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미로 찾기 - 집중력 높이는 놀이 입문
요시카와 메이로 지음, 박영훈 옮김 / 주택문화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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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잠들기 전에 핸드폰을 일부러 멀리 둔다. 전에는 침대 맡 어딘가 손을 뻗으면 닿을 자리에 가지고 가서 자곤 했는데, 핸드폰이 근처에 있으면 잠을 자려고 하기 보다는 잠이 오기 전까지 핸드폰이나 좀 할까, 하는 마음에 아무 의미도 목적도 없이 이것저것 만지다가 느즈막히 잠들고 다음날 후회하고 낮밤이 바뀌어 고생했다. 그러다 얼마 전 멀리 떨어진 탁자위에 충전하려고 두었다가 기다리는 사이에 일찍 잠이 들었다. 그저 핸드폰만 멀리 두었을 뿐인데. 그래서 요즘은 의식적으로 침대 근처에는 핸드폰을 가지고 가지 않는다. 12시 전에 자려고 노력한다. 수면 패턴이 한결 나아졌다.

 

 핸드폰과 멀리하기를 마음먹은 참에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고 무료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들이 좀 궁금해졌다. 기껏 해봤자 핸드폰으로 보던 넷플릭스를 텔레비전 화면으로 보면 될까, 이런 생각이었는데 마침 '동물원 미로 찾기' 책이 눈에 띄었다. 가만히 앉아서 하는 일들 중 컬러링 북은 너무 손이 많이 가고 색도 신경써야 하는 등 취미에 안 맞는 편이고, 스도쿠 같은 것은 꽤 좋아한다. 미로 찾기는 머리도 조금 써야 하고, 심지어 이 책은 동물 그림으로 되어 있어서 귀엽다. 미로를 찾고 나면 복잡할 것 없이 아주 간단하게 동물 그림에 색을 칠해도 괜찮으니 여러모로 마음에 들었다. 동물 그림을 따라 간단한 동물 캐릭터 그리는 법을 참고해도 좋을 듯 했다.  

 

 어른이기 때문에 초반의 쉬운 난이도는 좀 너무 쉽다고 생각했는데, 한 3-4단계쯤 가자 깔끔하게 실수없이 찾고 싶어서 연필로 아주 살짝 길을 내가며 미로 찾기를 해야 했다. 실수해도 괜찮은데 보기에 안좋다는 생각, 깔끔하고 예쁜 완성본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에 꼭 이렇게 놀이를 놀이로 남기질 못한다. 아마 어린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는 좀 더 과감하게 실패도 해보고 색도 이리저리 칠해보며 더 즐겁게 이 책을 체험하지 않을까 싶었다. 어린아이보다 더 미로를 잘 찾는다해도, 그래서 책이 깔끔하게 정리된다해도, 정말 재밌게 즐겨가며 미로를 찾는 것은 어린아이들일거라 생각하니 그런 점은 부럽다.

 

 미로를 찾는 동안은 핸드폰이나 텔레비전, 컴퓨터 같은 화면에서 눈을 돌려 책과 마주하고 있다는 점이 좋다. 집중하느라 사실 눈을 부릅뜨고 있지만, 그래도 전자파로부터 눈을 쉬게 해주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 단순하게 머리와 손을 쓰는 동안 시간도 금방 간다. 아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면 핸드폰 그만하고 미로 찾기를 하라며 책만 쥐어주지 말고 함께 앉아서 같이 하면 더 즐거울 것 같다. 책에서 여러번 미로 찾기를 즐기는 방법으로 복사본을 이용하라는 안내를 하는데, 가족수만큼 복사해서 가장 먼저 미로를 탈출하는 사람이 이기는 놀이를 해도 좋을 것 같다. 간만에 느껴본 색다른 재미다. 귀여운 동물 그림과 함께, 전자파의 세계와 멀어지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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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에게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 나를 잃지 않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심리 안내서
휘프 바위선 지음, 장혜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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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와는 한동안 만나지 않았었다. 연락조차 주고 받지 않았던 시간이 길었지만, 그런 것쯤은 문제되지 않는 사이다. 작년, 오랜 침묵 끝에 그녀가 먼저 연락을 주었고 마침 내가 사는 곳 근처에 볼일이 있기에 겸사겸사 얼굴을 보기로 했다. 늘 그렇듯 그녀는 밝고 쾌활했다. 농담을 주고받는 일이 자연스럽고 잘 웃었다. 밥을 먹고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겨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녀의 볼일에 대해 물었다. 그녀는 여전한 태도로 우울증 때문에 병원에 다니고 있고, 병원이 이 근처라 진료를 보고 오는 길이라고 대답했다.

 

 사실 내가 어떤 얼굴로 어떤 말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 자신의 모습이야, 스스로 보면서 말할 수 없으니 기억하기로는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대화를 이어나가려고 했다는 것이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어떤식으로 말하고 행동하라고 조언해주는 글을 어디선가 본 것도 같은데 막상 느닷없는 대면은 당황스러웠다. 그녀를 소중히 여기고, 그녀의 낙관적이고 명랑한 모습을 좋아했던만큼 마음도 소란스러워졌다. 그날 이후로 자연스럽게 병원에 방문하는 날이면 얼굴을 보고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시간을 보내다가도 문득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궁금해졌다. '소중한 사람에게 우울증이 찾아왔'을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정말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서 책을 읽었다. 마음으로는 하나부터 열까지 알고 싶었고, 한편으로는 구태의연한 조언같은 것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제약된 태도로 상대방을 대한다면 그게 더 부담이 되는 건 아닐까. 우울의 증상들을 보면서 지금 나는 어떤가 헤아려보기도 했다. 수면에 대한 고질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유심히 읽었다. 수면에 관한 부분은 너무 해당되는 점이 많아서 다른 부분들이 좀 겹치는 것 같이 느껴진다면 상담을 받아볼까 생각도 해봤다. 대부분의 경우 염려하는 것에 비해 내원이 필요할만큼 증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들은 하지만.

 

 처음 지인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요즘은 우울이나 공황으로 병원 많이들 간다고, 약 먹고 꾸준히 치료받으면 괜찮아질거라는 말을 했는데 책을 읽다보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을 하는 것을 권하지 않았다. 힘들겠다고 공감하고 위로를 해주는 말을 추천해서 당황스러웠다. 오히려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겨주면 상대방의 부담이 덜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런 말이 괴로움을 이해하지 못하고 쉽게 말하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으려나 싶었다. 내 입장에 비했을때 상대방이 평이하게 대해주면 좋을 것 같은데,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누군가가 또 우울을 이야기한다면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고민이 좀 됐다.

 

 아주 밀접하게 생활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책에 나온 내용들로 어떤 도움이 될만한 행동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단 생각을 했다. 다만 지금 어떤 상황일지 혹은 어떤 시간을 보내고 밖으로 나와 나를 마주하고 있을지는 조금 짐작을 해보게 된다. 그녀 뿐 아니라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병을 거쳐갈지 모른다. 어쩌면 나에게도 우울이 찾아올지 모른다. 그럴 때 이 책의 내용을 떠올리면 생각이 좀 정리될 수 있을 것 같다. 룸펠스틸츠헨 효과(189)처럼 이름붙인 것, 정체를 아는 것에 대해서는 덜 당황스러울테니. 책을 읽고나니 지금껏 알아온만큼 그녀를 오래도록 보리라 마음먹었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괜찮아질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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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투스 - 인간의 품격을 결정하는 7가지 자본
도리스 메르틴 지음, 배명자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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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비투스란 생소한 말은 무슨 의미일까. 이 책이 과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몇몇 날카로운 문장들이 인상적이었다.  " 우리와 비슷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우리의 아비투스와 가장 걸맞다. 그런 곳에서 우리는 자신의 본질에 맞게 산다고 느낀다.(21) " 내가 가진 아비투스는 어떠하지? 이런 구분을 나누는 것이 과연 유용한 일일까? 현실적이긴 하지만 오히려 더 천박한 구분은 아닐까? 의문이 생겼다. " 그러나 동시에 한계에 부딪히고, 새로운 환경에 진입하자마자 기존의 아비투스가 걸림돌이 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근본적으로 잘못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것이 불안감을 만들고 자신감을 갉아먹는다. 새롭고 어색한 사회적 코드에 익숙해지려면 학습이 필요한데, 그런 걸 가르쳐주는 인터넷 강의는 없다.(30) "

 

 하지만 사회적 계층에 대해 다루고 있다보니 흥미로운 내용도 많고, 직접 경험해보며 느꼈던 것들이 떠오르며 공감되는 내용도 많았다. 새로운 사회적 코드를 알려주는 인터넷 강의는 없다는 말에서, 우리가 처음 고급 레스토랑을 방문했을때 느껴볼 법한 어색함이 생각났다. 이를테면 식기의 사용 순서와 방법 같은 것. 가장 기본적인 이 테이블 매너는 익숙해지기까지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낯선 외국어로 쓰여진 메뉴판, 음식과 와인의 마리아쥬 같은 것들은 쉽게 얻어지는 익숙함이 아니다. 이런 것들을 떠올리니 책에 확 관심이 갔다. 심리, 문화, 지식, 경제, 신체, 언어, 사회의 카테고리 안에서 또 어떤 것들을 말하고 싶은 걸까. 무엇을 공감하고 얻어갈 수 있을까 기대하며 읽었다. 

 

 안타깝게도 첫 심리자본의 내용으로 들어서면서부터 저자의 현실인식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 " 누군가에 대해 '그 사람은 급이 다르다'라고 말할 때, 돈과 외모 혹은 출신 배경을 뜻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보통 '급'이란 그 인물의 마음의 크기, 즉 '그릇'을 가리킨다.(39) " 사회적 차이일수도 있고 개인적인 오해일수도 있는데 '급'이 가리키는 의미에 대해서 우리는 돈과 외모 혹은 출신 배경을 뜻하는 경우가 더 많지 않나. 흔히 연예인들을 말할때도 A급 탑급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이때는 마음의 크기를 전혀 의미하지 않는다. 비급 영화 같은 말이나, '너랑은 급이 달라'로 쓰이는 상투적인 드라마 대사에서도 급은 사회적 계층이 다르다는 말로 통용된다. 아비투스, 믿어도 되는걸까.

 

 문화자본 아비투스에 들어서면서부터 최근 지인과 나눴던 대화의 주제와 비슷한 내용이 나와 흥미롭게 읽었다. 자신만의 취향을 중요시 여기는 요즘 세대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아비투스에 나온 " 돈은 있지만 품격이 없다! / 취향이 돈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84) "는 맥락의 흐름은 소비에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부여하는 요즘 세대의 모습이 엿보인다. 이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편집숍에서 옷을 구매하고, 펜을 하나 사더라도 정해진 브랜드를 산다는 얘기를 전해들으며 거리감을 느꼈었다. 다만 이런 소비 성향 차이는 계층의 구분도 될 수 있지만 세대별 차이로도 나눠지지 않을까 싶었다. 이 합리적인 젊은 소비층들은 자신의 관심에 따라 소비의 폭을 조절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3장을 읽으면 읽을수록 문화 향유에 있어서 더이상 계층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음을 느낀다. 하지만 이것은 최상층이 만들어 낸 신기루가 아닐까?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고 믿게끔 만들어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의식을 덜어낸 것이 아닐까? 틈새로 비어져나온 것들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좋아보이는 것을 경험하고 추구하는 것과 향유하는 것의 차이에 무뎌지게 만드는 건 아닐까? 딱히 고소득층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신념에 따라 채식을 하고, 유기농 제품을 사용한다. 클래식에 취미가 있는 사람은 조성진의 해외 공연 투어를 가기도 한다. 경계의 구분이 없다고 느껴지게 만들면서 한편으로는 확고한 구분이 만들어 낸 열망이 구분선이 흐렸다고 착각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워졌다.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가장 재밌게 읽은 부분은 5장의 경제자본이었다. " 행복하지 않은 상황 하나를 꼽는다면, 바로 돈이 없는 상황이다.(167) " 돈에 대한 노골적인 찬양이 나오기 때문에 읽으면서 웃음이 나왔다. 이를테면 인터넷에서 흔히 나오는 말장난인 '젊을 때는 돈이 최고인줄 알았는데, 나이들고보니 생각보다 돈이 더 최고였다' 식의 내용을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빌어 옮겨놓기도 했다. " 사람들은 가상 게임에서 게임 머니만 넉넉해져도 금세 태도가 바뀐다. 실생활에서는 오죽하겠는가.(173) " 같은 폴 피프의 실험 내용들도 그렇고 황금만능주의 사회의 민낯, 거기에 졸부의 천박함을 경계하고 찐부자의 고급스러운 생활 방식에 대한 찬양을 오히려 속물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외모'에 대한 내용이 이어지는 신체자본에서도 계속된다.

 

 읽기 전에는 언어자본에 대해 가장 관심이 갔었다. " 내가 쓰는 언어가 내 지위를 드러낸다(240) "는 문장도 그렇고, 요즘 사회문제들이 거친 언어 생활로 인해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은 아닐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책에 나오는 '카운터시그널링'이라는 심리학 용어가 인상적이었다. 성공한 사람의 겸손한 자세를 뜻하는 말(253)이라고 하는데, 보스턴에서 학교를 다녔다는 말로 자신이 하버드 졸업생임을 드러낸다는 예시가 있었다. 예전 '검사외전'이라는 영화에서 강동원이 서울대 과잠을 입고 관악구쪽에 있는 학교를 다닌다는 말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서울대학생으로 생각하도록 만드는 장면이 떠올랐다. 사기꾼의 수법으로 나온 돌려말하기가 사실은 자신을 둘러 표현하기 위한 심리학 용어도 있는 화법이었다니.  

 

 책의 갖고 있는 이미지에 비해 재밌게 읽었다. 딱딱한 내용일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익숙한 내용들이 많았다. 계급 상승을 위한 조언을 담고 있기 때문에 통찰이 느껴지기 보다는 거부감이 드는 구분들도 있었다. '최상층에 오른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좀 더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최상층으로 구분되는 모든 것들이 정말 더 가치있고 좋은 것인지 의문도 가지게 된다. 무엇에 더 가치를 둘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며 읽어야 될 책이 아닐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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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배우는 시간 - 병원에서 알려주지 않는 슬기롭게 죽는 법
김현아 지음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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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교를 다닐 때 일이다. 한 수업에서 유언장을 작성을 과제로 내주었던 기억이 난다. 스물을 갓 넘긴 젊은 학생들에게 있어 죽음, 그리고 그를 준비하는 유언장이라는 주제는 아주 낯설고 어려운 것이었다. 약간의 동요가 지나가고, 유언장 작성이라는 과제는 어색한 웃음과 평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풀기 위한 호기로운 농담으로 덧대어졌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죽음은 대학생들이 가진 젊음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주제이고 그저 글쓰기 과제일 뿐이니, 진지하고 심각하게 무게잡고 싶지 않다는 분위기였다. 어떤 내용을 써서 제출했는지 기억나지 않는걸 보니 대충 글자수를 채웠던 것 같다. 지나온 시간만큼, 그때보다는 더 많은 죽음을 만났고 죽음이란 것이 생각보다 멀리 떨어져있지 않다는 것도 느끼고나니 이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한때는 결혼식 예절이 궁금했는데, 이제는 장례식장 조문 예절이 더 신경쓰일 나이가 됐다. '죽음을 배우는 시간'도 자신의 노화가 문득문득 신경쓰이고, 병원과 더 가까워지게 되면서, 전보다는 자주 지인이 전하는 부고를 접하게 되면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됐다. 특히 '병원에서 알려주지 않는 슬기롭게 죽는 법'이라는 표지의 문구가 눈에 띄었다. 예전에는 드라마에서도 집안 웃어른을 집에서 모시다 상을 치르는 장면을 가끔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병원에서 보내드리는 경우가 더 많은 듯 하다(101쪽 통계청 데이터참고). 드라마에서도 의사의 선고로 죽음을 확정짓는 장면을 많이 봐왔기 때문인지, 자신의 노후에 대해 떠올릴 때도 자연스럽게 병원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순간이 떠오른다. 그런데 '병원에서 알려주지 않는 슬기롭게 죽는 법'이 따로 있다니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다.

 

 가끔 대학병원같은 대형병원을 찾을때면 병원의 규모가 너무나 커서 놀라고, 그 큰 병원에 가득한 환자들 수에 놀라고, 대기시간이 길어서 한 번 더 놀라곤 했다. '세상에 아픈 사람 참 많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앞으로 다가올 노화와 질병들을 떠올리게 된다. '죽음을 준비하지 않으면 죽음보다 더 나쁜 일들이 일어'난다는 김현아 교수의 말처럼, 사는 동안 삶의 질과 죽음의 질(89) 모두 놓치지 않고 충족 시키기 위해서는 공부와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187)', '연명의료계획서(189)', '심폐소생술은 시행하지 말 것에 대한 요청서 [DNR:do not resuscitate](230)'라는 것을 처음 봤다. 막상 지금 나라면 사인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가볍게 생각해봤을때도 쉽게 마음을 정하지 못하는 자신을 의식하고 당황스러웠다.

 

 책의 초반 내용은 다른 사람들의 사례를 보면서 두렵기도 하고, 조급한 마음도 들었는데 2장의 '생로병사의 이유를 찾지 마세요' 부분을 읽으면서 복잡하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 이처럼 우리는 병에 항상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무엇을 피하면 그 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이라.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병균이나 독성물질에 의한 몇가지 질환을 제외하면 아직까지 그 원인이 명확히 밝혀져 있거나,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을 만큼 인과관계가 단순한 질환은 거의 없다.(137) " 는 문장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평소에 가볍게 배가 아프거나, 피부에 작은 문제가 생겨도 무엇 때문에 이런 상황이 생겼는지 이유를 찾고, 결론을 내리려고 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트러블에서 원인을 찾던 습관을 유지한다면 나중에 큰 병에 걸렸을 때 더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생각됐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들은 과오로 비롯된 벌칙같은게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도 중요하겠다.  

 

 확실히 무거운 내용들이 많다. 읽으면서 생각이 많아지겠지만, 중년의 나이쯤 접어들게 되면 피하지 않고 한번 읽어봐도 좋을 것 같은 책이었다. 많은 사례들을 대면하기가 괴롭고, 어떻게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직접적인 조언이 궁금하다면, 4장의 좋은 죽음이란(299)의 내용만이라도 읽어본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우리가 대비해야 되는 마지막의 형태도 달라졌고, 또 달라지게 될 것임을 새삼 느꼈다. 우리 삶을 더 충실하게 살기 위해, 가끔은 가장 어두운 마지막 과정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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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틈 사이로 한 걸음만
제임스 리 지음 / 마음서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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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특한 주제로 책을 썼구나 싶었다. 성매매여성들의 삶에 대한 실화소설이라고 해서 다소 어두운 내용들이 나올 것을 예상하며 읽었다. 내용은 예상보다 더욱 적나라하고 가혹하다. 아무래도 소설이 지금으로부터 약 20년전인 2000년과 2002년의 군산에서 일어난 성매매업소 화재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아마 지금의 실태와 다른 면도 있을 것이고, 한편으로는 2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이런 시간의 흐름을 감안해서 읽어야 할 것이다.

 

 '문틈 사이로 한 걸음만'은 소희라는 여성을 중심으로 그녀가 몸담고 있는 군산 개봉동 성매매업소, 티켓다방, 호주 원정 성매매 등의 현실을 고발한다. 가감없는 적나라한 문장들이 보여주는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읽고 있다보면 경찰, 공권력, 지역사회 등과 뿌리깊게 유착된 포주들을 통한 사회문제 빚과 폭력, 감금에 시달리는 성매매여성들의 인권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저자가 소설을 통해 내고자했던 목소리가 아주 분명했지만, 사회의 가장 어둡고 예민한 문제이다보니 관련 사건을 찾아보는 일도 조심스럽게 접근하게 되었다.

 

 책에서는 성매매 여성들의 사연도 조금씩 풀어냈는데 하나같이 어렵고 막막한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수천만원의 빚으로 그녀들의 삶을 옥죄고 있는 업소의 운영방식 또한 가혹했다. 정신병을 앓는 여성, 병에 걸려 갈수록 피폐해지고 괴로워하는 모습, 도망쳐서도 일을 구할 수 없어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 업소를 관리하는 주인 아주머니와 깡패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당하는 암담한 상황이 계속된다. 그럼에도 일기를 쓰며 앞으로 삶을 꿈꾸고, 이 생활에서 벗어나려고 탈출을 시도하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기대기도 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함께 보여준다.   

 

 인권의 사각지대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잘 접하지 않았던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소설 속의 내용들이 머리속에 강렬하게 머물렀다. 작년 말까지만 해도 군산에 가면 개복동 화재 참사에 대한 전시를 진행하고, 추모 상징 조형물을 만드는 등 해당 사건에 대한 자료를 최근까지 찾아볼 수 있었다고 한다. 코로나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책을 읽고 나니 나중에 군산을 찾는다면 개복동 '예술거리'를 한번 들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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