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빛나는 순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윤예지 그림, 박태옥 옮김 / 자음과모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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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책을 읽고 기름 두방울의 의미를 오래도록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파울로 코엘료의 책들은 제목만 연금술사가 아니라 '언어의 연금술사'처럼 마음에 와닿는 문장으로 읽는 사람들의 영혼을 흔들어 놓는다.
소설 외에도 파울로 코엘료 작가의 책들은
짧지만 쉽게 지나칠 수 없고,
동화처럼 쉽게 써진 이야기지만 읽다보면 어느 새 속이 시원해진다.

날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짭지만 자기의 생각과 나누고 싶은 마음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일.
어쩌면 나도 이런 일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언어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새로운 나를 만나는 일이다.
매일 같은 일상같지만
매일 같은 날은 우리에게 없다.
자연도 다르고, 어제의 식물도 한뼘은 자라고
어제 피었던 꽃은 지고
새로운 꽃이 피어난다.
공기도 다르고 하늘도 다른데
하물며 나의 생각과 마음은 어떨까.
순간순간 떠오르는 말과 글들을 모으고
고르고 적고 다듬는 일들과 기억들이
책으로 만들어지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난다.
그 시간이 내가 빛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나는 잘 웃는다.
잘 웃는 만큼 우는 것도 잘한다.
아무 때나 우는 것은 아니고
꼭 울어야할 때가 아니어도
그냥 슬퍼지면 울어야지 마음 먹지 않아도
눈물이 흐르고 있다.
아마 내 눈물샘은 마르지 않는 샘인게 틀림없다.
그런데, 제대로 잘 울고 나면
얼마나 개운해지는지 모른다.
찔끔찔끔 훌쩍훌쩍 남의 눈치보며 우는 것보다
한번에 왕~~하고 울어버리는 것이
누구에게든지 필요한 작업이다.
감정에 너무 충실해도 안되지만
어느 정도 솔직하게 살아가도 된다는 것을
알아간다.
좀 무너지고 기대며 살아도 되는거였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깨닫는 시간 역시
내가 빛나는 순간이다.

세상이 무너지는 일 같은 것 없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던 그 순간에도
삶은 끝나지 않고
작가의 말처럼 세상의 별별 일을 다 겪어도
또 남아 있는 일들이 있다.
내가 주워 들었던 제비뽑기 하나가
당첨이 아니었다고 해서
다음에도, 또 그 다음에도 꽝이었다고 해도
나빴던 것만은 아니다.
그로 인해 나는 성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내 아이가 나처럼 고통을 폭격맞듯이
쏟아지는 삶을 산다고 한다면
허락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피해가라고 하고 싶다.
그러나 믿는다.
때로는 태풍이 우리에게 좋은 일을 주고 간다는 것을...

"폭풍이 꼭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때로는 내가 가야 할 길을
말끔히 치워놓기도 합니다."

"평소와는 다른 삶의 속도로 즐거움을 찾도록 해보세요. 습관을 바꾸면 사람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만사 자기 하기 나름이긴 하지만 말아죠. "

누구나 멋진 계획을 세우는 일은 쉽다.
하지만 좋은 습관을 들이는 일은 쉽지 않다. 계획을 행동과 습관으로 만들어가는 일,
늘 하던 습관을 바꾸어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일,
다른 삶의 속도에서 찾는 즐거움...
내가 요즘 해보는 일이라서 달라지는 습관이 사람을 변하게 만든다는 말에 공감이 되었다.
늘 하던 습관을 바꾸는 일은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일만큼이나 어렵다.
하지만 매일 작은 노력을 하고 하루에 1도라도
시선과 방향을 다르게 할 때
서서히 우리의 삶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더 나은 삶으로 가고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제시한다.

"불행한 사람은 만족이란 것을 모릅니다.
가진 것이 적으면 많이 갖기를 원합니다.
가진 것이 많으면 더 많이 갖기를 원하죠.
많이 갖고 나서는 이제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딱 그때뿐입니다.
거거서 그칠 리가 없으니까요."

책의 다양한 종류는 작가와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하게 소유하고 싶었다.
식물도 마찬가지로 그 세계에 들어가고 보니
얼마나 많고 다양한 종류가 기다리고 있는지
스멀스멀 욕심이란 것이 생긴다.
더 많이, 더 다양하게 모으고 싶어지는 것.
그것은 사람이기에 당연한 욕망일지 모른다.
그것을 제한하고 통제할 수 있는 힘.
좋아하는 일을 오래도록 지속해 나가려면
나의 힘에 부치지않게 적절한 조절이 필요해진다.
살다보면 생기는 요령이랄까. 연륜이랄까...

나에게 없는 것을 갖고 싶고
나에게 많은 것은 나누고 싶고....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는 것도 알아간다.
어떤 사람이 정말 없어서 갖고 싶은 건지
많이 있는데도 욕심내어 가지려고 하는 건지,
정말 많아서 나누는 건지
나에게도 없는 귀한 거지만 누군가를 위해 나누고 싶어하는 건지....^^

"배의 목적
배가 항구에 안전하게 정박해 잇다고 해서,
그것이 배가 존재하는 이유는 아닙니다."

안전하고 평안한 삶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안전을 보장해 줄 수는 있으나 우리의 앞길에 쌓을 수 있는 경험과 삶의 지혜를 겪을 기회가 사라진다.
실패나 좌절, 고통이 지나고나면 한껏 성숙해지는 것을 느낀다.
물론, 아픔이 없이 깨닫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간은 미련해서 자신이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고 공감하는 것 같다.

모든 것에는 존재의 이유와 가치가 있다.
소금은 짠 맛을 내는 중요한 조미료지만
너무 지나치면 음식을 망치게 된다.
추억이나 사랑이나 모든 것이 적당한 거리와
양을 지켜야 제맛을 낼 수 있다는 말이 와닿는다.
내가 가장 빛나던 순간은 언제일까.
지금 현재를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채우고 싶다는
생각들을 가지런히 정리해본다.
단순하고도 짤막한 말로 가득한 지혜의 책.
그림과 함께라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인생의 등대가 되어주는 탈무드같은 그림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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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리마스터판)
은희경 지음 / 창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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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작가의 책은 <새의 선물>을 재작년 즈음에 읽었으니 그나마 가장 최근에 읽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소설을 읽다보면 작가들만의 색이 드러나기도 하고 전혀 다른 성격의 글도 만나는 재미가 있다.

은희경 작가의 작품을 많이 읽지 못해서 출간소식을 듣고 궁금했던 책이다.
장편 소설<새의 선물>을 얼마나 재미있게 읽었는지 은희경 작가의 이름이 선명하게 박혔다.
이 책 속에서 만난 은희경의 세계는
역시 은희경 작가라는 말이 아깝지 않았다.
더구나 내가 좋아하는 신형철님의 해설이 수록되어 있어서 나의 기대는 한층 더 커졌다.

"비너스란다. 바다의 거품 속에서 태어나는 장면이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왜 그렇게 슬퍼졌을까.
초록색이 도는 우윳빛의 도자기 인형처럼 매끄럽고 아름다운 얼굴.
가냘픈 알몸을 휘감은 채 바람에 날리고 있는 긴 금발의 머리카락과 커다랗게 열린 조개껍데기를 밟고 선 무방비해 보이는 하얀 맨발.
그리고 허공을 응시하는 눈 속 깊은 곳의
그 신비로운 슬픔 때문이었을까."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마치 그림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설명과 묘사가 뛰어나 나의 상상대로 비너스를 그려 놓는다. 사물이나 심리를 묘사하는 문장들이 근사해서 닮고 싶은 몇몇의 작가들이 있다. 내가 문장이나 글에 멋을 더하는 은유나 묘사에는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글을 만나면 따라 적고 싶은 문장들이
넘실거리는 것도 즐겁다.

"그래도 포기하지는 않았다. 좋아하는 것의 이름을 외우는 일마저 포기하면 그 때부터는 노년 인생에서 점점 더 많은 일을 포기해야할 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었다.
살아오는 동안 그렇게 많은 걸 포기해야 했음에도 어머니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체념과 거기에 대한 강요였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자신의 삶의 좌표는 지도의 어디 쯤에 있을까 궁금하게 만드는 단편이 있다.
<지도중독>

"선배가 생각하는 진화란 게 뭐예요?"
"모두들 다른 존재가 되는 것,
그것이 진화야.
인간들은 다르다는 것에 불안을 느끼고 자기와 다른 인간을 배척하게 돼 있어. 하지만 야생에서는 달라야만 서로 존중을 받지,
거기에서는 다르다는 것이 살아남는 방법이야."
"왜 그렇게 열심히 지도를 보세요?"
"좌표가 있으니까. 지도는 내가 풀어본 중에 가장 쉬운 2차방정식이야. 원정 O가 확실하면 P의 위치는 구할 수 있는 법이거든"
"P의 위치가 구해지면 가야 할 방향이 보이겠죠?"
"올바른 길이란 건 없어.
인간은 그저 찾아다녀야 할 뿐이야"

축을 중심으로 만든 좌표상에서 시작점을 정확하게 알고 나면 원하는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을까?
네비게이션이 나오기 전에 여행을 갈 때면 늘 챙겼던 교통지도. 여전히 방향을 알 수 없던 기억이 문득 떠 오른다.
지금 나의 위치를 제대로 알면 가고자 하는 곳의 위치를 원하는 곳을 안내해 줄 수 있는 소중했던 지도.
그러나 저절로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원하는 것을 향해 끊임없이 찾고 또 찾아야 한다.

"일뿐 아니라 사람도 그렇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고 해도 살아오면서 만난 적 있는 비슷한 누군가와 얼굴이 겹쳐지게 마련이고, 그러면서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쉬워졌다.
세상 사는 일이 익숙해진다는 것이 어쩌면 틀을 갖는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일종의 삶의 메뉴얼말이다. 아무리 복잡한 일도 틀에 집어 넣으면 단순해져 버린다.
그것을 경륜이라고 좋게 보든 보수화되었다고 비난하든 상관없다. 분명한 것은 세상일이 놀랍지 않게 생각되면서 동시에 어느 정도 무기력해진다는 사실이다.
내 삶의 많은 부분은 이미 결졍돼 버렸다.
회사든 가정이든 이제 내 인생에 변수는 거의 없다.
어느 정도 정점에 이른 사람은 완성도를 높일 수 있을지 몰라도 더 이상 자신의 속에서 미지와 신비를 끌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두려움도 없지만 설렘 또한 없다. 행복하지 않은 것도 아니며 또한 행복한 것도 아니다."
<지도 중독>

소녀B의 몽상으로 시작하는 단편
<날씨와 생활>은 나의 사춘기시절에 함께 했던 세계명작전집 이야기를 함께 따라 읽으며 잠시 추억에 잠겼다.
그 당시엔 책이 귀하고 도서관도 많지 않았다.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나도 어느 날 엄마께서 월부판매로 사 주신 전집이 생겨서 읽은 책을 몇번이나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 그 때에 읽었던 책은 나의 유년 시절동안 많은 생각을 지배해 왔을 것이다.

소공녀 세라처럼 어느날 부잣집의 상속녀가 되기도 하고,마지막 잎새의 주인공처럼 하얀시트가 덮인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가냘픈 소녀가 되어보기도 했다. 키다리 아저씨의 사랑을 받는 쥬디도 되어보고, 미운오리 새끼 속의 백조 한마리가 되어 훨훨 날아가고 싶기도 했다. 사랑의 학교처럼 꿈을 키우고 싶었고, 작은 아씨들의 큰언니 매그처럼 주위를 챙기면서 주인공 소녀 못지 않은 몽상가로 살아온 셈이다.

그 시절의 월부책장사에게 책좋아하는 딸을 위해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을 들여놓았을 엄마 생각을 하며 재밌게 읽었다.

"당신에게는 그런 순간이 없었나요? 뜻하지 않은 낯선 한순간 자신의 존재와 부재 사이의 좁은 틈, 거기에 갇혀버린 듯한 공포스러운 전율을 느낄 때가 누구에게나 있지 않나요?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우주 미아처럼 돌아올 주소를 영원히 잃어버린 것이 아닌지 불현듯 두려움에 사로잡혔겠죠. 순간적으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시간과 공간을 만난 셈이니까요"
<의심을 찬양함>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라는 표제작은 아버지의 인정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아들의 시선에서 시작된다. 아버지와의 만났던 이태리 식당에서 벽에 걸린 그림 '보티첼리의 비너스'에 대한 애착과 인정에 대한 결핍이 한 인간을 고립시키고 외롭게 만든다.
아름다움을 만들어가는 소재로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결국은 필사적인 다이어트에도 불구하고 불가항력인 욕망으로 무너지는 순간이 온다. 완벽한 비율을 뽐내며 서 있는 비너스를 보며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나를 멸시한다고.

아름다움에는 여러가지 관점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축복받지 못한 출생으로 인한 결핍이 만들어 낸 슬픈 은유로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달라지기로 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모순된 삶의 질감을 표현한 것같아 마음에 들었다.
대학 때 읽고 꽤나 좋아했던 양귀자의 소설 제목이 스친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인간은 모순된 것을 알면서도 나의 길을 가고
허락되지 않는 아름다움을 탐하며
또 그것들을 좇아 욕망에 눈이 멀어
결국은 아름다운 것들이 멸시하는 순간을
만나게 되는 것일까...

상투적인 말로 도배가 되어버린 책도 읽게 되고 터무니없는 억지같은 이야기로 도무지 감을 잡을 수없는 책도 읽는다.
기타를 처음 잡아 연습할 때, 말랑말랑하던 손가락 끝에 물집이 잡히고 굳은 살이 박히는 것처럼 내 안에 가끔은 어떤 글로도 마음에 굳은 살이 박힌 듯이 감흥이 생기지 않는 책도 있다.

이 책은 단편들마다 색다른 주제인듯하면서도 삶의 잃어버린 좌표를 찾아가는 이야기로 귀결되는 것처럼 하나의 길로 이어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 기회를 빌어 은희경 작가님의 또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섬세하게 사람의 고독함, 이유와 존재에 대한 통증들까지 매일 달라지는 날씨처럼
은희경작가만의 색채로 담아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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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이 사랑했던, 카렌 블릭센을 만나다
김해선 지음 / 이담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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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에 보았던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원작 소설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알았다. 사실, 영화도 너무 오래되서 기억이 가물거린다. 기회가 되면 영화도 다시 보고 싶고, 소설까지 읽어보고 싶어졌다.

작가 김해선은 카렌 블릭센의 발자취를 따라 케냐와 덴마크로 찾아다녔다. 낯선 곳에서 혼자서 한 달, 두 달 살기를 하고 있다는 작가의 자유로운 삶에 짙은 향수가 배어나온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으나 원작 소설을 쓴 작가 '카렌 블릭센'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많다.
덴마크 룽스테드에서 태어난 카렌 블릭센은 아프리카에서 17년 동안 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책으로 썼다고 한다.

헤밍웨이가 20세기 최고의 이야기꾼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니 영화와 함께 궁금해지는 소설이 아닐 수 없다.
1985년 <아웃 오브 아프리카>가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이 책도 함께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케냐에 있는 카렌 뮤지엄을 찾는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아프리카의 넓은 초원이 배경이 된 카렌 블릭센의 이국적인 삶이 모습과 데니스 핀치 해튼과의 러브 스토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대부분 카렌 블릭센과 데니스가 경비행기를 타고 아프리카 창공을 날아가는 장면을 잊지 못한다.
경비행기가 나이뱌사 호수를 날아갈 때 호수 위를 덮고 있던 홍학떼들이 연분홍빛의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는 모습은 이 영화 외에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장면이다. "

하지만 책에는 카렌 블릭센의 실제의 열정적인 삶이 담겨있다고 한다. 카렌 블릭센의 삶을 따라가면 그녀의 삶이 그녀의 문학이고, 그녀의 문학이 바로 삶임을 볼 수 있다.
삶과 문학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존재한다. "우리는 때때로 아무리 열심히 해도 사람의 손으로 대처할 수 없는 일들을 마주한다.
카렌은 물심양면으로 원주민들을 돕고 자신의 농장이 잘 되기를 바라며 최선을 다하지만 아프리카의 가뭄 앞에서는 속수무책이 된다.
아프리카의 가뭄을 수없이 겪은 원주민들의 태도를 보면서 카렌 자신도 그들의 침묵을 배웠다고 한다. 원주민들의 침묵은 자연을 거수를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다시 회복되기를 소리 없이 기다리는 태도라고 했다." 가장 낭만적이며 사랑꾼의 모습으로 카렌과 함께 경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보는 이들 마음까지 설레게 하던 데니스, 어느 날 경비행기를타고 나간 후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카렌의 심정은 어땠을까?
다치고 불구가 되어도 좋으니 살아만 있어달라고 울부짖지 않았을까? "자신 안에서 끓어 오르는 에너지를 침묵으로만 소진할 수 없어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저녁에 글을 쓰다가 아침에도 식탁에서 글을 썼다.
카렌에게 글쓰기는 자신을 위한 보호막이었으며 알 수 없는 미래를 그려보는 일이기도 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날아오르는 모습만 어렴풋이 기억하는 영화.
작품은 낭만적이지만 그녀가 선택했던 아프리카의 삶은 빈곤하고 실패의 연속이었다. 남편과의 이혼, 커피농장의 어려움와 좌절, 서로 사랑했던 데니스의 갑작스런 사고와 죽음.. 농장이 힘들고 빚이 많다고 옹색하게 굴기보다는 베풀려는 모습에서 카렌의 선한 모습이 진실하게 다가온다.
작가 카렌의 일대기를 따라
그녀가 살아온 모습과 생전의 장소들을 살펴가며 케냐와 덴마크를 다닌 여정들이 사진과 함께 자세하게 담겨있다.

존경하는 작가의 삶 속으로 온전히 들어갔다가 나오는 잔잔한 서사가 한 사람의 인생을 비추고 있다.
사진 속의 푸른 잔디와 빈 나무, 그녀가 살던 집과 주방, 사용한 그릇들을 보면서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기리는 일이라는 것이 얼마나 엄숙하고 진지한 모습인지 알게 되었다.

힘들고 어려움이 있을 때 더 나은 상황으로 나아가고자 애쓰고 굴복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세상을 마주보며 정면으로 살아온 카렌.
나라는 존재가 단 하나의 가치로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나 스스로 지켜주어야 한다는 것을 자유로움 속에서 단단함을 보았다.
"세상의 눈치를 보는 것과 세상을 마주 보는 것의 차이는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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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 무루의 어른을 위한 그림책 읽기
무루(박서영)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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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비혼, 여성, 집사, 프리랜서, 채식지향주의자,
그림책 읽는 어른..
세계의 가장자리를 살아가는 마음가짐에 대하여"
책을 읽으면서 그 책이 마음에 들어 오래 간직하게 되는 이유는 각자마다 여러가지가 존재한다. 제목이 좋아서, 표지가 예쁘거나 독특해서, 출판사나 작가가 유명해서....
이 책은 쉽게 읽어지는 그림책에 작가의 일상과 생각들을 꿰어 만든 진주 목걸이 같은 단상들이 무척 귀중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책이 도착했을 때부터 출판사의 정성에 감동을 받아 다른 책을 제끼고 먼저 읽었다.
사실은 제목이 궁금해서 읽고 싶기도 했다.
한장씩넘겨 읽으면서 내가 살고 있는 수원, 그리고 행궁동이나 학교 이야기가 왕왕 나오기 시작하며 글은 풍경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싶어
나는 정해진 틀과 통제 안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기르거나 가르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모범생이었고, 그렇게 배운대로 시키는대로 착한 아이로 자라는 것이 바르고 올바른 삶이라고 배운 탓도 있지만, 타고난 나의 온순한 성향도 한몫 차지하고 있었으리라.
내가 나에 대해서 장점과 단점에 대해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부터이다.
때때로 나와는 달리 틀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생각하고 자기의 신념을 올곧게 마주하며 사는 사람이 부러웠는데 작가 무루/박서영이 그런 사람이었다.
단정하고 가지런한 글밥 속에는 자신만의 결이 있었고, 남들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주도하고 즐기며 자족하는 향기가 퍼지는 기분좋은 책이었다.
더불어 곳곳에 필사하고 싶어서 접은 페이지가 수두룩하게 많지만 다 적을 수 없어 아쉬운 책..


"다른 것을 배척하지 않고,
낯선 것을 포용하고,
보이지 않는 것들 속에
어떤 소중하고 아름다운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하는 마음이 좋다."

나는 이제 이렇게 살고 싶어졌다.
자유롭고 이상하게...^^
어쩌면 조금 오래 전부터 굳어져있던 나의 삶을 탈피해서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이전의 나에게는 반듯하게 살아야만 하는 기준이 있어서 좋은 엄마, 착한 딸 콤플렉스가 있는 것처럼 살기도 했다.
나이가 들고, 아이를 키우면서 조금씩 내려놓는 것들이 생겼다. 매일 쓸고 닦던 방안은 정리가 안되고 있어도 그냥 실컷 놀고 한번에 치우는 것이 마음 편해졌고, 둘이 살면서부터 설거지는 바로바로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몇 개 되지 않는 그릇을 두끼 정도 모아지면 마음먹고 음악과 함께 쌓인 설거지를 하기도 한다.
완벽하게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조금은 흐트러지고 있는 모습도 즐기며 살아간다.
이상하다는 말은, 지금까지 알고 있는 기준과는 조금 다르거나 별나다는 말로 인식된다.
정상이라는 기준도 사실은 누군가 정해 놓은 가치이므로 이상하다는 기준 역시 그저, 조금 색다를 뿐인거다.
비혼이라서 외롭거나 행복하지 않을거라는 기준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결혼이 행복하다는 사회적통념이 빚어낸 정상과 이상한 사람의 모호한 경계를 통쾌하게 부수고 이상하고 오해받는 삶을 원하는 사람이다.
"경험은 한번도 열어보지 못한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 때마다 세계가 한 칸씩 넓어진다. 새로 문이 열리면 세계의 모양도 크기도 달라진다.
열리기 전까지 알 수 없는 세계."
"아,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책을 단 한권만 읽은 사람'이라는 말이 맞다.
이제 막 하나를 알게 된 사람,
혹은 남들보다 하나를 더 안다고 빋는 사람의
확신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일가.
무지하다는 겸손을 상실한 인간의 오만이란 얼마나 폭력적인가."
"자라는 동안 내 인생에 쏟아졌던 어른들의 충고 가운데 지금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그때도 대개는 듣는 시늉만 하거나 그마저도 참지 않고 싫은 티를 잔뜩 내버렷다. 어른의 충고란 늘 위계 속에 있어서 권위적이고 무레했다.
어른이 되고서야 그 마음을 짐작한다. 살아보니 경험의 총량에 비례하는 지혜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나를 어딘가로 움직이게 하고,
다시 설 수 있도록 일으켜 주었던 말들은 언제나 나를 잡아끄는 말이 아니라 나를 안아주는 말이었다. "
아이를 단속하는 어른들의 말들은 대부분은 각종 불안에서 기인한다. 조금의 실패와 좌절은 모두 부모의 탓인양 자식의 인생의 모두 간섭하고 끼어들어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덜어보려 애쓰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단단한 울타리에 서로가 불안하고 마음이 위축된다. 모험이나 도전, 실패와 경험들을 충분히 천천히 끼어들 틈을 주지 않는다.
어쩌면 아이들의 꿈은 어른들이 가두거나 든든하게 만들어 놓은 울타리 너머에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고 싶다. 이모는 자주 엉뚱한 일들을 하고 낯선 것들을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여기면 좋겠다고 늘 생각한다. 가족, 집안, 어른에 대해 나는 조카들이 태어나고 나서야 비로소 진진하게 고민하게 되었는데, 아이들에게 어른으로서의 내 역할은 아마도 행복의 변수가 되는 일이 아닐지.
세상의 언저리에서도 재미나게 잘 살아가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것이 아이들과 가족으로 인연을 맺은 내 몫의 책임이라고 는 믿고 있다."
나는 세상에서 오해받는 일이 제일 억울하고 싫었다. 잘못 인식하는 사람들에게 일일히 찾아다니며 제대로 나를 이해시킬수도 없을 뿐 더러,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이해해 줄 수도 없다. 마찬가지로 나 역시 모든 사람을 이해하거나 모두를 좋아하지 못하면서, 나는 그들에게 좋은 사람, 괜찮은 사람으로 기억되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는 사람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내가 나로 온전히 살아가면서, 그런 일들에 무디어지고 있었다. 어쩌면 어떤 생각을 하든 자유니까, 나만 아니면 되니까..하는 배짱도 부리면서 살아간다.
그러지않으면 살얼음판처럼 힘든 세상을 혼자 부딪혀가며 살기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나와 다른 독특한 사람이 좋다. 남들이 가는 길이 아니 색다른 모험을 즐기는 사람, 같은 말을 할 때 다른 의견을 내놓은 사람, 어쩌면 사소하게 오해를 받는 사람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쉽게 이해받기보다는 오해받아도 좋다는 쪽을 선택하는 모험심이 가득한 세상을 나는 살아가기 위해 날마다 조금씩 도전하고 용기를 낸다.


"그림은 글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감정에 닿는다. ​
설명하는 대신 보여주기 때문이다. ​
색, 크기, 음영, 구도, 비율, 질감까지 모든 것이 한꺼번에 온다. 나에게 익숙한 것들이 더 강조되는 방식으로, 그래서 그림책은 종종 줄거리를 요약하기가 곤란하다. 요약하면 한없이 시시해진다. 나를 눈물쏟게 한 이야기들 조차 그 시시함을 피해갈 길이 없다. 다 아는 이야기, 어디서든 한버는 들어봤던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이 그림책이라는 제한된 형식 속에서 여전히 새롭게 만들어진다.
시를 닮은 그림의 언어로. "
그림책을 읽는 의미를 잘 나타낸 문단이 와닿는다. 때론 그림이 더 많은 이야기를 내포하고 전해준다. 아이들에게 하나하나 설명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상상하고 이야기를 지어낸다. 그림책을 읽는 어른이 전해주는 다양한 배움과 철학이 녹아있는 울림이 잔잔한 책이었다.
하나씩 빼어 먹는 알사탕같은 재미도 있고, 하나씩 꿰어내면 소중한 나만의 목걸이나 팔찌가 되는 반짝이는 비즈같다.
접어놓은 페이지가 너무 많고 인용하고 싶은 책과 추천하고 싶은 그림책이 다수 나오는....
나에게 소중한 책이 하나 늘었다.
"훌륭한 열매를 맺지 않아도.."
좁은 화분에서 싹이 나오는 경우도 있고, 제대로 자리지 못하는 식물을 바라보며 기대가 곧 체념으로 바뀌는 나를 본다.
가장 좋은 상태가 되려고 노력하고 애쓰는 것보다 지금 가장 행복하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때로는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다른 것을 다시 사랑하고 돌볼 수 있는 마음을 식물에서 배운다는 작가의 말을 이제는 나도 이해를 하고 공감하게 된다.
조금 다르게 사는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속닥거리며 내 마음에 정원을 하나 만들어 주었다.
내가 할머니가 될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조금씩 내가 원하는 모습의 할머니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가꾸며 살고 싶다.
"사는 것이 무엇을 향해 가는 일인지
조금씩 더 선명해졌으면 좋겠다.
다른 것, 낯선 것,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것, 오해받는 것
그러나 그 속에 선명한 아름다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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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너의 눈치를 살핀다 - 딸의 우울증을 관찰한 엄마의 일기장
김설 지음 / 이담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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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있으니 딸이 놀라서 내 눈치를 본다.
제목 때문인 모양이다^^;;
그래서 대충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엄마도 힘들고 처음이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아이와 함께 꾸는 꿈이라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어느 순간 너무 크게 불어버린 풍선처럼 터져 버렸다.

용기있는 엄마의 자아 성찰이 담긴 일기장이었다. 나는 힘든 시간에 나를 돌아보며 일기는 커녕 어떤 메모도 남기지 않았다.
어느 순간 흔적을 남기는 것이 쓸모없음으로 전락해버린 기억때문에 한동안 끄적이는 것을 등한시 하던 때가 있었다.

작가는 아이가 우울함을 호소할 때 자신을 뒤돌아보며 일기를 썼다. 마음으로 함께 힘들었던 시간과 예민하게 겪어냈던 시간은 사랑의 이름으로 덮어진 어리석음이라는 것을 매번 각인시킨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은 누가 처음 만들었을까. 이 말은 진리지만 위험한 말이다. 무심코 바라본 거울 속에서 허황된 욕심을 꿈꾸다가 숱한 좌절을 겪고 끝내는 심신이 허약해진 부모의 얼굴을 그대로 닮은 아이를 만나다면 그것만큼 큰 형벌이 어디 있을까. 자신과 자녀를 동일시하고 마음대로 조종하는 부모에게서 양육된 자녀는 마음 속에 지옥을 건설하며 살아간다.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형벌이라는 말에 가슴이 쿵하고 철렁했다.
작가님에게 그런 말은 가당치도 않다고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
부모로서, 엄마로서 최선을 다했으므로...
그리고 지금은 딸의 말을 조용히 들어주는 엄마이므로.

부모가 아이에게 가하는 보이지 않는 폭력들에 아이들이 병들어가는 모습을 나는 지켜보았다.
학원생활을 오래 하기도 했고 교회에서 청소년 상담도 했고, 일찍 아이를 키운 내 친구들이 헬리콥터맘으로 아이들을 지극정성으로 감옥살이 시키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간접경험이 되었다.

아이들은 울었고, 엄마가 원하는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가 힘이 들고 등을 돌리는 일들에 가슴치며 후회하는 일을 보았다.
내 딸에게는 이러지 말아야지 하는 가이드 라인이 형성되었다.

남들보다 10년 정도 늦게 키우는 딸이지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구분을 지어주는 것 외에는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고 대화를 하고 의견을 조율해 나간다.
사실, 작가님이 말하는 딸의 고통은 고스란히 나의 것이라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았다.
나도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우울증세를 심하게 앓았다. 하지만 나는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했다.
불평불만을 누군가에게 드러내고 소리를 내지를 곳이 없었다.

심장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혼자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부담과 책임감과 불안감, 밀려드는 걱정에 날밤을 새운 날이 허다했고, 100미터 달리기를 끝낸 사람처럼 심장은 시도때도 없이 심하게 두근두근 떨려서 내 심장을 부여잡고 울던 날이 많았다.

가끔 친구들에게 말을 하면 듣고 있는 친구가 기진맥진해질 정도였다고 나중에 들었다.
우울증은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면 된다.
들어주는 사람이 강건하게 들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고 무언가 바른 소리를 하면 더욱 힘들어진다.
바른 말은 때론 폭력이 된다는 것을 나도 직접 경험해 보았다.

우울증을 겪는 딸의 마음도,
나도 어떤 것이 옳은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모르는 게 아니다.
지금 잠시 힘들 뿐이고 쉬어가는 시간이고,
그저 들어줄 사람이 필요할 뿐이다.
아픈게 아니라 그냥 힘든 것 뿐이라고 이해해주는 사람은 적었다. ​
작가님과 딸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의 힘들었던 시절이 겹쳐졌다.
그래도 나,,혼자 바닥에서 잘 올라왔구나 토닥여본다.
들여다보면 아직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상처를 내 멋대로 숨기고 서둘러 봉합해 버린 억눌린 것들이 없지는 않겠지만 나를 돌보는 것이 사치였던 시간이었으므로,,,
작가님도 아픈 몸과 마음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채 아픈 딸을 지켜보는 일이 얼마나 힘드셨을지 이해가 되어 함께 아팠다.
그리고,, 이 에피소드를 읽으며 우리 딸아이와 나의 대화가 떠올랐다.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낭비하는 시간이라고 여겼다. 채워지지 않는 탐욕에 열중했고, 작은 기쁨에는 만족하지 않았다. 지혜는 점점 멀어져가고, 내리막길에도 굳이 달려가는 미련한 삶을 살았다. 내 고통의 원인은 욕심에서 비롯되었다.
'엄마' 나 키우기 싫어?"​
지금에서야 그 질문에 답을 한다.
"아니,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키우고 싶어. 네가 태어났던 그때부터 다시."

아이가 7살이 지나 학교를 보내야 할 시기에는 더욱 극심해졌다. 남들에게 기죽이고 싶지 않게 키우고 싶었기에 내가 정신을 차려야지 하면서도 힘들고 벅찼다.
아이를 간신히 등교시키고 나면 커튼을 치고 어두운 방에서 오전내내 잠을 잤다. 그리고 겨우 일어나 공부방을 하고 ,내가 수업을 하는 동안 아이는 학교 돌봄교실에서 6시까지 지냈다.

어느 날 함께 밥을 먹다가 어린 딸이 말했다.
"엄마, 밥은 함께 먹어야 오래 산대"
"그럼~~~ 즐겁게 함께 먹으면 그렇게 되지^^"
"나는 혼자 먹는데??"
"........."​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공부방 시간에 밀려 아이는 챙겨준답시고
방 안에 밥을 넣어 주었다.
내 딴에는 아이 식사를 거르지 않게 챙겨 준다는 명목이지만 아이는 혼자 먹는 밥이 싫었나보다.
엄마와 함께 먹고 싶다는 말을 그렇게 말하는,
고맙고 영민하고 지혜로운 딸이었다.
그 이후로는 조금 늦게 먹더라도 꼭 딸과 함께 밥을 먹었다.
아이를 통해 배우고 엄마도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기쁜 건 더 기쁘고 슬픈 건 더 슬퍼지는 일 같다"고 한 어느 작가의 말처럼, 기쁨도 힘껏 느끼고 슬픔도 온몸으로 받아 들인다. 불행의 그림자를 피해 도망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와 딸에게 닥친 고난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고 계속해서 말할 것이다.

정말 아이를 키우는 일은 작은 것에 더 많이 기뻐하고, 반대로 작은 슬픔에 더 크게 슬퍼한다. 어떤 작가의 말인지 모르지만 너무 공감되는 말이었다.

아이가 행여 아빠의 자리에 슬퍼할까 기죽을까 싶어 작은 일에도 미리 더 아프고 슬퍼했다.
딸의 감정을 내가 대신 다 겪으려 했다.​
어리석은 시간으로 나는 더 힘들고 병들었다.
나의 웃음 뒤에 슬픔이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독립된 개체로 바라보는 연습을 시작했던 것 같다.
작가님처럼 내게도 책과의 만남은 참으로 커다란 선물이고 축복이었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대단한 것을 바라지 않는다. 대단한 일을 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것은 언제나 부모들이다. 엄마에게는 존재만으로 아이를 행복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럴듯한 뭔가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생각에 늘 자식에게 미안함을 품고 산다. 부모로서 자신이 바라는 일을 자녀도 똑같이 원한다고 여기는 건 착각이다. 아이의 애정 결핍은 이렇듯 사소한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는 엄마의 모습이 애처롭다.
우리에게 이런일이 일어나다니...
세상이 아이에게 부여한 나이는 23살.
아이는 그 숫자를거부하고 3살로 살고 싶은 것 같다.
업어주고 싶어도 이젠 아이 몸집이 커져서 업기가 벅차다. 지금에 와서야 마음껏 업어주지 못한 시절을 후회하고 있다.
그때가 정말 좋았었구나.
딸의 내면에는 두 개의 다른 자아가 있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어리광이 많은 아기와
힘겹게 우울을 건너는 이십 대의 여자.

"이젠 병원에 안 오셔도 됩니다"

엄마인 작가님이 듣고 싶은 이 한마디가 가슴을 울린다. 꿈같은 이야기며 매일 소망하는 일일 터이다. 곧 그런 날을 맞게 되길 함께 기원하고 바라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는다.

"우리는 함께 아팠고, 아팠던 만큼 성장했다. 이제는 고통을 말하는 것도,희망을 이야기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아직은 꿈꿀 권리를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주어진 희망과 꿈꿀 권리를 찾아내는 것.
참으로 귀한 일이다.


**이담북스 서포터즈에서 제공받은 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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