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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대화
정지아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그녀의 글들은 정겨우면서도 애잔하고, 따뜻하면서도 눈물겹다.
고향이 전라도라서인지 거의 모든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은 전라도 사투리를 쓴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늙었다고 할 수 있을만큼 나이가 많다. 주로 전라도의 농촌에서 살고 있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비슷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르다.
<숲의 대화>에서는 6.25 전쟁당시 빨치산을 친구로 둔 남자가 85세 나이에 아내를 여의고 아내가 뿌려진 바위에 앉아 아내가 평생토록 사랑했던 빨치산 친구와 재회하는 이야기이다.
빨치산 친구는 친구이자 도련님이다. 도련님은 밤새도록 어머니를 졸라 그 집 종의 아들인 남자와 여종 순심이를 학교에 다니게 했다. 그 도련님은 공산주의에 빠졌고, 빨치산이 되었다. 그리고, 그를 따라 산으로 들어간 순심이를 남자에게 보냈다. 살려보고자…
봄날 햇볕이 내리쬐는 바위에 앉아 남자는 꿈인듯 도련님과 죽은아내 순심이와 재회한다.
이런 느낌이다. 이 책에 실린 정지아 작가의 글들은 모두 이렇게 안타까우면서도 가슴을 울컥이게 하는 따뜻함을 가지고 있다.
오랜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속으로 온전히 빠져든 시간이었다. 등장인물들의 생생한 사투리도 정이 듬뿍 가도록 정다웠고, 다양한 소재로 지루하게만 느껴질 농촌의 모습을 다이나믹하게 그려내어 작가의 내공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80세가 넘어 언제 갈지 모르는 세 여고동창이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다시 웃음을 찾는 소재도 있었고, 요즘 농촌에 한집 걸러 있다는 동남아에서 시집온 며느리와 보수적인 시아버지의 이야기하며, 늙으신 어머니를 돌아볼 새도 없이 바쁘고 팍팍하게만 살아오느라 어느새 마흔을 훌쩍넘긴 딸이 오랜만에 어머니와 목욕탕에 가면서 잊었던 사투리도 다시 쓰고, 몰랐던 일들도 알게되는 따뜻한 이야기, 선천적인 소아마비로 어머니마저 읽은 마흔의 남자가 뜻밖에도 자신만의 천국을 만들며 열심히 살아가는 이야기 등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잘 느끼지는 못하면서 살고있는 삶의 일부를 깨닫게 해준다.
하나하나의 이야기는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속에서 그들과 함께 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들게 했다. 이런 좋은 작품을 쓴 정지아 작가와 이 작품들을 세상으로 나오게 해준 은행나무가 새삼 고맙다.
책의 겉표지와 안표지도 어찌나 앙증맞고 예쁜지 책장 맨 앞에 꽂아두고 늘 보고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