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시대 - 독립을 넘어 쇄신을 꿈꾼 식민지 조선 사회주의 유토피아
박노자 지음, 원영수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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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시대'는 확실히 어렵다. 다만 극우 민족주의와 결합한 자본주의의 종말을 내다 본 4장에서의 '박치우'와 관련된 내용이 아니라면, 끝내 그 어떤 흥미를 갖지 못한 채 책을 덮었을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전작 중 인물들에 대한 탐구를 한 '조선 사회주의자 열전'이 떠올라 지난 저작이 독립과 사회주의에 힘쓴 인물들을 조명했다면, 이번 '붉은 시대'는 그 시대의 흐름 자체- 사상 분파 궤적과 조선 시대의 전반적 사회분석 등 폭넓고 깊게 접근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민족 개념에 대한 정리가 되어있고 현재의 남한과 북조선의 상황이 담겨 있는 5장의 내용이 가장 접근하기 좋았기 때문에, 혹 '붉은 시대'를 시작하려는데 벽이 느껴지는 독자라면 5장의 내용으로 책을 시작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1898년 민족이란 단어가 들어온 이후 "민족이 국민보다 더 넓은 개념, '국민'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여성과 청소년도 포함하는 개념(198)"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은 인상적이었다. 지금과는 결이 다른 주제가 되었지만, 민족 간 결혼의 적합성에 대한 시선이 같은 민족주의 사상가들 사이에서도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이는 내용도 흥미로웠다. 

 현재 동아시아 국가간의 관계가 어찌되었든 한국의 '붉은 시대'를 이야기함에 있어 일본, 중국, 러시아 등 각 국가별 상황에 대한 내용이 빠질 수는 없었다. 시대적으로 1900년대 초중반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일본과 강점기 상황의 특수성이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지만, '6장 1945년, 김사량의 중국 해방구 관찰'과 '7장 조선인 여행자의 눈에 비친 붉은 수도 모스크바' 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 중 7장 러시아에 대한 내용이 새로웠다. 인종, 문화적으로 일본이나 중국보다 더 차별적이기도 하고 특히 성평등의 관점에서 차이가 두드러져 흥미로웠다.
 " 조선인 목격자들의 관점에서 일부 주목할 만한 변화는 남녀 관계의 영역에서 일어났다. 공산주의에 경도된 목격자들은 여성이 작업장에서의 자기실현과 모성을 결합시킬 수 있도록 고려한 모성 보호 제도와 사회화된 어린이 보육 시스템에 찬양을 아끼지 않았다. 258" 는 내용이나 "소비에트는 남녀 모두에게 선거권을 부여했다. 264"는 내용과 더불어 성노동자에 대한 제도와 문화적 차이가 함께 설명되어 페미니즘의 시류와 여성의 인권이 어떻게 다뤄지고 있었는가 생각해보게 되기도 했다. 

 책장 안에서 한참을 골몰하다 보면 저자에 대해 생각이 미치고, 읽는 동안 역사와 사회에 대한 이해도가 왜 이토록 낮은가 자괴감이 드는 동시에 왜 독자들에게 이런 괴로움을 안겨주는가 고민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해방과 건국 당시 새로운 한국 사회를 형성하는데 있어 큰 틀을 차지했던 공산주의운동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부족했음을 절감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을 접하기에 앞서 도움이 되는 평을 구하고 감상을 나누기 위해 글을 살폈을 독서가들에게, 배워가는 마음으로 천천히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남기는 후기의 부족함에 양해와 더불어 도움의 첨언을 바란다. 

 전세계적으로 심각한 극우화 현상이 나타나고 혐오와 차별의 정서가 만연해지는 근래의 분위기는 언급된 1919년과 또 다른 '전 지구적 반란의 해(14)'가 아닐까 싶다. " 대공황과 또 한번의 세계전쟁이 분출한 인종-민족주의적 "전체주의"의 광풍 속에서 객관성과 보편성을 강조하는 진보적 근대 문화 전체의 소멸(31)"을 지켜보던 1940년대 임화의 상황과 위태로운 지금의 국제정세는 비슷한 불안감을 야기한다. 때문에 왜 지금 '조선의 붉은 시대'를 재조명하는가 다시 돌아보면 '과거는 현재를 구할 수 있는가'를 묻는 질문에 대한, 자본주의의 위기와 극우화를 향한 쇄신의 길을 제시하려는 저자의 답변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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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어린이들
이영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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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어린이'에 대한 인식이 태동하기 시작했던 것에 비해, 지금은 어떠한가. 우리 사회는 그보다 훨씬 발전하고 윤택해졌지만 어린이에 대한 의식은 다시 퇴보하고 있다. 오히려 어린이의 미성숙함에 대한 몰이해,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양육관, 복지의 사각, 노키즈 존, 일관성 없는 교육 정책, 폭력/선정적 콘텐츠에 무분별한 노출 등 사회 안에서 어린이를 방치하고 지우는 것에 더욱 몰두하고 있는지 모른다. '제국의 어린이들'을 보며 왜 지금 다시 '어린이'이고 '강점기의 어린이들'인가를 생각했다. 특히나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는 시기에 "일본인 어린이들 글에서는 전쟁이라는 국가의 짐을 내려놓은 모습이 보일 것이고, 검열을 마친 조선인 어린이들 글에서는 민족 해방이라는 짐을 내려놓은 모습이 보일 것(32)"이라는 시선의 진위여부와, 방향성이 납득 가능한 것일까 의문을 가진 채 읽었다.   

 전쟁과 식민지배와 같은 현실은 '아무 죄 없는 아이들'과는 별개의 문제로 봐야함이 맞을까. 일반 시민의 삶은 세상의 거대한 흐름에 그저 휩쓸릴 수 밖에 없다는 것에는 공감한다. 어린 아이라면 더욱더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속한 세상의 현실을 일상과 생각을 표현한 글에 담아내지 않고 있다면 그것이 과연 "완전한 '개인'의 형성을 목표로 '어린이다운 표현'에 중점을 둔(32)" 결과물이 맞을까. 가장 우수작으로 선정된 [수업료]마저도 일본에서는 식민지 조선 아이만을 대상으로 수업료를 걷는다는 차별성 때문에 드러내놓고 소개하기를 꺼렸다고 하는데, 글이 쓰여지는 과정에서 선정되는 기준에서 추구하는 주제의식이 오히려 더 분명하지 않았을까. 이 경연대회의 진의가 불미스러운 차별과 억압이 존재하는 식민지 현실을 외면하기 위한 수단이었는지 혹은 이미 세뇌되어 인식조차 되지 않음인지 살피며 읽었다. 어쩌면 이를 의식하는 것은 현재의 독자가 강점기를 역사적 관념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고, 과거의 아이들 세계에는 그를 초월하는 순수성이 살아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기획인지 알고 싶었다. 

 " 물론 조선총독상 글짓기 경연대회에서 조선인 어린이들이 출품한 작품들이 일본인 어린이들의 그것보다 훨씬 더 '착하고 어른스러워' 보이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아이들이 열등한 식민지인의 콤플렉스를 일찌감치 내재화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저 선생님의 사랑을 얻고 싶었을 수도 있다. 혹은 이 대회 심사위원들이 이런 주제 의식을 가진 작품들만 가려 뽑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62" 책에서도 같은 부분을 지목하고 있지만 두 나라 아이들의 글을 통해 생활상을 비교 분석하는 내용을 보며 불쑥 공감하기 어려운 마음이 들 때가 종종 있었다. 특히 " 일본의 패전은 그동안 일본인과 조선인 사회를 하나로 묶어 왔던 제국의 이념과 가치관을 한꺼번에 무너트렸고, 이 변화는 조선 반도에 커다란 혼란을 가져왔다. 패전을 며칠 앞뒀을 때부터 하얀 옷을 입고 길거리를 당당하게 걷던 조선인들을 보며 불안을 느끼던 재조 일본인들은 두려움 속에서 숨죽여 지내다 일본으로 돌아가야 했다. 312" 같은 내용은 남의 땅을 식민지 삼아서 배불리고 살다가 패전 후에 살아서 돌아갈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다행일텐데, 두렵고 어쩌고 얼마 되지 않는 재산만 가지고 돌아가야 했다는 구구절절이 읽는 마음을 더 좁아지게 만들기만 했다. 

 '제국의 어린이들'은 과거 어린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시대와 생활을 엿볼 수 있다는 장점과 성숙하고 순수한 표현이 돋보이는 글짓기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는 매력을 가졌다. 하지만 글 하나하나를 살피는 동안에도 눈 앞에 펼쳐진 장면 밖의, 숨겨지거나 생략된 배경을 짐작해 그려보려는 시도를 멈출 수는 없었다. 일본 아이들에게 패전 이후 반성과 교육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지난날의 과오에 대한 인정과 사과, 책임이 없고, 조선 아이들에게 광복 이후 '파시즘적으로 주입된 식민지 의식 교육(227)'과 친일행위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청산이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도 잡음이 나오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곱씹게되었다. 우리의 광복에 대해서도 일본인들은 원폭피해와 패전으로 기억할 뿐, 전쟁과 식민지배 가해자로 인식/인정하지 않고 있지 않은가. 저마다의 마음을 담은 아이들의 소담한 글을 기껍게 읽으면서도 세상의 어두운 부분에서 시선을 옮길 수 없었던 것은 아쉬웠다. 문득 지금 시대의 아이들은 어떤 글을 쓸까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의 어린이들'이란 공모가 있다면 여전히 놀랄만한 순수와 예상치 못한 감동을 줄 수 있을까 궁금함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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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찾아갈 거야
정규환 지음 / 푸른숲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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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부터 감성 가득한 사진을 연달아 싣고 시작하는 점이 독특했다. 글보다 시각적 자료에 더 익숙한 사람들에게 긴 설명이 필요없이 이게 내 감성이야, 하고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이 여겨졌다. 자신만만해 보이기도 했고, 효율적인데 싶기도 했다. 미감 같은 것이 없는 사람은 그저 부러워하며 갬성을 담아놓은 사진을 한장씩 들여다보았다. 더위가 끈질기게 달라붙는 일상에 지쳐가던 사람의 메마른 눈도 조금은 촉촉히 변하는 듯 했다. 

 초등학교 수련회 때 전교생 앞에서 '장기를 자랑'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던 경험을 읽으며 기억 속에 묻어두었던 일이 떠올랐다. 학교를 대표해서 대회에 나가보라는 권유를 받은 적 있었는데, 당시 사춘기였고 솔직히 부담이 됐던 나는 해보기를 포기했다. 나가볼래,했던 권유가 나가, 왜 안나가!하는 강요로 바뀌었고 선생님이 모난 눈으로 날 다그치는 동안 묵묵히 거부만 했다. 전교생 앞에서 개미 두 마리(20), 하는 춤을 추었던 저자의 이야기를 보고나니 부담스럽단 이유로 학기 내내 미운털이 박혀 담임의 눈치를 보느니 그깟 대회 그냥 나가볼걸 하는 생각이 이제와 들었다. 

 사소한 공감 뒤에는 조금씩 웃음이 따라붙었다.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대신, 면허를 따지 않아도 될 이유를 다양하게도 꼽는 면허를 소지한듯한 저자의 달변도 재밌고, '해외여행이 싫어졌다'며 '그 와중에 유명인들이 낯선 곳에서 먹고 놀고 장사를 하는 예능은 최고로 싫다(39)'고 단언하는 호쾌함에는 웃음이 나왔다. 레몬빛에 가까운 밝은 노란색 표지의 책을 낸 사람이 '핑크색 책은 고르지 않는다(50)'는 자신만의 기준을 말할 땐 입술을 말아물고 웃었다. 하우 투 텍스트힙이라니. 가장 흥미진진하게 읽은 이야기(94)와 명대사(144)는 따로 있지만 내용을 밝히지는 않겠다. 읽어보시라, 그럼 안다. 

 한참 웃으며 책을 읽다가 문득 남은 장수가 얼마 없다는 걸 깨달았다. 분명 시작은 추천사와 사진들로 꾸며져 있었는데 끝은 어떠한 마무리 없이 마지막 이야기가 끝나면서 함께 정리되었다. 영화를 봐도 끝에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처럼, 요즘은 버티고 버텨 쿠키 영상까지 보고서야 끝이 나는 것처럼 마지막에도 뭔가 더 있을 것이라 기대했는데 없었다. 마치 영화가 끝나자마자 엔딩 크레딧 조차 올라가지 않고 상영관에 불이 훤히 켜진 채 쫓겨난 기분이었다. 어쩌면 쿨하지 못한데 눈치까지 없는 손님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재미있게 읽었고 갑작스러운 끝이 아쉽다는 뜻이다. 

 시작부터 유부 게이임을 밝히는 솔직함에 구남친이자 현남편 자랑을 알차게 끼워넣는 팔불출 면모를 밉지 않게 드러내는데, 전화하다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하자며 끊이질 않는 찰진 수다를 떠는 친구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재밌게 술술 읽히는 에세이이니 가볍게 읽어볼만 하다. 입추가 지났는데도 눅눅히 들러붙는 여름때문에 몸도 마음도 늘어지는 주말 오후, 돈이나 성공을 운운하지 않는 은유적인 제목에 사람 얼굴이 대뜸 표지에 실려 눈앞에 들이밀어지지도 않아 들고 다닐 수 있을 만큼 '힙'해보이는 '사랑을 찾아갈 거야'를 읽어보자. 무료함을 채우고 활기를 불러올만한 제법 야무지고 찰진 읽을 맛을 선사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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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넘어 도망친 21살 대학생 - 울면서 떠난 세계여행, 2년의 방황 끝에 꿈을 찾다, 2024년 올해의 청소년 교양도서
홍시은 지음 / 푸른향기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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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멋대로 흩날리는 머리카락, 편하지 않은 것은 어느 것도 걸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옷차림, 기능에만 충실하겠다는 기물들, 멀리 보이는 낡고 거대한 피라미드와 고집 센 자아가 느껴지는 뒷모습이 어우러진 표지가 묘하다. 21살 대학생이 학교에서 도망쳐 울면서 세계여행을 떠난 2년간의 이야기를 두고, 책에는 자랑스럽게 2024년 청소년 교양도서 추천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이것 또한 묘하다. 미래를 위해 열심히 공부해서 진학을 하라고 목표를 쥐어주었다가 이제는 꿈을 위해 학교 밖으로 나가라고 한다. 이 묘한 궁금증을 다 읽고 나면 납득할 수 있을까. 

 " 반대로 나는 몸뚱이에서 터져 나오는 실을 뜯어내는 데에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모든 강의가 비대면으로 전환된 이후 얄팍했던 의지마저 박살이 났다. 나는 어떠한 열정도 느끼지 못했다. 강의를 듣는 것도, 책을 펴는 것도, 심지어 의미 없이 숨을 쉬고 있는 것조차 귀찮았다. 하지만 학업을 쉽게 멈출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두려움이었다. 쓸모없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은 두려움, 사회에서 버려지고 싶지 않은 두려움, 뒤처지고 싶지 않은 두려움이 나를 엄습했다. 결국, 용기를 내어 학교를 도망쳐 나오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21" 

 그런 의문을 예상하기라도 했다는 듯 이 '떠남'에 대한 이유를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세상을 마주보고 사람을 경험하고 실수와 실패에 부딪혀봐야 할, 성숙의 거리감을 코로나에 빼앗긴 세대를 조금쯤 이해하게 되었다. 그동안 타인을 NPC처럼 취급한다, 마땅한 대답이나 반응없이 상대방을 응시하기만 한다, 마스크를 벗는 것에 민감하다 등등 요즘 MZ라는 말로 뭉뚱그려 버렸던 세대의 속마음을 조금이나마 들어본 듯 했다. 게다가 다들 문을 닫고 더욱 안으로 고립되기를 힘썼던 코로나 시기에 떠난 여행이라니 사람이 사라지고 시간이 멈춘 듯한 관광지들을 오롯이 차지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 떠날만 했구나 이해가 됐다.   

 아프리카에서 보냈던 시간들 중에 춤에 대한 이야기(90)는 꽤나 공감도 되고 감동적이었다. 부족함을 내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함께이고 싶어하는 마음 모두가 이해가 됐다. 무심히 한 말을 꼭 지키려는 카툴라(109)를 통해 그동안 뿌려두었던 빈말들을 반성하기도 했다. 전에 같이 일했던 사람이 다이버가 되기 위해 회사 밖으로 뛰쳐나간 적이 있는데 그가 말했던 '다합(115)'이라는 곳이 어떤 의미인지 이제서야 이해했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인도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비겁하지만 그 '인도스러움'을 보며 나는 가지 않을/못할 그 곳을 누군가 대신 경험해서 알려준다는 점이 좋았다. 세상 가기 어려울만한 여행지를 골라다닌 저자 덕분에 열정과 기운 가득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전설이 된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원래는 '무모한 도전'이었던 것처럼, 그의 도전은 때로 너무하다시피 무모하다. 특히 비자가 없는 상태에서 우간다에 입국하려고 한 시도나 숙소없이 밤길을 걷다 지나가는 할머니에게 재워달라고 했다는 주항의 일화(126)는, 게다가 무지와 무례를 포용해준 상대의 선의와 예외적 경우를 두고 '우리가 경험하는 기적의 갯수는 얼마만큼 무모한 세상에 닿았느냐가 결정한다며 최악의 결과를 예상하고 책임질 용기가 있다면 몇 번이고 기적에 닿을 때까지 몸을 던져도 된다(49)'며 말을 맺는 부분은 어리석다고 여겨졌다. 낯선 나라에서 책임져야 할 최악의 결과가 대체 무엇일줄 알고. 안전하게 최선을 다해 준비해도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 자기 생에 주어진 시간과 젊음도 아껴야 한다. 

 " 세상에 없으면 안 되는 것은 없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온 것들마저 일상에서 비롯된 착각일 수도 있다. 74" 

 어느날 갑자기 자유를 꿈꾸며 세상 밖으로 뛰쳐 나가는 젊음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흔하다. 솔직하자면 '낭만'이 있기는 한 것 같은데 그것이 더이상 특별하거나 고유하지는 않기도 하고, 시간이 흐르고 체력이 고갈되면서 일상을 충실히 쌓아가는 사람들의 꾸준함에 더 매혹되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도망이 마주보기보다 더 쉽다는 것을 삶의 앞으로 끌려나갈 때마다 느꼈다. 하지만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것도 좋다. 도망쳐서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시간을 갖는다는 건 젊음의 특권 아니겠는가. 젊음들에게는 시간이 많고 때로 서툴긴해도 그 모든 것을 품을 수 있을만큼 유연하다. 그가 만난 사람들, 경험했던 비일상, 느꼈던 감정들이 가슴 속에 오랜 시간동안 남아 새로운 도전을 위한 힘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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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쑤(김수연) 지음 / 푸른향기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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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정성을 가장 앞에 두고 생각하는 성향인데다 자산 관리에 관해서는 굉장히 보수적인 사람이라 다른 사람들이 주식이나 코인으로 돈을 벌었다고 해도 '좋겠다, 부럽다'고만 할 뿐 직접 시도해 본 적은 없다. 처음 카드를 만들 적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쓸 수 있는 금액 이상의 소비를 해보지도 않았다. 필요할 때 없으면 사람을 가장 아쉽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돈이고, 세상 내 마음대로 되는 것들이 그리 많지 않은데 나의 소득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는 그나마 내 계획과 영향 아래에서 조절할 수 있는 것 중 하나였다. 이렇게 잔잔히 흘러가는 경제 생활 속에서 하나의 변수가 있다면 바로 노후다. 우리사회는 갈수록 더 젊은 나이에 인력을 교체하고 있고, 사람들의 기대 수명은 갈수록 연장되어 간다. '지금'은 괜찮지만 '앞으로'의 생활도 계속 괜찮을 수 있을까? 이런 불안이 고개를 들 무렵 '직장인 연금저축으로 1억 모으기'를 읽게 됐다. 

 개인적으로는 1억을 모으겠다는 목표나 의지는 없었다. 모으는 건 나중에 하고 우선은 빚이나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컸는데 읽다보니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 되는 거 아닐까 마음이 움직인다. 경제나 자산 관리 같은 분야에 대해서는 백지나 다름없이 아는 것이 없어서 읽다가 몇번이나 잠드는 건 아닐까 걱정했었는데 생각보다 잘 읽혀서 조금 들여다보다 보니 몇 장이나 페이지가 넘어가 있었다. 멋모르고 삼성전자 주식을 사모으던 경험부터 너무나도 화제가 됐던 '10만 전자' 주식 바람이 휩쓸었던 때까지 이어지는 내용이 자연스럽고 흥미진진해 자연스럽게 몰입이 되기 시작했다. 카드 명세서를 보면서 이걸 다 누가 썼나 확인해보는 것도, 언제까지 지금의 수입이 지속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는 것도 공감하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주제들이었다. 굉장히 솔직하게 '괜찮은 척'했던 자신의 모습을 솔직히 드러냈는데 뭘 그렇게까지 싶으면서도 공감되는 부분도 있다. 

 전문 용어가 나오지만 생각보다 어렵지 않네, 싶어진다. 특히 IRP로 세액 공제가 되는 투자를 통해 자연스럽게 연말정산도 대비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주는 점이 보수적인 예비 투자자의 마음도 사로잡았다. 삼전 주식 때도 그렇지만, 연금저축 한도 700만원을 채우기 위해 모아둔 액세서리를 팔던 부분에서는 당시에 비해 무섭도록 오른 금 가격과 앞으로의 정세가 불확실하니 금을 안전자산으로 보유해두는 것에 대해서 비교해보게 되기도 했다. 물론 저자는 내가 이렇게 재고 따지는 동안 더 열심히 새로운 자산 관리 종목을 찾아 움직일 것이다. 때로는 성급히 가입한 상품을 섣불리 해지하기도 하면서. 자산 관리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루기도 하지만 이렇게 개인적인 경험을 담아내고 소소한 일상을 '투자에 도움 되는 뚜벅이 직장인의 습관(126)' 같은 내용에서 마치 글로 보는 브이로그처럼 소개하기도 해서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이렇게 열심히 발전시켜 나간 정보를 다 공개해도 괜찮을까 궁금할만큼 열심히 정보를 알려준다. ETF 투자 상품의 목록을 줄줄이 실어 놓기도 하고 연금저축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다양한 대상으로 나눠 알려준다. 책을 통해 ISA에 대해서는 처음 알게 되었는데 어떤 장점이 있는지 하나씩 꼽아가며 소개하고, 직접 얼마의 금액으로 어느 기간동안 투자해서 어떻게 공제를 받을 수 있는지 '숫자'로 보여주니 더 관심이 가게 된다. 특히 '아껴서' 투자하는 꾸미지 않은 실생활을 보여주며 관리를 이야기하기 때문에 투자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자연스럽게 아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는 점이 좋게 보였다. 자산 관리에 대해 잘 모르지만 리스크가 적고, 연말정산 세액공제가 되는 투자를 알아보고 싶다면 이 책을 첫 시작으로 삼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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