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무민 가족과 큰 홍수 - 무민 골짜기, 시작하는 이야기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토베 얀손 지음, 이유진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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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이라는 캐릭터를 처음 본 건아니지만 이름은 생소하다^^;;
무민 시리즈는 동화의 무대인 핀란드 난탈리에는 무민 테마파크가 세워 해마다 방문객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인기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39년 그림을 그린다는게 아무 쓸모없는 일로 느껴지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던 상황에서 캐릭터를 탄생시킨다.
동화 속 일반적인 주인공 공주와 왕자와 어린아이들 대신 '무민'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등장했다.

무민과 무민의 엄마는 따뜻한 집을 찾아 밖으로 나와 있었다. 무민과 엄마는 점점 기괴한 어둠으로 들어가게 되었지만 엄마는 무민을 달래며 말한다. 아이를 안심시키려는 노력은 엄마의 무서움도 용감하게 바꿔주는 모양이다.

아주 작은 동물일 거야. 기다려 보렴. 엄마가 저쪽으로 불빛을 비춰 볼게. 어둠 속에서는 모든 게 더 비관적으로 보이지, 너도 알잖니.

같은 장소라도 밝을 때 보이는 것과 어둠 속에서는 달리 보인다. 엄마의 말대로 어둠 속에서는 모든게 비관적으로 보이는 걸까.

조금 더 예민하고 주의깊게 바라보게 되긴 하지만 모든게 비관적으로 보이지는 않는 것 같다^^ 동화같은 내용이라 엄마가 아이를 달래고 안심시켜야 하므로... 잠시 어둠에 대해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무민과 함께 상상의 세계로 빠져 들었다.

무서운 왕뱀을 도망가게 만든 튤립 꽃 속의 광채나는 아가씨의 등장부분의 표현이 살짝 아쉬웠다.
어려운 상황에서 도움을 준 것에 대한 감사 인사는 당연한 일인데 그 이유를 굳이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부분이다.
튤립에서 나와 도와 준 아가씨가 아름답지 않다면 머리 숙여 인사를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가정이 성립된다.
동화 속의 모든 아가씨들은 아름다워야만 하는 걸까?

무민의 엄마가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
"아름다운 아가씨, 이렇게 우리를 도와주다니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무민은 그 어느 때보다도 허리를 깊이 숙이며 정중하게 인사했는데, 파란 머리 여자 아이는 무민이 지금까지 보았던 그 누구보다 아름답게 보였기 떄문이었다.

소년은 문을 활짝 열고 "들어오세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튤리파를 보았을 때 소년은 허리를 깊이 숙여 정중하게 인사했는데, 그렇게 아름다운 파란 머리를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튤리파도 소년만큼이나 깊이 무릎을 급히고 몸을 낮추며 인사했는데, 소년의 빨간 머리가 아주 매력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 후로는 작은 동물과 무민, 그리고 엄마과 튤리파가 함께 여행을 가게 된다. 도움을 받은 무민 가족은 노신사의 도움도 받고 홍수에 떠내려오는 고양이 가족도 구해준다. 서로가 도움을 주고 받는 과정이 순수하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홍수에 떠밀려 내려온 병 안에 든 편지는 오랜만에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한동안 예전 드라마나 영화에 자주 등장했던 코르크 마개로 막은 유리병 편지..
그 속에 무민아빠의 구조 요청 편지가 들어있어 안타까웠다.

대머리 황새 선생의 안경을 찾아준 호의의 대가로 황새의 등에 타고 아빠가 구조를 기다리는 나뭇가지를 찾아 나선다.
홍수라는 재난을 만나 서로 고생은 했지만 무민 가족을 통해 서로의 작은 도움이 이어져 희망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보였다.
삶이라는 여정을 볼 때에도 평온한 시간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평온해 보이지만 때때로 전쟁처럼 치열한 힘든 길이 나온다.

망설임없이 주어진 길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관계까지 보듬어가는 무민 가족은 도움을 주고 받으며 안전한 물가에 도착하게 된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표현이 맞는 지 모르지만 흩어진 가족의 불안과 걱정은 하나됨으로 안전하고 행복해진다.

엄마는 무민이 미끄러져 진흙탕에 빠질 뻔하거나 어두움에 무서워할 때도 마지막 순간에 무민을 붙잡아 안전하게 인도한다.
가족의 길잡이가 된다는 것과 책임감, 가족의 안전과 남에게 베풀 줄 아는 예의와 배려하는 마음 등 배울 점이 많았다.
작고 가벼운 책을 통해 무민이라는 캐릭터를 알게 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꽃 튤립 속 요정 튤리파도 만나 즐거웠다.

동심의 세계로 잠시 여행을 다녀온 느낌으로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마지막은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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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개의 초대장 - 죽음이 가르쳐 주는 온전한 삶의 의미
프랭크 오스타세스키 지음, 주민아 옮김 / 판미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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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개의 초대장>은 죽음에 대해 다루고 있는 책이다. 호스피스 경험과 오랜시간 죽음을 앞에 둔 사람들과 마음챙김 수양을 통한 깨달은 지혜들은 오히려 삶을 어떻게 살아야할 지를 알려준다.

언젠가 다가올 죽음에 대한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라 제대로 죽기 위해 '지금 바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누구에게나 다가서는 죽음이 있기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은 지금, 나를 더 지키고 더 잘 살기 위해 필요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삶의 유한함이 없다면 삶은 찬란한 빛을 내지 않을 것이다.
불확실한 죽음을 받아들이고 수용하면서
온전히 삶을 살아가라는 뜻을 전하는
다섯개의 초대장으로 진행된다. "사랑과 죽음은 우리에게 주어진
위대한 선물.
대개 그 선물은 개봉되지 않은 채
전달되곤 하지"
마리아 라이너 릴케

삶과 죽음은 일종의 패키지 상품처럼 그 둘을 분리할 수 없다. 머나 먼 길의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찰나와 같이 지나는 매 순간마다 우리의 동반자로 항상 곁에 머무르고 있다.

죽음이라는 알림이 없으면 우리는 주어진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끝없이 자기만족만을 추구하는 생활에 빠져버리고 만다.

그리스 철학자 헤라이 클레이토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똑같은 강에 두 번 뛰어들 수 없다.
그 강은 어제의 강이 아니고,
그 사람도 어제의 그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매 순간 모든 것이 새로 생성되고 사멸한다. 우리도 그 순간과 더불어 태어났다가 사라진다.

매년 봄마다 짧지만 아름답고 풍성한 벚꽃놀이를 즐긴다. 짧고 일시적이기에 누리는 아름다운 요소가 있다.
매일매일 벚꽃을 볼 수 있다면 봄을 기다리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덧없이 잠시 피었다가 지는 모습...
그 생명의 불확실성이 경이로움으로 우리를 이끈다.

바로 지금, 여기를 소중하게 여기게 되는 선물인 것이다.
삶의 일시성을 불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우아한 품위와 빛나는 시간이 우리 삶으로 들어온다.

슬픔이건 즐거움이건 화살처럼 지나가는 매순간의 결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우리 대부분은 진실보다 안락함을 택한다.
하지만 안전지대에서 성장과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과거에 대한 집착과 터무니 없는 바람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우리는 바로 이 순간 속에 존재하는 진실을 자유롭게 받아들일 수 있다"

용서란 자기 자신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나의 경우에도 나 자신과의 화해와 원망이 풀리지 않아 힘들었다. 누군가를 용서하고 원망을 풀어야 내가 살텐데 마음에 담아 놓고 홧병이 되어 내 몸과 맘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에 나의 과거와 화해를 하고 원망을 풀어내는 시간이 생겼다.
마음이 가볍고 홀가분해졌다. 분노와 원한, 왜 나만 힘들고 아픈건지 억울하다는 생각들이 남이 아닌 나를 향해 찌르고 있었다.
결국 남을 용서하는 것은 나를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다.

젊을 때는 결혼하고 출산한 친구들의 백일이나 돌잔치 초대장을 많이 받게 되었다면 지금 중년이 넘어가니, 사랑하는 사람들의 아픔과 죽음의 순간들을 만나게 되는 기회가 늘어났다.

피할 수 없는 시간을 정해 놓은 우리는 모두 지금을 산다.
죽는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삶을 의미없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유한하기에 더욱 가치있게 반짝거리는 오늘을 만들어가기 위한 초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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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 사회보험노무사 히나코
미즈키 히로미 지음, 민경욱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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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보람이란
사실은 단순할지도 모른다.
누군가를기쁘게 하고,
그 일로 감사를 받는 것."

연노랑의 표지에서 풍기는 '병아리'라는 제목을 달고 나오는 주인공이 너무 힘없고 약해보여서 사실은 첫인상이 그리 좋지 않았다.

읽다보니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반에 두루 포진되어 있는 문제들을 꼬집어 이야기하고 있어 흥미로웠다. 이런 사회악은 일본이든 한국이든 , 큰 기업이든 작은 기업이든 별 차이가 없는 듯해보여 안타깝다.

기업의 노동보험 및 사회보험 전반과 관련된 서류작성이나 제출을 대행하고 노무 관련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으로 주인공이 근무하는 사무소에서는 월급 계산 등도 대행한다.

졸업 후 정규직 취업에 실패해 파견사원으로 여러 회사를 전전하다가 각고의 노력 끝에 사회보험 노무사 시험에 합격한 아사쿠라 히나코.

"아주 잘하네, 병아리 씨. 당당한 노무사 같았어. 전혀 신입 같지 않더라"
니와 씨가 놀렸다. 니와 씨는 소장보다 조금 연하로 사십대 중반이다.
"병아리가 아니라 히나코예요."

주인공 히나코의 이름이 일본어로 '병아리'를 뜻하는 '히요코'와 발음이 비슷해 신입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별명이라고 한다.

처음에 거슬렸던 호칭의 궁금증은 풀렸지만 이름대신 이렇게 호칭하는 것은 작은 사무실이라고 해도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내 손으로 일을 선택하겠다는 결의가 무색하게 간신히 작은 노무사 사무소에 취직해서 파견근무 중이라 그런지 움츠러들고 잔뜩 긴장한 상태다.

"경리는 여러모로 쓸모가 있지 않습니까?
특히 여자가 하는 일로는.​
그런데 두세 달 만에 더는 못 하겠다는 소리를 하더라고요."

여자를 비하하는 듯한 성차별적인 대사도 많다. 직장 내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지난 세대의 여성들이 참고 살아온 관습에 의한 것은 아닐까.

지금 젊은 여성들은 자기 표현을 제대로 하고는 있지만 남자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직장 내에서, 게다가 직속 상사에게 듣는 말이라면 감수하고 넘어가게 될지 모른다.
이런 회사라면 두세 달만에 그만둘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불의를 볼 때마다 입바른 소리로 상사의 눈 밖에 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조건 참고 지낼 수도 없는 직장 내의 생활고충이 드러난다.

곧바로 업무에 투입되어 마주하게 된 클라이언트들이 의뢰해 온 것은 겉으로는 단순한 노사 간의 의견 차이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꺼풀 벗겨내면 직장 내 괴롭힘, 여성 직원의 출산 문제, 연장 근로 시간 조작 등 다른 실상이 보이는 문제들에 혼란스럽다.
열의에 가득 차 있다가도 좌절하고, 작은 실수에 주눅 들다가도 결국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회초년생 사회보험 노무사로서 차근차근 성장하며 업무를 해결해 나간다.

"더 제대로 보고 잘 듣자.
그리고 나도 좀 더 잘 표현하자.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건 당연하지 않나.
내일부터는 꼭. "

현실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던져진다고 해서 당장 일자리가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닥치는대로 주어지는 일을 하는 비정규직 혹은 파견 근무직은 잔업이나 허드렛일을 해야한다.

패기어린 열정이 오히려 지적을 당하고 괴롭힘을 당하는 문제점이라든지 직장내 노동시간의 조작이나 악덕 기업의 행태, 여성들의 임신과 출산에 따른 여러가지 문제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대우, 산재와 직장내 괴롭힘 등등,,,

사회 구조 안에서는 다양한 문제들을 마주하게 된다. 알아도 눈을 감고, 혹은 몰라서 당하는 일들을 보며 법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직원들도 도마라는 아이를 탄광의 카나리아처럼 다루고 있네."
"탄광의 카나리아?"
나는 무슨 소린지 몰라 니와 씨를 바라봤다.
"몰라? 옛날에 탄광에서 작업할 때 카나리아를 데리고 가서 경보기 대신 썼다잖아. 카나리아는 끊임없이 조그맣게 지저귀는데 메탄이나 일산화탄소가 늘어나면 숨을 쉴 수가 없어서 죽어버려. 물론 울지도 않지. 카나리아로 탄광 안이 위험한 상태인지 아닌지를 체크하는거야."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쓰는 제1호로 상황을 파악하는 거군요."

"개인적으로는 도마 씨의 힘이 되고 싶다.
하지만 그것은 내일이 아니었다.
내 일이 아니지만...
내 마음 역시 다양한 빛깔 속에 있었다."

개인이 어떤 일을 하더라도 우선시 되고 결정을 내리는 것은 회사의 입장에서이다. 어떤 사람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이익만을 위한 결정이기에 그 안에서 해고를 당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은 침묵하는 근로자와 노동자들의 몫이다.
그들을 위해 일하고 법률을 대행해주는 기관마저 공평한 일 처리가 되지 않는 것을 보며 죄책감과 회한이 자리 잡는다.

"여러 종류의 정식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골라 주문했더니 제시되어 있는 금액과 달랐다. 계산대에 물어보니 정규직과 파견직은 가격이 다르다고 했다. 복리후생비가 사원식당 운영비로 들어오기 때문에 파견직과 출입하는 업자는 외부이용자 가격을 받는다고. 정규직은 사원은 선불카드가 아니라 사원증을 내밀었다.
정말 치사하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한번쯤 나의 이상과 현실적인 노동의 문제들이 하나둘씩 강하게 부딪친다.
이 소설에서 거론되는 문제들 뿐 아니라 지금 우리 현실에서도 빈번히 일어나는 문제들이라 직접 경험은 하지 않아도 함께 분개하게 된다.

육아휴직 관련법안이나 근로기준법, 노동법, 실직수당 등등 기본적으로 알아야 누릴 수 있고 모르면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직장 내에게서 이런 것들을 경험한 사람들은 잘 알 것 같은 내용이다.

이러한 사회의 구조와 병폐들이 고착화되어 있을 뿐 어떠한 개선의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면 과연 우리 청년들이 제대로 사회 생활을 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꿈을 위해 입사한 회사에서 이런 대우를 받으며 좌절하고 꿈을 꺾게 되는 일이 없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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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그 작가 - 우리가 사랑했던
조성일 지음 / 지식여행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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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홀연히 삶을 멈춰 더욱 더 아쉬움레 그리운 작가들이 있다.
시인, 소설가, 에세이스트, 동화 작가 등 이 책에서 다룬 28명은 모두 작고한 작가들이지만 우리 문학사의 한 페이지에 또렷하게 기록돼 있는 분들이다.
그리운 그 작가들이란 제목으로 이 책에 실린 작가들의 이름과 작품명만 들어도 설렌다.

김춘수는 생전에 무의미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노력"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가 내면의 세계로 더욱 빠져들었던 것은 유일한 라이벌 시인이라고 표현한 김수영 때문이었다.
김춘수는 김수영의 <풀>과 같은 작품을 써보고 싶었지만 그에게 선수를 빼앗겨 자연스럽게
그 반대쪽으로 갔다는 것이다.

김춘수 시인과 김수영 시인이 라이벌이라고 생각했다는 점도 처음 알게 된 일이다. 누구에게나 따라 올 수 없는 시적인 매력이 있어서 라이벌이라는 것이 의미가 있을런지 모르지만 자기가 갖지 못한 시를 쓰는 사람을 바라보면 충분히 부러움을 가질 수 있다.
블로그를 다니다가 시나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부러운 내 마음처럼,,

"그를 키운 건 '8할'이 곰소만 갯벌에서 불어오는 '바람'이었다. 이 바람은 질마재를 넘어 대처로 가고, 대처는 그 질마재를 넘어 바다로 왔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지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이 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 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푸르른 날-서정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에는 노래하듯 자동으로 이 시가 떠오른다. 아마도 서정주 시인은 이 푸르른 봄날에도 저기 저기 하늘에서 아름다운 시를 읊고 있을지 모르겠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이므로^^

"박완서-삶이 소설이었다
1931년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난 박완서의 어린 시절은 그럭저럭 유복한 편이었다. 하지만 한국전쟁은 평화롭고 단란하기만 했던 가정을 가난, 죽음, 고통, 아픔이란 단어로만 설명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작가 박완서의 탄생은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역사에 가정법은 없지만 만약 전쟁이 없었다면, 가난하지 않았다면, 과연 소설가 박완서의 문학은 가능했을까..
박완서의 불행한 상처는 전쟁만이 아니었다. 남편이 폐암으로, 의대 레지던트였던 외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유명을 달리했다.
그것도 한 해 넉 달 차이에 일어난 일이라니.

박완서 작가가 살아낸 세상은 연륜으로도, 머리로도, 상식으로도 이해 못할 것이 너무 많아 보인다. 소설을 배워서 쓴 것이 아니라 인생 자체가 소설같은 삶을 살다 간 이름 박완서를 기억한다.

오빠를 잃은 슬픔을 담은 <엄마의 말뚝>
남편을 잃은 슬픔을 담은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
아들을 잃은 슬픔을 담은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등 모두 자전적 요소가 강하게 들어가 있다.
<나목> <그 여자네 집><아주 오래된 농담><노란집><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작가에 대한 그리움은 계속된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빈 집>의 시인 기형도는 첫 시집을 내지도 못한 채 준비하던 원고 뭉치를 안고 서울 파고다 극장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던 요절 시인이다.
<엄마걱정>이라는 시처럼 유년의 시절을 보낸 기형도의 삶과 죽음이 너무 안타깝다.

"그다지 쾌청한 날씨는 아니었다"로 시작해 " 그 온몸에 눈물이 차오른다"로 끝을 맺은 <혼불>은 200자 원고지 1만 2000장에 달하는, 17년 세월을 머금으며, 말 그대로 굽이굽이 흐르는 큰강처럼 흘러온 대장정의 산물이었다.

작가 최명희에게 있어 <혼불>은 그의 전부였다. 어렸을 때 어른들에게서 들었던 '혼불'이야기에 매료됐던 그는 이걸 작품으로 쓰기로 맘먹고는 자신의 모든 걸 다 바쳤다.

홍명희의 <임꺽정>에서 시작되어
박경리의 <토지>
황석영의 <장길산>,
조정래의 <태백산맥>으로 이어지며
우리 문학사를 풍성하게 가꿔주는
대하소설의 마지막 계보를 장식한 <혼불>을 쓴 작가 최명희를 기억하자.

병을 알고나서도 주변에 알리지 않고 원고를 다 마친 후 2년의 투병생활 끝에 고인이 되었다고 한다. 작품에 대한 정성과 열정이 존경스럽다.

그리운 그 작가들의 삶과 흔적이 담긴 역사를 몇 장의 글로 알수는 없지만 마음에서 존경스러움과 안타까움이 많은 작가들이었다. 요절한 아쉬움, 병마와 싸우다 조금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권정생님과 정채봉 동화 작가님도 좀 더 오래 좋은 글을 만나지 못해 안타깝다.

작가들의 태어남부터 작품세계, 다양한 연결성 등 작가의 간단한 연혁을 알 수 있는 책이다.

우리는 모두가 꽃이 되고 싶고
이름이 불려지고 싶고
마음에 새겨지는 의미가 되고 싶다.
작품에서 빛나고 이름으로 기억나는 얼굴들을 보게 되어 인상적이었다.

그리운 작가와 좋아하는 작가의 이야기는 더욱 깊이 읽었다. 아름다운 문학으로 그들을 영원히 만날 수 있으니 가슴이 새겨지는 이름들이다.
정말 한 문장, 시 한구절만 읽어도 알 듯한 이름들이 모두 그리워진다.

책 제목이 딱이다.
우리가 사랑했던 그리운 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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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식과 이완의 해
오테사 모시페그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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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과 이안을 줄 것 같은 제목을 보고 잔잔한 에세이집이려나 어렴풋이 생각했던 이 책은 '잠을 통한 변신'이라는 아늑한 환상을 쓴 장편 소설이었다.

요즘처럼 경쟁이 치열하고 시끄러운 소음과 복잡한 일들이 얽힌 세상을 살면서 평온하게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며 살아가기는 쉽지 않다. 자신 만의 노력과 방법으로 힘든 과정을 겪다보니 안으로 멍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우울함과 열등감, 무기력, 애정 결핍 등에 맞는 약들을 복용하고 깊이 잠들었다가 다시 깨어나 정신적으로 치유될 수 있다면?

책과 함께 이어 플러그가 사은품으로 도착했다. 너무 귀엽고 앙증맞아 보였지만 집에서 이걸 쓰게 될까?하고 한쪽에 밀어 두었다. 머잖아 나의 휴식을 방해하는 딸의 친구들이 놀 장소가 없어서 우리 집으로 몰려왔다.

음,,, 도무지 글자가 안들어와서 요녀석을 꺼내 귀에 꽂으니 아주 고요한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런 것도 쓸모가 있으니 상품으로 나오는 거겠지^^

오테사 모시테그는 <아일린>이라는 소설로 미국의 최고 젊은 작가 상과 헤밍웨이상을 수상한 작가였다. 2016년 맨부커상 최종후보작까지 오른 작품이라고 한다. 기대를 갖고 읽었는데 처음에는 너무 신랄하고 솔직한 성적인 묘사에 당혹스러웠다.

주인공은 외적인 조건만 보면 아름답고 똑똑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그 내면은 사랑받지 못한 유년기에서 비롯된 삭막한 감정과 무기력함,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으로 삶을 살아간다.

각자의 문제에 사로잡혀 자식을 사랑해주지 못하는 부모는 결국 암과 알콜의존으로 세상을 떠나고, 헤어지고도 집착의 대상이 된 애인에게 병적인 감정을 쏟아낸다. 그녀 주위에는 진정한 공감과 마음을 나눌 사람이 하나도 없다.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약을 먹고 자신의 의식과 정신을 비워내길 바라는 주인공이 바라보는 세상을 쓴 소설이다.

약물을 통해 동면하는 것처럼 잠을 자는 것이 약물남용처럼 보이고, 자신의 삶을 낭비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작가는 이 장치를 통해 새사람으로 거듭나길 바라며 애타는 심정을 담았다.

"엄마와 예전처럼 대화할 수 없어. 정말 슬퍼. 버림받은 느낌이야. 정말, 정말 외로워."
"우린 모두 외로워, 리바."
나는 말했다. 그건 진실이었다. 그녀도, 나도 외로웠다. 이것이 내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위로였다.
"그저 너무 절망적인 기분이 들어. 날 안아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어. 그거 한심한 거니?"
"애정을 갈구하는 거지." 나는 말했다.
"괴롭겠구나."

깨어 있는 동안은 주로 영화를 보는 주인공과 절친 리바의 대화에서 누구나 자신의 마음을 위로하는 법은 모르지만, 상대의 마음에는 귀기울여 최선을 다해 위로하는 것을 본다. 어쩌면 혼자가 되어 힘든건 나이고, 애정을 갈구하며 약을 먹으며 버티는 건 나인데...
나도 위로받고 사랑받고 공감받고 인정받고 싶은데...

"일 년간 잠을 자기로 결심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신경안정제를 처방받고
그렇게 시간의 흐름을 잊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약이 자신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걱정했을 것이다. 내가 잠재적 위험에 대해 전혀 몰랐던 건 아니다. 아버지는 암에 산 채로 잡아먹혔다. 어머니가 뇌사 상태로 병원에서 온갖 관을 꽂고 있는 모습도 나는 보았다.
삶은 연약하고 찰나이며 사람은 물론 조심하며 살아야 하지만, 나는 온종일 자는 생활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죽음을 감수할 참이었다. "

죽음을 감수하면서 위험한 시도를 하는 주인공은 염세적이다. 또한 끊어내지 못하고 집착하는 사랑에 대한 냉소적인 문장이 자주 나온다.

'사랑'측면에서는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았다. 리바는 자주 '정착'에 대해 얘기했다. 내게는 그게 죽음처럼 들렸다.
"누군가의 입주창녀가 되느니 차라리 혼자 살겠어." 나는 리바에게 말했다. 그런데도 전 남자친구 트레버에 대한 로맨틱한 충동은 이따금 고개를 들었다.

결혼하고 안착하려는 생각을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사랑없는 관계가 너무 무모하고 회의적으로 다가왔다.
사랑받지 못했거나 상처가 너무 크거나,,

"해야 할 일도 없었고 대응하거나 보상할 일도 없었다. 존재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그 무엇도. 그런데 나는 그 무를 인식했다.
잠 속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깨어 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행복하다고까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잠에서 빠져나오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내 인생 전부가 가능한 최악의 방식으로 눈앞에서 번쩍거렸고, 보잘것 없는 모든 기억, 그때 그곳에 나를 있게 한 모든 사소한 일들이 내 정신을 가득채웠다.
나는 언제나 여전히 나였다."

닥터 터틀을 만나기 시작하고 평일밤에 열네다섯 시간씩 자고 주말에는 하루에 겨우 몇시간만 깨어있었다. 약물중독으로 인한 어둠, 현실과 꿈 사이의 흐릿한 상태, 음울하고 멍한 뇌안개 상태로 산다는 것,,,

잠을 자지 않으면 불안해서 약을 먹고 또 먹게 되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린다면, 반대로 깨어 지내는 시간이 얼마나 두렵고 골치아플까도 생각해본다.

우울증 환자들이 잠을 자는 이유를 알 것같다. 잠으로 도망가는 일종의 회피이다.
이전의 나도 아이 학교 보내놓고 안그래도 어두운 1층 집에 커튼을 치고 오전내내 잠만 잤다. 우리집에 오는 손님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거실의 커튼부터 걷어냈다.
어둠에 길든 사람은 어둠이 익숙해서 잘 모른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외롭거나 지루하거나 그리움을 느낄 때면 그 사진들을 훑어보며 그곳이 얼마나 시시한 곳인지-갈라진 계단, 물이 새는 지하실, 페인트가 벗어진 천장, 부서진 찬장-확인하며 역겨움을 느끼려 했다. 그러면 나 자신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부모님이 그리워서가 아니라 그들이 살아 있더라도 내게 줄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서였다. 그들은 친구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내게 위안이나 좋은 충고를 해주지 않았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상대가 아니었다. 나를 거의 알지도 못했다.
아버지는 죽느라 바빴고 어머니는 자기답게 사느라 바빴는데, 마지막에 가서는 그게 암에 걸리는 것보다 더 나빠 보였다."

암에 걸린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늘 술에 취한 어머니는 어떤 책임도 져주지 않았다. 유년기에 방치된 삶이 내내 그늘진 삶으로 인도했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언제나 영화속 환상처럼 현실에서는 마음을 두지 못하고 슬픔이 공기 중에 종일 떠다니는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르는 속도는 다양해서 잠의 깊이에 따라 빠르기도 느리기도 했다. 나는 수도꼭지에서 받아 먹는 물맛에 아주 예민해졌다. 물이 때로는 뿌옜고 부드러운 광물질의 맛이 났다. 거품이 많고 역한 입냄새 같은 맛이 날 때도 있었다. 소파에 푹 쓰러진 채 나무바닥 위의 먼지가 외풍에 회오리처럼 밀려가는 모습을 숨죽이고 빤히 바라보는 나 자신을 문득 의식하고 살아있음을 잠시 기억한 뒤 바로 잠에 빠져 들었다."

"난 슬픔에 압도당한 것 같아. 너무 힘들었거든. 하지만 어쩐지 아름답기도 해. 이렇게 슬프고 평온하게. 엄마가 돌아가시지 전에 뭐라고 했는지 아니?
'모두에게 인기있는 사람이 되려고 너무 안달하지 마. 그냥 재미있게 살아' 그 말이 정말 와닿더라. '모두에게 인기 있는 사람.' 사실이거든. 난 정말로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거든. 너도 내가 그렇다고 생각하니? 난 이만하면 괜찮다고 느낀 적이 없는 것 같아. 지금 인생을, 그러니까, 나 혼자서 직면하게 된 일이 아마 내겐 이로울거야."
<친구 리바는 엄마와의 추억이라도 있었다>

"하늘은 희부옇고 내 귀를 때리는 바람의 거센 일렁임에 도시의 소음은 지워졌다. 그리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하지만 두렵기는 했다. 미친 짓이었다. 잠을 통해 새 인생으로 들어간다는 이 아이디어는. 터무니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 여행의 깊은 영역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계속 숲 속을 헤매고 있었던 거야,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동굴의 입구에 다가가고 있다. 내면 깊은 곳에서 타오르는 불의 역한 냄새가 난다, 동굴에서 다시 빛으로 나오면. 마침내 잠에서 깨어나면,
모든 것 모든 세상이 다시 새로워지겠지."

엄마가 잠이 오지 않을 때 알려준 방법으로는
양을 세지말고 중요한 것을 세라는 것이었다.
잠이 오지 않을 대는 먹을 것 이름이나
대통령의 이름 꽃이름 등을 세었다.
이 부분이 그나마 따스한 부분이었다.

약물 중독에 빠진 고아가 된 주인공은 누구든 호감을 갖는 사람은 아니다. 사랑스럽고 자기 일을 잘하는, 누구가 좋아하는 캐릭터로서가 아닌 비호감형인 인물을 내세워 어두운 일면을 알고나면 응원하며 함께 잠을 자고 일어나는 기분이 든다.

반쯤 몽롱한 상태가 지속되는 글들 속에서 염세적이지만 세상의 고요함을 위해 나의 휴식과 이완을 위해 잠을 자는 해로 만든다는 발상이 특이했다.

어쩌면 살아있다는 게 가장 힘든 일일 수도 있는 지금, 그렇다고 약물에 의지하는 방법은 위험할 수도 있지만 죽음을 불사하고 시도한 주인공은 그만큼 다급했을 것인지도 모른다.

글들은 섬세하고 진솔해서 인용하고 필사하고 싶은 부분도 많았다. 처음엔 읽히지 않고 어색한 표현이었지만 드러내놓고 아파할 수 없는 젊은 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프게 느껴졌다.

결국 알약을 먹고 사흘간 잠을 자고 , 일어나서 피자 한조각과 물에 약을 먹고 또 사흘간의 잠을 자는 반복이 몇달간 지속된다.

그런 휴식기를 갖고 나서 세상은 달라졌을까?
나는 원하는 새로움을 장착하고 눈을 떴을까?
여전히 그대로인 나와 여전히 그대로인 세상을 보게 되었을 때 상실감을 극복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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