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황금광 시대
표명희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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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다보니, 자음과 모음에서 나온 신작들 세 편을 나란히 읽게 됐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네 가지 비밀과 한 가지 거짓말, 그리고 황금광 시대. 자음과 모음에서 나오는 책들은 뭔가 그 자신만의 색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그 색을 어떻게 이름붙이기에는 좀 확실치 않은, 확 눈에 띄는 원색이나 단일한 색이 아니라 여러 빛깔이 물들듯이 섞여있는 묘한 느낌이 든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은 푸른색과 붉은색이 조화를 이룬 느낌이었다면, 그렇다고 해서 보라색도 아닌, 그런. 네 가지 비밀과 한 가지 거짓말은 어두운 하얀색같은 느낌이었다. 이 황금광 시대는 반짝이는 금빛과 짙은 초록의 느낌이 든다. 음울한 느낌이 바탕에 깔려있고 그 위에 다른 빛을 덧씌운 느낌이 든다고 해야할 것 같다.

 

"VIP룸을 나오면서 현은 자신이 처한 현실을 깨달았다. 그토록 벗어나려 발버둥 쳤건만, 다시 카지노였던 것이다. '자넨 한동안 나를 따라다니게 될 걸세.' 미스터 손, 그를 따라다닌다는 건 카지노의 유령들 사이를 맴돌아야 한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망망대해를 네 시간이나 날아오고도 결국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황금광 시대는 카지노를 둘러싸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신체포기각서를 쓰고 외국으로 쫓겨나듯이 오게 된 제프-현, 카지노에서 시작된 인연을 끊지 못하고 결국 그 끝까지 보게된 제니, 알 수 없는 인물인 미스터 손, 그리고 그의 주위 사람들이 주요 인물들이다. 모두다 카지노라는 거대한 괴물 혹은 늪에 반쯤은 몸과 정신이 빨려들어간 채 어찌보면 먹히는 것 같으면서도 그와 공생하고 있는 것 같은 관계로 살아간다. 도박이라는 말로 카지노라는 거대한 공간을 함축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마약에 빠진 사람들이 벗어나려고 해도 결국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가서 살 수 밖에 없는 듯한 굴레를 보여준다.

 

"젊고 늘씬한 백인 미녀들이 오픈카를 타고 거리를 누비고 있었다. 주변 남자들에게 손 키스와 웃음을 날리는 여자들은 호객 행위 중인 것 같았다. 거리는 유혹의 손길로 넘쳤다. 뷔페식당과 공연장과 가라오케, 일일 관광 등을 알선하는 문구가 적힌 광고 종이판을 몸에 걸치고 있는 피에로도 있고, 한켠에서는 미성년자에게 가짜 신분증을 만들어 파는 불법 브로커도 있었다. 거리는 황금을 갈구하는 사람들로 넘쳤다."

 

카지노에게 가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라스베가스나 마카오가 아니더라도 정선에 있는 카지노만 해도 그 근처로 가면 외관이 얼마나 화려하고 커다란지 마치, 그 장소가 실제와는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지는 것을. 커다란 분수와 화려한 조명이 쉴새없이 돌아가고 고급 자동차, 높은 호텔건물,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와 사람들의 말소리가 멍멍하게 가득찬 공간에서 처음엔 그냥 얼떨떨하게 있었던 기억이 난다. 비교적 끼어들기 쉬워보이는 판에 자리를 잡고 배팅을 시작하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훌쩍 지나버리기 일쑤다.

 

이 책을 읽다보면 마치 그런 소리가 옆에서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 든다. 카지노라는 공간이 주는, 배덕함을 느끼게 하면서 큰 판을 벌이고 있는 미스터 손의 옆에 긴장된 공기를 함께 느끼고 있는 것처럼. 제목 또한 새로운 금맥을 찾아 카지노로 나서는 사람들의 행렬을 떠올리게 한다. 마치 정선의 폐광에 세운 카지노-새로운 황금광을 떠올리게 한다. 누가 따고 누가 잃을 것인가, 삶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게 느껴진다. 책을 읽다보면 카지노를 연상하면 떠오를 화려함이나 흥미진진함이 점점 누그러지면서, 도박이라는 끈끈이에 붙은 사람들은 결국 다 같은 모습으로 사그라들 것 같다는 다소 씁쓸하고 적막한 결말을 예상하게 만든다.

 

꽤 독특한 분위기의 소설이었다고 생각한다. 생각과는 다른, 느낌으로 전개되는 흐름이 의외로 읽으면서 더 호기심을 자극했던 요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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