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처럼 - 남극에 사는 황제펭귄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
송인혁.은유 지음 / 미래의창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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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펭귄을 좋아한다. 펭귄을 왜 좋아하는지 쉽게 설명하기 어려울정도로 좋아한다. 그냥 펭귄을 보고 있으면 귀엽다. 느긋한 분위기도 느껴지고, 움직임이 둔한데 생각 외로 섬세한 것처럼 느껴져서 좋다. 흑백의 대비도 마음에 들고 긴 몸뚱이에 짧은 팔다리의 미묘한 조화도 좋다. 아마 이 책을 보는 이들도 바로 그런 펭귄의 매력을 잘 알고 있고, 또 그 매력에 푹 빠질 것이다. 이 책은 내가 펭귄을 좋아하는 만큼 좋아할, 좋아하는 책일 것이다. 펭귄을 좋아한다면 꼭 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펭귄들이 책 가득히, 가득히 담겨있다. 한마리 한마리가 소중하리만큼 보기 좋다.

 

 자발적 유배라고 표현하는 그들의 남극행은 그들만의 이유있는 여정이다. 천적도, 바이러스도 없는 극지에서 단단한 얼음과 바람을 막아줄 빙벽이 있는 장소로의 번식을 위한 고된 여정. 그런 그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안타깝고 안쓰러운 애정이 솟아오른다.

 

 "황제펭귄 서식지에는 천적보다 더 무서운 무리들이 있으니, 바로 새끼를 잃어버린 수컷들 입니다. 그들은 무리를 지어 새끼를 품은 펭귄을 공격하고 부모들은 필사적으로 방어합니다. 남의 새끼를 빼앗는 게 쉬울 리 없습니다. 그도 안 되면 죽을 새끼를 뱃속에 넣고 며칠간 밤새워 품기도 합니다. 행여나 뚝 끊어진 인연의 끈이 도로 이어질까 하여 쉬이 내려놓지 못합니다."

 

 전에 펭귄의 행진이라는 프랑스의 영화를 본 적이 있다. 한 때 PMP였나 하는 기계에 넣어두고 출퇴근을 할 때 계속 켜놓고 졸다 보다, 졸다 보다 반복적으로 그 평화로우면서도 사랑스러운 화면들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었던 적도 있었다. 화면에 가득한 희고 까만, 펭귄들의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그냥 그저 좋다는 생각에 스트레스가 풀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영화에서 좀 충격적이었던 부분이 바로 저 내용이었다. 알이나 새끼를 잃은 펭귄이 전에 없는 공격성을 보이던 그 장면. 다른 펭귄이 품고 있는 알을 빼앗으려 집요하게 따라붙거나, 다른 펭귄의 새끼를 억지로 제 품에 끌어당기려고 하는 통에 작은 새끼가 시달리다 죽을 것처럼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그 난폭한 몸짓을 보고 놀랐다. 그리고 한 편으로 죽은 제 새끼를 바라보던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이 느껴지는 펭귄의 모습에 종을 뛰어넘는 슬픔의 공유를 했던 기억도 난다. 그 내용을 이 책에서도 다시 만나니 또 여러 생각이 떠오른다.

 

 책의 말미에는 펭귄을 촬영하며 펭귄을 닮아버린 송인혁, 김진만 씨의 남극체험도 실려있다. 그리고 그들의 뒷모습을 담은 사진도 있다. 이 남극의 신사들과 직접 공감하고 돌아온 그들이 부러우면서 고맙다. 멋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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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력
이츠키 히로유키 지음, 채숙향 옮김 / 지식여행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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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마주하기에 앞서 과연 지금 시대에 어울리는 책일지부터 궁금해졌다. 자력을 강조하는 시대에 타력을 앞세우는 제목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어떤 내용을 말하고 싶어하는건가 생각했다. 일본에서 온 이 모르는 아저씨는 인생 선배가 되어 자신의 인생을 통틀어 전하고 싶은 말을 책에 담아냈을 것이다. 그가 말하는 타력밑에 숨겨진 의미를 읽으면 알 수 있겠지 싶은 마음으로 읽었다. 그를 통해서 알게 된 것도 있고, 생각하게 된 것도 있고, 불만을 느끼게 된 것도, 또 그로인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 것도 있다. 저자가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좀 더 꼼꼼히 읽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책에도 그런 검열의 눈을 갖고 일일이 꼬리를 붙여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런 눈을 끝내 버리지 못한 자신도 발견했다. 읽으면서 비슷한 맥락의 생각이 들었던 책이다.

 

 이 책에서 작가가 일본 사회에서 충격적으로 다가온 몇 가지 사건을 반복적으로 들고 있는데, 한신 이와지 지진이나 옴진리교 사건, 일본의 패전, 고베지진, 사카키바라 소년 사건 등이 있다. 자신이 직접 체험한 사건도 있고, 일본 사회에 커다란 흔적을 남은 상처가 된 사건들이 대부분이다. 사카키바라 소년 사건 역시 다른 사건들에 비해 생소하지만 들어본 적 있는 충격적인 사건이었고 나머지 사건들은 대부분 설명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큰 사건들이다. 그런 일련의 사건들과 변해가는 문화 풍조를 두고 일본 사회에 대한 무한한 작가의 애정과 염려를 표현하고 있는 책이다. 다분히 일본적인 정서가 짙게 깔려나온다. 자신들의 문화, 풍류를 최상의 것으로 두고 약간 도취된 듯한 자부심을 즐기는 일본 사람들이 과연 좋아할만한 책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실패만 하는 시기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스스로를 책망하지 말고 "흠, 아무래도 타력의 바람이 불지 않는 것 같군'하고 가만히 목을 움츠리고 있으면 됩니다. 반대로 생각 이상으로 만사가 잘 풀리는 때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고 자신감도 점점 더해갑니다. 그럴 때는 오히려 잠시 멈춰 서서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내 소관이 아니다." 그렇게 중얼거려보는 것입니다."

 

 이 책은 마치 이 대목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공감하는 내용과 거부감이 드는 내용이 교차되어 공존하고 있다. 전자의 경우는 꽤 공감하는 편이다. 일이 잘 되지 않을때 자신을 탓하거나 자괴감에 빠지지 말고, 그 일 자체가 시기적으로나 상황적으로 잘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좀 더 자신을 편하게 두는 편이 오히려 더 낫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탓해봤자 스트레스만 더 늘고 잘 안되는 일이 잘 풀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일이 잘 풀릴 때 그 기쁨과 자신감까지 굳이 물려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게 자신 덕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오만한 일이지만, 자신의 노력이 덧대어져 잘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까지 막을 필요는 없다.

 

 "타력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나 이외의 뭔가 커다란 힘이 내 삶의 방식을 떠받치고 있다는 사고방식입니다. 나 이외의 타자가 나라는 존재를 떠받치고 있다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꿔 말하면 타력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의 커다란 힘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커다란 에너지가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흐르고 있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읽었던 직업 관련 책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다. 사람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밥 한 끼 먹는 일도 사실 누군가의 도움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아마 이 타력이라는 것도 그런 의미로 생각할 수 있다고 느껴진다. 아니면 마치 연금술사에 나오는 것처럼 마음으로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는 우주의 힘이나, 시크릿 같은 책에 나오는 긍정의 힘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이 책에서 이처럼 타력을 강조하지만 지극히 일본적인 종교의 관점에서도 삶을 바라보는 자세를 많이 이야기한다. 특히 15세기 중기에 있었던 종교인 '렌뇨'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생소한 인물이라 작가의 책에서 처음 접했다. 책의 말미쯤가면, 렌뇨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  

 

 " "병이 있는 사람, 고민이 있는 사람의 심적 고통이나 괴로움은 '타인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이 고통은 자기만 느끼고 있다'라고 생각했을 때 두 배, 세 배 더 커지는 것이다." 작가 엔도 슈사쿠는 어딘가에서 그렇게 썼습니다. 갇힌 슬픔, 갇힌 고통이란 것은 그 강도가 보통의 것보다 두 배, 세 배 커지는 것입니다."

 

 공감하는 부분 중 하나다. 이 부분에서 대뜸,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옛 이야기가 떠오른다. 말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병을 얻는데, 자신의 고통을 남과 나눌 수 없어 혼자 끌어안고 있을 때 가슴속에서 느낄 고통은 얼마나 더 큰 것일까. 그것은 고통에 외로움이 더해진 무게일수도 있다. 괜히 기쁨을 나누면 두 배,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라는 말이 나오는 건 아닌가보다. 세월을 통해 전해지는 말들은 다 그만의 깊은 이유가 있는거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가장 흔한 것에서 찾는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깨달음이 떠오른다.

 

 "일본인은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자아가 작은 것 같습니다. 일본인은 스포츠에서도 골프나 테니스처럼 개인기를 겨루는 게임에서 좀처럼 이기지 못합니다. 일본인은 셋이 모이면 금세 파벌을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몇 명이 모여야 겨우 한 사람 몫을 한다고 생각하는 면이 있습니다. 이는 사방이 국경으로 둘러싸여 있다든가 반복적으로 침략을 받은 경험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강렬한 자아를 가질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일본인은 기본적으로 부드러운 감성의 소유자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자국에 대한 애정어린 분석이 보인다. 일본인이 가진 기질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듯하면서도 일견 그 기질은 부드러운 감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안아주고 있다. 글쎄, 그들이 예의바른 사람일 수는 있어도 부드러운 감성을 가졌다고는 생각이 쉽게 미치지않는다. 그들은 침략을 받은 경험이 없는 대신, 침략을 하는 경험을 택하는 민족이 아닌가. 공격받지 않아 강렬한 자아를 가질 필요가 없었다는 해석은 좀, 지나치게 애정이 섞였다. 대신 공격하는 더욱더 강렬한 자아랄까, 욕망을 가지지 않았나. 우리나라에서 흔히 말하는 섬나라 근성이라고 하는 그런 성질을 갖고 있는데 일본인의 입장에서는 그런 면이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또 슬퍼하는 사람에게 "계속 끙끙 앓아봤자 소용없어. 마음을 고쳐먹고 열심히 해봐. 자, 힘을 내자"라는 식으로 격려함으로써 슬픔에서 회복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대치적인 방식입니다. 이에 반해 잠자코 함께 눈물을 흘림으로써 그 사람의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나누려고 하는 태도를 동치라고 합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내 자신에 대해 좀 생각해봤다. 나는 어떤 입장을 취하는 편인가, 하고. 생각해보니 대치적인 방법을 쓴 경험들만 떠오른다. 위로해주는 것에 익숙치 않아서 그렇다는 변명을 해보지만, 그런데 누군가 나에게 동치적인 방법의 위로를 해주었을때 큰 위로가 되었던 것이 떠올랐다. 무슨 말이라도 해줘야 위로가 될 것 같아서 그런 말들을 주워읊었던 것인데, 공감이 격려보다 큰 위로가 되는 순간을 직접 체험해본 기억이 떠오르고 보니 나도 앞으로는 공감을 해주어야 겠구나 싶었다. 뭐, 사실적으로는 슬픔에 빠져있을때 곁에서 위로를 주려고 하는 사람들의 노력은 동치이든, 대치이든 어떤 방법이든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고마운 위로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들었던 생각은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 놓여진 불편함에 대한 것이다. 우리나라를 구 식민지라고 표현한 점도 그렇고 과거 아버지와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외지인 학교 교장이었던 아버지가 패전 이후에 가르치던 학생들이 무장하고 와서 한국을 떠나라는 말을 했다는 조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을 보면 왠지모를 거부감이 든다. 구 식민지라는 표현이 사실일수도 있는데, 일본인인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 생각하니 어쩐지 거부감이 느껴졌다. 그들이 그런 과거를 안고 우리나라를 부를때는 좀 더 죄의식이랄지, 부채의식이나 조심스러움을 담아서 불러야하지 않을까 싶은데. 게다가 외지니 내지니 이런 표현이 나오는 것도 껄끄러웠다. 과거의 말을 하면서 외지, 내지 표현이 나오는 것일수도 있지만 그건 강점기 시기에 일본이 자국와 우리나라를 부르던 표현이다. 우리를 속국으로 보면서. 일본을 싫어한다고 의식하고 지내는 것은 아닌데 이런 순간에 나오는 거부감이나 일종의 분노는 어쩔 수 없는 것인 것 같다. -쓸 수 밖에 없는 표현인걸까 하고 생각하면서도 짜증난다. 이 근본도 모르겠는 애국심-

 

 과연 다른 사람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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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밖으로 다시 배낭을 꾸려라 - 파나마에서 알래스카까지 세상 밖으로 배낭을 꾸려라 2
칸델라리아 & 허먼 잽 지음, 강필운 옮김 / 작은씨앗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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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나긴 여행을 함께하게 되었다. 이들 부부가 두사람으로 시작해서 세사람이 되어 돌아오는 여행의 마지막에 합류하게 되어 즐거운 마음이었다. 무엇보다도 여행지가 미대륙을 남쪽부터 북쪽까지 아우르는 곳들이어서 더욱 좋았다. 특히 남미의 여러 지역들이 반가웠다. 동양인 한정일지도 모르지만 남미는 어쩐지 떠나고 싶은, 환상적인 여행지 중의 하나이다. 멀어서 생소한 것일 수도 있고 남미가 주는 강렬한 이미지 때문일수도 있다. 아르헨티나 출신인 부부 덕분에 남미 지역에 대한 여행기를 비교적 친근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새로운 관광지를 살펴본다는 느낌보다는 친숙한 이웃, 새로 사귀게 된 친구를 만나듯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것이 뭐였어요?" 부인이 질문했다. "돈이 다 떨어진 것이 제일 좋았습니다." "진짜로요?" 대사가 놀라며 물었다. "네, 믿기시지 않겠지만 진짜로 그랬습니다. 전에 돈이 있을 때는 어떤 장소를 둘러보며 지나가는 관광객이었습니다. 이제는 그곳의 풍습과 함께 그 지역을 생생하게 경험합니다. 곤궁함 때문에 우리는 더욱더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게 되었고, 그들은 우리에게 문을 열어주면서 자기들의 전통과 문화와 음식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들 나라뿐만 아니라 자기들 삶에 대해서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런 지속적인 배움을 통해 우리는 성장했고, 그리고 계속해서 알고 싶다는 생각이 더 생겼습니다. 세상과 다른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 놓는 사람은 절대로 성장을 멈추지 않습니다." "

 

 사람들이 여행을 갈망하면서도 쉽게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돈'. 돈이 있어야 여행을 떠나고 돈이 없어서 여행을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 그런데 이 부부는 돈이 없다는 것이 여행에서 가장 좋은 점이라고 말한다. 패기가 넘친다. 그런데 그들의 변을 듣고나면 과연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가진 것 만으로 여행을 할 때 여행지를 둘러보고, 음식과 기념품을 소비하는 관광객의 입장에서 여행을 끝마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행지 안의 생활에 직접 발을 담궈보지는 못한다. 그들은 돈이 부족하다는 난점을 여행지에서의 삶을 자신의 생활로 만드는 계기로 삼았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그들의 곁을 나누어주었다. 사람이 가진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새로운 가족의 사진을 찍으면서 우리는 그들의 일부분이 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아기를 안아보라고 주면서 말했다. "이제는 삼촌 내외랑 같이 사진 찍어야지." 떠날 때는 여섯 명이었는데 돌아갈 때는 일곱 명이었다. 친구들처럼 왔다가 가족처럼 돌아갔다."

 

 부부 역시 여행 중에 아들 팜파를 얻었는데 그 전에 푸에르토 비에호라는 곳에서 만난 가족들의 집에서 묵을 때 그 집의 새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을 함께 한 경험도 있다. 부부는 손님으로 가족의 집에 초대되었다가 새로운 아기의 탄생을 함께하며 삼촌 부부라는 호칭을 얻게 된다.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가족이 되는 놀라운 경험, 서로에게 잊지 못할 사람이 된다는 것,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사람에 대한 희망과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강렬하게 솟아오른다. 마치 함께 길을 가는 친구들이 늘어나듯 짧은 만남에도 마음과 삶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이 여행이 가진 중독성있는 매력인 것 같다.

 

 " "우리는 길을 가다가 비를 맞으며 잠을 잤고, 추위에 떨었고, 먹을 것을 찾아 쓰레기 더미를 뒤졌어요. 그러나 우리를 도와주거나 따뜻하게 대헤 주는 사람들이 항상 있었어요. 우리가 도둑놈이거나 살인자일 수 있을 텐데도 문을 열어주고 잠잘 곳을 제공해 주고, 일자리와 도움을 주고...... 먹여 살릴 아이들이 여럿 있는 많은 어머니들은 자기들이 우리 어머니들이고 그리고 언젠가 자기 자식들도 도움이 필요할 때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우리에게 그렇게 잘 대해 주셨어요." "

 

 사실 남미의 나라들은 치안이 불안정하고, 북미의 나라들은 타국에 대해 친절하지 않다는 이미지가 있다. 그런데 이들의 여행기를 보면, 우리가 듣고, 어렴풋이 알고 있는 다른 나라에 대한 소문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새삼 느낀다. 불안정한 치안, 불친절함은 물론 주의해야 할 사실 중 하나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내가 대접받길 원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는 사람들이 아직 존재하고 있다. 내가 대접받길 원하는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말은 멋진 말이다. 실천하기는 어렵지만. 이 여행기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마음을 보여주고 있고 그 마음을 책을 통해 함께 느끼는 따뜻한 시간이었다.

 

 "첫 번째 질문은 국적이었다. 다시 말해 어떤 장소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가능성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옷을 입느냐도 중요했다. 깔끔하게 차려입고 서양인처럼 생길수록 더 유리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인종차별이었다. 잘사는 나라 국민은 어떻게 차려입어도 입국할 수 있다."

 

 911테러 이후에 특히 미국의 입국심사 과정이 까다롭게 바뀌어서 타국인의 경우 속수무책으로 그들의 심사를 당해야만 하는데, 솔직히 이 부분에는 불만이 많다. 심사를 거치는 것이 아니라 당하는 수준으로 까다롭다. 그들이 타국에 나가는 것은 매우 쉬우면서 타국인이 그들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은 배로 어렵게 만들어놓은건 자국의 안전을 위해서일수도 있겠지만 우월의식을 느끼려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들 부부도 미국과 캐나다를 입국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그들이 어떤 길을 걸어왔고, 어떤 만남을 통해, 어떤 목표를 향하는지, 서류나 그들의 겉모습만으로는 가늠할 수 없다. 그들을 바로 보지 않고 진정성을 오해한 채 입국을 거부하는 부분을 보면 꿈과 삶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물질적 지표를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직접 보고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 "맛없는 아이스크림 5킬로그램하고 제일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 작은 컵에 들어 있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을 먹을 거예요?"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요."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사느냐보다는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영원히 살 생각을 하지 말고 살면서 영원히 가져갈 수 있는 것을 찾아보세요. 시간을 때우는 방법을 찾는 사람들도 있고 어떻게 하면 더 오래 살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당신이 사는 매일매일은 선물입니다. 그 시간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사세요. 인생은 당신한테 삶만 주었고, 다른 것은 전부 당신이 직접 꺼내야만 합니다." "

 

 사람은 삶에 대한 욕심이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을 오래 지속하는 것에 그 욕심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가능하면 더 오래 살고 싶은 것은 당연한 얘기다. 그런데 삶을 오래 살고, 짧게 사는 것은 욕심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다. 우리가 삶에 욕심을 부릴 곳이 있다면 그건 우리의 삶을 어떻게 채우느냐에 그 욕심을 써야 한다.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갖기 위해 마음을 쓴다. 그런데 그 좋아하는 것을 갖는다는 것을 하기 위해 우리의 삶을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려는 마음까지는 쓰지 못한다. 삶을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채우고 좋아하는 것을 가지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때 이들 부부는 이렇게 말한다. 얼마나 사느냐보다는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그리고 그 말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기에 그들의 말에는 힘이 실려 전해진다. 

 

 "저는 차는 팔 줄 알지만 그 돈으로 무엇을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돈이 있을 때는 돈이 저를 가졌습니다. 이제 돈이 없으니 제가 저를 가지고 있습니다."

 

 살면서 자신의 삶을 마음먹은대로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삶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주인을 이끈다. 그 순간순간을 즐기는 것이야 말로 그 삶의 끝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여행도 그들이 원하는 방향대로만 이끌어지지는 않았다. 애초에 그들의 계획 이상의 것으로 그들을 인도했다. 그들은 그 순간을 즐기며 살아갔고 결국 여행의 끝은 애초에 그들이 계획한 것처럼 아름답게 마무리 되었다. 그들이 마음먹은 그 이상의 빛으로 그들의 삶이 물들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의 여행을 통해 일상에서 벗어난 여행의 즐거움을 느끼기 보다는 주인되게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느끼게 된다. 그들의 낡은 자동차와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지켜보는 즐거움이 톡톡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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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조
김희진 지음 / 민음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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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진 작가는 처음이다. 책의 표지를 보고 있으면 깔끔한 디자인이 꽤 인상적이다. 욕조의 배수구와 어지러이 널린 실핀들이 도드라지게 되어 있어 진짜 실핀인 줄 알고 집으려 했던 적도 있다. 책을 읽는 동안 계속 이 인상적인 표지를 꽤 마음에 들어했다. 매우 하얗고, 또 매우 까만 색으로 이루어진 표지를 보고 있으면 단정한 것 같으면서 기괴한 느낌도 든다. 그리고 그 표지의 인상은 김희진 작가의 소설집의 전체적인 느낌과도 비슷하게 맞아 들어온다. 단정하면서도 기괴한, 이 친절하지 않은 소설과 만났다.

 

 책을 읽으면서 인상깊은 문장과 마주하게 되면 그 부분을 반드시 꼽아놓는 편이다. 좋아할만한 구석을 찾는 것이다. 이 책에서 마주한 문장들은 현실감있는, 지극히 피부에 와 닿는 실재적인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공감할 수 있는 작고 세밀한 일상의 조각들이 소설에도 담겨 있었다. 비록 이 소설집 안의 작품들이 일상과 거리가 먼 것을 말하고 있더라도, 그 안에는 일상이 담겨있다. 이상한 조화다.

 

 "그들의 말은 계속 이어진다. 혀의 저주 같은 말, 말, 말들. 세상이 어지러운 건 저놈의 혀와 혀가 뱉어 내는 말들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만의 조용한 식사는 오늘도 이렇게 끝이 난다."

 

 주인공은 말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말을 하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시거워한다. 사실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대부분은 좋지 않은 말이다. 남의 말을 하더라도 칭찬보다는 흉이 더 재미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굳이 시간과 수고를 들여 좋은 말을 하려고 하진 않는다. 그게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말이다. 소설 속에서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의 혀가 입 밖으로 빠져나와 공중을 돌아다닌다. 그리고 혀는 자신의 주인이 내뱉었던 말을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한다. 그 말들 때문에 온통 혼란이 온다. 설정이 참 독특하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문득 '언령'이란 것이 떠올랐다. 말에도 힘이 있어서 말을 하면 그대로 일이 이루어진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쉽게 속담으로도 '말이 씨가 된다'하는 등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말을 가볍게 하지만 가볍게 뱉어낸 말에 사실 무거운 힘이 있어서 그게 곧 짐이 된다. '언령'이란 말을 듣고 난 뒤로 불길한 말을 함부로 입에 담지 않게 됐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말을 하지 않으니 곧 그 일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입밖으로 내지 않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않은 일처럼 여겨지기도 하니, 말이 가져다 주는 힘은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크다.

 

 "누구도 빌려 간 적 없는 책이 분명했다. 책은 아주 깨끗했고, 새것처럼 아직 길들여지지 않아 표지를 여는 데도 좀 뻑뻑했다. 나는 새 책을 처음 열 때의 그 순간을 좋아한다. 특히 이처럼 하드커버로 된 경우가 그렇다. 미닫이문을 열 때처럼 양장본 표지를 열 때도 미약하지만 '쩍쩍' 소리가 난다. 표지 안쪽의 책등 부분이 벌어지면서 나는 소리였는데 새 책일수록 그 소리가 컸다."

 

 새 책, 새 물건을 처음으로 손에 넣었을 때 느끼는 감정을 옮겨놓았다. 특히 하드커버로 된 책을 처음 열어볼 때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난다는 점이나 약간의 뻣뻣한 느낌을 표현한 점이 좋았다. 생활 속에서 얻어진 생생함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부분이 좋다. 이런 곳에서 공감을 느끼면서 작가와의 일체감을 느끼게 된다. 타인과 연결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것일지도 모르겠는데, 소설 속에서 공감가는 부분을 보게 되면 그 느낌이 더 크게 느껴져서 좋다.

 

 "알랭 씨는 경보 수준에 약간 못 미치는 정도로 걷는다. 보도를 따라 걷다 보면 마주 오는 사람과 어깨를 부딪칠 때가 있다. 페이스가 끊기게 되는 주원인이었다. 그럴 때마다 알랭 씨는 얼굴을 잔뜩 응그리며 혀를 찬다. 당신들이 내 운동을 방해할 권리는 없어. 비켜. 저리 비키라고! 알랭 씨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마주 오는 사람들의 어깨를 일부러 치고 가기도 했다. 물론 죄송하다는 말을 건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주인공이 알랭씨라고 해서 외국인이 주인공인가 했는데 프랑스인의 이름을 딴 한국인의 이름이었다. 알랭씨는 괴팍한 주인공이다. 당최 정이 안가고 이름대로 차가운 사람인 것 처럼 보이는데, 그가 점점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가는 과정이 조금씩 보여 재미있다. 알랭씨의 이야기 중에서 저 부분을 꼽은 건, 역시 공감됐기 때문이다.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을 때, 또는 거리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치였을 때 저런 생각을 품어본 적이 있다. 알랭씨가 좀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긴 해도 사실 내 안에도 알랭씨같은 면이 존재한다. 

 

 "남자가 수줍게 웃으며 네, 하고 대답했다. 그때까지도 남자는 이마에 맺힌 땀을 손수건으로 찍어 대고 있었다. 여자는, 땀이 많은 사람치고 악한 사람은 없다는 엄마의 말이 생각났다."

 

 이 땀에 관한 얘기는 주변에서 실제로 체험한 적이 있는 신빙성있는 부분이다. 땀이란 것이, 단순히 더위를 느끼는 정도만 나타내는 게 아니라 감정의 동요를 꽤 정확하게 나타내기도 한다. 여자와 관련된 상황에서 여지없이 폭포수같은 땀을 보이는 남자는 대부분 순박하다. 는 두번째 케이스를 이 책에서 마주했다. 그 땀에 대한 꽤 정확한 이론을 이 책에서 또 마주한 것이 의외였다. 잘 몰랐지만 땀이 많은 사람치고 악한 사람은 없다'는 말이 엄마 말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는 말처럼 널리 알려진 말일지도 모르겠다.

 

 소설에서는 이상한 상황들이 아무런 설명없이 막 던져져있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것처럼. 혀들이 공중에 떠다니고, 세상의 빨간색이 없어지고, 욕조에서 자는 여자가 있고, 해바라기로 사람을 고문하기도 한다. 이런 독특한 상상이 재미있으면서도 불친절하다. 문장이 좀 건조한듯한 느낌을 주는 탓도 있지만, 그 독특한 설정을 보고 있으면 난데없이 낯선 곳에 내쳐진 기분이 들게 만든다. 인상적인 소설들이 많다. 김희진 작가만의 개성을 느껴보기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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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님전 시공 청소년 문학 50
박상률 지음 / 시공사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개님전은 구수하다. 개님전의 황구, 누렁이, 노랑이 식의 표현을 따르면 노란 애기똥같은 매력이 있는 소설이다. 구수하다는 말이 색다르다는 말과 어울릴지는 모르겠는데, 확실히 이 책은 구수해서 색다르다. 청소년들을 위해 쓰여진 책 중에서 이렇게 구수한 맛을 내는 작품을 보기는 처음이다. 개인적으로는. 온통 사투리가 가득하고 구어체로 되어 있다. 판소리를 한마당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판소리치고는 좀 더 세련된 느낌이지만. 구식이라고 하기에는 세련됐고, 요즘 식이라고 하기에는 구수하다. 이 독특한 청소년 도서, 가볍게 읽히지만 그 안에 배움와 재미가 골고루 들어가 있다. 우리 토종인 진도개에 대해서 알 수 있고, 시골 문화, 사투리의 맛도 볼 수 있는 책이다.

 

 개님전은 말 그대로 개가 주인공이다. 진도에서 태어난 노란 털의 진도개, 황구와 황구가 낳은 마지막 새끼들 누렁이, 노랑이와 황구의 주인댁 노랭이 황씨 할아버지네 집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얘기도 있고, 어디선가 들어봤던 이야기도 나온다. 무엇보다 특별한 점은 개의 생활과 습성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나온다는 점이다. 집 안에서 키우는 사람같은 개가 아니라 개답게 자라는 개 본연의 모습으로. 소설은 액자식의 구성으로 되어 있는데 첫 장면이 황구네 집에 팔려갔던 누렁이가 돌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황구는 추위에 지쳐있는 누렁이를 보듬어주고, 황구가 누렁이와 노랑이 자매를 낳던 때의 시간으로 넘어가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실 쥐들은 개 냄새와 개 소리가 났을 때 이미 절반은 넋이 빠져나간 상태였것다. 그런 상태에서 패대기까지 쳐지자 더는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렷다. 개 냄새와 개 소리는 고양이의 것과는 달리 치명적이었으니. 고양이 냄새는 별로 고약하지도 않고, 기분 나쁘기는 하지만 소리도 그다지 몸서리 쳐질 정도는 아니었것다. 그런데 개 냄새와 개 소리는 다르다. 개 냄새는 마치 연기에 질식되는 것처럼 괴롭고, 개 소리는 고막을 찢는 것처럼 아프고 공포스럽게 들렸으니."

 

 집에서 개를 키워본 적도 없고 애초에 집에 쥐가 들끓은 적도 없어서 집에서 키우는 개가 쥐를 잡는다는 얘기는 개님전 읽다가 처음 알았다. 나만이 아니라 이 책을 읽는 아이들도 멘탈이 붕괴 되는 얘기일 것이다. 쥐잡는 건 고양이인줄만 알았는데 옛날에는 개도 쥐를 잡았나 모르겠다. 개 좋아, 짱 좋아 뭐 이런 표현이 나오는 것만 봐서는 그렇게도 옛날은 아닌 것 같은데, 배경이 언제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쥐가 고양이보다 개를 더 무서워한다니. '고양이 앞에 쥐'라는 말도 있는데 개님전에 나오는 쥐잡는 개에 대한 얘기는 진짜 새로웠다. 진도개가 주인공이라서 있을 수 있는 에피소드일지도 모르겠다.

 

 "노랑이가 다시 물었다. "부르기 전에 뛰어 들어가믄 안 되는 것이여?" "미리 뛰어가 있을 필요까정은 읎어. 너무 앞어가도 우릴 재빠른 진도개라 안 하고, 눈치 빠른 여시 취급허거든." "근께 여시 취급은 당허지 말고, 그냥 개 취급 받는 선에서 살어라, 그 말이제?" "뭣이든 지나치믄 모자란 것보다 못헌 벱이여." "

 

 애기 똥을 먹는 수업을 받는 한 대목이다. 똥을 싸서 밖으로 내어놓으면 그 똥을 집어먹겠거니 하고 생각했는데 애기가 똥을 싸면 방 안으로 들어가 직접 애기 엉덩이에 묻은 똥을 핥아 먹는다니 이건 또 새롭다. 이 전에는 황구가 새끼들에게 앞으로는 애기 똥을 먹으라고 하자 개들이 그건 좀 비위상한다고 꺼려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꽤 우습다. 개가 똥을 가리다니. 생각 이상의 것만 이 책에 담겨있나보다. 그 밖에도 황구는 쥐잡는 법, 노루잡는 법, 개가 지내여 할 개격에 대해 부지런히 새끼들에게 알려준다. 살뜰히 챙기는 모습이 사람과 다를 바가 없고 개들이 사람말을 다 알아듣고 사람처럼, 사람보다 낫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탓에 배우면서 읽는 책이다.

 

 "노랑이도 떠나고 누렁이도 떠난 헛간에 황구는 홀로 엎드려 있는 시간이 많아졌것다. 무슨 일을 해도 흥이 나지 않았것다. 나이가 들어 더 그런지 모르겠지만, 요즘은 헛간에 엎드려 노랑이와 누렁이의 냄새를 떠올리는 게 아주 중요한 일이 되고 말았으니."

 

 꽤 감상적인 부분이다. 누군가와 이별했을때 그를 떠올리는 수단으로 냄새를 기억하는 일이 있다. 개뿐만 아니라 사람도 그렇다. 냄새를 맡거나 떠올리고 있으면 더 많이 생각이 나고 그리움도 짙어진다. 이 책은 단순히 재미만 주고 끝나는 것은 아니고, 개에 대해서 모르던 것도 알고, 또 황구와 새끼들의 이별을 통해 동물에 대해서 헤아려줄 수 있는 생각의 여지도 준다. 아동도서 '순둥이'가 떠오르는 부분이다. 순둥이라는 순한 강아지가 새끼를 낳게 되면서 어미 개로 성장하고 새끼들과 이별하는 과정을 그려낸 동화다. 이 책의 흐름과도 비슷하다. 초등 저학년에게는 '순둥이'를 추천하고 초등 고학년, 중등까지는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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