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행방 새소설 3
안보윤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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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 모음 출판사에서 한국 문학의 참신하고 첨예한 작가들의 시선을 담는 소설들을 선별해서 <새소설>시리즈를 기획한 것 같다. 당당히 새소설 3번으로 자리매김한 책이 행운을 통해 내 손안에 들어왔다.

안보윤은 2005년 장편소설 「악어떼가 나왔다」로 제1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
장편소설 「오즈의 닥터'」로 제1회 자음과 모음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로 소개되어 있다. 이미 여러 소설을 발표하고 수상경력이 있는 작가의 작품이어서 그런지 참신하고 흥미로웠다.

우리 모두가 기억하게 될
슬픔에 대한 묵직한 기록

죽음을 볼 수 있는 안테나이자 안내자인 신비한 나뭇가지를 만나게 된 주혁. 그리고 나뭇가지 '반'이 마주 잡았던 무수한 손들의 서사가 담겨있다. 때론 흥미롭게 때로는 아프게, 고통스럽게 때로는 간절한 희망을 갈구함으로.... 인간이 만들어 내는 죽음들에 대한 질문을 쏟아낸다.

사람이 만들어 낸 수많은 죽음들을 보았지만 1999년 6월 수련회 열악한 컨테이너 숙소가 화재로 새까맣게 타버린 그 건물을 작가는 잊지 못했다. 모든 사람이 다른 방식으로 상처를 받고 다르게 기억하겠지만 이 사건 이후 소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누군가의 죽음이 신문에 실릴 때는 사건사고 기사에 불과한 일이지만, 그 일이 나와 관련된 가족의 일이라면...
숱한 밤을 지내며 죽음에 내몰리는 밤에 두려움을 물리치며 기적에 뒤척이는 시간들을 응시한다.

해원과 해림 자매의 이야기. 그리고 주혁과 영주 가족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언니 해원은 보통의 여느 사람들이 어른으로 성장하는 수순처럼 적당한 불의에 타협할 줄 모르는 해림이 늘 걱정이다.

무리 안에 포함되는 것.
모두와 같은 방향으로 헤엄치는 것.
어른이 되는 과정은 그처럼 간단했다.
그리고 그것은 해원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p.156

-그럼 네 주변 사람들은 올곧고 정직해?
너랑 같이 시위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은 다
어디갔어? 네게 비리를 고발하라고 부추기던
사람들은? 지지자들은?
지금 전부 어디 있는데?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어. 그들을 비난해서는
안 돼.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목소리 낼 기력이 있는 사람이 더 열심히 하면 되는 거야.
-그러니까 그게 왜 하필 너냐고!
(중략)
-왜 하필 나냐고 물었지.
어둠 속에 선 동생이 고요히 물었다.
- 그럼 누구라면 괜찮은 건데? 내가 아닌 누구면 괜찮다는 거야?
p.167-168

사회의 불합리한 일들에 낱낱이 1인 시위를 하고 내부 고발을 하며 살아낼 수는 없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 정의롭지 못한 부당함에 맞서서 목소리를 낼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바로 내 가족이면 문제가 달라진다. 안전하게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앞서고 ,계란으로 바위치기 식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사회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까.

남들보다 한마디가 더 많아 늘 세상에서 치이는 동생의 죽음 앞에서 더 이상 해원도 조용히 있을 수 없게 된다.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세상이 제자리로 돌아가게 될 거라고. 시민단체도 있고 인권위원회도 있고 소방서도 경찰도 감찰하는 기관도 있어서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게 직업인 사람들이 있으니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동생을 말리던 해원이는 자신이 동생을 죽인 것 같아 괴로워 하는 마음에 함께 서럽다.

해원이의 방문 이후 주혁은 제발 죽지 말라고 삶을 포기하지 말라고 마음으로 이야기를 한다. 그 대상은 바로 영주, 자기 아내였다. 그들은 아이가 죽은 이후 대화조차 없는 부부가 되었다. 서로에게 쏟아낼 것이 비난과 원망뿐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낮은 밤보다 지독한 형태로 주혁을 괴롭혔다.
세상 모든 곳에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 아이가 있었다. 주혁의 품 안을 제외한 모든 곳에.
아이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종일 상상했다.
갓 태어났을 때 복숭아 씨처럼 쪼글쪼글하던
아이 얼굴이 어떤 식으로 둥글어졌는지. 애벌레같던 아이 손가락이 어떤 식으로 움직여
이유식을 떠 먹었는지. 아이의 미래에 대해,
아이가 마땅히 누렸을 무탈하고 평범한 미래에
대해서도 상상했다. 아이가 선이 되고 면이 되고 이윽고 도형이 되는 모든 순간들에 대해서. 주혁이 상상할 수 없는 것은 아이의 현재뿐이었다.
p.188

사고로 아이를 잃은 슬픔은 같을텐데.
아니 어쩌면 가기 싫은 아이를 설득해서 재밌는 캠핑장에서 친구들과 지내고 오라고 종용했던 엄마는 한층 더 괴로울텐데....
주혁은 마음 속의 말을 기어코 뱉어냈다.

-영주야 너는 왜 바쁘냐
-영주야 너는 어떻게 밥도 잘 먹냐
-그렇게 뻔뻔하게. 잘도 살고 있냐...

목이 메였다.
그렇게 뱉어낼 수 밖에 없는 아이 잃은 아빠의 심정도 이해되지만 그 말을 들어야하는 엄마 영주의 가슴에 꽂아내린 비수같은 말이 너무..
너무도 내가 들은 듯 아팠다.

죽음으로 내몰린 어린 생명들에 대한 분노는, 부실공사를 눈감아 준 관공서의 관리자가 아닌 야박하게도 같은 피해자일지 모를 아내에게 꽂아버린 것이다. 여러 죽음들을 바라본 후에 주혁은 비로소 자신을 되돌아 볼 시간을 맞는다.

모든 죽음들을 애도하고 억울한 죽음에 함께하는 단단한 응시가 되고 싶은 마음이 전해졌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위로를, 희망이 필요한 사람에겐 희망을 전해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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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거울 - 당신의 언어가 당신을 비춥니다
최지은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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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말 거울을 찬찬히 바라보며
말하기를 변화시켜 보자.

말과 글에는 힘이 있다. 또한 자신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수단이 된다. 평상시에 매일 사용하는 말의 양에 비해 말에 대한 고민은 현저하게 적다. 내가 내뱉는 말 한마디, 얼굴에 드러나는 표정,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태도들이 나를 규정짓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알면서 특별한 노력이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내가 하는 말이 곧 나라는 사람의 생각이다. 그러기에 내가 하는 말을 거울 앞에 비춰보고 되짚어 다듬어 나가는 용기를 위해 작가는 여러 방법들을 제시한다.

나에게 부족한 부분을 파악하고 변화하려 노력하는 과정은 분명 힘들지만 나라는 존엄성을 버리지 않는 값진 행위이다. '변화'에 앞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가 가장 싫어하고 가장 두려워하는 그 부분을 다시 한번 조심스레 두드려 보는 일이다.
p.28

우리가 말을 하는 이유는 전달과 설득이다.
나 역시 말에 대한 고민을 했던 기억이 있다. 나의 경우, 어조나 표정은 부드러운 편이지만 말의 속도가 빠른 편이었다. 은근히 급한 성격도 한몫 했을 것이다. 나의 말이 빠르다보니 의사 전달이 잘 되지 않거나 상대가 흘려 듣는 경우가 있었다. 친한 사람들과 편한 자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발표를 하거나 대중 앞에 서야 할 때에는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말을 천천히, 또박또박 하려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말은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전달해야 하지만 상황과 대상에 따라 적절하게 조절해야하는 부분도 있다.

사실 우리는 멋지게 자신을 포장하는
사람에게 더 쉽게 끌리지만,
솔직하고 인간다움을 드러내는 사람에게
더 오래 끌린다.
p.88

말의 기본은 편안함과 자신감이다. 편안하고 긴장하지 않으며 말하는 것은 내가 가장 잘 아는 것을 말하기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는 자신감이 생긴다. 그렇다고 너무 많은 정보는 귀와 뇌를 피곤하게 한다. 하고 싶은 말이 많다고 주구장창 길게 늘어놓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말하기 전에 뚜렷한 주제를 중심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말하는 것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가 쉽게 설명하는 것은 전문 지식이 많다고 말의 질이 높아지는 아니다. 상대를 향한 친절함과 존중을 기반으로 자신의 생각을 담아 내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혼자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다는 서로의 말에 깊이 들어주고 표정으로 반응해 주는 것은 공감의 노력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구분한 설득의 세가지 수단
■에토스:인상, 목소리,태도, 자신감, 호감도
■파토스;인상, 연민, 감상, 경험
■로고스: 수치, 기사. 통계
에토스(60%)>파토스(30%)>로고스(10%)

생각이 정리된 문장들을 머릿 속에서 끄집어 내다보면 말도 조리있게 잘하게 된다. 겉멋에 찌든 알맹이 없는 말보다는 진솔한 말과 나의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나의 표정과 말을 주의깊게 들여다 보는 말거울에 비춰보자. 관찰은 자신을 고민하고, 변화를 위해 성장하는 모습이 나타날 것이다.

누구나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스피치를 강의하는 강사답게 다양한 콘텐츠로 설명하는 책이었다. 평상시에 말하기가 자신이 없는 사람, 말로 고민하는 사람이나 강의 혹은 면접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언어 연습 지침서로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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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말 거울을 찬찬히 바라보며
말하기를 변화시켜 보자.

말과 글에는 힘이 있다. 또한 자신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수단이 된다. 평상시에 매일 사용하는 말의 양에 비해 말에 대한 고민은 현저하게 적다. 내가 내뱉는 말 한마디, 얼굴에 드러나는 표정,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태도들이 나를 규정짓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알면서 특별한 노력이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내가 하는 말이 곧 나라는 사람의 생각이다. 그러기에 내가 하는 말을 거울 앞에 비춰보고 되짚어 다듬어 나가는 용기를 위해 작가는 여러 방법들을 제시한다.

나에게 부족한 부분을 파악하고 변화하려 노력하는 과정은 분명 힘들지만 나라는 존엄성을 버리지 않는 값진 행위이다. '변화'에 앞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가 가장 싫어하고 가장 두려워하는 그 부분을 다시 한번 조심스레 두드려 보는 일이다.
p.28

우리가 말을 하는 이유는 전달과 설득이다.
나 역시 말에 대한 고민을 했던 기억이 있다. 나의 경우, 어조나 표정은 부드러운 편이지만 말의 속도가 빠른 편이었다. 은근히 급한 성격도 한몫 했을 것이다. 나의 말이 빠르다보니 의사 전달이 잘 되지 않거나 상대가 흘려 듣는 경우가 있었다. 친한 사람들과 편한 자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발표를 하거나 대중 앞에 서야 할 때에는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말을 천천히, 또박또박 하려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말은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전달해야 하지만 상황과 대상에 따라 적절하게 조절해야하는 부분도 있다.

사실 우리는 멋지게 자신을 포장하는 
사람에게 더 쉽게 끌리지만,
솔직하고 인간다움을 드러내는 사람에게 
더 오래 끌린다.
p.88

말의 기본은 편안함과 자신감이다. 편안하고 긴장하지 않으며 말하는 것은 내가 가장 잘 아는 것을 말하기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는 자신감이 생긴다. 그렇다고 너무 많은 정보는 귀와 뇌를 피곤하게 한다. 하고 싶은 말이 많다고 주구장창 길게 늘어놓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말하기 전에 뚜렷한 주제를 중심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말하는 것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가 쉽게 설명하는 것은 전문 지식이 많다고 말의 질이 높아지는 아니다. 상대를 향한 친절함과 존중을 기반으로 자신의 생각을 담아 내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혼자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다는 서로의 말에 깊이 들어주고 표정으로 반응해 주는 것은 공감의 노력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구분한 설득의 세가지 수단
■에토스:인상, 목소리,태도, 자신감, 호감도
■파토스;인상, 연민, 감상, 경험
■로고스: 수치, 기사. 통계
에토스(60%)>파토스(30%)>로고스(10%) 

생각이 정리된 문장들을 머릿 속에서 끄집어 내다보면 말도 조리있게 잘하게 된다. 겉멋에 찌든 알맹이 없는 말보다는 진솔한 말과 나의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나의 표정과 말을 주의깊게 들여다 보는 말거울에 비춰보자. 관찰은 자신을 고민하고, 변화를 위해 성장하는 모습이 나타날 것이다.

누구나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스피치를 강의하는 강사답게 다양한 콘텐츠로 설명하는 책이었다. 평상시에 말하기가 자신이 없는 사람, 말로 고민하는 사람이나 강의 혹은 면접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언어 연습 지침서로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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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에서
스티븐 킹 지음,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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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이라는 작가를 잘 몰랐다는 것이 적잖은 충격이었다. 작가 소개를 보니 내가 마땅히 알아야 할 이름이었다. <미저리>와 <쇼생크 탈출>을 쓴 작가라니...!!
나는 사람 이름을 정말 잘 외우는 편인데 희한하게 외국 사람들 이름은 기억을 잘 못하는 편이다^^;;
그러고보니 어렴풋이 들어본 것 같기도하다. 어쨌든 너무도 유명한 작가의 책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표지도 이쁜데 속표지는 더 근사했다^^
사람에게도 첫인상이 있듯이 책을 처음 만나는 그 느낌도 독서할 때 적절한 동기를 부여한다. 궁금해지는 멋진 창공의 사진 디자인으로 소설을 만났다. 사실, 책으로 만난 적이 없는 스티븐 킹의 작품이라서 그런지 겉표지 띠지에 두른 설명이 와닿지 않는다. (아시는 분 계시면 부연추가 설명 좀 부탁드림☞☜)

"스티븐 킹의 작품에서 전에 없던 상냥함"

사전 정보없이 읽게 된 책이 궁금해서 작품에 대한 설명을 잠시 알아보니 ‘나는 전설이다’로 잘 알려진 SF 작가 리처드 매드슨의 ‘줄어드는 남자’(1956)를 오마주해서 나온 작품이라고 한다. 물론 이 소설도 읽지 못했으니 다른 설명은 미루어 놓는다. 소설은 점차 몸무게가 줄어드는 남자와 그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풀어냈다.

124킬로 나가는 거구의 남자는 점차 체중이 감소하는 것을 느낀다. 하루에 0.5킬로씩 매일 빠지는 설정이 특이했다. 처음엔 가벼워진 몸이 만족스럽겠지만 매일매일 줄어서 0이 되는 그 시간을 맞이하게 될 때 어찌할 것인가ㅜ

기이한 상황에 처한 어느 평범한 남자 스콧은 삶의 재치와 존엄을 지키며 사는 법을 배워 나간다. 스콧의 체중이 0에 가까이 근접할수록 점차 걱정이 된다. 몸이 가벼워지는 무중력 상태처럼 걷게 되는 사내의 일상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중량도 시간처럼 기본적으로는 한낱 인간이 만든 생각 아닌가? 시계의 바늘, 욕실 체중계의 숫자, 그것들도 가시적인 영향력이 있는 비가시적 힘을 측량하려는 노력의 수단에 불과하지 않나? 미천한 우리 인간들이 실재라고 여기는 것을 초월한 보다 높은 실재를 손안에 넣어보겠다고 애쓰는 미미한 노력 아닐까?
p.33

여기서 돋보이는 것이 하루하루 몸무게가 바닥나 사라질 날을 앞두고 있는 스콧의 삶의 방식이다. 그 와중에도 스콧은 인생을 만끽하기로 했고, 그게 자기 자신에 대한 도리라고 여겼다.

"과거는 역사이고 미래는 불가사의다"

그가 불가사의한 미래를 역사적인 과거로 만드는 방법은 가슴 뭉클하다. 디어드리가 출전하는 지역 마라톤 대회에 같이 나간 스콧은 자신의 줄어든 몸무게를 적극 활용해 디어드리를 우승자로 만든다. 그 덕에 회생 불가이던 이들 부부의 레스토랑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스콧은 자신의 소망대로 부부를 집에 초대해 식사 대접을 한다. 그리고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며 고도를 향해 움직인다...

뿌리깊은 차별과 혐오를 넘어 화해와 포용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통찰을 담아낸 작가의 마음에 따스해고 뭉클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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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인생 새움 세계문학
기 드 모파상 지음, 백선희 옮김 / 새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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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1883년에 처음 출간되고 톨스토이로부터 [래미제라블]이 후 프랑스 문학의 걸작이라는 극찬을 받았다고 한다.
너무도 친절하고 자세하게 인물, 사건 등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하고 있다. 너무나 뻔하지만 묘하게 중독성이 있어 다음 장면을 보게되어 끝까지 읽어 나간 드라마 같은 소설..

하지만 삶은 어쩌면 영화보다 더 영화같고,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기막힌 일들이 포진해 있음을 나는 안다.

잔느라는 시골 여성 귀족 여성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다른 현대 소설처럼 복잡한 장치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지루하기도 하다.

해는 이미 저물었다. 멀리서 종소리가 들렸다. 작은 마을에는 등불이 켜졌다. 하늘에도 총총한 별들이 빛난다. 불밝힌 집들이 드문드문 한 점 불처럼 어둠을 가르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다 갑자기, 언덕 너머, 전나무 가지 사이로, 커다랗고 붉은 달이 졸음에 겨운 듯 솟아올랐다.
p. 24 알퐁스도데의 <별>처럼 풍경묘사가 아름답다.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잔느는 수도원에서 나와 미래 계획에 들떠있다.
그러다 우연히 젊은 귀족 쥘리앵을 만나 순식간에 사랑에 빠져 바로 결혼하게 된다.

그는 여자들이 꿈꾸고 모든 남자들이 불쾌해 할 그런 행복한 얼굴의 소유자였다. 곱슬곱슬한 검은 머리가 가무잡잡하고 매끈한 이마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인공적으로 보일만큼 반듯한 눈썹 때문에 검은 눈매는 더 깊고 부드러워 보였고 흰 눈동자에는 살짝 푸른빛이 감도는 듯했다. 번민하는 듯한 그 눈의 매력은 생각의 깊이를 만들고, 사소한 말조차 중요하게 느껴지게 했다.
p.52-53

딸을 순수하게만 키우려고 했던 아버지 덕분에 잔느는 세상을 모르고 수도원에서 지냈다. 처음 다가온 멋진 남자의 외모에 반하고 첫인상에 빠져 사랑을 하게 된다 . 아름다운 사랑에 나까지 설레는 기분~ 사랑의 시작.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음에 탄식이 나왔다.
신혼여행 이후 그들에겐 사랑이 없었고 사랑하던 사내는 차츰 변해갔다. 그 이후의 생활은 잔느라는 여자가 감당하기 힘든 일들의 반복이었다.
과연 이 남자는 변한걸까?
본래의 마음을 숨기고 사랑을 가장한 접근이었을까?
잔느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시간이 있을까?

네가 살아가는 일을 얼마나 알지 모르겠다. 특히 딸애들에게는 조심스럽게 감추는 비밀들이 있단다. 딸애들은 우리가 딸의 행복을 책임질 남자의 품에 안겨 줄 때까지 정신이 순수하게, 한 점 오점이 없도록 순수하게 남아있어야 하기 때문이지. 인생의 감미로운 비밀에 씌워진 베일을 걷는 건 그 남자의 몫이란다....(중략)
하지만 이것만은 잊지 말거라.
너는 온전히 네 남편의 소유라는 점 말이다.
p.94

그렇게 아끼던 딸의 순수함을 자키려던 이유가 고작 남편될 사람에게 오점없이 주기 위함이라니.. 이 문구가 답답하고 숨이 턱 막혔다.
그녀는 정확히 무엇을 알았을까?
무얼 짐작했을까?
어떤 예감처럼 우울하고 고통을 느꼈을까?

이 말을 듣는 나조차 압박에 짓눌려 숨이 막혀버릴 듯했다. 남자가 여자의 행복을 책임져 준다는 말에 여자는 남편의 소유라니...
그때까지 순수하게 남아있어야 한다는 말도 잔느를 불행하게 몰았다.

잔느가 그에게 애정어린 징책을 하려고 들면 그는 아주 거칠게 응수했다.
"날 좀 가만히 내버려 두지 못하겠어?"
그녀도 스스로 놀랄 만한 태도로 체념하고 그 변화를 받아들였다. 그는 그녀에게 낯선 사람이 되었다. 영혼도 마음도 그녀에게 닫혀 버린 사람이었다.
p.137

만나서 사랑하고 애정하는 마음과 프로포즈로 결혼했던 그들이 갑자기 거의 모르는 사람처럼 되었을까?
그녀는 남편에게 버림받고 어떻게 괴로워하지 않을까?
이런게 인생일까?
그들이 사랑이라고 착각한 걸까?
그녀에게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까?

감각이 꺼져 버린 잔느는 더 이상 동요하지 않았고, 상처입은 그녀의 마음, 감상적인 영혼만이 따뜻하고 풍요로운 봄바람에 흔들리는 둣했다. 욕정 없이 들뜨고, 꿈에는 열정적이지만 육체적 욕구에는 죽어버린 그녀의 마음은 증오심 어린 혐오감에 가득 차서 그 추잡한 동물성에 질겁했다.
p.231

이렇게 굴곡있는 서사가 갑갑한 이유는 주인공 잔느의 삶에 대한 태도가 정말 수동적이기 때문이다. 삶을 바꾸려는 의지 없이 시골에서 정해진 대로만 살아가는 운명론적 인물이다. 정말 평면적인 인물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무슨 사건이 있든 성격이 전혀 바뀌지 않는다.

남편에게 애정을 쏟지 못하자 아들에게 애정을 쏟는 것도 필요 이상의 것. 도를 넘치는 어긋난 사랑으로 아들마저 떠난다. 자식이 잘 되길 바라고 하는 행동도 아니며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전형적 어머니상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행동이 아들을 망치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다. 마지막에 결국 자신이 내쫓은 하녀에게 신세를 지게 되는 귀족의 처참한 몰락을 보여주고 있다.

모든 존재가 고유의 냄새를 지녔듯이 그 방의 냄새, 그 방이 간직해 온 냄새, 낡은 거처의 모호하고 감미로운 냄새, 흐릿하지만 분명히 알아볼 수 있는 냄새가 잔느에게 스며들어 추억들로 감싸고 그녀의 기억을 취기에 빠뜨렸다. 그녀는 두 의자를 뚫어져라 응시하며 그 과거의 숨결을 들이마시고 숨을 헐떡였다.
p.374

이 책의 원문 제목은 <Une Vie>로, 사실 <여자의 일생>이라는 번역이 잘못됐으며 [어떤 인생]이라고 번역하는 게 더 옳은 표현이지만 옛날부터 이렇게 표현한 관례상 여자의 인생이라고 제목을 그대로 두었다고 했다. 물론 책 내용을 미루어 봤을 때 주인공 잔느의 <여자의 일생>이라는 제목이 좀 더 직관적이고 와닿긴 하지만 모파상이 의도한 것은 한 '여성'이 아닌 '사람'이었을 수 있다. 그러면 작품의 배경으로 아름답게 묘사된 자연에 비해 인간 생의 허무함을 그리고자 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는 작품해설을 읽으며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더 허우적거리게 되었다.

<테스>에서 사생아를 낳은 그녀가 어머니에게 왜 남자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냐고 원망하던 구절이 생각난다. 부모는 자식에게 행복이 보장된 길만을 안내해 주고 싶지만 그 미래는 아무도 점칠 수 없다.

여자의 인생이, 어떤 일생이 한 사람과의 관계로 인해 송두리째 흔들리는 일들이 우리 곁에서도 예기치 않게 들려올 때는 무심했다가 소설 속 이야기를 읽다보니 우리네 인생도 그다지 다를게 없다. 어쩌면 삶이란 생각보다 허무하게 무너질 수도 있고 허망하게 끝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행복에 눈을 뜰 때면 지난 고통이 사라져 버린다. 잔느는 힘겨운 인생 뒤에 떠나버린 아들의 딸을 안고 마지막으로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며 생에 무한한 감동을 다시 한번 느낀다.

보시다시피 인생은
우리들이 믿는 것처럼
결코 그리 좋지도
그리 나쁜지도 않답니다.

인생에 아무런 환상이 없다는 명명백백한 사실을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그 사이 어느 틈엔가 바늘구멍만한 희망이 있지 않을까. 그래도 나의 인생은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희망.

인생에 대한 동경과 환상은 순수했던 잔느처럼 꿈꾸고, 현실은 하녀 로잘리처럼 당차게 살고싶다. 현실의 삶은 순수한 사람이 살기에는 벅찬 곳이라 잔느처럼 사람애게 세상에 속아 초라한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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