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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사랑을 데리고 온다
나태주 엮음 / &(앤드)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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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사는게 참 외롭단 생각을 한다. 그럴때는 가만히 타타타의 가사를 떠올린다. 우스운 것 같아도 그 가사가 얼마나 철학적인지. 문득 외로움도 납득하고만다. '바람부는 날엔 바람으로 비오면 비에 젖어' 산다는 가사가 마음을 채워주는데 문득 가사도 시구나 싶었다. 나태주 시인이 엮어낸 '시가 사랑을 데리고 온다'의 책머리에도 그런 말이 있다. '시가 사람을 살리는 좋은 약이라는 믿음을 나는 한순간도 놓아본 적이 없(6)'다는 고백이다. 노래 가사에 위로받는 것처럼 시도 마찬가지다. 우리를 위로해줄 것이다.

 

 시 옆에 나태주 시인이 붙여둔 짧은 글들이 안정감을 준다. 아마 오롯이 시만 120편 소개되어 있었다면 다소 밋밋했을지도 모르지만, 옆에 놓여진 시인의 글귀를 함께 읽으니 훨씬 풍요로운 감상이 가능하다. 그냥 읽고 넘길 수 있는 시도 자신의 감상을 좀 더 확장할 수 있고, 때로는 이리저리 한정없이 퍼져나가는 감상을 갈무리하도록 돕기도 한다. 시집 '풀잎'의 서문(57)을 옮기며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함께 소개하기도 하고, 폴 베를렌의 시(174) 옆에는 어떤 상황에서 쓰여진 시인지 덧붙여 정보를 주기도 한다.


 가장 인상깊었던 시는 아우구스트 슈트람의 '해 질 무렵'(166) 이라는 시였다. 유명한 시인과 시들 사이에서 처음 들어보는 시인의 처음 보는 시였는데, 공간의 모든 감각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말없이 나를 '이상스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너의 존재까지 따뜻하고 말랑한 느낌을 주는 시였다. 마침 데미안을 막 읽어낸 뒤에 시집에서도 헤르만 헤세의 시를 만나니 반가웠다. '어머니께(20)'라는 시나 '들을 지나서(232)'는 문득 고향을 잃어버린 실향의 느낌을 준다. 우리는 때로 객지에서도 혹 자신의 집 방 안에서도 집으로 돌아가고픈 느낌을 받는다. 내 방 천장이 아득히 낯설어질 때 왜 그런 느낌이 들까 싶었는데, 이 깊고 오래된 홀로됨을 어쩌면 어머니의 옆에서 치유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작년 가을 국내 명시 114편을 엮어낸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이후로 나태주 시인이 엮은 해외 명시들을 만나니 또 새로웠다. 다음에는 나태주 시인과 함께 또 어떤 시들을 만날 수 있을까 기대도 된다. 다가오는 봄과 어울리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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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스테이 - 세계 18개국 56명 대표 시인의 코로나 프로젝트 시집
김혜순 외 지음, 김태성 외 옮김 / &(앤드)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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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등의 아랫부분쪽으로 깊은 칼집같은 손상이 나 있는 책을 받았다. 약간의 구겨짐말고는 대체적으로 손상이 있는 책을 받아본 적은 드문데, 하필이면 이 책은 작지만 치명적이고 가려지지 않는 모습을 한 채로 도착한 것이다. 마음이 조금 울적했지만 어쩌겠나 싶었다. 이건 어쩌다 생긴 일이지 대체로 누구의 악의도 잘못도 아니다. 우한폐렴은 몰라도 코로나의 전파는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조심조심 손상이 더 깊어지지 않도록 책장을 넘기면서 어쩌면 이 책은 그 자체로구나 싶었다.

 

 코로나의 흔적이 너무나 깊고 뚜렷해서 이와 관련된 컨텐츠들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코로나 프로젝트 시집'이라는 어색한 말들이 하나로 나란히 늘어서있는 책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도 18개국 56명의 '전 지구적 연대'를 통한 한 권이라니. 코로나로 인해 외국엘 가지 못하게 된 탓에 한국 바깥의 소식은 뉴스로만 접했는데, 화면으로 보여지는 것보다 누군가의 문장이 더욱 실감나는 현실로 다가온다. 개인의 삶으로 경험한 디테일과 감정이 녹아들어서 그런걸까.

 

 김소연의 '거짓말처럼'(24)이나 윤일현의 '거리 좁히기'(26)는 같은 경험과 정서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인지 즉각적인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마스크를 사러 약국에 들렀던 봄과 여름, 혹시 몰라 하는 마음에 가족에게 보내 둔 누룽지 소포까지 어쩜 꼭 같은 사람 사는 모습에 그때 우린 다 불안했고 서로를 염려했구나 기억을 되살렸다. 반면 에드거 바서의 '히포콘더'(74)같은 시들은 불편하고 불쾌한 감정들을 불러일으킨다. 아시아를 향한 차별적 시선이 어떤 식으로 드러났던가 민낯을 숨기려 하지도 않았던 모습에 전 지구적 연대라는 말에 냉담해진다.

 

 타미 라이밍 호의 열 가지 질문(153)의 내용이 가장 좋았다. 어떤 것들은 조금 지나간 과거를 떠올리게 만들고 어떤 것들은 전혀 상관없이 자신에 대해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 그 몰입이 계속되는 우울이나 불안과 감정을 조금 분리시킬 수 있도록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면 인생의 마지막 60년을 서른살의 몸이나 마음으로 살 수 있다면 어느 쪽을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은 통속적이면서 매번 흥미로운 선택이다. 저마다의 선택에 확고한 이유도 있을테고. 또 의미심장한 10번 질문도 독특했다.

 

 계속되는 확진자 발생과 연말임에도 더욱 강화되는 거리두기 단계로 피로감이 느껴지는 때다. 상황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때에 읽었다면 위로의 의미가 더욱 컸겠지만, 현상황에서 '지구에서 스테이'는 위로도 되고 부담도 되는 내용이었다. 그때의 불안과 문제가 전혀 해소되지 않은 상황으로 20년이 마감되고 21년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현실이 새삼 느껴진다. 언젠가 이들이 다시 모여 회고 시집을 내는 날이 서둘러온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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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나태주 엮음 / &(앤드)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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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입니다.

가을에는 마땅히 시집 한 권 읽어야 심신이 안정되고 올바르고 성숙된 현대사회인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 어떤 시를 읽어야 좋을지 모르는 범인들을 위하여 나태주 시인이 가려뽑은 국내 명시 114편을 수록한 시집의 출간 소식이 반갑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우울감 호소하는 분들도 많고, 일조량이 줄어들고 바람이 차가워지는 계절의 변화를 타는 분들도 많으실텐데, 시를 통해 위로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 시인 한 사람의 시집을 고스란히 읽는 일이 생각보다 익숙하지 않아서 시집을 읽는다는 게 어색할 때가 있는데 많은 시인들의 다양한 시를 읽어보고 접해볼 수 있다는 것도 아주 큰 장점인 것 같아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가 더욱 기대되었다. 


 읽는 동안 마음이 편했다. 책에 실린 시를 꼽아낸 시인이 가진 시에 대한 애정 때문일까? 사람을 살게 만드는 시라니, 어떤 의미일까 궁금했는데 어쩐지 한 편씩 읽는 동안 시나브로 마음이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어쩐지 기운이 난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나니 시인이 책의 첫 머리에 쓴 글의 의미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시가 주는 덕성, 힘, 손길, 마음의 약...' 특별한 사람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잘 아는 사람만 감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시인 나태주의 안내와 함께 국내 여러 문인들의 소박하고 따뜻한 시들을 고루 만날 수 있는 경험이었다. 
 
 가끔 시집을 읽는다. 좋아서 읽는 시집이래도 가끔은 시가 난해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얇고 가벼운 시집이 다른 두꺼운 책들보다 더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시인 나태주가 직접 선정한 우리시 114편을 읽는 동안은 그런 염려나 부담을 내려놓아도 괜찮았다. 크게 다섯 갈래로 담은 시들이 있고 각 시 한 편 한 편 마다 달아놓은 짧은 글이 감상의 문턱을 낮춰 읽는 이의 감상을 돕는다. 그동안 시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면 아마, 시에 대한 경험이 교과서적 읽기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시인 나태주의 덧붙임은 이와 달리 그가 소개하는 시와 시인에 대한 짧은 설명과 함께 감상을 돕는 길잡이가 되어주지만 암기식의 정보를 쏟아내는 방식이 아니다. 그보다는 첫만남의 자리에서 믿음직한 사람에게 소개를 받는 느낌이 든다.
 
 가을이 되니 선득해지는 바람을 따라 감성을 채우고자 책이라도 한 권 더 읽고 싶고, 시집이라고 한 권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를 읽어보자. 시가 가지고 있는 온기와, 시인 나태주가 담아낸 애정이 잘 담겨진 한 권을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읽고 난 뒤에는 읽으면서 좋았던 시를 쓴 시인의 시집도 더 찾아볼 수 있을 것이고, 또 교과서에서 만난 시를 읽을 때에는 몰랐던 그저 감상만 해도 괜찮은 시 읽기 경험을 통해 감동을 느끼고 감성이 충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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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 창비시선 439
이영재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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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에서 커피를 시키고 앉아 시집을 읽고 있으니 어딘가 어색했다. 때때로 시집을 한두권 챙겨읽는데, 시집을 읽고 있자면 어쩐지 그 자리에서 멀리 떨어져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붐비는 전철안이든, 소란한 카페에서든 시집을 읽는다는 행위는 당신도 떠올릴 수 있는 오래된 이미지의 전형이라 지금은 도리어 어색했다. 마치 갈라파고스화 '되어가는 기분이다'.

 

 겨울이 계속되는 동안 여러가지 이유로 평소만큼의 기운을 내지 못했다. 혼자있는 동안 텔레비전을 켜지 않는 것이 습관이 들어서일지도 모른다. 그만큼의 소리가 빠져나간 공간을 무엇으로도 채우지 못했다. 그래서 이럴때는 시집이지, 하고 시집 한 권을 읽기로 했다. 젊은축에 속하는 시인의 시는 처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길어지지 않는 분량의 시들이 편한데 조금 벅차게 읽었다.

 

 반복되는 시어들 사이에서 다음으로 넘어가는 문장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동안 시집을 다 읽고나니 허무했다.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정해져있는 것은 없지만 시를 그렇게는 읽고싶지 않았다. 어쩐지 욕심이 생겨 몇번을 더 뒤적여 읽어보아도 아, 역시나 시는 어렵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드러내고 싶은 마음을 애써 숨겨놓은 조각을 이리저리 맞춰보느라 애썼다.

 

 내가 시를 쓴다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그럴 깜냥도 없지만 아무래도 숨기지 못하고 드러나버린 속내를 가리고 싶을 것이라 짐작해보았다. 시집을 다 읽고, 커피잔을 비우고는 집으로 돌아와 오랫동안 벽에 거꾸로 걸어 말려놓은 꽃다발을 떼네어 버렸다. 오늘이 아니면 또 한동안은 버리지 못할 것 같았다. 빈벽을 때때로 바라보며 감상을 남긴다. 그런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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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선 K-포엣 시리즈 1
고은 지음, 이상화.안선재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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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꽃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Flowers of a Moment

 

Going down I saw

the flower

I did not see going up."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은 읽고, 들어 접해봤을 시를 꼽아보았다. 짧지만 어딘가 여운을 깊게 남기는 구절이 인상적인 고은 시인의 '순간의 꽃' 전문과 번역본을 함께 옮겨놓았다. 인생에 대해 말하는 것 같은 이 느낌이 영문으로도 전해질까 궁금해진다.

 

 시가 주류인 시대가 왔다. 언제부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을 먹었다'는 시집의 리뷰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개인적인 체감은 그 지점부터였다. 그 이전에는 내맘대로 꼽은 시인계의 아이돌 이병률의 여행에세이 등의 활약이 눈에 띄었었고. 요즘 서점에 가면 시집 코너가 메인 매대로 장식되어 있다. 문학 서가의 한 켠에 조용히 아우성치던 감성에의 외침이 드디어 닿았다는 듯이. 작년 말 정도부터 시집의 판매율이 엄청 올랐다는 뉴스도 본 적이 있다. 가을부터 시작한 시집 읽기 바람이 윤동주 시인의 초판본 재출간을 힘입어 엄청난 상승곡선을 넘어선 직선을 보여줬다고 한다. 도리어 올해 들어 간간히 읽던 시집 읽기도 뜸해진 탓에 괜히 멋쩍어지면서도 좋다. 내 시집도 아닌데, 내가 읽은 것도 아니면서.

 

 얼마 전 노벨 문학상 발표가 있었다. 노벨 문학상이라 하면 떠오르는, 몇번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고 졸이게 만드는 문학가 고은의 시선이 아시아 출판의 K POET 시리즈로 출간되었다고 하여 읽어보았다. 약 90쪽의 얇고 작은 크기의 시선집은 휴대하기 좋은 가벼움과 조밀함이 특징이다. 많은 작품을 수록하지 않았지만 작품은 한글과 영문으로 동시에 수록해놓았다는 것이 매우 큰 장점이 된다. 마음에 드는 시를 영어로 읽어본다는 특별한 경험을 해볼 수 있다. 하지만 별다른 해석 실력이랄 것도 없지만, 한글로 읽은 시를 영문으로 다시 읽다보면 미묘한 어감이나 정서가 와닿지 않는듯해 아쉽다. 어쩌면 원어민이 읽었을 때는 좀 더 나은 뉘앙스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덕분에 외국인 친구와 함께 시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도 또 하나의 장점이 되겠다.

 

 다른 작품으로는 '어떤 기쁨'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세계의 어디에선가/누가 생각했던 것/울지마라" 는 싯구가 "누가 생각하고 있는 것", "누가 막 생각하려는 것"으로 반복되고 있다. 짧게 옮겨놓은 부분만으로도 일부 위로가 됨을 느낄 수 있으리라. 길기 때문에 전문을 옮기진 않을 것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전에 읽었던 신용목 시인의 '타자의 시간' 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두 시 모두 좋으니 가을을 맞아 모두 읽어본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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