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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 인문학 - 프랑스 가스트로노미의 역사
김복래 지음 / 헬스레터 / 2022년 1월
평점 :
광주일보_[신간] 미식 인문학
http://www.kwangju.co.kr/article.php?aid=1644505200733460026
[신간] 미식 인문학
르네상스 시대의 식탁을 보여주는 미하일 다마스키노스의 ‘가나의 혼인 잔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의 셰프 자크 라멜루아즈의 섬세한 프레젠테이션. <헬스레터 제공>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의 셰프 자크 라멜루아즈의 섬세한 프레젠테이션. <헬스레터 제공>
“프랑스에서 식탁은 하나의 예술이고 식탁 예술은 하나의 문화이다.”
한번 정도 들어봤을 말이다. 그만큼 프랑스인들은 잘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이 대단하다. 미식 예술은 수세기에 걸쳐 진화를 거듭했다.
17세기 절대권력을 쥔 루이 14세는 위대한 프랑스 요리 전통을 세웠다고 알려진다. 최고 수준의 요리법과 미식법인 ‘오트 퀴진’을 주창했다. 요리 대가들은 음식의 맛, 색, 장식을 위해 상상력을 발휘했다.
프랑스에서 숭배 문화가 되다시피 한 미식은 비옥한 땅에서 비롯됐다. 풍요로운 자연 유산이 베푼 은전 때문이다. 또 하나는 프랑스인의 조상인 골(Gaul)족 전통 문화에서 연유한다. 그들은 회식문화가 발달했다. 특히 루이 14세의 휴양지인 베르사유 궁에서는 화려한 연회가 벌어졌다. 화려함의 극치를 이뤘을 것이라는 데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세계인들이 인정하는 프랑스의 ‘미식’(美食)을 다룬 ‘미식 인문학: 프랑스 가스트로노미의 역사’는 흥미로운 책이다. 저자는 안동대학교에서 유럽문화와 유럽경제를 강의하는 김복래 교수로 ‘프랑스가 들려주는 이야기’, ‘재미 있는 파리 역사 산책’, ‘프랑스 식도락과 문화정체성’ 등의 다양한 저서를 펴냈다. 부제에 들어있는 ‘가스트로노미’라는 어휘는 미식이라는 뜻이다.
프랑스 미식은 지난 2010년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을 만큼 세계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미식은 일생에서 중요한 순간인 출생과 결혼식, 등을 축하하기 위한 사회적 관습이었다. 여기에는 ‘미각과 시각, 후각, 촉각 등 4대 감각이 하나로 창조된 숭고한 예술 행위’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다시 말하면 프랑스 미식은 ‘집단적인 통과의례’와 관련이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줄리아 차일드(1912~2004)라는 미국 셰프의 말이 환기된다.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관점에서 프랑스의 음식문화를 표현했다. “나는 갑자기 요리가 풍요롭고 층층으로 쌓여 끊이지 않는 매력을 발산하는 주제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것을 기술하는 최상의 방법은 내가 프랑스 음식, 즉 미각과 요리의 과정, 역사와 무한한 다양성, 엄격한 규칙, 창조성, 멋진 사람들, 설비, 그러한 의식(儀式)들과 사랑에 빠졌다는 것이에요!”
2010년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인들의 하루 평균 식사 시간은 2시간 22분이다. 지난 1983년에 비교해 13분이나 연장될 만큼 식사 시간이 길다. 조리와 설거지 등 관련된 가사노동을 더하면 훨씬 더 늘어난다.
저자는 프랑스에서는 음식이 ‘집단’적인 문제에 속한다고 설명한다. ‘공유 사상’이 식사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공유사상에 근거하기 때문에 “프랑스인들은 그들의 식사 의례의 정석에서 벗어난 자들에 대하여 그다지 참을성이나 인내심이 없는 편”이라고 보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식사와 식사 도중에 나누는 행복한 담소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다”고 한다. 그로 인해 균형 잡힌 저칼로리의 다이어트 식단을 옹호하는 이들조차도 음식을 공유하는 문화에 대해선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책에는 향신료의 시대였던 중세 식탁에서 식탁의 르네상스 시대인 15~16세기의 음식 문화가 소개돼 있다. 중세기 식도락의 가장 자극적인 ‘신맛’은 설탕이 나오기까지 대세를 지배했다. 지금과 같은 식탁 예절은 르네상스 시대 정착됐는데 테이블 매너, 포크와 냅킨, 개인 접시가 이 시기에 등장했다.
17~18세기는 요리의 성문화(成文化)가 이루어진 시기였다. 수준 높은 요리법과 미식으로 대변되는 근대 요리혁명이 펼쳐졌다. 프랑스혁명과 미식이 탄생한 19세기는 식도락의 황금기로 레스토랑과 식탁 위의 평등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20세기 이후 프랑스 요리는 국제화 됐으며 미식과 관광이 결합되는 양상을 낳았다.
미식은 신의 축복이자 세대를 잇는 문화유산이다. 저자가 책을 쓴 이유는 프랑스 음식문화를 토대로 우리의 문화를 돌아보자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다. “프랑스는 음식 담론과 수준 높은 음식 비평의 성문화(成文化) 작업을 수백 년간 진행해 왔지만, 우리나라의 미식 성문화 작업은 최근 들어 관심을 가져온 게 사실이에요.”
<헬스레터·3만4800원>
입력 2022. 2. 11 [광주일보]
박성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