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터데이 - 조영남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이야기
조영남 지음 / 문학세계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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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고백록이란 말을 들어 보았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톨스토이의 참회록, 루소의 고백록이 그것이다. 특히 이 세 권 중에 루소의 고백록은 명사 문광훈 교수에 의하면 "놀랍도록 솔직하고, 놀랍도록 회고적"이라고 말한다. 낯뜨거운 내용도 그냥 노출시켜서 가히 놀라운 자서전이라고 하는데 목표만 세웠지 아직 책 안으로 들어가 보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세계 5대 자서전이란 말을 보게 되어서 무엇이 더 포함되었나 하고 봤다. 여기에 톨스토이는 없고 괴테의 <시와 진실>, 한스 안데르센의 <내 생애의 이야기>, 표트르 크로포트킨의 <한 혁명가의 회상>이 추가 된다. 특히 덴마크 작가 게오르그 브란데스에 의하면 "크로포트킨의 자서전은.... 내가 본 자서전 중에서 최고다."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궁금한 인물이다.

 

그런데 마침 한국에 우리 시대의 광대이며 기인이며 트러블 메이커라고 불리는 특별?한 존재가 자전적 회고록을 썼다고 하기에 굉장히 관심이 갔다. 일단 조영남이란 가수는 다른 가수와 다른 포스가 있다. 또한 한 인간으로서도 기이하게 행동하는 모습에 그 한 사람의 삶이 궁금했다. 그런 찰나에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렇게도 풀어주니 너무 고맙다고 해야할까? 그의 인생이 암튼 궁금했는데 만능 엔터테이너의 기원과도 같은, 괴짜와 같은, 그의 버라이어티한 삶을 이렇게도 자세히 스스로 밝혀주니 인간이란 존재를 해부해보는 쾌감까지 느끼게 된다.

 

전 아내였던 영화배우 윤여정이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함으로 조영남이란 존재가 은연 중에 부각되는 것을 보며, 조영남은 물건 중에 물건이라고 생각되기도 했다. 재미 있는 일화를 보았었는데 전 아내가 여우조연상을 타자 조영남은 "가수 이장희가 해보라고 해서 꽃다발을 무명으로 세 번 보냈다가 배달 기사가 그쪽에서 한 번만 더 오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했다더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울러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후 조영남은 "바람 피우는 남자들에 대한 최고의 복수"라 말을 함으로 다시 한 번 이 사회에 망언 논란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어쩌면 윤여정은 매우 탁월한 선택을 하며 이혼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존재는 함께 사는 것이 매우 힘들기에 차라리 버리는 카드가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이 말은 서로가 헤어짐으로 각자의 삶이 특별하게 만들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

 

이 책은 사뭇 그래도 진지하게 자신을 보여준다. 철없어 보이는 부분도 있지만 그런 부분도 아낌없이 노출하여 자신의 속사정을 밝혀 준다.

 

나는 이 책에 실린 원고 한 편 한 편이 소중하고, 진심을 다해 써야 한다는 걸 안다. 나이 때문에 이 글이 내 자전적 얘기의 마지막 편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p16

 

이 책을 위해 조영남은 장장 10개월이라는 시간을 투자했다. 20213월부터 12월까지 43회차에 걸쳐 <중앙SUNDAY>에 연재를 했는데 연재되는 동안 수많은 독자들이 솔직한 고백에 열광적인 반응과 격려 찬사를 보이는가 하면 거침 없는 이야기에 독자들은 댓글을 통해 질타와 더불어 온갖 야유를 하기도 했다. 책을 소개하는 글에 보듯이 "이 책에 실린 텍스트는 한 인간의 삶이 이뤄낼 수 있는 최대치의 성취와 시련, 극복과 좌절 등을 두루 다루고 있고, 거기에 보기 드문 인사이트와 성찰이 따라붙고 있으며, 무엇보다 이토록 버라이어티한 모티프와 에피소드를 가진 삶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책에서 다뤄지는 서사의 볼륨은 압도적이다."는 표현이 맞는거 같다.

 

이 책을 독자가 읽기 전에 아내가 먼저 읽었는데 읽은 부분을 얘기해 주는데 참으로 한 존재가 이렇게도 많은 만남과 에피소드가 있나할 정도로 이 책은 해학스럽고 실로 놀랍기도 하다.

 

조영남이란 존재가 대중에게 각인된 이유는 특유의 자유분방한 삶의 스타일에서 야기된 몇몇 사회적 스캔들 및 해프닝 때문이지 않나 생각된다. 그때마다 좋든 싫든 극적인 모티프와 에피소드들이 한 인간이란 존재에 나이테처럼 축척되어 늘 화제와 풍문의 생산자로 대중에게 다가가니 그를 아니 기억할 수 없는 것이다.

 

독자인 나는 조영남에 대해 좋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적이 있다. 최유라와 함께하는 '라디오 시대'를 통해 그는 그만의 진솔함과 내면의 따뜻함을 보게 되었다. 라디오에는 현재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는데 그는 그때마다 숙연한 모습으로 라디오를 진행한다. 물론 그 숙연함이 어떤 것인지는 본인만 알고 그가 몰래 얼마나 어려운 사람을 도와줬는지 모르지만(책에는 그런 내용은 없다) 인생이란 것이 무엇인가하며 이때만큼은 인간적 모습이지 않았나 싶다.

 

개인적으로 조영남 노래 가운데 '모란동백'을 좋아한다. 조용남은 자신의 장례식 발인 때 이 곡을 조가(弔歌)로 불려졌으면 한다고 했다. 나는 그가 이 노래를 부를 때 그의 진심을 본다. 나 또한 못 치는 기타로 부를 때면 마음이 숙연해 진다. 실제 조영남은 1998년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가진 <데뷔 35주년 기념 빅 콘서트>에서 이 노래를 부르던 도중 목이 메이고 복받치는 울음을 참지 못하여 몇 차례 중단했다 다시 부르는 흔치 않는 장면을 보여줬다. 사실 조영남의 행적을 생각하면 그에게도 저런 면이 있나 싶을 정도로 생경스런 모습인데 아무래도 그 또한 인간이기에 삶이 주는 허무함과 아픔과 시련 속에 자신을 직면하는 시간이지 않나 싶다.

 

유별나며 참 많은 에피소드

 

그의 글에 보면 여러 사람과의 만남과 함께 매우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이 기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대통령과의 오찬은 가히 최고의 조영남다운 모습이었다. 박정희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과의 일화를 소개해 볼까한다.

 

조치원 훈련소에서 6개월 훈련을 마치고 육군본부로 올라왔을 때 어느 날 중대장으로부터 육본 참모장 김창범 소장 앞으로 가보라는 전갈을 받게 된다. 이 행사는 매우 중요한 행사였는데 밥풀데가 겨우 하나를 달은 때라 별 두 개나 다신 소장님께 질문을 하지 못한 가운데 박정희라는 대통령을 만나러 가게 되었다. 어떤 노래를 불러야 될지는 이미 김소장님과 얘기가 되었다.

 

그런데 말이다. 박대통령 앞에 서는 순간 조영남은 퍼뜩 머리를 굴리며 "‘나는 지금 임금님 앞에 섰다. 그렇다. 나는 왕의 남자가 되어야 한다.’ 왕의 남자가 되려면 어때야 하는가. 딱 한 가지다. 최고의 노래를 선물해야 하는 것이다. ‘황성옛터따위의 고리타분한 노래로는 최고의 노래 선물이 못 된다. 획기적인 노래를 불러야 한다." 하며 기타의 A 마이너 코드를 쫭! 내려 긁는 가운데 생각지도 않은 각설이타령을 불렀다. 조영남에 의하면 우리의 역사, 우리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최상의 노래이며 아리랑과 거의 맞먹는 노래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노래 가사가 무엇인가?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아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절씨구씨구 들어간다라는 내용이다. 박장대소가 나왔지만 분위기는 서서히 어두워졌다. 그리고 그 후에 불렀던 박대통령이 좋아하는 황성옛터를 불렀는데 가사마저 까먹게 된다. 결국 그는 바로 퇴장을 하게 되고, 이후 다음 날 아침 여지없이 헌병 백차가 기상나팔 소리와 동시에 들이닥쳐 조영남을 헌병대로 끌고 갔다. 헌병 장교로부터 직접 심문이 이어졌는데 두 가지로 요약하면 하나는 왜 대통령의 신청곡 황성옛터를 세 번이나 거부했는가이며 다른 하나는 각설이 타령 중에 작년에 왔던 각설이는 과연 누구를 의미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기가 찰 노릇이다. 다행히 친구 장교가 해명해 주어 남한산성에서 감옥행을 면하고 돌아왔지만 참으로 기이한 인물이다.

 

또한 노태우 대통령 오찬때의 일이다. 이때 조영남은 식상하게 대통령을 공략하기 보다는 영부인을 공략하는 게 폼이 날거라 생각하며 아부 떠는 말을 하였다. "대통령님! 저는 가수 조영남입니다. 그리고 영부인님 너무너무 아름다우십니다. 신문이나 TV에서 뵙다가 이렇게 직접 뵙게 돼서 무한 영광입니다. 영부인님께서 저한테 아무 말씀이나 한마디만 해주십시오. 밖에 나가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그럽니다"하며 말을 했는데 영부인은 뜻밖의 반응으로 너무나 수줍어 하시며 한 말씀도 안 하셨다고 한다. 급 당황한 조영남은 이번엔 대통령을 향해 축하하는 말로 주제를 잽싸게 바꿔 말을 이어갔는데 처음 했던 말은 잘 이어져 갔지만 그다음 말이 정말 철없이 해버리게 된다. 제발 백담사 같은 델 가시는 일이 없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을 해버렸다. 당시 전임 전두환 대통령 내외가 백담사로 갔다 온 뉴스로 요란 법석이었던 때였는데 그 말을 한 것이다. 이제 여기서도 죽었다고 생각했다. 아직 군부 시절이니 까딱하다가는 인생 종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영부인이신 김옥숙 여사께서 사람들의 물결을 헤치고 환하게 웃으시며 조영남 앞으로 와서 하는 말이 어머 조 선생님은 늘 그렇게 재미있으셔요하시는 것이었다. 조영남은 이때 "나는 휴! 죽었다 살았구나 싶었습니다."고 말했는데 참으로 하늘이 도왔다는 생각도 해본다.

 

참으로 버라이어티한 스토리며 인생이다. 앞으로도 그는 많은 풍문을 남길 것으로 본다.

 

쎄시봉이라는 무대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그는 이렇게 대중들에게 이미 공인으로서 자리잡은 인물이다. 조영남이란 존재가 살아온 인생과 동시대인들의 얘기를 통해 들여다본 그는 어쩌면 개인주의자’, ‘탐미주의자또는 독고다이의 이미지를 깨버리는 시간이 되지 않나 싶다. 별난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그의 세계관은 가히 안드로메다 은하와 같은 존재다. 그러나 그의 이런 삶에서 우리는 삶이란 정형화된 것이 아닌 매우 다양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음을 보게 된다. 물론 그의 삶은 문제 투성이다. 그러나 인간 세계에 그런 사람 한 둘이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그러지 않으면 너무 재미 없어지지 않냐는 말이다.

특히 이 책에 전 아내였던 윤여정이란 여성이 위대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부각시켜 주는 글이 나온다. 조영남은 자신의 실책과 부정으로 결혼 생활이 파탄 났음을 재차 인정하면서 결혼 생활을 할 당시 윤여정의 헌신에 대해 고마움을 이렇게 피력했다.

 

윤여정은 아이도 잘 키우고 살림도 썩 잘했다. 그땐 플로리다에 한인 식품점이 없던 시절이었는데 어느 날 밥상에 두부 지짐이 푸짐하게 올라왔다. 윤여정이 콩을 심어 두부를 만든 것임이 틀림없었다. 어디서 배웠는지 음식을 탁월하게 잘 해냈다. 그뿐 아니라 어느 날은 나의 와이셔츠를 재봉틀로 직접 만들어 줬고 양복저고리도 만들어 줬는데 와이셔츠는 레코드 재킷에 사진으로 남아 있지만, 저고리는 간직하지 못한 게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만약 내조 아카데미상이라도 있었더라면 당연히 월드 베스트 내조상을 받아야 할 만큼 윤여정은 실로 내조의 여왕이었다.” p349

 

그는 이 글을 이어 이런 말을 했는데 한심하지만 재미가 있다. "그렇게 잘 살던 우리가 헤어지게 된 것은 내가 누누이 말했지만, 순전히 내가 바람을 피웠기 때문이다. 나 혼자 북치고 장구 치고 지랄발광을 쳤기 때문이다!"

 

그렇다. 조영남은 인생을 지랄발광처럼 살고픈 남자다. 그러나 윤여정은 선량한 성품의 여성이다. 읽다보면 참으로 잘 헤어졌다는 생각이 드는데 나만 그럴까도 생각해 본다.

 

화투 이야기로 끝을 맺어본다. 그의 인생에 화투가 항상 화재이며 그림에도 늘 존재한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되었는가 하니 부친 때문이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이다. 학교를 다녀오면 반드시 록백꾸(육배이라는 화투 놀이) 몇 판을 쳐야 밖에 나가 놀 수 있도록 규정을 만들어 놓았다.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바로 생각이 났다. 그 뜻이 무엇인가? 맹자 어머니가 맹자(孟子)의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하였다는 내용이다. 즉 교육에는 주위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 권사의 가짜 꿀 얘기 또한 매우 재미있고 교훈을 주기도 한다. 조영남의 모습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신학대학이라는 곳을 갔지만 불교에도 끄적거리며 살아온 그의 인생이 지조 없다는 생각도 들기도 하지만 인생은 어차피 그 누군가가 그려주지 못하기에 그가 그려간 인생은 그의 그림문제처럼 파란만장한 삶이었다.

 

이 책은 그가 보여준 인생과는 다르게 선입견 없이 볼만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그를 통해 내 삶을 투영해 본다면 반드시 무언가는 인사이트(insight)를 얻는 시간이 되리라 생각된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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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 좋은 이유 - 도덕성의 근원
로버트 오브리 하인드 지음, 김태훈 옮김 / 글로벌콘텐츠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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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선과 악'이라는 두 개의 명제가 확실하게 공존하고 있다. 그런데 선(옳음)과 악(그름)을 구별하는 기준은 이 책에 의하면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한다. 성장하게 되면서 우리는 그 차이점에 대해 많이 알게 되지만, 막상 실제 상황에 부딪히면 그렇게 선명하게 인식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무언가에 대해 서로가 합의점을 찾고 갈등 가운데 '당위성'을 결정할 때 그 기준점이 무엇이냐이다. 서로 상치되는 '권리'를 비교해서 평가하며 하나의 결론을 내릴 때 그것은 자신뿐 아니라 타인이나 가족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며, 사회 전체에도 그 영향이 미칠 수 있다. 그래서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기준이 매우 중요한데 그 기준점을 어디서 찾느냐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과거에는 종교가 도덕률의 주요 근원이 되어 왔다. 그래서 많은 사회에서 도덕률은 초월적인 존재로부터 부여된 것으로 인식되었다. 도덕률과 사회 규범은 서로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는데, 딜레마에 봉착하게 되면 개인은 보통 목사나 다른 전문 종교인으로부터 그에 대한 답을 얻었다. 여의치 않을 때는 최소한 조언이라도 구했다. 유럽 사회에서 교회는 두 가지 방식으로 도덕률을 준수하도록 권장했는데 첫째 이승이나 다른 삶에서 신의 보상이 있다고 약속하거나 신의 보복이 뒤따른다고 위협하는 것이었다. 둘째 간접적 방식으로 교회에서 정한 '고결한 인격'으로부터 사소한 일탈도 결국 다 알려진다고 말하며 도덕적 제재를 해왔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며 현대 사회가 세속화 되면서 더 이상은 종교가 가르치는 도덕률은 물론 자신이 살아왔던 사회의 도덕률이 권위와 더불어 구속력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의 도덕률의 변화가 찾아 왔는데 그건 일반적인 사회의 변화이다. 사회의 규모가 커지고 더욱 복잡해짐에 따라 개인의 이동 또한 증가하였고,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그리고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소비지상주의가 증가하고, 과학과 기술의 진보가 나타나면서 많은 사람들의 세계관이 변화되고 있다. 즉 세계화가 진행됨에 따라 서로 다른 철학적, 종교적 전통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책을 찾는 일이 점점 중요해 지고 있다.

이에 저자는 이 책에서 도덕률이 어디에서 유래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도덕적 결정을 내리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는 지를 깊이 있게 논의한다. 도덕성의 근원과 관련하여 역자 또한 궁금한 것이 있었다.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도덕성의 개념적 근거에 관한 것이다. 아래는 그 내용이다.

"인간의 도덕성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인간의 본성인가, 사회인가? 아니면 초월적 존재인가? 도덕성은 애초에 선한 특성이 지배하는가 아니면 악한 특성이 지배하는가? 인간의 도덕성은 백지상태에서 출발하는 것인가, 아니면 선천적 잠재력을 갖고 태어나는가? 도덕성은 어떤 시대, 사회나 보편적인 것인가, 아니면 특정 시기와 사회에 따라 특수적인 것인가?"

또 다른 궁금증 하나는 "도덕성의 실용적 성격에 관한 것이다. 도덕성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며 지켜야 할 지침인가, 아니면 인간관계의 상황에 따라 요구되는 사회적 기술의 일종인가? 도덕성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개인적으로 지니고 있어야 하는가, 아니면 싫든 좋든 다수의 사람이 공유하는 것을 따라야 하는가? 도덕성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어떤 긍정적인 힘을 제공해 주는가, 아니면 결국 손해만 안겨주는 것인가? 도덕성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가?"

역자 서문 중에서, 14쪽

도덕성에 대해 저자는 단순히 풀어 나가는 것을 넘어 학술적으로 깊이 있게 다루고 있음을 본다.

특히 심층적인 질문을 이렇게 던지는데 "선은 왜 좋은가?", "우리는 왜 선에, 그리고 도덕성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다?", "인간에게 도덕성은 어떤 의미인가?"를 논리적, 경험적, 신학적, 철학적, 윤리학적 심리학적 관점 속에서 글을 풀어나가고 있다.

결론적으로 저자 하인드는 이 책의 제목이 암시하듯 문제에 대한 대답이 세 가지라고 말해 준다.

그것은 자연 선택, 인간의 심리적 특성과 문화적 요소의 상호작용 그리고 우리가 삶의 과정에서 맺는 인간관계를 천착해 보면 '선'이 왜 좋은 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즉 이 세 가지로 인하여 선은 우리에게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으며, 앞으로도 인간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회를 형성하며 살아가는 한 엄연히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 책은 두 가지 측면에서 자신의 견해를 밟아 나간다. 첫째, 현대 사회에서 생각하는 다양한 도덕적 문제에 대한 접근 방향을 제시하는 방법이다. 둘째, 도덕적 문제 해결을 위한 접근 방법에 대해서 다룬다. 이와 같은 두 가지 측면을 바탕으로 기술된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끝마무리를 하면서 이전의 장들로부터 몇 가지 결론을 도출하며 책의 결론을 맺고 있다. 특히,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가 지키는 도덕률이 어디에서 유래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도덕적 결정을 내리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고, 우리에게 밀려오는 다양한 도덕적 문제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어디에서부터 그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 나가야 하는지를 성찰하게 해주는 책이다.

그러나 책을 보면 저자가 어떤 명제를 설명하기 위해 다양하게 접근하고, 논리적 귀결을 얻기 위해 여러가지의 것을 가져와 철학적으로 해부하고 설명하는 부분이 독자들을 힘들게 하는 부분이 없잖아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즉 조금은 난해하며 복잡스러움을 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 자신이 "선이 왜 좋은지"에 대해 속속들이 파헤치는 것을 통해 깊이 있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는 칭찬할만하다.

독자인 나는 이 책을 통해 도덕성의 근원을 저자 자신은 어디에 두고 있는 지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인간의 본성이 착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에 대해 저자 자신은 어떻게 보고 있는가가 궁금했다는 것이다. 우선 독자가 익히 알고 있는 동양철학에서 맹자의 성선설이 옳은가 아니면 순자의 성악설이 옳은가에 대해 궁금증이 아직 명확하게 풀리지 않은 입장이다. 아시다시피 맹자는 하늘의 뜻과 사람의 본성은 일치한다고 보았기에 당연히 인간은 선하다고 보았다. 반면 순자는 "인간의 성품은 악하다. 선한 것은 인위(人爲)이다"라고 하여 선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순자는 인간의 악한 본성을 교정하는 방법으로 '예(禮)와 교육'을 주장했다. 악한 본성을 이기기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정진해야한다는 뜻이다. 반면에 영국의 철학자이자 정치 사상가인 존 로크(John Locke)는 원래 인간은 태어날 때 선한 존재나 악한 존재가 아니라 무의 상태인 백지상태로 태어나 주위 환경의 영향에 의해 점차 인간으로서의 성격이나 특성이 갖추어 진다고 했다. 자료를 찾아보니 동양에서는 고자(告子)가 백지설과 비슷한 ‘성무선악설’을 주장했다.

개인적으로 인간의 도덕률의 기반은 선과 악이라는 본성적인 기본 바탕 위에 '교육과 문화, 생활 환경, 종교'가 도덕률을 가져와 사회를 구성하고 규범을 만들어 나간다고 생각한다. 그런면에서 이 책의 저자는 도덕률의 토대를 존 로크가 생각하는 견해를 취하고 있다. 아래의 글은 저자의 결론적인 생각이다.

결론적으로 자연적인 것이 반드시 옳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서 옹호한 생물학적 및 심리적 접근방식이 도덕 계율의 토대를 이해하는 데 그리고 도덕적 딜레마를 해결하는 데 유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문화가 상충할 때 생물학적 및 심리적 접근 방식에 의해 제시된 보편적인 인간의 심리적 특성을 강조하는 것이 최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이 접근 방식은 한 사회 내에서도 도덕적 문제가 인간 본성의 복잡함으로부터 뿐만 아니라 도덕 계율, 관습, 사람들의 인지된 권리와 의무 간의 갈등으로부터 그리고 이것들이 상황과 세계관에 따라 사람들에 의해 해석되는 다양한 방식으로부터 발생한다고 지적하고자 한다. p335-336

최종 결론은 "선善"이란 인간에게 매우 필요한 것이며, 좋은 것이며 문화적 상황에 따라 개인에 따라 다른 견해를 취하기도 하지만 결국 "선善"을 추구하려고 해야한다는 것이다. 서로 입장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도덕성 #선 #악 #근원 #자기체계 #도덕계율 #자유의지 #성선설 #성악설 #존로크 #백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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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세계사 - 세계사 중심을 관통하는 13가지 질문과 통찰력 있는 답변
다마키 도시아키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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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방대하고 복잡한 세계사를 한 번에 정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세계사 중심부를 관통하는 13개의 명장면과 ‘역사의 급소’에 해당하는 통찰력 있는 질문・답변으로 매우 정갈하게 편집되었다.

세계사에 약한 사람이라면 이런 책은 반갑고도 고마운 책이다. 목차를 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많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먼저 평소 좋아하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대해 나온다. 만일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오래 살았다면 자신이 지배한 광대한 영토를 질서정연하게 다스렸을까라는 흥미로운 질문이 나온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그렇지 않았을 거로 본다. 이유는? 마케도니아로 대표되는 당대 그리스 세계에 그토록 광대한 영토를 다스리는 데 필요한 체제와 지식, 경험 등이 결정적으로 부족했다고 본다. 사실 "우수한 그리스 문명이 오리엔트와 인더스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라는 견해는 오늘날 학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보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이전에도 동서 문화・경제 교류는 꾸준히 있어 왔고, 그러한 과거 유산"이 오히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원정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었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따라서 알렉산드로스가 오래 살았더라도 광대한 영토를 질서정연하게 다스리기는 어려웠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그러면 역(逆)으로 돌아가서 ‘고대 그리스 세계의 변방에 머물렀던 국가 마케도니아는 어떻게 그토록 빠르게 그리스 전역을 제패하고 대제국 페르시아를 무너뜨리면서 세계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저자는 두 가지 비결을 꼽는데 첫째, 마케도니아가 그리스 세계에 속해 있으면서도 그 핵심에 들지 못하고 변방에 머무른 탓에 무사안일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도전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둘째, 필리포스 2세에서 알렉산드로스 3세로 이어지는 위대한 영웅 군주의 출현으로 잠재력과 에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아케메네스왕조 페르시아는 제국 안에서 ‘왕의 길(Royal Road)’로 불린 도로망을 정비하였다. 이 도로는 학자들에 의하면 이집트에서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인더스까지 이어지던 오리엔트 통상로를 기초 삼아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통상로를 통해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대규모 군대가 통과하는 군사도로가 되어 페르시아를 몰락하게 하였다. 즉 페르시아는 이 통상로를 통해 자신을 크게 발전시켰을 뿐 아니라 그 교역로 탓에 역설적으로 알렉산드로스 군대에 치명적 일격을 당한 뒤 몰락하게 되었다.


이런 부분들이 흥미를 더해가며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가고 있다. 뒤이어 나오는 바이킹이라는 대목에서도 주목되는 부분이 나오는데 그건 바이킹은 왜 콜럼버스보다 500년 먼저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하고도 ‘최초 발견자’로 널리 알려지지 못했을까이다. 여기에는 바이킹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된다. 바이킹은 전 유럽을 통틀어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실제로 바이킹은 유럽을 확실히 지배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정복과 통치를 위한 체제를 체계적으로 정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바이킹은 사실 약탈자보다는 상인에 더 가까운 존재였다.

상인은 상거래로 이익을 얻는 것이 주목적이므로 영토를 차지하고 다스리고 경영하는 일에는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더구나 바이킹은 신대륙에서도 정착에 성공하지 못하고 철수했기에 오늘날까지도 최초의 ‘신대륙 발견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바이킹의 활동 영역은 상당히 넓은데 대항해를 가능하게한 이유가 이 책에 나온다. 그건 바로 '롱십longship'이라는 배 때문이었다. 가늘고 긴 모양의 이 배는 홀수가 낮다는 특징이 있는데 롱십에는 노가 달려 있었을 뿐 아니라 100명 넘는 승조원이 탈수 있었으며, 원거리 항해에도 활용할 수 있을 만큼 확실한 견고함을 갖추었다고 한다.

이 책은 이렇게 세계 역사에 급소들을 파헤쳐서 거시적으로 세계역사를 보게 한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후에도 오랫동안 인도에 비해 크게 뒤처졌던 영국의 면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서, ‘전국시대에 일본이 유럽의 군사혁명을 단숨에 따라잡을 수 있었던 비결이 있었는데 그 비결이 예수님의 사랑을 가지고 들어가서 선교하는 ’예수회’의 무기 판매 덕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알려준다. 즉 예수회는 종교단체의 얼굴과 함께 또 하나의 얼굴을 가지고 일본으로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것은 무역 상인의 얼굴로 들어온 것이다. '죽음의 상인'으로 예수회가 불리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일본에 판매한 주요 상품이 ‘무기’였기 때문이다. 아! 이걸 어떡해 봐야할지 모르겠다. 잠깐 그 배경을 더 살피면 일본 전국시대 장수들은 포르투갈 선박이 싣고 오는 군수품에 눈독을 들였다. 예수회는 대포, 초석, 탄약 등을 조달해준 대가로 영주에게서 선교권을 얻어냈다. 그런데 이런 예수회를 통해 일본은 '군사혁명'에 가장 성공한 나라가 되었다. 유럽의 군사혁명을 불가능에 가까운 속도로 따라잡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영화에 보듯이 오랑케들이 총을 들고 우리나라를 침범하는 무기가 되었다. 예수회에 대한 좋지 않는 비하인드가 많은데 이들이 참된 종교인인지는 늘 의구심을 가진채로 보고 있다.

세계 역사에 대해 이렇게 한 눈에 살펴보며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니 무언가 역사적 지식으로 무장된 느낌이다. 역사지식에 약한 사람들은 이 책을 통해 우선 상식적으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책의 한 문장

질문: 19세기에 범선을 몰아내고 유럽 각국의 주요 운송 수단이 된 증기선은 어쩌다 제국주의의 첨병이 되었나?

답변: 증기선이 전 세계에서 활약하게 된 19세기 후반은 제국주의 시대였다. 따라서 항구 건설은 제국의 운명을 건 중대 사업이었으며,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개척한 영국은 전 세계 항로, 주요 항구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은 결국 영국의 독보적인 해운업 발전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한편 기존의 국제 무역은 각 지역에서 강점이 있는 토박이 상인들이 릴레이경기를 벌이는 방식으로 상품을 전달함으로써 성립되었다. 그러나 증기선이 보급되면서 이러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즉 인도 항구에서 영국 배에 화물을 실으면 그대로 한번에 영국까지 운송할 수 있었다. 이는 곧 운송 인프라를 독점할 수 있다는 의미다. 교역에서는 운송을 장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운송 인프라를 장악하면 가격을 교섭하고 상업 규칙을 설정할 때 유리한 위치를 점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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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어의 유토피아 - 왜 유토피아를 꿈꾸는가 EBS 오늘 읽는 클래식
연효숙 지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EBS BOOKS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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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과거부터 이상 세계를 꿈꾸며 얘기를 해왔다. 『유토피아』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무언가 모를 낙원과 같은 세계가 그 어딘가에는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끔 했다. ‘유토피아’라는 말은 ‘우 토포스(ou topos)’라는 그리스어에 유래했다. 우(ou)는 ‘없다’라는 뜻이고, 토포스(topos)는 ‘장소’를 뜻하는 말로, 원래 의미는 nowhere, 즉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렇게 유토피아는 지구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나라이다. 그러나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고 가보고 싶어하는 나라이다.

한 번은 고전영화인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 37년)'이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다. 할리우드의 거장이었던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영화인데 이 영화에서 티벳지역에 숨겨진 유토피아 세상인 샹그릴라(Shangri- ra)라는 장소를 보게 되었다. 지상 낙원으로 불리는 곳으로 늙지도 않고 평생 따뜻한 기후만이 지속되는 곳이며, 굶지 않아도 되며 매일 음식이 풍족하며 깨끗한 물이 있고 평화만이 존재하는 곳이다.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곳으로서 어떤 분의 말처럼 아마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무렵 전쟁과 가난의 공포를 벗어난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갖춘 이상향을 그려놓은 것이었으리라 생각된다. 거기에다 동양적인 신비감과 라마교의 종교적 신비감까지 가미한 세상을 그려 놓음으로 실제 많은 이들이 영화로 인해 이곳을 찾으려고 네팔,인도,티벳 등지를 뒤졌지만 탐험가들은 영화 속에서 묘사하는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인간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이런 유토피아를 꿈꾸며 살아갈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어떤이는 종교를 통해 낙원을 이미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 그런데 저자는 어디엔가 있을 환상의 나라를 쫓기 보다는 우리가 주체가 되어 유토피아를 스스로 만들어보도록 채근하고 있다.

지금의 사회를 보면 코로나 19가 세상을 암흑 가운데로 내몰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악화된 경제와 치솟는 물가, 기후위기, 국가 간 분쟁, 빈부 격차, 불안한 정치 현실 등 우리의 현실은 매우 어둡고 암울한 상황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아직도 OECD 국가에서 자살률 1위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토피아를 꿈꾸며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현실을 이겨내기는 커녕 사회 전체를 더 암울하게 한다고 생각된다. 책을 보면 알겠지만 모어는 단순히 철없이 이상적으로만 꿈꾸는 비현실주의자는 아니다. 그는 철저하게 현실의 모순과 문제를 분석하고 비판하면서, 새로운 대안 사회를 만들어 가려고 하였다. 개인의 행복을 고민하고, 결혼과 안락한 죽음에 대해 얘기하고, 교육과 생업을 논의하면서 이상적인 공동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의, 평등, 도덕, 복지 제도, 경제 체제가 얼마나 새롭게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해 충분히 주장한다. 또한 유토피아 사회를 수호하기 위해 전쟁과 평화를 새롭게 생각하며, 종교의 자유에 대해 누구보다 열린 마음을 가졌고, 공공의 이익이 잘 보장되는 공유제에 입각한 정의 사회의 모델을 근사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독자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종교와 공유제이다. 모어는 유토피아를 통해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공동사회를 추구한다. 현대 사회는 자유롭게 종교를 택할 수 있으나 중세 사회는 그렇지 못했다. 특히 로마 사회에서 탄압을 받으며 성장한 기독교가 중세 사회에서 국교로 정해지면서 기독교 외에 종교는 이단이 되었다. 종교 또한 힘과 권력이 생기면 썩게 되는데 마찬가지로 기독교가 유일한 종교가 되면서 부패했다. 모어는 카톨릭 신자이지만 유토피아에서는 다양한 종교를 인정하고 있다.

섬 전체 안에서뿐만 아니라 개별 도시들 안에서도 갖가지 형태의 종교가 있다. 해를 신으로 예배하는 사람, 달을 예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 과거의 위인을 숭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은 이런 위인을 그냥 한 분의 신으로만 모시는 것이 아니라 최고신으로 모시는 것이다. [...] 다만 유토피아의 예배 의식이 기독교와 다른 것은 어떤 신상도 세워놓지 않고 각자 자유롭게 자기 신앙에 따라 예배를 본다. 유토피아 사람들은 신을 미트라스(mythras)라고 부르는데 이는 신의 고유 명사가 아니라 절대적 존재인 신을 지칭하는 일반 명사에 불과하다. 각자 자기가 송배하는 신을 마음속에 그리며 사제의 인도에 따라 자유롭게 경건하게 예배를 보는 유토피아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면, 매우 평온한 느낌을 가질 것이다. 이러한 예배 의식은 유토피아 사람들을 한 공동체, 울타리로 묶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p157-162

공유제에 대해 언급해 보고자 한다. 유토피아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동을 하고 공동으로 생산한다. 마찬가지로 소비와 분배 역시 공동으로 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일이다. 그러나 유토피아의 세계에서는 일단 노동 시간이 6시간만 배정된다. 정오까지 3시간 일하고, 정오가 되면 점심을 먹으러 간다. 점심 후에 2시간 쉬고, 다시 3시간 일하여 하루 일과를 마치거 저녁 8시경에 잠자리에 든다. 6시간 일하고도 생필품 공급이 부족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유토피아는 그들의 작업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쓸 물품이 있다고 말한다. 16세기 산업사회 초기 하루 12시간 이상을 노동했다고 한다. 지금 현대인들도 하루 8시간 노동을 하고 산다. 그런면에서 유토피아가 그려주는 노동 시간은 꿈의 시간이기도 하다.

아래는 공유제에 대한 얘기다. 즉 공동 생산과 공동 분배의 원칙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각 도시는 네개의 비슷한 구로 나뉘어 있고 각 구의 한복판에 모든 종류의 물품을 갖춘 시장이 있다. 각 가구에서 만들어내는 것들이 이곳으로 운반되어 창고에 보관되며, 각 물품마다 각기 정해진 장소에 놓여 있다. 각 가구주는 여기에서 자신과 자기 집에 필요한 물품을 찾아 돈을 지불하거나 어떤 보상 없이 그냥 가져간다.

p98

언뜻 보기에 참으로 좋아 보인다. 결핍에 대한 두려움이 없게 되고, 과시하거나 남보다 앞섰다고 자랑하는 헛된 자만심이 유토피아에서는 전혀 끼어들 틈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런 좋은 제도를 왜 인류는 체택하지 않고 있을까? 이런 유토피아적 생각을 펼친 인물이 있으니 19세기 마르크스이다. 20세기에 와서는 소비에트 연방에서 이러한 제도가 실제 채택되어 실행된다. 마르크스는 빈부격차의 주요 원인인 사유재산제도를 없애고, 그 대신 공동 생산과 공동 분배의 제도를 제안했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는데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독서와 낚시할 수 있는 생활'을 보장해 주겠다. 그런데 문제는 공동 생산과 공동 분배를 할 때 인간이 많이 게을러진다는 데 있다. 결국 소비에트 연방은 1987년에 무너졌으며 현실적 상상은 폐해를 맛보게 되었다. 물론 유토피아가 주는 공공적 혜택은 현대 사회에 와서 복지의 형태로 주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유토피아가 주는 그런 복지의 형태에 비해서는 턱없이 못미치지만 말이다.

유토피아가 보여주는 세상은 가히 꿈꿔볼만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이기심과 나태함, 악함이 있는한 이러한 유토피아는 현실에선 이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 과연 인간이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이 살면 과연 행복하고 사회는 정의롭게 공의롭게 만들어지게 될까?

니콜라이 레스코프라는 작가가 쓴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에 대해 잠깐 본적이 있다. 맥베스 부인은 어쩌다가 세 명을 살인하게 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권태'로부터 비롯되었고 한다. 인간은 따분함, 권태를 참지 못한다. 또한 기계적이며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이 펼쳐지며 일탈을 꿈꾼다. 그렇다. 인간을 만족 시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다만 그 인간이 자족하는 법을 알게 되면 삶은 유토피아로 바뀌게 된다. 인간 사회에 있는 문제점을 잠시 유토피아를 통해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단지 이상향으로만 그치지 않고, 모어의 생각을 가져와 새롭게 확장하고 보완해 나간다면 얼마든지 이상 사회를 다시금 만들어 내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에선 이런 유토피아는 희망사항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소박하게 먹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아무에게도 상처주지마라.

-호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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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믿는 법률가들
조배숙 외 지음 / 베네딕션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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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법률가 4인의 삶과 철학을 담아낸 책!

그들의 생각은 왜, 어떻게 다른가 -

 

이 책은 신앙인으로서 반가운 책이다. 신앙인들 가운데 법률가들이 포진해 있다는 것만으로 무너져가는 법조계를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사법부의 불공정성에 대한 얘기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오죽했으면 불공정성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AI판사 도입을 제안하고 있나 말이다. AI 판사의 판결 오류를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지만 그러나 현재의 재판부보다는 못할까 싶다. 실제 국민 10명 중 6, 사법부 판결을 불신하고 있다.

 

 

요즘 대선을 보면 대장동 얘기가 많이 거론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전 법무부 차관이었던 김학의라는 사람이 무죄를 선고 받았다. 김 전 차관 의혹은 20133월 그가 법무부 차관으로 내정되면서 시작되었다. 한 언론에서 김 전 차관으로 보이는 인물이 원주의 한 별장에서 성접대를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영상이 있다고 보도하여 발칵 뒤집어졌다. 그런데 1차 수사 끝에 김 전 차관은 불기소 처분을 받았고, 동영상 속 남성이 김 전 차관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결국 성접대관련 모든 죄가 무죄, 뇌물 수수에 관해사도 무죄를 받았다성접대 동영상을 나도 봤지만 판사들 눈에는 그 사람이 김차관이 아니라고 하지만 나는 한 눈에 알아 봤다이게 바로 법의 현주소이다.

 

 

대장동 사건이나, BBK 주가 조작 사건이 아무리 명백하게 드러나도 죄진 놈은 없고, 거기에 따른 주변 인물의 자살이나 고통만 있으니 이것은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다. 오늘 뉴스를 보니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황하나)에 대해 다루는 기사가 나왔다. '집행유예 중 또 마약'을 했지만 징역 18개월 실형으로 확정되었다.

 

 

그러니 인공지능판사의 도입을 원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AI 판사는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공정성은 띄고 있으니 말이다.

 

 

무법천지와 같은 시대에 공정성을 가진 크리스천 법률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 국민과 나라에 소중한 보화가 아닐 수 없다. 물론 그 전제는 그들이 공정하고 정의로울 경우이다. 요즘 시대에 아무리 크리스천이라고 하더라도 이들 또한 외부의 강압이나 혹은 뇌물에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혹은 자신의 야망을 위해 높은 자리에 오르려고, 한 눈을 감아버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들이 얼마만큼 공정한지는 그들 자신과 하나님에게 맡기고, 이 책에서는 그들의 생각과 하나님을 믿게 된 과정과 독자들이 함께 생각해 보고 싶은 법 또는 신앙에 관해 어떤 마음을 가졌는 지를 보고자 한다.

 

 

첫 페이지를 열면 대한민국 최초 여성 검사이자 4선 국회의원 출신 조배숙이라는 법조인이 나온다.

 

일단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그녀의 글을 통해 독자들의 마음은 활짝 열리게 된다.

 

 

4선 국회의원을 지낸 이력을 바탕으로 약자들의 법인 소위 조강지처법이라고 조롱받는 성매매방지법을 제정해 나가는 그녀의 모습은 이게 바로 제대로 된 법조인이며 국회의원이구나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또한 골수 기독교 신자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펼쳐나가는 장면에서는 마치 잔다르크와 같고, 성경에 나오는 '사사 드보라'와 같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아는 사람을 도와준 내용이 나오는데 가수 현진영과 박근혜 동생 박지만에 대한 부분이다. 왜 현진영은 조배숙 판사 앞에서 하염없이 울었으며, 정치적 대척점에 있던 박지만은 어떻게 인연을 맺었는지에 대해 다루는데 신앙인으로서 좋은 신앙적 간증이라 생각된다.

 

 

이 책의 특징으로는 4명의 법률가가 저마다의 방법으로 예수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즉 성장 환경, 예수를 믿게 된 계기, 전문 분야, 활동 영역 등 마지막 부분에는 각자가 하나님 앞에 올린 기도문이 나온다. 모두 진심으로 느껴지며 참 신앙인의 모습이 보인다.

 

 

단순히 법조인의 삶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그 법률가를 둘러싼 예수 안에서의 삶의 간증이나 경험을 얘기해 주어 친근하게 법조인에 대해 이해를 경직되지 않고 편안하게 보도록 해주고 있다. 인상 깊은 부분이 있는데 4명의 법률가들에게 동일한 질문인 '예수를 만난 과정, 교회에 가게 된 계기, 신앙을 갖게 된 계기'에 대해 물었을 때 하나같이 누군가의 전도로 예수를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가족이 되었던, 친구가 되었던지, 목회자가 되었던지 전도를 통해 예수를 만나고 신앙을 가졌다는 것이다. 신앙인에게 전도는 마치 필수적 의무이지만 늘 짐처럼 생각되는데 이 부분을 보면서 용기를 갖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면 좋겠다 싶다.

 

 

더불어 인상 깊은 내용은 '특별히 예수의 마음을 품고 타인을 도운 경험'에 대해 다루는 부분인데 하나같이 귀한 마음이 아닐 수 없다. 그 가운데 하나만 소개하면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장 남형두 법조인에 대해서이다. 두 가지 내용을 말하는데 하나는 다가구 주택을 지어 분양한 수천 명의 서민에게 부가세를 면제받게 한 것과, 시각 장애인들의 교육 및 문화생활을 개선한 것이다. 즉 시각장애인들은 매년 정부가 발행하는 일정한 종수의 점자책으로 교육 및 다양한 문화를 접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저작권법 때문에 많은 책과 함께 교과서도 제 때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마침 남형두 법조인이 저작권법을 전공을 하고 있어, 이 부분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움을 줄 수 있었다고 한다.

 

이것에 대해 남형두 법조인은 '장애인의 환경을 개선하는데 쓰임 받을 수 있음을' 감사하게 여긴다.

 

 

모든 사람은 타인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 가운데 신앙인이라면 특히 법조인이라면 이 사회의 불공정에 대해 싸워 선한 가치를 끌어내야 하는 사명이 있을 것이다. 그런면에서 4명의 법조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선한 역할을 해나가며 공정한 법을 세워나가는 모습은 정말 온 국민에게 더 없는 기쁨의 소식이라 생각된다. 이것을 위해 이들이 끝까지 싸워 하나님 나라의 공정성과 합리성을 잘 만들어 나가는 도구로 쓰임 받기를 기도해 본다.

 

 

끝으로 차별금지법에 대한 조배숙 법조인의 글을 독자들은 읽고, 무엇이 차별이고 진짜 평등인지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나머지 두 명의 법조인 또한 훌륭한 인물로서 하나님 앞에서의 법조인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한 분은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김일수이며, 한 분은 대통령 탄핵과 위헌 정당(통진당)을 해산한 헌법재판관 출신 이정미이다.

 

 

이들로 인해 한 시대가 밝아져 국민의 숨통이 트이고, 나라가 안정되길 소망해 본다. 믿는 자들의 가치는 절대적으로 신의 가치를 눈 앞에 두고 판단하는 것이다. 기도와 말씀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으며 국민을 섬겨 나가는 모습이 본인 자신만 아니라 후배들에게도 귀감이 되어, 더 많은 믿음의 법률가를 배출하는 도화선 또는 연결점이 되길 기도해 본다.

 

이 책의 한 문장

 

변호사를 하지 않았다면

법조 생활의 반쪽마 알고 나머지는 알지 못한 채,

내가 경험한 것만 법조 생활의 전부라고 여기며

살았을지 모른다.

-이정미

 

상대가 마음에 불편과 괴로움을 느꼈다고 해서 바로 차별로 보고 법적인 제재에 돌입한다면,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주관적인 상태에 따라 괴롭힘이 성립되기 때문에 법적안정성을 해친다. 가해자에게는 불이익한 제재가 따르므로 일반적으로 납득될 수 있는 객관성 공정성이 요구된다. 특히 차별금지법 논의에서 쟁점이 되는 동성애의 경우, 동성애가 죄라는 성경의 교리에 입각한 비판은 물론이고 동성애에 대한 객관적 자료에 근거한 비판도 괴롭힘 내지는 혐오표현으로 보고 금지하고 있다. 이는 반대의견을 표현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서, ‘반대발언금지법이 된다. P. 40~41

 

 

1980년부터 새벽기도를 시작한 저는 기도의 힘을 깨달았고, 1991년 서울남부지법에 온 이후부터는 10년 동안 빠지지 않고 새벽기도를 나갔습니다. 특히 일본에서 연수를 했던 1989년부터 이혼을 경험한 1991년도는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습니다. 일본에 있을 때도 새벽기도를 꼭 나갔어요. 당시 제가 살던 곳이 기치조지(吉祥寺)역 부근인데,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자전거를 타고 역으로 가서, 첫 전철을 타고 신주쿠(新宿)역에 내려 택시를 타고 순복음 동경교회를 갔다가, 다시 동일한 방법으로 돌아오는 여정이었습니다. 이상하게 잠결에 전화벨이 울리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 깨어보면 새벽기도 갈 시간이더군요. P. 54~55

 

 

우리가 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져서, 억눌리고 갇힌 자들의 손을 잡아주며,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웃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따뜻한 법률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를 통해 세상에 사랑이, 복음이 널리 전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P.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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