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입자들
정혁용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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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대를 많이 했다. 띠지에 써 있는 문구가 심상찮아 보였기 때문에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었다. 막상 읽어보니 나름대로 재미있기는 한데 어딘가 부족하고 어딘가 과잉됐다 해야할까, 아 조금 아쉽구나 싶었다. 세계문학상 최종심 후보작이라고 되어 있어서 19년도에 어떤 책이 대상을 받았는지 찾아봤는데, 10편의 후보작들 중에서 침입자들이라는 제목을 찾을 수가 없어서 어리둥절한 참이다. 원래 제목은 달랐던가. 300쪽 조금 넘는 분량인데 금방 읽힌다. 평소에 책을 잘 안 읽는 편이라도 쉽게 읽을 것 같다. 장편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2시간 정도면 읽을 수 있을 정도고 장르소설 느낌이 좀 난다. 자발적 격리에 들어간 책임감있는 성인들이 한가할 때 읽기에 좋겠다.

 

 책에서 아재느낌이 물씬 났다. 영화 '이퀄라이저'를 감명깊게 본 아저씨가 꿈궈볼만한 내용이랄까. 읽기 전에는 평범한 택배 기사가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동네를 배정 받아 택배를 배달하며 벌어지는 의도치 않은 사건들이란 느낌의 평범한 코믹스릴러나 드라마를 생각했는데, 택배 기사가 너무 능력치 몰빵 작가의 최애캐라 개인적으로는 아쉬웠다. 읽고보니 "택배가 도착하는 순간, 인생이 뒤틀리기 시작했다!"는 띠지의 문구가 좀 불만스러웠다. 행운동 사람들 인생은 택배 오기 전에도 뒤틀려 있었던 거 같은데, 낚인거 아닌가. '이미 뒤틀린 인생, 택배가 끼얹어졌다'고 해도 될만하다.

 

 작가가 사랑한 주인공을 나도 사랑하지는 못했다. 약간 촌스러운 감성이라고 해얄까, C*감성영화 느낌이랄까, 소설이 당년정 배경음악과 함께 석양으로 사라지는 사나이의 뒷모습으로 마무리되는 느낌이다. 주인공 일명 행운동 내지는 K는 말도 없고 웬만한 일에는 별 내색하지 않고 무심한 듯한데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 의문의 사나이로 그려진다. 아는 것도 많고 적당히 유머러스하고 묵묵한, 그러나 할말은 할 줄 알고 필요하다면 주먹도 쓸 수 있으나 자제할 줄 아는 미덕을 가졌다. 보고 있자면 마치 '택배기사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생활*'이나 '전생했더니 행운동 택배기사였던 건에 대하여*'같은 제목을 달고 있어야 할 것 같은 먼치킨 주인공이 등장하는 웹소설같아 오히려 아쉬웠다. 멋지라고 만들어 놓은 주인공인데 안 멋져서.

 

 가장 큰 장점인 핑퐁처럼 오가는 대화도 가끔 웃기긴하지만 천재 경제학 교수보다 더 젠체하는 듯한 어조가 부담스러웠다. 바쁘다며 '양 떼(146)'어쩌고 하는 핑계를 대는 것도 현실에서 시전하면 마이클처럼 보일 것이다. 행운동 사람들이 죄 수상했기에 칼잽이 K씨를 받아들이고 심지어 마음에 들어한 것이지 실제로 누가 저런 식의 화법을 구사한다면 '아 왜 저래'싶을 느낌이었다. 소설인 것을 감안해도 말투가 지나치게 극적이라 항마력 채워가며 읽었다. "양갱을 잘못 먹은 탓이에요(181)" 하고 대답하는 부분에서 절정을 이뤘다. 주인공에게 매력을 느끼고 침입자들 재밌게 읽었다면, 유머는 조금 부족하겠지만 이퀄라이저 꼭 보길 추천한다. 주인공 설정이 같다. 침입자들은 뭐랄까, 한국판 이퀄라이저 같다.

 

 결핍에 대해 나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하필 책을 읽은 날 낮에 천변을 좀 걸어지났다. 우한폐렴 탓에 초등학교 개학이 미뤄진 덕분에 한 5학년 쯤 됐을까싶은 남자애들 다섯이 천변에서 놀고 있었다. 그중 넷은 자전거를 탔는데 하나만 킥보드를 탔다. 정작 애들은 별 생각없이 놀았을지 몰라도, 그게 그렇게 마음에 걸려 보기 곤혹스러웠었다. 자전거 탄 네 명의 속도가 훨씬 더 빠르기 때문에 그애들과 함께 이동하기 위해 킥보드 소년이 아닌 척 더 열심히 한쪽 발을 굴러야만 하는 모습이 그랬다. 나도 자전거 갖고 싶다고 생각했을텐데, 친구들이 속도를 맞춰주는 배려가 때로는 미안했을텐데, 속도를 더 내보려고 발 구르는 것이 힘들텐데 하는 어두운 생각만 밀려왔다. 그 모습을 보며 같이 걷던 동행에게 불쑥 십대시절 내가 별스럽지 않게 겪었던 결핍에 대해 얘길 꺼내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책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왔던 것이다.  

 

 큰 줄기를 잇고 있는 사람들말고 단편적으로 나오는 에피소드들이 더 마음에 들었는데, 오히려 그런 에피소드들로만 내용을 연결한다면 연재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게꾼 아버지 이야기나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택배 기사 같은 내용은 어디서 본 듯해도 소재로 삼았구나 싶은데, '코카인'이나 대기업, 경찰서로 연결된 내용들은 너무 간 설정처럼 느껴졌었다. 어쨌든, 고독한 아저씨 히어로물을 원한다면 만족스럽게 읽을 것 같다. 히어로라고 봐도 될지 모르겠지만 소소한 구원도 구원이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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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하, 나의 엄마들 (양장)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
이금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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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는 동안 마음이 아파서 고단했다. 100년 전이라는 배경과 구수한 사투리가 초반의 몰입을 조금 방해했다. 한동안 가벼운 것들만 읽으려 고집했던 탓이다. 언제는 깊고 어두운 이야기라면 골라서 읽고 싶었는데, 사는게 복잡하고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가볍고 밝은 것만 찾게 되었다. 금방 그만둘 수 있고, 어디서부터 시작해도 어렵지 않은 글들을 소비했다. 핑계가 좋았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읽는게 더딘 것도 일제강점기에 홀어머니가 삼남매를 바듯이 먹여 살리는 형편, 그중에서도 맏딸에게 지워진 의무와 책임같은 것들이 오롯이 느껴지는 시작이 답답해서 였다. 한 며칠, 초반의 몇장을 읽다가 밀어두었다가 다시 집어들기만 했다. 초저녁에 잠이 들었다 12시가 넘어서 문득 잠이 깬 밤이었다. 다시 잠은 오지 않고 책을 읽다 잠들어야지, 하고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손에 들었다.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는 이른 새벽이었다.

 

 놀라운 흡입력이었다. 어깨가 아파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책의 절반쯤 읽었고, 그 뒤로는 재미있어서 끝까지 읽어버렸다. 버들, 홍주, 송화의 삶이 마음 아프면서도 살다보면 좋은 날도 오겠지 바라는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사진만 보고 외국에 있는 신랑과 결혼을 하러 가는 '사진 신부'들의 여정을 순진하게도 같은 마음으로 바라봤다. "삼 년 절은 오이지맨키로 쪼글쪼글한(78)" 신랑이 기다리고 있는 포와는 농장에서 일하다 채찍으로 맞은 상처 흉터가 남은 이주노동자들의 팍팍한 터전이었다. 그제서야 나무에 옷과 신발이 걸려있고 돈을 쓸어담는다는 부산 아지매의 말이 거짓말이었지, 하고 고개를 주억였다. 버들뿐 아니라 홍주, 송화가 마음먹고 떠나온만큼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랐었다.

 

 여자의 삶에서 남자는 무엇일까. 세 소녀가 시집가겠다며 하와이로 떠나 겪은 일들을 보며 더 잘살고 싶어서 떠나왔는데도 마음처럼 살아지지 않는 현실이 갑갑하고, 남편의 존재가 그녀들에게 짐만 더 얹어주는 것 같아 원망스러웠다. 울며 결혼을 거부하고 싶어하는 손녀뻘의 소녀들을 데려다 결국 아들 낳은 첩으로 삼으려는 홍주의 남편과 술마시고 폭력을 휘두른 송화의 남편은 끔찍했고, 나라를 위해 일한다고 집안은 돌보지 않고 떠나버린 버들의 남편은 뭐라 비난하기 어려워 괴로웠다. 남편이 부재할 때 뭉친 세 사람의 삶은 오히려 남편이 있을 때보다 더 나았다. 서로가 서로를 보듬고 열심히도 살았는데, 한편으로는 남편의 빈자리가 그들에게 계속해서 상처로 남아있는 것이 쓸쓸했다. 상처받고 괴로우면서도 사람에게 정을 주고, 사람에게 의지하며, 사람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니.

 

 순순히 소녀에서 엄마로 성숙해져가는 세 여자들의 이야기를 읽다가 진주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달라진다. 옳은 결말이라는 것은 없겠지만 아름답기만한 끝맺음은 아니었어서 마지막까지 쌉싸름하게 읽었다. 결국은 그렇게 되었구나, 좀 더 좋은날이 많았어도 좋았을텐데 싶었다. 400쪽에 가까운 분량이지만 전개된 내용에 비해 너무 갑자기 결말이 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특히 송화의 이야기가 버들이나 홍주에 비해 적어서 아쉽기도 했다. 송화라는 인물이 가진 사연도 깊어 그녀에게 대한 이야기가 더 나왔어야 덜 채워진 채 서둘러 끝맺었다는 느낌을 받지 않고, 진주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 헛헛한 마음이 덜하지 않았을까 싶다. 3시간을 넘게 읽었으면서도 마지막에 더 읽을 내용이 없어 아쉽다는 생각이 들다니, 좋은 책이었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멕시코의 유카탄을 배경으로 한 김영하의 '검은꽃'이 떠올랐다. 에네켄 선인장 농장으로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은 적 있었다. 그리고 일년 정도 지나지 않아 유카탄 반도의 무지개학교를 방문했다. 검은꽃을 읽을 때에는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스콜이 쏟아지는 변덕스러운 날씨를 뚫고 찾아간 무지개학교는 한산했다. 먼길을 온 우리 일행에 대한 환영은 따뜻했고, 아직도 남아있는 지난 세월의 흔적이 마음에 걸려 나는 위로도 응원도 변변한 말 한마디 전하지 못한채 기약없을 다음을 나누고 인사를 드렸던 기억이난다. 그게 십년도 지난 일이다. 여유롭고 느긋한 곳답게 아마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겠지. 문득 언젠가 하와이도 가보게 될 것 같단 생각을 했다. 검은꽃을 읽고 생각지못하게 유카탄에 갔던 것처럼. 개인적으로 인상깊은 것은 검은꽃이지만,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더 재밌게 읽었다. 둘 중 하나만 읽어봤다면 꼭 다른 한 책도 읽어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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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해결사 깜냥 1 - 아파트의 평화를 지켜라! 고양이 해결사 깜냥 1
홍민정 지음, 김재희 그림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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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깜냥의 이름을 보며 까만 털을 가지고 있는 고양이라서, 깜냥이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덧붙인 설명이 있지만 깜냥의 행동을 보면 '깜냥'이라는 말이 어째서 붙었는지 깨닫게 된다. 잘은 쓰지 않아도 그런 말이 있었다는 걸 새삼스럽게 떠올린다. '고양이 해결사 깜냥'은 짧은 이야기들이 여러 편 이어져 있기 때문에 동화로 읽기에도 좋지만, 깜냥의 이야기를 만화로 보게 된다면 또 좋을 것 같다. 가제본을 미리 받아 읽으면서 다양한 색채가 들어간 삽화가 없었다는 점이 아쉬웠다. 정식 출간된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번에 읽은 내용은 깜냥이 어떻게 아파트 '고양이 경비원'이 되었는지에 대한 도입부 정도 되는 것 같다. 앞으로 보여줄 활약상이 더 기대되는 좋은 시작이었다. 아주 오랫만에 동화책을 읽은 것 같다. 다만 경비 아저씨가 고단한 생활을 하셨던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이야기 곳곳에서 밥 한끼 제대로 드실 수 없을만큼 바쁘고,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주민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모습을 보인다. 깜냥이 귀엽고 또 기특한만큼 동화를 읽은 아이들이, 읽어주는 어른들이 주변의 이웃들에게 배려있는 모습을 가져야 함을 떠올렸으면 좋겠다.

 

 아파트에는 워낙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깜냥이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궁금해진다. 세상에, '아파트의 평화를 지켜라'라니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겉보기에 평화로워 보이는 우리 아파트의 현관과 엘리베이터에 잔뜩 붙은 안내문들을 떠올린다. 물론 대부분의 날들이 별일없이 지나가지만, 안내문마다 붙은 공고와 협조사항들의 내용은 평화롭지 않다. 담배를 피지 마세요, 층간소음을 조심해주세요, 심지어 새와 고양이들의 먹이를 주지 마세요. 라는 내용도 있다. 깜냥이 본다면 얼마나 상처받을까 싶은 내용아닌가.

 

 창비의 좋은 어린이책 수상작인 '고양이 해결사 깜냥'이 많은 주제를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내용도, 생각도 넓혀줄만한 좋은 동화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길고양이들에 대한 시선도 개선시켜줄만한 내용도 담았으면 한다. 나아가서는 더 고양이다운 캐릭터로, 더 고양이다운 묘사가 더해진다면 펭수를 잇는 좋은 캐릭터가 되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앞으로 이어질 깜냥의 새로운 이야기들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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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락 UNLOCK - 내 안의 가능성을 깨우는 6가지 법칙
조 볼러 지음, 이경식 옮김 / 다산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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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로 세상의 도시들이 잠겨지기(lockdown) 시작했을때, '언락'을 읽었다. 속속들이 전해지는 속보를 통해 보이는 잠겨진 도시의 풍경들은 생소하고 아름다웠다. 사람이 더이상 오가지 않는 거리의 황량한 분위기와 아름다움이 이 강력한 바이러스가 주는 충격과 함께 인식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외부 활동을 최대한 제한해야 한다는 지침을 거의 전세계가 따르고 있다. 와중에 여전히 밖으로 나가 이웃과 함께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들을 향해 이탈리아의 한 시장이 분노에 찬 영상을 업로드했단다. 영상 속의 그는 '당신이 언제부터 조깅을 즐겨했는가, 이웃과 함께 어울리길 좋아했는가'하는 냉소적인 물음과 함께 집안에 머무르기를 강력히 경고했다.

 

 우리가 집 안에서 최대한 홀로 있어야 하는 이 때에,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 거품 낸 커피를 만들어 마시는 일? 거품 낸 계란을 구워먹는 일? 필요 이상으로 고생스럽고 결과물은 대단한 맛을 내지 않을 것이다. 대신에 책을 읽어보자. 코로나 바이러스가 몰고 오는 경제 불안에 맞서 " 내 안의 가능성을 깨우는 6가지 법칙 " 에 대해 소개하는 '언락'을 읽어보기에 좋은 시기다. 비록 해마다 봄이면 즐기던 꽃놀이는 할 수 없어도, 나 자신을 일깨우는 자기계발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 이 한권을 가지고 며칠은 버틸 수 있을만큼 적당히 두툼하고, 적당히 오래 읽힌다.

 

 '언락'은 세상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일 수포자들의 가냘픈 마음을 파고든다. 나는 수학과는 절대 함께 갈 수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부정적인 생각만 바꾼다면 달라질 수 있다고? 믿기 어려운 주장이지만 과거에 공부할 때 좋아하는 과목, 잘한다고 생각하는 과목의 공부는 어려운 부분이 나와도 힘들지 않게 계속하고 못하는 과목, 싫어하는 과목의 공부는 조금만 어려워도 금방 포기하고 하기 싫어했던 기억이 났다. 나는 수포자니까, 수학은 원래 잘 못해. 하는 생각이 노력을 포기하는 뒷받침이 되어주었다. 만약 그런 부정적 생각이 없었다면, 수학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뇌 과학자들이 제시하는 뇌 과학 및 한계 제로 접근법이 변화의 초석을 마련해줄까?

 

 '언락'을 읽으면서 그동안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들이 어떤 식으로 사고에 영향을 주었는지 많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캘리포니아주립대학의 제니퍼교수의 일화(35)만 보더라도 사회의 통념으로 갈라놓은 가능성들의 방향에 대해 의심하도록 만든다. 정말 여학생이 문과적 재능이 더 뛰어날까? 정말 남학생이 이과적 재능이 더 뛰어날까? 혹은 나는 원래 남들보다 공부를 못하는 걸까? 내 수준에 맞는 한계가 있는걸까? '언락'은 이 모든 의문에 대해 아니라고 답한다. 물론 그동안 학습된 고정관념이 뿌리뽑히지 않은 상태에서 이 대답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때문에 책은 뇌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인간에게는 무한한 잠재력이 있음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여러번 증명한다.

 

 읽으면서도 믿기 어려운 것이 세번째 법칙에서 소개하는 " 생각을 바꾸면 신체와 뇌도 함께 바뀐다 " 는 부분이었다. 머리로 트레이닝하는 것만으로도 신체에 실제적인 변화가 생긴다니. 운동하기는 싫지만 운동해야겠다고 버릇처럼 생각하는 게으름뱅이에게는 이보다 더 반가운 얘기가 없었다. 하지만 실제 조사 결과를 앞에 두고도 솔직히 진짜 가능하리라고는 믿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내재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도 의심하기에 바쁜 자신의 마음을 생각해보니 다른 무엇보다 오랜 시간동안 굳어진 틀리는 것, 느리게 배우거나 실행하는 것(법칙5), 실패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될까?' 하고 의심하고 '안되겠지' 하고 포기하는 " 자기 불신 (123)"의 태도를 바꾸는것이 어렵겠구나 싶어졌다.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돕는다'는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언락'에서 말하는 개념을 뜻하는 바라면 조금은 이해가 될 것도 같다. 우주는 아니더라도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로 노력한다면 가능성이 더 많이 열릴 수 있다는 수많은 예시들을 읽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그릿'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에필로그에서 이를 언급하며 '그릿' 방식을 뛰어넘는 모토로 한계 제로의 마인드 셋을 제시하는 내용도 인상적이었다. 선택과 집중이 효율적일지는 몰라도 특히 청소년시기에는 얼마나 심리적으로 부담을 주는지 이해했기 때문이다. 교육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두 책 다 읽어보길 권한다.

   

 국내 확진 경로는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으나 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입국자들이 남아있는 탓에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 될 조짐을 보이고 있기에, 혹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이 기간이 더 길어지게 된다면 그동안 '나는 잘 못해, 나는 재능이 없어'라고 생각했던 분야에 대해 시도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단어나 숙어를 외워본다거나, 제 2의 외국어를 다시 시작해보거나, 과감하게도 책장 구석에 있는 수학의 정석을 꺼내들어 문제를 풀어 볼지도 모른다. 혹은 이 기간이 끝나고 구직활동을 다시 열심히 도전할 사람들은 자격증 공부에 도전해도 좋겠다. 준비없이 불경기를 걱정하고, 집안에 틀어박힌채 넷플릭스를 보는 것보다 더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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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집 짓기 - 이별의 순간, 아버지와 함께 만든 것
데이비드 기펄스 지음, 서창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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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으로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하고 난 뒤로, 그와 같은 경험을 또 해야 한다는 것은 고통이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살아갈수록 앞으로 남은 것들은 더하는 것보다 덜해나가는 과정이 더 많다는 것을 마주할때면 그만 마음이 암담해진다. 누군가와 연결고리가 생기는 것도 지금은 얻었어도 나중엔 덜어내야 하는 값이 된다니, 인생을 맨몸으로 왔다 또 맨몸으로 가는 것이라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아진다. 요즘 들어서는 특히 부모님 연세 즈음의 분들이 병원을 찾는 소식이 늘었다. 저자의 어머니, 아버지, 친구까지 암에 걸렸던 일처럼 '아프다'는 것이 아주 괴롭고 무서운 일이기는 하지만 특별히 누군가에게만 내려지는 고통이 아닌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으로 녹아들고 있는 것 같다.

 

 이별을 준비한다는 것은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실제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나에게 그 주제는 너무나 어렵고 복잡해서 심지어 낯설기도 하기 때문에, 어른의 수의를 미리 지어두면 장수한다는 속설조차도 사실은 늙음과 미래를 받아들이라는 선고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싶은 찜찜함이 남아있는 것이다. 때문에 '영혼의 집 짓기'를 읽으면서 여든이 넘은 아버지에게 아들이 자신의 관을 짜는 일을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 맞는지 긴가민가했다. 결국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그 관을 쓰게 되는거 아닌가, 아버지도 사실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도와주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자꾸만 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관을 만드는 이야기를 하는 동안 데이비드가 겪은 주변 사람들의 "암과 종양의 연대기(295)"는 시종일관 마음을 가라앉혔다. 특히 친구인 존의 죽음은 " 존의 죽음은 받아들이기가 훨씬 힘들(189) "다는 그의 아버지의 말처럼 저자가 느꼈을 타격과 상실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첫 달의 두 번째 화요일에 오는 이메일 알람을 삭제하지 못하는 마음이 이해갔다. 때문에 읽기에 편한 책은 아니었다. 아들이 인생의 황혼에 들어선 아버지와 함께 뭔가를 한다는 과정을 세세하고 차분하게 그려낸 부분은 때로는 위트있고 섬세하여 꽤 마음이 가게 읽었지만, 그 모든 것들이 약간의 슬픔으로 감싸여 있는 느낌을 받았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유쾌했던 부분은 '허멜 장례 회관'을 방문했을때의 일이다. 2000달러짜리 화장용 관을 구경하려고 했을 때 폴이 " 헉, 안에 누가 있어! (96) " 라며 농담을 했을 땐데, 사실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알고 있음에도 그 순간 내가 관심있어할 만한 어떤 새로운 사건의 시작인것은 아닌지 기대하기도 했었다. 아마 폴만이 할 수 있는 농담이 아니었을까 싶어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였다. 다른 사람들은 이 책의 어떤 점을 매력적으로 느꼈는지, 어떤 감상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중년의 미국 남성들에게 특히 사랑을 받은 책인 것 같다. sns에 올려둔 책 사진 밑에 좋은 책이라며 댓글을 남겨두고 싶을만큼 미국적인, 차고와 공구를 통한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교감이 그들에게 잘 전달되었나 보다. 라고 짐작한다.

 

 그에 반해 나는 한국식으로 인터넷에서 본 조언을 충실히 받아들여, 때때로 일상에서의 부모님 사진을 찍어둔다. 이전에 잘 하지 않던 행동이라 어색하지만 언젠가 가장 보고 싶을 모습이 바로 이런 것이란 생각을 하며 최대한 몰래, 자연스럽게 찍는다. 뭔가를 남겨두고 싶은 마음과, 언젠가를 준비하고자 하는 생각이 담겼는데 최근 지인에게도 권유해보았다가 그의 부모님께서 '죽은 사람 사진 두고 봐서 좋을 거 없다'는 말을 하셨다는 듣고 그렇게도 생각하실 수 있겠구나 싶어졌다. 여전히 때때로 부모님의 사진을 찍고 있지만 나중에 과연 어떤 의미로 남을지는 알 수 없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앞으로 남은 이별들이 참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 삶뿐 아니라 죽음도 함께 나누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역설하는 책 " 이라고 오은 시인이 남겨둔 문구를 다시 본다. 나눌 수 있을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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