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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재즈 일기 - 재즈 입문자를 위한 명반 컬렉션, 개정판
황덕호 지음 / 현암사 / 2015년 7월
평점 :
내용을 시작하면서 서문에 저자에게 '장수풍뎅이'라는 음반 가게의 폐점 여부를 묻는 독자들이 종종 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개점한 적도
없는 가상의 가게가 이미 존재하고 있다고 단정하고 폐점했는지를 걱정한 독자들이 그렇게 많은 것일까. 이는, 저자의 글의 탄탄한 흐름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 입증한다. 실존하고 있을 법한 공간과 시간을 구현해놓고, 제대로 된 현실적인 가게의 이미지를 구축해놓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다 리얼리티를 갖고, 명반들은 하나의 에피소드를 받아 다시 플레이된다. '현실 세계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를 허구로 꾸민' 소설보다도 더
진짜같은 이 재즈 '입문서'. 입문자를 위한 글이라고 했지만 문외한에게는 너무나 허들이 높았다고 불평도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특유의 분위기를
구현해놓은 점이 독보적이었다.
이건 마치 심야식당의 재즈 편 같다. 심야식당이 2007년 발행이니 이 책이 좀 더 먼저 아닐까. (정확하지 않은 정보이니 자신은
없지만.) 인사동. 모든 오래된 것들이 모여 있을 것 같은 서울, 종로의 한 복판에 있는 묘한 분위기의 거리. 그 한쪽 귀퉁이에 있는 오래된
삼층 건물집. 국악 악기 가게가 있을 법한 곳에 재즈 음반 전문 매장이 소소하지만 꾸준하게 영업을 한다. 아는 사람들만, 필요로 하는 사람들만
드문드문 찾는 발걸음. 그들이 찾는 재즈 음반과 함께 한 사람의 손님이 하나의 음반과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고 간다. 그리고 매일의 일기를
기록처럼 남겨두는 가게의 주인. 설정도 잘 되어 있고, 어떤 에피소드로든 무궁무진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굉장히 '소설적인' 덕분에
음반 이름이, 재즈 싱어가, 선곡된 음악의 리듬을, 몰라도 괜찮도록 읽었다. 막연한 궁금증과 그리움을 품은 채로.
솔직히 다시 읽으라고 한다면 그건 처음 이 책을 손에 들었을 때 느꼈던 부담을 넘어서서 짐처럼 여겨질 시도일 것이다. 어디까지나 사실
반쯤은 재즈 매니아나, 타짜 정도는 내심 자부하는 정도로 애호하는 사람들이 읽어야 '재미'를 느낄 수 있을만한 내용이 담겨 있다. 입문자는
음반이나, 음원 구해서 들어가며, 배워가며 읽기에 급급할 정도로 많은 재즈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제목만 들어도 머리 속에서 자동적으로 음반이
플레이 될 정도라면 얼마나 풍부하게 이 책을 읽어낼 수 있을 것 인가. 진심으로 부러울 레벨이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이 책을 읽어 낸 이 문외한
독자의 경우는- 진짜 책의 초반에, 누가 리듬을 만드는가? 부분에 나오는 음악, 오직 그 하나만이 자동적 플레이가 되는 곡이다. 적어두고 보니
심하다. 읽어보겠다던 용기가 대단하고. 그 곡은, 처음 영화 수록곡으로 듣고 플레이 리스트에 추가해놓은 뒤로 항상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는
곡인데, 지금 보니 리스트 상에 있는 유일한 재즈곡이다. 그 곡은 바로, 칼 잡이 맥. 그 외에는 거의 유일하게 재즈 피아니스트 냇 킹 콜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정도고, 레이 찰스의 영화를 본적이 있다. (초라한 기록이다.) 이렇게 솔직하게 쓰는 이유는, 나도 읽었으니까 가볍게
읽거나, 관심을 가져볼 수 있는 계기로 삼는다면 한번쯤 읽어볼만 하다는 발판으로 삼으시라는 권유이다.
솔직히 최근에 읽었던 다른 어떤 입문서보다 서정적인 느낌을 주는, 하지만 그 배로 '난감한' 내용이었다. 입문자를 위한 이라는 단서를
달아놓았지만 글을 오롯이 느끼기에는 배경 지식이 너무나 부족했다.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단 몇 곡 정도는 QR코드 같은 걸 활용해서
소개되어 있는 곡을 들으면서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시도를 해봤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많이도 바라지 않는다. 한 세곡에서 다섯곡
정도만이라도.) 이 음악이 듣고 싶어 갈증이 날 때 딱 플레이되어 해갈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더라면, 이 책 정말 엄청나게 매력적이지 않았을까!
독자의 욕심이야 끝이 없고, 그 만족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저자와 출판사의 몫이자 영역일테니.
정말 느낌있다. 시도와 분위기가 굉장한 글이다. 이전 판본의 모습도 찾아봤는데, 나름 강렬한 느낌이 있지만, 이번에 한권으로 새로 나오게
되면서 확실히 세련되고 감각적인 분위기도 입었다. 준비된 책이니, 다가오는 가을에 한 권 정도 손에 들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