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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춘의 힐링캠프 - 언제라도 놀러오세요!
김정윤 외 지음, 안치용 / 위즈덤경향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힐링캠프라고 해서 TV프로그램에 나온 인물들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해놓은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책 소개를 찬찬히 읽어보니 오히려 읽는 이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힐링의 시간이 될 책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딱 얼굴이 떠오를만한 이 시대의 대표적 인물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는데 정치인, 연예인, 예술가 등 쉽게 접할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멘토로 삼을 만한 인물들이 있다. 학생기자들이 책을 만드는데 직접 참여했다고 했는데, 인터뷰를 진행하는 질문들에서 그런 느낌이 좀 느껴졌다. 다소 가볍다 싶지만 재미도 있는 젊은 느낌이 나는 책이다.
받자마자 책을 읽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온통 내가 끼워놓은 책갈피로 책이 울긋불긋해졌다. 그만큼 인상적인 내용이 많았다. 인터뷰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전기 형식보다는 읽기 훨씬 수월했다. 대상에 대한 무조건적인 미화가 아니라 좀 더 자신을 낮춘 자세로 인터뷰에 임한 스무명의 인터뷰이들 덕분에 부담스럽지 않게 그들에게서 삶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최근 김연아와 관련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의 일로 구설수에 오른 김미화씨나 전에 직접 섬진강 가에서 찾아뵈었던 김용택 시인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하지만 읽다보니 그 못지 않게 다른 인물들의 인터뷰에서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 "우리는 우리가 읽은 것으로 만들어진다"는 독일의 유명한 문호 마르틴 발저의 말처럼, 책은 우리 인간이 '어떤' 것을 이루고 '무엇'인가가 되는 데 가장 유익한 길잡이라고 생각합니다."
" "물건을 든 손을 그대 손이 아니다." 물건을 내려놓고 빈손이 됐을 때, 그때서야 남에게 손을 내밀 수 있고 따뜻한 체온을 함께 나눌 수 있잖아요. 지나친 욕심으로 손에 무언가를 가득 움켜쥐고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손 내밀 겨를이 없어지게 되죠. 힘든 사람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구요."
"리영희 선생님께선 글이란 자기의 피를 가지고 쓰는 건데 몇 백 원짜리 볼펜 가지고는 못 쓴다고 하셨어요. 글은 마치 내 피를 넣듯이 잉크를 넣어서 써야지 소모품인 볼펜으로는 쓸 수는 없다고 하셨어요. 글은 피로 쓴다. 학자란, 지식인이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배운 거죠."
인터뷰를 한 멘토 스무명의 이야기 뿐 아니라 그들 삶에 중요한 메시지를 남긴 이들의 말도 함께 접할 수 있다. 저 세 대목이 특히 기억에 남는데 나를 이루는 것, 나와 남을 연결해주는 것, 나와 세상을 연결해주는 것에 대한 말들이다. 전부일 수는 없겠지만 독서하는 사람에게 있어 책은 그 사람을 이루는 하나의 조각이 된다. 그렇게 이루어진 나는 나를 위한 물질에 연연하기보다, 물질을 쥔 손을 폈을 때 잡을 수 있는 타자와의 소통에 더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내가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내 목소리를 알릴 때는 나의 일부를 담아서 진정으로 치열하게 해야하는 것이다. 저 세가지 메시지만으로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그 가운데 '삶의 원칙'은 다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만 적용하는 원칙'과 '사람과의 관계에 적용하는 원칙'으로요." - 안철수
요즘 뜨거운 감자로 올라있는 인물이다. 다른 내용들도 매우 뜻깊었지만 특히 이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사람은 남에게 인색하고 자신에게 관대해지기 마련이다. 그 반대로 행동하기 위해 늘 조심하고 있다고 해도 지키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 역시 남에게 관대하고 자신에게 인색하기 위해 삶의 원칙을 두 부류로 나누어 놓는 면모를 보인다. 나를 절제하고 남을 포용하는 일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요새 젊은이들은 자기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다들 주입된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다고 할까요? 내면에서 끓어 나온 생각이나 열정이 없어요. 뭐랄까...... 헛헛하달까요? 이건 지적인 헛헛함일 수도 있고,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데서 연유한 것일 수도 있어요. 문제는 이런 헛헛함을 채우려는 욕구가 없어 보인다는 겁니다. 대신 소비나 소유에 몰두해 상실감을 채우는 것 같아요." - 홍세화
예리한 분석에 허를 찔렸다. 맞다. 헛헛하다. 2-30대는 일종의 무기력함에 시달리고 있다. 패배주의, 비관주의, 허무주의에 물들었다. 꿈은 큰데 자신이 너무 작다거나,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해야 하는 일은 오로지 입에 풀칠하기 위한 목적을 띈 일이거나, 어려움을 겪어보지 못하고 자립심없이 자라온 탓에 나약해서 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높이는데 있어 돈을 벌고, 쓰는 일 외에 어떤 것을 해야할 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나를 세상에 알리는데에 있어 가진 물질을 자랑하는 것 밖에 다른 것을 모른다. 이런 결핍이 너무나 만연해 오히려 의식하고 있기 어려운데 이렇게 보니 한 눈에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한 부분이었다.
"또 많은 경우에 '나만 조금 불편하면 되겠지'하고 돌아가는데, 나중에 보면 나만 불편했던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불편했던 경우도 많죠. 어떨 때는 문제제기를 하고, 좌충우돌 시끄럽게 해서 내가 깨져주는 게 결과적으로는 다른 사람들이 덜 불편한 건데 말이에요. 순간 생각할 때는 '내가 더 고생하면 되겠지'싶어서 한 일인데, 나중에 보면 차라리 내가 문제라고 말을 했어야 다른 사람들도 마음이 편했을 일이 자꾸 벌어져요." - 최재천
굉장히 공감이 됐다. 불편을 뻔히 느끼면서 남의 이목을 끌거나 괜한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 그것을 감수한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조금만 바꾸거나, 개선할 점에 대해 의견을 내는 일은 작은 용기만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그 작은 용기조차 내지 않고 살아가는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말이었다. 오히려 저렇게 나서서 '깨져주는' 바꾸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에게 왜 참지 않고 일을 만들려고 하나, 관습에 사로잡힌 시선을 보낸 적은 없었는지 생각해본다. 더욱 더 부끄럽다.
조금 다른 상황이긴 하지만,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길거리에서 폭행을 당하고 있는 학생을 봤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실험을 한 상황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서기를 꺼려하거나, 나까지 피해를 입을까 걱정해 모르는 척 지나쳐버렸다. 힘이 세거나, 경찰에 신고를 한 사람만이 그 앞에 나서서 도움을 주려고 했다. 그러던 중 어떤 사람이 갑자기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러모으기 시작했다. 혼자 힘으로는 어려우니 비슷한 뜻을 가진 여러 사람을 불러모은 것이다. 그냥 지나쳐가려던 여러 사람이 멈춰서서 개입하자 상황은 해결되었다. 이처럼 한사람이 나서서 큰소리내고 이목을 끄는 일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모두가 나서는 사회야 말로 부끄럽지 않은 사회가 된다.
"신을 가장 절대적으로 묘사한다는 것은 그 신을 철저하게 대상화하고 있다는 것이고, 신을 완전히 타자로 둠으로써 자꾸 뭘 받고 얻어내고 뜯어내고 싶어 한다는 얘기입니다. 진정 신을 섬긴다는 것은 신과 내가 한 몸이 된다는 것인데, 거기에 어떻게 '우리 아이 무슨 대학 가게 해주세요' 혹은 '사업 잘 되게 해주세요'라는 말이 성립되겠어요? 우리의 신관은 변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 김규항
뜻을 같이 한다. 사람이 곧 신이라는 말은 사람을 신처럼 모시라는 말이기도 하고, 사람이 신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신을 믿는다는 것은 잘못을 용서받기 위함도 아니고,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함도 아니다. 용서는 죄를 저지른 상대와 자기 자신에게서 구해야하고, 원하는 것은 스스로 이뤄야 한다. 내가 가진 것에 대한 감사, 내가 이룬 것에 대한 감사도 마찬가지로 오로지 신만의 몫이 아니라 거기에 이르기까지 마음을 쓴 모든 이에게로 더 넓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얼마 전에 위 내시경 검사를 했어요. 수면 내시경을 했는데 검사를 마치고 의사가 "교수님, 왜 그러세요?"라고 묻더라구요. 그래서 왜 그러시냐고 했더니 왜 그렇게 박정희 욕을 하냐는 거예요. 마취를 하면 잠재의식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제가 "박정희! XXX!" 이러면서 계속 욕을 했다는 거예요." - 손호철
다른 것은 아니고 어디서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자기 마음 속에 숨겨둔 비밀을 갖고 있는 여자가 병을 얻어 수술을 해야 하는데 마취 상태로 비밀을 이야기 할까봐 수술을 포기한다. 주위 사람들이 얘기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목숨을 건지기 위해 수술을 하는 것이 어떻냐고 하자, 말하지 못해 이렇게 괴로운 마음이라면 분명 자신도 모르게 말하게 될 것이라고 수술을 하지 않고 죽어간 여자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는 것이 떠올랐다. 생각지도 못한 내 무의식이 저렇듯 표출된다니, 재미있으면서도 무서운 일화였다.
"초심을 지키기는 어렵습니다. 세상은 변하고 그리고 또 나도 변하고, 삶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죠. 인생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으니까요. 초심을 버려야 합니다. 늘 나를 바꾸고 혁신해야 합니다. 나를 혁명해야지요. 그래야 그 오랜 세월 속에서 초심이 시원한 물줄기로 흐릅니다. 눈물 같은 물줄기지요. 그 청춘의 푸른 눈물 같은 물줄기가 사랑입니다. 결코 인간에 대한 사랑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게 근원적이고 근본적인 불멸의 초심입니다."
김용택 시인 인터뷰의 일부이다. 표현이 아름다워서 따로 적어보았다.
"없습니다. 지금이 좋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리 돌아갑니까. 부질없는 질문이고, 어리석은 질문이고, 짜증나는 질문입니다. 지금을 귀하고 소중하게 가꾸는 게 우선입니다." - 김용택
과거로 돌아가서 바꾸고 싶은 순간이 있느냐는 요지의 질문에 대한 답이다. 김용택 시인의 인터뷰는 다소 딱딱한 느낌도 드는데,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구태의연한 질문에 대한 시인의 날카로운 답변이었다. 이 질문도 그렇지만 첫사랑에 대한 질문이나, '돈'의 의미를 묻는다거나, 자랑스러웠던 순간을 묻는 질문들은 소모적이었던 면이 많았다. 대부분의 인터뷰이들이 첫사랑에 대해서는 모호한 답변을 고수했고, 돈과 관련해서는 비슷한 취지의 답이 일관되었으며, 자랑스러웠던 순간은 겸손으로 응수하였다. 어느 정도 비슷한 틀을 갖고 질문이 이루어지는 것도 좋지만 이런 응답이 계속됨에 따라 책의 내용이 약간은 단조로워진 것도 사실이다. 차라리 인터뷰이에 따라 좀 더 개성있는 질문을 더 마련했다면 인터뷰 내용도 살고, 읽는 이의 관심을 자극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스무명의 멘토들의 이야기는 전부 다 다르면서 전부 다 같다. 자신의 목소리에 힘을 실었고,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젊은이를 향해 희망찬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어했다. 그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