 그게 어른이 되는 과정인 것을 아는 "읽는 어른"인 나는 애처롭게 볼 수밖에 없었다.그 시절에 나도 겪었던 일들을 참 잘 묘사했다는 단순한 평가를 넘어 남유하 작가는 나만 알던 나의 이야기를 새롭게만들어 내 경험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다. 내가 외로웠던 것은 그런 감정이 있어서였구나, 내가 고민했던 것은 그런 힘이 자라고 있어서였구나 하고 책 읽는 중간중간에 몇 번이나 작가의 이름이 써진 책날개로 돌아가 멍하니 보고 또 보고 있었다.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작가는 무슨 밥을 먹고 글을 쓰는지 궁금해서 들여다 보듯이. (이 집 밥 참 맛있네..)요즘 책 읽는 어른에게 김초엽 작가가 있다면, 어린이들에게는 남유하 작가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특히 어린이책 읽는 어른들에게는 남유하 작가가 있다. (이 부분이 사실 제일 중요하다.) 오늘은 딸의 책상 위에 이 책을 다시 올려놓고 아이의 시간을 가만히 기다려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