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만큼 서툴고 어려운 - 두려움과 열정 그 어디쯤, 최초의 감성 섹스 에세이
현정 지음 / 예담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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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기대가 큰 책이었다. 최초의 감성 섹스 에세이라는 문구가 보는 사람을 기대하게 만드는데, 두가지 초점이 있다. 하나는 최초의! 그 이전에는 감성 섹스 에세이가 없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없었던 것 같기도 해. 그럼 이 책은 그 전에 나왔던 다른 책들에서 봤던 섹스 이야기랑은 또 뭔가 다른 매력을 갖고 있겠구나. 새로운 글과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어. 하는 기대를 하게 되고, 다른 하나는 감성과 섹스라는 말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섹스와 감성이라는 것은 분명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인데 어쩐지 서로 정 반대의 위치에 있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단어다. 섹스가 오로지 육체만으로 점철된 것도 아니고, 그 내적인 중심에 감성이라는 것이 기반을 잡고 있어야 충실해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도 말이다. 근데 좀 아쉬운 점은 저자 이름을 그냥 현정으로만 표기해놓은 것. 책이 좀 가벼운 느낌으로 느껴진다. 가명을 쓴 것처럼. 마치 잡지의 뒷부분에 실리는 성과 사랑 고민 상담 코너의 에디터 느낌이 난다. 차라리 김현정이라고 이름을 다 적어놓았으면 좀 더 나으려나....

 

 

책을 읽으면서, 소소한 재미를 느꼈다. 꽤 일상적이고 평범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다. 워낙에 많이 인용된 섹스 앤 더 시티의 에피소드들은 사실 좀 지겨운 느낌도 있었다.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여자들이 나오는 책이면 거의 대부분은 섹스 앤 더 시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통에. 별처럼 빛나는, 꽃처럼 예쁜 같이 너무나 흔하게 쓰이는 비유여서 새롭다거나 크게 느낌이 오지는 못했다. 그저, 역시 섹스 앤 더 시티는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이 좀 들었을 뿐. 그 외에도 이 책에서 무언가를 최초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은 크게 못 받았다. 코스모폴리탄같은 잡지 서너권 읽으면 그 안에서 나올 법한 내용들을 좀 더 깔끔하게 적어놓았을 뿐이다. 잡지의 문체가 약간 더 경망된 느낌을 주는 편이고, 이 책은 약간의 그 톤을 한층 낮게 정리해놓은 듯한 느낌이다. 책을 다시 펼쳐 작가에 대해 살펴보니, 바로 그 코스모폴리탄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고 한다. 아....!

 

 

책의 좋은점은 나보다 한 십년쯤은 인생경험이 많은 것 같은 언니가 쿨한 태도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피임에 대해 마르고 닳도록 강조하는 점도 그렇고, 어린 여자애들이 고민할만한 문제들을 과감하고 단호한 어조로 잘라 정리해주는 말들도 많이 나온다는 점이 그렇다. 특히 여자에 대해 배려가 없는 남자는 애초에 싹을 잘라버리고 연연해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라는 취지의 말들도 많다. 자기 중심이 얕고 남의 조언에 영향을 많이 받으며 아직 경험이 부족한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의 아이들에게는 일면 도움이 되겠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 십년쯤은 더 인생경험을 한 나이가 되니, 물 흐르듯 듣고 넘길 정도의 내용이었다. 너무나 평이한 내용이 많아서 더 그런 것 같다.

 

 

처음에 기대했던 것들에 대해서는 만족감을 주지 못한 책이지만, 그 나름의 소소한 재미를 주는 책이었다. 이제 막, 사랑만큼 서툴고 어려운 것들에 대해 눈뜨기 시작한 연령대의 여자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남자들도 이렇게 하면 차이는구나, 혹은 좋겠구나 싶은 팁을 알고 싶다면 읽어봐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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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 열심히 일해도, 아무리 쉬어도, 그 무엇을 사도, 여전히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정희재 지음 / 갤리온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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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그런 질문을 받지 않는데, 이 책을 읽고 있을 때 하필이면 그 질문이 떨어졌다. 물론 질문을 한 쪽에서는 평소 사소하게 느꼈을 궁금증을 담아 가볍게 물었으리라. "요즘 뭐 해?" 그래서 즉답으로 "책 읽어."하고 대답을 했다. 역시나, "무슨 책?" 하고 물어온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대답하고서도 스스로가 뜨악한 기분이었다. 시간 짬짬이 책을 읽는 것을 마치 업처럼 하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를 위해 책을 읽는 일을 하고 있다니. 아이러니다. 이 책을 정말 잘 읽으려면 책도 읽지 않고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멍하게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정작 상대방은 책 제목이 재미있네, 정도로만 생각했겠지만.

 

사실, 이 책은 무조건 손놓고 가만히 있을 권리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남들처럼이나 남들보다, 남들만큼 등등으로 자신이 주체가 되지 못하고 앞뒤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어떻게든 해야만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페이스에 맞춰서 '남을 따라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될 권리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해 밥상을 펴놓고 내가 먹고 싶은 반찬만 먹으라는 책이지, 남들이 좋아한다는 반찬까지 억지로 꾸역꾸역 다 차려 먹으려고 하거나, 차려준 밥상에 밥까지 떠먹여달라고 가만히 앉아만 있으라고 말하는 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용이 이렇다보니 요즘 사람들이 압박을 받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역시나 젊은이들의 스펙쌓기에 대한 이야기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결론적으로는 다 그에 맞춰진, 비슷한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고. 그 중에서 기억남는 부분은 '신제품을 사지 않을 권리'와 '죽을 때까지 다 못 읽는 권장 도서'였다.

 

'신제품을 사지 않을 권리'는 스마트폰과 관련된 에피소드로 시작된다. 구형 핸드폰을 쓰고 있는데 요즘은 스마트폰을 쓰고 있지 않으면 뒤쳐진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변에서 팍팍 주는 통에 멀쩡히 잘 쓰고 있는 핸드폰도 어디가서 마음 편히 내놓기 힘들다. 그래서인지 책 속의 인물도 구형 핸드폰과 스마트폰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는 웃지못할 행동을 하는 것이 나온다. 정작 물건을 쓰는 사람은 아무 불편이 없고 스마트폰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데 주위에서는 오히려 이상하게 바라보거나 '아직도 그걸 쓰냐'는 등의 말을 툭툭 던진다. 심지어 하루가 멀다하고 통신사에서 기기를 바꾸라고 전화도 온다. '어차피 바꿀 핸드폰 구형을 써서 뭐하냐'며 '바꾸세요'하고 강력하고 무례한 톤으로 속사포처럼 말을 풀어낸다. 망가지지도 않은 것을 왜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으로 휙휙 바꾸라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다른 전자제품들을 그러지 않으면서 유독 핸드폰에만 그렇게 함부로인지 모를 풍조다. 개인적 경험과 어우러져 깊은 공감이 됐다.

 

또 하나는 역시 개인적 한이 맺힌 '죽을 때까지 다 못 읽는 권장 도서'인데, 사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처럼, 읽고 또 읽으면 못 읽을리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고전들은. 다 소화하기에 버거운 책들도 많고, 말대로 유명해서 안읽어도 읽은 것처럼 넘어가고 싶은 책들도 많은데, 확실히 고전이라는 것은 읽고나면 오래도록 그 여운이 남는 것 같다. 그 책을 읽었다는 것 자체만으로 삶의 경험치가 올라가는 것 같이. 하지만 역시, 뭔가를 읽어야한다는 그 필수적인, 고전, 명작이라는 타이틀을 단, 그 책들의 목록에 또 얽매이게 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사람 마음인 것 같다. 독서는 즐거움을 주는 것인데도 그안에서 또 뭔가를 해야만한다고 스스로를 규정지어버리는 일을 함으로써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빼앗아버리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부분에서 잠깐 언급된 다니엘 페낙의 "소설처럼"은 나도 추천하는 도서로 꼭 읽어보면 여러가지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을 책이다.

 

약간은 가볍게 읽을 수 있도록 쓰여진 책이지만, 읽으면서 자신과의 접점을 찾아가게 된다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을 책이다. 뭔가를 하라"고 강조하는 책들이 많은 와중에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만큼 이 책만의 특별한 분위기가 있다. 내가 내 중심을 잃고 어딘가로 무작정 쓸려만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면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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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e 신세계 - 트루 모바일 시대가 여는 비즈니스의 신천지
박종일 외 지음 / 미래의창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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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e 신세계'라고 함은, 사실 익숙하거나 범상하게 여겨지는 쉬운 것은 아니라는게 나의 첫 인상이다. 이동통신사에서 걸려오는 3G폰 전환 안내 서비스 전화에서도 예의와 무례의 영역을 마구잡이로 넘나들며 2G폰 유저를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깎아내리고, 세상의 모든 핫한 아이템들은 스마트한 사람들 용으로 맞춰나오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한 새로운 맞춤형 서비스 Lte. 이용구조를 아무리 설명 들어 알아보려고 해도,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이해가 안되는 것인지 도통 뭐가 더 빠름~ 빠름~ 빠름~ 인지 아무리 들어도 모를 일이어서 큰 마음을 먹고 글로 배워보려 노력을 해보게 되었다. 행하지 않아 모른다는 것을 언제까지나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포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저자는 다섯명인데 그들의 출신이 재미있다. 대우증권과 SK. LGT, KT 각 통신사의 사람들이 모여서 펴낸 책이다. 그들은 엄청난 경쟁을 하는 사이일 것이라 생각했던 소비자의 입장에서 각 통신사 사람들이 사이좋게 책을 펴냈다고 하니, 역시 담합은 이루어지고 있었어...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이것이 바로 담합의 증거다. 라는 말은 아니고, 실제로는 뭐, 아이돌끼리는 서로 일적으로 만나 친하게 지내지만 팬덤끼리는 니네가 좋네 우리가 좋네 경쟁하며 박터지게 싸우는 현상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내용적인 측면으로 보면, 쉬운 표현으로 전문적인 내용을 풀어놓아서 읽기에는 편했지만 지나치게 업계 관련된 내용을 자세히 풀어놓은 경향이 있어, 일반 독자가 가벼운 마음으로 스마트폰이나 네트워크 품질, 속도 등의 면에서 차이점을 알아볼까? 하는 취지로 읽기에는 내용이 좀 전문적이지 않을까 싶다. 이쪽 분야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나 흐름을 알고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꽤 유용한 정보가 담겨있는 책이 되겠다. 크게 3파트로 나뉘어져 있는데 Lte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을 담고 있는 파트 1. 스마트폰에 대한 설명과 함께 Lte로 인해 불러올 변화를 함께 담은 파트 2. 통신요금에 대한 설명과 앞으로의 시장 전망을 담은 파트 3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흥미로웠던 것은 파트 3의 통신요금에 대한 부분. 소비자는 역시 순진하구나 싶었다.

 

구조적인 측면에서 보면 상당히 깔끔하게 만들어진 책이다. 책의 크기가 좀 큰 것이 가지고 다니면서 짬짬이 읽기에 좀 불편하다는 흠이 있지만, 내용을 읽기에는 시원시원해서 편했다. 필요한 부분은 표와 그래프, 사진 자료 등으로 내용을 잘 정리해놓았고, 부분부분 강조하는 내용을 정리해놓은 것도 눈에 잘 띄면서 전체적인 흐름을 방해하지 않도록 잘 배열해놓았다. 전체적으로 진한 민트빛 초록색과 검정색 두가지 색깔만으로 강조색과 글자색을 정해놓은 점도 간결하고 보기에 편했다. 요즘 책들은 주로 이런식으로 나오는 듯하다.

 

워낙 문외한인 쪽의 내용이라 책의 내용을 어설프게 정리하는 것보다 책 자체에 대한 평을 하려고 방향을 잡았더니 어떤 내용이라고 자세히 설명하지 못해서 좀 아쉬움이 남지만, 트렌드를 알기쉽게 총정리 해놓은 트렌디한 책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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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씬 상담소 - 내 몸과 마주하는 시간 diet mental therapy
박민정 지음 / 니들북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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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몸무게였다가 지금은 그 절반인 50킬로그램의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는 1/2 다이어터 박민정의 다이어트 책이다. 다이어트를 하는 방법에 대해, 식단이나, 운동방법 등을 사진이나 세세한 자료등을 제시하여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책은 아니다. 그녀가 어떻게 지내왔고 또 어떻게 살을 빼게 되었으면 그리고 그 후는 어땠는지에 대해 에세이처럼 잔잔하고 차분한 투로 이야기하듯이 적혀있다.

 

 책의 초반부에 100킬로그램이었던 이십대초반의 저자 사진과 함께 어린시절, 살을 빼고 난 다음의 모습이 함께 실려있다. 내 몸과 마주하는 시간, 늘씬 상담소라는 제목을 보면서 살을 뺐으면 얼마나 뺀 것일까... 요즘에 다이어트에 성공한 소위 몸짱들이 많은데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길래 책을 냈을까 궁금했는데, 2명에서 1명이 된, 얼굴도 몸도 인상도 분위기도 달라진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살을 빼고 나니 다소 차가운 느낌을 주는 미인으로 보였다.

 

 살이 쪘던 스무살 초반 자신이 어떻게 생활했는지, 예쁜 친구와 다니면서 느꼈던 부러움, 자기 자신에 대한 아쉬움, 주변 사람들이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 무신경한 한마디가 어땠는지 소상하게 적혀있다. 다이어트에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가 생각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차갑게 느껴질지도 모르는 냉철한 지적과 조언도 담겨있는 부분이 눈에 띈다. 적게 먹는데도 살이 찐다거나, 원래 날씬했는데 살찌는 체질이 됐다던가 하는 변명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는 부분이 있었다.

 

 자신의 경험담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다양하게 있었는데, 먹은 것을 도로 토하는 지인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지방흡입을 하고도 다시 살이 찐 사람, 살을 빼고 자신이 충분히 날씬해졌다는 생각에 부담스러울 정도로 과감한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 등의 이야기 등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살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가 다채롭게 함께 들어있어서 다이어트에서 자유롭지 않은 여성들로서는 읽으면서 공감도 될만한 부분이 있었다.

 

 좀 안타까운 점은 다이어트를 하는 과정에서 좋아하는 음식도 싫어한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듯한 모습을 보이거나, 밀가루를 싫어하게 되어서 밀가루로 만든 음식은 아무리 맛있는 것도 그저 밀가루 덩어리로만 생각되게 되었다는 점 등은 그리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다이어트를 해서 자신의 외견을 가꾸고 건강관리를 하는 식사조절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좋아하는 것, 즐길 수 있는 것을 더이상 향유하지 못하게 되는 아쉬움도 있는 법이니까.  

 

 다이어트를 위해 자극이 필요하다면, 살이 찌고 있는데도 스스로를 관리하지 못하거나, 살을 빼고 있는데 이제 그만 포기하고 싶다면, 이 책을 통해 마음을 다잡아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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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 이병률 여행산문집
이병률 지음 / 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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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읽는다 당신이 좋다.'

 

 이병률 시인의 시집을 읽었다. 올해 초였는지 때는 잘 기억이 안나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서가에서 마침 눈에 띄는 제목이 있길래 집어들었다. 그게 이병률 시인의 시집이었고, 그 제목은 '찬란'이었다. 그 시집을 읽고 시인이 좋아졌다. 그 이름 세글자와 시집의 이름을 잘 기억해두고 있었는데, 늦여름 서점가를 온통 그 이름으로 도배한 화제의 작가로 그 이름을 다시 만났다.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여행산문집으로 그가 다시 찾아온 것이다. 바랜듯한 민트빛 표지에는 언뜻보면 모르고 지나갈 작은 제목과 이름이 써있다. 그리고 그 안의 책장을 넘기면 온통 낯이 선 이국의 풍경을 담은 사진과 시인의 글들이 빼곡하다.

 

 세상의 그 많은 곳엘 얼마나 열심히 떠났는지 시인의 발에 염료를 바르고 확인해보면 산넘고 바다건너 이 땅, 저 땅에 발자국으로 닿지 않는 곳 없는 길이 촘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불어오는 것은, 시인의 걸음에서부터 아닐까 생각했다. 그가 스치고 가는 자리마다 인 바람이 여기까지 불어와 그와 그의 글과, 그의 시를 좋아하도록 만드는 게 아닐까.

 

 여행을 떠나 다녀간 곳, 만난 사람들, 그리고 키웠던 토끼에 대한 이야기 등 다양한 얘기가 여기저기 책 속에 들어와있다. 시인은 마치 이야기를 수집하기 위해 세상 곳곳을 다녔는지도 모르겠다. 보물처럼 여기저기 이야기들이 숨어있는 지도를 하나 구해서 그것들을 찾으러 온 세상을 그토록 도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지도는 시인만 가지고 있는 것이라, 시인이 가는 길, 시인이 보는 것, 그래서 시인이 쓰는 것은 오로지 시인만의 것처럼 그만의 분위기가 체취처럼 배여 책장을 넘기면 내게로까지 전해지는 것이리라.

 

 시인은 좋은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 삿포로나 파리에 가자고 말하곤 한단다. 왜 꼭 삿포로나 파리인지 명확한 이유는 없어도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이 나와버린단다. 좋은 사람이 얼마나 많았던지 그 말을 한 사람이 또 너무 많아서 이제는 그 말을 삼가야겠다고 했는데, 나도 언젠가는 삿포로나 파리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인과 함께라면 더 좋겠지만, 그도 아니면 내가 나도 모르게 삿포로나 파리에 가자고 말이 나와버린 좋은 사람과 가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름답고 서정적인 문체로 여행기가 아닌 여행하며 살아온 삶에 대한 궤적을 그려놓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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