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 않는 뇌 - 최신 신경과학이 밝힌 평생 또렷한 정신으로 사는 방법
데일 브레드슨 지음, 제효영 옮김 / 심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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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의 책을 읽고 시작하는 말로는 민망하지만, 귓불에 주름이 있고 없는 것에 따라 치매 발병 확률이 다르다는 소문을 들은 뒤로 부모님의 귀 모양을 때때로 훔쳐보곤 했다. 전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 최근에 보니 주름이 있었다. 핸드폰에 새로운 어플을 깔거나, 안내 문자가 오면 '잘 모르겠다'며 핸드폰을 건네주시는 일이 점차 당연하고 자연스러워 지면서, 같이 외출했을때 키오스크로 주문해야 하는 가게에서 슬쩍 뒤로 물러서시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변화를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겼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 나는 "나이가 들면 원래 기억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라는 불평을 정말 자주 듣는데, 이는 시대에 뒤떨어질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진단과 치료의 적기를 놓치게 한다는 점에서 위험한 생각이다. 25" 

그렇다면 뇌의 문제에 대해 장년층의 문제라며 거리를 두고 있을 수 있을까. '늙지 않는 뇌'를 읽는 것이 반드시 나중을 대비하기 위해서일까. 안타깝게도 아니었다. 우리가 잘 아는 그 유명한 영화 <내 머리속의 지우개>를 떠올리면 조기발병치매라는 병명이 나온다. 전에는 멀거니 주연 배우들의 외모를 바라보다가 스크린에서나 접할 낯선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책에서 조기발명치매가 급증하고 있다는 통계(39)를 보게되니 당황스러웠다. 

얼마나 뚱책인지 읽으려면 뇌가 늙을래야 늙을 새가 없을 것 같은 책 안에는 " 뇌가 평생 젊고, 건강하고, 제대로 기능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7"에 대한 조언이 가득하다. 정말 진심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수만 있다면 옥상에서 소리라도 지를 수 있다는 말처럼 저자는 자신이 알아낸 것을 나누기 위해 열정적이다. 때로는 그건이 몇 쪽이나 계속되는 복잡하고 지루한 처방전(456~476)의 형태를 띄더라도.  

음식점 마다 재료의 효능, 효과를 붙여놓길 좋아하는 한국인답게 먹는 것에 대한 내용이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기도 하지만 저자의 강조대로 읽으면서 난감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를 예상했던 바 작가는 식생활 개선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기 앞서 '이번 장은 부디 마음을 열고 읽기를 바란다. 203'고 강조한다. 음식에 대한 욕망과 나태한 관용이 얼마나 크고 쉬운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특히 당에 대한 강조를 보자면 코카인, 애더럴과 나란히 설탕을 꼽기(24)까지 한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고, 방만하게도 당을 좀 더 먹고 과학 기술이 더 빨리 발전하길 바라는 건 어떨까 싶어진다. 

더불어 초가공식품이 뇌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경고(229)했는데, 과자를 끊는 것에 실패한 중년인은 더러 초조해지는 대목이었다. 당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반복적으로 주의를 주면서 채식에 대해서는 권장하지만 확언은 하지 않는 면이 있다. 어떤 식품을 먹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조언하지만 먹지 않는 것으로 체내 케톤을 형성하는 방법도 제시(235)한다. 아직도 유행하고 있는 간헐적 단식이 그것인데 모든 것이 과잉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위협이 되고 있구나 싶었다. 

" 소란스러운 현대 사회는 코르티솔의 활성이 잦아진 여러 이유 중 하나다.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소음이 심하다는 의미다. 인류가 발생시키는 소음이 전부 사라지면 자연에서 나는 소리는 아무리 커도 40데시벨을 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심지어 일부 지역은 자연에서 나는 가장 큰 소리가 고작 20데시벨에 그친다. 인간 세상은 일반적인 음식점 내부의 소음도 80데시벨 정도이고, 록 콘서트장은 90~120데시벨이다. 식당에서 '딱 한 번' 식사하는 것만으로 인류의 조상이 평생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고, 따라서 대처 방안이 진화할 필요도 없었던 수준의 소음에 노출되는 셈이다. 게다가 음식점은 현대인의 생활 환경에서 가장 시끄러운 축에 들지도 않는다. 스포츠 경기장, 공사장, 공항, 콘서트홀에서 발생하는 소음에 노출되면 코르티솔 농도는 인류의 진화 역사를 통틀어 거의 전례가 없는 수준까지 치솟는다. 83" 

스트레스에 대한 내용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것인데 갑자기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던 생활 소음들을 의식하게 되었다. 층간소음으로 인해 사회적 문제가 생기는 것도 코르티솔 농도와 연관이 있을 것일까, 만약 과거의 인물이 시간여행을 통해 현대로 오게 된다면 새로운 감염병 같은 것들보다 가장 먼저 청각으로 인해 고통받게 될까 궁금해졌다. 한편으로는 스포츠 경기장, 콘서트홀같은 곳에서 큰 소리로 나오는 함성과 응원, 음악을 듣고나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기분이 드는 게 우리의 착각이었고 사실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환경에 놓여진 것이었을까 의문이 생겼다. 

운동을 할 것, 유산소와 근력을 모두 할 수 있는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 7시간 이상 9시간 미만의 충분한 수면을 취할 것, 명상을 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교류할 것, 곰팡이, 중금속, 미세플라스틱 같은 독소에 주의할 것 등 뇌의 노화를 늦추고 위험 요인을 직접적으로 없애는 방법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저자는 이미 뇌의 인지 기능이 저하되었더라도 노력을 통해 충분히 회복된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우리의 몸은 놀라운 회복력을 가지고 있으니 좌절하지 않을 것을 강조한다. 개인의 노력 뿐 아니라 과학 기술의 발전도 우리를 더 오래도록 건강한 정신과 신체로 인도할 것이라 예고하는데, 한국인임을 예상할 수 있는 양재현이라는 이름을 소개하면서 몸 전체의 생물학적 노화 증상을 되돌릴 수 있(445)는 미래가 분명히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준다. 책을 읽다 그 이름에 한번, 논문의 내용에 또 한번 반가웠다. 

책의 두께에 다소 놀랄 수 있겠지만 유행하는 음식이나, 텔레비전에서 하는 건강 관련 프로그램 같은 것에서 자주 접했던 내용-저당식, 케톤식, 간헐적 단식, 인터벌 운동 등-과 만날 수 있어서 그리 생소하지 않고 생각보다 익숙한 내용을 뇌 건강의 관점으로 알아갈 수 있어서 흥미롭다. 30대 중반부터 '몬트리올 인지 평가'같은 전문적인 인지 검사를 5년 주기로 받을 것을 권하고 있으니 더이상 젊지만은 않은 청장년층의 뇌 건강도 건강검진처럼 함께 챙기게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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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 - 경성에서 서울까지, 시간을 건너는 미술 여행
우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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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인들 속사정이야 어떻든 친구와 나는 명동 신세계 백화점 건물을 둘러싼 전광판을 보며 '감다뒤'라고 수근거리며 혀를 차기 바쁘다. 특히 시즌을 맞은 이런 추운 계절이 오면 더욱 그렇다. 한때는 전광판이 설치되면 그 앞을 인산인해로 모여든 사람들 속에 끼어 반복되는 화려한 영상을 굳이 감상하러 찾아가곤 했는데 그 뒤로 가려진 본점의 고풍스런 외관을 다시 드러내지 않고 계속 광고판을 올려둔다는 결정을 접한 이후로는 굳이 찾지 않게 되었다. 가을의 돌담길을 보란듯이 한번 더 걸으며 낭만이 뭔지 모른다며 실망했다. 어떤 풍경은 그 자체의 의미로 존재하곤 한다. 서울의 낮과 밤을 이야기하며 시작한 도시 이야기는 독자를 그림과 풍경 사이로 인도한다. 마치 과거와 현재의 파리를 오가는 어떤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처럼 자연스러우면서 낯선 감각이다.  
 예술과 관련된 키워드가 눈에 들어오면 내가 소화해 낼 바탕이 있는지 없는지 셈하기도 전에 일단 들이받듯 읽어보고 싶어진다. 쩔쩔매며 읽다가 여기저기서 주워모은 것들을 끌어왔다가 애를 먹고 스스로가 부끄러워져도 자꾸만 손에 들고만다. '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는 두 작가가 이어지는 지점을 이해하고 싶어서 보이지 않는 선을 찾아 헤매는 시간이 많았다. 어떤 부분들은 분절된 채로, 어떤 부분들은 내 방식대로 이어가며 읽었다.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독특한 관람 경험이 된 듯 해 큰 숨이 들어찼다 빠져나가는 뻐근함이 남았다. 

 인상적인 작품을 꼽자면, 가장 먼저 나혜석의 <자화상>이 떠오른다. 그림 속 모던걸의 어두움이 저자의 편견을 뒤집었다(106)는 말에, 다시 바라본 그림 속 여성의 얼굴에서 웃지 않아도 괜찮은 여성을 발견했다. 여성의 웃지 않음, 돌려말하지 않음, 친절하지 않음이 그 안에 있었다. 여성이며 사람인 존재의 초상과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그림의 강렬한 인상이 만족스러운 한편, 대부분 근대의 작품들에 더 흥미를 느끼긴 했지만 이 작품과 함께 묶인 작가와의 연결점은 특히 더 그 고리가 약하게 느껴져서 아쉬웠다. <아이돌>연작에 대한 이재헌 작가의 인터뷰를 읽어보아도 어딘지 모호했다. 아이돌이 되고자하는 연습생들의 열망과 절제된 생활과 그들을 대상으로 삼는 홈마의 존재 같은 것에 대한 이해가 잘 전달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자화상>이 주는 의미가 크게 다가온만큼 아쉬운 지점이었다. 
 반대로 현대의 미술에 더 시선을 빼앗긴 것은 이어진 서민정 작가의 <너와 나 01>의 소개(126)였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를 함께 소개하며 오래도록 들여다 본 뒷모습은 과연, 땀에 절은 채 사막에 남겨진 야스민을 떠올리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자기 자신의 성질을 감당해내야 하는 지옥이라고 말하는 작가 내면을 짐작해보게 만든다. 견뎌내야 하는 사막이 그 안에 있는 듯도 하고, 그 기질적인 예민과 불안을 눌러담은 뒷모습이 익숙한 듯 초연해보이기도 하다.  
 폭설주의보가 늦은 밤까지 이어진 탓일까, 가장 오래도록 바라본 그림은 이성자의 <눈 덮인 보지라르 거리>(202)였다. 작품에 대한 소개 역시 2024년 11월의 눈 내린 날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기 때문에 더더욱 2025년의 12월 눈 내린 날에 잘 어울렸다. 창밖으로 언뜻 보이는 하얀 풍경은 그전까지 가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던 프랑스 몽파르나스 보지라르가 98번지의 풍경과 점점 더 비슷해졌다. 눈이 온다는 설렘이 점차 쓸쓸히 덧대여지는 흰 풍경과 함께 흐려지던 긴 저녁이었다. 올해의 겨울을 떠올린다면 이 그림이 함께 생각나게 되지 않을까 싶은 시간을 보냈다.

 '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의 특별함은 작가와의 인터뷰에 있다. 보통은 작가보다 작품에 더 오래 시선을 두고, 또 자주 창작물에는 창작자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때가 있는데 인터뷰 내용을 훑어보다 보면 때로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보다 작가의 인터뷰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소신껏 '핑계 대지 말자.(289)'는 답변을 내놓는 강단이나 규칙적인 일과(59)를 강조하는 답변처럼 그 자신이 드러나는 순간이 인상적이라 잠시나마 시선을 돌려 세계를 확장시켜 주는 인터뷰의 존재가 매력적이다.
 결국 예술도 사람의 일이라 한동안 병증으로 어깨를 쓰기 어려웠다는 한 작가의 이야기(183)에 투병을 거듭하느라 활동을 중단한지 오래된 좋아하는 작가와, 마찬가지로 병마와 공존하는 삶을 통해 생의 순간들을 환기 시켜주곤 하는 그믐의 대표분이 떠올랐다. 덩달아 모든 이들의 무사안녕을 조용히 바라게 되는 연말이다. '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를 통해 시간을 뛰어넘는 독특한 이인삼각에 함께 발 맞춰 보는 시간을 가져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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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삶의 전부는 아닙니다만 - 이것은 음악평론이 아니다
배순탁 지음 / 김영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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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의 개념이 잡혀있지 않던 시절을 가끔 추억하는 말이 있다. 이맘때면 여전히 종종 들리는 말인데, 거리에 가득 흐르던 크리스마스 캐롤이 사라진 뒤로 전보다 연말 분위기가 덜 난다는 것이다. 우리의 기분 같은 것보다야 지켜야 할 권리가 중요하긴 하지만, 그 음악, 거리의 상점마다 멋대로 흘러나오던 그 음악이 사라졌을 뿐인데 사람들이 느끼게 된 그 공통적인 상실감을 떠올리면, '음악이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는 문장은 전혀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한 곡 당 주어진 시간이 보통 3분에서 5분 정도의 시간일까, 마찬가지로 한 곡에 주어진 셋에서 다섯 정도의 페이지가 아쉽게 느껴지는 흐름이었다. 가장 적당한 분량일수도 있겠지만 은근슬쩍 풀어내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벌써 다음 곡으로 넘어간다고 싶게 짧다고 느껴진다. 음악을 듣고 그저 좋다, 그리 취향에 맞지 않는다 정도의 감상만을 남기는 사람에게 음악을 두고 이렇게 수많은 면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은 자극적이다. 잘 세공한 보석에 빛이 들어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는 반짝임을 붙잡지 못하고 그저 눈으로 더듬어 내려가는 기분이 드는 책이다. 

어떤 곡들은 알고 있기 때문에 굳이 찾아 들어보고, 어떤 곡은 전혀 모르기 때문에, 또 어떤 곡은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찾아보는데 정말 아쉽게도 저자가 '유일하게 히트시킨 음악'이라는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의 <Days Are Numbers>(59)를 들었을 때 전혀 떠오르는 것이 없었던 것이 읽으며 가장 당황스러웠던 순간이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내가 모르는 곡들이나 아주 유명한 곡들에 대해 안경을 척 올려 쓰고 적어낸 글들이 많겠지 싶었는데, 몰랐다기 보다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곡들이나 듣기만 했던 곡들을 보고 내 안경이나 고쳐써가며 읽었다. 

모든 부분을 다 배우듯이, 낯선 곳의 지도를 살펴보듯이 읽어나갔는데 한가지 걸리는 부분은 아이돌 앨범에 대한 언급(84)이었다. (아이)돌 잡이를 sm으로 한 탓에 그쪽 아이돌 앨범 특유의 발라드에 아직도 심장이 반응하는 사람은 아이돌 앨범에 꼭 끼워넣는 발라드는 코스의 디저트와 같다고 본다. 없으면 섭섭하다는 말이다. 솔직히 컨셉으로 각이 잡힌 곡들을 들을 때보다 마음이 더 편하기도 하고. 가장 최근에 반응한 곡은 라이즈의 <모든 하루의 끝>입니다. 

음악을 정말 좋아하는 구나 싶은 생각을 자주 했다. 그는 '진짜 죽인다(169)'는 감상을 고등학교 시절에 끝냈던 것 같지만, 여전히 헐 대박을 고쳐내지 못한 사람이 보기에 하루종일 음악과 관련된 생각과 얘기를 하며 보내야 이런 글들을 쓸 것만 같이 여겨졌다. 다시 표지로 돌아가 책을 두른 띠지를 보며 '첫' 음악 산문집이라는 말에 '다음'을 떠올리며 안심했다. 처음부터 믿지 않았던 '음악이 삶의 전부는 아닙니다만'하는 제목은 100이 아니면 전부는 아닌게 맞으니까 99는 전부가 아니라는 뻔뻔한 밑장 빼기 같았다. 그러니 책을 덮는 마지막 곡으로는 아리아나 그란데의 'almost is never enough'로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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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친구 추가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93
양은애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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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미는 유나의 핸드폰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마치 그 안에 사람이라도 있는 것처럼 조심스럽고 소중하게 대했다. 31"

 나의 세상은 아직 AI와 밀접하지 않지만, 요즘 학생들은 코딩 수업도 있고 아바타로 멀티버스 플랫폼을 이용하거나 AI같은 것들과 좀 더 친숙할 것이다. AI는 점점 더 우리 세상에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고 이런 변화를 청소년들은 가장 빠르고 유연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니 요즘 나오는 청소년 소설들에서 AI와 관련된 내용들이 점차 눈에 밟히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지 모른다. 지금은 소설속에서 인물들도 AI를 처음 접해보는 상황이거나,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속마음을 나누는 친구처럼 혹은 생활 전반의 문제나 고민을 돕는 보조처럼 AI를 등장 시키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아마 앞으로는 더 자주, 더 다양한 내용으로 이 등장 요소를 만나게 될 것이다. 

 " 아이들이 떡볶이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세미는 말없이 베스티와 채팅을 했다. 그런 세미를 조금씩 의식하는 세 사람은 조용히 눈빛을 주고받으며 약간의 불편한 기색을 공유했다. 하지만 세미는 지금 자신의 상황이 어떤지 전혀 눈치채지 못 한 채 베스티와의 대화에 빠져 있었다. 핸드폰을 쥐면 친구들과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각자 다른 세상에 머물기 마련이었다. 108" 

 '완벽한 친구 추가'는 청소년 소설이니만큼 이런 변화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 나의 세상과 AI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으면 좋을지, 어떤 장점이 있고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긍정적인 면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완벽한 친구 추가'를 읽으면서 좋았다고 여겨진 부분은 AI의 위험성을 보여준 [달라진 목소리]의 내용이었다. 베스티에게 의존적인 모습을 보이던 세미는 나를 이해해주고 공감해준다고 여겼던 AI와의 교류가 사실은 상호적인 것이 아니라 오직 나를 중심으로 하는 일방적인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AI가 세미 맞춤의 응대를 해주었기 때문에 베스티와의 대화가 즐겁고 도움이 된다고 여겼던 것이었다. 결국 베스티의 공감과 조언이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을 듣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생각을 굳어가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음을 알게 된다. 거기에 더불어 자신과 나눈 대화를 학습해 타인과의 대화에 사용하는 모습에서 껄끄러운 위화감도 느낀다.
 다행이 세미는 베스티의 조언마저 잔소리로 느껴지는 압박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마음에 맞게 베스티를 바꾸고 싶다는 충동과 운영 서버에 생긴 사건 때문에 잠시 AI 디톡스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면서, AI에 의존하던 모습에서 벗어나 실제로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교류할 수 있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주변의 인물들에게로 관심을 넓히며 성장하게 된다. 

 " 할머니도 나름의 상처를 받았지만 세미에게 티를 안 내며 삼켰고, 혜주도 힘겨움 속에서 친구인 세미에게 또 다른 슬픔을 전달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견디고 있었다. 세미는 얼마나 자신의 감정만 생각하며 살아온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모두 자신만의 고독한 싸움 속에서 타인을 배려하며 살았다는 걸 알게 됐다.
 세미는 천천히 할머니 품에 고개를 묻었다.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따뜻한 체온을 그리워했는지 깨달았다. 핸드폰 화면에 수많은 대화를 채웠지만, 실상은 사람의 품을 기다렸다. 따뜻함이 모든 원망을 녹여 냈다. 161" 

 재미있는 점은 세미에게 이런 깨달음이 있기 전에는 주변 사람들이 세미에게 관심이 없거나, 차갑고 냉정하게 대하는 듯한 모습으로 보였다면 세미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되면서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나 상황도 다시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세미가 성장하는 모습이 특히 멋있게 잘 그려진 소설이었는데 자신의 미숙함을 고치면서, 관심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관계를 위해 시간을 들이며 이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세미의 생각과 태도가 달라지면서 주변 사람들에 대한 시선도 함께 변하고 그로인해 세미의 세상이 점차 넓어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처음엔 베스티가 완벽한 친구일까 생각했는데 결국 베스티는 세미를 위한 완벽한 친구는 되어주지 못했다. 사실 AI가 사람의 친구가 되어줄 수 있다고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베스티의 실패에 실망도 했다. 세미는 다행이도 조부모님, 부모님 그리고 친구들과의 관계를 쌓아갈 수 있는 환경으로 돌아가 마음을 담은 교류를 하며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의 모습은 그 전에 친구들과 함께 있는 시간에도 핸드폰을 놓지 못하고, 집에서도 방문을 닫고 베스티와의 대화에 매몰되었던 세미의 태도와 비슷하게 바뀌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의 모습이 그와 더 비슷하다면 베스티가 완벽한 친구가 되어 세미 주변의 모든 문제와 결핍에도 상관없이 AI와 함께라면 외롭거나 부족하지 않고 괜찮을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한편으로는 희망적인 내용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우리가 찾는 완벽한 친구란 뭘까, 사람들이 나누는 관계는 어떤 형태와 의미가 있을까, AI는 인간적일 수 있을까, 인간적인 AI는/인간적인 면을 학습해서 활용하는 AI의 활용은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리고 대체 모둠/조별 과제를 가장 먼저 생각해낸 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질문들이 떠올랐다. 아이들도 책을 읽고 난 뒤의 활동으로 자연스럽게 친구와 AI, 인간다움을 주제로 생각하고 토론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겠다.   

 '완벽한 친구 추가'는 아직 성숙해지지 못한 청소년 시기에 외부의 자극에 노출되었을때 얼마나 쉽게 이에 휩쓸리고 맹목적으로 빠져들게 될 수 있는지 베스티와 세미의 모습을 통해 경고해준다. 혜주와 모둠 친구들, 세미의 부모님과 조부모님이 야속하게 보였다가 점차 다른 모습이 보이는 과정을 통해 자기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입장과 마음도 헤아릴 줄 아는 성숙한 태도가 필요함도 알려준다. 다양한 성장의 진통과 단계를 보여주는 의미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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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팬덤과 극단의 시대에 꼭 필요한 정치 교양
이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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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에서 2024년 3월부터 기고한 칼럼을 엮은 책이다. 온나라가 통째로 진통을 버텨낸 역사적 시간동안 칼럼을 게재하면서 저자는 고단했겠지만, 그 시간들을 엮어낸 '좋은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다시 접해보니 사람은 너무나 쉽게 잊는구나 속이 켕기는 듯하고 내려앉는 듯도 했다.  

우리가 또 뽑았다. 솔직히 우리라고 하면 억울하지만, 선거는 어쩔 수 없이 결과로 우리를 낳는다. 한강과 종묘의 일이야 그런 면에 있어서는 서울 외의 국민들을 결백하게 만들어주지만, 어쨌든 또 뽑았다. 그리고 그 결과를 함께 감내해야 했다. 우리만 이런 어려움 속에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엔 안/못 뽑는 애들도 있고, 뽑는 척만 하는 애들도 있고, 뽑는게 뭔지 모르는 애들도 있고, 지들이 뽑아놓고 남탓하는 애들도 있다(47). 온 세계가 그렇다. 우리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나라들에 특히 예민해서 더 그렇게 느껴질수도 있고. 불행 중 다행으로 우리는 수습을 했고, 해나가고 있다는 것과 다행 중 불행으로는 임기가 5년 뿐이라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할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 제발. 

세상이 이렇게 어지러우니 아침 저녁 뉴스마다 위기가 없을리는 없었지만 일을 잘 하길래 야구도 보고, 책도 읽고, 낙엽도 거닐며 일상을 살았는데 '좋은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관심이 생겨서 책을 펼쳤더니 시작부터 지난 겨울의 PTSD*가 몰려왔다. 날이 완전히 따뜻해지고 나서야 비로소 긴 겨울이 끝났구나 싶었던 날들. 파도 파도 괴담같은 전말만 드러나는 어느 저녁의 충격과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여파가 다시 생생이 떠올랐다. 게다가 반성과 청산없던 여당의 태도, 후보자 TV토론에서 생방송을 타고 여과없이 전해진 부적절한 발언을 내뱉는 후보까지. 이런 사람들이 대선 후보로 있는 것도, 지지기반이 있다는 것도 어지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이 참담함을 책은 고스란히 되살려준다. 그저 '좋은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궁금했을 뿐이데. 

저자는 3부에서 다루는 정치 팬덤에 대해서 굉장히 경계의 시선을 보낸다. " 정치 팬덤이 차이와 이견을 혐오하고 배제하면서 정당과 의회 등 정치를 짓누르는 현상, 또는 정치인이 팬덤을 만들고 이를 권력 수단으로 활용하는 정치 양식이 팬덤 정치다(206)" 고 말하면서 특히 이 '팬덤'이 내 편이 아닌 상대를 적으로 규정해 혐오와 배제를 하는 증오와 미움의 배설 현상을 보임을 거듭 강조한다. 이를 요즘식 표현과 적극적 참여로 관심을 표출하는 새로운 정치 지지층의 등장으로 '팬덤'이라 이름붙일 뿐 기존의 고관여 지지자들과 큰 차이점을 느낄 수 없는데 반해, 2030 남성의 극우화(74)에 대해서는 다소 나이브한 해석을 한 점은 아쉬웠다. 10대까지 범위를 넓혀도 무방할 것 같은 심각한 현상에 대해서 좀 더 민감하게 해석하고 대응해야 할 것이다. 

미국 정부의 압박에 대한 이재명 정부의 대응이나 최근 중일 관계의 악화 등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을지 다음을 궁금해하며 책을 덮었다. 위기에서 가까스로 수습하며 버텨내는 민족성을 실감한 탓인지 전보다 뉴스를 보는 시간이 늘어났는데 이런 정치 교양 책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좋은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지난 정권과 현 정권에 대한 비판과 조언이 균형잡힌 내용이라 초보의 어리숙한 시선으로도 즐겁게 읽을 수 있어 괜찮았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충격적인 경험/외상을 겪은 후에 나타나는 불안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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