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고 데이 - 하나님의 모습을 찾아서
구유니스 지음 / 비엠케이(BMK)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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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고 데이

 

-하나님의 모습을 찾아서-

 

Imago Dei

 

 

조르주 루오, 마르크 샤갈, 파울 클레, 오토 딕스, 장 미셸 바스키아

 

20세기 세계적인 화가들의 성화(聖畫)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찾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다!

 

어릴적 인상 깊은 그림 가운데 밀레의 '만종'이라는 그림이 있다. 할아버지 집에 그 그림이 걸려 있었는데 당시 국민학생이지만 무언가 모를 경건함을 느꼈다. 그림에 대한 조예가 깊지는 않지만 보는 것을 좋아한다. 예전 후기 인상파들이 그린 전시회를 가본 경험이 있는데 그 그림을 본순간 압도 되었다고 말할 정도로 그림은 가슴으로 다가와 내 마음의 화폭에 그림을 수놓았다.

 

 

본 책은 20세기 화가들이 그린 성화 30여 점을 저자가 깊이 앙시(仰視)하고 묵상하며 써내려간 신앙고백이자 성화 에세이. 어린시절부터 교회를 다닌 저자는 대학에서 생화학과 약학을 전공하면서 결국 약사로서의 인생을 살지만 평소 미술 작품들을 보는 것을 좋아했기에 지금과 같은 책을 편찮하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영감을 받는

작품을 만나면 가끔 글을 쓴다.

여행지에서 미술관을 둘러보고,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방구석에서 기도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표지에서

 

여기 나오는 작품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성화가 아니다. 즉 교회의 권위를 높여주던 고고한 모습의 성화가 실려있지 않고, ‘인간화한 성화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이 실려있다. 다시 말해 책에 실린 성화들은 교회 미술이 미술사의 중심일 때의 작품이 아니다. 카라바조와 미켈란젤로의 작품 등에서 볼 수 있었던 교회 미술이 15세기르네상스를 기점으로 서서히 쇠퇴하게 되었다. 인본주의가 무르익고 교회 권력이 약해지는 시대적 흐름에서 다시 종교미술을 추구했던 화가들이 나타났으니 바로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들은 그리스도교에 대한 개인의 신앙과 사유의 산물들이기에 그 가치가 크고 남다르다고 보면 된다.

 

 

저자는 단지 그림을 좋아한 사람인데 이 책을 읽어보게 되면 그림을 전공했나고 생각될 정도로 그림에 대한 이해와 신앙적 이해가 겹치면서 매우 탁월한 해설자로서 보여진다. 저자의 이름이 '구유니스'라고 소개되는데 본명인지 예명인지 모르지만 이 이름 속에서도 이미 경건함이 묻어나며 예술의 혼이 묻어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책을 펼치면 첫 번째 작품인 작가 미상의 바다 위의 폭풍, 1020의 그림이 나온다. 그림은 단번에 주인공인 예수님을 부각시킨다. 폭풍우 치는 배에서 예수님이 뱃머리에 잠들어 있는 모습인데 이 모습을 통해 저자는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묵상을 해나간다. 폭풍우를 보고 무서워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왜들 무서워하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고 했는데 여기서 '믿음'은 무엇일까 저자는 질문을 한다. 한참 동안 곰곰히 생각한 결과는 이러하다.

 

그것은 '주님의 세계에 거하고 있다는 믿음, 혹은 주님을 믿으면 능력자가 된다는 것도 아니고, 주님과 거한다고 해서 어려움이 비켜간다는 것도 아닌, 주님의 세계에, 그 초대에 함께하는가에 대한 믿음이 아닐까'라고 묵상을 풀어 놓았다.

 

세상이라는 풍파의 어려움은 누구나 건너간다. 그러나 그때 이 그림을 떠올린다면 이미 주님의 세계에 초대된 자이기에 더이상 제자들처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을 저자는 묵상되어진 것이다.

 

 

두 번째 작품도 인상적이다. 마르크 샤갈의 아브라함, 1931이란 그림이다. 웅크리고 있는 한 남자가 보이는데 아브라함이다. 이 작품은 아브라함이 본토와 친척이 있는고향을 떠나 미지의 땅으로 갈 것을 결정할 때의 모습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이 그때뿐이었겠는가? 아니 우리 또한 이렇게 웅크리고 앉아 고민하는 존재다. 그런데 이렇게만 본다면 물론 각자마다 묵상되어지는 것이 다를 수 있지만 저자가 통찰한 묵상은 왠지 모르게 더 흡수력이 있다.

 

작품의 상단에 있는 천사는 아브라함과 대조적입니다. 눈을 크게 뜨고 입으로 외치며, 온몸을 펼치고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역동적인 모습입니다. 아브라함의 눈에, 우리의 눈에 저 천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저 천사는 보이지 않는 현실인 하나님과 그 나라입니다. 볼 수 있는 현실은 멈추어 있어서 해결의 길이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는 현실는 운동성이 있으며 그 길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 그림이 위아래로 나뉘어 있어서 마치 보이지 않는 현실은 아브라함과 다른 세계를 이루는 것 같지만, 그것은 그를 붙들고 있는 세계이며 지금의 아브라함을 이끌었고, 또한 그 너머를 바라보도록 하는 힘입니다. p.18

 

이 작품에 대해 추가적인 부분이 있는데 샤갈의 고백인지, 아니면 저자 자신이 묵상 되어진 고백인지 모르지만 성서의 말씀을 가져와 본 작품을 더 살려주고 있습니다. 시편 142:3절의 말씀입니다.

 

 

내 영혼이 연약할 때 주님은 내 갈 길을 아십니다.

 

 

저자가 선택한 그림들은 매우 톡특한 그림들이 많이 나열되어 있는데 하나하나가 엄청난 신앙적 사유와 고백이 함축되어진 작품임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림도 그림이지만 화가 개개인의 신앙과 구도의 산물인 성화들을 저자가 선택해 자유롭게 해석하면서 인간 존재와 삶의 가치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을 던지고, 신앙 회복과 치유를 간구하고 있다는 것에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이 책에는 작가 미상과 더불어 조르지 루오와 샤갈, 파울 클레의 작품들을 비롯, 오토 딕스, 니콜라 사리치, 막스 리버만 그리고 유일한 16세기 화가인 ()루카스 크라나흐의 성화들, 그리고 그라피티 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의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특히 니콜라 사리치의 믿음-어둠 속의 빛이라는 작품도 놀라워서 탄성을 지게 하지만 저자가 또 다시 묵상하며 해석을 내리며 그림을 풀어 나가는데 전문 해설가로서도 부족함 없는 자로 생각이 된다. 이 작품은 '의심 많은 도마'를 현대화한 그림이다.

 

현대인 의상을 입은 도마가 예수의 옆구리에 난 상처에 손가락을 넣고 확인하고 있는 그림인데, 이렇게도 그려지는 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도마에게 한 말은 그에게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한 것입니다. 이때 이후로 긴 세월동안 아무도 부활한 예수를 보지 못했으니까요. 오랫동안 관용구처럼 '의심 많은 도마'로 그를 쉽게폄하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가까운 미래에 예수를 만날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당연회 우리는 '보지 못하는 자'가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자들'이어서 '복된 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보지 않고'도 많은 것을 믿으려 합니다. 믿음이 없다는 말이 두려워서일까요? 그리하여 '복되다'에서 멀어져서 형편이 어려워질까봐 그런 걸까요? 이 작품에서 도마의 의심과 어둠이 믿음과 빛남으로 충만해지는 그 순간이 화면 가운데에서 손가락과 옆구리의 빛나는 접점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도마는 부활한 예수의 확증을 잡으려는 사람입니다. [...] 그의 의심은 어쩌면 긴 시간 동안 부활한 예수를 보지 못할 모든 공동체와 신앙인들이 믿음을 지속하고 위로의 대답을 들을 수 있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놀라운 저자의 통찰력과 해석이 놀라울 따름이다. 현대의 신앙인들이 의심 많은 도마를 애처롭게 바라보며 자신들은 믿음을 가진척 해보지만, 주님이 도마에게 해준 대답 때문에 사실 우리는 위로를 받고 믿고 있는 것이다. 신앙인들이 이 책을 읽으면 분명 감동과 은혜, 멋진 신앙적 사유를 선물 받을 것이다. 그리고 성화를 바라보는 안목도 이젠 저자처럼 넓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독특한 성화를 통해 예술적인 감각을 깨우고 싶거나, 신앙적인 사유에 빠져 하나님을 그림 언어로 알기 원하는 예술적 영혼들은 반드시 이 책으로 영혼의 허기가 채워질 것으로 본다. 이 책을 만남으로 새롭게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어졌다.

 

이 책의 한 문장

 

책의 제목인 이마고 데이(Imago Dei, The Image of God), 즉 하나님의 모습은 인간이 평생 알려고 애쓰는 주제이며, 한 존재의 모습은 눈으로 본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하나님에 대해 명확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그것은 부분적이다. 하나님의 모습에 대한 1차 자료는 바로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이며, 성서나 이 성화들은 그 후의 순차적인 자료들이다. 성화를 토대로 쓴 필자의 글을 통해 하나님의 모습에 대하여 물을 수 있기를 바란다” -책을 내면서 중에서.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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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마코스 윤리학 현대지성 클래식 42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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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가에 관한

인류 최고 철학자의 경험적 통찰이 담긴 책.

 

아리스토텔레스가 20세에 마케도니아 대왕이 되기 전인 알렉산드로스(왼쪽) 왕자를 가르치고 있다. 스승은 제자에게 트로이전쟁 영웅 이야기인 호메로스 일리아스를 권했고, 이 책은 대왕에게 전장 애독서가 됐다. 프랑스 화가 샤를 라플란트 작, 1866.

 

행복하고 싶은 욕망은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간절함일 것이다. 참된 행복이 무엇일까에 대해 매일을 고민하며 질문을 하며 살아간다. 일을 하면서, 밥을 먹으면서, TV나 영화를 보면서, 경치가 좋은 곳에 가서도 나의 이 질문은 멈추지 않고 있다.

 

 

이 책은 그런 상태에서 찾게 된 행복에 대한 내 마음의 손길이다. 아리스토렐레스라는 철학자가 이 책을 썼고, 또한 제목에서 보여주는 묵직함이 이 책을 향하게 했다. 호기심과 함께 무언가 모를 어떤 특별한 용어로 보았다. 그러나 책을 펴보면 알듯이 그런 심오한 철학적 용어가 아닌 니코마코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아들 이름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제자가 필기한 스승의 강의(에우데모스 윤리학)를 다시 정리해서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다른 견해로는 후대 편집자가 제목을 이렇게 붙였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책 소개에 보면 아들 니코마코스에게 들려준 강의라는 말도 나온다. 몇 가지 설 중에 어떤 것이 맞을지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내용이라 생각된다. 더불어 윤리학이란 알다시피 인간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하는, 인간 행위와 관련한 규범을 연구하는 학문을 말한다. 이 책은 마치 철학자 아버지가 아들에게 조곤조곤 들려주는 잠언을 담은 듯 보인다. 그러나 실제 내용은 실천을 강조하는 철학 강론이다.

 

언제가 행복에 대해 생각하다가 행복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적어 보았다. "행복이란 내 삶을 오롯이 갖고 살아가는 것이다." 무언가 거창한 정의가 아닌 그저 내 마음에 느껴지는 정의이다. 이 책이 오롯이 나에게 참 행복을 가져오는 책이 될지 모르지만 1998년에 저명한 철학자들이 뽑은 서양 철학사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철학자 1위가 아리스토텔레스라고 하니 기대를 갖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책의 첫 페이지를 열면 '인간은 모든 행위에서 "좋음"을 추구한다'는 첫 문장이 나온다. 이 문장에서 독자가 느끼는 바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정말 핵심을 안 존재였으며, '좋음'이라는 쉬운 단어를 매우 심오하게 느끼게 해주는 자임을 보게 되었다. 24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표 저작으로 꼽고 있는데 이유라면 그는 어떤 명제를 위해 추론 과정과 통찰력이 가득한 전개 과정을 밟아 가기 때문이다. 행복은 이것이다 하는 단순한 결론적인 정의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심오한 윤리를 이해 할 수 없다. 따라서 조금 복잡하며 말 장난처럼 느껴지는 글이 보이기도 하지만 그 전개 과정은 심오한 논리가 숨겨져 있기에 차근차근 그의 글을 읽으며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인간은 모든 기술과 학문은 물론이고, 모든 행위와 이성적 선택에서 어떤 "좋음"을 추구하는 존재다. 좋음은 대중이나 양식 있는 사람 모두 그것을 "행복"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르다. 대중과 철학자들은 같은 대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같은 사람이라도 병들었을 때는 건강이 행복이라고 말하고, 가난할 때는 부가 행복이라고 하는 등 상황에 따라 생각이 달라진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좋음과는 별개로 그 자체로 좋음이면서 이 모든 좋음을 좋음이 되게 하는 그런 좋음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좋음에 대해 깊이 살피지만 이 또한 좋음에 대한 한 가지일 뿐이다. 즉 좋음에 대한 원형이 무엇인지 철학자들은 찾아가지만 사람들은 그 좋음의 원형에 대해 사실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예를들어 직조공이나 목수가 좋음의 원형을 안다고 해서 그것이 자기 기술을 향상하는 데 그렇게 도음이 되지 않는다. 여기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주제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해두자'며 그런 사변적인 정의에 대해 문을 닫아 버린다. 무익한 논의가 될 뿐이라는 것이다.

 

어떤 책은 단 하나의 문장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그 문장이 책 전체의 내용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여러 좋은 문장과 논리적 전개가 있지만 이 책에 눈에 띄는 부분을 언급하며 소개해 보고자 한다.

 

행복한 사람이 되려면 좋은 친구가 필요하다p.369

 

행복한 사람에게 친구가 필요할까? 여기에 대해 의견은 갈린다. 어떤 사람은 진정으로 행복하고 부족함 없는 사람이라면 좋은 것을 이미 다 가졌고 부족한 것이 없어 더 이상 필요한게 없으므로 그들에게는 친구가 전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반면, 친구란 타인이면서도 자기 분신이어서 자기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하므로 행복한 사람에게도 친구가 필요하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그들은 "필요할 때마다 신이 도와준다면, 친구가 왜 필요하겠는가"라는 말이 나왔다고 말한다. 그런데 행복한 사람은 모든 것을 다 가졌는데, 외적으로 좋은 것 중에서 가장 좋다고 여겨지는 친구가 그에게 없음은 이상해 보인다. 친구는 도움받기보다는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좋은 사람과 미덕도 그렇게 하며, 모르는 사람보다 친구를 돕는 것이 더 고귀한 일이라면, 훌륭한 사람에게는 자신이 도움을 주는 친구가 필요하다.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데 모든 일이 잘 풀릴 때 친구가 더 필요한가, 곤경에 처했을 때 친구가 더 필요한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 해답은 "곤경에 처했을 때는 자신에게 도움을 줄 친구가 필요하고, 모든 일이 잘 풀릴 때는 자기가 도움을 줄 친구가 필요하다고" 정의를 내릴 수 있다. 또한 친구가 없고 혼자인 사람을 행복하다고 하기도 이상하다. 모든 좋은 것을 다 줄테니 친구 없이 혼자 살아가라고 한다면, 그런 제안을 받아들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인간이란 본성적으로 사회적 존재로서 함께 살아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은 친구 없이 즐겁게 사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사람은 혼자 살아가기 어렵다. 아무리 그 자체로 즐겁더라도 잠시라면 모를까 혼자 지속해 활동하며 살아가기는 쉽지 않다고 말한다.

 

나는 자연인이다 방송을 보더라도 자연인 또한 최소한의 사람들과 소통하며 지내고 있으며, 또한 방송인인 이승윤, 윤택이 함께하는 시간, 요리를 해주는 시간을 굉장히 행복한 시간으로 여기는 것을 보게 된다. 따라서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타인과 함께 활동하는 것이라는 정의가 옳은 정의임을 알게 된다.

 

타인과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면 인생은 더 수월해진다. 함께하면 그 자체로 즐거운 활동을 지속하게 되는데, 이것이 행복한 사람의 진정한 모습이다. [...] 또한 테오그니스가 말했듯, 좋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면 미덕을 훈련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을 더 본질적으로 말한다면 훌륭한 사람은 본성적으로 훌륭한 친구를 선택하려 한다. 본성적으로 좋은 것은 훌륭한 사람에게 좋고, 그 자체로 즐겁기 때문이다p.367

 

좋음이 왜 좋음인지, 그리고 그 좋음 안에서 진정한 행복한 사람이 되려면 훌륭한 친구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집요한 논리로 우리들을 설득한다. 그렇다면 친구는 많을수록 좋은가 아니면 적당한 것이 좋은가? 아리스터텔레스는 말하길 너무 없는 것도 문제지만 많으면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기에 소수의 친구들만이라도 발견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기뻐하고 만족하라고 한다.

 

그렇다. 행복해 지기 위해서는 '좋음'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 좋음에 있어 좋은 친구와 함께 하는 것은 삶의 행복을 더해준다. 무엇보다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데 그건 "고결한 것은 고결한 사람들에게서 배우는 법이다"고 정의를 해준다.

 

행복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와 통찰을 통해 우리는 다방면에서 행복의 좋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 가운데 행복이 오롯이 개인의 것이 아닌 공동체적인 것으로 연결지어가는 것을 통해 잘못된 행복을 짚어주고 있다.

 

그럼에도 행복에 대해 현대의 정신분석학자들이나 철학자들이 정리를 내린 간결함이 더 마음에 다가오는 것은 뭘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행복에 대해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행복이란 본질적으로 주관적인 그 무엇이고 상황에 따라 다르므로 행복을 연구하는 것은 별로 쓸모가 없어 보인다고 결론지었다고 하는데 이렇듯 행복은 불확실한 무엇을 추구함이 아닐까 싶다. 이마누엘 칸트도 말하듯 행복의 개념은 아주 불명확한 것이어서 모두 행복을 얻고자 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누구도 명확하고 일관되게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행복에 대한 정의는 이렇게 정의 내리고 싶다. 나의 친애하는 여행자들에 나오는 문장인데 행복의 기준은 사람에 따라 다르고 주관적인 만족감이잖아요. 내가 원하는 나만의 명확한 기준이 세워져 있다면 그리고 그 기준을 따르면서 살아간다면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이며 최고의 일은 바로 직관적 지성을 통한 "관조적 활동"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할 때 지성의 관조적 활동은 인간의 일이면서도 신과 가장 닮았고,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의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그 관조적 활동은 "철학 하는 삶"으로 결론지어진다. 그리고 그런 미덕은 위에도 언급했듯 행복은 개인적인 것이 아닌 공동체적인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 조금 복잡한 내용들이지만 결국 행복은 서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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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발레리아 도캄포 그림, 아네스 드 레스트라드 글, 이정아 옮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원작 / 우리동네책공장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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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오후 4시에 네가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갈수록 난 더 행복해질 거야. 4시가 되면, 벌써, 나는 안달이 나서 안절부절못하게 될 거야. 난 행복의 대가가 무엇인지 알게 될 거야! 그러나 네가 아무 때나 온다면, 몇 시에 마음을 준비해야 할지 알 수 없을 거야. 의례가 필요해.

 

의례가 뭐야?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것도 모두들 너무 잊고 있는 것이지.여우가 말했다. 그건 어떤 날을 다른 날과 다르게, 어떤 시간을 다른 시간과 다르게 만드는 거야. 이를테면 사냥꾼들에게도 의례가 있지. 그들은 목요일이면 마을 처녀들하고 춤을 춘단다. 그래서 목요일은 경이로운 날이지! 나는 포도밭까지 산책을 나가지. 만일에 사냥꾼들이 아무 때나 춤을 춘다면 모든 날이 다 그게 그거고, 내게는 휴일이 없을 거야.

 

어린 왕자라는 책이 유명하며,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라는 말을 들었다. 참으로 이 책은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은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무엇보다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린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 바치는 이야기라고 전하지는 책이다. 생텍쥐페리라는 특이한 이름과 왠지 모르게 익숙한 이름 속에 이 책은 누군가에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 잊히거나 상실된 것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돌아보는 자리로 돌아오게 만들어 준다.

 

다른 내용도 내용이지만 익히 잘 알려지지 않는 글 중에 문학 평론가 황현산의 번역으로 <어린 왕자>에 나오는 대목이 내 맘을 사로 잡았었다. 위에 적은 글이 바로 그 내용이다.

 

본 동화책에는 이 부분을 간단하게 기록되어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을 이해할 수 없지만 위의 글을 통해 저자가 가진 생각을 이해할 수 있어 어른들에겐 전체 소설을 읽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러나 무언가 책의 내용을 그림 언어로 가져와 상상의 나래를 펼치도록 도와주는 책은 바로 지금 보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이 동화책의 그림은 아르헨티나 작가인 발레리아 도캄포가 그렸다. 그는 미술 공부를 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그래픽 디자인을 가르쳤으며, 지금은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2008년에 볼로냐도서전에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이 책은 현대적이면서 클래식한 그림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보여 준 작품이다.

 

아시다시피 어린 왕자는 사랑하는 장미꽃 한 송이를 남겨 두고 자신의 별을 떠나 여행을 하다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그리고 장미꽃이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내용을 다루는 동화이다. 비행기 조종사였던 지은이는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이 작품을 완성했다. 한 편의 시와 같고 동화와 같은 이 책은 그림을 통해서 환상적인 세계를 그려주고 있어 마음 안에 있는 어린 아이를 깨워준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하는 핵심은 진정한 삶의 의미는 돈이나 권력, 지식, 명예 등이 아닌 책임 있는 사랑에 있음을 이야기 해준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어린 왕자가 여우를 만나면서 이루어진 대화라 생각된다. 길들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다니 새로운 눈뜸의 시간이다.

 

이 내용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지구별에서 장미꽃을 지켜 보는 가운데 여우가 갑자기 나타났다. 여우를 본 어린 왕자는 자신과 같이 놀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여우는 미안하다며 난 길들여지지 않아 못 놀게 된다고 말을 하며 거절의 말을 띄웠다. 이때의 대화는 그대로 옮겨 본다.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인데?”

 

관계를 맺는 것을 뜻하지. 네가 날 길들인다면 우린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거야. 나에게 너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고, 너에게 나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거지.”

 

관계를 맺는 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되는 귀한 대목이라 생각된다. 이렇게 갈등이 많은 지구별에 살아가는 우리는 길들임을 다르게 생각하고 사는 거 같다. 길들임을 가스라이팅처럼 생각하거나 억압하며 상대방을 나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함으로 자신을 부각시키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그 관계는 무수한 갈등을 양산한다.

 

그러나 길들임의 조건은 서로를 구속하거나 억압하지 않는 것임을 이 책에서 배우게 된다. 그래서 어린 왕자는 여우에게 이런 말을 한다.

 

만약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내 삶에 햇빛이 비치는 것과 같을 거야. [] 제발 나를 길들여 줘.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데?” 하며 묻는다. 이때 여우의 대답이다.

 

인내심을 가져야 해.”

 

처음에는 나한테 거리를 두고 멀리 떨어져 있어. 내가 너를 곁눈질로 볼 테니 너는 아무 말도 하지 말아 줘. 말은 오해를 만들기 때문이지. 매일 이렇게 하면 너와 나는 조금씩 가까워질 거야.”

 

그렇다. 타인과의 관계는 시간이 필요하다.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면서 그 시간 속에서 관계라는 보석을 만들어 가는 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어른인 나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순순해지며 단순해 지는 거 같다. 그래 그렇게 세상을 한 걸음, 한 걸음 사는 거야하고 가르쳐 주는 거 같다.

 

동화 같은 책이지만 내 마음에 한 편의 삶의 울림을 주고, 먼 우주별로 여행을 하도록 해주고 있다. 소중한 책을 동화로 만나 보게 되어 너무 좋은 시간이었다.

 

이 책의 한 문장

 

만약에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네가 장미꽃과 함께 보낸 시간이 네 장미를 소중하게 만들어 준 거야. 사람들은 이 비밀을 잊었지만, 너는 잊으면 안 돼. 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영원히 책임감을 가져야 해. 그래서 너는 네 장미꽃을 책임져야 하는 거야.”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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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만에 배우는 철학 수첩
일본능률협회 매니지먼트센터 지음, 김정환 옮김, 오가와 히토시 감수 / 미래와사람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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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무지로부터의 탈출이다. 이 책은 철학의 개념을 잡고 싶어서 선택하게 되었다. 철학책을 몇 권 읽었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한 눈으로 파악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이 책은 30일이라는 시간 속에서 그것도 매일 15분만 투자를 하면 철학에 대한 기초를 배우고, 사고할 수 있도로 해주고 있다. 한 주제에 대해 깊이 봐야 그 철학에 대해 알 수 있겠지만 철학 전문가를 통해 정리해 놓은 이런 책도 분명하게 도움을 주리라 생각이 된다. 특히 이 책은 30일의 성과를 기록할 수 있는 다이어리가 앞 부분에 넣어져 있는데 하루의 배움을 요약하는 메모를 통해 나만의 철학적 지식을 쌓아가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 책은 3개의 칼럼과 함께 무엇보다 그림과 이미지를 통해 어렵고 복잡한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해주고, 각주의 설명으로 내용을 보충함으로 이해되지 못한 부분을 더욱 명확하게 해주고 있다. 어려운 용어가 무진장 나온다. 그러나 무서워할 필요가 없는 것은 저자가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다.

 

 

철학책을 든다는 것은 삶에 대한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함일 것이다. 어떤이는 허영을 위해 지적 유희를 누리려고 철학을 찾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 철학이란 "삶이 정말 무엇인지"를 알고자함이다. 왜 우리는 존재하고, 왜 우리는 살고 있으며, 어떤 것이 가장 좋은 삶이며, 어떤 것이 참 진리인지를 알고픈 욕망이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는 모두 자기 인생의 철학자다"라는 말을 하는데 삶의 고민이 있고 그것을 깊이 숙고하는 사람이라면 철학자인 것이다. 우리는 삶에서 의문을 그냥 흘려보내거나, 타인의 의지대로 삶을 흘러가게 내버려두기도 하지만 기어코 삶에 대한 질문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경우도 있다.

 

 

왜 일을 해야 하며, 나의 삶은 왜 힘들고, 누군가에게 맞춰야만 하는지 그리고 인간관계는 왜 어려운지와 같은 이 질문은 스스로 해결하기엔 너무 어렵다. 그래서 이 책은 해결 방법을 철학으로 알려주고 있다. 어려운 철학이 저자의 손에 들려 쉬운 이해로 다가오게 하니, 개념을 잡는데 굉장한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사람들은 일상의 혼란을 겪고 있다. 더군다나 러시아 푸틴을 통해 세계는 지금 전쟁에 휩싸여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기존에 추구하던 삶의 방식은 생존적 삶의 방식으로 바뀌며 삶이 정말 어떠해야 하는 지에 대해 매우 민감해 있게 된다.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누리던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만일 갑자기 중국과 북한이 도발을 해온다면 우리는 삶이 주는 다변적인 행복을 고스란히 잃어버리고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서게 된다. 이때 우리의 민낯이 드러나게 되고, 평범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살인하거나 생존하기 위해 남의 것을 훔치는 일도 다반사로 일어날 것이다. 어쩌면 이때는 철학은 '개 풀 뜯어 먹는 소리'가 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철학은 우리의 삶의 이유와 문제를 해결해 주는 통로가 되어 주리라 생각된다.

 

 

더불어 철학을 이해함에 있어 지금까지는 단순히 난해한 고전을 읽거나 어려운 토론을 하는 것만이 철학이라는 오해가 만연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철학의 연구일 뿐, 진정한 의미에서 철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철학의 지혜를 활용해 세상 또는 자신의 인생에 관해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 전에 있었던 철학자들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 책은 첫 단락에서 철학의 기본 의미를 파악하도록 하면서 철학이 성립되기 이전 시대의 철학자에서 시작하여 중세 세계의 철학자, ....20세기의 철학자들을 거쳐 현대 철학자들까지 전체를 정리해 주고 있다. 현대 철학에 와서는 다양한 가치관을 배경으로 철학적 견지가 출현하면서 매우 세분화, 전문화 되어 가고 있다. 끊임없이 세계는 다양하게 발전해 간다. 이런 시대 속에서 '나 자신 또는 사물을 어떻게 파악하며 살아가야 하는가?'를 생각하기 위한 축이 되어 주는 철학은 분명 삶의 의문을 던지는 자들에게 해답처럼 무언가를 안겨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장점은 현실의 문제를 여러 다양한 각도에서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철학 이해를 한 후에 나오는 내용들은 현실적 문제를 다루고 있어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바로 대비해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삶이 힘든가" DAY 9에 나오는 부분을 보면서 "고정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편견과 동조 압력을 이겨내라"고 말해 준다. "타인에게 맞추고 마는 내가 싫다면" DAY 10을 통해 "집단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을 무시하지 말고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며 행동하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거나, 자유에 갑갑함을 느끼거나, 돈이 있고 애인이 있다면 행복할까하며 고민하고 있거나, 인생이 불안해서 견딜 수 없거나, 왜 일을 해야하며 법을 지켜야 되는 지를 알고 싶거나, 자살이나 안락사는 개인의 자유인가, 아닌가에 대해 궁금하다면 또는 '죽음'이란 정말 어떤 것이며, ''은 존재하는가?에 대해 궁금하다면 이 책은 얼마든지 의문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고 있다.

 

 

한 주제마다 제법 압축적으로 요약된 부분임에도 알차게 내용이 기록되어 있고, 그 주제에 대한 문제의 답이 필요적절하게 정리되어 있어, 철학적 고심이 해소되는 느낌을 받게될 것이다.

 

 

DAY 9에 나오는 '삶이 힘들다' 부분에 대해 언급해 보고자 한다.

 

'왠지 삶이 힘들어..., 나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서 괴로워'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그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인간관계나 가치관, 상식 등에 얽매인 탓이 아닌지 봐야 한다. 인간의 가치관이나 상식은 주위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형성된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따라 어떤 일정한 가치관, 상식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과연 당연한 것일까 하고 물어야 할 것이다.

 

혹시나 삶이 힘들게 느껴지는 근원에는 '에피스테메'가 있지 않는가? 프랑스의 철학자인 푸코는 근대 사회는 다수파가 구축한 세계이며 성 소수자 등의 소수파는 격리와 배제의 대상으로 여겨져 왔다고 비판한다. 본인이 성 소수자이기에 그런 괴로움을 더 느꼈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힘듦의 원인이 '에피스테메'에 의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즉 에피스테메란 '한 시대의 사회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 가치관, 의식, 인식, 상식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시대에 나타난 상태'일 뿐 보편적, 정대적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상식은 시대나 환경에 따라 변한다. 장소를 바꾸기만 해도 해방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자신을 괴로비는 것이 있을 때 원점으로 돌아가서 정말로 그것이 보편적인 것인지 생각해 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성 소수자에 대해서 이런 생각을 가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시대가 바뀌어도 옳고 그른 잣대는 있다고 본다. 특히 성 소수자는 개인의 욕망을 합리화하고자 한다. 그런식의 '에피스테메'는 결고 옳지 않다고 보며, 다른 문제에 대해선 에피스테메와 같은 생각은 얼마든지 좋다고 생각한다.

 

 

삶이 힘들다고 생각하는 자에게 저자는 타인의 눈을 신경 쓰는 '동조 압력'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 동조 압력이란 집단 속에서 소수파가 압력을 느끼고 다수파의 의견, 태도에 맞추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은 특히 동조 압력이 강한 사회로 평가 받는다. 주위와 동저하지 않으면 '분위기 파악을 못한다.', '제멋대로다.'와 같은 꼬리표가 붙고 고립되며, 집단에서 배제되는 사태도 번번히 발생한다.

 

그렇기에 독일의 철학자인 후설은 '본질직관'이라는 사고법을 통해 사물을 바라볼 때 모든 '고정관념'을 버린 다음 실제적 의미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본질을 발견하라고 한다. 쉽게 말해 자신의 가치관을 일단 지우고 모든 것을 제로베이스에서 생각해 보묜 중요한 사실이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 방법밖에 없어'라는 경직된 생각에서는 타개책이 탄생하지 못한다. 먼저 가치관을 의심하고, 세상의 상식에 의문을 품으며, 시점을 바꿔봐야 한다. 현재 코로나로 인해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가 백신을 접종 권고 받고 있다. 어쩌면 강제적 제약을 하며 통제를 하기에 또는 전문가란 자들이 나와서 백신을 꼭 맞아야만 코로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하기에 너나 없이 1,943(227일자)명 이상의 공식 사망자가 나오고, 부작용자가 40만명을 넘고 있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벌떼처럼 2차를 맞고, 3차도 현재 많이 맞은 상태다. 최근 자료에 의하면 영국 정부는 코로나 사망자 90%가 백신 접종자들라고 보고서 발표를 했는데 이런 보고가 연일 나옴에도 공영 방송만 본 사람들은 정부가 말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있는 실정이다. 어떤 경우는 옆에 이웃이 3명이나 사망자가 나왔음에도 백신 안 맞으면 죽는다 생각하고 백신 맞기에 급급하다.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맞았기에 자신이 안 맞으면 소외되고, 무언의 압력을 받는다. 그래서 그 무언의 압박을 참지 못하고 불나방처럼 달려든다. 결국 피해를 당하면 그때서야 모두 후회를 하더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현재도 여지 없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동조압력'을 벗어나 '본질직관'을 하며 면밀히 살핀다면 얼마든지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게 되리라 생각된다.

 

 

인간이 고민하고 있는 모든 문제는 결국 철학적 사고로 나아간다. 이 책은 그런 철학적 사고를 잘 활용하도록 도와주며, 여러 사례와 철학적 설명을 통해 고민 해결사처럼 답은 선사해 주고 있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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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정치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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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지인 중에 한 분이 이런 말을 했다. "정치인들은 애미 애비도 없는 인간들이다. 정치를 위해선 부모도 이용하고, 부모를 버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제 대선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서로가 피터지게 네거티브하며 지금까지 계속 달려오고 있다. 떄론 진절머리 나고, 유치원 아이들과 다를바 없어 보인다. 33일 야당 후보인 국민의 힘 윤석열과 국민의당 후보인 안철수가 단일화를 이루었다. 야당 입장에서 호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걸 두고 여당은 '야합'이라는 단어를 썼다. 며칠 전에 이재명 후보와 김동연 후보가 단일화를 이루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 단일화를 통합과 화합의 정치라고 말하며 자신들의 단일화는 '()'임을 주장하고 있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내용이지만 참으로 '내로남불' 정치다. 국민의힘에서도 내가 하면 통합’. 남이 하면 야합’. 민주당의 내로남불 DNA’는 절대불변"이라며 역공했다.

 

 

이 책 저자인 강준만은 좀비 정치에서 한국의 좀비 정치를 실날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는 너를 물어뜯어야만 내가 산다’, ‘그들을 물어뜯어야만 우리가 산다는 반정치가 정치를 타락시켰음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내로남불은 여야를 막론하고 저질러지며, 정치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저자는 특정 정치적 신념이나 노선을 내세워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증오하면서 욕설과 악플로 공격하는 정치적 광신도들의 의식과 행태는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다. 광신도라는 말을 썼는데 실제 주위에 둘러보면 이런 사람들이 많다. 광신도를 비판하지만 사실 무조건 '나는 야당이야', '나는 여당이야' 하는 것도 광신도들의 의식과 형태와 다르지 않다.

 

 

저자가 말하듯 지금 한국 사회는 증오를 선동하는 좀비 정치의 메커니즘만 존재할 뿐이다는 정의가 매우 정확한 표현이다. ‘좀비 정치란 소통을 거부하면서 상대방을 물어뜯으려고만 하는 행위를 말한다. 살아있는 시체가 좀비다. 머리 속이 비어있기 때문에 생각을 못하고 맹목적으로 움직인다. 사고 능력이 없어 소통도 안된다. 그러나 살아 있는 사람들을 물어뜯어 자신처럼 만들려고 하는 본능이 발휘될 땐 무섭게 돌변한다. 어떤 분이 말하듯 여의도에 가면 쉽게 이런 자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좀비가 되어 "우리 후보는 선()이고, 상대 후보는 악()"이라고 규정한 후 무조건 상대를 물어 뜯는다. 물론 사실관계를 확인하거나 맥락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는다. 이들은 각기 "우리 편이 얘기하는 건 진실이고, 상대편이 말하는 건 거짓"이라고 강조하며 자기 얘기만 앞세운다. 대선이라는 거대한 산맥이 가정에서도 편가르기가 되어 서로를 '타인'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이게 무슨 망국인가? 과연 내가 뽑는 대통령이 '메시야'라도 되는 것인가? 왜 이렇게 종교인들까지도 난리가 아니다. 기독교도 현재 양진영으로 나뉘어서 서로를 비판하고 있다. 때론 목숨걸고 달려 든다. 언제 그렇게 독립투사가 되었다고 난리가 아닌 모습을 보고, 정치인들이 이 나라에서는 참으로 통치하기가 편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그만큼 편든다는 것은 그만큼 세뇌 시키기 좋다는 것이며, 무뇌증을 가진 국민을 속이기에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젠 국민이 속아서는 아니 될 것이다. 재난 지원금으로 달래는 정치인들의 수를 읽지 못한다면 평생 속으며 당할 것이다. 플라톤이 한 말이다. 이젠 이런 말도 많이 들어서 식상하지만 그러나 곱씹어 듣는 다면 결코 이 말은 보통의 말이 아닌 것이다. "정치를 외면한 대가는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를 당하는 것이다."

 

 

그렇다. 이젠 국민이 스스로 깨어나 정치인들을 손에 가지고 놀아야 한다. 물론 나쁜쪽으로 말한 것이 아니다. 정치인들이 국민 무서운 줄을 알고 제대로 정치를 하게끔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면에서 이 책 좀비 정치는 매우 유익한 책이라 생각된다. 대표적 진보 논객으로 알려진 저자는 진보에 치우치지도 않고, 균형잡힌 시선으로 보수의 입장도 대변하며 공명정대한 정치가 이루어지길 바라며 이 책을 썼다.

 

 

한 신문 칼럼에서 저자는 MBC를 강하게 비판했는데 그의 말이다.

 

나는 김건희 녹취록논란은 김건희와 윤석열의 자업자득이라고 보기 때문에 이를 둘러싼 정치적 공방엔 관심이 없다. 내가 관심을 갖는 건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다. MBC가 아니어도 녹취록 방송은 어차피 다른 매체들에 의해 이루어질 텐데, 왜 굳이 공영방송이 두 개로 쪼개진공론장의 한복판에 사실상 어느 한 쪽을 편드는 역할로 뛰어들어야 한단 말인가? 이게 6년 전 MBC 기자들이 그토록 울부짖었던 방송 민주화인가? [...] 하지만 공익적 가치가 매우 높은 대장동 사태에 대해선 그런 열의를 보인 적이 없는 것 같다며 이른바 선택적 공익은 피해야 하는 게 아닐까라고 비판했다.

 

특히 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2020년 출간)'라는 책에서 그의 이런 말은 속이 시원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문재인 정권의 내로남불 사례들을 일일이 정리하다가 중도에 그만두고 말았다.

 

거의 모든 게 내로남불이었기 때문이다.”

 

균형잡히 시각으로 진보와 보수를 바르게 비판하며 잘한 것은 잘했다. 못한 것은 못했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참으로 필요하다.

 

 

그런면에서 전 국회의원 정두언은 이른바 진영 논리에서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다른 의견을 경청하고 인정하는 정치인이었다고 말한다. 좌면 어떻고 우면 어떻다는 것인가?”라는 말로 대변되는 그의 실용주의 개혁 노선이 이를 증명해준다. 전 국회의원 윤희숙 또한 여권뿐만 아니라 야권을 향해서도 내로남불을 중단하자고 호소하고 있다. 왜 윤희숙은 이런 말을 했을까? 정책 전문가로서 정치에 입문한 후 정치가 안 바뀌면 정책도 의미 없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윤희숙처럼 진영 논리와 내로남불의 정치를 바로잡으려는 정치인은 드물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현재 양당(이재명, 윤석열) 대표 후보의 모습을 실랄하게 다루어 주고 있다. 현 대통령인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 이준석, 유시민, 정청래, 김원웅, 박노자, 조은산, 진중권, 김동연, 윤희숙, 정두언, 박용진, 김의겸, 권경애 등을 골고루 다루어 준다. 매우 핵심을 잘 터트려 주고 있는데 제 1장에서는 이재명 후보에 대해 '만독불침 투쟁사'라며 이렇게 말한다. 수많은 사건과 의혹이 있지만, 그는 무협지에나 나오는 만독불침을 현실 세계에서 구현해 보이는 자로서 개인적 차원에서는 박수를 보낼 만한 일이지만, 공적 차원에서는 의문이 들수 밖에 없는 인무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개인적 차원에서 괜찮은 사항이지만 이것이 국가적 차원에서 발휘될 때에는 좀 이상하고 무모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명언 같은 말을 한다.

 

이재명은 화려하고 추상적인 언어의 성찬에만 주력하고 있는데, 도무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대선 후보라면 철학과 열정과 진정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 2장은 윤석열 후보의 리더십에 대한 내용이다. 국민의힘의 내홍과 윤 후보의 말실수 논란은 윤석열 리더십의 부재 또는 한계라고 지적했는데 국민들도 수긍하고 있는 바다. 최근에는 기차 좌석에 발을 올려 놓는 행동으로 아직도 검찰총장의 때가 벗겨지지 않는 모습을 보며 '애고'라는 생각을 했다. 거기에 당대표 이준석은 '치킨 게임'을 하며 과도한 자기중심주의 정치를 하고 있다는 평가를 하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진단을 잘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제 3장은 문재인 대통령 혹은 문재인 정권의 무능과 오만을 다뤄주고 있어 너무 좋다고 말하겠다. 저자가 말하듯 내로남불은 문재인 정권의 상징이자 속성처럼 되어 버렸다는 비판이 왜 이렇게 적절한 표현인지 모르겠다. 문재인은 2017년 대선 때 뇌물, 알선수재, 알선수뢰, 배임, 횡령 등 ‘5대 중대 부패 범죄와 반()시장 범죄를 저지른 기업인 등에 대한 사면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공약했다. 그런데 202112월 박근혜의 사면에 전 총리 한명숙의 복권을 끼워 넣었고 더구나 야당에서는 이번에 이명박 사면을 뺀 것은 나중에 문재인의 최측근 김경수 사면을 끼워 넣기 위해 남겨둔 카드라는 말이 나오는데 도통 말과 행실이 너무 달라 문을 뽑은 나로서 실망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 책을 보며 알게 되었는데 문재인의 대선 공약이었던 ‘5대 인사 원칙’, 집권 이후 내세운 ‘7대 인사 원칙을 약속했지만, 문재인은 그것을 지키지 않았다. 문재인은 야당 동의 없이 임명한 장관급 인사가 30명을 넘는다. 노무현 정권 3, 이명박 정권 17, 박근혜 정권 10명 등 도합 30명을 넘어선 기록이라는 것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공무원의 복종 의무를 강조하는 동시에 공무원의 영혼을 강력히 통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명실상부한 청와대 정부가 되고 말았다는 대범한 외침은 저자를 달리보게 만드는 문장이라 생각된다.

 

 

이어서 나오는 제 4장에는 '너는 어느 편이냐? 물으면서 유시민, 정청래, 김원웅, 박노자, 조은산을 다뤄주고 있다.

 

 

정치에 대해 잘모르는 자로서, 관심 없는 자로서 이번 정치에는 무엇이 문제일까하며 고심하고 있었는데 이 책은 그런 고민에 대해 속시원하게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되고 있다. 역시 사람은 책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판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속고 속이는 기득권들에게 당하고 살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저자 강준만과 같은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정말 없을까? 있었는데 정치판에 들어가니 똑같이 좀비 정치가가 되어 버리는 것일까?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국민과 정치인은 이런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며 선진국으로 달려가야 할 것이다. 결코 경제만 좋아졌다고 해서 선진국이 아닐 것이다. 정치를 하는 국격도 선진국을 닮아가야 선진국일 것이다. 그런면에서 희망이라는 작은 단어를 정치 앞에 떠올려 본다. 물론 정치하는 인간들을 믿지 않지만 말이다. 정치에 대해 입문하고 싶고, 현재의 정치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은 이 책이 크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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