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너머 예술 - 창을 품은 그림, 나를 비춘 풍경에 대하여
박소현 지음 / 문예춘추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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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 창문으로 본 세상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와닿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창문은 커지고, 시야도 넓어진다. 예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점점 눈에 들어오면서 내가 경험한 세상보다 더 큰 세상이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마침내 창문 너머에서 벗어나 진짜 세상으로 걸어 나가면, 이 방대한 세상에서 자신이 얼마나 아무것도 아니었는지 깨닫게 된다. 모든 것들에 그저 감사한 마음만 남는다. 170" 

 어릴 적 살던 주택의 창문은 이런저런 스티커를 붙여놓아 빛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어느 오후면 알록달록한 색이 방바닥에 번져나가곤 했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창꾸를 했던 셈이다. 그렇게 꾸며진 창문틀은 겨울이 되면 나만의 냉장고가 되곤 했다. 창틀에 올려두어 차가워진 커피우유나 탄산음료를 따뜻한 방에서 바로 꺼내 마시는 것이 좋아 덜 닫힌 겉창으로 찬바람이 새어들어오는 것도 몰랐다. 특히 방에서 나와 부엌 냉장고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좋았다.
 지금 사는 집을 보러 왔을때 바깥에서 이리저리 둘러보며 확인했던 것이 창을 통해 집안이 얼마나 잘 들여다보이는가 였다. 불 켜진 집 안은 웬만한 고층이 아니고서야 밖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의외로 훤히 들여다보이기 때문에 어떻게 조심해서 생활해야 할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창 밖의 시선이 덜 신경쓰이는 낮에는 반대로 블라인드를 열어두고 창 안에서 밖을 바라보곤 하는데 그때 보이는 풍경이 마치 그림같단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이렇듯 창을 의식하고 있었던 오래된 기억들과 일상의 순간들이 모여, 어디에든 철학이나 예술이란 말이 붙으면 괜히 더 궁금하고 알고 싶어지는 마음과 얽힌 덕분에 '창문 너머 예술'이란 제목이 한눈에 들어왔다. 

 혹시나 어렵거나 낯선 작품들을 만나게 될까 싶었는데, 금방 샤갈의 그림을 발견하고 그 친숙함에 반가움을 느끼며 시작할 수 있었다. 특히 그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억압을 받으며 러시아에서 파리로, 파리에서 미국으로 이동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들을 얼마 전에 읽었던 '여행 면허(패트릭 빅스비 저)'라는 책에서 상세히 봤었기 때문에 그 기억이 되살아 나 도움이 되었다. 더불어 요즘 한가람 미술관에서 샤갈의 특별전*도 진행하고 있으니 '창문 너머 예술'을 인상깊게 본 독자라면 발걸음을 옮길 곳이 분명해질 것이다. 

   " 마티스는 아멜리의 초상화도 여러 번 그렸지만 한 번도 그녀의 마음에 들게 그린 적이 없었다. 자신의 본모습보다도 못하게 묘사되는 초상화를 보면서 어쩌면 남편이 자신을 아름답게 여기지 않거나, 혹은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78" 

 사진을 잘 찍는 법에 대해 말할 때 대상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꼽는다. 물론 기술과 타고난 미감, 마땅한 순간을 찾는 인내같은 점들도 중요하겠지만 애정을 바탕으로 대상의 장점을 끌어내야 함을 강조하는 가르침은 잘 알려져있다. 현대의 사진처럼 과거 그림으로 대상을 표현하던 때에도 비슷한 요소들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남편이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보고 애정을 의심하던 아멜리의 마음이 짐작된다.
 고등학교 시절 미술 시간 두명이 짝을 지어 상대방의 얼굴을 그리는 실기 과제가 있었다. 내 짝은 그리 친하지 않았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귀여운 미인이었는데, 그 애의 얼굴을 최대한 비슷하게 그려냈더니 '지나치게 예쁘게 그렸다'는 이유로 그리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그 애를 예쁘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예쁜 모델이었는데 예쁜애를 예쁘게 그렸다는 이유로 점수가 깎였던 것이 꽤 분했던 앙금이 있다.
 점수야 어찌되었든 그 애는 자신을 그린 그림을 마음에 들어했었고, 고마워했었다. 그 애의 이름은 잊었어도 그때 그림을 그리기 위해 유심히 바라보았던 그 얼굴만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마티스 역시 아멜리와의 불화, 사소한 다툼들은 시간이 지나 잊었어도 그녀를 그리며 바라봤던 얼굴, 그 날의 공간들은 계속해서 기억하지 않았을까. 예쁘게 그렸다고 점수를 깎일 일도 없는데 왜 굳이 아내의 얼굴을 실물보다 더 못나게 그렸는지 그 마음은 모르겠지만. 

 '창문 너머 예술'은 저자의 일상과 다양한 생각들이 작품과 엮여 마치 일기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그림과 예술작품에 대한 설명만이 주를 이루는 형식이 아니고 방송과 관련된 일을 해온 사람이라 SNS와 유명인, 대중들과 관련된 생각을 담아낸 내용들도 자주 등장한다. 어떤 문장에선 적지 않은 압박감과 괴로움이 아직도 풀어지지 않은 채 고스란히 묻어나는 듯해 많은 생각이 오갔다. 
 
 " 누군지도 모르는 존재들에 휘둘려 내 마음을 감옥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제 발로 그 감옥에 들어가기도 하고, 몇 글자의 댓글로 누군가를 그 감옥으로 보내 버리기도 한다. 의도가 의심스러운 한심한 댓글을 보며 비웃다가도,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싶은 마음에 우쭐해지기도 한다. ...중략... 가감 없이 감정을 표출하는 사람들은 상처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투사처럼 보인다. 위로받으려고 올린 글에도 돌을 던지는 사람들, 누군가를 흠집 내려고 올린 글에 신나서 몰려드는 사람들, 그런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건지, 그걸 읽는 나도 있긴 하지만. 누군지 모르는 존재들에 끊임없이 휩쓸린다. 가끔은 나도 그들과 우르르 몰려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섬뜩하다. 39" 

 " 우리는 매일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세상과 소통한다고 믿지만, 그 안에만 머물기에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온 셈이다. 59" 

 아무런 이름도 대단한 방문자들도 없는, 별 볼일 없이 소소한 나의 SNS에도 본인의 오해로 굳이 무례하고 원색적인 말을 남겨두는 사람이 간혹 있다. 하물며 더 많이 불특정한 타인에게 노출되고, 관심에 기민히 반응 해야하는 이런 유명인들은 또 얼마나 고단한 일들을 겪었을까 싶었다. 요가(145)를 통해 자신의 몸을 일깨우고, 그림을 보고 글을 쓰는 시간을 통해 내면을 살펴보며 채워온 시간들이 책에 함께 녹아있어 공감하며 읽었다.  

 책에서 소개된 수많은 작품들 중 가장 마음에 남은 작품은 빌헬름 하메르스회의 <햇살에 춤추는 먼지 티클>이란 그림(105)이다. 왜 이 그림이었을까 생각해보니 책을 읽는 동안 반복된 '우리는 어떤 공간을 꿈꾸는가? (180)', '"어떤 풍경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는가?"라고 하이데거가 물었다. (177)'는 질문에 대한 답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듯 하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 물건들로 차있지 않은 넓고  조용한 공간에 대한 바람이 투영된 끌림이었다.
 <햇살에 춤추는 먼지 티클>은 그저 창과 창을 통해서 들어오는 빛이 그려진 그림인데, 사실적인 빛에 대한 묘사도 좋았지만 그 공간이 비어있다는 점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가 표현한 다른 실내 공간들도 정적이고 정갈한 것을 보면,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추구했는지 모르겠다. 또다른 작품인 <달빛, 스트렝게제 30번지>는 햇살이 들어오던 창의 그림과 같은 공간을 두고 시간적 배경이 달라진 것만으로도 한층 무거운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다른 인상으로 공간의 감상을 변주하는 점이 재밌다.   

 '창문 너머 예술'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내용이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예술 작품과 예술가에 대해, 그리고 저자의 생활까지 함께 녹아들어간 글이라 부담없이 감상을 나눌 수 있는 책이다. 예술이란 말에 거리감이 느껴져 망설이던 독자라도, 그저 어느 날 블라인드를 걷어 창문 밖을 바라보듯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시선으로 책장 안의 예술 작품들을 넘겨 보아도 좋겠다. 


*마르크 샤갈 특별전: BEYOND TIME 5월 23일(금) ~ 9월 21일(일) 한가람미술관 제1,2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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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시대 - 독립을 넘어 쇄신을 꿈꾼 식민지 조선 사회주의 유토피아
박노자 지음, 원영수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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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시대'는 확실히 어렵다. 다만 극우 민족주의와 결합한 자본주의의 종말을 내다 본 4장에서의 '박치우'와 관련된 내용이 아니라면, 끝내 그 어떤 흥미를 갖지 못한 채 책을 덮었을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전작 중 인물들에 대한 탐구를 한 '조선 사회주의자 열전'이 떠올라 지난 저작이 독립과 사회주의에 힘쓴 인물들을 조명했다면, 이번 '붉은 시대'는 그 시대의 흐름 자체- 사상 분파 궤적과 조선 시대의 전반적 사회분석 등 폭넓고 깊게 접근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민족 개념에 대한 정리가 되어있고 현재의 남한과 북조선의 상황이 담겨 있는 5장의 내용이 가장 접근하기 좋았기 때문에, 혹 '붉은 시대'를 시작하려는데 벽이 느껴지는 독자라면 5장의 내용으로 책을 시작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1898년 민족이란 단어가 들어온 이후 "민족이 국민보다 더 넓은 개념, '국민'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여성과 청소년도 포함하는 개념(198)"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은 인상적이었다. 지금과는 결이 다른 주제가 되었지만, 민족 간 결혼의 적합성에 대한 시선이 같은 민족주의 사상가들 사이에서도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이는 내용도 흥미로웠다. 

 현재 동아시아 국가간의 관계가 어찌되었든 한국의 '붉은 시대'를 이야기함에 있어 일본, 중국, 러시아 등 각 국가별 상황에 대한 내용이 빠질 수는 없었다. 시대적으로 1900년대 초중반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일본과 강점기 상황의 특수성이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지만, '6장 1945년, 김사량의 중국 해방구 관찰'과 '7장 조선인 여행자의 눈에 비친 붉은 수도 모스크바' 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 중 7장 러시아에 대한 내용이 새로웠다. 인종, 문화적으로 일본이나 중국보다 더 차별적이기도 하고 특히 성평등의 관점에서 차이가 두드러져 흥미로웠다.
 " 조선인 목격자들의 관점에서 일부 주목할 만한 변화는 남녀 관계의 영역에서 일어났다. 공산주의에 경도된 목격자들은 여성이 작업장에서의 자기실현과 모성을 결합시킬 수 있도록 고려한 모성 보호 제도와 사회화된 어린이 보육 시스템에 찬양을 아끼지 않았다. 258" 는 내용이나 "소비에트는 남녀 모두에게 선거권을 부여했다. 264"는 내용과 더불어 성노동자에 대한 제도와 문화적 차이가 함께 설명되어 페미니즘의 시류와 여성의 인권이 어떻게 다뤄지고 있었는가 생각해보게 되기도 했다. 

 책장 안에서 한참을 골몰하다 보면 저자에 대해 생각이 미치고, 읽는 동안 역사와 사회에 대한 이해도가 왜 이토록 낮은가 자괴감이 드는 동시에 왜 독자들에게 이런 괴로움을 안겨주는가 고민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해방과 건국 당시 새로운 한국 사회를 형성하는데 있어 큰 틀을 차지했던 공산주의운동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부족했음을 절감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을 접하기에 앞서 도움이 되는 평을 구하고 감상을 나누기 위해 글을 살폈을 독서가들에게, 배워가는 마음으로 천천히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남기는 후기의 부족함에 양해와 더불어 도움의 첨언을 바란다. 

 전세계적으로 심각한 극우화 현상이 나타나고 혐오와 차별의 정서가 만연해지는 근래의 분위기는 언급된 1919년과 또 다른 '전 지구적 반란의 해(14)'가 아닐까 싶다. " 대공황과 또 한번의 세계전쟁이 분출한 인종-민족주의적 "전체주의"의 광풍 속에서 객관성과 보편성을 강조하는 진보적 근대 문화 전체의 소멸(31)"을 지켜보던 1940년대 임화의 상황과 위태로운 지금의 국제정세는 비슷한 불안감을 야기한다. 때문에 왜 지금 '조선의 붉은 시대'를 재조명하는가 다시 돌아보면 '과거는 현재를 구할 수 있는가'를 묻는 질문에 대한, 자본주의의 위기와 극우화를 향한 쇄신의 길을 제시하려는 저자의 답변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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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어린이들
이영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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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어린이'에 대한 인식이 태동하기 시작했던 것에 비해, 지금은 어떠한가. 우리 사회는 그보다 훨씬 발전하고 윤택해졌지만 어린이에 대한 의식은 다시 퇴보하고 있다. 오히려 어린이의 미성숙함에 대한 몰이해,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양육관, 복지의 사각, 노키즈 존, 일관성 없는 교육 정책, 폭력/선정적 콘텐츠에 무분별한 노출 등 사회 안에서 어린이를 방치하고 지우는 것에 더욱 몰두하고 있는지 모른다. '제국의 어린이들'을 보며 왜 지금 다시 '어린이'이고 '강점기의 어린이들'인가를 생각했다. 특히나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는 시기에 "일본인 어린이들 글에서는 전쟁이라는 국가의 짐을 내려놓은 모습이 보일 것이고, 검열을 마친 조선인 어린이들 글에서는 민족 해방이라는 짐을 내려놓은 모습이 보일 것(32)"이라는 시선의 진위여부와, 방향성이 납득 가능한 것일까 의문을 가진 채 읽었다.   

 전쟁과 식민지배와 같은 현실은 '아무 죄 없는 아이들'과는 별개의 문제로 봐야함이 맞을까. 일반 시민의 삶은 세상의 거대한 흐름에 그저 휩쓸릴 수 밖에 없다는 것에는 공감한다. 어린 아이라면 더욱더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속한 세상의 현실을 일상과 생각을 표현한 글에 담아내지 않고 있다면 그것이 과연 "완전한 '개인'의 형성을 목표로 '어린이다운 표현'에 중점을 둔(32)" 결과물이 맞을까. 가장 우수작으로 선정된 [수업료]마저도 일본에서는 식민지 조선 아이만을 대상으로 수업료를 걷는다는 차별성 때문에 드러내놓고 소개하기를 꺼렸다고 하는데, 글이 쓰여지는 과정에서 선정되는 기준에서 추구하는 주제의식이 오히려 더 분명하지 않았을까. 이 경연대회의 진의가 불미스러운 차별과 억압이 존재하는 식민지 현실을 외면하기 위한 수단이었는지 혹은 이미 세뇌되어 인식조차 되지 않음인지 살피며 읽었다. 어쩌면 이를 의식하는 것은 현재의 독자가 강점기를 역사적 관념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고, 과거의 아이들 세계에는 그를 초월하는 순수성이 살아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기획인지 알고 싶었다. 

 " 물론 조선총독상 글짓기 경연대회에서 조선인 어린이들이 출품한 작품들이 일본인 어린이들의 그것보다 훨씬 더 '착하고 어른스러워' 보이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아이들이 열등한 식민지인의 콤플렉스를 일찌감치 내재화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저 선생님의 사랑을 얻고 싶었을 수도 있다. 혹은 이 대회 심사위원들이 이런 주제 의식을 가진 작품들만 가려 뽑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62" 책에서도 같은 부분을 지목하고 있지만 두 나라 아이들의 글을 통해 생활상을 비교 분석하는 내용을 보며 불쑥 공감하기 어려운 마음이 들 때가 종종 있었다. 특히 " 일본의 패전은 그동안 일본인과 조선인 사회를 하나로 묶어 왔던 제국의 이념과 가치관을 한꺼번에 무너트렸고, 이 변화는 조선 반도에 커다란 혼란을 가져왔다. 패전을 며칠 앞뒀을 때부터 하얀 옷을 입고 길거리를 당당하게 걷던 조선인들을 보며 불안을 느끼던 재조 일본인들은 두려움 속에서 숨죽여 지내다 일본으로 돌아가야 했다. 312" 같은 내용은 남의 땅을 식민지 삼아서 배불리고 살다가 패전 후에 살아서 돌아갈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다행일텐데, 두렵고 어쩌고 얼마 되지 않는 재산만 가지고 돌아가야 했다는 구구절절이 읽는 마음을 더 좁아지게 만들기만 했다. 

 '제국의 어린이들'은 과거 어린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시대와 생활을 엿볼 수 있다는 장점과 성숙하고 순수한 표현이 돋보이는 글짓기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는 매력을 가졌다. 하지만 글 하나하나를 살피는 동안에도 눈 앞에 펼쳐진 장면 밖의, 숨겨지거나 생략된 배경을 짐작해 그려보려는 시도를 멈출 수는 없었다. 일본 아이들에게 패전 이후 반성과 교육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지난날의 과오에 대한 인정과 사과, 책임이 없고, 조선 아이들에게 광복 이후 '파시즘적으로 주입된 식민지 의식 교육(227)'과 친일행위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청산이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도 잡음이 나오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곱씹게되었다. 우리의 광복에 대해서도 일본인들은 원폭피해와 패전으로 기억할 뿐, 전쟁과 식민지배 가해자로 인식/인정하지 않고 있지 않은가. 저마다의 마음을 담은 아이들의 소담한 글을 기껍게 읽으면서도 세상의 어두운 부분에서 시선을 옮길 수 없었던 것은 아쉬웠다. 문득 지금 시대의 아이들은 어떤 글을 쓸까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의 어린이들'이란 공모가 있다면 여전히 놀랄만한 순수와 예상치 못한 감동을 줄 수 있을까 궁금함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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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찾아갈 거야
정규환 지음 / 푸른숲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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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부터 감성 가득한 사진을 연달아 싣고 시작하는 점이 독특했다. 글보다 시각적 자료에 더 익숙한 사람들에게 긴 설명이 필요없이 이게 내 감성이야, 하고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이 여겨졌다. 자신만만해 보이기도 했고, 효율적인데 싶기도 했다. 미감 같은 것이 없는 사람은 그저 부러워하며 갬성을 담아놓은 사진을 한장씩 들여다보았다. 더위가 끈질기게 달라붙는 일상에 지쳐가던 사람의 메마른 눈도 조금은 촉촉히 변하는 듯 했다. 

 초등학교 수련회 때 전교생 앞에서 '장기를 자랑'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던 경험을 읽으며 기억 속에 묻어두었던 일이 떠올랐다. 학교를 대표해서 대회에 나가보라는 권유를 받은 적 있었는데, 당시 사춘기였고 솔직히 부담이 됐던 나는 해보기를 포기했다. 나가볼래,했던 권유가 나가, 왜 안나가!하는 강요로 바뀌었고 선생님이 모난 눈으로 날 다그치는 동안 묵묵히 거부만 했다. 전교생 앞에서 개미 두 마리(20), 하는 춤을 추었던 저자의 이야기를 보고나니 부담스럽단 이유로 학기 내내 미운털이 박혀 담임의 눈치를 보느니 그깟 대회 그냥 나가볼걸 하는 생각이 이제와 들었다. 

 사소한 공감 뒤에는 조금씩 웃음이 따라붙었다.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대신, 면허를 따지 않아도 될 이유를 다양하게도 꼽는 면허를 소지한듯한 저자의 달변도 재밌고, '해외여행이 싫어졌다'며 '그 와중에 유명인들이 낯선 곳에서 먹고 놀고 장사를 하는 예능은 최고로 싫다(39)'고 단언하는 호쾌함에는 웃음이 나왔다. 레몬빛에 가까운 밝은 노란색 표지의 책을 낸 사람이 '핑크색 책은 고르지 않는다(50)'는 자신만의 기준을 말할 땐 입술을 말아물고 웃었다. 하우 투 텍스트힙이라니. 가장 흥미진진하게 읽은 이야기(94)와 명대사(144)는 따로 있지만 내용을 밝히지는 않겠다. 읽어보시라, 그럼 안다. 

 한참 웃으며 책을 읽다가 문득 남은 장수가 얼마 없다는 걸 깨달았다. 분명 시작은 추천사와 사진들로 꾸며져 있었는데 끝은 어떠한 마무리 없이 마지막 이야기가 끝나면서 함께 정리되었다. 영화를 봐도 끝에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처럼, 요즘은 버티고 버텨 쿠키 영상까지 보고서야 끝이 나는 것처럼 마지막에도 뭔가 더 있을 것이라 기대했는데 없었다. 마치 영화가 끝나자마자 엔딩 크레딧 조차 올라가지 않고 상영관에 불이 훤히 켜진 채 쫓겨난 기분이었다. 어쩌면 쿨하지 못한데 눈치까지 없는 손님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재미있게 읽었고 갑작스러운 끝이 아쉽다는 뜻이다. 

 시작부터 유부 게이임을 밝히는 솔직함에 구남친이자 현남편 자랑을 알차게 끼워넣는 팔불출 면모를 밉지 않게 드러내는데, 전화하다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하자며 끊이질 않는 찰진 수다를 떠는 친구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재밌게 술술 읽히는 에세이이니 가볍게 읽어볼만 하다. 입추가 지났는데도 눅눅히 들러붙는 여름때문에 몸도 마음도 늘어지는 주말 오후, 돈이나 성공을 운운하지 않는 은유적인 제목에 사람 얼굴이 대뜸 표지에 실려 눈앞에 들이밀어지지도 않아 들고 다닐 수 있을 만큼 '힙'해보이는 '사랑을 찾아갈 거야'를 읽어보자. 무료함을 채우고 활기를 불러올만한 제법 야무지고 찰진 읽을 맛을 선사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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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넘어 도망친 21살 대학생 - 울면서 떠난 세계여행, 2년의 방황 끝에 꿈을 찾다, 2024년 올해의 청소년 교양도서
홍시은 지음 / 푸른향기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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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멋대로 흩날리는 머리카락, 편하지 않은 것은 어느 것도 걸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옷차림, 기능에만 충실하겠다는 기물들, 멀리 보이는 낡고 거대한 피라미드와 고집 센 자아가 느껴지는 뒷모습이 어우러진 표지가 묘하다. 21살 대학생이 학교에서 도망쳐 울면서 세계여행을 떠난 2년간의 이야기를 두고, 책에는 자랑스럽게 2024년 청소년 교양도서 추천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이것 또한 묘하다. 미래를 위해 열심히 공부해서 진학을 하라고 목표를 쥐어주었다가 이제는 꿈을 위해 학교 밖으로 나가라고 한다. 이 묘한 궁금증을 다 읽고 나면 납득할 수 있을까. 

 " 반대로 나는 몸뚱이에서 터져 나오는 실을 뜯어내는 데에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모든 강의가 비대면으로 전환된 이후 얄팍했던 의지마저 박살이 났다. 나는 어떠한 열정도 느끼지 못했다. 강의를 듣는 것도, 책을 펴는 것도, 심지어 의미 없이 숨을 쉬고 있는 것조차 귀찮았다. 하지만 학업을 쉽게 멈출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두려움이었다. 쓸모없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은 두려움, 사회에서 버려지고 싶지 않은 두려움, 뒤처지고 싶지 않은 두려움이 나를 엄습했다. 결국, 용기를 내어 학교를 도망쳐 나오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21" 

 그런 의문을 예상하기라도 했다는 듯 이 '떠남'에 대한 이유를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세상을 마주보고 사람을 경험하고 실수와 실패에 부딪혀봐야 할, 성숙의 거리감을 코로나에 빼앗긴 세대를 조금쯤 이해하게 되었다. 그동안 타인을 NPC처럼 취급한다, 마땅한 대답이나 반응없이 상대방을 응시하기만 한다, 마스크를 벗는 것에 민감하다 등등 요즘 MZ라는 말로 뭉뚱그려 버렸던 세대의 속마음을 조금이나마 들어본 듯 했다. 게다가 다들 문을 닫고 더욱 안으로 고립되기를 힘썼던 코로나 시기에 떠난 여행이라니 사람이 사라지고 시간이 멈춘 듯한 관광지들을 오롯이 차지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 떠날만 했구나 이해가 됐다.   

 아프리카에서 보냈던 시간들 중에 춤에 대한 이야기(90)는 꽤나 공감도 되고 감동적이었다. 부족함을 내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함께이고 싶어하는 마음 모두가 이해가 됐다. 무심히 한 말을 꼭 지키려는 카툴라(109)를 통해 그동안 뿌려두었던 빈말들을 반성하기도 했다. 전에 같이 일했던 사람이 다이버가 되기 위해 회사 밖으로 뛰쳐나간 적이 있는데 그가 말했던 '다합(115)'이라는 곳이 어떤 의미인지 이제서야 이해했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인도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비겁하지만 그 '인도스러움'을 보며 나는 가지 않을/못할 그 곳을 누군가 대신 경험해서 알려준다는 점이 좋았다. 세상 가기 어려울만한 여행지를 골라다닌 저자 덕분에 열정과 기운 가득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전설이 된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원래는 '무모한 도전'이었던 것처럼, 그의 도전은 때로 너무하다시피 무모하다. 특히 비자가 없는 상태에서 우간다에 입국하려고 한 시도나 숙소없이 밤길을 걷다 지나가는 할머니에게 재워달라고 했다는 주항의 일화(126)는, 게다가 무지와 무례를 포용해준 상대의 선의와 예외적 경우를 두고 '우리가 경험하는 기적의 갯수는 얼마만큼 무모한 세상에 닿았느냐가 결정한다며 최악의 결과를 예상하고 책임질 용기가 있다면 몇 번이고 기적에 닿을 때까지 몸을 던져도 된다(49)'며 말을 맺는 부분은 어리석다고 여겨졌다. 낯선 나라에서 책임져야 할 최악의 결과가 대체 무엇일줄 알고. 안전하게 최선을 다해 준비해도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 자기 생에 주어진 시간과 젊음도 아껴야 한다. 

 " 세상에 없으면 안 되는 것은 없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온 것들마저 일상에서 비롯된 착각일 수도 있다. 74" 

 어느날 갑자기 자유를 꿈꾸며 세상 밖으로 뛰쳐 나가는 젊음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흔하다. 솔직하자면 '낭만'이 있기는 한 것 같은데 그것이 더이상 특별하거나 고유하지는 않기도 하고, 시간이 흐르고 체력이 고갈되면서 일상을 충실히 쌓아가는 사람들의 꾸준함에 더 매혹되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도망이 마주보기보다 더 쉽다는 것을 삶의 앞으로 끌려나갈 때마다 느꼈다. 하지만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것도 좋다. 도망쳐서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시간을 갖는다는 건 젊음의 특권 아니겠는가. 젊음들에게는 시간이 많고 때로 서툴긴해도 그 모든 것을 품을 수 있을만큼 유연하다. 그가 만난 사람들, 경험했던 비일상, 느꼈던 감정들이 가슴 속에 오랜 시간동안 남아 새로운 도전을 위한 힘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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