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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이 햇빛 ㅣ 이야기숲 3
조은비 지음, 국민지 그림 / 길벗스쿨 / 2025년 7월
평점 :
#협찬 #솔직후기

똑같이 생긴 세 모녀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어색하게 서 있습니다. 하하 호호 정다울 때도 있지만, 싸우자고 들면 누구보다 서늘해지는 관계가 모녀지간이지요. 인정할 수밖에 없는 가족의 민낯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사이 햇빛]은 세 모녀 사이에 흐르는 평범한 애증을 소재로 하고 있어요. 부담스러운 관심은 싫지만 무관심은 더 싫고, 내가 기대는 것은 좋지만 상대방이 기대하면 어쩐지 버거운 그 느낌을 잘 살렸더라고요.
'엄마는 왜 나만 미워할까?' 이 물음은 모계로 흐르는 전통 멘트 같습니다만 이것 또한 배부른 자의 여유입니다. 부모 자식 사이에 감정이 흐른다는 것은 함께 나눈 정과 시간이 많다는 뜻이기 때문이지요. 함께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감정이잖아요.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버겁게 느껴질 수도 있겠더라고요. 처음이니까요! 주인공 고혜준 어린이가 엄마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외할머니와 함께 일주일을 보내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황금 같은 여름방학을 서먹한 할머니와? 혜준이의 고생담이 예상되었어요.

엄마는 늘 약하고 예민한 첫째를 감싸고, 엄마에게 협조적인 둘째 고혜준에게 기대합니다. 엄마의 고민을 공감해 주는 사람은 혜준이뿐이라고 여긴 엄마는, 급기야 자신을 대신할 사람으로 혜준이를 친정에 보내게 되지요. 혜준이 입장에서는 자신을 반기지 않는 외할머니와 강제로 일주일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푸근한 외할머니가 아니세요.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으시고, 즉석요리로 대충 때우고 곧장 밭일하러 나가시지요. 원래는 공부방을 운영하던 커리어 우먼이셨다고 해요. 엄격하고 근엄한 외할머니와 인터넷도 잘 안되는 시골에서 일주일이나! 혜준이의 불만이 타당하다고 느껴졌답니다.
가족 중 누군가가 자신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은근히 챙겨주면 어떤가요. 먼지 나는 선풍기 대신에 깨끗한 것으로 가져다주고, 아침 건강 주스도 맛없다고 하니 수고스럽게 바나나까지 넣어 만들어 놓으신 할머니. 혜준이는 서서히 할머니에 스며들게 됩니다. 마음을 열고 보니 할머니가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했어요. 사실 한 세대를 건너뛴 사이라서 애증이랄 게 있나요? 애증이라면 할머니와 엄마 사이에 존재하겠지요. 두둥! 드디어 엄마가 할아버지 제사를 위해 시골집에 왔습니다. 이때부터 곯아터진 세 사람의 마음이 우르르 쏟아져요.

혼자 지내시는 친정 엄마가 얼마나 애틋하겠어요. 그것을 잔소리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절절함이 느껴져서 저는 좀 울었네요. 언니에게 밀려 엄마에게 서운했던 혜준이와 언니만 사랑하고 할머니만 걱정하는 엄마, 그리고 무심한 할머니까지 세 모녀가 그려내는 현실적인 갈등에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동네 사람들과 오히려 더 가족같이 지내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니, 쓸 데 없는 걱정보다는 자잘한 일상을 함께하는 것이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고 느꼈네요.
가족에게 이해받지 못한 느낌이 들 때면, 혼자 느끼는 서운한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본질을 떠올리며 한 템포 늦출 필요가 있어요.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혜준이만 모르고 있는 따뜻한 햇빛 한 줄기! 무뚝뚝하지만 변함없는 사랑이 흐르는 가족 이야기였습니다. 어쩜 이렇게 현실적인가요. 앞 부분에는 혜준이의 심리와 주변 묘사가 천천히 섬세하게 이루어진다면, 뒷부분에서는 세 모녀의 관계 이야기가 휘몰아칩니다. 끝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장편 동화였어요.
뜨거운 여름보다 후끈했던 혜준이의 고민과 성장을 담은 [우리 사이 햇빛]이었습니다. 혜준이가 엄마와 할머니 사이에서 지켜보며 깨닫게 된 사랑의 실체도 따뜻했고요. 미워도 용서하고 싶은 자신의 진심을 알아채는 과정이 기특했어요. 시골에서 친해진 친구와의 깜찍한 우정도 흥미진진했답니다. 알고 보면 사랑으로 귀결되는 긴 이야기였습니다. 여름방학에 읽으면 좋을 책으로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