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storax님의 서재 (storax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8130193</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un, 18 Oct 2026 10:54:07 +0900</lastBuildDate><image><title>storax</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88130193129588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8130193</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storax</description></image><item><author>storax</author><category>카테고리</category><title>운명은 의심을 멈추는 순간 시작된다 - [운명은 의심을 멈추는 순간 시작된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576156</link><pubDate>Fri, 16 Oct 2026 23: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57615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82131679&TPaperId=1757615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25/77/coveroff/k08213167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82131679&TPaperId=1757615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운명은 의심을 멈추는 순간 시작된다</a><br/>잔다르크 지음 / 클래시카 / 2026년 09월<br/></td></tr></table><br/>수백 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전 세계인의 가슴을 울리는 이름이 있다. 바로 백년전쟁의 도화선 속에서 멸망 직전의 프랑스를 구원하고, 불꽃 속에서 영원이 되고 성인(Saint)이 된 시골 소녀, 잔 다르크(Jeanne d'Arc, 1412~1431)이다. 잔다르크에 대해선 솔직히 많이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이름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큰 존재임을 안다. 그래서 한 번쯤 알고 싶어 이 책을 보게 되었다. 물론 이 책은 그녀에 관한 역사책이나 위인전이 아니다. 이 책은 그녀가 선택했고, 살아갔던 삶의 한 부분을 가져와 자신의 운명 앞에 어떻게 걸어갔는 지에 대한 삶의 동력을 얻게 해주는 책이다. 즉 육백 년 전 잔다르크의 삶을 통해, 아직 문 앞에서 망설이고 있는 사람에게 의심을 멈추고 자신의 운명을 시작할 용기를 전해주는 책이다.​또한 앞으로 달려갈 용기가 없거나 준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자신의 목표 앞에서 망설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삶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 지를 가르쳐 주는 책이다. 무엇보다 자격은 시작하기 전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걸어간 사람에게 나중에 붙는 이름이다. 무언가를 하기 전에 항상 망설이며 주저 앉기만 하는 자가 있다면 19세의 소녀가 당시 어떤 일을 어떻게 감당했는지를 보고 놀랄 준비를 하면 된다.<br><br>책을 보기 전에 독자는 그녀가 위대한 인물로 태어나서,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녀는 요즘으로 치면 회사에 서류를 내밀 경력이 매우 미비한 사람이다. 그녀는 아무런 자격도 갖추지 못했다. 왕가의 피도, 귀족의 성도, 기사 가문의 이름도 물려받지 못했고, 군사 훈련을 받는 적도 없고, 글 조차도 읽지 못했다. 그저 프랑스 북동부의 동레미라는 작은 마을에 사는 농민의 딸이다. 당시 여성의 지위는 기본적으로 가톨릭 교회법과 봉건제도에 기반한 엄격한 가부장제 아래 놓여 있었다. 물론 신분과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인구가 문맹이었으며, 여성들의 지적 활동은 기초적인 수준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었다. 또한 여성은 법적으로 아버지, 남편 등 남성 보호자에게 종속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시대의 소녀가 세상의 평가와 거절 앞에서 얼마나 당당한지, 보클뢰르로 가서 수비대장을 만나 대뜸 왕세자에게 갈 수 있게 호위병을 내어 달라고 했다. 당연히 거절을 당했다. 아니 조롱 당했다. 거절보다 조롱이 더 견디기 어렵다. 거절은 내 요청에 대한 검토의 결과지만 조롱은 검토 자체를 거부하는 태도이며, 들을 가치가 없다는 통보이다. 그런데 잔다르크는 거절을 넘은 조롱 앞에 세 번이나 찾아가 승낙을 받아낸다.​앞을 가로막는 것이 있었지만 조롱과 거절에 파묻히지 않고 우선 내딛었다. 전에지는 바에 의하면 완고한 수비대장의 판단을 뒤집는 사건이 있었다. 그건 그녀가 수백 킬로미터 밖에서 벌어진 프랑스군의 참패를 미리 말했기 때문이다. 청어 전투라고 불리는 그 패전의 소식이 며칠 뒤 실제로 도착했는데, 이것을 통해 수비대장은 그녀를 인정했고, 호위병을 내주어 왕세자를 향해 출발하게 되었다. 따라서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그녀가 이룬 ‘기적’보다 그 기적 이전의 태도를 보게 된다. 잔다르크는 자격을 갖춘 뒤 움직인 사람이 아니라, 움직였기 때문에 자격을 얻은 사람이었다. 허락을 구하지 않았고, 거절을 최종 판결처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자신을 심판할 권리를 끝까지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않았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때 스스로 깃발이 되어 걸어갔다 세상은 준비된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게 아니라, 이미 움직이고 있는 사람을 나중에 인정할 뿐이다.우리 또한 잔다르크가 가졌던 움직임이 필요하지 않을까. 누군가 너는 아직 더 준비해야 되고, 자격을 더 갖추어야 한다고 말해도, 나 스스로도 그런 생각이 들어도, 내가 망설임 없이 걸어가면 그 길은 나만의 길이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물론 준비 없이 무작정 들이대는 용기만 있으면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준비는 내가 하는 일로서 철저히 실력과 자격증을 따야한다. 그런데 아직도 나는 멀었다 생각하며, 자격증을 하나 더 갖추면 되겠지라는 생각에 자신을 증명할 무언가를 또 다시 준비하게 되면 나에게 오는 그 기회를 영원히 못잡을 수 있다. 하나를 갖추면 갖추지 못한 다른 하나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냥 밀고 가는 용기를 잔다르크에게 배우게 된다. <br>김연아 선수가 남긴 수많은 명언 중 "그냥 하는 거지"라는 말을 본적이 있다. 기자가 무슨 생각하면서 스트레칭을 하세요? 물으니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라고 말했다. 최근 또 한 자료를 보니 ‘200만 원 자본금’으로 일군 ‘2000억 매출’의 신화의 주인공 파파레서피의 창업자 김한균 대표가 이런 말을 한것을 보았다. "재지 말고 그냥 해야 결국 이긴다" 8평 사무실 한 칸에서 낡은 책상과 노트북 한 대로 시작한 사업은 불과 6년 만에 연 매출 2000억 원의 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생각만 하면모든 게 두렵고 복잡하다.하지만 움직이면길이 생기고 세상이 달라진다.생각은 머리에 남고행동은 인생에 남는다.그녀는 말 그대로 자격을 갖춘 뒤에 움직인 것이 아니라, 움직였기 때문에 자격을 얻은 사람이었다. 현재 나에게도 무언가를 망설이고 있는 부분이 있다. 곰곰이 생각만하며 무언가를 그려내지만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잔다르크는 남이 자신에게 내린 판정에 고개를 끄떡이지 않고 그 한계선을 기꺼이 짓밟고 넘어섰다. 그렇다. 어떤 결심은 머릿속이 아니라 손끝에서 완성된다. 마음 속으로 백 번을 다짐해도 몸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동레미의 그 소녀는 왕세자를 만나러 가기 전 과감한 결단을 했다. 여자의 치마를 벗고 남자의 옷을 입었다. 그리고 머리를 남자처럼 짧게 잘랐다. 그런데 그 시대의 여자가 한 행동은 지금의 우리가 하는 거와 같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건 그 시대 질서를 건드리는 일이고, 경우에 따라 이단으로 몰릴 수도 있는 중대한 위반이었다.진짜 넘어서는 사람은 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 자기 목적지를 보느라 발밑의 선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밟는다. 그게 전부다.p.52규칙과 질서, 기준은 사회를 구성하는데 있어 중요하다. 그러나 그 규칙 아래에서는 위대한 혁명이나 영웅이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세상의 잣대에 맞추느니 차라리 거룩한 이단이 되는게 낫다. 누군가 나를 규제하고 막아도 말이다. 잔다르크는 그런 모습으로 시농 성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 앞에는 쉽지 않는 테스트가 먼저 기다렸다. 당대 최고의 신학자들이 모여 그녀를 검증했고, 까다로운 신학적 질문들이 쏟아졌다. 까막눈이었음에도 그걸 감추지 않고 자신이 가진 확신으로 대응해 나갔다. 우여곡절 끝에 시농 성에서 도착한 잔다르크는 1429년 3월, 마지막 테스트를 마주하게 된다. 왕세자 샤를은 잔다르크를 시험하기 위해 신하들 사이에 옷을 바꿔 입고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었다. 왕좌에는 다른 신하가 앉아 있었다. 그러나 잔다르크는 접견실에 들어서자마자 가짜 왕을 지나쳐, 군중 속에 숨어 있던 샤를 황태자 앞에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고귀하신 황태자 전하, 하느님께서 전하를 랭스에서 왕으로 모시라고 저를 보내셨습니다."​이 놀라운 광경에 성 안의 모든 이들이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녀는 왕을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또한 다른 자료에 보면 잔다르크는 샤를과 독대한 자리에서 오직 샤를 자신과 하느님만이 알고 있던 은밀한 기도 내용을 언급하며 그의 혈통과 왕위 계승권에 대한 의구심을 완전히 해소해 주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녀는 '신실하고 순결한 소녀(La Pucelle)'로 인정받아 마침내 군대를 이끌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된다.​당시 상황을 볼 때 16세의 소녀가 보여준 강단있는 모습은 과연 어떠했을까? 많은 사람들에 의해 둘러싸인 가운데 그녀라고 두려움과 조소 썩인 얼굴들을 보며 주눅들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녀는 오히려 당당하게 나아가 자신이 가진 신념과 확신을 말하며 동의를 얻어냈다. 그리하여 그녀는 첫 번째 전투 현장으로 나가 부상을 이겨내면서까지 싸우면서 결국 영국군을 퇴각하게 만들었다. 이 사건으로 잔다라크는 '오를레앙의 처녀(The Maid of Orléans)'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고 프랑스 전체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부상은 이러했다. 전투 중 화살에 어깨를 맞는 중상을 입었지만, 눈물을 흘리며 화살을 스스로 뽑아내고 다시 전선으로 복귀해 군대를 독려하면서 사기를 높여주었다.​누군가가 가로 막아도 거기에 멈추지 않고 달리는 모습을 배운다. 다쳤다는 것이, 상처 받았다는 것이, 일이 크게 어긋나서 실패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가로막는 것이 분명 있다. 그게 사람이든 능력에 관한 것이든. 중요한 것은 용맹함도 필요하지만 아직 오늘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걸어가는 힘을 가지는 것이다.​책을 읽어가면서 잔다르크라는 한 여성이 싸워간 인생을 배운다. 저자는 잔다르크가 걸어간 삶의 발자취를 삶이라는 현실 속에서 가져와 일일이 대비하며 우리가 가진 약점을 그녀에게서 배우라고 종용한다. 그런데 조금은 억지스런 대비로 이끄는 점이 있다. 그러나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잔다르크는 칼로 세상을 구한 장군이 아니라, 스스로를 믿는 감각을 되돌려 준 사람이다. 세상이 내 목소리를 보며 미쳤다고 부를 때, 내가 그래도 가야 할 곳으로 걸어갈 수 있는가를 묻고 있다. 여기에 대해 단호하게 대답할 수 있는 자는 흔치 않다. 그럼에도 무언가를 하기 위해 완성된 상태로 움직이겠다고 하며, 마냥 망설이는 자에게 잔다르크는 그저 한 걸음을 내 딛는 용기를 가지라고 말해준다. 잔다르크 역시 첫날에는 아무 자격도 없는 시골 소녀였다. 그런데 문을 열고 나섰기에 잔다르크기 되었다. 아직도 나는 부족하다 생각하며, 내가 그 자격에 맞는 사람일까하며 의구심을 가진자들에게 이 책은 우리의 등을 조용히 밀어내주는 책이다. <br>-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25/77/cover150/k08213167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2257785</link></image></item><item><author>storax</author><category>카테고리</category><title>모든 것을 걸지 않은 자에게 세상은 아무것도 내어주지 않는다 - [모든 것을 걸지 않은 자에게 세상은 아무것도 내어주지 않는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576129</link><pubDate>Fri, 16 Oct 2026 22: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57612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22131673&TPaperId=1757612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27/57/coveroff/k32213167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22131673&TPaperId=1757612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모든 것을 걸지 않은 자에게 세상은 아무것도 내어주지 않는다</a><br/>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 클래시카 / 2026년 09월<br/></td></tr></table><br/>운명은 우리 행동의 절반의 주인일뿐,나머지 절반은 우리에게 맡겨져 있다.제목이 참 마음에 든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은 인생은 대충 살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 때론 집요하게, 때론 모든 것을 걸듯 살아야 입에 풀칠이라도 하고 사는 것이다. 이 책은 한때 로마 가톨릭교회에 의해 1559년에 금서 목록에 올렸다. 당시 교황청은 "사악한 책(evil book)"이라 부르며 금서로 지정했던 것이다. 흔히 마키아벨리를 ‘권모술수의 대명사’로 바라보는데,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인간이란 존재를 철저히 파헤친 실존적 가르침이 통쾌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이 책은 권력자들에게만 읽혀져야지 일반 시민이 읽으면 안 되는 책이라 한다. 그것은 권력을 가진 자들의 비밀을 알게되면 그들이 누리는 모든 혜택이 사라지기 때문이다.​그래서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말하길 착함의 기준을 버린다. 그 이유는 흔히 말하듯 '착하게 살면 결국 잘되며, 이긴다는 것이' 현실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손해보고, 내가 좋은 사람으로서 살아가려는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는 나를 이용하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우리가 배운 대로의 올바른 삶이 현실엔 통하지 않음을 알려준다. 물론 본 책은 우리가 나쁜 사람이 되라고 권하지 않는다. 그건 마키아벨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당신이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무너뜨리려는 쪽의 방식까지 볼 용기가 있는가"를 묻는다.​살아보면 상대방 쪽의 인간은 내 선의를 고려해주지 않는다. 그들은 내가 착하다는 걸 알고 정확히 그 지점을 이용한다. 착한 사람은 거절을 어려워하고 갈등을 피하고, 자기 몫을 주장하지 못한다. 그건 미덕이 아닌 예측 가능한 약점이다. 그래서 착하게 살려고 하는 자는 간교한 자들에게 많이 당하고 짓밟혔다. 독자도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착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인줄 알았다. 그러나 삶은 내가 생각한대로 대가를 주지 않는다. 철저히 인간은 계산적이며 이기적이다. 착함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착함을 지탱할 것을 갖추라는 것이다.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착함은대게 오래가지 못한다.p.25그래서 군주론은 흡사 명분을 제거하고 현실이라는 뼈만 남긴 해부학 책 같은 책이다. 그리 두껍지도 않은 책은 잔혹한 문장이 즐비하다. 군주의 인자함에 대해 논하는 부분에서 마키아벨리는 『군주론』 17장에서 "군주는 사랑을 받지 못할 바에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편이 안전하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사랑은 상대의 마음에 달려있고 두려움은 나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p.74) 이 책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다른 책에 보면 "군주가 그들에게 이익이 되는 한 그들은 군주의 편이다. 인간은 이익이 되는 일에는 걸신이 들려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더불어 "백성들의 말을 전적으로 믿고 별도의 대비책을 마련해 두지 않은 군주는 멸망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인간의 나약한 심리를 역이용하라고 가르친다. 또한 "악행을 행해야 할 경우에는 한번에 몰아서 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악행을 되풀이하지 않는 방법이 된다는" 것이다.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할 때언뜻 보기에 마키아벨리는 교활하고 술수가 가득한 악한 인생을 가르치는 거 같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가 마키아벨리에게서 배우고 싶은 건 잔인함이 아닌 정확함이다. 사람을 미워하는 법이 아니라 사람이 실제로 무엇에 움직이는지를 보는 법을 아는 것이다. 세상을 저주하는 대신, 세상이 지금 어떻게 생겼는지를 왜곡 없이 보는 눈. 그 눈을 얻고 나면 이상하게도 화가 줄어든다고 말한다. ​본 책에서는 로마 건국에 관한 얘기를 전해준다. 『로물루스와 레무스』라는 쌍둥이 형제가 새 도시를 세우려 했고, 로물루스가 그 경계에 성벽의 선을 긋게 되었다. 그런데 동생 레무스는 그 성벽의 높이를 두고 형을 조롱했다. 그 낮은 담이 무슨 도시를 지키겠냐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로물루스는 동생을 베어버렸다. 그리고 로마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실제 역사인지 전승인지 분분한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키아벨리는 로마사 논고에서 로물루스를 질타하지 않고 오히려 변호하며 이런 말을 한다.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일에는 한 사람의 단독 권위가 필요하고, 로물루스는 바로 그 이유에서 비난이 아닌 옹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존속살인자임에도 마키아벨리는 그를 비호한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비정하게 보이는 악도 가능하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그러면 무엇인가? 지금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것은 도덕 교과서를 말하는 것이 아닌 한 나라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 가를 말하고 있다. 창건이라는 것은 없던 규칙을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규칙을 만들 때 다들 자기 말을 내세운다. 그러면 그 배는 산으로 가게 된다. 그래서 시작하는 자리에서만큼은 결정은 한 사람이 쥐어야 되기에 때론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실생활을 보면 그러하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으면서 무언가를 바꿀 수는 없다. 이건 단순한 협박이 아닌 산수다. 바꾼다는 것은 지금 이익을 보는 쪽에서 무언가를 덜어낸다는 뜻이며, 덜어낸 쪽은 당연히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 미움을 계산에 넣으면서 실행해야 될 때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끝까지 끌려가며, 리더라면 존재감을 잃게된다.​결국 이 책은 한 문장을 위해 쓰여졌음을 알게 된다. 그건 「정치가 도덕의 언어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포장하지 않고 그대로 적나랄하게 말해준다. 다만 그 전부가 너무 노골적이어서 권력자들은 그의 책을 금서로 정했다. 틀렸기 때문이 금지한 것이 아니라 맞기 때문에 금지했다. ​이 책을 통해서 배우는 것은 순진함을 벗는 것과 비열해지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배운다. 비열해지는 것은 내 이익을 위해 남을 해치는 쪽으로 손을 뻗는 일이다. 순진함을 벗는 것은 그렇게 손을 뻗는 사람이 세상에 실제로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순진하다는 것은 그저 바보가 된다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대해 명확히 아는 것이다. 그건 인간은 대부분 이기적이며 계산적으로 살기 때문이다. 악을 행하라는 말이 아니라 현실을 보면서 판단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말하길 "당신에게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무너뜨리려는 쪽의 방식까지 들여다볼 용기가 있는가"라고 묻는다. 이 문장이 이 책 전체의 요약이다.​이 책은 순진함과 정직함과 선함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세상은 우리를 얕잡아 보기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생각이 뭔지를 알기를 바란다. 그래서 순진함을 유지하되 지혜롭게 판단하며, 그들에게 이용 당하며 살지 말라는 것이다. "순진함을 벗는 것과 비열해지는 것은 다르다. 비열해지는 것은 내 이익을 위해 남을 해치는 쪽으로 먼저 손을 뻗는 일이다. 순진함을 벗는 것은 그렇게 손을 뻗는 사람이 세상에 실제로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다. 앞의 것은 내가 무엇을 하느냐의 문제고, 뒤의 것은 내가 무엇을 아느냐의 문제다. 눈을 뜨는 것과 이빨을 드러내는 것은 다른 동작이다. 눈은 항상 떠 있어야 하고, 이빨은 필요할 때만 꺼내면 된다." p.283그렇다. 무언가 손해를 보고 집에 돌아온 밤에, 내가 착해서 손해를 봤다고 생각하는 대신 어디서 판을 잘못 읽었는지 분명하게 되짚어보아야 한다. 밤에 불 끄고 누웠을 때 억울했던 장면이 자꾸 떠오르면 이 책만한 가르침이 없다. 억울함은 감정이지 힘이 아니다. 세상은 나의 억울함을 계산에 넣지 않기에 때론 교묘함의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서 ‘군주론’에서 가장 유명한 말은 ‘군주는 여우의 지혜와 사자의 힘을 동시에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 때문에 상처받고, 세상을 저주하며 살기에는 내 인생이 아깝다. 따라서 세상 돌아가는 것이 어떠한 형태인지를 왜곡 없이 보여주는 이 책으로 달려와서 화를 가라 앉히길 바란다. 생각보다 세상에 대해 알고나면 이상하게 화가 줄어들고, 기대하지 않았던 것에 배신당하는 일도 줄어든다. ​너무 세상을 몰랐고, 사람의 심리를 몰랐다. 그래서 많이 당해보면서 이 책을 보니 마키아벨리가 본 인간의 심성, 군중심리의 본질, 조직의 성격, 리더십, 통치기술 등에 걸쳐 핵심을 꿰뚫는 마키아벨리의 통찰력은 비범하고 명쾌하다. 그러므로 세상을 너무 착한 마음으로 살지말라. 그 이유가 궁금하다면 본 책을 꼭 정독하기를 바란다. 저자는 자신이 겪은 삶의 부분을 가져와 현실성 있게 알려준다. 읽으면서 마음에 해소되는 부분과 눈을 뜨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br>착한 사람으로 남는 것보다먼저 할 일이 있다는 것.눈을 뜨는 일이다.​<br>-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27/57/cover150/k32213167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2275768</link></image></item><item><author>storax</author><category>카테고리</category><title>오십에 읽는 동의보감 - [오십에 읽는 동의보감 - 몸, 마음, 인생을 다스리는 최고의 건강 고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542959</link><pubDate>Tue, 29 Sep 2026 10: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54295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32131974&TPaperId=1754295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82/84/coveroff/k03213197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32131974&TPaperId=1754295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오십에 읽는 동의보감 - 몸, 마음, 인생을 다스리는 최고의 건강 고전</a><br/>김형찬 지음 / 유노북스 / 2026년 09월<br/></td></tr></table><br/>《동의보감》에도 마흔을 지나면서 기운이 쇠하기 시작하고, 오십이 되면 몸이 무거워지고 눈과 귀가 예전 같지 않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난 시간 동안 이어진 몸의 변화가 오십부터 드러 나는 것이다. 그래서 오십에는 내 몸 전체를 봐야 한다.<br>벌써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넘어 섰다. 불혹의 나이인 사십에는 느끼지 못한 것이 오십이 되니까 확연히 다르다. 책에 쓰인 그대로이다. 「젊을 때는 며칠 밤을 설쳐도 다시 일어나고, 과식하고 과로해도 어느 정도는 회복한다. 조금 비고 조금 막혀도 넉넉한 밑천과 빠른 회복력이 그 틈을 메워 준다. 그런데 오십이 되면 똑같이 일했는데 더 피곤하고, 예전과 같은 양을 먹었는데 속이 불편하다. 잠을 하루 설친 여파가 며칠을 가고, 전에 없던 통증이 생긴다. 마음의 흔들림도 몸에 더 빠르게 나타난다」 p.12​젊은 시절(3-40대) 오십 넘은 사람들과 육십 넘은 사람들이 약봉지를 선반이나 방바닥에 쌓아두는 모습을 봤을 때는 왜 저렇게 몸을 관리하지 못해서 그럴까 생각했다. 나라는 존재는 그분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걸어 다니는 것도 괜찮고, 먼 거리를 운전해도 다음 날 조금은 피곤하지만 괜찮았고, 피부는 동안 외모라 항상 매끄러운 피부에 그다지 관리하지 않아도 되었다. 배는 나오지 않았고, 소화 또한 너무 잘 되었다. 그래서 나는 좀 무리하게 몸을 사용해도, 지금의 방식으로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주 큰 오만이었다. 그야말로 오십이란 몸에 나타나는 증상이 나타나면서 괴로운 나날을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몸은 무거워졌고, 기운이 쇠하였다. 눈이 흐려졌다. 검버섯이 생겼으며, 얼굴 표면에 뾰루지가 같은 것이 점으로 변하더니 없어지지 않는다. 같은 양의 밥을 먹지 못하고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 어딘가 혹시 하는 마음에 보험도 들었다. ​정말 오십은 달랐다. 그 이유를 책에서는 "지난 오십년 동안 먹고, 자고, 움직이고, 일하고, 사랑하고, 걱정하고, 버티며 살아온 시간이 몸에 쌓여 있기 때문이다."고 알려준다. 그런데 《동의보감》을 보면 마흔을 지나게 되면 기운이 쇠하기 시작하고, 오십이 되면 몸이 무거워지고 눈과 귀가 예전 같지 않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난 시간 동안 이어진 몸의 변화가 오십이란 기점부터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오십에는 내 몸 전체를 봐야 한다는 말을 이 책은 분명하게 적시한다.​나는 무엇을 너무 많이 써 왔는가.무엇이 부족해졌는가.어디가 막혀 있는가.무엇을 이제 놓아야 하는가.무엇을 다시 채워야 하는가.​어차피 100세 시대인데, 어른들 말따나 요양원에서 인생을 보내고 싶지 않다. 그건 지옥이다. 그래서 몸이 무너지면서 정신이 번쩍들고 내 몸을 이대로 방치하면 안 된다는 절박함을 가지게 되었다. 누군가 오십을 준비하라고 가르쳐줬다면 내가 미리 준비는 했을까? 사실 이러한 가르침을 받는 교육이 나이 서른이나 마흔에 의무적으로 가르쳐 주는 제도가 있다면 젊은이들은 그걸 귀담아 들을까 싶다. 왜냐하면 나라는 존재는 몸 상태가 좋지 않는 오십대처럼 되지 않는다고 다들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글을 보았다. 느헤미야 로저스(Nehemiah Rogers (1593 -May 1660)가 한 말이다. 『청교도 금언집』에 실린 글인데 『아무리 늙은 노인이라도 적어도 일년은 더 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은 보통은 "모든 인간은 죽는다"라고 말하지만, 자기 나이에 대해서는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영원히 살것처럼 생각한다』 죽음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대부분 자신은 오십의 나이가 되어도 건강한 몸으로 계속 산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종종 걸음을 걷는 사람처럼 안 될거라는 확신을 한다. ​그런데 거리를 지나보면, 특히 운동하는 공간에서 60이 넘은 어른들이 제대로 걷지 못하고 종종 걸음으로 걷거나, 팔이나 다리가 굳어진 채로 다리를 끌고 걷는 모습을 본다.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나는 저 사람들 하고는 달라'하고 세뇌를 시키지만 어디 그게 생각대로 되는가? 저 어르신도 저렇게 될 거라고 꿈에도 생각지 못할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9월 2일자 뉴스를 보니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 진행자인 박재홍(50) 아나운서가 뇌경색으로 갑작스레 쓰러져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는 근황을" 공개했다. 이분의 나이가 오십이다. 그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날도 운동을 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병원에서 미리 손을 봤을 것이다.​이 책은 책 제목이 말해주듯 《오십에 읽는 동의보감》으로서 오십의 나이의 사람이 꼭 읽어야만 하는 거지만, 내 몸이 경험한바는 최소한 나이 사십에 반드시 읽고 오십과 그 다음 100세를 준비해야 하는 책이다. 그러므로 가능하다면 전국민의 필독서로 지정되어야 할 것이다.​오십 이후를 지키는 8글자​通則不痛 不通則痛통즉불통 불통즉통통하면 아프지 않고, 막히면 아프다​《동의보감》에 담긴 위의 여덟 글자는 허준이 사람의 몸을 바라본 관점을 압축해서 보여 주는 문장이다. 신기하게도 오십이 되면 몸 여기저기에서 전에 없던 신호가 나타난다. 어깨가 굳고 소화가 더뎌지며, 잠을 설치면 며칠이 피곤하고, 이유 없이 가슴이 답답하거나 기운이 떨어진다. 남자도 갱년기가 있다느니 내가 그런 건가 하며 화가났다. 그러나 이것을 이겨내야만 하기에 몸에 좋다는 모든 정보를 이잡듯 찾아 음식은 물론 영양제, 보약 등을 챙겨 먹기 시작했다. 안 하던 운동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동의보감》에 따르면 몸 전체의 흐름부터 살피라고 한다. 몸은 장기들이 따로 작동하는 부품의 집합이 아니라 장부와 기혈, 몸과 마음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하나의 살아 있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즉 오십부터는 어디가 아픈지만 볼 것이 아니라 무엇이 부족하고, 어디가 막혔으며, 어떤 균형이 흐트러졌는지를 살피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선조가 의관들에게 말하길 "병이 난 뒤 약으로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 몸을 잘 길러 병을 예방하는 양생을 중시하는 길을 마련하라"는 말처럼 이 책이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아니라 미리 내 몸을 관리하는 백서로 존재하기를 바란다.​《동의보감》은 서양 의학과 다르게 병을 고치는 법을 기록한 의서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몸 전체를 읽는 책이다. 즉 병을 보기 전에 사람을 보고, 증상을 보기 전에 몸 전체의 관계와 흐름을 읽도록 한다. 그래서 부족한 것은 제대로 채우고, 막힌 것은 흐르게 하며, 흐트러진 균형을 다시 바로잡으면 몸은 제 질서를 되찾기 시작하는 것이다.​본 책은 25년간 1만 명이 넘는 환자를 진료한 김형찬 한의사가 오늘의 오십에게 《동의보감》이라는 몸의 지도를 펼쳐 보이는 책이다. 저자 자신도 오십을 지나며 중년 환자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예전 같지 않다”는 몸의 괴로움을 몸으로 실체 체험하였기에 이 책은 절박한 마음의 기록물이라 말라고 싶다. 아직 오십이 되지 않는 분들에게는 이 책의 호소가 마음에 새겨지지 않을지 모르겠다. 결국 인간이란 자신이 그걸 겪어 봐야 건강이야말로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흔히 듣는 명언이 있다. 윈스턴 처칠의 말인데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반을 잃는 것이며,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이다."​안타까운 것은 건강할 때는 이 문장의 깊은 의미를 모른다. 건강을 잃고 나서야 아는 말이라고 하니 인간은 그런가 보다. ​그래도 뭔가 몸의 기운이 빠지고, 이상 증상이 나타나면 우리의 몸을 명확하게 되짚어주는 《동의보감》과 같은 책 한 권은 서재에 꽂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흔히 알듯 서양학은 우리의 몸 한 부분을 망가지게 하고 치료를 선사한다. 그러나 한의학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양생이 치유의 근본이라고 하면서, 몸 전체의 불균형을 치료하는 치료법이다. 어디가 아픈지만 볼 것이 아니라 무엇이 부족하고, 어디가 막혔으며, 어떤 균형이 흐트러졌는지를 살피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몸은 장기들이 따로 작동하는 부품의 집합이 아닌 장부와 기혈, 몸과 마음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하나의 살아 있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몸이 허하다고 무조건 값비싼 보약과 좋은 음식을 채워 넣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무엇으로 채울지 고민하기 전에 왜 비었는지, 제대로 소화하고 순환시킬 힘은 있는지부터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오십에 읽는 동의보감》은 이처럼 내 몸에 나타난 익숙한 증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도록 54가지 이야기로 풀어낸다. 1부에서는 : 정(精)·기(氣)·신(神)이라는 몸의 근본을 살피면서 오십 이후의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살핀다. 2부에서는 오십에는 어디를 살펴야 하는가? : 형(形)·색(色)·태(態)로 드러나는 몸의 징후를 보고 몸 상태를 확인하도록 도와준다. 3부는 오십 이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허(虛)·체(滯)·란(亂)을 다스리는 삶의 방식을 보여주면서 비어 있다면 제대로 채우고, 막혀 있다면 흐르게 하며, 흐트러졌다면 다시 자신에게 맞는 질서를 잡도록 도와준다. ​특별히 독자는 두 가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어느 날 부터 가슴 두근거림이 시작됐다. 분명 누군가를 새롭게 사랑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밤마다 가슴 떨림과 함께 자고 일어나면 식은 땀이 난다. 밤에 잠을 자지 못해 여러 번 깨어나 거실로 나간다. 이게 말로만 듣던 갱년기인가 싶기도 한데, 문제는 그게 왜 나에게 오는가였다. 약간의 신경질이 났고, 가슴 두근거림이 시작되면 마음을 추스릴 수 없었다. 그런데 책을 보니 "열을 만들어 내는 연료이자 열을 제어하는 역할을 하는 '정혈(精血)'이 부족해서 생기는 '가짜 열' 때문이다." 동의보감에 많은 영향을 준 금원 사대가 중 한 명인 주단계는 '양상유여 음상부족(陽常有餘 陰常不足)'이라는 한마디를 통해 이미 수백 년 전 현대인의 몸 상태를 정확히 예언했다. 여기서 양(陽)은 활력이 넘친다는 뜻이 아닌 냉각수가 부족해 엔진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치솟은 상태를 말한다. 현대인의 일상은 마치 금메달을 향해 정혈을 태우며 과속 페달을 밟는 형태다. 그래서 그 자체로 정혈을 말리고 허열을 부추기는 거대한 건조기가 된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만족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재앙은 없다"고 하듯이 현대 사회는 많은 에너지를 쏟아낸다. 젊을 때는 그래도 버티지만, 내리막에 들어서는 오십부터는 약한 고리부터 망가지기 시작하여, 그동안 누족된 정혈의 부채가 본격화 된다.​정혈이 뭔가? 정(精)과 혈(血)을 한데 아울러서 일컫는 말로서 옛 의학서에는 정과 혈은 다 음식물에서 생기는데 정혈의 상태는 사람의 건강 상태를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고 보았다. 현대인들은 스트레스는 물론 스마트폰까지 가세하면서 몸을 혹사 시킨다. 그래서 아침이 되면 커피 한 잔으로 몸을 깨우지만 사실 그건 몸을 더 죽이는 것이다. 《동의보감》 내경편(內景篇)에 "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우선 곡식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였다. 다른 책에 보니 동의보감은 정기신혈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앞부분에 나오는데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정기신혈중에서 실제 우리 몸체를 구성하는 유형의 물질에 해당하는 것을 특히 '정과 혈=합쳐서 정혈'이라고 부르는데 그 정혈을 만드는 원천이 바로 "곡식"인 것이다. 정은 곡식에서 생기고, 정이 부족할 때는 음식으로 보충한다. 하지만 달고 기름진 음식은 정을 만들지 못하고, 오직 담박한 음식만이 정을 보할 수 있다. p.51또한 최고의 서예가 추사 김정희는 말년에 '대팽고희'라는 글을 남겼다. "최고의 요리는 두부, 오이, 생강, 나물이고, 최고의 모임은 부부와 아들딸, 손자와의 모임이다." 즉 파란만장한 삶을 살며 산해진미부터 유배지의 거친 음식까지 경험한 노학자가 인생의 끝에서 가장 귀하게 여긴 것은 소박한 밥상과 가족이었다고 하니 건강이란 것이 기본적인 것을 잘해내지 못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허준의 첫 번째 처방이 바로 눈에 들어온다. 내경편에 나오는 "경옥고(瓊玉膏)"이다. 경옥고는 동의보감에 소개된 무병장수를 위한 한약의 일종으로서 읽기만 해도 힘이 난다. 당장에 한약방으로 달려가고픈 심정이다. 자세한 내용이 책에 나오는데 적어 본다.​『정을 채우고 골수를 보하며, 진기를 고르게 하고 정신을 기른다. 노인을 젊게 하고, 모든 부족한 것을 채우고, 모든 병을 낫게 한다. 생명 활동이 충만하고, 장부의 기능이 왕성해진다. 백발이 다시 검 어지고, 빠진 이가 다시 나며 걸음걸이가 달리는 말과 같아진다. 하루에 여러 번 복용하면 온종일 배고픔과 갈증이 없으니, 그 효능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p.57​그런데 결론 부분에 이런 말이 나온다. 경옥고는 균형을 잡기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진정한 경옥(瓊玉)은 약병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절도 있게 다스려 내면에서 길어 올리는 맑은 진액속에 있다. 결국 평소의 몸 관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또 하나 눈에 들어오는 내용은 작년 부터 눈에 뭔가가 낀 거 같고, 사물이 선명하지 않다. 안경을 쓰지만 선명하게 보던 것이 이제는 눈이 흐리다. 동의보감의 가르침이다. "오장육부의 정기가 모두 위로 올라가 눈에 모여 그 정기가 눈동자에 드러난다." 즉 눈의 문제는 눈 그 제차가 문제가 아니라, 새로이 안경을 맞추어야 될 것이 아니라 신장을 살펴야 하는 거였다. 책은 눈을 다섯 부위로 나눠 오장과 연결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이것을 오륜(五輪)이라 부르는데 눈꺼풀은 비장, 눈 안쪽 구석은 심장, 흰자위는 폐, 홍채는 간, 그리고 눈동자와 수정체는 신장에 속한다. 예를 들어 눈꺼풀이 유난히 붓거나 누렇다면 소화 기능의 정체를 살피고, 눈 안쪽 구석의 핏줄이 붉게 충혈돼 있다면 심장의 열이나 스트레스를 확인한다. 흰자위가 탁해졌다면 폐의 기운을 점검하고, 홍채의 광택이 떨어졌다면 간의 해독 능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눈동자가 흐려지고 시력이 떨어지기 시작한다면 이것은 신장의 정기가 소모되고 있다는 뜻이다. 눈 영양제를 먹고 있는 상황인데, 그리고 소변을 자주 보는 상황인데 신장에 무언가 큰 보약을 주러 책의 저자를 찾아가 봐야겠다. ​결국 책을 보면서 결론을 내리면 지나친 과로, 수면부족, 풀지 못한 스트레스, 운동 제로가 현재의 병을 불러 온 것이다. 몸이 지금 나에게 신호를 보내는데 그걸 임시 방편으로 무마를 시키고 영양제로 내 몸을 관리하려고 했으니, 몸은 더 나아지지 않고 계속 하양 곡선을 그리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간단하게 수십개의 약병과 영양제를 꺼내 털어 먹으며 몸을 관리하고 있는 현실이다. 나쁜 에너지로 몸을 관리하지만 결국 그건 한계가 다가온다. 그래서 약왕이라 불리는 '손사막'에 따르면 "생활의 기술을 모르면 아무리 좋은 약을 매일 먹어도 장수하기 어렵다"고 하듯이 몸에 대한 전반적인 상태를 본 책을 통해 새롭게 하리라 다짐해 본다.​《오십에 읽는 동의보감》이란 책은 지금 내게 생명의 끈을 놓아주는 다리가 되고 있다. 너무 지쳤고, 에너지를 쏟아냈다. 먹는 문제도 부실했고, 잠도 충분하지 못했다. 책에 나오는 처방전인 「귀비탕」, 「인삼고본환」, 「쌍화탕」, 「음양탕」, 「육미지황원」이란 등의 처방을 보면서 경옥고와 더불어 빨리 약이라도 지어먹어 내 몸의 기력을 회복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은 인생의 중반기를 준비하도록 하여 건강한 장수를 만들어 주는 책이다. 특히 노화와 음식, 불안과 감정, 호흡과 체질, 얼굴과 피부, 움직임과 휴식, 소진과 보약, 비움과 갱년기, 회복까지 다루면서 몸이란 존재를 돌보라고 알려준다. 그렇다. 병들고 허약해진 내 몸을 어떻게 돌봐야 될지를 이렇게 얘기하듯 들려주니 빨려 들듯이 읽게 되었다. 망가진 내 몸을 보면서 망연해하는 자들에게 이 책은 단비와 같고 기운과 같은 도움을 줄 것이다. 이제 희망이 생긴다. ​오십의 나이라면, 아니 사십의 나이에 들어선 자들도 꼭 읽어야 할 필독서다.  <br>- 이 글은 컬처블룸(유노북스)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82/84/cover150/k03213197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1828427</link></image></item><item><author>storax</author><category>카테고리</category><title>토지 필사 노트 - [토지 필사 노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510026</link><pubDate>Fri, 11 Sep 2026 19: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51002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62130693&TPaperId=1751002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15/93/coveroff/k36213069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62130693&TPaperId=1751002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토지 필사 노트</a><br/>박경리 지음, 유선경 엮음 / 다산초당 / 2026년 07월<br/></td></tr></table><br/>누구나 그렇듯이 한 번쯤 도전하고 싶은 대상이 있다. 히말리야 산맥의 최고봉인 에베레트산처럼 말이다. 도서 가운데도 그러한 최고봉이 있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인 톨스토이 대표작인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과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죄와 벌》이 그것이다. 한국 작품으로는 단연 『토지』가 나에게는 에베레트산이다. 누구나 다 알듯이 토지는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 중 하나로 꼽힌다. 1969년 9월부터 대하소설 『토지』가 집필이 되었으며 26년 만인 1994년 8월 15일에 완성되었다. 원고지 4만 장에 달하는 거대한 세계다. 출간된 책 권수는 20권이다.무려 9680페지이다. 지레 겁먹을 수준이다. 벽돌 책도 이런 벽돌 책이 없다. 그래서 논평이나 칼럼, 서평에서만 접했지 실제 접하질 못했다.​그런데 『토지 필사 노트』가 바로 그런 독자를 위해 탄생하여 우리 앞에 왔다. 이 책은 박경리 전작을 출간하고 있는 다산북스가 선보이는 최초의 토지문화재단 공식 『토지』 필사 노트다. 토지 작품 가운데 중요한 엑기스만(147개의 글귀)을 기록하여 독자들을 토지의 깊은 세계로 인도한다. 어쩌면 이 필사가 토지를 읽는 계기가 될지 모르겠다.<br><br>이 책을 엮은이는 유선경 작가이다. 그는 서문에서 “아무리 천재적인 작가라도 이와 같은 대하소설은 영원히 다시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썼는데 『토지 필사 노트』가 그 거대한 작품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도록 도와준다.​이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토지』의 글귀들은 오래된 문장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에게도 살아 있는 새로운 문장으로 다가온다.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당신에게 필요한 글귀』라고 엮은이는 말하는데 마치 오컴의 면도날처럼 인간의 본질과 세상의 모순을 명확하고 선명하게 드러낸다. 동시에 시대가 바뀌어도 변함없는 인간의 욕망과 사랑, 연민과 애달픔을 정과 한으로 승화하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위로와 지침을 건낸다. 즉 산다는 것에 대한 고민과 세상의 이치가 이 책 곳곳에 담겨 있다.​『토지 필사 노트』는 그냥 마음 가는대로 펼쳐 쓰면 된다. 목차를 벗어나 그날 마음에 다가오는 문장을 쓰고 곱씹으면 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새 『토지』가 품은 거대한 세계를 마주하게 되고, 그 문장들을 통해 나 자신의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즉 작품이 담고 있는 삶의 지혜와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이 생기며, 명징한 상태로 전환된다. ​이 책은 총 일곱 개의 주제로 엮어졌다. 1장 토지란 무엇인가?2장 인간의 욕망과 사랑3장 한국인의 한과 정4장 우리 어떻게 살 것인가?5장 꿰뚫어 본 인간 심리6장 그래서 우리에게 있는 한 장면7장 세상의 이치가 어떠한가?​토지 작품 가운데 147편을 가려 뽑아낸 글귀들은 모두 인간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1장 토지에 보면 마지막 필사 구절인 "사람이나 짐승이나 자기 태생대로 사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오"라는 글이 나오는데 엮은이는 이 문장이 토지의 핵심 주제라고 말한다. ​그렇다. 세상에는 이치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것은 규범과 달리, 만든 것도 만들어진 것도 아니라 애초부터 있던 원리이다. 그 태생대로 살아갈 때 삶은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자기가 공식일 수밖에 없다"는 원리와 한계를 인정하면 삶은 다르게 보인다. 아무리 이치를 말해도 인간은 결국 자유 의지에 따라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결국 이러한 생각은 타인과 세상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즉 다른 이가 살아가는 삶을 통해 인간은 남들은 나와 어떻게 다른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그래서 관통하는 이치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토지는 그러한 깊은 삶의 이치를 체험 속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들려준다. 한 순간에 듣고 마는 휘발성 문장이 아닌 한 생애를 처절하게 살아가면서 부딪힌 문장들이 이 토지에 실려 있다.​특히 『토지』는 흔히 ‘우리말의 보고’라 불릴 정도로 다른 작품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풍부한 어휘와 살아 있는 말맛, 치밀하면서도 아름다운 표현이 작품 곳곳에 스며 있다. 그래서 많은 독자들이 『토지』를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문장의 교과서’라고 말한다. 낯설은 경상남도 방언은 구수하다못해 매우 인간적인 단어로 들린다. 한 자료를 보니 생전에 작가가 평사리를 무대로 선택한 것은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만석지기를 주인공으로 설정해 드넓은 평야가 있으며, 지리산이 안고 있는 우리 민족의 비극적인 역사가 뒷받침이 되는 곳이어야 했다. 그리고 주인공들이 쓸 토속적인 언어, 경상도 방언을 쓰고 싶어서 섬진강을 낀 경남의 끝자락, 평사리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독자는 각 주제마다 마음에 다가오는 문장들이 많았지만 그 중에 2장 인간의 욕망과 사랑, 4장 우리, 어떻게 살 것인가 5장 꿰뚫어 본 인간의 심리 부분에서 많은 통찰력을 얻게 되었다. 몇 문장을 실어보면...(아니 많은 문장을 실어 본다)2장 인간의 욕망과 사랑​23. chapter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 소중한 것은 돈, 오직 돈이었다​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 소중한 것은 돈, 오직 돈이었다. 그러나 비참했던 이력 때문에 버림당하지 않는 것만이 살길인 줄 믿었던 지난날의 임이네는 아니었다. 남편 없어도 돈 있으면 산다는 배짱이었다. 용이보다, 아니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 소중한 것은 돈, 오직 돈이었다. 돈에게만 그는 그 자신의 장래를 걸었다.이 세상 마지막이 온다 하여도 혼자만은 살아남을 것 같은 왕성한 생명력, 불모의 바위틈을 피 흘려가며 기어오르는 생명에의 의지, 무서운 힘이었다. 그런 뜻에서는 본시부터 임이네는 거인이었다.​남편 자식도 갖고, 국밥집도 갖고 월선이도 죽어버리고 미운 사람들도 다 죽어버리고 그래주었으면 임이네는 오죽이나 좋았을까. 참으로 욕망 무한, 슬픔 없는 목숨이며 비렁땅 꽃 한 포기 새 한 마리 없는 황막한 인생이다.​25. chapter 욕망의 완성은 없다​그러나 인생이란 겨울 햇볕과도 같이, 쏟아지는 폭설과도 같이, 쩡! 하고 굉음을 지르며 스스로 몸을 가르는 빙하와도 같이.... 물론 봄의 환히와 여름의 정열도 있지만, 어디 사람의 삶만이 그러했겠는가. 삼라만상, 억조창생 생명 있는 것은 그 모두가 시간과 자리, 혹은 공간이라는 엄련한 십자가 밑에서 만나고 이별하며 환희와 비애를 밟고 지나가는 것이다. 욕망의 완성은 없다. 그것은 인간의, 생명의 불행인 동시 축복이다. 종말이 없는 염원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26. chapter 혼자 살자니 적막강산이고​"함께 살아도 편허질 않고 혼자 살자니 적막강산이고 참말이제 워째 살아야 할지 모르겄어라우"​32. chapter 뜻대로 살아볼려니까 피투성이가 되는 게야​공노인은 두메며 길상이며 월선이 봉순이 모두 기찬 얘기책 속의 인물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하나하나의 인생이 모두 다 기차다. '뜻대로 안 되는 것을 뜻대로 살아볼려니까 피투성이가 되는 게야. 인간의 인연같이 무서운 거이 어디 있나.'​4장 우리 어떻게 살 것인가​65. chapter 마음을 굽히지 않고 산다는 것이 얼매나 좋노​"세상에는 하고많은 일이 있고 어리석은 놈 등쳐서 깝데기 벳 기묵을 재간도 있는데도 와 하필이 이 짓을 하고 있제?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없는 것도 아니지마는 그러나 석아, 우리같이 설운 놈들이 마음을 굽히지 않고 산다는 것이 얼매나 좋노. 굽히도 굽히는 것이 아니요 기어도 기는 것이 아니라. 안 그렇나?"​67. chapter 너는 너 자신을 살아야 하는 게야​"두메산골에 가서 나뭇짐을 지더라도 가난하고 사람의 대접을 못 받는 이치를 알아야 할 거 아니냐 말이다! 너의 가난과 너에 대한 핍박을 너의 아버지 너의 형 탓으로 돌리는 것은 네가 없다는 얘기가 된다. 네가 없다는 것은 죽은 거다. 아니면 풀잎으로 사는 거다. 너는 너 자신을 살아야 하는 게야. 너의 아버지는 너 한 사람을 가난하게, 핍박받게 했지만 세상에는 한 사람이 혹은 몇 사람이 수천만의 사람들을 가난하게 하고 핍박받게 하고, 한다는 것을 왜 모르느냐 말이다! 지금 당장 목전의 원수는 일본이지만, 따라서 너의 형도 목을 쳐야겠지만, 제발 일하라 않겠으니 숨지만 말아라. 너의 자손을 위해서도, 너의 아버지의 망령을 평생 짊어지고 다니 다가 너의 자손에게 물려줄 작정이냐 말이야!"​5장 꿰뚫어 본 인간의 심리​86. chapter 넌 지나치게 순수한 것을 원하고 있다​"지금의 너에겐 가장 견디기 어려운, 그런 나이지만 여자, 술, 담배 하면서 크게 타락한 것같이 생각하고 또 남들도 그리 생각은 하겠으나 실상 넌 지나치게 순수한 것을 원하고 있다. 물론 너 어머니 성질이 남다른 것을 알긴 알지. 그만큼 너 자신도 성질이 남다른 데가 있는 게야. 순수한 것이 아니면은 다 부숴버리고 싶은, 그래서 너 자신을 짓이기고 있는 게야. 아무튼 지금 내 생각으론 이 어려운 고비만 넘기면은, 잘될 것 같다."​87. chapter 칼을 뽑지 못하고 바늘을 뽑았다​늘 언행에 중심이 잡혀 있고 심지가 꼿꼿한 윤도집인데 어찌 하여 환이에게만은 매번 신경이 곤두서게 되고 그러면은 신경이 바늘 끝으로 변하여 상대방을 찌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게 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럴 때마다 윤도집은 환이의 그 살기 어린 야유에 부딪친다. 살기나 야유가 두려웠던 것은 아니다. 칼을 뽑지 못하고 바늘을 뽑았다는 의식이, 소인배라는 자의식이 그를 부끄럽게 했고 자신에 대한 능멸감 때문에 견딜 수 없게 한 다. 그럼에도 어찌하여 매번 환이에 대해서만은 늪과도 같은 도전의 유혹에 빠지는 건지 윤도집은 알 수가 없었다. 깊은 증오심도 없으면서.​94. chapter 무서운 게 아니오 외로운 거요​"병자만 목에 칼 걸어놓고 사는 건 아니잖소. 산다는 것은 목에다 칼 걸어놓은 거요. 사는 것 아니라니까요." "그거는 성님 말이 맞소. 항상 칼든 놈이 뒤따라오는 것 겉은 생각을 했인께요. 이서방이 허약해져서 그 생각을 많이 하는 깁니다." ​강쇠가 거든다."무서운 게 아니오. 외로운 거요. 뭣이든 거머잡고 싶은 심정이오."​96. chapter 착한 사램이라고 어디 나쁜 마음 안 묵건데?​"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네라. 다 처지에 따라서 나빠지기도 하고 좋아지기도 하고, 제 살기가 편하믄 머할라고 남을 원망하겄노, 안 그렇나? 사흘 굶으믄 엔간한 사람이 아니믄 맘 잘 못 묵기 쉽지.(…)착한 사램이라고 어디 나쁜 마음 안 묵건데? 그라믄 부처님 안 되겄나? 사램이란 하루에도 몇 분은 나쁜 마음 묵지. 나쁜 사람도 하루에 한 분쯤은 좋은 마음 묵어보고 지은 죄도 무섭아해보고." 늘 그러던 봉순네였으나 귀녀에게 대해서만은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가지는 그 신뢰를 가질 수 없었다.​"염치는 배부른 사람이 챙기는 거지, 너처럼 그랬다가는 굶어 죽을 기다.""그거는 그렇지 않다." 호야할매는 끼어들었다."아무리 배가 고르고 기찹아도 염치를 채리야만 그기이 사람이제. 있고 없고가 상관없는 기라. 있다고 해서 어디 염치 채리더나?"​104. chapter 늙은 탓이 아니야 세월이 달라진 게야​김환과 길상이 나간 뒤 이동진은 오열한다. "이 사람아, 석운(최치수의 호). 나는 이제 뭐가 뭔지 모르겠 네. 참말로 모르겠네. 이십 년을 방황하였건만 나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고 생각은 호박오가리처럼 쭈그러들었네. 저네들은 싱싱 한 호박 넝쿨처럼 사방에다 줄기를 뻗고서 내 앞에 나타났단 말일세. 어떻게 그리 변신할 수 있었는지 모를 일일세. 철사 같은 그 신경의 줄이 나를 휘감더군. 옴짝할 수 없게시리 나를 휘감더군. 우리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은 한갓 감상이요, 그네들이 추하다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었네. 내 노여운 음성은 허울만 남은 호랑이 울음이었고, 그네들의 맞서는 음성은 발톱으로 먹이를 찢어발기는 이리 떼의 울음이었네. 이 사람, 석운, 늙은 탓이 아닐세 늙은 탓이 아니야. 내 나이 이제 오십을 넘겼을 뿐인데 세월이 달라진 게야. 그리고 우린 이조 오백 년의 무거운 세월을 싫든 좋든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지. 하기야 살아남으려면 의관이 무슨 소용이겠나. 맨발로 뛰어야 할 때는 맨발로 뛰고, 물구나무를 서야 한다면 물구나물 서야 하고. 한데 그게 안 되거든."​107. chapter 그 후회스러운 날들이 그립단 말시"지난날을 생각허믄 모두가 다 후회스러운 일뿐인디 그 후회 스러운 날들이 그립단 말시."좋은 문장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토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선하거나 악하거나, 고귀하거나 천박하거나, 청렴하거나 탐욕스럽거나…… 생김새만큼이나 마음보들이 각양각색인 600여 인물을 통해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회의감도 든다. 결국 여기에 나오는 인물은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나를 비추기 때문이다. 안 그런척 하지만 토지의 각 인물은 내 내면을 비춘다. 따라서 『토지』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질문한다. 말맛이 살아 있는 이 문장들을 통해 나라는 존재를 마주하는 시간이 되었다. 정말 원고지 4만 장에 달하는 문장들을 일일이 읽어봐야겠다.<br>-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15/93/cover150/k36213069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159327</link></image></item><item><author>storax</author><category>카테고리</category><title>우리는 매일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쓴다 - [우리는 매일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쓴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494944</link><pubDate>Fri, 04 Sep 2026 22: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49494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32130831&TPaperId=1749494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86/68/coveroff/k13213083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32130831&TPaperId=1749494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우리는 매일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쓴다</a><br/>호메로스 지음 / 클래시카 / 2026년 08월<br/></td></tr></table><br/>이 책은 이 한 문장에 마음이 뺏겨 손길(서평 신청)이 갔다."참아라, 나의 마음이여.너는 언젠가 이보다 더 끔찍한 일도 견뎌내지 않았던가."이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은 이러하다.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오디세우스는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길에 신들의 노여움을 사서,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거친 바다 위를 표류하며 전우들을 모두 잃고, 숱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게 된다. 모든 것을 빼앗기고 가장 깊은 절망의 심연에 내던져졌을 때, 그는 하늘을 향해 자비를 구걸하지 않았고, 대신 자신의 가슴을 치며 묵묵히 다짐한다.​"참아라, 나의 마음이여.너는 언젠가 이보다 더 끔찍한 일도 견뎌내지 않았던가."​살다보니 절망의 순간을 마주한다. 숨이 턱턱 막힌다. 무엇이 문제였지하는 자책감과 함께, 문제의 늪이 더 크게 짓누른다. 한편으로 새로운 길을 찾는다는 희망도 있지만 어떻게 이 위기를 벋어나야 할지 모르겠다. 당연히 이런 상황에 신을 찾게 된다. 자비를 구하게 된다. 그런데 오디세우스는 지난 날을 회상하며, 그때는 더 심각한 상황도 이겨냈지 않느냐 하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다짐하는 것을 보게 된다. ​참으로 산 넘어 산이다. 큰 산을 넘어 왔기에 이젠 어떤 산도 넉넉히 넘을 수 있고, 나를 괴롭힐 산이 없지는 않겠지만 더 이상 큰 산은 없을 줄 알았는데, 이번에도 또 큰 산맥이 나를 가로 막는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들 앞에 처절히 무력해지는 모습에서, 이젠 어떡하라는 말입니까하며 누군가(신?)에게 하소연을 흘려 보낸다.​어쩌면 인간은 신들의 폭풍 속에서 노를 젓고 살아가야 하는 운명인 것을 알게 된다. 삶을 흔드는 무게가 하늘만큼 커보여도 이제는 세상을 원망하거나, 나 자신을 학대하거나 또는 신의 변덕에 분노하거나, 나의 무능을 저주하는 일은 집어 치워야 한다는 것을 직감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원망할 시간에 다음 파도를 넘을 준비를 해야한다. 이것이 오디세우스의 이야기에서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가르침이다.​거대한 운명의 격량 앞에 그가 가진 지혜나 기도조차 무력했다고 한다. 그렇다. 세계는 정의로운 보상을 주지 않는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우리는 삶의 어느 지점에 반드시 부러진다.​"왜 나만 이런가, 왜 나는 열심히 살았는데 이 모양인가, 반대로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쉽게 가는가." 억울함에 매몰되어 과거만 파고드는 따위는 이제 하지 말아야 한다. 과거만 파고들면 손에 쥔 노는 자꾸만 미끄러지는 법이다.<br>그렇다. 이 책은 낭만적인 위안을 건네지 않는다. 대신 오래된 화두를 던진다. 그건 당신의 이타카(Ithaca-오디세우스의 고향이자 그리스의 섬 이름, 문학적·상징적으로는 ‘귀향’이나 ‘목표’를 의미하는 용어)는 어디인가? 당신은 지금 어디로 돌아가려 하는가? 아니, 그 전에 돌아갈 곳이 있기는 한가하며 내가 가야할 종착지가 어딘지를 묻는다.​이 책이 위대한 이유는 괴물을 이겼기 때문이 아니었다. 십년 동안 방향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이타카는 낙원이 아니었다. 작고, 척박하고, 돌 많은 섬이었다. 그래서 신들은 화려한 대안을 제시했다. 칼립소는 불멸을 주겠다고 했고, 키르테는 그를 왕처럼 환대했다. 그러나 파이아케스인들은 그를 붙잡거나 새로운 삶을 권한 것이 아니라, 이타카로 돌아갈 배와 선물을 마련해 주었다. 오디세우스는 그 도움을 받아 마침내 고향으로 향했는데, 여기에 대해 프롤로그를 쓴 편집부는 이렇게 언급한다. "그가 거절한 것은 귀환을 대신할 영원한 안락이었고, 그가 받아들인 것은 귀환을 가능하게 하는 타인의 환대였다. 그가 끝내 포기하지 않은 것은, 초라해도 자신의 것이어야 한다는 믿음이었다. 여기서 한 번 멈춰보자.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자신의 초라한 이타카를 부끄러워하며 남의 화려한 섬에 눌러앉으려 하는가."<br>무엇을 말하는가? 결국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 삶은 타인의 의해 주어지고 만들어진 안락한 삶이 아닌 폭풍 속을 걷지만, 되는 일이 없지만, 모든 것을 잃어버렸지만 나 자신이 경험하고 부딪힌 삶만이 오로지 나의 이타카가 되는 것이다. 호메로스의 전작 『일리아스』가 전쟁터에서의 영웅적 죽음과 명예를 다루었다면, 이 책 『오디세이아』는 전쟁에서 살아남아 집으로 돌아가는 삶의 여정을 이야기한다. 특히 신의 뜻에 굴복하지 않고 끊임없이 방황하면서도 정체성을 찾아가는 오디세우스의 모습은 지금의 불확실한 시대와도 별반 다르지 않다. 수천년 전에도 거친 바다를 향해 했고, 지금도 동일하게 인간은 가혹한 폭풍 앞에 서게 된다. 그런데 오디세우스는 불명의 생을 주겠다는 칼립소의 달콤한 제안을 거절하고, 필멸의 인간으로서 고통과 늙음이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어쩌면 돌아간 자리는 그를 더 혹독하게 다루어 그곳이 그의 무덤이 될 수 있는 자리였다. 돌아간 이타카는 사실 폐허에 가까웠다. 왕궁은 구혼자들에게 점령당했고, 아내는 지쳐 있었다. 아들은 낯설었고, 자신은 다 늙은 상태였다. 그런데도 그는 이타카로 돌아갔다. 이타카가 좋은 곳이라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것이라서 돌아갔다는 것이다. 남의 낙원보다 내 폐허가 낫다.​낭만적인 문장처럼 들리지만 사실 그러하다. 화려하게 지어진 타인의 집보다, 허술한 집이지만 가족이 있고, 내 삶의 흔적이 있었던 그 자리가 내 자리인 것이다. 한때 미국 이민 갔던 자들이 나이가 들어 죽음이 가까웠을 때 미국 문화의 화려함 속에서 살기보다 구수한 된장 냄새가 나는 쓰러져 가는 고향 집, 들 길을 찾아 오듯이 우리는 우리가 끝내 가야 할 길을 걸어야 한다.<br>이 책은 다섯 겹의 항해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 째는 고난을 수용하는 법. 두 번째는 유혹을 경계하는 법. 세 번째는 희생을 감수하는 법. 네 번째는 심연을 응시하는 법. 다섯 번째는 이타카를 탈환하는 법에 대해 다룬다. 각 장마다 주는 깨달음과 삶에 대한 선명함이 주어질 것이다. 그 깨달음을 가지고 가혹한 운명을 마주해 보자.​이 책에는 신의 이름이 자주 언급된다. 포세이돈, 아테나, 제우스, 헤르메스 등의 이름이다. 여기서 신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모든 것의 이름으로서 신은 인간이 이길 수 없는 존재다. 무엇보다 인간의 위대함은 그 신들을 이기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신은 이 길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의 위대함은, 이길 수 없는 폭풍 속에서도 자기 손으로 노를 잡는다는 사실 그 자체다.​한 자료를 보았다. “20세기 프랑스 철학자 폴 리쾨르가 평생 붙들고 있었던 질문이 있는데 그건 "인간은 어떻게 자기 자신이 되는가?"이다. 그가 도달한 답은 단순했다. 자기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자만이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서사적 정체성’이라 불렀는데 결국 오디세우스를 읽은 자는 오디세우스가 살아간 삶의 궤적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닌 나만의 항해, 즉 나만의 오디세우스를 펼쳐나가야 하는 것이다. 신들은 각자마다의 가혹한 운명을 만든다. 그러니 그것을 대하는 자세 또한 각자의 선택이다. 다만 남들이 가는 길을 보고 끌려 가지 말고, 내 안에서 요구하는 욕망을 따라 오늘도 한 발자국을 내딛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문장이 마음에 들어 실어본다."신(神)은 불쌍한 자를 돕지 않는다, 오직 '닮은 자'에게 투자할 뿐이다.""신들이 인간에게 이토록 가혹한 운명을 부여한 것은, 훗날 태어날 이들에게 불릴 노래를 만들기 위함이다. -호메로스 『오디세이아』中<br>-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86/68/cover150/k13213083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866834</link></image></item><item><author>storax</author><category>카테고리</category><title>지배할 것인가 평생 지배당할 것인가 - [지배할 것인가 평생 지배당할 것인가 - 진시황으로 알아보는 자신만의 인생을 세우는 지배의 법칙]</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494912</link><pubDate>Fri, 04 Sep 2026 22: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49491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32130223&TPaperId=1749491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39/33/coveroff/k93213022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32130223&TPaperId=1749491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지배할 것인가 평생 지배당할 것인가 - 진시황으로 알아보는 자신만의 인생을 세우는 지배의 법칙</a><br/>진시황 지음 / ORIGIN / 2026년 08월<br/></td></tr></table><br/>진시황으로 알아보는 자신만의 인생을 세우는 지배의 법칙 진시황제는 13세에 왕이 되었다. 그리고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을 건설한 위대한 설계자다. 진나라의 제 31대 군주이며 초대 황제이다. 화려한 이력은 그의 삶을 이미 금수저의 반열에 올리며 크나큰 어려움 없이 자란 인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적국 조나라에서 볼모의 아들로 태어나 멸시와 불안 속에서 유년을 보냈으며, 어머니의 추문, 자신을 암살하려는 끊임없이 자객들의 위협 속에서 매일 밤 칼자루를 쥔 채로 잠들수 밖에 없는 불안한 존재였다. 이러한 위태로움이 있는 그였지만 세상을 원망하는 대신 자신을 단단한 무기로 벼려냈다. 그런데 놀랍게도 두려움은 이미 오래전, 그가 열세 살이 되기도 전에 다 써버린 감정이었다고 한다. 열세 살에 왕위에 올랐으나 어머니의 정부 노애의 반란을 가차 없이 진압하였고, 친자식처럼 길러주었다는 권신 여불위가 권력의 그늘아래 그를 길들이려 했지만 그 또한 제거하며 권력의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핏줄이라는 이름, 은혜라는 이름, 모정이라는 이름, 보통의 인간이라면 한 번쯤은 흔들렸을 그 이름들 앞에서, 그는 한치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에게 인연이란 결국 자신의 영토를 갉아먹는 자와 지키는 자, 둘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최근 눈에 띄는 명언을 보았다. 법륜 스님이 한 말이다.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말라. 그대의 모든 불행은 진실 없는 사람을 진심으로 대한 벌이오." 진시황이 살아간 삶을 두고 지나치게 냉혹하다 비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우선 그는 잔혹한 폭군으로 기록되었다. 그가 실용서를 제외한 옛 제후국들의 기록을 불태우고, 자신을 기만하던 방사(方士)와 일부 유생을 가차 없이 생매장했으며, 장성 축조를 위해 막대한 인력을 동원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흔들림 없는 확고한 규율이 없었다면 춘추전국의 500년 난세는 결코 종식되지 않았을 거라는 말을 마음 깊이 새긴다. 세상의 무질서와 타인의 얄팍한 잣대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스스로 단단한 규칙 위에 서야 한다는 말 또한 흘려듣지 않을 것이다. ​모든 일에는 명암(明暗)이 있다. 진시황이라고 좋은 점만 있겠는가? 나쁜 점만 있겠는가? 이 책은 진시황을 미화하거나 옹호하기 위한 책이 아닌 그가 자신을 다루었던 엄격하고도 철저한 방식, 자신의 삶을 하나의 제국처럼 설계하고 운영했던 그 방법론에서, 흔들리는 우리가 건져낼 수 있는 무엇이 있다면 그것을 건져내자는 책이다.​프롤로그에 말하듯이 세상은 친절해 보이지만 결코 친절하지 않다. 내가 흔들리면 누군가는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나의 자리를 차지한다. 내가 결정을 미루면 누군가가 대신 결정해 주게 된다. 내가 기준을 갖지 못하면 누군가의 기준이 나의 삶 전체를 도배하게 된다. 즉 지배하지 않으면 지배당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잔인하지만, 잔인하기 때문에 진실에 가깝다. 요즘들어 그러한 세상을 체험하게 된다.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이 마음 깊이 이해가 된다. 그건 군주가 권력을 얻고 유지하려면 때로는 권모술수를 써야 하며, 사악한 행위도 서슴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 말이다. 한 마디로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것인데, 이게 군중이 갖는 무지함 때문이다. 이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지만 조선 제3대 왕인 태종(太宗)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 때론 정몽주도 제거해야 했고, 또한 함께 혁명을 꿈꾸며 고려의 반대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뜻을 함께했던 가장 강력한 정치적 동지였던 정도전도 결국 목을 베어 버렸다. 그리하여 피의 숙청 속에 태종 이방원은 500년 조선조 국가 운영의 밑그림을 완성한 군왕이 되었던 것이다. ​진시황은 인간의 선의를 믿지 않은 사람이다. 그는 사람이 좋은 마음을 먹어 좋은 일을 한다고 보지 않았다. 사람은 룰이 있을 때 룰대로 움직이고, 룰이 없으면 본능대로 무너진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법을 세웠고, 그 법에 예외를 두지 않은 것이다. 자신의 어머니에게도, 자신을 키워준 스승에게도, 자신과 함께 천하를 도모한 공신에게도 말이다. 이 단호함은 잔인함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세계를 단 한 치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이 책은 다섯 개의 키워드로 진시황을 다시 읽어준다. 1장 통일: 내 삶의 영토를 온전히 장악하라. 2장 도량형: 흩어진 잣대를 부수고 기준을 독점하라.3장 만리장성: 타인이 침범할 수 없는 성벽을 쌓아라.4장 법가: 무자비한 규율이 가장 강력한 무기다.5장: 천하제일: 세상의 꼭대기에서 나만의 역사를 쓰다.​한 단락, 단락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러나 핵심은 단순하다. 내 삶의 영토를 하나로 묶고, 내 잣대를 하나로 세우며, 나를 지킬 성벽을 쌓고, 흔들리지 않을 규율을 만들어, 끝내 내 이름을 내 삶의 가장 높은 자리에 새기는 일에 관한 것이다. 즉 진시황은 낡은 호칭인 '왕'이라는 호칭을 버리고 '황제'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었다. 나아가 도량형과 화폐, 문자, 수레의 규격까지 하나로 통일해 자신만의 질서를 구축했다. 따라서 이 책은 이러한 그의 결단력과 통치 철학을 통해, 타인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원칙을 세우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금 내 삶에 결정자는 누구인가? 타인인가 아니면 나라는 주체자인가? 오늘자 뉴스에 ‘헬리콥터 부모’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 기가 막혔다. 왜냐하면 최근 수도권 한 제조 중견기업의 신입사원 면접날. 한 지원자의 어머니가 회사로 찾아왔다. 그 여성은 면접장으로 들어가는 면접관들의 손을 잇따라 붙잡고는 “우리 아이가 낯을 가리니 압박 질문은 줄이고 부드럽게 해달라”고 당부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과는 무관하게 최종 합격하여 부서 배치를 마친 상황에 얼마 뒤 인사팀에 다시 그 어머니의 전화가 걸려왔다. “우리 아이 부서는 업무 강도가 너무 높아 보이니 다른 팀으로 바꿔달라”는 요청이었다. 또 다른 중견기업의 인사팀장은 얼마 전 ‘대리 퇴사 통보’를 받았다. 무단결근한 신입사원의 모친이 이튿날 전화해 “우리 애가 어제 퇴근하고 회사가 삭막해 다니기 싫다고 울었다”며 “오늘부터 출근 안 하니 사직 처리하고 우리 아이 자리에 둔 텀블러와 카디건은 착불 택배로 보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자녀들은 자신의 생각을 부모에게 언급하여 원하는 것을 얻었지만 결코 이 자녀는 자신의 삶의 결정자로서 온전히 살아가지 못하는 자라고 본다. ​『지배할 것인가 평생 지배당할 것인가』는 결국 인생의 주도권을 내가 가지고 있는가를 묻고 있다. 남이 만든 규칙 속에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규칙을 만드는 사람이 될 것인지는 이 책을 읽고 대답해 보면 좋겠다. 세상의 평판에 혹 흔들려 무언가를 결정하지 못하는 자인가? 타인의 척도에 영토를 내어주는 나약함을 가진 자인가? 또는 낡은 관성에 묶여 결단을 유예하는 비겁함을 가졌는가? 이러한 상태라면 일단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겠다. 다만 자신을 정확하게 마주 보는 일이 필요하다고 알려준다. 정확하게 보아야, 정확하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이 책에서 이 한 가지만을 얻게 된다면 아마도 그는 천하를 얻은 진시황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그건 바로 「지배할 것인가, 평생 지배당할 것인가」를 분명히 하고, 이제 내가 삶의 자리를 주체적으로 가져 온전한 나로 살자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가 쓴 '데미안'의 한 문장이 생각난다. 나는 내 속에서 스스로 솟아나는 것, 바로 그것을 살아보려 했다.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br>-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39/33/cover150/k93213022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393325</link></image></item><item><author>storax</author><category>카테고리</category><title>돌이킬 수 없는 과거 앞에 서성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 [돌이킬 수 없는 과거 앞에 서성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 강태공으로 알아보는 천하를 낚는 삶의 태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494892</link><pubDate>Fri, 04 Sep 2026 22: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49489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42130222&TPaperId=1749489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39/10/coveroff/k24213022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42130222&TPaperId=1749489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돌이킬 수 없는 과거 앞에 서성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 강태공으로 알아보는 천하를 낚는 삶의 태도</a><br/>강태공 지음 / PHILO / 2026년 08월<br/></td></tr></table><br/>강태공을 말할 때 흔히 낚시로 세월을 낚는 ‘낚시꾼’으로 상기된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낙시꾼이 아닌 동양 최고의 전략가이자 책사이다. 자료를 찾아 보면 그는 전략가이자 제나라의 초대 군주이다. 쉽게 말해 주나라 재상으로 왕을 도와 상나라를 뒤집어엎고, 그 포상으로 제나라 땅을 맡아 본인이 국군(國君)이 되어 일종의 제후 국군이 된 인물이다. 언뜻 보기에는 유유자적하며 낚시를 즐기던 자였다. 그러나 그가 재상에 오른것이 대략 72세~80세 사이 쯤 되었으니, 그는 단순한 낚시꾼이 아니라 '기다림과 때를 아는 사람'이었다.​당시 시대 상황을 보면 중국 고대 주(周)나라가 세워지기 전, 세상은 은(殷)나라 말기의 혼란으로 백성들의 삶이 피폐한 상태였다. 그러나 훗날 나라를 바로 세울 큰 인물이 세상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믿음이 사람들 입에서 전해졌다. 그 무렵 강태공은 뛰어난 학식과 정치적 식견을 지녔지만 세상에 자신의 뜻을 펼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는 조급하게 권세를 좇지 않고 스스로를 갈고닦으며 올바른 임금을 기다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벼슬길을 포기한 채 강가를 떠도는 늙은이로만 여겼다. 그러나 강태공은 자신의 재능을 아무에게나 바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그리하여 그는 기다렸고 인내했다. 책을 보면서 그의 숨겨진 일화를 보게 된다. 그가 강가에서 띄운 것은 곧은 낚싯바늘이었다고 한다. 미끼도 없었다. 물고기를 잡을 생각이 아예 없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잡으려고 했는가. 바로 그는 시대를 잡으려 했다. 자기를 알아볼 사람이 올 때까지, 자신을 헐값에 팔지 않겠다는 결의, 굽실거리며 유세객처럼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지 않겠다는 자존. 소모품이 되지 않겠다는 냉철한 통찰로서 그는 때를 기다렸다. 그래서 그가 기다린 것은 무기력이 아닌 전략이었다. p.08​강태공의 병법서 『육도六韜』를 보면 명확히 그걸 알게 된다. "사나운 새가 사냥감을 칠 때는 낮게 날며 날개를 거두고, 맹수가 먹이를 덮치기 전에는 반드시 귀를 내리고 엎드린다." 즉 가장 사나운 공격은 조용한 자세에서 시작되는 것이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냥할 능력이 없으면서도 날개부터 펼치며 허세를 부린다. 내실을 다지기 전에 제후들의 연회를 전전하며 알량한 지식을 뽐내고, 세상을 꿰뚫는 안목을 갖추기도 전에 유세객을 자처하며 입방아를 찧는다. 실력을 증명할 진짜 기회가 오기 전에 자신의 얄팍한 패부터 사방에 전시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나아 간다면 마지막 판에 가장 큰 것을 가져 올 수 없다. 실제 강태공이 위수(渭水)에서 낚시한 세월은 무려 십수년이라 전해진다. 누군가에게는 한 늙은이가 한가롭게 보내며 세월을 낚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특히 그의 아내에게는 사람 같지 않는 변변찮는 한심한 노인네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시간 동안 천하의 지도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즉 상나라의 약점을, 주변 제후들의 마음을, 백성들의 굶주림과 원망을, 군대의 배치와 보급의 흐름을 읽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무엇도 발설치 않고, 자랑하지도 않았다. 그저 곧은 낚시 바늘을 강물에 드리우고 앉아 있었다.​참으로 대단한 인물이며 범상치 않는 인물이다. 책을 읽으면서 연신 고개가 끄덕여지고, 숙여진다. 그에 관한 일화나 사고(思考)는 과히 내가 배워야 할 자세며, 마음 가짐이었다. 그는 이미 재상이 될 인물이었다. 시대가 요구했고, 그가 준비했다. 여기서 독자인 나는 얼마나 준비를 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는지 묻게 된다. 아니 때를 기다리며 전략적으로 준비한다는 것이 힘겹다. 빨리 결과를 내고 싶은 마음에 조급함도 생긴다. 그러나 강태공을 통해 명확히 배우게 된다. 전략적 대기를 하며, 무언가를 속에서 준비하는 것이다. 매가 하늘에 그냥 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매를 모르고 하는 소리이듯이, 정확하게 바람의 방향을 읽고, 들판의 그림자를 측정하고, 토끼의 호흡까지도 가늠하는 자세를 가져보도록 할 것이다. 외부로 드러나는 행동의 부재가 내부의 무위를 뜻하는 것이 아니듯 강태공처럼 낚시대를 드리운 채 가장 격렬하게 사고하듯 독자 또한 준비할 것이다. 문왕이 위수에 나타났을 때 강태공을 알아 본 것은 그가 단순히 늙어간 존재가 아니라 준비된 존재였기 때문이다. 기회란 준비된자에 온다는 단순한 진리를 한 수 배우고 간다.​특히 또 한 가지 이 책에서 배우는 대목은 "엎드러진 물 앞에서 등을 돌리는" 사건이다. 그는 위수 강가에서 문왕의 수레에 올라 타면서, 단 한 번도 강물 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가난과 설움 속에서 지내던 그 위수의 자리를, 자신을 알아주지 않던 세상에 대한 원망도, 끝내 떠나간 아내에 대한 감정도, 백정으로 살았던 조가의 새벽도, 주막을 접고 떠나야 했던 맹진의 황혼도, 모두 강물위에 떠 내려 보내고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은 떠나는 순간 한 번쯤은 돌아본다. 그래서 과거를 반추하며 설움에 복받치거나, 다른 선택을 했었다면 어땠을까하는 미련을 가진다.<br>그런데 강태공은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의 마음으로 살았다. 엎으러진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이것은 훗날 강태공이 제나라 제후가 된 후, 가난을 견디지 못하고 떠난 아내가 자신을 찾아오자, 그 앞에서 물을 부으며 단호히 선을 그으면서 한 말이다. "이 물을 다시 동이에 담을 수 있다면 당신을 받아주겠소." 이는 단순한 매정함이 아니라, 끝난 인연과 헛된 미련을 베어내는 단호함이었다. 강태공은 아내가 떠난 뒤의 그 모습을 절대로 그리워하거나 그녀의 뒷모스을 향해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고 한다. 즉 그녀를 그리워하지도, 미워하지도, 자책하지도 않고 그저 자신의 일을 했다. 위수의 강물에 곧은 바늘을 드리우고, 책을 펴고, 천하의 판을 그렸다는 것이다.​함께 했던 정이 있었고, 미안함도 있었을 것인데 강태공은 너무나 차가울 정도로 금을 그었다. 이것은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고 현재의 일에만 집중하며 앞만 보겠다는 것이다. 특히나 강태공은 엎어 버린 것이 물이 아니라 그가 칠십년을 견딘 시간, 새벽 도축장의 피비린내, 주막에서 외상값을 받지 못하고 돌아오던 밤,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을 함께 견디지 못한 한 사람에 대한 정직한 평가로서 아내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이유라면 가장 어려울 때 등을 돌린 사람은 또 다시 어려움을 겪게 되면 또 다시 등을 돌리는 법이다. 그래서 그는 길게 말하지 않고, 또한 따지거나 원망하지 않고 그저 물을 엎었다. 인연을 끝내는 일이란 단호해야 한다. 다시금 마음을 주게 되면 모든 것이 흔들리게 되고, 현재의 일도 그르치게 된다. 사람을 잃어 본 적이 있다. 그때의 시간을 돌아보면서 여러 생각이 든다. "그때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 사람의 말을 더 귀담아 듣고 내 원칙을 접었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까?" 혹은 "그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그 시험을 한 번 더 봤더라면,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가정을 해본다.<br>그런데 강태공은 한 번 금이 간 신뢰를 결코 되돌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 벙은 상나라의 폭군 주왕 밑에서 관직 생활을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그 조직이 구제 불능임을 간파한 순간, 주저 없이 등을 돌렸다. 미련이라는 낡은 족쇄에 얽매이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이미 쏟은 정성과 세월이 아까워 그 자리를 맴도는 심리, 어긋난 관계, 끝난 꿈에 매여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책을 통해 강태공이 살아간 삶의 흔적 속에서 삶의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참으로 그는 오랜 무명의 시간을 견뎠고, 스스로를 단련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문왕을 만나 천하의 흐름을 바꾸는 인물이 되었다. 이 책은 크게 두 가지만 붙들면 된다. 그건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온다는 것과, 이미 지나간 과거는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결단이다. 요즘 광고에 새로운 인물이 자주 보인다. 드라마 김부장에서 박진철 역으로 배우 윤경호의 광고이다. 15년의 무명생활은 그에게 큰 산과 같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 지겨움과 알아주지 못하는 그 시간, 생활고를 견녀냈다. 그리고 드디어 그를 알아봐 주는 드라마를 통해 확실히 대중에게 그의 얼굴을 알렸다. 그는 준비된 기회적 전략가였다. 독자 또한 현재의 괴로움과 성과가 없는 삶에 마음의 큰 짐이 있다. 그러나 강태공을 통해 내면을 다지고, 더욱더 준비된 자로서 오늘의 할 일을 하려고 한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미래가 있음을 보며 마음의 희망을 품어 본다. <br>-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39/10/cover150/k24213022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391002</link></image></item><item><author>storax</author><category>카테고리</category><title>다산 정약용의 인생 수업 - [다산 정약용의 인생 수업]</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444108</link><pubDate>Tue, 11 Aug 2026 09: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44410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22130276&TPaperId=1744410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47/20/coveroff/k52213027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22130276&TPaperId=1744410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다산 정약용의 인생 수업</a><br/>정약용 지음, 정영훈 엮음, 김창준 옮김 / 메이트북스 / 2026년 06월<br/></td></tr></table><br/>조선 최고의 천재이자, 실학자, 개혁가로 알려진 정약용이란 분의 책을 또 다시 읽게 되었다. 그가 써낸 글들을 읽을 때면 마음 깊이 존경하는 마음과 경외감마저든다. 탁월한 인재를 넘어 그는 시대를 넘어 서있는 사람이며, 삶의 통찰을 명확히 꿰뚫어본 인물이라 생각이 든다. 정조의 총애를 받던 엘리트였지만, 마흔부터 시작된 정치적 격랑 속에서 18년이라는 긴 유배 생활을 놀랍게도 견뎌내고 승화시킨 존재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복수의 마음을 갈거나, 좌절 속에 삶을 놓고 살 수 있었으나 그는 절망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특히나 유배지에서 아들들에게 수백 통의 편지를 보내면서 교육하고 가르친 대목에선 집요함과 함께 유배자의 자녀가 아닌 한 나라의 백성이며, 한 가문의 자녀답게 반듯하게 살기를 원하는 아버지의 눈물겨운 사랑을 보게 된다. 또한 『목민심서』와 『경세유표』, 『흠흠신서』를 비롯한 수많은 저술을 통해 백성들의 삶과 사회를 다시 세우는 방법을 고민하는 그 모습은 가히 신의 경지에 이른 사람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br>『다산 정약용의 인생 수업』은 250년 전에 쓰여진 글이지만 그 치열한 기록과 사유 속에서 현대인들이 정말 삶의 기준으로 붙잡아야 될 내용이 가득한 책이다. 단순히 위인의 일화를 소개하는 정도의 책이 아니라, 다산이 실제로 살아내고 실천했던 삶의 원칙을 문단마다 보게 될 것이다. 삶의 본질은 시대가 흘러도 바뀌지 않는다. 여전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돈 때문에 흔들리고, 사람 때문에 치이고,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 눈 앞의 이익 앞에 배신자가 되기도 하고, 배신을 당하기도 하는 우리의 모습이 그 시대에 있었다. ​이 책은 삶의 전 국면을 아우르는 실전 체계에 대한 기록으로서, 일곱 개의 틀 안에서 정리했다. 1장은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해주면서 기록하지 않은 것은 살지 않은 것과 같다고 말한다. 2장은 가계(家計)를 통해 재물을 다루는 태도가 삶을 만들기에 그 재물의 사용 원칙들을 상세히 다룬다. 3장은 수양을 통해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며, 4장은 관계를 통해 사람을 얻고 지키는 원칙을 알려준다. 5장은 공부를 통해 학문이야 말로 자신을 지켜주는 울타리임을 알려주며, 6장은 세상을 사는 처세술에 대한 기록이다. 마지막 7장은 애민 정신을 통해 공동체와 타인을 대하는 책임감을 돌아보도록 한다. ​다산이 가문과 삶을 지키기 위해 세웠던 일곱 개의 기둥은 어쩜 이리도 우리 현실에도 유효한 삶의 기준이 될까하는 생각을 가진다. 책은 순서대로 읽어도 되지만 마음 가는대로 펴서 읽어도 된다. 삶의 중심이 흔들릴 때마다 이 책을 통해서 읽었던 것은 분명 우리 삶을 반듯하게 세우는 길잡이가 되리라 본다. 다산이 쓴 책을 읽을 때마다 느낀 것은 이런 분의 책은 학교 교육의 커리큘럼에 반드시 접목되어 가르쳐져야 한다고 생각된다. 지금의 지식은 지식 그 자체를 머리에 넣는 것으로 사람을 기계적 인간으로 살게끔 한다. 그러나 다산의 지식은 사회적 인간과 도덕적 인간으로서의 참 지식을 가르쳐준다. 인간성 상실 시대에 다산은 인간됨이 무엇인지 매우 섬세하게, 명확하게 가르쳐 준다. 연일 사회는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이러 저러한 사건을 통해서 보면 모두 죄다 인간성 상실이 불러온 범죄임을 보게 된다. ​그래서 다산은 수양(修養) 부분에서 처음 언급하기를 "홀로 있을 때도 삼가는 것이 수양의 완성이라고" 알려준다. 또한 "남은 속일 수는 있어도 내 마음은 결코 속일 수 없음을" 알려주며, 자기 자신에게 부끄러운 존재가 되지 않도록 가르친다. 또한 "매일 밤 스스로를 살피며 하루를 차분히 돌아보라"고 한다. 자신의 허물을 감추기 보다는 작은 허물이라도 고치려는 습관을 가지라는 것이다. 또한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면 마음은 점점 넒어진다"고 한다. 타인을 비판하기 전에 남을 헤아리는 마음이 먼저라는 거다. 또한 "이익보다 옳은 길을 따라야 사람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이익과 옳음 앞에 타협 아닌 옳음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러나 어려움 앞에서도 물러나지 않는 마음을 가질 때 참된 인간으로서의 존재 가치가 된다고 말한다.​이 책의 백미는 처음 기록에 대한 문장이다. "기억은 오래가지 않으니 깨달은 것을 곧장 적어라"는 문장과 "기록은 망각이라는 도둑을 이기는 유일한 길이다."는 가르침이 다시금 기록의 대가인 다산에게 들으니 새삼 달리 들린다. 천재조차도 "기록"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은 그만큼 기록의 산물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말 영감은 어느 순간 찾아오는데 그때 문득 내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하고 나중에 그걸 다시 생각해 보면 기억이 명확치 않고 깨달음이 흐지부지하게 된 적이 많다. 그렇다. 이젠 다산처럼 밥상을 마주하다가도 깨달음이 머리에 머물 때 일다 적어볼 것이다. 그 집요함이 바로 2,400여 권 분량에 달하는 문서를 써 내려갔던 것이다. 눈으로만 읽는 독서는 물 위에 글자를 쓰는 것과 같아 금방 사라지고 만다. 그러니 책을 읽다가 내 마음을 움직이는 대목이나 깨달음을 주는 문장을 만나면 반드시 붓을 들어 초서(抄書, 책의 핵심을 베껴 적음)하라. 초서란 단순히 글자를 옮기는 기계적인 노동이 아니라, 저자의 사유를 내 손끝으로 통과시켜 내면의 질서를 바로 잡는 수양이다. 이 과정에서 흩어진 정보의 파편들이 하나의 맥락으로 꿰어지는 기적이 일어난다. 기록은 망각이라는 도둑을 이기는 유일한 길이다. 네가 정성껏 베껴 적은 그 자료들이 쌓여 비로소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너만의 독창적인 체계가 탄생한다. p.25​_1장 기록(記錄) : 적지 않은 것은 살지 않은 것과 같다.다산은 자녀 교육의 대가이다. 먼 유배지에서 끊임없이 자녀를 교육하는 모습은 어느 부모도 해내지 못할진대 위대하게 그는 자녀를 온전한 인간으로 키워냈다. 특히 그는 유산으로 자녀에게 물려준 것은 ‘부지런함〔勤〕’과 ‘검소함〔儉〕’,의 이 두 글자뿐라고 말하며 이를 가슴에 새겨라고 말했다. 그 내용을 그대로 적어보면 "부지런함이란,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으며 아침에 할 일을 저녁으로 미루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아침에 비가 오면 오후의 일을 헤아리고, 밤에 잠자리에 들면 내일의 일을 미리 헤아리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검소함이란, 옷 한 벌을 마련할 때 훗날 해질 것을 생각해 아껴 쓰고, 음식 한 그릇을 대할 때 농부의 노고를 생각하여 낭비하지 않는 것이다. 재물은 한 번의 재앙으로 사라지고, 권세는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그러나 근검은 어떤 형편에서도 빼앗기지 않는다. 이 두 글자가 가문을 지키는 가장 단단한 기둥이다."​다산의 문장은 그냥 읽기만 하면 된다. 읽음 속에 배우며, 무릎을 치며, 삶을 고치게 된다. 70만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국내 최고의 고전 연구가인 조윤제 작가가 말하기를 "나는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다산을 읽고 또 읽었다."는 말이 정말 딱 들어 맞는 말이다. 본 책의 저자는 기존의 다산 기록이 주는 감성적 위로의 책을 벗어나 삶을 바로 세우는 날카로운 문장을 그대로 싣고 있다. 손에 들고 읽기에 가벼운 책이나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는 이 책을 휴가 기간에 읽으면 좋겠다.<br>-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47/20/cover150/k52213027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472054</link></image></item><item><author>storax</author><category>카테고리</category><title>내면혁명 - [내면혁명 : 랄프 왈도 에머슨 - 인간은 내면의 목소리를 믿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444064</link><pubDate>Tue, 11 Aug 2026 08: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44406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22130400&TPaperId=1744406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93/57/coveroff/k82213040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22130400&TPaperId=1744406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내면혁명 : 랄프 왈도 에머슨 - 인간은 내면의 목소리를 믿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a><br/>랄프 왈도 에머슨 지음 / 이너스북스 / 2026년 07월<br/></td></tr></table><br/>네 마음의 한 줄기 섬광에도 주목하라. 단지 그것이 너의 것이라는 이유만으로.Ralph Waldo Emerson랄프 왈도 에머슨은 "너 자신을 믿으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모든 심장은 그 쇠줄 위에서 떨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흔들린다. 그럴 때마다 더 많은 답을 찾으려 책을 뒤지고 사람을 찾아 간다. 하지만 에머슨은 언제나 답은 자기 안에 있다고 말한다. 외부의 구원자가 아닌 자기 내부에 있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왜냐면 그 어떤 영웅이나 철학자도 내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평화는 오직 자기 자신에게서만 찾을 수 있다는 가르침은 그냥 흘려들을 얘기가 아니다. ​우리는 부모의 우려, 선생님의 가르침, 사회적 상식이라는 부드러운 얼굴을 한 '조언'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늘 마주한다. 그런데 에머슨은 이것을 과감히 차단하고 기꺼이 철저한 고독 속으로 걸어 들어가 내면의 침묵과 정면으로 대면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국가의 합법적 명령 앞에서도 "이 더러운 법에 나는 결코 복종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적으며 양심의 이단아가 된 에머슨이 걸어간 그 길을 독자들도 걷기를 바란다.​내 안의 깊은 본성을 신뢰하고 직관을 따라 살라는 것은 한 자아가 걸어가야 할 사명과 같다. 에머슨이 말하는 자기 신뢰의 핵심은 "내 안에서 울리는 보편적 진리의 떨림을 신뢰하겠다"는 것으로서 결코 "내 멋대로 살겠다"가 아니다. 그건 바로 내 자신이 삶의 입법자가 되라는 것이다.​이 책의 목적은 저자가 다섯 가지라고 밝히는데 그래서 독자의 손에 망치 한 자루를 쥐여주면서 자신이 부술 내용을 인지하라고 한다. 무엇을 부수어야 할까? 첫째, 군중의 발소리를 이정표로 착각하는 습성. 둘째, 누군가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 방식으로 따라하는 게으름. 셋째, 칭찬 한 마디에 들뜨고 비난 한 마디에 무너지는 자아. 넷째, 무해하고 둥글둥글한 사람이 되어 모두에게 사랑받으려는 위선. 다섯째, 세상의 허락이 떨어지기 전에는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는 노예근성. 이 다섯 가지를 과감히 부수어 자기만의 길을 가라고 알려 준다.​에머슨은 자기 신뢰의 첫 머리에 첫 머리에 이렇게 적었다. "당신의 마음 속에서 진실이라고 느낀 것을 말하라. 그것이 곧 모두에게 진실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반대로 살아간다. 모두가 진실이라고 말하는 것을 받아 적은 뒤, 그것을 자신의 마음으로 옮겨 적는다. 순서가 거꾸로 뒤집힌 삶. 이것은 바로 '순응'이다. 순응은 항상 남들과 맞추라고 한다. 다른 생각을 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 받는다. 그래서 "유난 떨지 마". "남들 하는 만큼만 하면 돼", "다를 그렇게 살잖아" 라는 이 세 마디는 한국 사회가 한 사람의 영혼에 가하는 가장 부드러운 마취제다. 이것은 군중 속에서 자신을 잃으라는 것이다.​그러나 에머슨은 순응하는 동물이 되지 말고 거창한 반항을 하라고 한다. 대중의 견해에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떡이지 않는 일. 타인의 성취를 잣대로 삼아 자신의 위치를 의심하지 않는 일. 친구의 소식 앞에서 자동적으로 솟아오르던 비교의 감정을 한 박자 늦추는 일. 군중이 찬양하는 유행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것이 내게도 유효한지 묻는 일 등등을 해보라고 한다. 나만의 나침판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럴 때 그는 어디에 있든 길을 잃지 않는 것이다.​인간이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세계에 살고 있다. 사교계는 물론 모임에 나갈 때마다 자신이 사회적 기준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끊임없이 점검하면서 자기를 무장한다. 그런데 에머슨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은 영혼을 죽이는 일이다"고 단언하나. 영혼이라는 것은 결국 한 사람이 자기 자신과 맺는 가장 내밀한 관계다. 그 관계가 외부의 시선에 의해 끊임없이 침범당하고 검열당하면, 영혼은 자신의 본래 형태를 잃는다.​흥미로운 사실을 책에서 언급하는데 그건 사람들이 실제적으로는 타인을 거의 보고 있지 않다는 거다. 한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실수를 했을 떄 타인이 그것을 기억하는 비율은 우리가 짐작하는 것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는 시선의 무게를 자기 상상 속에서 만들어 낸다. 대부분 자신이 만들어 낸 환영이다. 세네카도 말했는데 "우리는 실제보다 상상 속에서 더 많이 고통 받는다"고 말했다. 즉 타인의 시선이 주는 고통의 9할은 한 사람 스스로가 머릿속에 증폭시킨 것이다. 외부에서는 한 점의 잉크였던 것이, 내면에 들어와 거대한 얼룩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 얼룩을 닦아 내려고 평생을 허비한다.​따라서 에머슨은 "위인이란 군중 속에서도 완벽하게 다정한 태도로 고독의 독립성을 지키는 자다."고 말했다.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그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내면의 방 하나를 만들어 굳건히 지켜나가는 것이야 말로 자기 신뢰의 시작이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남에게 채점받게 둬선 안 된다. 왜 우리의 인생을 남에게 채점받게 하는가? 왜 우리는 정답을 외부에서 구하는가? 자연을 보면 떡갈나무는 소나무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강은 바다가 되려 하지 않으면서도 결국 바다에 닿는다. 별은 자신의 자리에서 빛나며, 다른 별이 더 밝다고 자신의 빛을 끄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자신이 되기를 거부하고, 다른 무엇이 되기 위해 자신을 학대한다. 자연 어디에도 정답은 없다. 오직 각자의 본성에 따른 펼쳐짐이 있을 뿐이다.​그래서 또 말하길 "스스로를 주장하라. 결코 모방하지 마라."고 한다. 모방이라도 나만의 것으로 독창적으로 생각하며 그것을 변혁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내 안의 직관을 유일한 법으로 삼고 살면 된다고 한다. 나의 생각은 사실 놀라운 발견이다. 그런데 에머슨이 말하길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각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내버린다. 그리고 며칠 뒤 어떤 낯선 천재의 작품 속에서, 우리가 버렸던 바로 그 생각이 위엄 있게 되돌아오는 것을 보고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한다. ​왜 인간의 자신의 본성을 의심하는가? 왜 가장 먼저 떠오른 직관을 가장 먼저 지우는가?내게 준 내 안의 율법이야 말로 인간이 따라야 할 확실한 율법임을 에머슨은 알려준다.​그래서일까? 1838년 에머슨이 하버드 신학부에서 졸업 연설을 했을 때를 보면 그는 기독교의 역사적 전통과 기적을 맹신하는 당시의 군중을 향해, 개개인의 영혼이 직접 신성과 대면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때 군중은 분노했고 모교는 삼십 년 가까이 그를 강단에서 추방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자신의 나침반을 대중에게 내어주지 않았다. 자기 자신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너에게 평화를 줄 수 없다며 타협이라는 단어를 그는 외면한다. 물론 모든 타협이 독은 아니다. 우리는 타협할 가치가 있는 것을 조율해 나갈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나 타협이라는 명목하에 자신의 핵심 가치와 충돌하는 그 지점을 슬그머니 내려놓는다면 그는 잘못된 타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그 타협으로 얻은 평온은 좋을지 모르지만 그것으로 인해 내 몸과 마음이 느끼는 스트레스를 기억해야 한다. 인간은 원치 않는 타협을 하면 몸과 마음이 기억하여 괴로움의 흔적을 남긴다. 따라서 나만의 제국, 스스로가 입법자가 되는 삶을 추구하라고 한다.​이 책은 바로 자기 자신을 충분하게 신뢰하고 따르라는 것을 설명한 책이다. 외부의 인정과 권위에 의존하는 삶에서 벗어나, 자신의 직관과 양심을 삶의 기준으로 삼을 때 비로소 내 안에서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서둘러 읽기보다 한 쳅터나 두 쳅터씩 오래 곁에 두고 읽었으면 좋겠다. 문장 하나를 읽고 잠시 멈출 때, 잊고 있던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기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무엇이 성공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선택이 옳은지 끊임없이 듣고 배우며 살아가고 있는데, 정작 자기 삶의 기준을 세우는 법은 배우지 못한 채, 타인의 시선과 사회의 기대 속에서 자신을 맞춰 살아간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자기 목소리를 잃고, 흔들리는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 책은 당당히 자기 안에서 튀어 나오는 생각을 신뢰하고 받아들이며, 자기만의 길을 걸으라고 알려준다. ​다시금 말한다. "너 자신을 믿으라 모든 심장은 그 쇠줄 위에서 떨린다."<br>-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93/57/cover150/k82213040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935728</link></image></item><item><author>storax</author><category>카테고리</category><title>스스로를 경계하지 않는 자는 결코 남을 벨 수 없다 - [스스로를 경계하지 않는 자는 결코 남을 벨 수 없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444062</link><pubDate>Tue, 11 Aug 2026 08: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44406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42130878&TPaperId=1744406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05/69/coveroff/k44213087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42130878&TPaperId=1744406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스스로를 경계하지 않는 자는 결코 남을 벨 수 없다</a><br/>이순신 지음 / 결 / 2026년 06월<br/></td></tr></table><br/>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고 영웅으로 여기는 이순신에 관한 책이다. 읽어 가면서 역시나 이순신은 대한민국 반만년 역사 속에서 우리가 닮고 배워가야 할 위대한 인물임을 수긍하게 된다. 책 표지에 보면 "세상의 모든 해답은 이미 백 년도 전에 쓰여 있다"는 문장이 나온다. 그 전에는 이순신에 대해 막연하게 알았다면 이 책을 읽고는 저자의 평가가 확실히 근거 있는 말을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이순신의 기개(氣槪)를 보았다. 아래의 문장이 이토록 가슴 한 켠을 묵직하게 하며 먹먹하게 하는지...맑음. 옥문을 나왔다.1597년 4월 1일, 이순신은 의금부의 옥문을 나왔다. 한 달이 넘는 고문으로 다리는 제대로 펴지지 않았고, 등에는 곤장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살이 헤졌다는 말이다. 한때 그는 정이품 삼도수군통제사였었다. 그 직함을 지닌 채, 죄인의 신분으로 그는 백의를 입고 남쪽으로 걸어가야 했다. 하늘은 무심할 만큼 맑았는데 그날의 일기는 단 한 줄로 시작한다. 바로 "맑음. 옥문을 나왔다." 그뿐이다. 억울함도, 한탄도, 분노도 원망도, 자기 연민도 없다. 한 나라의 바다를 지켰던 장수가, 자신을 파멸시킨 임금에 대해 단 한 줄의 변명이나 비난도 남기지 않다니 내 입장에서는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백의종군의 첫걸음을 내딛는 이 참담한 기록이, 칠 년간 이어진 『난중일기』에서 가정 처절한 전환점이라는 사실이다.​그는 옥문을 나서는 순간 한 가지를 분명히 했음을 본다. 그건 자신을 향한 동정을 거부하는 일이다. 그를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안쓰러운 시선을 자기 연민의 자원으로 쓰지 않았다. 즉 자신이 부당하게 당했다는 감각,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감각, 나만 억울해 하는 감각 등은 한 번 빠지면 좀처럼 헤어 나오기 어려운 감정이다. 그는 그 늪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또한 한 때의 영광(직함)을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을 가장 오래 붙잡아 두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과거의 영광이라고 한다.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는 것은 쉽게 포기가 된다. 그러나 한때 손에 쥐었던 것을 놓는 일은 그렇지 않다. ​그는 과거의 직함도, 한때의 성취도, 현재의 처지도 생각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저 옥문을 나서며 걸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옮기면서 비장한 다짐이나 거창한 결심도 없이 통제사가 아닌 죄인의 신분으로 다만 걸어 갔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이러하다. 자존심과 자존감은 다르다. 자존심은 외부의 평가에 반응하는 감정이다. 누가 나를 무시했다. 누가 내 직함을 깎아내렸다. 누가 나를 함부로 대했다. 이런 감정은 외부의 사건이 있을 때마다 흔들린다. 그러나 자존감은 다르다. 외부와 무관하게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감각이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외부의 작은 신호에도 쉽게 격해진다. 자존감이 단단한 사람은 외부가 흔들어도 쉽게 흔들이지 않는다. 옥문을 나선 이순신이 보여 준 것은 강한 자존심이 아니라 단단한 자존감이었다. 즉 자신이 통제사가 아니어도 자신임을 알고 있었다.​그래서 옥문을 나선 그날, 이순신은 무엇 하나 손에 쥔 것이 없었지만 자신을 정확히 보는 눈. 그 눈 하나로 그는 다시 일어섰고, 결국 바다를 되찾았다. 참으로 모든 것이 무너졌던 사람이다. 직위도, 명예도, 건강도, 가족도(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었고, 아들마저 잃었다), 그에게는 없었다. 철저한 몰락 속에서도 그는 그저 남은 배의 숫자를 세고, 남은 군사의 숫자를 세고, 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그가 통제사로 돌아 왔을 때는 남은 것은 배 열두 척과 흩어진 병사들과 굶주린 병사들만 있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그 자리에서 무너지거나, 누구를 탓하거나, 하늘을 원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시 종이를 펴고 숫자를 적기 시작했다. ​배 열두 척을 어떻게 운영을 할지, 어디에 배치를 할 수 있는지, 어떤 물길에서 싸워야 하는지를 가늠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래서 절망의 그 자리에게 그가 꺼낸 말은 한탄이 아니라 계산이었다."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이 문장이 후대에 길이 남는 까닭은 비장함 때문이 아니었다. 그 안에 있는 계산 때문이다. 그는 없는 것을 아수워하지 않고, 있는 것의 정확한 수치를 말했다. 열두 척. 더도 덜도 아닌 열두 척. 그 정확함이 모든 결정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실패하고 좌절을 겪을 때 한탄만 하고 원망 하고 안 좋은 상황만 보는 것은 자기 삶을 갉아 먹는 것이다. 이순신은 우리에게 무너진 자리가 막연한 위로로 채우길 원치 않는다. 무너진 자리에서 가장 먼저 해야 될 일은 바로 종이 한 장을 펴고, 지금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을 적어 보는 일임을 배운다. 무엇이 남아 있는가. 어떤 기술이 남아 있는가. 어떤 관계가 남아 있고, 어떤 시간이 남아 있는가. 어떤 몸이 남아 있는가를 살피면서 직시를 할 때 내일의 하루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이순신의 장계(狀啓)는 이것을 알려준다. 즉 감정을 처리하는 자리와 상황을 처리하는 자리를 분리하라는 것이다. 감정은 일기 안에서 처리하고, 상황은 장계 안에서 처리하는 것이다. 두 가지를 그는 썩지 않았다. 분노한 채로 장계를 쓰면 거기에는 사실이 사라지고, 사실만 쫓으며 일기를 쓰면 거기에는 사람이 사라진다. 그는 두 가지를 따로 두는 법을 알았다. 즉 밤에는 인간 이순신으로 울고, 낮에는 통제사 이순신으로 계산했다.​이 책은 우리에게 거창한 위로를 주려고 쓴 책이 아니다. 그저 그 한 가지, 자신을 정확히 보는 눈을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이 모든 시작이다.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을 영웅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자신을 늘 '신(臣, 임금을 섬기어 벼슬하는 사람)'이라 칭했고, 자신의 모자람을 일기에 적었으며, 잠 못 이루는 밤마다 어머니와 자식과 죽은 부하들을 떠올렸다. 그래서 저자 왈 "그는 강철 같은 사람이 아니라, 강철처럼 살기로 매일 결심한 사람이었다." 그 결심의 흔적이 『난중일기』에 남아 있고, 그 결심의 결과가 명량과 한산의 바다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정직한 가르침은 《강한 사람은 태어나지 않는다. 매일 자신을 베어 낸 자리에서 만들어진다》는 말이다.​이 책은 위인전으로서 쓰여진 책이 아니다. 이순신이라는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자기관리, 책임감, 리더십, 인생 경영, 준비의 힘을 배우게 하는 책이다. 삶이라는 파도가 세차게 우리를 혼돈케 하며 좌절을 불러 올 때에 자신만의 기준으로 무너지지 않을 시스템을 세우고 싶다면, 이순신이 남긴 가장 강력한 교훈을 이 책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참으로 한반도 유사 이래 최고의 경영자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우리의 인생을 다잡아 주리라 본다.<br>이 책의 한 문장그는 천재가 아니다. 적어도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의미에서는 아니다. 그는 감으로 싸우지 않았고, 영감으로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그의 무기는 숫자였다. 적의 함선 수, 조류의 방향, 바람의 세기, 아군의 식량과 화약의 잔량. 이런 것들을 끊임없이 세고, 기록하고, 다시 점검했다. 『임진장초』에 남은 장계들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그것은 영웅의 호언장담이 아니라, 철저한 보고서다. 숫자가 맞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았고, 조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싸우지 않았다. 임금이 채근해도, 그는 자신이 계산해낸 승률 바깥으로는 한 걸음도 나가지 않았다. p.05​그가 가장 두려워 한 적은 왜군이 아니었다. 자신 안에서 자라나는 '괜찮을 것이다'라는 안일함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책의 출발점을 만난다. 스스로를 경계하지 않는 자는 결코 남을 벨 수 없다. 이 문장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그것은 이 책 내내 깔려있는 일종의 원리에 가깝다. 외부의 적을 베기 위해서는 먼저 내부의 적을 베어야 한다. 내부의 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알량한 자존심이고, 과거의 직급이며, 남이 알아 주지 않는다는 억울함이고, 누군가 내 인생을 구해줄 것이라는 거짓된 안전망이다. 또 이만하면 됐다는 만족이고, 결국엔 '나는 잘하고 있다'는 오만이다. 이 오만이 베어지지 않은 칼은, 아무리 날이 서 있어도 자기 자신을 향해 휘어진다. p.06​이쯤에서 당신은 묻게 될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이순신을 다시 읽는 일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가. 우리는 전쟁 중이 아니고, 칼을 쥘 일도 없으며, 모함당해 옥에 갇힐 일도 없지 않은가. 그러나 가만히 들 여다보면, 현대인의 삶은 그와 닮은 구석이 많다. 매일 아침 우리는 작은 옥문을 나선다. 우리는 타인의 평가 에 갇히고, 얄팍한 자존심에 베이며, 끊임없이 밀려오는 세상의 소음에 떠밀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손쉬운 변명과 막연한 위로 속에서 우리는 점차 자신을 직시하는 눈을 잃어간다. p.07​배를 띄우는 일은 늘 계산에서 시작된다.신에게는 아직 열두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今臣戰船尙有十二 p.031​이순신이 거부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는 자기 자신과 어떤 흥정도 하지 않았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도 일지를 썼고, 비가 와도 활을 쏘았으며, 몸이 아파도 회의를 열었다. 『난중일기』의 무서운 점은 영웅적인 자 면이 많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영웅적인 장면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무섭다. 그는 매일 거의 비슷한 일을 반복 했고, 그 반복을 빠뜨리지 않고 기록했다. 그 기록의 단 조로움이야말로 그가 자기와 맺은 약속을 지켜 왔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p.121​이순신이 안위에게 던진 말은 그래서 무겁다."도망간 다고 살 것 같으냐." 이 물음은 그 시대의 부하 장수에 게만 던져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회피의 끝자락에 선 모든 사람에게 던져진 물음이다. 비켜서면 정말 무사할 것 같은가. 미루면 정말 사라질 것 같은가. 모른 척하면 정말 없던 일이 될 것 같은가. 대개는 그렇지 않다. 비켜 선 자리에서 더 큰 파도가 다시 밀려온다. 그때는 피할 시간조차 남아 있지 않다. p.139<br>-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05/69/cover150/k44213087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056978</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