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storax님의 서재 (storax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8130193</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Fri, 25 Sep 2026 17:11:51 +0900</lastBuildDate><image><title>storax</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88130193129588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88130193</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storax</description></image><item><author>storax</author><category>카테고리</category><title>토지 필사 노트 - [토지 필사 노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510026</link><pubDate>Fri, 11 Sep 2026 19: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51002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62130693&TPaperId=1751002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15/93/coveroff/k36213069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62130693&TPaperId=1751002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토지 필사 노트</a><br/>박경리 지음, 유선경 엮음 / 다산초당 / 2026년 07월<br/></td></tr></table><br/>누구나 그렇듯이 한 번쯤 도전하고 싶은 대상이 있다. 히말리야 산맥의 최고봉인 에베레트산처럼 말이다. 도서 가운데도 그러한 최고봉이 있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인 톨스토이 대표작인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과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죄와 벌》이 그것이다. 한국 작품으로는 단연 『토지』가 나에게는 에베레트산이다. 누구나 다 알듯이 토지는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 중 하나로 꼽힌다. 1969년 9월부터 대하소설 『토지』가 집필이 되었으며 26년 만인 1994년 8월 15일에 완성되었다. 원고지 4만 장에 달하는 거대한 세계다. 출간된 책 권수는 20권이다.무려 9680페지이다. 지레 겁먹을 수준이다. 벽돌 책도 이런 벽돌 책이 없다. 그래서 논평이나 칼럼, 서평에서만 접했지 실제 접하질 못했다.​그런데 『토지 필사 노트』가 바로 그런 독자를 위해 탄생하여 우리 앞에 왔다. 이 책은 박경리 전작을 출간하고 있는 다산북스가 선보이는 최초의 토지문화재단 공식 『토지』 필사 노트다. 토지 작품 가운데 중요한 엑기스만(147개의 글귀)을 기록하여 독자들을 토지의 깊은 세계로 인도한다. 어쩌면 이 필사가 토지를 읽는 계기가 될지 모르겠다.<br><br>이 책을 엮은이는 유선경 작가이다. 그는 서문에서 “아무리 천재적인 작가라도 이와 같은 대하소설은 영원히 다시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썼는데 『토지 필사 노트』가 그 거대한 작품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도록 도와준다.​이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토지』의 글귀들은 오래된 문장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에게도 살아 있는 새로운 문장으로 다가온다.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당신에게 필요한 글귀』라고 엮은이는 말하는데 마치 오컴의 면도날처럼 인간의 본질과 세상의 모순을 명확하고 선명하게 드러낸다. 동시에 시대가 바뀌어도 변함없는 인간의 욕망과 사랑, 연민과 애달픔을 정과 한으로 승화하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위로와 지침을 건낸다. 즉 산다는 것에 대한 고민과 세상의 이치가 이 책 곳곳에 담겨 있다.​『토지 필사 노트』는 그냥 마음 가는대로 펼쳐 쓰면 된다. 목차를 벗어나 그날 마음에 다가오는 문장을 쓰고 곱씹으면 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새 『토지』가 품은 거대한 세계를 마주하게 되고, 그 문장들을 통해 나 자신의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즉 작품이 담고 있는 삶의 지혜와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이 생기며, 명징한 상태로 전환된다. ​이 책은 총 일곱 개의 주제로 엮어졌다. 1장 토지란 무엇인가?2장 인간의 욕망과 사랑3장 한국인의 한과 정4장 우리 어떻게 살 것인가?5장 꿰뚫어 본 인간 심리6장 그래서 우리에게 있는 한 장면7장 세상의 이치가 어떠한가?​토지 작품 가운데 147편을 가려 뽑아낸 글귀들은 모두 인간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1장 토지에 보면 마지막 필사 구절인 "사람이나 짐승이나 자기 태생대로 사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오"라는 글이 나오는데 엮은이는 이 문장이 토지의 핵심 주제라고 말한다. ​그렇다. 세상에는 이치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것은 규범과 달리, 만든 것도 만들어진 것도 아니라 애초부터 있던 원리이다. 그 태생대로 살아갈 때 삶은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자기가 공식일 수밖에 없다"는 원리와 한계를 인정하면 삶은 다르게 보인다. 아무리 이치를 말해도 인간은 결국 자유 의지에 따라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결국 이러한 생각은 타인과 세상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즉 다른 이가 살아가는 삶을 통해 인간은 남들은 나와 어떻게 다른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그래서 관통하는 이치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토지는 그러한 깊은 삶의 이치를 체험 속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들려준다. 한 순간에 듣고 마는 휘발성 문장이 아닌 한 생애를 처절하게 살아가면서 부딪힌 문장들이 이 토지에 실려 있다.​특히 『토지』는 흔히 ‘우리말의 보고’라 불릴 정도로 다른 작품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풍부한 어휘와 살아 있는 말맛, 치밀하면서도 아름다운 표현이 작품 곳곳에 스며 있다. 그래서 많은 독자들이 『토지』를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문장의 교과서’라고 말한다. 낯설은 경상남도 방언은 구수하다못해 매우 인간적인 단어로 들린다. 한 자료를 보니 생전에 작가가 평사리를 무대로 선택한 것은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만석지기를 주인공으로 설정해 드넓은 평야가 있으며, 지리산이 안고 있는 우리 민족의 비극적인 역사가 뒷받침이 되는 곳이어야 했다. 그리고 주인공들이 쓸 토속적인 언어, 경상도 방언을 쓰고 싶어서 섬진강을 낀 경남의 끝자락, 평사리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독자는 각 주제마다 마음에 다가오는 문장들이 많았지만 그 중에 2장 인간의 욕망과 사랑, 4장 우리, 어떻게 살 것인가 5장 꿰뚫어 본 인간의 심리 부분에서 많은 통찰력을 얻게 되었다. 몇 문장을 실어보면...(아니 많은 문장을 실어 본다)2장 인간의 욕망과 사랑​23. chapter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 소중한 것은 돈, 오직 돈이었다​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 소중한 것은 돈, 오직 돈이었다. 그러나 비참했던 이력 때문에 버림당하지 않는 것만이 살길인 줄 믿었던 지난날의 임이네는 아니었다. 남편 없어도 돈 있으면 산다는 배짱이었다. 용이보다, 아니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 소중한 것은 돈, 오직 돈이었다. 돈에게만 그는 그 자신의 장래를 걸었다.이 세상 마지막이 온다 하여도 혼자만은 살아남을 것 같은 왕성한 생명력, 불모의 바위틈을 피 흘려가며 기어오르는 생명에의 의지, 무서운 힘이었다. 그런 뜻에서는 본시부터 임이네는 거인이었다.​남편 자식도 갖고, 국밥집도 갖고 월선이도 죽어버리고 미운 사람들도 다 죽어버리고 그래주었으면 임이네는 오죽이나 좋았을까. 참으로 욕망 무한, 슬픔 없는 목숨이며 비렁땅 꽃 한 포기 새 한 마리 없는 황막한 인생이다.​25. chapter 욕망의 완성은 없다​그러나 인생이란 겨울 햇볕과도 같이, 쏟아지는 폭설과도 같이, 쩡! 하고 굉음을 지르며 스스로 몸을 가르는 빙하와도 같이.... 물론 봄의 환히와 여름의 정열도 있지만, 어디 사람의 삶만이 그러했겠는가. 삼라만상, 억조창생 생명 있는 것은 그 모두가 시간과 자리, 혹은 공간이라는 엄련한 십자가 밑에서 만나고 이별하며 환희와 비애를 밟고 지나가는 것이다. 욕망의 완성은 없다. 그것은 인간의, 생명의 불행인 동시 축복이다. 종말이 없는 염원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26. chapter 혼자 살자니 적막강산이고​"함께 살아도 편허질 않고 혼자 살자니 적막강산이고 참말이제 워째 살아야 할지 모르겄어라우"​32. chapter 뜻대로 살아볼려니까 피투성이가 되는 게야​공노인은 두메며 길상이며 월선이 봉순이 모두 기찬 얘기책 속의 인물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하나하나의 인생이 모두 다 기차다. '뜻대로 안 되는 것을 뜻대로 살아볼려니까 피투성이가 되는 게야. 인간의 인연같이 무서운 거이 어디 있나.'​4장 우리 어떻게 살 것인가​65. chapter 마음을 굽히지 않고 산다는 것이 얼매나 좋노​"세상에는 하고많은 일이 있고 어리석은 놈 등쳐서 깝데기 벳 기묵을 재간도 있는데도 와 하필이 이 짓을 하고 있제?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없는 것도 아니지마는 그러나 석아, 우리같이 설운 놈들이 마음을 굽히지 않고 산다는 것이 얼매나 좋노. 굽히도 굽히는 것이 아니요 기어도 기는 것이 아니라. 안 그렇나?"​67. chapter 너는 너 자신을 살아야 하는 게야​"두메산골에 가서 나뭇짐을 지더라도 가난하고 사람의 대접을 못 받는 이치를 알아야 할 거 아니냐 말이다! 너의 가난과 너에 대한 핍박을 너의 아버지 너의 형 탓으로 돌리는 것은 네가 없다는 얘기가 된다. 네가 없다는 것은 죽은 거다. 아니면 풀잎으로 사는 거다. 너는 너 자신을 살아야 하는 게야. 너의 아버지는 너 한 사람을 가난하게, 핍박받게 했지만 세상에는 한 사람이 혹은 몇 사람이 수천만의 사람들을 가난하게 하고 핍박받게 하고, 한다는 것을 왜 모르느냐 말이다! 지금 당장 목전의 원수는 일본이지만, 따라서 너의 형도 목을 쳐야겠지만, 제발 일하라 않겠으니 숨지만 말아라. 너의 자손을 위해서도, 너의 아버지의 망령을 평생 짊어지고 다니 다가 너의 자손에게 물려줄 작정이냐 말이야!"​5장 꿰뚫어 본 인간의 심리​86. chapter 넌 지나치게 순수한 것을 원하고 있다​"지금의 너에겐 가장 견디기 어려운, 그런 나이지만 여자, 술, 담배 하면서 크게 타락한 것같이 생각하고 또 남들도 그리 생각은 하겠으나 실상 넌 지나치게 순수한 것을 원하고 있다. 물론 너 어머니 성질이 남다른 것을 알긴 알지. 그만큼 너 자신도 성질이 남다른 데가 있는 게야. 순수한 것이 아니면은 다 부숴버리고 싶은, 그래서 너 자신을 짓이기고 있는 게야. 아무튼 지금 내 생각으론 이 어려운 고비만 넘기면은, 잘될 것 같다."​87. chapter 칼을 뽑지 못하고 바늘을 뽑았다​늘 언행에 중심이 잡혀 있고 심지가 꼿꼿한 윤도집인데 어찌 하여 환이에게만은 매번 신경이 곤두서게 되고 그러면은 신경이 바늘 끝으로 변하여 상대방을 찌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게 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럴 때마다 윤도집은 환이의 그 살기 어린 야유에 부딪친다. 살기나 야유가 두려웠던 것은 아니다. 칼을 뽑지 못하고 바늘을 뽑았다는 의식이, 소인배라는 자의식이 그를 부끄럽게 했고 자신에 대한 능멸감 때문에 견딜 수 없게 한 다. 그럼에도 어찌하여 매번 환이에 대해서만은 늪과도 같은 도전의 유혹에 빠지는 건지 윤도집은 알 수가 없었다. 깊은 증오심도 없으면서.​94. chapter 무서운 게 아니오 외로운 거요​"병자만 목에 칼 걸어놓고 사는 건 아니잖소. 산다는 것은 목에다 칼 걸어놓은 거요. 사는 것 아니라니까요." "그거는 성님 말이 맞소. 항상 칼든 놈이 뒤따라오는 것 겉은 생각을 했인께요. 이서방이 허약해져서 그 생각을 많이 하는 깁니다." ​강쇠가 거든다."무서운 게 아니오. 외로운 거요. 뭣이든 거머잡고 싶은 심정이오."​96. chapter 착한 사램이라고 어디 나쁜 마음 안 묵건데?​"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네라. 다 처지에 따라서 나빠지기도 하고 좋아지기도 하고, 제 살기가 편하믄 머할라고 남을 원망하겄노, 안 그렇나? 사흘 굶으믄 엔간한 사람이 아니믄 맘 잘 못 묵기 쉽지.(…)착한 사램이라고 어디 나쁜 마음 안 묵건데? 그라믄 부처님 안 되겄나? 사램이란 하루에도 몇 분은 나쁜 마음 묵지. 나쁜 사람도 하루에 한 분쯤은 좋은 마음 묵어보고 지은 죄도 무섭아해보고." 늘 그러던 봉순네였으나 귀녀에게 대해서만은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가지는 그 신뢰를 가질 수 없었다.​"염치는 배부른 사람이 챙기는 거지, 너처럼 그랬다가는 굶어 죽을 기다.""그거는 그렇지 않다." 호야할매는 끼어들었다."아무리 배가 고르고 기찹아도 염치를 채리야만 그기이 사람이제. 있고 없고가 상관없는 기라. 있다고 해서 어디 염치 채리더나?"​104. chapter 늙은 탓이 아니야 세월이 달라진 게야​김환과 길상이 나간 뒤 이동진은 오열한다. "이 사람아, 석운(최치수의 호). 나는 이제 뭐가 뭔지 모르겠 네. 참말로 모르겠네. 이십 년을 방황하였건만 나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고 생각은 호박오가리처럼 쭈그러들었네. 저네들은 싱싱 한 호박 넝쿨처럼 사방에다 줄기를 뻗고서 내 앞에 나타났단 말일세. 어떻게 그리 변신할 수 있었는지 모를 일일세. 철사 같은 그 신경의 줄이 나를 휘감더군. 옴짝할 수 없게시리 나를 휘감더군. 우리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은 한갓 감상이요, 그네들이 추하다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었네. 내 노여운 음성은 허울만 남은 호랑이 울음이었고, 그네들의 맞서는 음성은 발톱으로 먹이를 찢어발기는 이리 떼의 울음이었네. 이 사람, 석운, 늙은 탓이 아닐세 늙은 탓이 아니야. 내 나이 이제 오십을 넘겼을 뿐인데 세월이 달라진 게야. 그리고 우린 이조 오백 년의 무거운 세월을 싫든 좋든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지. 하기야 살아남으려면 의관이 무슨 소용이겠나. 맨발로 뛰어야 할 때는 맨발로 뛰고, 물구나무를 서야 한다면 물구나물 서야 하고. 한데 그게 안 되거든."​107. chapter 그 후회스러운 날들이 그립단 말시"지난날을 생각허믄 모두가 다 후회스러운 일뿐인디 그 후회 스러운 날들이 그립단 말시."좋은 문장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토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선하거나 악하거나, 고귀하거나 천박하거나, 청렴하거나 탐욕스럽거나…… 생김새만큼이나 마음보들이 각양각색인 600여 인물을 통해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회의감도 든다. 결국 여기에 나오는 인물은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나를 비추기 때문이다. 안 그런척 하지만 토지의 각 인물은 내 내면을 비춘다. 따라서 『토지』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질문한다. 말맛이 살아 있는 이 문장들을 통해 나라는 존재를 마주하는 시간이 되었다. 정말 원고지 4만 장에 달하는 문장들을 일일이 읽어봐야겠다.<br>-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15/93/cover150/k36213069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159327</link></image></item><item><author>storax</author><category>카테고리</category><title>우리는 매일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쓴다 - [우리는 매일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쓴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494944</link><pubDate>Fri, 04 Sep 2026 22: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49494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32130831&TPaperId=1749494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86/68/coveroff/k13213083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32130831&TPaperId=1749494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우리는 매일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쓴다</a><br/>호메로스 지음 / 클래시카 / 2026년 08월<br/></td></tr></table><br/>이 책은 이 한 문장에 마음이 뺏겨 손길(서평 신청)이 갔다."참아라, 나의 마음이여.너는 언젠가 이보다 더 끔찍한 일도 견뎌내지 않았던가."이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은 이러하다.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오디세우스는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길에 신들의 노여움을 사서,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거친 바다 위를 표류하며 전우들을 모두 잃고, 숱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게 된다. 모든 것을 빼앗기고 가장 깊은 절망의 심연에 내던져졌을 때, 그는 하늘을 향해 자비를 구걸하지 않았고, 대신 자신의 가슴을 치며 묵묵히 다짐한다.​"참아라, 나의 마음이여.너는 언젠가 이보다 더 끔찍한 일도 견뎌내지 않았던가."​살다보니 절망의 순간을 마주한다. 숨이 턱턱 막힌다. 무엇이 문제였지하는 자책감과 함께, 문제의 늪이 더 크게 짓누른다. 한편으로 새로운 길을 찾는다는 희망도 있지만 어떻게 이 위기를 벋어나야 할지 모르겠다. 당연히 이런 상황에 신을 찾게 된다. 자비를 구하게 된다. 그런데 오디세우스는 지난 날을 회상하며, 그때는 더 심각한 상황도 이겨냈지 않느냐 하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다짐하는 것을 보게 된다. ​참으로 산 넘어 산이다. 큰 산을 넘어 왔기에 이젠 어떤 산도 넉넉히 넘을 수 있고, 나를 괴롭힐 산이 없지는 않겠지만 더 이상 큰 산은 없을 줄 알았는데, 이번에도 또 큰 산맥이 나를 가로 막는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들 앞에 처절히 무력해지는 모습에서, 이젠 어떡하라는 말입니까하며 누군가(신?)에게 하소연을 흘려 보낸다.​어쩌면 인간은 신들의 폭풍 속에서 노를 젓고 살아가야 하는 운명인 것을 알게 된다. 삶을 흔드는 무게가 하늘만큼 커보여도 이제는 세상을 원망하거나, 나 자신을 학대하거나 또는 신의 변덕에 분노하거나, 나의 무능을 저주하는 일은 집어 치워야 한다는 것을 직감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원망할 시간에 다음 파도를 넘을 준비를 해야한다. 이것이 오디세우스의 이야기에서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가르침이다.​거대한 운명의 격량 앞에 그가 가진 지혜나 기도조차 무력했다고 한다. 그렇다. 세계는 정의로운 보상을 주지 않는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우리는 삶의 어느 지점에 반드시 부러진다.​"왜 나만 이런가, 왜 나는 열심히 살았는데 이 모양인가, 반대로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쉽게 가는가." 억울함에 매몰되어 과거만 파고드는 따위는 이제 하지 말아야 한다. 과거만 파고들면 손에 쥔 노는 자꾸만 미끄러지는 법이다.<br>그렇다. 이 책은 낭만적인 위안을 건네지 않는다. 대신 오래된 화두를 던진다. 그건 당신의 이타카(Ithaca-오디세우스의 고향이자 그리스의 섬 이름, 문학적·상징적으로는 ‘귀향’이나 ‘목표’를 의미하는 용어)는 어디인가? 당신은 지금 어디로 돌아가려 하는가? 아니, 그 전에 돌아갈 곳이 있기는 한가하며 내가 가야할 종착지가 어딘지를 묻는다.​이 책이 위대한 이유는 괴물을 이겼기 때문이 아니었다. 십년 동안 방향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이타카는 낙원이 아니었다. 작고, 척박하고, 돌 많은 섬이었다. 그래서 신들은 화려한 대안을 제시했다. 칼립소는 불멸을 주겠다고 했고, 키르테는 그를 왕처럼 환대했다. 그러나 파이아케스인들은 그를 붙잡거나 새로운 삶을 권한 것이 아니라, 이타카로 돌아갈 배와 선물을 마련해 주었다. 오디세우스는 그 도움을 받아 마침내 고향으로 향했는데, 여기에 대해 프롤로그를 쓴 편집부는 이렇게 언급한다. "그가 거절한 것은 귀환을 대신할 영원한 안락이었고, 그가 받아들인 것은 귀환을 가능하게 하는 타인의 환대였다. 그가 끝내 포기하지 않은 것은, 초라해도 자신의 것이어야 한다는 믿음이었다. 여기서 한 번 멈춰보자.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자신의 초라한 이타카를 부끄러워하며 남의 화려한 섬에 눌러앉으려 하는가."<br>무엇을 말하는가? 결국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 삶은 타인의 의해 주어지고 만들어진 안락한 삶이 아닌 폭풍 속을 걷지만, 되는 일이 없지만, 모든 것을 잃어버렸지만 나 자신이 경험하고 부딪힌 삶만이 오로지 나의 이타카가 되는 것이다. 호메로스의 전작 『일리아스』가 전쟁터에서의 영웅적 죽음과 명예를 다루었다면, 이 책 『오디세이아』는 전쟁에서 살아남아 집으로 돌아가는 삶의 여정을 이야기한다. 특히 신의 뜻에 굴복하지 않고 끊임없이 방황하면서도 정체성을 찾아가는 오디세우스의 모습은 지금의 불확실한 시대와도 별반 다르지 않다. 수천년 전에도 거친 바다를 향해 했고, 지금도 동일하게 인간은 가혹한 폭풍 앞에 서게 된다. 그런데 오디세우스는 불명의 생을 주겠다는 칼립소의 달콤한 제안을 거절하고, 필멸의 인간으로서 고통과 늙음이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어쩌면 돌아간 자리는 그를 더 혹독하게 다루어 그곳이 그의 무덤이 될 수 있는 자리였다. 돌아간 이타카는 사실 폐허에 가까웠다. 왕궁은 구혼자들에게 점령당했고, 아내는 지쳐 있었다. 아들은 낯설었고, 자신은 다 늙은 상태였다. 그런데도 그는 이타카로 돌아갔다. 이타카가 좋은 곳이라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것이라서 돌아갔다는 것이다. 남의 낙원보다 내 폐허가 낫다.​낭만적인 문장처럼 들리지만 사실 그러하다. 화려하게 지어진 타인의 집보다, 허술한 집이지만 가족이 있고, 내 삶의 흔적이 있었던 그 자리가 내 자리인 것이다. 한때 미국 이민 갔던 자들이 나이가 들어 죽음이 가까웠을 때 미국 문화의 화려함 속에서 살기보다 구수한 된장 냄새가 나는 쓰러져 가는 고향 집, 들 길을 찾아 오듯이 우리는 우리가 끝내 가야 할 길을 걸어야 한다.<br>이 책은 다섯 겹의 항해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 째는 고난을 수용하는 법. 두 번째는 유혹을 경계하는 법. 세 번째는 희생을 감수하는 법. 네 번째는 심연을 응시하는 법. 다섯 번째는 이타카를 탈환하는 법에 대해 다룬다. 각 장마다 주는 깨달음과 삶에 대한 선명함이 주어질 것이다. 그 깨달음을 가지고 가혹한 운명을 마주해 보자.​이 책에는 신의 이름이 자주 언급된다. 포세이돈, 아테나, 제우스, 헤르메스 등의 이름이다. 여기서 신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모든 것의 이름으로서 신은 인간이 이길 수 없는 존재다. 무엇보다 인간의 위대함은 그 신들을 이기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신은 이 길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의 위대함은, 이길 수 없는 폭풍 속에서도 자기 손으로 노를 잡는다는 사실 그 자체다.​한 자료를 보았다. “20세기 프랑스 철학자 폴 리쾨르가 평생 붙들고 있었던 질문이 있는데 그건 "인간은 어떻게 자기 자신이 되는가?"이다. 그가 도달한 답은 단순했다. 자기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자만이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서사적 정체성’이라 불렀는데 결국 오디세우스를 읽은 자는 오디세우스가 살아간 삶의 궤적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닌 나만의 항해, 즉 나만의 오디세우스를 펼쳐나가야 하는 것이다. 신들은 각자마다의 가혹한 운명을 만든다. 그러니 그것을 대하는 자세 또한 각자의 선택이다. 다만 남들이 가는 길을 보고 끌려 가지 말고, 내 안에서 요구하는 욕망을 따라 오늘도 한 발자국을 내딛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문장이 마음에 들어 실어본다."신(神)은 불쌍한 자를 돕지 않는다, 오직 '닮은 자'에게 투자할 뿐이다.""신들이 인간에게 이토록 가혹한 운명을 부여한 것은, 훗날 태어날 이들에게 불릴 노래를 만들기 위함이다. -호메로스 『오디세이아』中<br>-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86/68/cover150/k13213083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866834</link></image></item><item><author>storax</author><category>카테고리</category><title>지배할 것인가 평생 지배당할 것인가 - [지배할 것인가 평생 지배당할 것인가 - 진시황으로 알아보는 자신만의 인생을 세우는 지배의 법칙]</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494912</link><pubDate>Fri, 04 Sep 2026 22: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49491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32130223&TPaperId=1749491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39/33/coveroff/k93213022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32130223&TPaperId=1749491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지배할 것인가 평생 지배당할 것인가 - 진시황으로 알아보는 자신만의 인생을 세우는 지배의 법칙</a><br/>진시황 지음 / ORIGIN / 2026년 08월<br/></td></tr></table><br/>진시황으로 알아보는 자신만의 인생을 세우는 지배의 법칙 진시황제는 13세에 왕이 되었다. 그리고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을 건설한 위대한 설계자다. 진나라의 제 31대 군주이며 초대 황제이다. 화려한 이력은 그의 삶을 이미 금수저의 반열에 올리며 크나큰 어려움 없이 자란 인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적국 조나라에서 볼모의 아들로 태어나 멸시와 불안 속에서 유년을 보냈으며, 어머니의 추문, 자신을 암살하려는 끊임없이 자객들의 위협 속에서 매일 밤 칼자루를 쥔 채로 잠들수 밖에 없는 불안한 존재였다. 이러한 위태로움이 있는 그였지만 세상을 원망하는 대신 자신을 단단한 무기로 벼려냈다. 그런데 놀랍게도 두려움은 이미 오래전, 그가 열세 살이 되기도 전에 다 써버린 감정이었다고 한다. 열세 살에 왕위에 올랐으나 어머니의 정부 노애의 반란을 가차 없이 진압하였고, 친자식처럼 길러주었다는 권신 여불위가 권력의 그늘아래 그를 길들이려 했지만 그 또한 제거하며 권력의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핏줄이라는 이름, 은혜라는 이름, 모정이라는 이름, 보통의 인간이라면 한 번쯤은 흔들렸을 그 이름들 앞에서, 그는 한치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에게 인연이란 결국 자신의 영토를 갉아먹는 자와 지키는 자, 둘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최근 눈에 띄는 명언을 보았다. 법륜 스님이 한 말이다.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말라. 그대의 모든 불행은 진실 없는 사람을 진심으로 대한 벌이오." 진시황이 살아간 삶을 두고 지나치게 냉혹하다 비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우선 그는 잔혹한 폭군으로 기록되었다. 그가 실용서를 제외한 옛 제후국들의 기록을 불태우고, 자신을 기만하던 방사(方士)와 일부 유생을 가차 없이 생매장했으며, 장성 축조를 위해 막대한 인력을 동원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흔들림 없는 확고한 규율이 없었다면 춘추전국의 500년 난세는 결코 종식되지 않았을 거라는 말을 마음 깊이 새긴다. 세상의 무질서와 타인의 얄팍한 잣대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스스로 단단한 규칙 위에 서야 한다는 말 또한 흘려듣지 않을 것이다. ​모든 일에는 명암(明暗)이 있다. 진시황이라고 좋은 점만 있겠는가? 나쁜 점만 있겠는가? 이 책은 진시황을 미화하거나 옹호하기 위한 책이 아닌 그가 자신을 다루었던 엄격하고도 철저한 방식, 자신의 삶을 하나의 제국처럼 설계하고 운영했던 그 방법론에서, 흔들리는 우리가 건져낼 수 있는 무엇이 있다면 그것을 건져내자는 책이다.​프롤로그에 말하듯이 세상은 친절해 보이지만 결코 친절하지 않다. 내가 흔들리면 누군가는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나의 자리를 차지한다. 내가 결정을 미루면 누군가가 대신 결정해 주게 된다. 내가 기준을 갖지 못하면 누군가의 기준이 나의 삶 전체를 도배하게 된다. 즉 지배하지 않으면 지배당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잔인하지만, 잔인하기 때문에 진실에 가깝다. 요즘들어 그러한 세상을 체험하게 된다.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이 마음 깊이 이해가 된다. 그건 군주가 권력을 얻고 유지하려면 때로는 권모술수를 써야 하며, 사악한 행위도 서슴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 말이다. 한 마디로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것인데, 이게 군중이 갖는 무지함 때문이다. 이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지만 조선 제3대 왕인 태종(太宗)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 때론 정몽주도 제거해야 했고, 또한 함께 혁명을 꿈꾸며 고려의 반대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뜻을 함께했던 가장 강력한 정치적 동지였던 정도전도 결국 목을 베어 버렸다. 그리하여 피의 숙청 속에 태종 이방원은 500년 조선조 국가 운영의 밑그림을 완성한 군왕이 되었던 것이다. ​진시황은 인간의 선의를 믿지 않은 사람이다. 그는 사람이 좋은 마음을 먹어 좋은 일을 한다고 보지 않았다. 사람은 룰이 있을 때 룰대로 움직이고, 룰이 없으면 본능대로 무너진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법을 세웠고, 그 법에 예외를 두지 않은 것이다. 자신의 어머니에게도, 자신을 키워준 스승에게도, 자신과 함께 천하를 도모한 공신에게도 말이다. 이 단호함은 잔인함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세계를 단 한 치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이 책은 다섯 개의 키워드로 진시황을 다시 읽어준다. 1장 통일: 내 삶의 영토를 온전히 장악하라. 2장 도량형: 흩어진 잣대를 부수고 기준을 독점하라.3장 만리장성: 타인이 침범할 수 없는 성벽을 쌓아라.4장 법가: 무자비한 규율이 가장 강력한 무기다.5장: 천하제일: 세상의 꼭대기에서 나만의 역사를 쓰다.​한 단락, 단락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러나 핵심은 단순하다. 내 삶의 영토를 하나로 묶고, 내 잣대를 하나로 세우며, 나를 지킬 성벽을 쌓고, 흔들리지 않을 규율을 만들어, 끝내 내 이름을 내 삶의 가장 높은 자리에 새기는 일에 관한 것이다. 즉 진시황은 낡은 호칭인 '왕'이라는 호칭을 버리고 '황제'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었다. 나아가 도량형과 화폐, 문자, 수레의 규격까지 하나로 통일해 자신만의 질서를 구축했다. 따라서 이 책은 이러한 그의 결단력과 통치 철학을 통해, 타인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원칙을 세우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금 내 삶에 결정자는 누구인가? 타인인가 아니면 나라는 주체자인가? 오늘자 뉴스에 ‘헬리콥터 부모’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 기가 막혔다. 왜냐하면 최근 수도권 한 제조 중견기업의 신입사원 면접날. 한 지원자의 어머니가 회사로 찾아왔다. 그 여성은 면접장으로 들어가는 면접관들의 손을 잇따라 붙잡고는 “우리 아이가 낯을 가리니 압박 질문은 줄이고 부드럽게 해달라”고 당부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과는 무관하게 최종 합격하여 부서 배치를 마친 상황에 얼마 뒤 인사팀에 다시 그 어머니의 전화가 걸려왔다. “우리 아이 부서는 업무 강도가 너무 높아 보이니 다른 팀으로 바꿔달라”는 요청이었다. 또 다른 중견기업의 인사팀장은 얼마 전 ‘대리 퇴사 통보’를 받았다. 무단결근한 신입사원의 모친이 이튿날 전화해 “우리 애가 어제 퇴근하고 회사가 삭막해 다니기 싫다고 울었다”며 “오늘부터 출근 안 하니 사직 처리하고 우리 아이 자리에 둔 텀블러와 카디건은 착불 택배로 보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자녀들은 자신의 생각을 부모에게 언급하여 원하는 것을 얻었지만 결코 이 자녀는 자신의 삶의 결정자로서 온전히 살아가지 못하는 자라고 본다. ​『지배할 것인가 평생 지배당할 것인가』는 결국 인생의 주도권을 내가 가지고 있는가를 묻고 있다. 남이 만든 규칙 속에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규칙을 만드는 사람이 될 것인지는 이 책을 읽고 대답해 보면 좋겠다. 세상의 평판에 혹 흔들려 무언가를 결정하지 못하는 자인가? 타인의 척도에 영토를 내어주는 나약함을 가진 자인가? 또는 낡은 관성에 묶여 결단을 유예하는 비겁함을 가졌는가? 이러한 상태라면 일단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겠다. 다만 자신을 정확하게 마주 보는 일이 필요하다고 알려준다. 정확하게 보아야, 정확하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이 책에서 이 한 가지만을 얻게 된다면 아마도 그는 천하를 얻은 진시황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그건 바로 「지배할 것인가, 평생 지배당할 것인가」를 분명히 하고, 이제 내가 삶의 자리를 주체적으로 가져 온전한 나로 살자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가 쓴 '데미안'의 한 문장이 생각난다. 나는 내 속에서 스스로 솟아나는 것, 바로 그것을 살아보려 했다.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br>-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39/33/cover150/k93213022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393325</link></image></item><item><author>storax</author><category>카테고리</category><title>돌이킬 수 없는 과거 앞에 서성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 [돌이킬 수 없는 과거 앞에 서성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 강태공으로 알아보는 천하를 낚는 삶의 태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494892</link><pubDate>Fri, 04 Sep 2026 22: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49489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42130222&TPaperId=1749489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39/10/coveroff/k24213022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42130222&TPaperId=1749489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돌이킬 수 없는 과거 앞에 서성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 강태공으로 알아보는 천하를 낚는 삶의 태도</a><br/>강태공 지음 / PHILO / 2026년 08월<br/></td></tr></table><br/>강태공을 말할 때 흔히 낚시로 세월을 낚는 ‘낚시꾼’으로 상기된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낙시꾼이 아닌 동양 최고의 전략가이자 책사이다. 자료를 찾아 보면 그는 전략가이자 제나라의 초대 군주이다. 쉽게 말해 주나라 재상으로 왕을 도와 상나라를 뒤집어엎고, 그 포상으로 제나라 땅을 맡아 본인이 국군(國君)이 되어 일종의 제후 국군이 된 인물이다. 언뜻 보기에는 유유자적하며 낚시를 즐기던 자였다. 그러나 그가 재상에 오른것이 대략 72세~80세 사이 쯤 되었으니, 그는 단순한 낚시꾼이 아니라 '기다림과 때를 아는 사람'이었다.​당시 시대 상황을 보면 중국 고대 주(周)나라가 세워지기 전, 세상은 은(殷)나라 말기의 혼란으로 백성들의 삶이 피폐한 상태였다. 그러나 훗날 나라를 바로 세울 큰 인물이 세상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믿음이 사람들 입에서 전해졌다. 그 무렵 강태공은 뛰어난 학식과 정치적 식견을 지녔지만 세상에 자신의 뜻을 펼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는 조급하게 권세를 좇지 않고 스스로를 갈고닦으며 올바른 임금을 기다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벼슬길을 포기한 채 강가를 떠도는 늙은이로만 여겼다. 그러나 강태공은 자신의 재능을 아무에게나 바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그리하여 그는 기다렸고 인내했다. 책을 보면서 그의 숨겨진 일화를 보게 된다. 그가 강가에서 띄운 것은 곧은 낚싯바늘이었다고 한다. 미끼도 없었다. 물고기를 잡을 생각이 아예 없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잡으려고 했는가. 바로 그는 시대를 잡으려 했다. 자기를 알아볼 사람이 올 때까지, 자신을 헐값에 팔지 않겠다는 결의, 굽실거리며 유세객처럼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지 않겠다는 자존. 소모품이 되지 않겠다는 냉철한 통찰로서 그는 때를 기다렸다. 그래서 그가 기다린 것은 무기력이 아닌 전략이었다. p.08​강태공의 병법서 『육도六韜』를 보면 명확히 그걸 알게 된다. "사나운 새가 사냥감을 칠 때는 낮게 날며 날개를 거두고, 맹수가 먹이를 덮치기 전에는 반드시 귀를 내리고 엎드린다." 즉 가장 사나운 공격은 조용한 자세에서 시작되는 것이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냥할 능력이 없으면서도 날개부터 펼치며 허세를 부린다. 내실을 다지기 전에 제후들의 연회를 전전하며 알량한 지식을 뽐내고, 세상을 꿰뚫는 안목을 갖추기도 전에 유세객을 자처하며 입방아를 찧는다. 실력을 증명할 진짜 기회가 오기 전에 자신의 얄팍한 패부터 사방에 전시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나아 간다면 마지막 판에 가장 큰 것을 가져 올 수 없다. 실제 강태공이 위수(渭水)에서 낚시한 세월은 무려 십수년이라 전해진다. 누군가에게는 한 늙은이가 한가롭게 보내며 세월을 낚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특히 그의 아내에게는 사람 같지 않는 변변찮는 한심한 노인네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시간 동안 천하의 지도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즉 상나라의 약점을, 주변 제후들의 마음을, 백성들의 굶주림과 원망을, 군대의 배치와 보급의 흐름을 읽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무엇도 발설치 않고, 자랑하지도 않았다. 그저 곧은 낚시 바늘을 강물에 드리우고 앉아 있었다.​참으로 대단한 인물이며 범상치 않는 인물이다. 책을 읽으면서 연신 고개가 끄덕여지고, 숙여진다. 그에 관한 일화나 사고(思考)는 과히 내가 배워야 할 자세며, 마음 가짐이었다. 그는 이미 재상이 될 인물이었다. 시대가 요구했고, 그가 준비했다. 여기서 독자인 나는 얼마나 준비를 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는지 묻게 된다. 아니 때를 기다리며 전략적으로 준비한다는 것이 힘겹다. 빨리 결과를 내고 싶은 마음에 조급함도 생긴다. 그러나 강태공을 통해 명확히 배우게 된다. 전략적 대기를 하며, 무언가를 속에서 준비하는 것이다. 매가 하늘에 그냥 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매를 모르고 하는 소리이듯이, 정확하게 바람의 방향을 읽고, 들판의 그림자를 측정하고, 토끼의 호흡까지도 가늠하는 자세를 가져보도록 할 것이다. 외부로 드러나는 행동의 부재가 내부의 무위를 뜻하는 것이 아니듯 강태공처럼 낚시대를 드리운 채 가장 격렬하게 사고하듯 독자 또한 준비할 것이다. 문왕이 위수에 나타났을 때 강태공을 알아 본 것은 그가 단순히 늙어간 존재가 아니라 준비된 존재였기 때문이다. 기회란 준비된자에 온다는 단순한 진리를 한 수 배우고 간다.​특히 또 한 가지 이 책에서 배우는 대목은 "엎드러진 물 앞에서 등을 돌리는" 사건이다. 그는 위수 강가에서 문왕의 수레에 올라 타면서, 단 한 번도 강물 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가난과 설움 속에서 지내던 그 위수의 자리를, 자신을 알아주지 않던 세상에 대한 원망도, 끝내 떠나간 아내에 대한 감정도, 백정으로 살았던 조가의 새벽도, 주막을 접고 떠나야 했던 맹진의 황혼도, 모두 강물위에 떠 내려 보내고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은 떠나는 순간 한 번쯤은 돌아본다. 그래서 과거를 반추하며 설움에 복받치거나, 다른 선택을 했었다면 어땠을까하는 미련을 가진다.<br>그런데 강태공은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의 마음으로 살았다. 엎으러진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이것은 훗날 강태공이 제나라 제후가 된 후, 가난을 견디지 못하고 떠난 아내가 자신을 찾아오자, 그 앞에서 물을 부으며 단호히 선을 그으면서 한 말이다. "이 물을 다시 동이에 담을 수 있다면 당신을 받아주겠소." 이는 단순한 매정함이 아니라, 끝난 인연과 헛된 미련을 베어내는 단호함이었다. 강태공은 아내가 떠난 뒤의 그 모습을 절대로 그리워하거나 그녀의 뒷모스을 향해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고 한다. 즉 그녀를 그리워하지도, 미워하지도, 자책하지도 않고 그저 자신의 일을 했다. 위수의 강물에 곧은 바늘을 드리우고, 책을 펴고, 천하의 판을 그렸다는 것이다.​함께 했던 정이 있었고, 미안함도 있었을 것인데 강태공은 너무나 차가울 정도로 금을 그었다. 이것은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고 현재의 일에만 집중하며 앞만 보겠다는 것이다. 특히나 강태공은 엎어 버린 것이 물이 아니라 그가 칠십년을 견딘 시간, 새벽 도축장의 피비린내, 주막에서 외상값을 받지 못하고 돌아오던 밤,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을 함께 견디지 못한 한 사람에 대한 정직한 평가로서 아내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이유라면 가장 어려울 때 등을 돌린 사람은 또 다시 어려움을 겪게 되면 또 다시 등을 돌리는 법이다. 그래서 그는 길게 말하지 않고, 또한 따지거나 원망하지 않고 그저 물을 엎었다. 인연을 끝내는 일이란 단호해야 한다. 다시금 마음을 주게 되면 모든 것이 흔들리게 되고, 현재의 일도 그르치게 된다. 사람을 잃어 본 적이 있다. 그때의 시간을 돌아보면서 여러 생각이 든다. "그때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 사람의 말을 더 귀담아 듣고 내 원칙을 접었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까?" 혹은 "그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그 시험을 한 번 더 봤더라면,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가정을 해본다.<br>그런데 강태공은 한 번 금이 간 신뢰를 결코 되돌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 벙은 상나라의 폭군 주왕 밑에서 관직 생활을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그 조직이 구제 불능임을 간파한 순간, 주저 없이 등을 돌렸다. 미련이라는 낡은 족쇄에 얽매이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이미 쏟은 정성과 세월이 아까워 그 자리를 맴도는 심리, 어긋난 관계, 끝난 꿈에 매여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책을 통해 강태공이 살아간 삶의 흔적 속에서 삶의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참으로 그는 오랜 무명의 시간을 견뎠고, 스스로를 단련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문왕을 만나 천하의 흐름을 바꾸는 인물이 되었다. 이 책은 크게 두 가지만 붙들면 된다. 그건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온다는 것과, 이미 지나간 과거는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결단이다. 요즘 광고에 새로운 인물이 자주 보인다. 드라마 김부장에서 박진철 역으로 배우 윤경호의 광고이다. 15년의 무명생활은 그에게 큰 산과 같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 지겨움과 알아주지 못하는 그 시간, 생활고를 견녀냈다. 그리고 드디어 그를 알아봐 주는 드라마를 통해 확실히 대중에게 그의 얼굴을 알렸다. 그는 준비된 기회적 전략가였다. 독자 또한 현재의 괴로움과 성과가 없는 삶에 마음의 큰 짐이 있다. 그러나 강태공을 통해 내면을 다지고, 더욱더 준비된 자로서 오늘의 할 일을 하려고 한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미래가 있음을 보며 마음의 희망을 품어 본다. <br>-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39/10/cover150/k24213022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391002</link></image></item><item><author>storax</author><category>카테고리</category><title>다산 정약용의 인생 수업 - [다산 정약용의 인생 수업]</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444108</link><pubDate>Tue, 11 Aug 2026 09: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44410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22130276&TPaperId=1744410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47/20/coveroff/k52213027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22130276&TPaperId=1744410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다산 정약용의 인생 수업</a><br/>정약용 지음, 정영훈 엮음, 김창준 옮김 / 메이트북스 / 2026년 06월<br/></td></tr></table><br/>조선 최고의 천재이자, 실학자, 개혁가로 알려진 정약용이란 분의 책을 또 다시 읽게 되었다. 그가 써낸 글들을 읽을 때면 마음 깊이 존경하는 마음과 경외감마저든다. 탁월한 인재를 넘어 그는 시대를 넘어 서있는 사람이며, 삶의 통찰을 명확히 꿰뚫어본 인물이라 생각이 든다. 정조의 총애를 받던 엘리트였지만, 마흔부터 시작된 정치적 격랑 속에서 18년이라는 긴 유배 생활을 놀랍게도 견뎌내고 승화시킨 존재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복수의 마음을 갈거나, 좌절 속에 삶을 놓고 살 수 있었으나 그는 절망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특히나 유배지에서 아들들에게 수백 통의 편지를 보내면서 교육하고 가르친 대목에선 집요함과 함께 유배자의 자녀가 아닌 한 나라의 백성이며, 한 가문의 자녀답게 반듯하게 살기를 원하는 아버지의 눈물겨운 사랑을 보게 된다. 또한 『목민심서』와 『경세유표』, 『흠흠신서』를 비롯한 수많은 저술을 통해 백성들의 삶과 사회를 다시 세우는 방법을 고민하는 그 모습은 가히 신의 경지에 이른 사람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br>『다산 정약용의 인생 수업』은 250년 전에 쓰여진 글이지만 그 치열한 기록과 사유 속에서 현대인들이 정말 삶의 기준으로 붙잡아야 될 내용이 가득한 책이다. 단순히 위인의 일화를 소개하는 정도의 책이 아니라, 다산이 실제로 살아내고 실천했던 삶의 원칙을 문단마다 보게 될 것이다. 삶의 본질은 시대가 흘러도 바뀌지 않는다. 여전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돈 때문에 흔들리고, 사람 때문에 치이고,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 눈 앞의 이익 앞에 배신자가 되기도 하고, 배신을 당하기도 하는 우리의 모습이 그 시대에 있었다. ​이 책은 삶의 전 국면을 아우르는 실전 체계에 대한 기록으로서, 일곱 개의 틀 안에서 정리했다. 1장은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해주면서 기록하지 않은 것은 살지 않은 것과 같다고 말한다. 2장은 가계(家計)를 통해 재물을 다루는 태도가 삶을 만들기에 그 재물의 사용 원칙들을 상세히 다룬다. 3장은 수양을 통해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며, 4장은 관계를 통해 사람을 얻고 지키는 원칙을 알려준다. 5장은 공부를 통해 학문이야 말로 자신을 지켜주는 울타리임을 알려주며, 6장은 세상을 사는 처세술에 대한 기록이다. 마지막 7장은 애민 정신을 통해 공동체와 타인을 대하는 책임감을 돌아보도록 한다. ​다산이 가문과 삶을 지키기 위해 세웠던 일곱 개의 기둥은 어쩜 이리도 우리 현실에도 유효한 삶의 기준이 될까하는 생각을 가진다. 책은 순서대로 읽어도 되지만 마음 가는대로 펴서 읽어도 된다. 삶의 중심이 흔들릴 때마다 이 책을 통해서 읽었던 것은 분명 우리 삶을 반듯하게 세우는 길잡이가 되리라 본다. 다산이 쓴 책을 읽을 때마다 느낀 것은 이런 분의 책은 학교 교육의 커리큘럼에 반드시 접목되어 가르쳐져야 한다고 생각된다. 지금의 지식은 지식 그 자체를 머리에 넣는 것으로 사람을 기계적 인간으로 살게끔 한다. 그러나 다산의 지식은 사회적 인간과 도덕적 인간으로서의 참 지식을 가르쳐준다. 인간성 상실 시대에 다산은 인간됨이 무엇인지 매우 섬세하게, 명확하게 가르쳐 준다. 연일 사회는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이러 저러한 사건을 통해서 보면 모두 죄다 인간성 상실이 불러온 범죄임을 보게 된다. ​그래서 다산은 수양(修養) 부분에서 처음 언급하기를 "홀로 있을 때도 삼가는 것이 수양의 완성이라고" 알려준다. 또한 "남은 속일 수는 있어도 내 마음은 결코 속일 수 없음을" 알려주며, 자기 자신에게 부끄러운 존재가 되지 않도록 가르친다. 또한 "매일 밤 스스로를 살피며 하루를 차분히 돌아보라"고 한다. 자신의 허물을 감추기 보다는 작은 허물이라도 고치려는 습관을 가지라는 것이다. 또한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면 마음은 점점 넒어진다"고 한다. 타인을 비판하기 전에 남을 헤아리는 마음이 먼저라는 거다. 또한 "이익보다 옳은 길을 따라야 사람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이익과 옳음 앞에 타협 아닌 옳음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러나 어려움 앞에서도 물러나지 않는 마음을 가질 때 참된 인간으로서의 존재 가치가 된다고 말한다.​이 책의 백미는 처음 기록에 대한 문장이다. "기억은 오래가지 않으니 깨달은 것을 곧장 적어라"는 문장과 "기록은 망각이라는 도둑을 이기는 유일한 길이다."는 가르침이 다시금 기록의 대가인 다산에게 들으니 새삼 달리 들린다. 천재조차도 "기록"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은 그만큼 기록의 산물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말 영감은 어느 순간 찾아오는데 그때 문득 내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하고 나중에 그걸 다시 생각해 보면 기억이 명확치 않고 깨달음이 흐지부지하게 된 적이 많다. 그렇다. 이젠 다산처럼 밥상을 마주하다가도 깨달음이 머리에 머물 때 일다 적어볼 것이다. 그 집요함이 바로 2,400여 권 분량에 달하는 문서를 써 내려갔던 것이다. 눈으로만 읽는 독서는 물 위에 글자를 쓰는 것과 같아 금방 사라지고 만다. 그러니 책을 읽다가 내 마음을 움직이는 대목이나 깨달음을 주는 문장을 만나면 반드시 붓을 들어 초서(抄書, 책의 핵심을 베껴 적음)하라. 초서란 단순히 글자를 옮기는 기계적인 노동이 아니라, 저자의 사유를 내 손끝으로 통과시켜 내면의 질서를 바로 잡는 수양이다. 이 과정에서 흩어진 정보의 파편들이 하나의 맥락으로 꿰어지는 기적이 일어난다. 기록은 망각이라는 도둑을 이기는 유일한 길이다. 네가 정성껏 베껴 적은 그 자료들이 쌓여 비로소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너만의 독창적인 체계가 탄생한다. p.25​_1장 기록(記錄) : 적지 않은 것은 살지 않은 것과 같다.다산은 자녀 교육의 대가이다. 먼 유배지에서 끊임없이 자녀를 교육하는 모습은 어느 부모도 해내지 못할진대 위대하게 그는 자녀를 온전한 인간으로 키워냈다. 특히 그는 유산으로 자녀에게 물려준 것은 ‘부지런함〔勤〕’과 ‘검소함〔儉〕’,의 이 두 글자뿐라고 말하며 이를 가슴에 새겨라고 말했다. 그 내용을 그대로 적어보면 "부지런함이란,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으며 아침에 할 일을 저녁으로 미루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아침에 비가 오면 오후의 일을 헤아리고, 밤에 잠자리에 들면 내일의 일을 미리 헤아리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검소함이란, 옷 한 벌을 마련할 때 훗날 해질 것을 생각해 아껴 쓰고, 음식 한 그릇을 대할 때 농부의 노고를 생각하여 낭비하지 않는 것이다. 재물은 한 번의 재앙으로 사라지고, 권세는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그러나 근검은 어떤 형편에서도 빼앗기지 않는다. 이 두 글자가 가문을 지키는 가장 단단한 기둥이다."​다산의 문장은 그냥 읽기만 하면 된다. 읽음 속에 배우며, 무릎을 치며, 삶을 고치게 된다. 70만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국내 최고의 고전 연구가인 조윤제 작가가 말하기를 "나는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다산을 읽고 또 읽었다."는 말이 정말 딱 들어 맞는 말이다. 본 책의 저자는 기존의 다산 기록이 주는 감성적 위로의 책을 벗어나 삶을 바로 세우는 날카로운 문장을 그대로 싣고 있다. 손에 들고 읽기에 가벼운 책이나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는 이 책을 휴가 기간에 읽으면 좋겠다.<br>-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47/20/cover150/k52213027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472054</link></image></item><item><author>storax</author><category>카테고리</category><title>내면혁명 - [내면혁명 - 인간은 내면의 목소리를 믿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444064</link><pubDate>Tue, 11 Aug 2026 08: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44406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22130400&TPaperId=1744406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93/57/coveroff/k82213040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22130400&TPaperId=1744406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내면혁명 - 인간은 내면의 목소리를 믿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a><br/>랄프 왈도 에머슨 지음 / 이너스북스 / 2026년 07월<br/></td></tr></table><br/>네 마음의 한 줄기 섬광에도 주목하라. 단지 그것이 너의 것이라는 이유만으로.Ralph Waldo Emerson랄프 왈도 에머슨은 "너 자신을 믿으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모든 심장은 그 쇠줄 위에서 떨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흔들린다. 그럴 때마다 더 많은 답을 찾으려 책을 뒤지고 사람을 찾아 간다. 하지만 에머슨은 언제나 답은 자기 안에 있다고 말한다. 외부의 구원자가 아닌 자기 내부에 있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왜냐면 그 어떤 영웅이나 철학자도 내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평화는 오직 자기 자신에게서만 찾을 수 있다는 가르침은 그냥 흘려들을 얘기가 아니다. ​우리는 부모의 우려, 선생님의 가르침, 사회적 상식이라는 부드러운 얼굴을 한 '조언'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늘 마주한다. 그런데 에머슨은 이것을 과감히 차단하고 기꺼이 철저한 고독 속으로 걸어 들어가 내면의 침묵과 정면으로 대면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국가의 합법적 명령 앞에서도 "이 더러운 법에 나는 결코 복종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적으며 양심의 이단아가 된 에머슨이 걸어간 그 길을 독자들도 걷기를 바란다.​내 안의 깊은 본성을 신뢰하고 직관을 따라 살라는 것은 한 자아가 걸어가야 할 사명과 같다. 에머슨이 말하는 자기 신뢰의 핵심은 "내 안에서 울리는 보편적 진리의 떨림을 신뢰하겠다"는 것으로서 결코 "내 멋대로 살겠다"가 아니다. 그건 바로 내 자신이 삶의 입법자가 되라는 것이다.​이 책의 목적은 저자가 다섯 가지라고 밝히는데 그래서 독자의 손에 망치 한 자루를 쥐여주면서 자신이 부술 내용을 인지하라고 한다. 무엇을 부수어야 할까? 첫째, 군중의 발소리를 이정표로 착각하는 습성. 둘째, 누군가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 방식으로 따라하는 게으름. 셋째, 칭찬 한 마디에 들뜨고 비난 한 마디에 무너지는 자아. 넷째, 무해하고 둥글둥글한 사람이 되어 모두에게 사랑받으려는 위선. 다섯째, 세상의 허락이 떨어지기 전에는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는 노예근성. 이 다섯 가지를 과감히 부수어 자기만의 길을 가라고 알려 준다.​에머슨은 자기 신뢰의 첫 머리에 첫 머리에 이렇게 적었다. "당신의 마음 속에서 진실이라고 느낀 것을 말하라. 그것이 곧 모두에게 진실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반대로 살아간다. 모두가 진실이라고 말하는 것을 받아 적은 뒤, 그것을 자신의 마음으로 옮겨 적는다. 순서가 거꾸로 뒤집힌 삶. 이것은 바로 '순응'이다. 순응은 항상 남들과 맞추라고 한다. 다른 생각을 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 받는다. 그래서 "유난 떨지 마". "남들 하는 만큼만 하면 돼", "다를 그렇게 살잖아" 라는 이 세 마디는 한국 사회가 한 사람의 영혼에 가하는 가장 부드러운 마취제다. 이것은 군중 속에서 자신을 잃으라는 것이다.​그러나 에머슨은 순응하는 동물이 되지 말고 거창한 반항을 하라고 한다. 대중의 견해에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떡이지 않는 일. 타인의 성취를 잣대로 삼아 자신의 위치를 의심하지 않는 일. 친구의 소식 앞에서 자동적으로 솟아오르던 비교의 감정을 한 박자 늦추는 일. 군중이 찬양하는 유행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것이 내게도 유효한지 묻는 일 등등을 해보라고 한다. 나만의 나침판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럴 때 그는 어디에 있든 길을 잃지 않는 것이다.​인간이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세계에 살고 있다. 사교계는 물론 모임에 나갈 때마다 자신이 사회적 기준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끊임없이 점검하면서 자기를 무장한다. 그런데 에머슨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은 영혼을 죽이는 일이다"고 단언하나. 영혼이라는 것은 결국 한 사람이 자기 자신과 맺는 가장 내밀한 관계다. 그 관계가 외부의 시선에 의해 끊임없이 침범당하고 검열당하면, 영혼은 자신의 본래 형태를 잃는다.​흥미로운 사실을 책에서 언급하는데 그건 사람들이 실제적으로는 타인을 거의 보고 있지 않다는 거다. 한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실수를 했을 떄 타인이 그것을 기억하는 비율은 우리가 짐작하는 것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는 시선의 무게를 자기 상상 속에서 만들어 낸다. 대부분 자신이 만들어 낸 환영이다. 세네카도 말했는데 "우리는 실제보다 상상 속에서 더 많이 고통 받는다"고 말했다. 즉 타인의 시선이 주는 고통의 9할은 한 사람 스스로가 머릿속에 증폭시킨 것이다. 외부에서는 한 점의 잉크였던 것이, 내면에 들어와 거대한 얼룩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 얼룩을 닦아 내려고 평생을 허비한다.​따라서 에머슨은 "위인이란 군중 속에서도 완벽하게 다정한 태도로 고독의 독립성을 지키는 자다."고 말했다.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그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내면의 방 하나를 만들어 굳건히 지켜나가는 것이야 말로 자기 신뢰의 시작이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남에게 채점받게 둬선 안 된다. 왜 우리의 인생을 남에게 채점받게 하는가? 왜 우리는 정답을 외부에서 구하는가? 자연을 보면 떡갈나무는 소나무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강은 바다가 되려 하지 않으면서도 결국 바다에 닿는다. 별은 자신의 자리에서 빛나며, 다른 별이 더 밝다고 자신의 빛을 끄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자신이 되기를 거부하고, 다른 무엇이 되기 위해 자신을 학대한다. 자연 어디에도 정답은 없다. 오직 각자의 본성에 따른 펼쳐짐이 있을 뿐이다.​그래서 또 말하길 "스스로를 주장하라. 결코 모방하지 마라."고 한다. 모방이라도 나만의 것으로 독창적으로 생각하며 그것을 변혁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내 안의 직관을 유일한 법으로 삼고 살면 된다고 한다. 나의 생각은 사실 놀라운 발견이다. 그런데 에머슨이 말하길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각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내버린다. 그리고 며칠 뒤 어떤 낯선 천재의 작품 속에서, 우리가 버렸던 바로 그 생각이 위엄 있게 되돌아오는 것을 보고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한다. ​왜 인간의 자신의 본성을 의심하는가? 왜 가장 먼저 떠오른 직관을 가장 먼저 지우는가?내게 준 내 안의 율법이야 말로 인간이 따라야 할 확실한 율법임을 에머슨은 알려준다.​그래서일까? 1838년 에머슨이 하버드 신학부에서 졸업 연설을 했을 때를 보면 그는 기독교의 역사적 전통과 기적을 맹신하는 당시의 군중을 향해, 개개인의 영혼이 직접 신성과 대면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때 군중은 분노했고 모교는 삼십 년 가까이 그를 강단에서 추방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자신의 나침반을 대중에게 내어주지 않았다. 자기 자신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너에게 평화를 줄 수 없다며 타협이라는 단어를 그는 외면한다. 물론 모든 타협이 독은 아니다. 우리는 타협할 가치가 있는 것을 조율해 나갈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나 타협이라는 명목하에 자신의 핵심 가치와 충돌하는 그 지점을 슬그머니 내려놓는다면 그는 잘못된 타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그 타협으로 얻은 평온은 좋을지 모르지만 그것으로 인해 내 몸과 마음이 느끼는 스트레스를 기억해야 한다. 인간은 원치 않는 타협을 하면 몸과 마음이 기억하여 괴로움의 흔적을 남긴다. 따라서 나만의 제국, 스스로가 입법자가 되는 삶을 추구하라고 한다.​이 책은 바로 자기 자신을 충분하게 신뢰하고 따르라는 것을 설명한 책이다. 외부의 인정과 권위에 의존하는 삶에서 벗어나, 자신의 직관과 양심을 삶의 기준으로 삼을 때 비로소 내 안에서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서둘러 읽기보다 한 쳅터나 두 쳅터씩 오래 곁에 두고 읽었으면 좋겠다. 문장 하나를 읽고 잠시 멈출 때, 잊고 있던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기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무엇이 성공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선택이 옳은지 끊임없이 듣고 배우며 살아가고 있는데, 정작 자기 삶의 기준을 세우는 법은 배우지 못한 채, 타인의 시선과 사회의 기대 속에서 자신을 맞춰 살아간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자기 목소리를 잃고, 흔들리는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 책은 당당히 자기 안에서 튀어 나오는 생각을 신뢰하고 받아들이며, 자기만의 길을 걸으라고 알려준다. ​다시금 말한다. "너 자신을 믿으라 모든 심장은 그 쇠줄 위에서 떨린다."<br>-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93/57/cover150/k82213040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935728</link></image></item><item><author>storax</author><category>카테고리</category><title>스스로를 경계하지 않는 자는 결코 남을 벨 수 없다 - [스스로를 경계하지 않는 자는 결코 남을 벨 수 없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444062</link><pubDate>Tue, 11 Aug 2026 08: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44406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42130878&TPaperId=1744406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05/69/coveroff/k44213087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42130878&TPaperId=1744406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스스로를 경계하지 않는 자는 결코 남을 벨 수 없다</a><br/>이순신 지음 / 결 / 2026년 06월<br/></td></tr></table><br/>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고 영웅으로 여기는 이순신에 관한 책이다. 읽어 가면서 역시나 이순신은 대한민국 반만년 역사 속에서 우리가 닮고 배워가야 할 위대한 인물임을 수긍하게 된다. 책 표지에 보면 "세상의 모든 해답은 이미 백 년도 전에 쓰여 있다"는 문장이 나온다. 그 전에는 이순신에 대해 막연하게 알았다면 이 책을 읽고는 저자의 평가가 확실히 근거 있는 말을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이순신의 기개(氣槪)를 보았다. 아래의 문장이 이토록 가슴 한 켠을 묵직하게 하며 먹먹하게 하는지...맑음. 옥문을 나왔다.1597년 4월 1일, 이순신은 의금부의 옥문을 나왔다. 한 달이 넘는 고문으로 다리는 제대로 펴지지 않았고, 등에는 곤장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살이 헤졌다는 말이다. 한때 그는 정이품 삼도수군통제사였었다. 그 직함을 지닌 채, 죄인의 신분으로 그는 백의를 입고 남쪽으로 걸어가야 했다. 하늘은 무심할 만큼 맑았는데 그날의 일기는 단 한 줄로 시작한다. 바로 "맑음. 옥문을 나왔다." 그뿐이다. 억울함도, 한탄도, 분노도 원망도, 자기 연민도 없다. 한 나라의 바다를 지켰던 장수가, 자신을 파멸시킨 임금에 대해 단 한 줄의 변명이나 비난도 남기지 않다니 내 입장에서는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백의종군의 첫걸음을 내딛는 이 참담한 기록이, 칠 년간 이어진 『난중일기』에서 가정 처절한 전환점이라는 사실이다.​그는 옥문을 나서는 순간 한 가지를 분명히 했음을 본다. 그건 자신을 향한 동정을 거부하는 일이다. 그를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안쓰러운 시선을 자기 연민의 자원으로 쓰지 않았다. 즉 자신이 부당하게 당했다는 감각,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감각, 나만 억울해 하는 감각 등은 한 번 빠지면 좀처럼 헤어 나오기 어려운 감정이다. 그는 그 늪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또한 한 때의 영광(직함)을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을 가장 오래 붙잡아 두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과거의 영광이라고 한다.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는 것은 쉽게 포기가 된다. 그러나 한때 손에 쥐었던 것을 놓는 일은 그렇지 않다. ​그는 과거의 직함도, 한때의 성취도, 현재의 처지도 생각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저 옥문을 나서며 걸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옮기면서 비장한 다짐이나 거창한 결심도 없이 통제사가 아닌 죄인의 신분으로 다만 걸어 갔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이러하다. 자존심과 자존감은 다르다. 자존심은 외부의 평가에 반응하는 감정이다. 누가 나를 무시했다. 누가 내 직함을 깎아내렸다. 누가 나를 함부로 대했다. 이런 감정은 외부의 사건이 있을 때마다 흔들린다. 그러나 자존감은 다르다. 외부와 무관하게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감각이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외부의 작은 신호에도 쉽게 격해진다. 자존감이 단단한 사람은 외부가 흔들어도 쉽게 흔들이지 않는다. 옥문을 나선 이순신이 보여 준 것은 강한 자존심이 아니라 단단한 자존감이었다. 즉 자신이 통제사가 아니어도 자신임을 알고 있었다.​그래서 옥문을 나선 그날, 이순신은 무엇 하나 손에 쥔 것이 없었지만 자신을 정확히 보는 눈. 그 눈 하나로 그는 다시 일어섰고, 결국 바다를 되찾았다. 참으로 모든 것이 무너졌던 사람이다. 직위도, 명예도, 건강도, 가족도(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었고, 아들마저 잃었다), 그에게는 없었다. 철저한 몰락 속에서도 그는 그저 남은 배의 숫자를 세고, 남은 군사의 숫자를 세고, 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그가 통제사로 돌아 왔을 때는 남은 것은 배 열두 척과 흩어진 병사들과 굶주린 병사들만 있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그 자리에서 무너지거나, 누구를 탓하거나, 하늘을 원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시 종이를 펴고 숫자를 적기 시작했다. ​배 열두 척을 어떻게 운영을 할지, 어디에 배치를 할 수 있는지, 어떤 물길에서 싸워야 하는지를 가늠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래서 절망의 그 자리에게 그가 꺼낸 말은 한탄이 아니라 계산이었다."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이 문장이 후대에 길이 남는 까닭은 비장함 때문이 아니었다. 그 안에 있는 계산 때문이다. 그는 없는 것을 아수워하지 않고, 있는 것의 정확한 수치를 말했다. 열두 척. 더도 덜도 아닌 열두 척. 그 정확함이 모든 결정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실패하고 좌절을 겪을 때 한탄만 하고 원망 하고 안 좋은 상황만 보는 것은 자기 삶을 갉아 먹는 것이다. 이순신은 우리에게 무너진 자리가 막연한 위로로 채우길 원치 않는다. 무너진 자리에서 가장 먼저 해야 될 일은 바로 종이 한 장을 펴고, 지금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을 적어 보는 일임을 배운다. 무엇이 남아 있는가. 어떤 기술이 남아 있는가. 어떤 관계가 남아 있고, 어떤 시간이 남아 있는가. 어떤 몸이 남아 있는가를 살피면서 직시를 할 때 내일의 하루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이순신의 장계(狀啓)는 이것을 알려준다. 즉 감정을 처리하는 자리와 상황을 처리하는 자리를 분리하라는 것이다. 감정은 일기 안에서 처리하고, 상황은 장계 안에서 처리하는 것이다. 두 가지를 그는 썩지 않았다. 분노한 채로 장계를 쓰면 거기에는 사실이 사라지고, 사실만 쫓으며 일기를 쓰면 거기에는 사람이 사라진다. 그는 두 가지를 따로 두는 법을 알았다. 즉 밤에는 인간 이순신으로 울고, 낮에는 통제사 이순신으로 계산했다.​이 책은 우리에게 거창한 위로를 주려고 쓴 책이 아니다. 그저 그 한 가지, 자신을 정확히 보는 눈을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이 모든 시작이다.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을 영웅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자신을 늘 '신(臣, 임금을 섬기어 벼슬하는 사람)'이라 칭했고, 자신의 모자람을 일기에 적었으며, 잠 못 이루는 밤마다 어머니와 자식과 죽은 부하들을 떠올렸다. 그래서 저자 왈 "그는 강철 같은 사람이 아니라, 강철처럼 살기로 매일 결심한 사람이었다." 그 결심의 흔적이 『난중일기』에 남아 있고, 그 결심의 결과가 명량과 한산의 바다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정직한 가르침은 《강한 사람은 태어나지 않는다. 매일 자신을 베어 낸 자리에서 만들어진다》는 말이다.​이 책은 위인전으로서 쓰여진 책이 아니다. 이순신이라는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자기관리, 책임감, 리더십, 인생 경영, 준비의 힘을 배우게 하는 책이다. 삶이라는 파도가 세차게 우리를 혼돈케 하며 좌절을 불러 올 때에 자신만의 기준으로 무너지지 않을 시스템을 세우고 싶다면, 이순신이 남긴 가장 강력한 교훈을 이 책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참으로 한반도 유사 이래 최고의 경영자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우리의 인생을 다잡아 주리라 본다.<br>이 책의 한 문장그는 천재가 아니다. 적어도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의미에서는 아니다. 그는 감으로 싸우지 않았고, 영감으로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그의 무기는 숫자였다. 적의 함선 수, 조류의 방향, 바람의 세기, 아군의 식량과 화약의 잔량. 이런 것들을 끊임없이 세고, 기록하고, 다시 점검했다. 『임진장초』에 남은 장계들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그것은 영웅의 호언장담이 아니라, 철저한 보고서다. 숫자가 맞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았고, 조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싸우지 않았다. 임금이 채근해도, 그는 자신이 계산해낸 승률 바깥으로는 한 걸음도 나가지 않았다. p.05​그가 가장 두려워 한 적은 왜군이 아니었다. 자신 안에서 자라나는 '괜찮을 것이다'라는 안일함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책의 출발점을 만난다. 스스로를 경계하지 않는 자는 결코 남을 벨 수 없다. 이 문장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그것은 이 책 내내 깔려있는 일종의 원리에 가깝다. 외부의 적을 베기 위해서는 먼저 내부의 적을 베어야 한다. 내부의 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알량한 자존심이고, 과거의 직급이며, 남이 알아 주지 않는다는 억울함이고, 누군가 내 인생을 구해줄 것이라는 거짓된 안전망이다. 또 이만하면 됐다는 만족이고, 결국엔 '나는 잘하고 있다'는 오만이다. 이 오만이 베어지지 않은 칼은, 아무리 날이 서 있어도 자기 자신을 향해 휘어진다. p.06​이쯤에서 당신은 묻게 될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이순신을 다시 읽는 일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가. 우리는 전쟁 중이 아니고, 칼을 쥘 일도 없으며, 모함당해 옥에 갇힐 일도 없지 않은가. 그러나 가만히 들 여다보면, 현대인의 삶은 그와 닮은 구석이 많다. 매일 아침 우리는 작은 옥문을 나선다. 우리는 타인의 평가 에 갇히고, 얄팍한 자존심에 베이며, 끊임없이 밀려오는 세상의 소음에 떠밀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손쉬운 변명과 막연한 위로 속에서 우리는 점차 자신을 직시하는 눈을 잃어간다. p.07​배를 띄우는 일은 늘 계산에서 시작된다.신에게는 아직 열두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今臣戰船尙有十二 p.031​이순신이 거부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는 자기 자신과 어떤 흥정도 하지 않았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도 일지를 썼고, 비가 와도 활을 쏘았으며, 몸이 아파도 회의를 열었다. 『난중일기』의 무서운 점은 영웅적인 자 면이 많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영웅적인 장면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무섭다. 그는 매일 거의 비슷한 일을 반복 했고, 그 반복을 빠뜨리지 않고 기록했다. 그 기록의 단 조로움이야말로 그가 자기와 맺은 약속을 지켜 왔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p.121​이순신이 안위에게 던진 말은 그래서 무겁다."도망간 다고 살 것 같으냐." 이 물음은 그 시대의 부하 장수에 게만 던져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회피의 끝자락에 선 모든 사람에게 던져진 물음이다. 비켜서면 정말 무사할 것 같은가. 미루면 정말 사라질 것 같은가. 모른 척하면 정말 없던 일이 될 것 같은가. 대개는 그렇지 않다. 비켜 선 자리에서 더 큰 파도가 다시 밀려온다. 그때는 피할 시간조차 남아 있지 않다. p.139<br>-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05/69/cover150/k44213087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056978</link></image></item><item><author>storax</author><category>카테고리</category><title>삶은 사유가 아니라 돌파다 - [삶은 사유가 아니라 돌파다 -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가 죽음 직전 깨달은 인생의 법칙]</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391816</link><pubDate>Tue, 14 Jul 2026 20: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39181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72130171&TPaperId=1739181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39/6/coveroff/k57213017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72130171&TPaperId=1739181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삶은 사유가 아니라 돌파다 -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가 죽음 직전 깨달은 인생의 법칙</a><br/>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경희 옮김 / 페이지2(page2) / 2026년 06월<br/></td></tr></table><br/>왜 살아야 하냐고 묻는 당신에게이 책의 백미는 이 글의 서문에 모두 실렸다. 톨스토이가 생각하는 모든 인생의 의문과 답이 이 책을 여는 글에 다 실렸다는 말이다. 나머지는 거기에 따른 설명과 이해를 풀어낸 것에 불과하다.​처음 여는 글을 읽었을 때 독자가 평소에 느꼈던 감정과 소용돌이치는 괴로움을 톨스토이 또한 느끼고 '치명적인 속병'처럼 앓았음에 반가움과 더불어 흥분이 되었다. 즉 "삶은 무엇이고, 어디로 향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밤낮 그를 괴롭혔던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이런 의문들은 마음만 먹으면 해결될 수 있는 것이며, 별거 아닌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지금은 시간이 없지만 내가 원한다면 쉽게 답을 낼 수 있는 문제라 생각하며 지냈다. 그러나 그런 의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자주 떠올랐고, 끈질기게 답을 요구했다. 마치 한곳에 계속 떨어지는 잉크 방울처럼 어느새 마음속에 크고 시커먼 얼룩을 남길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는 삶이 멈췄다. 숨을 쉬고 음식을 먹고 잠을 자지만 이런 것은 진정한 삶이 아니기에 삶은 그냥 멈춘 상태로 죽음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죽음이 두려웠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기 위해 방도를 찾아내며 또 다시 절박한 마음으로 삶이 무엇인지 탐닉했다. ​그가 겪은 과정이 독자에게도 있었기에 흡수되듯 읽어갔다. 폴 고갱의 그림 가운데 긴 제목의 그림이 있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가 그것이다. 즉 이러한 물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질문하며 가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이 질문을 갈구하듯 절박한 심정으로 찾는 자가 있으니 바로 톨스토이였다.<br>그는 이런 삶의 의문들을 위대한 현인들과 인간의 지혜에서 찾았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에게서 허상적이며, 공허한 외침을 듣고서는 더 절망적인 상황으로 나아갔다. 지혜의 대가들이 내린 결론은 삶은 덧없고 허망하며,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자는 행복하고, 죽음이 삶보다 낫다. 그러니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궤변을 들었다. 처음엔 톨스토이 또한 솔로몬과 쇼펜하우와 같은 자들이 삶의 의문을 아주 정확하게 제기했다고 확신하며, 일반 대중들은 이 의문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단정까지 하며 비하했다.<br>그러나 그는 어느 날부터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어떤 별난 본능적인 애착에 끌리면서 오히려 노동자 계층의 사람들이 더 평온하게 기쁜 마음으로 고통을 받아들이며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것을 보게 된다. 즉 탈출구는 뜻밖의 곳에 있었는데 그것은 책이 아니라 삶에서 찾았다. 평생 힘들게 일하면서도 삶에 만족하고, 가진 것 없이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을 깊이 들여다볼수록 그는 살아가는 것이 편안해졌다. 머리로 쌓은 모든 지혜가 답하지 못한 질문에, 땀 흘려 일하는 이들의 삶이 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는 귀족의 옷을 벗고, 손수 부츠를 꿰어 신고 밭을 갈며, 몸으로 살아 내기 시작했다. 아래에 그 한 대목을 싣는다.나는 그런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책 속에서나 사람들이 전해 주는 이야기 속에서 깊이 탐구할수록 그들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고, 살아가는 것이 편안해졌다. 이렇게 2년이 흐르자 내 안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오래 전부터 내 안에서 진행되고 있었던 변화였다. 부유한 지식인이었던 나와 같은 부류에 속한 사람들의 삶이 혐오스러워졌을 뿐 아니라, 모든 의미를 잃은 것이다. 우리의 모든 활동이나 논증, 학문, 예술이 그저 탐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안에서는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그보다는 땀 흘려 일해서 스스로 삶을 창조하는 사람들의 행위가 바로 참된 삶이었다. 나는 이러한 삶에 부여된 의미야말로 진리라는 사실을 깨닫고 받아들였다. p.11<br>이어서 그는 인간이 자신만을 위해서 살면 불행해지고, 타인을 위해 살면 행복해지는 단순한 원리를 깨닫는다. 즉 이성적 의식은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말한다. "모든 사람이 너를 위해 살고, 자신보다 너를 더 사랑하기를 바라는가? 그 소원이 성취될 수 있는 조건은 단 하나다. 모든 존재가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살고, 다른 사람을 더 사랑하는 것이다. 그럴 때만이 너와 모든 존재가 모든이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행복을 얻을 것이다. 모든 존재가 자신보다 다른 이를 더 사랑할 때만 네가 행복할 수 있다면, 살아 있는 존재로서 너는 자신보다 다른 존재들을 더 사랑해야 한다." p.102​소크라테스나 쇼펜하우어, 그 외의 많은 현인들은 모든 존재의 인생은 불행하고 무의미한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도록 이끌었고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한 단계 더 깊이 나아가자 그는 인생이 인간 속에 존재하는 이성의 법칙을 실현하는 것임을 이해하게 되었고, 각 개인이 모든 사람에게 봉사하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봉사받는다는 이 법칙만 이루어진다면 모든 인간이 무한하게 커지는 최대의 행복을 얻을 것임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제목 그대로 『삶은 사유가 아니라 돌파다』는 깨달음을 얻은 그는 생각의 존재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을 넘어서 땀 흘려 일하며 스스로 삶을 창조하는 일에 적극 참여케 된다. 즉  오직 걷고, 일하고, 사랑할 때 비로소 삶은 고요해진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면서 생각의 미로 속에서 탈출을 하게 되었다. 평생을 사유했으나 그 어떤 문장도 나를 구하지 못했다. 걷고, 일하고, 사랑할 때 비로소 삶이 고요해졌다.Leo Tolstoy마치 공자가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하루 종일 밥도 먹지 않고 밤새도록 잠도 자지 않고 생각만 해보니 아무 유익이 없었다. 배우는 것만 같지 못했다”는 말을 하듯이 인간은 사유의 동물이지만 사유 속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또한 배우는 일에만 몰두하고 한 발자국도 내 딛지 않으면 그 배움은 아무 소용이 없다. 오로지 단순히 걷고, 땀 흘려 일하고, 사랑하며 살 때 삶은 이상한리만치 안정을 되찾는 것이다. ​이 책은 톨스토이가 극심한 허무 속에서 써 내려간 『참회록』과, 그 사유가 더욱 깊어진 때 쓴 『인생론』에서 가려 뽑아 새롭게 엮어낸 책이다. 그가 고뇌했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실려있다. "나는 왜 사는가? 나는 왜 뭔가를 원하거나 행하는가?" 또한 "나의 삶에 죽음도 파괴하지 못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가?"하는 고민이 나에게도 문득 찾아온다면 톨스토이가 겪고 깨달았던 삶의 진정한 의미의 해답을 여기서 발견해 보면 좋겠다.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몰랐다. 삶이 두려워 도망치려고 하면서도, 여전히 삶에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었다.p.29여는 글을 읽고는 그 다음 부터는 책과 씨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단순하게 읽으면 톨스토이가 전하고자 하는 인생의 맥락을 못 읽고 책을 덮게 된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듯 "톨스토이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본다. 사소한 손짓부터 내면의 가장 깊은 곳까지" 보는 자이기에, 그가 마주대한 삶의 의문과 고민을 통해 영혼의 자유를 느껴봤으면 좋겠다. 그렇다. “왜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답을 찾지 못한 그의 마음은 끝내 자살 충동까지 느껴, 혹시나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봐 방도를 찾을 정도였다. 그에게 있던 부도, 명예도, 재능도 그를 구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진리는 책이나 현인들의 말에서가 아닌 뜻밖에도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찾게 되었다.  즉 삶이란 머리로 헤아려 풀어 내는 문제가 아니라, 온몸으로 부딪쳐 통과하는 과정인 것이다. ​영화 인턴中 한 대사가 매우 인상적이다.- 사랑하고 일하라, 일하고 사랑하라! 그게 삶의 전부이다. - Work and love, love and work. That's all life.​어떤 책제목에서도 봤는거 같은데 찾지 못했다. 그러나 그 내용은 기억하는데 바로 "먹고,일하고,사랑하라."이다. 꽃도, 짐승도, 살아 있는 모든 것은 행복하다. 오직 인간만이 삶의 이유를 잃고 헤메는데, 이유를 찾아 헤메기 보다 단순히 먹고 일하고 사랑할 때 인간은 행복감을 얻는다. 이게 바로 톨스토이가 만났던 참된 삶이었다. 이 책은 그저 삶이 따분하고, 삶이 무엇인가를 알 수 없고, 마음의 공허함이 있을 때 손에 들고 진지하게 읽으면 도움이 된다. 이 책의 한 문장5년 전부터 마음속에서 아주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 했다.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전혀 알 수 없는 회의의 순간들, 삶이 멈춰 버린 듯한 순간들이 찾아왔 고, 그럴 때면 당혹감을 느끼며 절망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그런 순간들은 이내 지나갔고, 나는 이전처럼 아무 일 없었다 는 듯 삶을 이어 갔다. 하지만 그런 혼란스러운 순간들은 늘 같은 모습으로 점점 더 자주 찾아왔다. 그럴 때는 또다시 삶 이 멈춘 듯 느껴졌고, "삶은 무엇이고, 어디로 향하는 것인 가?"라는 똑같은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새는 하늘을 날고 먹이를 모으고 둥지를 지으며 살아갈 운명이고, 그렇게 살아가는 새를 볼 때면 나는 기쁨을 느낀다. 염소와 토끼와 늑대는 먹이를 먹고 새끼를 낳아 기르며 살아갈 운명이고, 그렇게 살아가는 동물을 볼 때면 나는 그 동물의 삶이 행복하고 의미 있다는 확신이 든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할까? 인간도 동물과 마찬가지로 생존을 위해 살아가야 하지만, 자신만을 위해 살아간다면 파멸하고 만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는 점이 동물과 다르다. 나는 인간이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 살 때 행복하고, 또 그런 삶에 의미가 있다고 확신한다."_ 언젠가 행복할 사람은 영원히 행복할 수 없다 중에서 P. 79​"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천체까지의 거리를 밝혀 냈고, 그 무게를 규정하며 태양과 별의 성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개인적 행복에 대한 요구와 그 행복을 부정하는 현실 세계의 삶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이냐의 문제는 5,000년 전과 마찬가지로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P.101​"우리는 한 인간의 내면에서 참된 생명이 완성되어 가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오직 자기 내면에서 참된 생명이 완성되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 뿐이다. 사람이 죽지 않아야 할 때 죽는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날리가 없다. 사람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죽음이 꼭 필요할 때 비로소 죽는다. 이는 사람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필요할 때 비로소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P. 226<br>-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39/6/cover150/k57213017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390652</link></image></item><item><author>storax</author><category>카테고리</category><title>정주영 성공 명언 - [정주영 성공 명언 - 현대를 만든 정주영의 꺾이지 않는 불굴의 태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389759</link><pubDate>Mon, 13 Jul 2026 18: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38975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62130277&TPaperId=1738975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47/82/coveroff/k66213027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62130277&TPaperId=1738975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정주영 성공 명언 - 현대를 만든 정주영의 꺾이지 않는 불굴의 태도</a><br/>김옥림 지음 / 미래북(MiraeBook) / 2026년 06월<br/></td></tr></table><br/>부지런한 사람은 기회를 살리고 위기를 넘기자만,게으른 사람은 기회를 놓치고 불운을 키운다.이 책 프롤로그에 보면 이런 문장이 나온다. "정주영은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인물이다. 그를 배우고 싶다면 그래서 자신만의 성공을 이루고 싶다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라."​요즘 들어 위대한 위인들의 삶을 새롭게 보고 있다. 정주영이라는 분은 대한민국이 다 아는 굴직한 인물로서 대한민국 경제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다. 최근 한 자료에 의하면 아산 정주영 회장은 78년 대한민국 경제사에 가장 걸출한 인물로 기록된 입지전적인 기업인이자 위인이라고 소개하였다. 누가 뭐래도 위인의 인물 대열에 올라가도 충분하다. 특히 정주영의 25주기를 맞아 지난  2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아산 정주영 서거 25주기 추모 음악회가 열렸다. 그런데 6월 27일 CNN TV 시리즈 '쇼타임'을 통해 우리나라의 자랑스런 인물인 그가 세계에 소개되었다. ​그는 정말 ‘입지전적(立志傳的)’인 인물이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맨손으로 시작해 세계적인 기업을 일구었다. 학력이나 환경이 아닌 ‘생각과 태도’가 인생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해낸 놀라운 인물이다. 이 책을 읽는 목적은 내가 현재 하는 일에 동기부여를 받기 위함이다. 처음 부분에서도 언급했지만 위인들의 삶은 그저 이루어낸 것이 아니다. 그들은 특별하며, 남다른 부지런함이 있으며, 끈질긴 인내와 무한한 긍정이 숨쉬는 자들이다. 자주 읽는 성경에 보면 이런 문구가 나온다. ​   잠언 10:4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잠언 12:24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   정회장의 삶은 결코 위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인물로서 사람을 다스리는 인물이 될 수 밖에 없다. 이 땅의 부자는 모두 게으른 자가 없다. 게으름에서는 가난만 마주할 뿐이다. 그러므로 열등감에 사로잡혀 부자를 욕하는 어리석음을 피해야 한다. 기업을 일군다는 것은 결코 구멍 가게를 일구는 거 하고는 다른 마인드다. 그래서 정회장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대하며 읽는다.​첫 장부터 마음을 두드린다. 수긍가는 문장이 나온다. 그 다음 문장도 또 그 다음 문장도 모두 고개를 숙이며 배울 점이 많다. 이 책 전부는 과히 인생을 바꾸고 싶은 자들에게 매우 필요적절한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회장이 직접 남긴 말들과 함께 그 말이 어떤 삶의 맥락에서 나왔는지를 풀어낸 해설이 함께 담겨 있어 읽는 것도 지루하지 않고 가독성도 뛰어나다.​정회장의 명언은 이미 왠만하면 다 아는 바이다. 아산병원을 방문하면 '아산 기념 전시실'이 있는데 우리가 잘 아는 명언이 기록되어 있다. ‘시련은 있으나 실패는 없다’, ‘길이 없으면 만들어라’, 특별히 자주 했던 촌철살인의 '이봐, 해봤어?'는 우리가 가슴 깊이 명언으로 새겨 넣어야 할 글귀다.​무엇보다 그의 메시지는 단순한 격언이 아닌 실제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낸 실행의 기록의 산물이다. 독자들은 모두 이 책을 통해 성공을 이루는 사람들의 공통된 사고방식과 태도를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유익을 얻게 된다. <br>이 책에 대해 다시금 언급하자면 단지 읽기만 해도 삶의 자세가 바뀌는 책이다. 물론 시중에는 그러한 책이 즐비하지만 아산(峨山) 정주영이 뱉어낸 귀중한 말과 저자가 풀어낸 서술(敍述)은 남다른 열망과 삶의 에너지를 끓어 오르게 한다. 저자 또한 이 책을 쓰는 내내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몸과 마음 속에 넘쳐흐르는 것을 느꼈다고 하듯이 이 책 정회장의 성공 명언을 통해 독자 또한 인간이 확고한 신념과 불굴의 노력만 있으면 얼마나 강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 또한 사람이 해서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분명 자각하게 되었다.​인생을 대충살거나 게으름을 피우면서 남의 부를 욕하거나 세상은 불공평하다며 자신의 삶을 개선할 의지가 없는 자들이 있다면 이 책으로 달려와 겸손히 배웠으면 한다. 사람마다 어려운 고비를 당하며 좌절하며 멈출지 아니면 극복해 나갈지를 선택한다. 그런데 정회장은 어려운 고비마다 특유의 창의적인 발상과 근면 성실, 남다른 긍정적인 마인드로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것을 선택했다. 그가 가진 삶의 태도를 보면 왜 어떤 사람은 같은 조건에서도 해내고, 어떤 사람은 멈추는지에 대한 답을 얻게 되는데 어쩌면 그건 남다르기 보다는 마음 자세가 남달랐다.​많은 이들이 정회장을 초인적인 사람, 매우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로 말할 때 그는 늘 이렇게 말했다고 하니 귀를 기울여 보라. "나는 결코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오직 확고한 신념과 불굴의 노력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일 뿐입니다." p.22​"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해내는 법이다. 의심하면 의심하는 만큼밖에는 못하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할 수 없다." p.19​"모든 일의 성패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사고(思考)와 자세에 달렸다." p.18그렇다. 그는 마음에 힘이 있었다. 불굴의 의지도 있었다. 그리고 실행하는 부지런함이 있었다. 평생을 새벽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 것으로 유명한데 이것이 그가 대성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부지런히 노력하는 사람은 좋은 때도 놓치지 않고 잘 잡아 쓰고, 좋지 않을 때는 더욱더 부지런히 노력해 수습하며 비켜 가기 때문에 나쁜 운이 작용하지 못한다." p.136​"편안하고 쉽게 저절로 되는 일은 없다." p.138​"똑같은 조건에서 똑같은 일에 부딪쳐서도 어떤 이는 찌푸리고 어떤 이는 웃는다." p.143​책은 한 쳅터마다 짧게 이루어졌기에 그냥 아무 시간에 되는 대로 읽으면 된다. 그만큼 읽기 쉽게, 압축적으로 책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읽을 때는 내 인생이 달린 것이라고 생각하며 읽어야 한다. 그럴 때 이 책은 우리에게 정회장의 마인드를 심어줄 것이다.<br>-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47/82/cover150/k66213027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478277</link></image></item><item><author>storax</author><category>카테고리</category><title>맹자 - [맹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357195</link><pubDate>Fri, 26 Jun 2026 21: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35719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612630&TPaperId=1735719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24/41/coveroff/895861263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612630&TPaperId=1735719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맹자</a><br/>박찬근 지음 / 청년정신 / 2026년 06월<br/></td></tr></table><br/>어린시절 "공자 왈 맹자 왈"이라는 어른들의 말을 듣고 자랐다. 그런데 이 뜻이 나중에 와서 보니 "실천은 없이 헛된 이론만 지껄임"을 비유하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공자나 맹자가 주는 가르침은 인간이 경외할 수준이다. 물론 맹자는 세계 4대 성인 가운데 들지는 않지만 아성(亞聖)이라고 불리는 자이다. 즉 '성인(聖人)에 버금가는'의 현인이다.​맹자가 살았던 전국시대는 극도의 혼란기였다. 크고 작은 나라들이 서로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고, 힘이 곧 정의인 시대였다. 약소국의 백성들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목숨을 잃거나 굶주렸고, 권력자들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백성을 도구로 삼았다. 맹자는 바로 이 시대에 맞서 "정치는 백성을 위해야 한다"는 혁명적 주장을 펼쳤다. 우리가 잘아는 맹자의 어머니 교육열은 너무나 유명하다. 맹모삼천(孟母三遷)가 바로 그것이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노력과 뛰어난 머리를 이미 타고난 그는 현실을 살아가는 자들에게 상당히 귀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저자는 마흔의 자리에서 맹자를 다시 만나서 결국 이 책을 쓰기까지 왔는데 본 서평자 또한 맹자의 글을 곁가지로만 읽는 가운데 제대로 살펴보고자 이 책을 들게 되었다.​어느 시대 보다도 각자도생의 시대를 현대인들은 살고 있다. 더군다나 AI와 알고리즘이 인간을 대체하는 시대, 초연결과 극단의 파편화가 공존하는 기묘한 시대, 무한 경쟁 체제 속에서 개인은 그저 효율성과 생산성이라는 시장의 잣대로만 평가받으며, 살벌한 전장이 되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기보다 나 자신의 생존이 먼저인 이 야만의 시대에 기계가 결코 복제할 수 없는 맹자의 질문과 해답을 통해 우리는 과연 인생의 막막함을 풀어낼 수 있을까? 저자는 왜 우리는 다시 2,300년 전의 완고한 사상가 맹자孟子를 요청해야 하는가를 외치며 맹자의 철학을 새롭게 정립하여 우리들에게 들려준다. ​무엇보다 이 책은 단순한 번역에 그치는 대신 핵심 원문을 한자와 독음과 직역으로 정확히 보여주고, 그 안의 핵심 글자를 풀이하여 누구라도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저자는 성리학적 우주론으로 고전의 체계를 세운 관념의 대가 ‘주자朱子와 실학의 거두 ‘다산茶山 정약용’, 그리고 현대적 시선으로 이를 통합하는 저자 ‘단산’의 평설을 한자리에 모은 ‘3인 3색’의 비교 분석, 그리고 AI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까지 한데 모아서 맹자의 사상을 이해하도록 돕기에 상당히 다차원적인 지식을 얻게 된다.​맹자의 책은 한 사람의 일생을 받쳐주는 책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책을 한 장 한 장 천천히 펼치면 가슴과 머리를 깨우지 않을 수 없는 통찰력이 생긴다. 특히 이 책은 사람의 '본디 마음'을 일깨운다. 현실은 냉정하게도 서로를 경쟁 관계로 보기에 본디 마음을 다 잃어버리게 한다. 어릴 때 어머니는 꾀스럽게 살라고 여러번 말해주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마다 꾀를 내기보다 나 본연의 마음으로 사는 것이 더 옳아 보였고 좋아 보였다. 그래서 세상을 향해 많이 당해봐서 아픈 일도 많았다.​그러나 맹자는 우리에게 "사람은 본디 선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면서 우리 안에 네 가지 마음을 더 깨우라고 일깨운다. 네 가지 마음은 다 알듯이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이다. 즉 맹자는 사단(四端)이 없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라고 봤다. 無羞惡之心 非人也. 무수오지심 비인야.“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이것은 그의 성선설(性善說)에 기반한 것으로서 독자 또한 인간의 선함을 믿는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은 파렴치하고 간사하고 교활하고 매우 악하며 거짓의 존재임을 알게 된다. 따라서 맹자가 던진 거침없는 사자후의 본질이 단순히 “착하게 살라”는 도덕적 훈계가 아닌 것이다. 그것은 불의한 권력을 향해 “인간의 본성을 배반하는 정치는 반드시 망한다”고 경고한 가장 강력하고도 혁명적인 정치철학이자 인간 선언인 것이다.​우리가 과거의 위대한 성인의 책을 외면한다면 아무리 최첨단 AI 시대를 맞이할지라도 인간은 문명의 발전에 의해 오히려 도태되는 현상을 겪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사회전반에 걸쳐 읽혀져야 할 책이다. 특히 교육을 받는 모든 학생들은 맹자의 가르침을 통해 기본 인간으로서의 바탕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또한 정치인들에게 필요한 책이다. 작금의 정치는 나라를 위한 대국의 마음을 잃고 정당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을 위해 정치를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교육에 대한 부재이다. 지식을 단지 머리에 넣고 정답을 적는 행위로 사람을 평가하니 나라 자체가 엉망이다. 지식의 근본은 사람됨을 지향해야 한다. 책에서 맹자는 다섯 가지 교육법을 말한다. 즉 "군자가 가르치는 방법에는 다섯가지가 있으니 때맞춰 내리는 비처럼 감화시키는 가르침, 덕을 이루게 하는 가르침, 재능을 통달하게 하는 가르침, 묻는 마레 답하는 가르침, 사숙하여 본받게 하는 가르침이 있다"고 말한다. 이외에도 맹자는 인仁과 예禮의 가르침을 중요하게 여기며 가르친다. ​한 대목을 보자!  P. 206에 나오는 내용이다.맹자는 군자가 마음을 보존하는 두 가지 길을 분명히 했다.​君子以仁存心 以禮存心. 군자이인존심 이례존심.“군자는 인仁으로 마음을 보존하고 예禮로 마음을 보존한다.”​인仁으로 마음을 보존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매일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일이다. 측은한 마음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외면하지 않는다. 사람의 아픔을 자기 아픔으로 받아들인다. 가까운 사람부터 정성껏 살피고 그 정성을 점점 넓혀 간다. 이런 일들이 매일 쌓이면 인仁이 자기 안에 자리 잡는다. 자리 잡힌 인이 자기 마음을 보존하는 첫 번째 기둥이 된다. ​예禮로 마음을 보존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매일 사람을 공경하는 자세를 잃지 않는 것이다.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자기를 낮추고 다른 사람을 높인다. 자기 자리만 챙기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자리를 헤아린다. 이것만 보아도 맹자의 가르침은 인간이 무엇을 향해 지식을 축적하고 경력을 쌓아가야 하는 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그저 부와 성공을 이뤄 여행이나 가고, 맛집 찾아 다니면서 사람 깔보는 행위가 아닌 부를 이룬만큼 사회적 이익에 얼마나 부와 지식을 나누어주는 자가 될지를 생각하도록 만드는 가르침을 이 사회는 맹자에게 배워야 할 것이다. 35장으로 되어 있는 맹자의 가르침을 통해 '다시 사람이 되고, 자기를 다시 만나면서' 내 안에 있는 선한 본성을 일깨운다면 이 책은 가장 큰 선물을 우리들에게 선사하는 보석으로 남아있게 될 것이다. 고전을 읽는 최고 수준의 희열과 사유의 확장이 이 책 안에 있다. 참 좋다!!<br>-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24/41/cover150/895861263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244191</link></image></item><item><author>storax</author><category>카테고리</category><title>불안한 날에 니체를 읽는다 - [불안한 날에 니체를 읽는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357010</link><pubDate>Fri, 26 Jun 2026 20: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88130193/1735701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72139668&TPaperId=1735701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69/92/coveroff/k37213966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72139668&TPaperId=1735701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불안한 날에 니체를 읽는다</a><br/>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상현 엮음 / 필름(Feelm) / 2026년 05월<br/></td></tr></table><br/>이 책은 제목 그대로 불안함과 초조함이 있는 분들에게 매우 유용한 책이다. 저자가 말했듯 서점에 널린 따뜻한 힐링 에세이들은 알량한 위로 같고, 썩어 가는 상처 위에 바르는 값싼 연고에 불과하다. 우리에게는 '지금 그대로 괜찮으니 힘내'라는 알량한 위로 보다, 위선으로 똘똘 뭉친 껍데기를 산산조각 내줄 니체와 같은 따끔한 혼냄이 필요하다. 니체를 일컬어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하듯 니체는 돌 속에 갇혀있는 천사를 해방시키기 위해 불필요한 돌을 깎아내는 미켈란젤로와 같다. 그는 가벼운 위로로 우리를 감싸지 않는다. 대신 망치를 쥐여 주며 우리의 가장 부끄러운 밑바닥을 가차 없이 까발린다. 그가 휘두르는 철학의 망치는 세상의 부조리를 향하기 전에, 가장 먼저 자신의 비겁함과 자기합리화를 산산조각 내었다. 그는 서양 정신사를 지배해 온 낡은 도덕과 우상들을 과감히 때려 부수며 "네가 옳다고 믿고 있던 그 모든 정답은 틀렸다"라고 말해주는데 망설임 없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가짜 위로와 결별하고 진짜 삶을 직시할 용기를 얻게 되었다.​따라서 이 책은 편안한 소파에 누워 읽고 흘려보내는 뻔한 명언집이 아님을 읽으며 알게된다. 물론 성공한 사업 가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던지는 우아한 조언 또한 더더욱 아니다. 그래서 이 책은 기존의 자신을 철저히 부순 그 폐허 위에서 나만의 단단한 땅을 딛고 일어서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운명을 그 자체로 뜨겁게 긍정하고 사랑하며 당당히 마주하도록 돕는다.​가장 가혹하게 나를 부순 자만이, 마침내 나를 구원할 수 있다는 말이 참 좋다. 그러니 지금 이 책을 들었다는 것은 이제 세상을 되는대로 가볍게 살려는 나약한 자세는 버릴 준비를 해야만 할 것이다. 세상은 만만치 않다. 그러니 나약하거나 움추려 있지 말고, 이왕이면 당당히 마주대하며 고통을 사랑하자. 이것이 이 책을 보면서 주는 핵심 사상이다.​쳅터 5를 보면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문장이 있다. 명문장이다. 마음에 새기며 그 아래 것을 읽기만 해도 삶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대해 핑계되는 일은 이제 없을 거다.인생의 군사학교에서 배운 교훈.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운명은 가혹하다. 그러나 나는 내게 주어진 그 어떤 불행과 고통 앞에서도 결코 나약하게 눈물 흘리지 않겠다. 고통은 피해야 할 저주가 아니라, 위대한 영혼을 단련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혹독한 용광로다. 가장 깊은 고통만이 인간의 정신을 그 밑바닥까지 뒤흔들어 놓으며, 그 진동 속에서 인간은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스스로의 맹렬한 힘을 발견하게 된다. ​고통 없이 주어지는 평온을 경멸하라. 상처받지 않으려 움츠러드는 자는 서서히 죽어갈 뿐이다. 폭풍우가 몰아칠 때 기꺼이 그 비바람 속으로 걸어 들어가라. 그 폭풍이 너를 완전히 파괴하지 못한다면, 너는 마침내 그 어떤 비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거대한 나무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p.39-40 _니체의 말인생의 폭풍 앞에 우리는 그것을 '불운'이라고 여기며 살아간다. 시련은 어떻게든 피해야 할 비극이고, 상처는 서둘러 가려야 할 부끄러운 흉터라고 믿으며 살았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다치면 황급히 '힐링'과 '위로'라는 진통제를 찾아 삼키며 고통의 감각을 마비시키는데 급급한 우리였고 나였다. 그러나 니체는 고통을 저주라고 생각지 않고 오히려 영혼을 가장 깊고 단단하게 제련하는 도구로 보았다. 뼈아픈 실패를 했을 때, 문제를 마주했을 때 그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없어 어떻게 하든 핑계를 찾아서 여기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그렇게 하면 점점 작은 시련 앞에서도 쉽게 부서지는 나약한 인간이 된다. 고통을 회피하는 자는 영원히 온실 속의 연약한 화초가 되어버린다고 저자가 말하듯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안전한 곳에 숨어버리는 일을 그만두고 당당히 두 팔 벌려 응시해 보자. 그러면 나를 죽이지 못하는 그 시련이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니체의 글은 그 하나하나에 피로 써진 글임을 직감적으로 알게 된다. 그는 한 책에서 "일체의 글 가운데서 나는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쓰려면 피로 써라"고 말했다. 이 말은 니체가 직접 부딪혀서 얻은 깨달음과 글이라는 것이다. ​장담하건데 자신의 인생에 늘 불만이 차있고, 세상을 미워하며 한탄하는 자들과 불안함 속에 하루하루를 버티기 힘들어하며 삶을 놓고 싶은 자들,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 갇혀 속이 텅 비어 가는 자들, 인간적인 얇은 위로를 찾고, 문제 앞에 당당히 마주하지 못하고 회피하며 도망 가고자 하는 자들, 무너진 나 자신을 다시 세워서 단단한 마음을 갖고자 하는 자들, 나를 병들게 하는 것과 결별을 원하는 자들, 타인의 속도에 휘둘리지 않는 나만의 리듬을 갖고자 하는 자들, 운명이라는 비겁함에 숨어 문제를 합리화 시키고 싶은 자들, 오늘 내 곁의 삶을 장악하며 살아가기를 원하는 자들은 이 책 한 권이면 충분히 모든 문제에서 해결함을 얻게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최근 상대방의 오해와 모함으로 많은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 이 책은 그걸 바라보는 시선을 달리하게 만들어 주었다. 니체는 역시 니체였다. 그는 자신의 감옥을 부숴버릴 줄 아는 자였다. 기존의 전통이나 개념에 함몰되지 않고 당당히 마주하며 싸우는 자였다. 그리고 어떤 것에는 싸우기 보다는 뒤로 물러날 줄 아는 방법도 확실히 가르쳐 준다. 그러므로 망설이지 말고 읽기만 해보라. 차례대로 읽을 필요가 없고 원하는 대목에 꽂히는 문장을 읽어라. 그러면 그 글이 내 내면을 건드려 줄 것이다.<br>-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특히 9장 관계의 해독 부분에서 "해명 중독"에서 벗어나는 글을 읽고는 삶의 길을 찾게 되었다. 즉 "타인의 오해를 해명하느라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는 글을 통해 위안과 삶의 해법을 만났다. 그 문장을 끝으로 실어본다.위대한 자는 결코 모든 사람에게 이해 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평범한 군중들로부터 철저히 오해받고 고립되기를 선택한다.사람들은 네가 조금만 다르게 행동해도 너를 오해하고 멋대로 재단하려 들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여 그 하찮은 오해들에 일일이 해명하려 드는가? 너의 진실을 설명하기 위해 무릎을 굽히고 그들의 귓가에 소리를 질러야만 한다면,그 진실은 이미 고귀함을 잃은 것이다. ​너를 오해하는 자들은 사실 너를 "오해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들은 네가 실패하고 추락해야만안도감을 느끼기 때문이다.짖어 대는 개를 향해 똑같이 짖어 대는 것은 짐승이나 하는 짓이다. 너를 오해하는 시장의 파리 떼를 피해 너의 길을 걸어라. 해명하려 하지 마라. 변명하려 하지 마라. 오직 너의 침묵과 압도적인 성과만이 저들의 혓바닥을 잘라 낼 것이다._니체의 말 p.215-216<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69/92/cover150/k37213966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3699252</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