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유튜브에서 아들을 구출해 왔다 교양 100그램 8
권정민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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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1일 책에서도 언급된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동 사건 가담자 중 한명이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억울함을 호소하며 오열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법원 기물을 파손시키며 건물 안에서 난동을 부릴 때는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던 것일까. 무엇이 그들을 맹목적으로 행동하도록 만들었을까. 계엄을 옹호하는 극우와 그들을 따르는 이들, 심지어 공개된 판사의 이름을 부르며 위협을 가하려 협박하고 건물에 방화를 시도하려는 행동력을 가진 이 젊은 세대에게는 어떤 시작이 있었을까. 창비에서 나오는 교양 100그램 시리즈를 늘 반기지만, 특히 이번 책은 더더욱 반가웠다. '극우 유튜브에서 아들을 구출해 왔다'는 제목을 보았을 때 책이 이 질문과 현상에 대한 답이 되어줄 것 같았다. 

 아이를 대상으로 한 이야기이지만 아주 넓은 범위로 확대된 대상들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내용이라 생각하며 읽었다. 저자의 경우 어린시절부터 교육과 대화에 많은 노력을 들인 덕분인지 아이가 어떤 의견이 생기면 숨기지 않고 이야기하고 열린 자세로 대화를 이어나간다. 덕분에 저자는 아이가 지금 어떤 주장에 영향을 받아 어떤 상황에 있는지 바로 확인하고 대화로 풀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아마 자신들이 하는 말, 물든 혐오가 사실은 떳떳하지 않다는 것을 은연 중 감지하고 보호자의 앞에선 티를 내지 않을 경우가 더 많다. 자신들이 보는 자극적인 말과 행동들이 나오는 쇼츠나 유튜브 채널을 보호자에게 공개하게 된다면, 거기서 얻게 된 혐오와 차별적인 자신의 말과 생각, 별 생각없이 그저 재미로 하는 정치인과 지역, 성별 등에 대한 비하와 욕설을 공공연한 장소에서 자신의 신상을 숨기지 않고 공표해야 한다면 이에 당당할 수 있을까? 사고가 굳어 신념이 되고 뿌리깊은 확고함이 생긴 어른의 경우라면 몰라도 아이들의 경우에는 대부분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상에 노출되고 자신도 모르게 물들더라도 질문이나 직접적인 태도로 표내지 않고 은연중에 드러내거나 실수로 티내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보호자가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이런 변화를 알아봐야 할 것이다. 

 " "내가 힘들다고 해서 남을 미워하면 안 돼. 그건 어리석은 짓이야. 남을 미워한다고 나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거든." 내가 힘들면 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어렵고 고된 길이지요. 남을 미워함으로써 나의 문제를 가리려는 손쉬운 태도가 생겨나는 이유입니다. 이는 곧 혐오가 자라나는 토양이 됩니다. 이와 같은 마음가짐으로는 문제가 절대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결론적으로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 아니라는 점을, 부모만이 알려줄 수 있는 공존의 가치관을 담백하게 들려줄 필요가 있겠습니다. 61"
 '여성가족부 폐지가 왜 남자인 너에게도 손해인지.(7)'를 설명하는 데에 손익으로 사회 구조를 헤아려야만 이해할 수 있다는 점도 안타까웠다. 누군가의 곤궁함이 그의 삶을 존중하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함께 책임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빈곤층을 줄이고 안전망을 두텁게 하는 것이 사회 비용에 도움이 된다는 셈으로 더 간단히 이해된다는 현실이 아쉽다. 모두가 함께 살아가기 때문이지, 보다 너도 손해야, 라고 해야 생각을 바꿀 수 있다. 성인들 중에서도 쉽게 혐오와 차별을 말하는 사람들은 '나도 힘든데' 같은 말이나 '내가 낸 세금으로'라는 말을 잘 사용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아동급식카드로 비싼 음식을 사먹는 것을 보았다며 세금 낭비라는 민원을 넣은 사람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타인을 끌어내려 나보다 낮은 자리에 두어야 만족하거나, 계급을 나눠 그 수준에 맞게 행동하고 소비해야만 한다는 틀에 묶어두려 하는 것이다. 제도와 복지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나의 손해를 야기하는 일도 아니고, 그 혜택으로 인해 누군가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수 있다는 것이 나를 위협하는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셈을 한다. 그런 세상에 아이들이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건강한 대화법 7계명 중 다섯번 째 ''나도 모른다'고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말자'였다. 자신들의 논리로 꽉 차있는 강력한 주장 앞에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그저 말을 하지 않았었다. 다툼을 피하고 싶기도 했고, 그들이 두른 주장이 단단하고 믿음이 두터워서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고 시간만 소모할 것 같았다. 혹여나 내 답이 빈약하면 그 꼬투리를 잡아 한겹 더 두터운 주장을 내세우겠지 싶었다.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단톡방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넓은 범위에서도 과시와 함께 혐오는 쉽게 표현되면서 그에 반하는 발언은 무시되거나 공격당하는 현상을 공감할 수 있었다. 익명에 기댄 인터넷 공간 안에서 얼마나 쉽게 여성과 장애인, 성소수자 등을 빗댄 욕설을 하는지. 그 비하와 욕설의 쓰임이 얼마나 마땅하고, 재미있고, 인정받는 행위로 여겨지던가 보면 알 수 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려면 반발과 비난에 맞설 용기와 주장이 필요할 정도다. 진지하고 신중한 태도가 오히려 답답하고 분위기 파악 못하는 벌레로 불리며 비아냥 받는 문화에서 '말하기를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른도 그러한데 또래와 다름이 사회생활의 종료 선고나 다름없을 아이들에게는 더 어려우리라 여겨진다. 그러니 더더욱 성인들의 말과 행동도 달라져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인스타에서 기다리던 '극우 유튜브에서 아들을 구출해 왔다' 출간 소식을 듣고 반가워서 달려가 댓글을 남겼다. 저자의 글을 SNS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그때도 관심있게 봤었는데 창비에서 관심있게 보고 있던 교양 100그램 시리즈로 출간된다는 소식이 기뻤었다. 인스타 알고리즘 때문인지 그 뒤로 다시 그 게시물이 피드에 떴는데 다른 게시물들에 비해 댓글이 유난히 많길래 들어가보니 차마 두고보기 어려운 댓글들이 그새 여럿 달려있었다. 주로 책과 관련된 내용이 올라오다보니 외면하기 쉬웠는데, 세상에는 분명 저런 의견을 저런 방식으로 표현하는 사람들도 다수 존재하고 있었다. 그들의 세계에서 굳이 자신의 어린 아들을 '구출'해왔다는 저자를 쫓아온 사람들은 다시 자신들의 옆으로 누구라도 끌어가려는 듯이 날선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사실 삶을 살아보면 살아볼수록 안다. 선함이 얼마나 놀라운지, 옳은 행동을 하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람이 얼마나 강한지. 거칠고 나쁜 말과 행동을 하고, 나하나 쯤이야 하는 약고 비겁한 행동은 또 얼마나 쉽고 남들도 다 하던데 하고 핑계대기도 좋은지. 이 모든 것들을 감내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낸 저자와 창비의 교양 100그램에 다시 한 번 반가움과 감사를 표하며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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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라를 회복할 것입니다 - 독립운동가 45인의 말
김구 외 지음 / 창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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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비의 이런 행보에 항상 감탄한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우리는 나라를 회복할 것입니다'를 출간하는 것도 의미있지만 이를 기념하기 위해 대규모의 필사단을 모집한 기획력은 놀랍다. 책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책을 읽는 사람을 키워내는 것도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심지어 책의 구성도 독립운동가들의 어록을 담은 본 책과 필사를 할 수 있는 작은 필사책, 8인의 독립운동가 일러스트를 담은 스티커를 포함해 신경써서 구성한 티가 난다. 더불어 독립운동가들의 말과 글을 문서나 어록으로 전해지는 자료를 토대로 발췌하여 독자들에게 좀 더 익숙한 표현으로 교열하여 실었다는 점에서도 배려가 느껴진다. 

 필사를 꾸준히 하기는 힘들어서 한동안 닫아두었던 공책을 펼쳤더니 풀어진 마음처럼 글씨도 엇나간다. 여러번 다시 쓰기를 거쳐 겨우 첫번째 필사를 마쳤다. 당연하다는 듯 필사용 책에 실린 문구 들 중 하나를 골라서 적었는데, 다 적고 보니 직접 문장을 찾아 적을 걸 아쉬움이 남았다. 그냥 한 장 씩 읽을 때는 그 안에 담긴 강한 의지와 기운이 아직까지도 전해지는 듯해 그저 감탄하며 지나갔던 문장들인데 따로 적어볼 문장을 찾으려니 '고른다'는 행위 또한 어려웠다. 이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내놓은 문장들이라 생각하니 참 무거웠다. 

 책을 읽으면서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사회와 문화, 교육과 시민의 의식에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감사와 경의가 제대로 전해져왔던가. 아직도 삼일절과 광복절마저도 티비에서 일본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음습하게 방영*되고 있지 않은가, 국경일을 휴일이라고 일본으로 여행을 가는 사람들은, 제국주의와 우익을 상징하는 요소가 나오는 컨텐츠**들을 그저 재미로 소비하고 있지는 않은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역사와 지리적 과오를 문제삼는 일을 지겹다며 입 막으려는 사람들은 혹시 없는가 생각했다. 최소한의 존중과 성의마저 흐려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80주년을 맞아 '우리는 나라를 회복할 것입니다'의 출간 소식이 반가웠는데, 독립운동과 광복의 의미를 다시 새길 수 있는 더욱 많은 기획이 생기고 우리 생활에서도 자연스럽게 향유될 수 있었으면 한다. 이런 의미가 담긴 책을 더 많은 사람들이 접하고, 특히 더 많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읽을 수 있도록 추천되길 바란다. 

*2024 광복절 KBS 1TV 나비부인 편성, 광복절에 기미가요가 방영되었으나 이를 두고 일제 찬양 미화 의도가 없었다는 변명을 내세웠다.
** 20250809 귀멸의 칼날 우익 애니메이션 시구 논란


안중근의 말 (신한민보 1935.5.2)
마지막 말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 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쳐서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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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2025.하반기 - 제51권 2호
한국문학사 편집부 지음 / 한국문학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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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들려오는 한국문학의 반년간지 출간 소식은 항상 반갑다. 

떠남과 부고로 시작하는 하반기여서일까,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글들 사이로 울적함이 쌓였다. 여름이 가는 것은 반가웠는데 한 해의 가장 뜨거운 부분이 함께 지나버린 듯하다. 입추가 지나고 난 뒤로 한국인들은 단체로 벌써 가을이 온듯한 착각에 빠진다고 하던데, 착각이 아니라 진짜로 공기가 달라, 하는 말이 옮아 닿은 것처럼 하반기 호에서는 짙은 분위기가 묻어나는 듯 했다. 이야기에는 사건과 갈등이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법인데, 알면서도 이 감각은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고 죽음과 이별이 어디쯤 나타나서 증명해줄지 헤아리며 읽었다. 근데 진짜 하반기라 그런가 분위기가 좀 다르다니까, 하면서. 

시에서는 고명재의 '당신 뒤를 따라 걷는 게 좋았다'를 읽는 동안 좋았다. 귤 향이 나는 사람은 제주도에서 왔고, 솔 향이 나는 사람은 절에서 자랐고, 손이 따뜻한 사람은 목조건물에서 살았고, 목소리가 따스한 사람은 쑥차를 즐겨 마셨다고 삶의 흔적이 사소한 것들에서 비롯된 것들이라고 발견하기/믿기 좋아하는 소소함이 마음에 들었다. 마치 [월요일의 아이는 예쁘고], 하는 '마더구스'의 동요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런 바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떠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는 큰 근거가 없는데도 늘 관심을 끈다. 혈액형이나 별자리, mbti도 그런 것처럼.  

'혼모노'가 정말 상반기를 장악한 소설이나 다름 없었나 싶게 등장했다. 배우 박정민의 추천사로도 유명한 이 소설을 안 읽고 잘 버티고 있었는데, 임정연의 '구심과 원심의 풍경들'에서 마침내 혼모노를 발견했을때 찾아 읽어야지 어쩔 도리가 없구나 싶어졌다. 이전 좌담의 주제가 '우리 시대 2030세대의 문학 트렌드'였는데 요즘 눈에 많이 띄는 것이 연예인, 특히 아이돌과 연관된 팬 문화를 주제로 한 소설들이다. 이런 소설들은 팬질에 익숙한 세대에게 소름돋게 현실적이고 웃픈 내용으로 문학에 대한 접근성을 높인다. 

이 흐름을 피해갈 수 없었는지 대학생 창작교실에서도 '죽여주는 생일/이채원' 아이돌 제이스를 덕질하는 황서윤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요즘 '복미영 팬클럽 흥망사/박지영'를 읽고 있는데 이 연예인과 팬의 관계성 때문인지, 병크와 탈덕의 광기같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는 점은 좀 아쉽게 느껴졌다. 하지만 확실한 '재미'를 보장해주는 핫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은 맞기 때문에 이 소설과 함께 좌담과 비평의 눈을 관심갖고 즐겁게 읽었다.  

떠남을 만남으로 고쳐 볼 수 있을까, 25년 하반기호를 읽으며 성급히도 26년의 상반기호를 헤아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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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뉴스로 출근하는 여자 - 빨래골 여자아이가 동대문 옷가게 알바에서 뉴스룸 앵커가 되기까지
한민용 지음 / 이야기장수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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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호기심이었다. 책이 가지고 있는 이름들이 눈길을 끌었다. '최연소 여성 메인앵커', '최초의 여성 메인앵커' 같은 수식도 멋있지만 '빨래골 여자아이가 동대문 옷가게 알바에서 뉴스룸 앵커가 되기까지'라는 문구도 궁금했다. '빨래골'이 어디야? 

이런 호기심은 금새 실망을 불러왔다.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궁금했던 것이 이런 장치들이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로 소모된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배경이 나의 것과 비슷해서 더욱 그랬다. 유년시절을 모두 한 곳에서 보냈다(13)는 이유로 자신의 내면이 빨래골에서 물든 것들로 채워졌다는 문장을 읽으며 어색했다. 같은 산자락의 다른 골을 끼고 있는 동네에서 30년쯤 살아왔던 나에게선 어떤 냄새가 날까. 고향을 떠올려보니 우습게도 그의 말에 틀린 것이 없었다. 내가 어디에 있건 나의 뿌리는 바로 그 동네였다.
다소 차가운 시선으로 책을 읽어나가다 맥주 판촉 아르바이트를 하고, 동대문에서 옷을 팔았던 이야기에서 어떤 깨달음이 번뜩였다. 이런 순간들을 불편과 극복으로 여겼기 때문에 더 나아가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사람이었구나, 그 순간을 그냥 다들 그러는 것으로 흘려보낸 사람과는 당연히 다르구나. 우린 서로 다른 사람들이니 타인의 경험을 나와 비교하려 들지 말고 그의 것으로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다시 새겼다. 한 번 생각이 바뀌니 작고 단단하게 뭉쳐졌던 마음이 풀어졌다. 
선배의 조언(68)을 보며 정말 괜찮은 사람들을 만나왔구나 싶었다. 그 뒤로 이어지는 만남들을 지켜보면서 저자가 주변 사람들을 좋게 보는 마음을 가졌구나 하고 생각을 고쳤다. 풀어진 마음은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말랑해졌다. 처음 비뚤었던 시선은 홀랑 사라지고 읽을수록 점점 저자가 마음에 들어왔다. 게다가 2부에 들어서면서 경찰서에서 버티기를 하며 지내는 '하리꼬미' 시절이 재밌었다. 기자들은 이런 생활도 하는구나, 몰랐던 뒷이야기를 알게 되는 호기심도 채워지고 JTBC로 옮기면서 달라지는 환경에 대한 이야기들도 특유의 불퉁한 속마음을 볼 때마다 공감되고 웃겼다. 
전체적인 톤을 무겁지 않게 썼기 때문에 재밌는 부분도 있고 읽기도 편하다. 하지만 매일 보는 기사 내용들을 떠올려보면 알다시피, 그가 초년생에서 직업인으로 성장해나가는 동안 겪었던 사건들이 우리 사회에도 큰 상처를 남긴 일들이라 다시 보기 괴로운 부분들도 있었다. 게다가 책을 쓰는 과정에서 123이 벌어졌으니, 광화문 촛불 시위를 이야기하며 지난 안부를 묻다가 난데없이 마침표를 지워야하는 사족이 붙기도 한다.(176) 책을 내는데도 중간에 속보를 띄워야하는 일이 생기는 기자/앵커 답다고 할까. 

기사로 자신을 말한다는 그의 답이 '아이들'이었을 때 마침내 대단한 사람에서 좋은 사람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도토리와 감자를 소중히 품은 첫 여자 앵커라는 사실은 대단한 사람의 도전만이 아니라, 그의 삶에서 존중받아야할 당연한 흐름으로 여겨졌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그를 만나볼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검프처럼이 아니라 그 자신대로, 그만의 길을 걸으며 지금처럼 꿈꾸는 또 다른 이들에게 길이 되어준다면 반갑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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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홀가분하게 살고 싶다 - 소란한 삶에 여백을 만드는 쉼의 철학
이영길 지음 / 다산초당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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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에 앞서 61쪽 1장의 끝부분에 있는 '쉼 결핍 증후군 자가 진단 체크리스트'를 먼저 해보길 권한다. 이유는 이런 자가 진단을 해보는게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상태인지 한번쯤 생각해보게 만들어서 재밌기 때문이기도 하고, 특히 2번과 10번 질문에 답을 하면서 큰 공감을 했는데,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먼저 확인해보니 책에 대한 관심과 필요가 더 커졌기 때문이다. 책 내용 곳곳에 이런 자가 진단 테스트가 몇 가지 더 있는데 해당하는 장의 마지막 부분보다 맨 앞에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6장과 7장의 뒷부분에 자가 진단이 있으니 원한다면 진단을 먼저 해보고 읽어도 좋겠다. 

" 우리가 진지하게 물어야 할 건 '당신에게 시간이 얼마나 많은지'가 아니라 '당신의 삶이 얼마나 다채로운지'이다. p16" 

처음 '나는 홀가분하게 살고 싶다'는 책의 제목을 통해 삶의 물리적 '여백'을 먼저 떠올렸지만, 책의 내용은 심리적 여백 '쉼'을 먼저 권하고 있었다. 얼핏 다른 것 같지만 결국은 같은 목적지를 향한 것이라 개의치 않고 반기며 읽었다. 게으른 성격 탓에 나는 잘 쉬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쉰다고 생각하는 시간을 오늘 하루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낭비'했다고 은연 중에 가책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면 정말 잘 쉬고 있는 것일까? 하얗게 비워진 여백이라 생각했던 공간이 사실은 까맣게 채워진 상실과 부채였던 것은 아닐까? 쉼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그려나가야 좋은 것일까? 책은 스스로에게 의문을 갖게 만들고 또 답을 구하도록 유도한다. 

저자는 일과 휴식/멈춤과 욕망, 웃음/기쁨, 속도/조급함, 사랑 등 다양한 관점으로 우리 삶에서의 쉼을 재조명하고 있다. 다른 것보다 4장의 내용 '내일의 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사회(115)'이 항상 의견이 분분한 주제와 닿아있고, 개인적으로도 중심을 어느 한 곳에 두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삶을 긴 호흡으로 바라보고 미래를 위해 현재를 투자해야 하는 것도 맞지만,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오늘의 행복을 뒤로 미룬채 앞으로 달려나갈 수 만은 없는 것도 맞다. 어떤 것이 맞고 그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삶을 살아갈 것인가, 매 순간 적절한 절제와 쉼을 유지할 수 있도록 더 많이 읽고 배우고 생각하며 현명하게 헤쳐나갈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요즘은 5장에서 다룬 '욕망'에 대해 자주 생각하고 있어서 특히 관심있게 읽었다. 특히 소비를 하는 과정에서 필요와 욕망, 소비행위를 비교하며 고민하곤 한다. 소비행위 자체를 하고 싶어서, 그저 가지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필요하지 않은 것'에 시간과 돈과 공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한다. 대체로 감각을 자극하는 동기가 사고를 마비시키는 일이 더 많이 일어나곤 하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한 '절제(146)'에 대한 내용을 읽다보니 직접 체득한 실전 자기 조절 능력과 절제 방법이 떠올랐다. 바로 마트에 가기 전에 밥을 먹고 가는 것이다. 나만의 경우인지 모르겠는데 공복 상태로 장을 볼 때와 배부른 상태로 장을 볼 때 충동적으로 구매하는 상품의 양이 달라진다. "제대로 쉰 사람은 배부르게 먹고 잠든 아이처럼 만족스럽고 평온한 상태가 된다.(149)"는 책의 내용처럼 결핍이 없는 상태에서 더 절제를 하기 쉬워지는 것을 직접 경험해왔기 때문에 확 와닿는 내용이었다. 

책의 좋은점은 쉼이라는 주제로 그동안 유지해 온 삶의 방식에서 한 걸음 떨어져 스스로를 점검해보고 새롭게 환기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다는 것도 있지만, 소소하게는 각 단락마다 유명인들의 격언을 하나씩 담아 놓아 눈길을 끄는 요소들도 있다. "사람들이 자신이 사랑하게 될 기술이 그들을 파괴하리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_올더스 헉슬리(87)"의 날카로운 격언이나 "우리는 항상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점점 더 혼자다.(54) / 우리는 관계를 가졌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대화를 잃고 있다. 우리는 연결되었지만, 고립되었다.(224) _셰리 터클[외로워지는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문구처럼 마음에 들거나 인상 깊은 내용을 따로 적어두기에 좋았다. 

자신도 의식하지 못했지만 아마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졌던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바쁘고 밀도있게 하루를 보내면 오늘을 충실히 잘 보냈다며 만족스러워하고, 해야 할 일을 미루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에서 5미터 이상 떨어지는 일 없이 하루를 보낸 날은 즐겁지만 한편으론 괜한 죄책감이 들곤 했다. '번아웃'이라는 말이 일상으로 통용되고, 자신을 돌보는 일에 지쳐버린 젊은 세대에게 특히 많이 나타나는 '쓰레기집' 현상이 새로운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현실에서, 늘 뭔가를 하고 채워지는 삶을 살아야한다는 생각이 스스로에게 걸어둔 압박이나 조급함은 아니었을까 '나는 홀가분하게 살고 싶다'를 읽는 동안 찬찬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덧붙여 책에도 여러번 언급되어 있지만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함께 읽는다면 더 좋은 감상이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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