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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지 않는 뇌 - 최신 신경과학이 밝힌 평생 또렷한 정신으로 사는 방법
데일 브레드슨 지음, 제효영 옮김 / 심심 / 2025년 11월
평점 :
5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의 책을 읽고 시작하는 말로는 민망하지만, 귓불에 주름이 있고 없는 것에 따라 치매 발병 확률이 다르다는 소문을 들은 뒤로 부모님의 귀 모양을 때때로 훔쳐보곤 했다. 전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 최근에 보니 주름이 있었다. 핸드폰에 새로운 어플을 깔거나, 안내 문자가 오면 '잘 모르겠다'며 핸드폰을 건네주시는 일이 점차 당연하고 자연스러워 지면서, 같이 외출했을때 키오스크로 주문해야 하는 가게에서 슬쩍 뒤로 물러서시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변화를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겼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 나는 "나이가 들면 원래 기억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라는 불평을 정말 자주 듣는데, 이는 시대에 뒤떨어질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진단과 치료의 적기를 놓치게 한다는 점에서 위험한 생각이다. 25"
그렇다면 뇌의 문제에 대해 장년층의 문제라며 거리를 두고 있을 수 있을까. '늙지 않는 뇌'를 읽는 것이 반드시 나중을 대비하기 위해서일까. 안타깝게도 아니었다. 우리가 잘 아는 그 유명한 영화 <내 머리속의 지우개>를 떠올리면 조기발병치매라는 병명이 나온다. 전에는 멀거니 주연 배우들의 외모를 바라보다가 스크린에서나 접할 낯선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책에서 조기발명치매가 급증하고 있다는 통계(39)를 보게되니 당황스러웠다.
얼마나 뚱책인지 읽으려면 뇌가 늙을래야 늙을 새가 없을 것 같은 책 안에는 " 뇌가 평생 젊고, 건강하고, 제대로 기능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7"에 대한 조언이 가득하다. 정말 진심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수만 있다면 옥상에서 소리라도 지를 수 있다는 말처럼 저자는 자신이 알아낸 것을 나누기 위해 열정적이다. 때로는 그건이 몇 쪽이나 계속되는 복잡하고 지루한 처방전(456~476)의 형태를 띄더라도.
음식점 마다 재료의 효능, 효과를 붙여놓길 좋아하는 한국인답게 먹는 것에 대한 내용이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기도 하지만 저자의 강조대로 읽으면서 난감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를 예상했던 바 작가는 식생활 개선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기 앞서 '이번 장은 부디 마음을 열고 읽기를 바란다. 203'고 강조한다. 음식에 대한 욕망과 나태한 관용이 얼마나 크고 쉬운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특히 당에 대한 강조를 보자면 코카인, 애더럴과 나란히 설탕을 꼽기(24)까지 한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고, 방만하게도 당을 좀 더 먹고 과학 기술이 더 빨리 발전하길 바라는 건 어떨까 싶어진다.
더불어 초가공식품이 뇌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경고(229)했는데, 과자를 끊는 것에 실패한 중년인은 더러 초조해지는 대목이었다. 당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반복적으로 주의를 주면서 채식에 대해서는 권장하지만 확언은 하지 않는 면이 있다. 어떤 식품을 먹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조언하지만 먹지 않는 것으로 체내 케톤을 형성하는 방법도 제시(235)한다. 아직도 유행하고 있는 간헐적 단식이 그것인데 모든 것이 과잉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위협이 되고 있구나 싶었다.
" 소란스러운 현대 사회는 코르티솔의 활성이 잦아진 여러 이유 중 하나다.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소음이 심하다는 의미다. 인류가 발생시키는 소음이 전부 사라지면 자연에서 나는 소리는 아무리 커도 40데시벨을 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심지어 일부 지역은 자연에서 나는 가장 큰 소리가 고작 20데시벨에 그친다. 인간 세상은 일반적인 음식점 내부의 소음도 80데시벨 정도이고, 록 콘서트장은 90~120데시벨이다. 식당에서 '딱 한 번' 식사하는 것만으로 인류의 조상이 평생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고, 따라서 대처 방안이 진화할 필요도 없었던 수준의 소음에 노출되는 셈이다. 게다가 음식점은 현대인의 생활 환경에서 가장 시끄러운 축에 들지도 않는다. 스포츠 경기장, 공사장, 공항, 콘서트홀에서 발생하는 소음에 노출되면 코르티솔 농도는 인류의 진화 역사를 통틀어 거의 전례가 없는 수준까지 치솟는다. 83"
스트레스에 대한 내용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것인데 갑자기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던 생활 소음들을 의식하게 되었다. 층간소음으로 인해 사회적 문제가 생기는 것도 코르티솔 농도와 연관이 있을 것일까, 만약 과거의 인물이 시간여행을 통해 현대로 오게 된다면 새로운 감염병 같은 것들보다 가장 먼저 청각으로 인해 고통받게 될까 궁금해졌다. 한편으로는 스포츠 경기장, 콘서트홀같은 곳에서 큰 소리로 나오는 함성과 응원, 음악을 듣고나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기분이 드는 게 우리의 착각이었고 사실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환경에 놓여진 것이었을까 의문이 생겼다.
운동을 할 것, 유산소와 근력을 모두 할 수 있는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 7시간 이상 9시간 미만의 충분한 수면을 취할 것, 명상을 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교류할 것, 곰팡이, 중금속, 미세플라스틱 같은 독소에 주의할 것 등 뇌의 노화를 늦추고 위험 요인을 직접적으로 없애는 방법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저자는 이미 뇌의 인지 기능이 저하되었더라도 노력을 통해 충분히 회복된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우리의 몸은 놀라운 회복력을 가지고 있으니 좌절하지 않을 것을 강조한다. 개인의 노력 뿐 아니라 과학 기술의 발전도 우리를 더 오래도록 건강한 정신과 신체로 인도할 것이라 예고하는데, 한국인임을 예상할 수 있는 양재현이라는 이름을 소개하면서 몸 전체의 생물학적 노화 증상을 되돌릴 수 있(445)는 미래가 분명히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준다. 책을 읽다 그 이름에 한번, 논문의 내용에 또 한번 반가웠다.
책의 두께에 다소 놀랄 수 있겠지만 유행하는 음식이나, 텔레비전에서 하는 건강 관련 프로그램 같은 것에서 자주 접했던 내용-저당식, 케톤식, 간헐적 단식, 인터벌 운동 등-과 만날 수 있어서 그리 생소하지 않고 생각보다 익숙한 내용을 뇌 건강의 관점으로 알아갈 수 있어서 흥미롭다. 30대 중반부터 '몬트리올 인지 평가'같은 전문적인 인지 검사를 5년 주기로 받을 것을 권하고 있으니 더이상 젊지만은 않은 청장년층의 뇌 건강도 건강검진처럼 함께 챙기게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