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지음, 여지희 옮김 / 새움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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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은회색의 은은한 빛이 감싸고 있어서
꽤 분위기가 좋은 느낌의 책이다.

버지니아 울프라는 작가는 어릴 적부터 로망같은 이름이었다. 나에게도 여성의 번영은 기분좋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나이팅게일과 퀴리부인의 전기를 읽으며 그들의 뒤를 따르고 싶었고, 신사임당처럼 살던 조선시대를 안타까웠다.

1910~20년대에 이렇게 페미니즘으로 앞서나간 여성작가가 존재해 여러 작품을 남겼다는 것이 소름끼칠 정도로 존경스러웠다.

최근 들어 읽어 본 그 어떤 에세이 산문집보다 월등하게 품격이 넘치고 자기의 주장에 명료함과 강인함이 배어 있었다. 읽는 동안 제대로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그의 생각과 글에 녹아들어 함께 비탄에 빠지기도 하고, 함께 배열을 깨뜨리기도 하며, 흐릿해진 나의 삶의 기록들을 회상해 보았다.

"또 한쪽 성의 안전과 번영과 또 다른 성의 가난과 불안정함에 대해서, 한 작가의 마음에 전통이 미치는 영향과 전통의 결핍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저는 마침내 저러한 논쟁들과 저러한 기억들, 분노와 웃음으로 표피가 쭈글쭈글해진 하루를 돌돌 말아서, 산울타리 속으로 던져 버릴 시간이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광막하고 푸른 하늘 벌판에 수천 개의 별들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불가해한 사회에 마치 홀로인 듯 싶었습니다. "

한쪽에 치우친 것을 번영이라 하고 반대로 기울어진 여성을 가난하다고 표현했다. 그 이전의 시대부터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여성들의 사상에 대한 결핍이 지나쳤던 사회였구나..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홀로 외롭던 버지니아 울프의 생각에 애달퍼졌다.

"옥스브리지를 방문해 가졌던 오찬과 만찬은 벌떼같이 쏟아지는 질문들로 시작됐습니다.
왜 남자들은 와인을 마시고 여자들은 물을 마시는가? 왜 한쪽 성은 그토록 번창하는데 다른 쪽 성은 그리 가난한가? 가난은 픽션에 어떤 영향을 끼치나? 예술작품 창조에 필수적인 조건들은 어떤 것인가?
천 가지 질문들이 한꺼번에 제기됐습니다. 하지만 필요했던 건 답이지 질문들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은 1년이란 기간 동안 여성에 관해 얼마나 많은 책들이 쓰였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얼마나 많은 책들이 남자들에 의해 쓰였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

이웃의 블로그에서 여성 작가들만의 책 목록을 작성한 것을 본 기억이 난다. 남성 작가들의 지분이 월등히 많아서 여성 작가들이 이름을 올릴 자리는 미비했다.

언제나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더욱이 그 오래전 시대에서 자신의 진실을 제대로 글로 써내기 위해서 많은 것들이 부서지고 편견에 맞서야 했던 시기였으리라.
홀로 다른 생각을 앞세우고 주장하는 것은 온전히 세상과 맞서는 일처럼 막막하기도 했을 것이다.

작년에 읽었던 <여성의 글쓰기>라는 책의 저자도 기자로서 글을 써오던 시절에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많은 의지를 꺾어야 했기에 기자아닌 자신의 글을 쓰고 싶었다고 말한 바있다.

아직도 여성들은 할 말이 많다. 많은 부조리와 불합리한 상황에서 아닌 척 살아 온 시간들에 파묻히고 익숙해져버린 굳은 기름을 걷어 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여기 저기에서 울리는 여성들의 목소리와 여성의 언어로 세상을 말하는 서사들이 많아지길 응원한다.

"왜냐하면 걸작이란 혼자 외톨이로 태어나는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숱한 세월을 거치며 사람들이 형상화한 공통적인 사고의 산물이고, 따라서 하나의 목소리 뒤에는 집단의 경험이 있는 것입니다. "

"소설은 실제 삶에 이렇게 상응하므로, 그것의 가치 기준은 어느정도는 실제 삶의 가치 기준들입니다. 하지만여성의 가치 기준들이, 다른 성에 의해 만들어진 가치 기준들과는 종종 아주 다른 건 분명합니다. 그건 당연히 그렇지요. 그럼에도 지배적인 건 남성의 가치 기준들입니다."

가부장적인 사회 제도 안에서 위축되지 않고 자신들의 글을 당당히 써낸 여성 작가들의 작품들을 논할 때마다 그들의 작품들을 다시 읽고 싶었다.
여성 소설들들은 자신들의 성의 한계를 용감하게 인정해야만 뛰어난 경지에 도달하길 열망할 수 있다.

"창에서 머리를 떼면서, 새삼 마음이란 건 확실히 몹시 신비로운 기관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아주 전적으로 거기에 의존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관해 알려진 건 거의 없습니다. 왜 제겐 마음에도 절단과 대립이 있다고 느껴지는 거까요? 명백한 원인들로 인해 몸이 긴장하듯이 말입니다.
분명히 마음은 아무 때고 어느 한순간에 집중할 수 있는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기에 절대 단일한 상태로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

백년이 지나도유효한 가장 탁월한 페미니즘의 고전이라고 칭송받을 만한작품이었다. 홀로 자기만의 방을 꿈꾸는 모든 여성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라는 기대처럼 찬찬히 생각하며 읽을 행간들이 너무도 놓치기 아까울 정도로 멋졌다.

버지니아 울프는 지금보다 더 자유롭고 창조적인 삶을 위해 끊임없이 글을 썼던 것이 아닐까.

잠자고 있던 무딘 감각들이 촉수처럼 살아 움직이는 듯이 하나하나 건들고 지나는 잔잔하지만 강인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감히 섣불리 감상조차 꺼내기 두려울 정도로 벅찬 언어들이 많아서 가슴에 오래 간직하고 싶을 뿐이다.

"이 모든 한없이 흐릿한 삶들이
기록되어야 해요.
당신이 쓰고 싶은 것,
그것이면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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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쉬운 수채캘리그라피 - 하나씩 쉽게 그려나가는 88개의 행복
임경희 지음 / 밥북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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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글씨쓰는 것을 좋아해서 주로
검정펜이나 푸른빛의 만년필로 시를 적거나 독서노트에 필기를 하는 편이다.
수채화 붓을 손에 잡고 무엇을그릴지 고민만 하다가 다시 글자로 채워넣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이런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기초를 키워주는 연습도안을 함께 실었다.
쉽고 간단하게 따라 그릴 수 있도록 수채화 기초부터 차근차근 알려주는 책이다.

사실 캘리그라피라고 하면 거창해보이지만 나만의 개성 손글씨라고 생각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캘리그라피이다.
거기에 물과 물감이 만나 투명한 그림을 느낌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더욱 화려하고 고급스런 이미지가 될 것이다.
미술 전공자처럼 세밀한 그림은 오히려
글씨의 맛을 해치게 된다.
간단한 그림과 나만의 글씨의 조화가 수채 캘리그라피의 매력일 것이다.

정성으로 눌러 쓰고 서툴지만 진심을 담아 그린 그림으로 엽서 하나를 받게 되면 위로와 감동이 된다. 사실 손글씨와 캘리그라피를 하게 되면 선물을 주고 싶어지는 것이 또 하나의 매력이다. 나만의 글씨로 선물을 주고 싶은 사람에게
마음을 담은 글귀를 생각하는 것부터가 이미
감동의 시작이라는 것을 받는 사람도 알아주길..

글씨만 주로 쓰다보니
작은 그림이라도 배우고 싶은 터에 이 책을
선물로 받게 되었다.
물론 당첨이라는 선물이지만
나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어떤 그림을 그릴수 있을까?
쉬운 도안부터 하나씩 도전해 보기로...
부모님께 드릴 용돈봉투부터 시작해봐야겠다.

즐거운 취미생화로 추천하고 싶은 손글씨.
아무래도 좋은 글귀를 생각하고 쓰다보면
내 안에 힐링이 되고 차분해져서 캘리그라피를 접하는 동안 많은 도움을 받았다.

붓과 먹으로 하는 쓰는 정통 캘리그라피를 선호하지만 요즘은 다양한 소품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수채화 그림을 꼭 그려보고 싶었다.
나처럼 무엇을 그릴까? 어떤 문구를 넣을까?
고민하는 분에게 추천하고 싶은 캘리그라피 연습용 가이드 북이다.
따라하고 싶은 이쁜 그림들 88가지가 꽉 차있다.

절반은 설명과 완성작품이 실려있고
뒤의 내용은 도안만 그려져 있다.
누구나 따라 그리고 도전해볼 수 있는 그림들이다.
색깔은 아무래도 조금씩 달라도 되지 않을까~
자유롭게 내 안의 예술성을 끄집어 내볼 시간
즐거운 수채화 붓과 물감을 준비해 본다.
초보지만 나도 따라서 하면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준다.
너무 잘 그릴 필요도 없다.
그냥 나만의 그림과 글씨로 전하는 진심이면 받는 사람에게 감동을 줄 것이므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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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고 상처를 허락하지 말 것 - 나를 잃지 않고 관계를 단단하게 지켜나가기 위해
김달 지음 / 비에이블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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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잃지 않고 관계를 단단하게 지켜나가기 위해, 결국 상처주는 그 사람보다 내가 더 소중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작가의 이름부터 특이하다. 필명일지 본명일지 모르지만 '달'이라는 이름도 마음에 드는데 표지 달무늬 홀로그램 안에 자신의 이름을 넣었다.

젊은 작가들의 글을 읽다보면 이전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이들어 겨우 알게되는 것들을 이미 알아버린 젊은 작가들처럼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야무지게 나를 챙기며 사랑할 수 있을까?^^ 모든 문제의 해답은 나 자신이 행복해지는 데 있다고 생각하는 대한민국 대표 크리에이터라고 소개되어 있다.
사랑부터 이별까지, 살면서 마주치는 여러 어려움들을 겪으면서 힘들게 하나씩 배워가는 나와는 달리 명쾌하고 현실적인 조언과 해법을 선사하고 있다. 나는 현실적이기 보다는 낭만적이고 비현실적 꿈을 꾸어 왔던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랑이 힘들어도 참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사람에 치이면 또 웃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사소한 일은 그냥 나만 넘기면 되니까 그 외에는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며 살았지만 나의 상처를 생각하는 건 남이 아니라 나였을 뿐이다.

여전히 부족한 내 마음을 챙기라는 의미인지
올해에는 유독 이런 종류의 책들이 내게 많이 온다. 경각심도 생기고 나를 챙기는 일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나의 존재를 오롯이 드러낼 수 있는 챙김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더 이상 상처받고 아파하지 말기를, 그런 사랑은 과감히 끊어낼 수 있어야 또 다른 인연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을 왜 일찍 몰랐을까.. 누구때문에 힘들어하기 전에 서로 잃지 않고 아프지않게 살아가기 위해서 얼마큼의 거리를 두어야 하는 것일까.
사랑하는 그 사람때문에 포기하고 있는 것이 나 자신이 아니기를 원해야했다. 언제난 나는 뒷전이고 우선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이제부터라도 중요한 관계안에서 나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다른 사람과 함께 갈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가치를 남들의 평가해 줄수는 없지만 어떤 세상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비추어 나 자신이 초라해지게 느껴지는 순간, 나의 가치와 자존감은 터무니없이 바닥으로 밀려나게 된다.
그 끝에서야 비로소 한 계단씩 올라가며 자존감을 회복하고 나를 찾아가는 데 몇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당당해지는 연습이 필요했던 거다. 마음껏 나를 사랑해줄 사람이 있다면 울타리가 되었을 테지만 홀로 나를 인정할 수있기 까지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류시화 작가의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라는 책에는 "어느 누구도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나를 사랑하는 것을 잘못 배워서일까, 나의 성정때문일까. 나를 먼저 챙기고 사랑하는것은 이기심이며 뭐든지 남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것이 결국 세상을 살아가는 법인줄 알았다.
좀 이기적이어도 되는 세상이었다.
이제서야 명확하게 알았다. 무조건 양보하고 희생하는 것이 온전한 사랑이 아니라는것을 이미 사랑이 지나고 나를 잃어버리고 나서야 말이다.

이제라도 나를 인정하고 살아가니 남들의 시선이나 평가는 중요치 않아졌다. 이것이 회복인지 나이들어 생긴 여유로움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가슴 졸이고 혼자 아파하는 시간이 확연히 줄어들었으니 다행이다.
그렇다고 다시 사랑하고 이별의 순간이 온다고 해도 아프지 않을 자신은 없다. 그저 최선을 다했으므로 후회가 없다는 말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연애과 사랑, 그리고 이별을 비롯한 모든 관계 속에서의 만남이 쉬운 것들은 아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일이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나의 노력만으로 되는 일이 아닌, 불시에 일어나는 어처구니 없는 사고들도 있다. 그런 일들을 함께 해 나가는데 힘이 되어주는 사람을 잃지 않는 방법, 상처받지 않고 제대로 사랑하고 이별하는 방법 등 여러가지 속내들을 드러내도 작가의 언어들로 마음껏 조언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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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의 죽음으로부터
플린 베리 지음, 황금진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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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언제나 나였다.
언니는 살해당하는 것보다,
누군가를 살해하는 것이 더 어울리는 사람이다...
나의 언니, 레이첼의 죽음으로부터
묻어두었던 것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책을 받고 표지가 이뻐서 산책길에 들고 나가 야외에서 사진을 찍었다. 빛을 받은 표지에서 반짝거리는 여자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어떤 소설일지 궁금해하며 읽기 시작했다.

일단 에드거상 수상작이라고 하니 서늘한 스릴러나 살인 미스터리물일 것 같은 느낌이다.
아니, 그만큼 스토리가 탄탄하고 이미 인정을 받은 작품이니 믿고 읽게 된다.

"아뇨. 경찰이 언니 말을 믿어주지 않았거든요"
경찰은 언니가 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언니의 진술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언니가 누군가에게 사기를 치거나, 몸을 팔려다가 과격하게 거절당했을 거라고 의심했다. 그 경찰들은 언니가 마신 술의 양과 언니가 울지 않았다는 사실에만 집착했던, 마지막으로 남은 구시대의 경찰이었다."

경찰들이 개인의 감정까지 고려하며 사건을 수사할 수는 없겠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진실이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억울한 일로 기억될 것이다.
여자라고 혹은 미성녀자라고해서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는 일은 물리적인 상해 뿐 아니라 언어폭력도 심각하다.
심지어 보호받아야 마땅할 경찰에게서까지...

노라는 15년 전 언니의 폭행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경찰들이 이번에도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는다는 의심이 깔려있는 문단이다.
억울한 사람을 얼마나 더 억울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
물론 제대로 된 헌신적인 경찰들도 있지만 여자라서, 어려서, 술을 마셔서...등등의 이유로 제대로 진술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자기들 멋대로 의심하고 넘겨짚는 대목은 함께 분노하게 만든다.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절벽 끄트머리 위로 흰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산등성이 아래 교수의 집에 사람이 있다. 그 집 지붕과 굴뚝이 보일 때까지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증기가 꼬이는 형상으로 피어오르다가 눈 속으로 사란진다."

"가슴이 쓰라리고 아파져 위를 올려다본다. 이제 그친 눈은 가로로 정신없이 소용돌이를 그리며 공중을 빙빙 맴돈다. 절벽 끄트머리에서 배배 꼬여 있는 키 작은 나무들을 통과해 능선을 걸어 내려간다. 바람 때문에 크게 자라지 못한 나무들은 내 키를 간신히 넘겼다. 뻣뻣하고 노란 천 조각이 걸려 있는 나무에 가지 하나가 튀어나와 있다."

장면이나 풍경의 묘사는
사건을 바라보는 동생 노라의 감정을 정교하게, 아름답고 서정적이라서 더욱 슬퍼지는 기분이다.
두 눈을 감고 언니 생각을 하면 자꾸 후회가 떠밀려온다.
같이 있어 주었다면..
조금 더 일찍 도착했더라면...
누구든 사람을 잃고나면 해준 것보다는 해주지 못한 아쉬움이 밀려오는 모양이다.

"중요한건, 그날 아침 내가 언니를 보려고 몸을 돌리지도 않았었다는 사실이다. 그 후 몇번이고 상상하고 또 상상했다. 한쪽 어깨를 짚고 일어나 몸을 돌려 언니를 보았더라면 어땠을까. ​
언니 얼굴은 밖에서 들어온 푸르스름한 네온빛으로 창백해보였을 것이고, 언니의 기다란 머리카락은 양갈래로 나뉘어 앞으로 쏟아졌을 것이다.
"걱정마, 내가 같이 가줄게" 이렇게 말했더라면.
조책감에 사로잡히고, 죽은 것보단 살아있는게 다행이라는 생각에 몸서리치며 두 눈을 감는다."

"내 목구멍 안쪽에서 나는 소리를 가만히 들어가며 마른 침을 삼킨다.
내가 조금만 빨리 갔더라면 언니는 살아 있을 텐데."

15년전의 언니가 무자비하게 폭행을 당하던 장면은 읽으면서 너무 아찔했다. 알지 못하는 남자가 길을 가다가 폭행을 했다는 것이 믿을 수 없는 충격일 것이다.
일종의 묻지마 폭행의 피해자!
읽는 동안 함께 폭행당한 것처럼 땅바닥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함께 아픔에 숨소리가 나고 넘어질 듯 숨이 막히는 장면으로 그려냈다. 문장이 유려하고 섬세하다. 눈에 보일듯이 그려지고 상상이 될 정도로...

끔찍한 언니의 살인 사건을 발견한 노라를 중심으로 생생한 긴장감과 더불어 군더더기 없는 정밀한 추리들은 몰입감을 높인다.

언니와 싸우지 않은 자매는 없을 것이다.
비록 사이가 좋았던 기억을 가진 노라이든,
나쁜 기억을 가진 언니이든, 가족을 잃은 슬픔이란 이루말할 수 없는 깊은 상실감과 우울감이다.

문득.. <환상의 빛>이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남편의 죽음앞에 홀로 남은 주인공은 극한 상실감에 혼잣말을 하게 된다. 듣는 이 없는 말을 캐내면서 이겨내야하는 내면의 상실감을 과연 누가 알아줄 수 있을까.

"언니 생각을 하는 건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추억 하나가 꼬리를 물고 다른 추억으로 이어지고, 시간은 전혀 흐르지 않는 것만 같다. 몇 시간이고 추억을 곱씹으며 앉아 있으려니 마침내 첫차를 타는 직장인들이 죽상을 지은 채 하나둘 나타나 어두컴컴한 플랫폼에서 새벽기차를 기다린다."

"언니와 여기 있는 동안 나는 이곳에 영원히 머물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미 떠날 생각을 하고있었다. 머물면서 매번, 돌아갈 생각을 동시에 하다니.
"언니는 콘월의 제일 좋은 점이 뭐야?"
이렇게 묻기는 했지만 진짜 묻고 싶은 건 그게 아니었다. 내가 정말 묻고 싶었던 건 언니는 살아 있어서 제일 좋은 점이 뭐냐는 거였다."

살아있어서 좋은 점이라...
생각해 볼 시간을 스치듯 던져준다.

언니의 살인 사건을 목격한 동생은 언니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리워하면서도 주위의 모든 관계를 모두 의심하고 추리해 나가며 경찰보다 더 행동한다. 오히려 범인으로 몰리는 가운데서도 슬픔의 과정에 몰입한다.
스릴러와 살인 미스터리가 함께 섞인 소설이라 깔린 감정들은 암울한데 사건이나 풍경, 그리고 심리묘사가 아름답고 서정적이다.
나는 이런 문체의 소설이 읽기 좋다.

우리는 과연 가족을 얼마나 이해하고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언니와의 기억과 후회, 사랑과 미움, 분노와 화해의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끝까지 사로잡혀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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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만나고 나를 알았다
이근대 지음, 소리여행 그림 / 마음서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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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따스하게 불어오는 봄에 가벼운 외투하나 걸치고 햇살이 머무는 벤치에 앉아 읽기 좋은 에세이다. 글들이 풍경처럼 익숙하고 정겹다. 수많은 단어와 글 속에 감추인 감정들이 결국은 사랑일 것이다.
사랑으로 살아가고 사랑으로 감격하고 사랑으로 감동하며 가슴이 뛰는 것이므로,,

잃어버린 나를 발견하는 과정도 사랑이고
어떤 대상을 만나 나보다 더 사랑하는 것도 사랑이고,
완벽하지 못한 자아와 자아가 만나 서로의 빈구석을 채워가는 것도 사랑이고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나는 감성글들이 가득해서 시처럼 읽게 된다.
달콤한 설렘으로 꽃을 피우는 봄날의 향연같은 글들이 매력적으로 담겨있다.

책이 예뻐서 친구와 약속이 있는 날 들고 나가서 카페에서 사진을 찍었다.
지루하지 않은 글과 그림이 감수성을 자극하며 내 안에 있는 사랑을 찾아, 비록 사랑이 끝나도 삶은 계속 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럼에도 매 순간 따뜻한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을 잊지 않고서...



"어둠이 짙을수록
별이 더욱 찬란하듯
삶은 눈물 속에서
더욱 빛나는 거예요"


열심히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일,
혹은 가끔 희망을 버리는 일,
그것들이 삶의 무게를 견디고 조금 덜어내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간다.
조금 늦더라도 조금 덜 무겁게 가고 싶어지는 마음을 갖게 된다.

예쁜 일러스트와 감성 글이 더해진 에세이 한권은 자꾸 읽을수록 아무리 힘든 순간이라해도 사랑을 놓지 말아야 한다고 마음에 전하고 있다.
사랑할 사람이 떠나도 너무 오래 울지 말고 너무 깊이 아파하지 말고 나에게 미안하지 않게 스스로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일...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살아갈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나에게 쏟아주는 것 같은 위로가 되었다.
나와 너, 그리고 가족과 세상을 따스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감성 덕분에 온통 이해와 사랑으로 가득해지는 기분이 맴돈다.

시처럼 노래처럼 흘러나오는 연애편지 같아서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설레는 책선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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