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구 레베카
케이트 더글러스 위긴 지음, 유기훈 그림, 박상은 옮김 / &(앤드)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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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인생 만화로 '빨간머리 앤'을 꼽는 친구들 많았다. 빨간머리 앤을 컨셉으로 커피숍을 인테리어하기도 하고, 굳즈도 많이 나온다. 나 역시도 텔레비전에서 빨간머리 앤 애니메이션을 할 때마다 채널을 고정하는 편이다. 적어도 십수년인 시간동안 쌓아온 애정을 바탕으로 이제서야 '나의 친구 레베카'를 만났을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표절이었다. 이런 사람이 한둘은 아닐테니 책 소개에도 "'빨강 머리 앤'보다 5년 먼저 출판된 책"이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그럼... 앤이? 복잡한 마음과 호기심을 안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 그 순간 제리마이어 콥의 느리게 작동하는 머릿속에 차츰 그런 생각이 스며들었다. 그의 옆에 앉아 있는 새는 그가 날마다 역마차를 몰며 보아온 새들과는 완전히 다른 깃털을 가진 새라는 그런 생각이.(20) " 레베카에 대한 묘사가 시작되면서 이 부분을 읽고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쇼생크 탈출'이 떠올랐다. 레드가 앤디에 대해 설명하는 나레이션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 새장 안에 갇혀선 살 수 없는 새들이 있다. 그러기엔 그 깃털이 너무나 찬란하다. " 레베카가 이런 인물이라면 마음에 들 것 같았다. 더불어 제리마이어 콥의 간결한 설명도 '마음을 녹였다.'

 

 때로는 레베카의 수다스러움에 현기증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물 흐르듯 이어지는 순수하고 밝은 에너지가 마음을 즐겁게 만든다. 아무래도 읽으면서 '앤'을 떠올리지 않을 수는 없었는데 길버트 같은 소년의 등장을 기다렸지만, 시소의 행동은 오싹하기만 했다. 레베카가 물을 마시고 난 다음 차례에 물을 마시려고 하거나, 경멸의 시선마저도 즐기는 모습, 레베카의 꿈을 꾸려고 한다는 부분은 그저 소름이었다. 덕분에 심프슨 네가 리버버러를 떠나던 때 레베카를 찾아와 어른이 된 뒤에 연락해도 될지 묻는 시소를 단칼에 거절하는 장면은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안 돼(240)" 

 

 " 그녀는 이모네 집에 얹혀살면서 이모를 미워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모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이모가 만들어주는 옷을 입고, 이모가 사주는 책을 읽으면서 이모를 미워하는 것은 나쁜 짓임을 본능적으로 느꼈으며, 후회가 밀려올 때마다 엄격하고 까다로운 이모를 기쁘게 해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90) " 학창시절 부모님 말씀 안듣고 저 혼자 큰 것처럼 굴어서 죄송했다는 반성을 이제서야 해봅니다. 때때로 이런 생각을 잊고 서운한 일 섭섭한 일만 불평하는 아직 철이 안든 어른도 읽으면서 다시금 반성했다.

 

 레베카의 생활에 어려움이 끊이지 않고 찾아오지만 스스로도 좌절하지 않고 어느 때에도 긍정적인 시선을 잃지 않는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밝은 모습, 주변에 힘을 나눠주는 태도를 나도 갖고 싶단 생각을 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주변 살피며 사는게 어렵다. 자신의 문제에 둘러싸여 제 앞가림 잘하는 어른이 되기도 때로 벅차다. '아낌없이 사랑받고 후회 없이 사랑해요'라는 말이 유치하게 보일 때도 있지만 옳은 말임은 변치 않는 것처럼 동화로도 충분히 영감을 받고 삶의 자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레베카의 뒷이야기도 더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한참 레베카의 성장과 미래가 기대되는 와중에 마무리 된 것 같아 아쉬웠다. 다 읽고나니 레베카는 레베카고 앤은 앤 다운 매력이 충분히 느껴졌다. 앤의 팬이라면 만나서 좋은 친구가 한명인 것보다 두명인 것이 더 좋으니 레베카의 매력에도 빠져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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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엄마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9
스즈키 루리카 지음, 이소담 옮김 / 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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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쓰는 일이 괴로웠다는, 마치 자기 깃털을 뽑아 옷감을 짜는 학같았다는 얘기를 읽고는 당황스러웠다. 작가의 전작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을 읽고서는 정말 대단한 작가라고 추겨세워놓고 한편으로는 글쓰는 것을 좋아하는 어린아이가 써낸 글'이라는 태도를 버리지 않고 있었다. 작가는 당연히 프로의 길을 가고 있고 그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과정일텐데 내심 큰 고민이나 어려움없이 쓰는 '천재작가'로 여겼다. 아직도 질투와 부러움이 남아있나 싶다. 그만큼 재밌고 감동적으로 읽었다. 처음 한번도 아니고 계속해서.

 

 이번에 읽은 '엄마의 엄마'는 지난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과 이어지는 내용이다. '게키야스당의 폐점(16)'에 나도 함께 놀라버렸다. 장사꾼의 면모를 잘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게키야스당이 결국 망해버리다니.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타격이 거기까지 갔단 말인가, 하고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버린 시국이다. 전작에 나온 인물들이 계속해서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고 있기 때문에 전작을 읽고 읽으면 더 재밌겠지만, 그냥 읽어도 좋다. 서로에게 안타까운 관계는 있어도 절대적 악역은 없어보이는 몽글몽글한 내용이다.

 

 계속해서 하나미 특유의 엄마를 쏙 빼닮은 끈끈하고 성숙한 시선으로 보여지는 것도 좋지만 신야와의 관계만큼은 신야가 담당하는 게 좋다. 하나미의 시점에는 두근거림이나 긴장감이 하나도 없을게 눈에 선하다. 힘내, 신야. 기도 선생님의 이야기도 기도의 시선으로 긴 시간의 흐름을, 하지만 다른 인물들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엵어서 보여주기 때문에 특별한 감동을 준다. 아무래도 각 중단편들의 소재가 성장해가는 작가의 관심사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성적지향과 관련된 내용이 암시적으로 놓여지다 패러렐 월드에서 확 터져나온 느낌이다.

 

 " 심지어 그 시절에도 흔치 않았던 교환 일기까지 썼다. 둘 다 휴대폰이 있었으니 문자도 주고받았으면서, 옛날식 교환 일기를 쓴 것이다. 겐토가 먼저 노트에 직접 쓰고 싶다고 고집했다. "요즘 같은 시대니까 오히려 하는 거야. 손으로 쓴 문자는 나만의 속도감을 지니고 더 깊이 새겨지거든. 종이에도 마음에도. 읽을 사람을 생각해서 한 글자씩 적으면 인연이 생겨. 더 깊어져." 그렇게 말하면서.(56) "

 

 내가 이런 멋진 말이나 의도를 생각해 낸 것은 아니지만, 읽으면서 이 부분이 가장 좋았던 이유는 가까운 친구들과 일년에 적어도 한 번 연말에는 편지를 주고 받기를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리 오래된 전통은 아니고, 그냥 가끔은 평소에 하지 않던 일을 해야 관계가 더 풍요로울 수 있을 것 같아 편지를 쓰고 답장을 쓰라 강요했다. 그런데 '읽을 사람을 생각해서 한 글자씩 적으면 인연이 생'긴다면 이미 오랜 친구라 깊은 인연이겠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잘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쓰길 잘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편지 써보세요. 편지를 쓰는 건 좀 어색해도 답장을 받을때의 즐거움은 그 이상입니다.

 

 게다가 나 역시 중학교때 친구와 교환일기를 썼던 기억이 있다. 겐토는 집에 데리고 와도 괜찮다고 했을때는 혹시 싶었다가, 교환일기부터 겐토에게 어떤 확신이 들긴 했는데. 어쨌든 그 시절 핸드폰이 있었음에도 교환일기를 썼던 그 친구와 나 역시 지금은 더이상 인연을 이어가고 있지 않다. 그저 이렇게 가끔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떠올리며 잘 지내려나, 하고 떠올릴 뿐이다. 야스타케와 겐토도 이 이후로 다시 연이 끊어졌으려나. 겐토 이상의 사람이 없었다면 어쩌면 작가의 다음 작품에서도 계속해서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엄마라는 말이 주는 느낌 때문에, '엄마의 엄마'를 두고 따뜻하고 뭉클한 내용을 예상했는데, 담배꽁초를 아무데나 던지는 할머니가 등장해서 불안한 시작이었다. 끝까지 나쁜 사람으로 남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난 시간을 덮을만한 변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어떤 경우에는 읽기 괴로운 내용이 될 것 같다. 할머니가 던지고 간 폭탄같은 발언들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마음에 걸려 불안한데, 꼭 이 다음 이야기를 다시 만나게 되길 바란다. 이렇게 '변변찮아도 마음'인 일상을 보내며 무탈히 어른이 되었다는 하나미의 보고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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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에
수잰 레드펀 지음, 김마림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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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은 '한순간에' 벌어진다. 차에 타고 있던 인원은 열한명, 그리고 개 한마리이다. 두 가족과 두 아이. 핀의 가족은 엄마와 아빠 둘째 언니 클로이, 클로이의 남자친구인 밴스, 그리고 핀의 동생 오즈. 엄마의 친한 친구인 캐런 이모네 가족은 밥 삼촌과 그 둘의 딸 내털리. 핀의 절친인 모런, 길에서 우연히 차를 태워주게 된 카일이라는 소년까지. 이 대인원이 탄 차가 추운 겨울 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를 겪게 된다. 그 사고로 앞좌석에 앉아 있던 아빠는 큰 부상을 입고, 핀은 죽는다. 소설은 핀의 영혼이 남아있는 사람들이 사고와 함께 닥친 조난 상황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그려진다.

 

 인물 관계가 단순하다면 단순하고, 또 사람은 누구나 여러가지 면을 가지고 있듯이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면 또 그렇다. 사고도 한순간이지만 인물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 선택하는 것도 '한순간에' 이루어진다. 지극히 본능적이고 계산으로 그리고 절대 되돌릴 수 없는 선택들을 바라보며 과연 이 다음은 어떻게 될까 궁금함을 끝까지, 정말 끝까지 놓치지 않고 끌고가는 좋은 소설이었다. 독서모임 같은 것을 한다면 이 책 읽고 인물이며 상황이며 할 말이 진짜 많을 것 같다. 혼자 읽어서 누구랑 같이 애기 나눌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지금까지 공개된 북트레일러나 사건 초반의 줄거리만해도 많은 내용을 까고 시작하는 것이니 더이상 내용을 담지는 않겠지만 진짜 재밌다.

 

 요즘 흥한다는 사이다 마시는 속 시원한 만능 인물의 등장이나 사건 해결을 쭉쭉 밀고나가는 흐름은 아니다. 대신 앞으로 어떻게 될지 쪼이는 맛은 있다. 거기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복잡한 관계와 미묘한 심리 변화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여러각도로 인물들을 평면적이지 않게 다뤄낸 작가의 신중함이 마음에 들 것이다. 게다가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작가의 말이 따로 있는데 꼭 그 부분까지 다 읽어야 한다. 그럼 이 책의 의미가 또 한번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공을 들여 세상에 내놓은 책이었구나, 싶어진다.

 

 재미는 물론이고 요즘 계절에 잘 어울리기까지 한 책이다. '한순간에' 제목이 약간 강렬함이 부족한 것 같아 아쉬운데, 내용은 시작부터 한명 보내고 시작하는 화끈한 전개다. 영화 '투모로우'가 사실은 더 데이 애프터 투모로우 였으나 한국 사람은 모레라고 하고 하면 긴장감을 덜 느낀다고 해서 내일로 제목을 바꿔 나왔다는 영화 제목계의 전설같은 레전드가 내려오듯이 '한순간에'도 이름을 좀 더 강렬하게 지어서 나왔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제목에 대해 이렇게 구구절절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유는 이 제목이 주는 기대감보다 책을 읽었을 때 느끼는 만족감이 비할 바 없이 크기 때문이다.

 

 책을 잡고는 밤을 새웠다. 초저녁에 잠깐 잠이 들었다가 새벽에 깨서 다시 잠이 오지 않길래 책의 두께를 보고는 한시간, 어쩌면 삼십분 정도만 읽으면 금방 다시 잠이 오겠지 싶어 책을 들었다가 그대로 다 읽고 아침이 됐다. 다시 잠이 오지 않을 전개로 정신은 오히려 맑아졌고 눈은 피곤한데 궁금해서 계속해서 뒷장으로 시선을 넘기게 된다. '한순간에' 읽을 분들은 넉넉하게 여유있는 시간에 시작하길 바란다. 책이 꽤 두툼한 편이라 두시간은 훅 지나간다. 그날 하루정도는 독자를 집 안에 붙잡아 둘 흡입력이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일조할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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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열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김현화 옮김 / 마시멜로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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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를 잘 보지는 않지만, 요즘 드라마 내용이 얼마나 탄탄하고 자극적으로 되어있는지는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다. 한동안 일본소설을 읽지 않았던 데다가 남편을 죽인 살해용의자에게 직접 복수하기 위해 성형수술로 얼굴을 바꾸고 결혼까지 한 여자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작열'을 아주 기대하며 읽었는데, 심장을 조여오는 불안감을 줄만한 요소는 적은 것 같아 읽고나서 아쉬웠다. 아무래도 이런 내용에서는 서로 비밀이 밝혀질까봐 거짓말하고 머리를 써서 알리바이도 만들고 기싸움하는 장면들이 좀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내용이 짧고 단순했다.

 

  너무 자극적인 소재는 그 나름대로 불평을 하지만 적당하면 또 심심해하는 장단맞추기 어려운 독자인가. 하지만 우리는 익히 같은 배우가 얼굴에 점하나만 찍고 나타나 다른 사람이라고 하면 그런가보다하고 믿어주는 아량도 지녔다. 우연히 얻게 된 죽은 사람의 신분을 가지고, 성형수술을 해서 정체까지 감출 정도로 독한 마음을 먹었다면 사키코가 사토 에리로 사는 것에 좀 더 철저하지 않았을까. 나중에는 히데오를 사랑하게 되기까지 복수를 하겠다는 사키코의 마음이 어느 정도의 각오였는지 감정의 변화가 그리 공감되지 않았다. 과거 잘생겼었던 모습의 사진이 있다는 것을 미루어 외모 때문이었을까. 지금은 아니라지만 부자는 망해도 삼년을 간다고 잘생긴게 어디가지 않았던게 아닐까.

 

 원래 이런 소설에서는 어느 등장인물 하나 허투루 보면 안되는 것이 맞지만, 정작 두 사람은 무르디 무르고 히데오의 여동생 아키코가 오히려 더 독할 줄이야. 음식에 독도 안타고 칼로 찌르지도 않고 오히려 20분 거리에 있는 마트까지 걸어가 할인상품을 사서 가계를 꾸리고, 태운 반찬을 대신 먹어주는 등 서로 알뜰히 챙기며 산다. 복수는 커녕 대책없이 착하다. 반전을 위한 밑받침도 이 내용이 나중에 중요한 역할을 하겠구나 싶은 부분이 도드라지게 눈에 띄었다. 전체적으로 사키코의 과거에서 현재로 이르기까지의 상황을 회상으로 보여주는 내용이 많고, 거기에 지금 두 사람의 삶 위주로만 내용이 나오기 때문에 읽다가 어느 순간 '뭔가 있다'고 생각되는 장면이 있는데 나중에보니 진짜 그랬다. 추리 스릴러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눈치챌 만큼 허술했다.  

 

 '마지막 20페이지에 펼쳐진 충격적인 반전으로 화제에 오른'이라는 말이 마지막 부분에서 뭘하나 터트릴만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는 장점도 되지만 그 전까지 끌어모아놓은 모든 긴장감을 너무 짧은 마무리로 끝내버렸다는 아쉬움도 담고 있다. 원래 오래 기다린 복수의 끝은 허무하기 마련이지만 특히나 허무한 끝맺음이었던 것 같다. 특히 아침드라마 주말드라마 케이블채널 드라마의 매운맛 전개에 익숙한 독자라면 '작열'이 더 심심하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부담없이 보기 좋은 단편 드라마 같은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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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말씀은 나무 아래에서
아오야마 미치코 지음, 손지상 옮김 / 네오픽션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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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 말씀은 나무 아래에서'라는 제목이 독자를 사로잡았을 것이다. 이 알쏭달쏭한 제목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채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먼저 문자 그대로 수긍했을 것이라는 점이 이 책의 가장 재밌는 부분이다. 그냥 자신도 모르게 고양이님이 나무 아래에서 무슨 말씀을 하신다면 들어야지, 하고 생각하게 된다. 고양이에게 말씀이라는 높임말을 붙이는 것도 이상하게 어색하지 않다. 고양이를 모시는 집사들이 무분별하게 제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와중에 책의 내용은 의외로 평범하다. 고양이님이 나무 아래에서 말씀을 해주시는 내용이 아니었다!

 

 각 에피소드의 인물들이 마음속으로 고민을 안고 있을 때 들린 어느 신사에서 미쿠지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만나면 참배당 앞 다라수-엽서나무-의 잎을 한장씩 줍게 되는데, 그 나뭇잎에 써있는 문구가 고민을 해결할 열쇠가 되어준다. 그래서 고양이 말씀은 나무 아래에서,라는 제목이 되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진짜 말하는 고양이가 나올줄 알았기 때문에 미쿠지라는 고양이의 존재나 나뭇잎에 써있는 문구를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다는 건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가장 재미있었던 건 두번째 잎사귀 '티켓'의 내용이었다. 사춘기 딸과의 관계를 어찌할 바 몰라 전전긍긍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다. 전에 일본에서는 가족들이 욕조의 목욕물을 같이 쓰기 때문에 사춘기가 된 딸이 아빠가 들어갔다 나온 탕의 물을 쓰고 싶지 않아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는데, 여기서도 냄새난다는 말을 듣게 될지 모른다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아버지의 소심함? 절절함이 웃펐다. 게다가 본인은 엄청난 고민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아내가 보기에는 너무나 부러운 부녀관계였던 것 같아 끝까지 몽글몽글하게 재밌게 읽었다.

 

 첫번째 이야기는 어떤 내용일까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읽기도 했고, 내용적으로도 큰 매력을 못 느꼈는데 주인공 미하루가 달리기를 한다는 것은 인상적이었다. 지난 여름 달리기를 조금 해봤는데, 달리기는 확실히 매력있는 운동이었다. 여러 생각을 하면서 뛰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달리는 그 자체에 몰입하게 되고 힘들지만 달리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생각이 복잡해서 괴롭거나 의욕이 부족해서 고민이라면 겨울동안 맛있는 것을 먹고 따뜻하게 잘보내고 날이 다시 풀리고나면 달리기를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 쓰다듬어주는 건 좋은데, 먹이는 주지 마. 우리 집은 아파트라서 못 키우니까. 책임지지 못할 거면 애초부터 어중간하게 애정을 줘서는 안 돼.(321) " 일곱번째 잎사귀의 한 부분이다. 나에게도 이런 고양이가 있다. 아파트 입구에서 자주 돌아다니는 녀석인데 귀여워는 하지만 키울 수는 없어 잘 지내고 있나 오가며 확인해본다. 넉살 좋고 애교많은 녀석이라 동네 사람들에게 밥도 잘 얻어먹고 제법 보살핌을 받지만 '책임'은 무거운 것이라 구조되지는 못하고 있다. 사람만 보면 어디든 따라가서 함께 살고 싶다고 온몸으로 표현하는 것이 항상 안타깝다. 그 고양이가 생각나서일까 일곱번째 이야기와 에필로그까지 따뜻하게 마무리 됐지만 어쩐지 씁쓸한 느낌으로 책을 덮었다.

 

 하지만 책은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가끔 '난 평소에 책을 잘 안읽는데 읽은 책 중에서 재밌는 책 추천해줄만한 게 있느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그때마다 책을 읽고 재밌다고 느끼는 건 사람마다 달라서 어떤 책을 추천해줘야 할지 곤란했었는데 아마 이 책이라면 추천해줘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연말을 맞아 다른 사람에게 가볍고 재밌게 읽을만한 책을 권해주고 싶다면 '고양이 말씀은 나무 아래에서'를 꼽아도 좋겠다. 일본 책 특유의 문체나 문화에 거부감이 있지 않다면 무난하게 읽을 것 같다.

 

 129 하6 류소 -> 류조 

338 상 드냥 ->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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