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초판본, 양장)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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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를 처음 읽은 것은 출간 50년 후에 베스트셀러에 올라 역주행의 신화로 세상이 떠뜰썩하던 몇 해전이었다. 2016년 즈음 큰 기대로 읽었던 책은 나에게 커다란 의미가 없이 지루하게 읽혀졌고, 그저 그런 소설로 제목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소설로 <스토너>를 꺼내면 의아하면서도 언젠가는 꼭 다시 읽어야겠다는 결심으로 2018년에 책을 사두고 차일피일 미뤄졌다.

스토너를 처음 만날때 내 모습은 때론 절망적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희망적이기도 했다. 어둡고 깊은 터널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언젠가 빛을 볼 수 있으리라는 작은 희망으로 혼자 애쓰며 헤쳐나오던 시기였다. 내가 힘들고 지친다는 이유로 스토너의 슬프고 고독한 인생을 마음에서 밀어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독히도 나와 닮아 있는 연민에 지루하다고 멀찍히 두고 바라보는 책이었다.

이번에 <스토너>를 다시 읽게 된 계기를 만들어 준 알에이치코리아 출판사에 감사한다.
<스토너> 초판본은 절판되었던 1965년 표지를 그대로 복원한 의미있는 사전 서평단 이벤트에 내 이름이 올라 기뻤다.
의미있는 책을 소장하게 되는 일은 굉장히 가슴이 벅차오르는, 내가 누릴 수 있는 작은 행복이다.

4년 전과 후의 내가 작게나마 어떤 성장의 진동이 있었는지 궁금해서 마음잡고 정독을 해 나갔다.
농부의 아들 윌리엄 스토너가 대학에 입학하고 문학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교수가 되어 사랑하고 결혼하며 쇠락해가는 가는 아주 평범한 이야기임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큰 기대는 없었다.
남들에게 인생소설이라는 것을 내가 느끼지 못해도 상관은 없다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처음 읽었을 때의 그 지루함이 아니라 젼혀 새로운 소설로 다가왔다.
마지막에는 나도 모르게 가슴 속 진하게 올라오는 뭉클함으로 눈물을 닦아 내고 있었다.

특별한 어떤 장치나 반전이 통쾌하게 그려지고 독자의 속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대목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연민이 뿜어져 나오는 잔잔한 이야기에 한동안 머물러 있게 되었다.
책은 그대로인데 내가 느끼는 감정은 확연히 달랐다. 스토너의 변화와 성장처럼 나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신경질적이고 예민하게 그려지는 이디스의 부분은 아쉬웠던 부분이라서 내가 여성 스토너가 되고 이해하지 못하는 이디스를 남자로 바꿔서 이입해 읽어보기도 했다.)

"길고 주름진 얼굴이 예전에는 얇은 가죽처럼 강인해 보였지만, 지금은 아주 오래돼서 바짝 말라버린 종이처럼 약해 보였다. 스토너는 그를 보면서 생각했다. 죽음을 향해 가고 계시는구나. 1년, 2년, 아니 10년 뒤라도 선생님은 돌아가시는 거구나. 때 이른 상실감이 몰려와서 그는 시선을 돌렸다.
그해 여름에 그는 죽음을 자주 생각했다. 전에는 죽음을 문학적 사건 또는 불완전한 육체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조용하게 마모되어 가는 과정으로만 생각했다. 전장에서 터져 나오는 폭력이나 파열된 목에서 쏟아져 나오는 피를 생각한 적은 없었다. 이처럼 다른 종류의 죽음이 존재하는 까닭, 그리고 그 차이가 지니는 의미가 궁금했다."

자신을 문학적인 세계로 인도해준 스승의 죽음을 감지하며 상실감을 느끼고, 전장에서 죽음을 맞은 친구의 죽음을 기억하며 씁쓸해하는 스토너의 마음에 애틋해졌다. 누구나 죽음을 맞는다는 사실을 잊고 살다가 가까운 친구나 지인의 죽음을 바라보고나면 크게 와닿을 때가 있다. 상실감은 인정하기 싫은 죽음의 공포와 충격이기 때문이다.
가족이 없는 슬롯을 땅에 묻으며, 죽음을 슬퍼하는 가족도 울어줄 사랑하는 사람도 없었기에 망자의 고독에 울음으로 보낸 사람은 스토너였다. 친구였으며, 동지였으며, 스승이던 교수 슬론의 죽음으로 함께 보낸 젊은 시절도 땅 속에 묻고 애착관계가 떨어져 나가는 마음에 가엾기도 했다.
죽음이 주는 상실감을 견디고 나면 삶에 대한 애착이 생기기도 한다. 남은 삶을 더욱 가치있게 살고 싶어지므로.

"나이 마흔셋에 윌리엄 스토너는 다른 사람들이 훨씬 더 어린 나이에 이미 배운 것을 배웠다. 첫사랑이 곧 마지막 사랑은 아니며, 사랑은 종착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

나도 나이 마흔에 아이와 둘이 세상에 떨어져 나와 살면서 남들이 일찍 알고 배워버린 세상과 사람에 대한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스토너의 마음에 내가 얹어질 수 있다는 점이 자연스럽게 편안한 마음으로 스토너의 서툰 사랑에 묻어가게 되었다.

"젊다 못해 어렸을 때 스토너는 사랑이란 운 좋은 사람이나 찾아낼 수 있는 절대적인 상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 뒤에는 사랑이란 거짓 종교가 말하는 천국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재미있지만 믿을수 없다는 시선으로, 부드럽고 친숙한 경멸로, 그리고 당황스러운 향수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 이제 중년이 된 그는 사랑이란 은총도 환상도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사랑이란 무언가 되어가는 행위, 순간순간 하루하루 의지와 지성과 마음으로 창조되고 수정되는 상태였다."

"젊었을 때는 잘 생각해 보지도 않고 거리낌없이 그 열정을 주었다. 아처 슬론이 자신에게 보여준 지식의 세계에 열정을 주었다. 어리석고 맹목적이었던 연애시절과 신혼시절에는 이디스에게 그 열정을 주었다. 그리고 캐서린에게도 주었다. 그때까지 한번도 열정을 주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그는 방식이 조금 기묘하기는 했어도,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열정을 주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 가장 온전히 열정을 바친 것 같았다.
그것은 정신의 열정도 마음의 열정도 아니었다. 그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힘이었다. 그 두 가지가 사랑의 구체적인 알맹이인 것처럼, 상대가 여성이든 시(詩)든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봐! 나는 살아 있어."

모든 것을 다 바쳤던 것들을 하나씩 정리해 가는
스토너의 인생에 대한 관점과 모습이 비쳐진다.
사랑하는 딸 그레이스를 향한 마지막 인사에 눈물이 났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며 살고 있을까?
우정을 원했다. 친구를 가까이 두고 친밀한 우정으로 살고 싶어한다. 그리고 열정적인 사람을 원한다. 하지만 실제로 사랑을 하게되면 포기할 것도 있고 혼돈 속에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기도 한다. 또한 꿈을 꾸고 그것을 향해 달려간다.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루는 사람이 있을까?
삶을 다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마지막 시간에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치는 내 모습이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나의 삶을 관조하게 될 때 실패와 성공의 기준이 있을까?

한동안 김훈 작가에게 빠져서 <자전거여행>을 읽으며 마음에 담아두었던 구절이 있다.
"갈 때의 오르막이 올 때는 내리막이다. 모든 오르막과 모든 내리막은 땅 위의 길에서 정확하게 비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비기면서, 다 가고 나서 돌아보면 길은 더욱 평탄하다."

인생을 돌아보면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의 연속이지만 어느 순간 안정된 평지에 이른다. 결국 마지막에는 그것들이 땅위의 길에서 정확하게 비기고 더욱 평탄한 길이 나온다는 표헌은 힘든 여정에 들어선 나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스토너>를 읽고나서 희망과 절망의 쌍곡선이 결국은 죽음 앞에서 평지가 되는 것이라는 절묘함이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너무나도 평범한 일생이기에 오히려 더욱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옮긴이의 말처럼 세월의 뒤안길을 돌고 돌다가 어느 날 거울 앞에서 마주한 누이같은 소설이라는 말에 동감이다.

자신의 삶을 실패라고 할 것도 없다. 희망과 사랑에 배신당하고 실패하고 실망과 불신을 만들고 나의 의도와 다른 삶을 살게 될지라도 결국은 그 자체로 나의 삶이 된다는 것을 인정하며 스스로 관조하는 삶을 만들어간다.
결국 내가 그토록 갈망하던 치열한 삶은 어떤 가치가 있을까?
어떤 쓸모도 없음을 느끼며 자신의 그 어떤 것도 가질 수 없고 만질 수도 없이 고요히 힘이 빠지며 침묵하는 삶으로 종결되는 스토너의 마지막 순간처럼 그것이 우리의 인생일지 모른다. 빛처럼 환하게 비추다가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는 것...
찬란한 빛 주변에 어둠을 기억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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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 - 진화심리학이 퍼뜨리는 젠더 불평등
마리 루티 지음, 김명주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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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평소에 취약하다고 생각하는 두 부분이 교집합처럼 만났다. 일부 과학에 관련한 전문 지식과 젠더에 관한 부분이다. 과학 중에서도 생소한 진화심리학이라니...

걱정이 되는 마음으로 읽었다.

과학 중에서는 그나마 생물학 쪽이 조금 나은 편이고, 남의 생각을 꿰뚫어보는 듯한 심리학에도 별 관심이 없는 편이다. 남의 생각을 마음으로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굳이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상대를 다 아는 듯 말하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여중과 여고를 나와서 절대 여대는 가지 않겠다고 대학은 공학을 가긴했지만 기본적으로 여자는 조신하고 남자는 씩씩하다는 고정관념을 귀에 박히게 듣고 자란 세대이다. 남자답게 호탕한 웃음을 짓는 여자친구가 부러웠고, 섬세한 남자들에게 관심이 가는 것은 아마도 정해진 규칙을 벗어난 사람들에게 갖는 호기심이 아니었을까.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진화심리학이 퍼뜨리는

젠더 불평등

마리 루티 지음. 김명주 옮김



이 책은 오랜 세월동안 여성과 남성을 이분법적인 진화심리학에 근거한 여러 이론들에 대해서 반대하는 여성 지식인의 시선으로 쓰고 있다. 고정된 인간의 사고방식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 일반화된 문장들을 간과하지 않고 하나씩 짚어나가는 것이 어렵지만 여성으로서 당연하게 찾고 반문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다보니, 이러한 문제는 미국 남성이나 한국 남성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 반갑기도 하고, 아직 우리 사회에 저자처럼 민감한 부분을 소신있게 파고 드는 여성 지식인의 부재도 안타깝다. 인식의 전환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부분인데 나의 경우에는 딸을 키우면서 앙성평등, 혹은 젠더감성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춘기인지라 종종 나의 꼰대근성을 고쳐 먹곤 한다.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불쾌한 생각조차 박해받지 않고 말할 자유가 있다. 그러니 남성의 공격성과 여성의 조신함을 기본축으로 하는 성문화를 예찬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 단 이러한 예찬이 과학적으로 정당하다는 말은 제발 하지 말아 달라.


남성 과학자들이 논하는 세계가 혼란스럽고 터무니없음에 어떤 가설들을 제대로 바라보고 성차별적 언사와 괴롭힘을 당한 여성을 대변한다.

나의 경우에는 조직에서 사회생활을 한 경험이나, 성차별적인 언사로 모욕이나 굴욕을 당해본 기억이 많지 않다. 그리고 어쩌면 당연하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책을 읽고 시야가 넓어지면서 생각이 점차 깨우쳐지자 세상에 그 어떤 자연의 법칙까지도 당연한 것은 없었다.



공부하듯 읽었지만 아직 제대로 이해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는 근원적인 성차이는 남성과 여성을 이분법으로나눌 수 있다고 믿는 학자들에게서 비롯된다. 그러한 과학자들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작가의 논증들은 시의적절하게 남성과학자들의 문장을 파고들어 통쾌하다. 미국 사회에서도 과학자들의 논증에도 깔려있는 성차별이 이토록 가혹한 것인지 놀랍기도 했다.

일부다처제와 전통적인 엄격한 일부일처제 모두에서, 여성의 성에는 족쇄가 채워지는 반면 남성은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전통적인 일부일처제는 남성의 성에도 제약을 가하지만, 성적 이중 잣대를 통해 남성에게 바람피울 수 있는 약간의 재량권을 준다.

결혼제도의 모순에 대해서는 종종 독서모임의 주제로도 떠오른다. 남성의 자유로운 성적 관념에 비해 족쇄를 채우고 성차이에 대한 결정이 그 자체로서 이념적이이다. 나 역시 여자와 남자가 다름을 그대로 인정하며 왜?라는 질문을 해 보지 못했다. 여자라서 집안일을 하는 것이 당연했고, 남자니까 우선시 되는 것이 당연했던 것은 아무래도 할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아빠와 남동생을 우대한 습관이 배어졌기 때문인 것 같다. 큰 댁에서 아들을 낳고 나서 나를 낳은 엄마는 딸을 낳아 죄인처럼 살다가, 그 이듬해 남동생을 낳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셨다고 했다. 그 때에는 웃으며 지나는 에피소드에 불과 했지만, 그 또한 얼마나 억울한 성차별이었을까?

세대가 많이 바뀌었다. 지금은 남성와 여성을 나란히 툴애 가두지 않고 가치를 판단하는 것에 민감하다.

버스의 수사는 라이트의 수사처럼 노골적으로 보수적이지는 않지만, 결국 그도 같은 목적을 갖고 잇는 것처럼 보인다. 전통적인 성규범이 자연의 이치임을 우리에게 납득시키는 것이다. 두 진화심리학자 모두 성차별화를 극대화하는 사회 구조를 떠받들고, 성적 이형성이 두드러진 사회들이 가장 평등주의적이지 않으며, 여성에게 남성과 똑같은 경제, 교육,직업적 기회를 줄 가능성이 낮다는 사실은 편리하게 무시한다. 남성과 여성이 완벽하게 평등한 사회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성차별화가 최우선 과제가 아닌 사회들이 평등주의 사회에 근접한 사회이기 쉽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나는 어떤 편에서도 옹호하는 주장이 없다. 하지만 억울하게 차별적인 언사나 모욕을 퍼붓는 사람들이나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페미니즘에 올바른 이해는 사회를 제대로 보고 어떤 주제를 해석하느냐에 따라 자신을 대변할 수 있는 영역이다. 어설픈 이념의 해석은 더욱 논란의 여지와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 어떤 새로운 것을 직면할 때 제대로 된 개념의 숙지가 필요하다.

진화심리학이 드물게 페미니즘을 언급하는 경우에는 페미니즘이란 여성의 위상을 남성 위에 놓으려는 시도인 줄 아는 무지함을 드러낸다. 하지만 현대 페미니즘은 대체로 예로부터 두 성을 분리해온 장벽들을 허무는 일과 관련이 있다. 페미니즘은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우선 순위와 열정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목적이 있다.







며칠을 줄 그어가며 읽고 또 읽어도 어려운 과학 논문에 따른 성차별적 논증에 대한 반박의 글들이 어려웠다. 굉장한 혼란도 오고 공부하는 셈치고 읽고 쓰고 고치고 ...

그래도 아직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읽을 때에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응수하며 접어 놓은 책장을 다시 펼치면 또 생소해지는 부분들이 있어 다시 읽어봐야했다.

평소에 관심을 갖는 부분이 아니었던지라 나름 꽤 진보했다고 여겨진다고 해도 복잡한 여러 이론들을 한번에 이해하고 제대로 나의 주관을 세우기에는 무리였다.

하지만 이런 기회를 통해 남성과 여성을 판에 박힌 정형화되고 이분법적인 논리로 가르친다면 반박정도를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지식으로 무장하고 읽어야 할 책에 얼떨결에 편승해서 저자의 생각과 의도와 동떨어진 글을 쓰고 있는지 걱정스럽다. 방대한 지식인의 서사에 뛰어들어 작게나마 나의 틀을 깨고 더 넓은 생각에 동조해 볼 수 있어서 통쾌하기도 했다.

작가의 음성이 또렷하게 들리는 책이다.

이런 오만한 주장들을 만날 때면, 나는 사회과학과 인문학이 지나치게 실용적이고 결과 지향적으로 흘러가는 우리 사회의 마지막 보루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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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혜화동 한옥에서 세계 여행한다 -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의 안방에서 즐기는 세계 여행 스토리
김영연 지음 / 이담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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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 속 한옥 게스트 하우스에서 전 세계인을 만나는 일은 어떤 다양한 삶을 만나게 될 지 상상만으로도 근사해진다.
전 세계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문화와 생활 방식을 서로 배우고 가르치며 지내 온 10년간의 흔적이 차곡차곡 담긴 한옥.
<유진 하우스>라는 게스트 하우스는 이미 유명한 세계인의 성지라고 한다.
고풍스런 한옥 단지는 아니지만 도심 속에 커다란 한옥을 게스트 하우스로 만들면서 조금씩 각자가 삶의 여유를 찾는 여행이 시작되는 곳이다.

김영연 작가의 삶을 들여다 보는 프롤로그.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와 서강대 경제대학원을 졸업하고 법률사무소와 국회에서 일했다. 바쁘고 지친 삶에 변화를 주고 싶어서 일본에 가서 일본어를 배우고, 다시 중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러한 삶의 여정이 있었기에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면서 외국어를 두려움없이 언어소통이 가능했다.
결혼 이후에도 여전히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살다가
아이 유진이를 뒤늦게 갖게 되면서 정착하게 된 한옥에서 삶의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살아가기를 배우고 있다고 한다.

게스트 하우스에 머물다 가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을 가족처럼 친구처럼 만나면서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훨씬 값진 것들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자연스런 언어구사와 문화 소통들이 유진이의 삶을 윤택하게 해 줄 것 같았다.
꿈도 글로벌하게 열린 생각을 갖게 되는 색다른 세계를 열어준 것은 유진 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주인장이다.

오가는 게스트들이 한국에 대해 배우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조상들의 지혜를 배우고 기억하는 곳, 삶에 지친 이들이 쉼을 얻고 새로운 힘을 공급받는 힐링의 공간이 되기를 희망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인간간계가 힘들어진 삼들이 많아졌다.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싫어서 혼자 고독한 삶을 살다가 오는 사람도 더러 있다. 그렇지만 오랜 기간을 홀로 지내기는 어렵다. 단조로운 삶을 벗어나고 삶에 새로운 변화를 갖고 싶어온다.
유진 하우스에서 하루를 머무는 것은 숙박이 아니라 힐링이다. 어릴 적 혜화동에 살았던 분들, 해외로 이민을 갔던 분들이 고향이 그리워서 향수를 달래러 온다. 해외로 입양되었던 분들이 뿌리를 찾으러 온다.

"세계 여러 나라로 여행을 다닌 사람이 주변에 많다. 세계 여행 자랑에 나도 빠질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돈과 시간을 들여서 직접 여행하고 싶은 곳으로 간다. 하지만 나는 세계인들이 우리 집으로 직접 와 주니, 안방에서 여행하는 셈이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도 일상생활에서 자꾸 사용하다보니 어휘력도 점점 늘어간다. 현지에 가지 않고도 훌륭한 선생님들이 직접 와서 무료로 외국어를 가르쳐 준다."

세상에~!!!
정말 부러운 대목이다.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외국인이고 대부분 영어권 나라들이 많다보니 영어는 원어민에게 직접 배우는 것이다. 어학연수가 따로 필요없겠다.^^
물론 언어 뿐 아니라 음식과 생활등의 문화교류까지 다채로운 생활이 궁금하고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이런 한옥 게스트하우스를 할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사람은 모름지기 특별한 감각과 앞서가는 선견지명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다른 나라의 문화와 언어도 배우지만 우리 한국의 것들을 집안 곳곳에 배치하고 삶에 녹아들게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소개된 우리 문화 중에서 온돌이 인상적이다.
어릴 때 아궁이나 보일러를 돌리면 아랫목이 따뜻해서 그냥 잠이 솔솔 오던 그 온돌방.
추억이 서린 그 때가 떠오른다.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기억.
지하실 연탄 보일러를 쓰던 시절에 엄마는 하루에 서너 번 연탄을 갈러 내려가시고 겨울이면 연탄을 들여놓던 시절,
그리고 기름 보일러로 집 안에서 보일러를 가동할 수 있게 되고 엄마가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모른다.
연탄불을 갈 던 그 시절에 고생많았던 우리의 엄마들.
뜨끈한 온돌에 누워 간식거리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한옥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남과 인연들은 단단하게 묶여 지내게 될 것이다.

힘들다고 해도 뭐니뭐니해도 한옥은 우리 정서의 힘인 끈끈한 유대관계의 문화가 대표적인다. 대가족이 모여 살던 한옥 유진하우스에서는 마당으로 나가려면 툇마루를 거치고 신발을 신고 마당을 걷는다.
빠르고 변화하는 것을 원하는 시대에서 조금은 천천히 여유로운 한옥에서의 느긋한 생활은 그 자체로 힐링이 될 것이다.

유진이가 부러웠지만 딱 한가지 마음 아픈 문단이 있었다.
바로 이별을 연습하는 어린 아이의 서툰 감정들이다.
이제는 익숙해질 나이가 되었을테지만
세계 여행을 집에서 하는 만큼 이별은 또 다른 만남을 준비한다는 것을 일찍 터득했을 유진이의 마음을 감싸주고 싶다.

"유진이는 이렇게 수많은이별을 해왔다. 이별에 면역이 생겨 조금 익숙할 때가 되었건만, 이별 앞에서는 늘 처음처럼 서툴다. 만남의 기쁨과 헤어짐의 슬픔 사이를 오가면 짧고 긴 여행을 하고 산다."

특별한 여행을 누리는 유진하우스에 녹아든 이야기들로 읽는 동안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기분도 들고 온돌에 누운 것처럼 마음이 뜨끈해졌다.
서울 성곽길을 따라올라가 게스트 하우스에서 하룻밤이나 이틀밤을 종종 지내고 올 걸 그랬나 싶다.
아는만큼 보인다는데 정말 내가 아는 것은 너무나 작은 하늘뿐!!
그 하늘을 나의 딸이 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좀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담북스 서포터즈 활동으로 제공받은 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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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안단테 - 여행이라기보다는 유목에 가까운
윤정욱 지음 / 이담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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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부럽다는 말로 이 기분을 설명할 수 있을까?
여행 에세이를 읽다보면 마냥 부럽다.
이번 몽골 여행 에세이는 알려진 곳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 낸 일상이다.
사막이 펼쳐진 곳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모래가 펼쳐진 사막에서 우주 속의 화성인 듯 느끼고, 유목민처럼 게르에서의 생활들이 부러운 것이 아니라 그냥 멍하니 나태해져도 되는 그런 여행에 감정이입이 되었다.
물론 낭만적인 풍경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불편한 것들을 감수하고 문명의 편리함을 포기하고 감내해야 할 것들이 있을지라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
"캐리어를 꺼내 굳이 짐을 풀 필요도 없었다. 다음날 해가 뜨면 떠날 여행자에게 캐리어를 열어 이것저것 짐을 푸는 일은 미련한 짓이었다. 한곳에 오래 정착하지 않는 유목민의 삶도 어쩌면 이와 비슷할 지도 모른다.
짧든 길든 언젠가는 떠날 땅에 정을 주지 않는 것.
짐은 단출하게, 삶은 단순하게.
미니멀 라이프의 진정한 고수는 아마 유목민들이 아닐까. " "사람은 누구나 마음 속에 꼭 한번 보고 싶은 풍경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그건 특정한 도시나 장소일 수도 있고, 오로라 같은 자연 현상일 수도 있으며, 때로는 사람일 수도 있다. 화려하고 유명한 대상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별것 아닌 평범한 풍경일수도 있다.
나에겐 사막이 그랬다." 작가의 말처럼 사람이 누구나 마음에 품고 사는 풍경이 있다면 내가 꼭 한번 보고 싶은 풍경은 무엇일까?
도시에서 살던 나는 어릴 시절, 시골 원두막에서 수박을 쪼개먹는 전원일기의 풍경이 너무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그리고 밤이 되면 누워서 밤하늘을 보며 귀뚜라미 소리를 들어보는 것이 마음에 담은 풍경이다.

지금은 비행기 한번 타고 어디든 여행을 가고 싶다는 막연함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운 것이 여행이다. 자주 다녀보지 않은 사람이 느끼는 동경과 두려움이 동시에 있는 여행이라는 단어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같은 존재이다. "특정한 형태를 띠고 있지 않으며, 중력에 의해 아래로 흐르고, 사람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드는 것. 살아있다고 하기에도, 죽어있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존재지만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사람의 몸을 휘감아 오는 것.
언뜻 물에 대한 묘사 같지만, 이는 손바닥에서 바스러지며 흘러내리는 사막의 모래에 대한 얘기이기도 한다. 존재의 양극단에 놓인 것 같은 둘은 의외로 공통점이 많았다." 어린왕자를 읽고 난 이후 자주 사막 이야기나 어린왕자를 연상하게 하는 글을 자주 만나게 된다. 이런 것도 맥락이 통하는 때가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더욱 반갑고 몽환적으로 다가왔다.

어떤 음식을 먹느냐보다는 누구와 먹느냐가 더 중요한 것처럼, 여행도 어디를 가느냐보다는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중요하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의 완벽한 여행이 아니라면 혼자가 더 편할 수도 있다. 몽골 여행을 함께 떠난 6명의 완벽한 조합이 보기 좋아 읽는 내내 훌훌 가까운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어졌다.

살면서 오랜 시간 집을 떠나 여행다운 여행을 해본 적이 없는 나는 언제나 여행은 로망일 뿐이다. 나는 못해 본 일이기에 딸에게는 늘 여행을 자주 가라고 적극 권장하고 싶다. 젊은 날에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여행의 기쁨과 함께 삶을 풍요롭게 해 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몽골의 하늘과 게르에서의 밤이 유독 아름다웠다.
사람들이 즐겨가는 번화한 여행지는 아니지만 몽골이라는 곳에서의 한가로운 여행길에서 진정한 힐링을 하며 자연 그대로를 만나고 돌아온다.
자연이 주는 선물을 고스란히 받는 셈이다.

피아노를 배울 때 악보를 보면 빠르게 연주하라는 악상기호는 악보를 따라가기에 벅찼던 기억이 난다.
알레그로, 비바체, 프레스토 등은 빠르게 건반을 달려야 한다.
반면에 안단테니 아다지오가 나오면 마음이 느긋해지고 편안해진다.

우리의 삶도 빠르게라는 악상기호보다는
편안하고 느리게 연주할수 있는 템포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일상을 뭐든지 빨리빨리를 외치며 조급하게 사는 삶 속에서 가끔은 자연스럽게 정당한 게으름과 이유있는 나태함이 공존하는 여행같은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쌓인다.
단순히 여행지를 소개하는 책들과 달리 작가의 글에서 내뿜는 감성적인 표현의 결이 돋보이는 여행에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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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과 시작은
오리가미 교야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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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무라 도노는 오늘도 한 여자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림의 주인공은 9년 전, 보름달이 뜬 밤하늘 아래 딱 한번 스치듯 만난 아름다운 소녀다.
신비롭게 반짝이는 머리칼과 눈동자, 달빛을 닮은 목소리는 도노의 가슴에 새겨졌다. 도노는 그녀를 자신의 운명이라 생각하며 언젠가 재회할 날이 올 거라 믿고 그때를 기다린다.

여기까지 읽어보면 지고지순한 한 남자의 사랑이야기일 것 같다. 한여자를 잊지 못해서 그림을 그리고 운명적인 만남을 믿는 남자라니....

하지만 곧바로 끔찍한 살인사건을 마주하게 된다...
어느 날 도노의 대학 주변에서 목을 물어 뜯겨 처참히 살해된 시신이 발견되는 이상한 사건이 발생한다.
대학가에 불길한 기운이 술렁이는 가운데 도노는 자신이 속한 오컬트 동아리 부원들과 함께 조사차 사건 현장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뜻밖에도 평생을 기다려온 첫사랑을 다시 만난다. 살인사건 현정에서 재회한 그녀는 기이하게도 그동안 나이를 전혀 먹지 않은 것처럼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기쁨도 잠시, 도노의 머릿 속으로 9년전 소녀와 처음 만났던 순간이 스쳐 지나간다. 소녀를 공격하려 달려들던 남자와, 그의 빨갛게 빛난던 눈동자 그리고 뾰족한 송곳니를...
마침내 도노는 소녀와 함께 밤의 한가운데에서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세계의 끝과 시작을 맞이한다.

소용됼이치는 미스터리의 결말은 어떻게 이어질까?
궁금하면서도 평소 내가 즐겨 읽는 장르가 아니라서 처음 부분은 너무 지루하게 책장이 넘어갔다.

흡혈종이라는 설정이라면 흡혈귀라는 것일까?
판타지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꺼렸지만
일단 읽기 시작하니 황당하게 벌어지는 사건들이 안타깝고 과연 범인은 누구인지 궁금하고 기묘한 미스터리는 흥미로웠다.

흡혈종과 인간, 그리고 그들을 잡는 헌터들의 세계에서
누가 흡혈종인지 모르는 가운데 일어나는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는 과정.
그 와중에 친구를 잃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고, 그 사람이 흡혈종인 것을 알아간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을 구하기 위해 흡혈종의 공격을 받아 죽음에 이르게 되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반전을 거듭하는 내용들이 뒤로 갈수록 몰입이 되었다.
미스터리 소설이나 판타지 소설을 좋아한다면 읽어볼 만한 소설이다.
사실,,,이런 소설을 읽으면 밤이 오싹해지고 사람이 무섭고 동물들의 소리도 두려운 후유중이 생긴다.
소설은 소설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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