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개정증보 2판) - 복잡한 세상 명쾌한 과학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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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과학을 음악의 향연처럼 다양하게 엮어 구미를 당기는 과학책이다. 복잡한 세상 속의 다양한 이론들을 명쾌하고 재미있게 적어서 그런지 과학책의 대표적인 베스트셀러로서 개정증보판을 새로 찍었다.

먼저, 정재승이라는 물리학자부터 소개해보자면 아이러니하게도 과학책으로 먼저 알게된 것이 아니라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얼굴과 이름을 익혔다. 물리학 전공인데 뇌과학분야까지 분야를 넓힌 차세대 글로벌 리더로 선정되었다. 뇌를 연구하는 물리학자이자 뇌공학자라는 설명이 바로 정재승이라는 작가였다.
티비를 즐겨보는 편이 아니지만 책에 관련한 독서 프로그램을 자주 챙겨 보았다. <비밀독서단>도 기억에 남고 <요즘책방 책 읽어 드립니다> 도 처음에는 자주 챙겨보았는데 자꾸 시간을 놓친다.

20여년 전 <느낌표>라는 프로그램 안에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라는 도서지원 프로젝트가 한창 인기였다.
이 책이 그 프로그램 2003년의 선정도서가 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오랜시간 사랑을 받았던 책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나 개정증보판을 내면서 10년에 한번 콘서트 형식의 뒤에 더욱 새로워진 내용을 담아 두 번의 커튼콜이 추가되었다.

과학에 관심이 없고 왜 이리 어려운가 했는데 과학강의를 듣는 중에 그 해답을 알았다.
과학이란 정해진 정답을 알려주는 진리가 아니라 의문을 품고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한다.
나는 의심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다. 무조건적인 믿음과 신뢰와 지식을 수용하는 사람이었기에 어떤 사건이나 현상에 대한 호기심도 의심도 없었다. 알려주면 알려주는 대로, 보이는대로 그렇게 받아들이는 나에게 과학은 그다지 호기심이 생기는 학문이 아니었다. 앞으로 나의 작은 변화와 더불어 조금씩 세상의 당연한 것들에 의심을 품고 날선 비판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사회현상을 과학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익숙한 사람들이 있다. 과학자들의 시선은 그것에서 그치지 않고 인문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이 조화롭게 협력해 나가고 복잡한 사회현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소박한 바람을 담은 책이다.

사회학에 과학, 의학, 경제학, 미학과 심리학까지...
대부분 내가 어렵고 힘들어하는 분야였지만 접근 방식이 색다른지라 하나씩 빠져들어 읽었다.
사실 나는 일상의 규칙적인 패턴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다. 과학자들은 하나의 현상을 일정한 패턴이나 공식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같다.
이런 사람들로 세상의 편리함도 생기지만 우리같은 사람들은 공부할 것이 많아진다..ㅋㅋ

온 세상은 작은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여섯 다리만 건너면 세상 모두가 아는 사이가 된다고?

왜 하필 토스트는 버터를 바른 쪽으로 떨어지는지 머피의 수많은 법칙에 대해 일일이 실험을 하는 장면 또한 특이하게 여겨졌다. 이런 것 조차 그냥 넘기지 않고 나름의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통해 증명하는 과정을 거친다. 나로서는 절대 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은 매우 귀찮은 일이다. 과학자들의 반복 실험하는 과정이 새삼 놀랍고 존경스럽다.

백화점의 진열대에도 나름의 규칙이 있고, 쇼핑을 독려하기 위해 창문과 시계를 없애는 것도 과학적인 분석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밖의 창을 통해 어두워지거나 비가 내리면 사람들은 서둘러 쇼핑을 멈추게 된다는 것이 과학적 이론이다. 오 마이 갓!!!^^

꽉 막힌 도로에 숨은 물리학 법칙은 또 뭐란 말인가?
나는 운전도 안하고 차를 잘 타고 다니지도 않지만 차를 타고 다니면 꼭 내가 있는 도로만 차가 막히는 것 같은 심리가 작용하기는 하는 것 같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외면할 수 없는 다양한 과학적인 삶에서 제외될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과학적인 사고는 누구나 가질 수 없는 모양이다.
과학에 별로 흥미가 생기지 않는 사람에게도 특이한 책 제목을 가지고 콘서트를 여는 것처럼 다양한 볼거리를 내놓고 있다.
과학의 법칙이나 일상에서의 호기심이 왕성한 학생들이나 과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보면 아주 재미있고 유용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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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러시아 고전산책 5
이반 세르게예비치 뚜르게녜프 지음, 김영란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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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3대 문호 이반 투르게네프의 작품은

<첫사랑>과 <무무>로 만났다. 독서모임의 첫 도서였기에 민음사 책을 호기롭게 구입해서 읽었다. 어느 새 6년 전이라 분위기와 제목은 또렷하지만 내용은 가물거리는 책과 작가이다. ^^;;



오랜만에 만난 러시아 문학 <파우스트>는 분명히 아는 책 제목같으면서도 생소했다. 생각해보니 평소에 들어왔던 <파우스트>는 일반적으로 괴테의 작품을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 괴테의 작품도 읽지 못했으므로 차라리 어떤 편견없이 읽어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괴테의 <파우스트>라는 작품이 얼마나 위대한 작품인지 궁금해지는 소설이다.



파우스트

이반 투르게네프 지음/작가정신

김영란 옮김

세 편의 중단편이 실린 책으로 200여 페이지의 아주 읽기 적당한 두께감이었다. 며칠 전 400페이지도 넘는데다가 내용도 벅찼던 독서 정체기를 혹독히 만났었기에 차라리 고맙게도 잘 읽어 나갈 수 있었다.



<세 번의 만남>이라는 소설은 사냥을 나갔던 호젓한 곳에서 우연히 만난 여인을 홀로 마음에 품은 주인공이 시간이 흐른 뒤 다른 장소에서 그 여인을 또 다시 만나게 되는 이야기이다. 흠모하던 그 여자 곁에는 멋진 남성이 함께 있었으므로 그는 이름조차 알지 못한 채 마음만 키워간다.

얼핏 읽다보면, 애인이 있는 여자를 마음으로 품은 남자의 말도 안되는 질투이야기가 너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그 안에서 말하고자 하는 숨은 뜻이 있을 터이다. 서정적인 이야기와 감각적인 문체는 시를 읽는 듯이 부드럽고 깔끔해서 읽어내는 데 신비한 힘이 있었다.



익숙한 그 저택을 지날 무렵 어느덧 주위는 짙은 어둠에 싸인 채 하늘에는 달이 휘영청 떠 있었다.

한마디로 밤은 이미 오래전부터 하늘에 있었다.

보리수들은 마치 소멸해가는 산책로로 나를 부르는 듯 했고 어슴푸레한 그림자 속으로 나를 유혹하는 듯햇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히 빛나고 있었다. 푸른 색으로 부드럽게 반짝이는 별빛이 높은 곳에서부터 은밀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별들은 마치 고요한 시선으로 주의 깊게 이 머나먼 지구를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잠 못 이루는 따스한 밤이 기다리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밤은 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살아있는 소리를 이 예민한 정적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세 번의 만남.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여인에 대한 감정은 무엇일까?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한 인연은 그 여인에 대해 궁금하게 만들고 마음으로 부끄러움에 젖어 결국 질투심이었음을 고백한다.




궁금하던 책은 바로 <파우스트>라는 표제작이자, 괴테의 작품과 똑같은 책제목을 당당히 꺼내 든 소설이다.

같은 사람이 같은 친구에게 보내는 아홉 통의 편지로 전개되는 독특한 형식이었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야 이반 투르게네프 자신이 얼마나 괴테의 작품을 사랑했고 <파우스트>에 빠졌는지 알게 되었다.

그만큼 인생을 강렬하게 흔드는 문학작품을 만났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을 기묘하게도, 혹은 선명하게도 바꿔주는 힘이 있는 듯하다.

괴테의 작품은 읽지 못해서 비교를 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나중에 꼭 찾아서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은 고향집에서 오래 전에 읽었던 책 <파우스트>를 발견한다. 친구에게 편지를 쓰면서 다시 만난 책<파우스트>에 대해 청춘이 되살아나는 기분이라고 말할 정도로 문학이 주는 심장의 격동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언젠가 내가 외국에서 가져온 책들도 발견했어.

괴테의 <파우스트>도 있더군. 자네가 기억할지 모르지만, 한때 난 <파우스트>를 한 자도 빼놓지 않고 암기한 적도 있었어. 아무리 읽어도 싫증이 나지 않았어. 나에게 그토록 낯익은 이 작은 책을 발견했을 때 그 느낌이란 도저히 말로 형용할 수가 없을 정도였어.

오랫동안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내 청춘이 눈 앞에 되살아나 환영처럼 어른거리더니 온몸의 혈관을 따라 불길처럼, 독약처럼 뛰어다니는 거야.

그런데 내 자신이 늙어간다는 것을 어떻게 느끼게 되었는지 아나?바로 이렇다네. 지금 난 즐거운 감정을 과장하고 쓸쓸한 마음은 밀어내려 애쓰고 있거든.

하지만 젊었을 때는 반대였다네.

우수와 권태는 보물처럼 아끼고, 쾌락의 폭발은 애써 잠재우려 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야, 지금껏 쌓아온 나의 모든 인생 경험에도 이 세상에서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남아있다는 느낌이야. 더구나 그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

어릴 적 첫사랑 벨라는 이미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살고 있지만 사는 일에 바빠서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을 알게 된다. 주인공 파벨은 <파우스트>를 읽어주기로 약속하고 만남을 갖는다. 낭독하는 시간과 책 선물을 받은 벨라는 문학을 접한 뒤 새로운 욕망에 휩싸인다.

사실은 벨라의 문학적 소양을 알고 감정에 빠질 것을 걱정한 엄마가 시나 소설을 읽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된다.

"밤새 한숨도 못잤어요. 머리가 아파서요. 바깥공기라도 마시면 좀 나아질 것 같아 나온 거예요."

그녀는 말했어.

"어제 내가 읽어드린 책 때문인가요?"

내가 물었어.

"물론이지요. 익숙하지 않으니까요. 당신의 책 속에는 피하려해도 피할수 없는 무엇이 있어요.

그것 때문에 머리가 불타는 것 같아요."

문학작품 속에서 자신의 삶의 단면을 만나기도 하고 다른 삶을 살고 싶은 욕망을 마주하기도 한다. 자신이 빠져든 소설을 작품 세계로 반영하여 승화시킨 자전적 색채가 짙게 드러난다.

결혼한 여인에 대해 한 남자의 인정받지 못하는 사랑은 투르게네프 자신이 유부녀를 오랜 시간 곁에서 지켜보아야 했던 실제 경험이 나타났는지도 모른다.

욕망에 굴복하느냐, 도덕적 의무를 지키는 인간의 삶의 선택하느냐 하는 주제를 던진다. 서정적인 문체와 자연의 아름다운 묘사에 빠져들어 모처럼 낭만적인 소설 속에서 그들을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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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괜찮아요, 천국이 말했다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살림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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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는 어린 시절 놀이공원에서 큰 사고를 당하고 한쪽 팔을 다친다. 접합수술을 받은 후 엄마의 지나친 간섭, 학교에서의 따돌림, 첫사랑의 실패 등 모든 상황은 애니를 실패한 인생, 혹은 실수투성이 인생으로 만들어 버린다. 간호사 생활을 하며 일상을 누리던 중 가장 행복한 순간에 죽음이 찾아온다.

사제간의 실제 대화를 바탕으로 죽음을 담담하게 그리며 삶의 소중함을 일깨운 소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처럼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조금 다르다

이 소설은 죽음 이후의 사후세계를 여행하며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잔잔한 성찰의 소설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폐 한쪽을 떼어주려 수술실에 들어간 애니는 자신이 천국에 오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랑하는 파울로는 죽었을지 살았을지가 너무 궁금한 애니의 앞에 다섯 명의 인연이 차례로 다가온다. 애니의 인생을 돌아보며 풀지 못했던 질문들을 하나씩 대답하고 공감하며 모든 상처를 쏟아내고 보듬어준다.

'다친 사람은 나야'라고 생각했다.
무언의 분노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래서 애니는 더 외로워졌고 괴로움도 커져갔다. 로레인이 울수록 딸은 점점 할 말을 잃었다.
한동안 모녀는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다. "

"아이들은 부모를 필요로 하면서 삶을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부모를 거부한다. 그러다가 자신이 부모가 된다."

온통 힘든 삶속에 상처와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애니는 사실 그 이름 속에 '용기'가 숨어 있다. 엄마가 이름을 지었을 때 애니 에드슨 테일러라는 여자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했다. 63세에 최초로 나무통을 타고 나이아가라 폭포를 건너 살아남은 여자였다.
"용기"라는 단어를 아주 희귀한 것처럼 여겼고, 자신도 딸도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애니라는 이름을 지었다.

"애니, 우린 외로움을 두려워하지만 외로움 자체는 존재하지 않아. 외로움은 형태가 없어. 그건 우리에게 내려않는 그림자에 불과해. 또 어둠이 찾아오면 그림자가 사라지듯 우리가 진실을 알면 슬픈 감정은 사라질 수 있어"
"진실이 뭔데"
"누군가 우리를 필요로 하면 외로움이 끝난다는 것. 세상에는 필요가 넘쳐나거든"

"비밀. 비밀을 지키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지만 사실 비밀이 우리를 통제하는 거지"

"아기는 숨을 못 쉬었어요. 열기구 사고 후 파울로가 숨을 못 쉰다는 말을 듣자 다시 그 일이 고스란히 되살아났어요. 예전에 하고 싶었던 말을 했어요.
'내 폐를 가져가요. 내가 그를 위해 숨 쉴 수 있게 해줘요. 그의 목숨만 구해주세요"

애니의 사연을 따라 가다보면, 삶과 죽음에서 마주하게 되는 삶과 인연, 그리고 인생의 의미를 알아간다. 아는 것은 이해하게 되고, 그 마음은 곧 공감으로 이어진다. 그 공감은 또 다른 것을 사랑하게 되는 마음으로 풍요롭게 만든다.

한 군데 매듭이 지어지면 그 상처로 모든 것이 정체되어 결국 내 안의 모습이 기형처럼 틀어지게 된다. 메마른 인생살이지만 알게 모르게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다는 것을 천국에 가서야 알게 되는 것일까? 내 삶에 함께 했던 사람과 만나는 천국여정을 통해 작가는 어떤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사랑은 전혀 예기치 못한 순간에 온다. 사랑은 가장 필요한 순간에 온다. 사랑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거나 더 거부하지 못할 때 온다. 이것들이 사랑에 대한 다양한 진실이다. 하지만 애니의 경우 10년가까이 오래도록 아무 기대도 없었고 아무것도 받지 않았던 게 사랑의 진실이었다."

한 사람의 인생이 다른 인생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 인생이 그 다음 인생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모든 끝은 시작이기도 하다는 것.
단지 그 끝을 지금 우리가 모르는 것일 뿐이다.

인생사는 베틀에 걸린 실처럼 얽혀서 우리도 모르는 방식으로 촘촘하고 어설프게 짜여간다.
이따금 어떤 일의 결과를 놓고 우리는 자신을 책망하며 후회를 늘어놓는다.
그 때 그러지 않았다면,
그 때 거기를 그 시간에 가지 않았다면,
그 때 도중에 멈추지 않았다면,
그때 그것을 했더라면, 안했더라면, 안만났더라면.....
우리의 인생은 과연 어떻게 달라졌을까?
나도 이따금 인생이 힘들 때 내가 그러지 않았더라면..
내 선택에 후회를 했던 적이 있었다. 자책감에 시달려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예민해져서 앞을 보고 희망을 가질 수 없었다. 지난 과거에 발목을 잡혀두지 않으려 마음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내 탓이 아니다...
사람에게 속은 내가 잘못이 아니라 나를 속이려 했던 그 사람이 잘못이다. 용서를 하기 위해, 화해를 하기 위해, 나 자신을 덜 미워하고 멀리서 바라보기 위해, 바닥에서 제대로 일어나 걷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던 시간이 오래오래 계속 되었다.
결국, 용서할 사람을 용서하고 내 삶과 화해를 하는 순간 가슴에 응어리처럼 홧병처럼 나를 힘들게 하던 감정이 사라졌다.

사고 당시 애니의 남편이 자신의 잘못을 탓하는 애니에게 말하는 한마디가 감동이다.
애니는 자신이 졸라 신혼여행에서 열기구를 타기로 해서 사고가 났다고 자책이 심했다. 파울로는 말한다.
"바람이 불었어"라고...
그렇다.
아무도 미리 알 수 없는 때에
예기치 않았던 바람이 불었던 거다.
누구의 잘못이나 실수로 인생이 크게 변하는 것이 아니다.
후회하고 자책할 시간에 더 사랑하고 더 이해하고 더 안아주고 공감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모든 것은 천국에서 이해될 것이다.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매일 뭔가를 잃어.
때론 방금 내쉰 숨결처럼 작은 걸 잃고
때론 그걸 잃고는 못 살거 같은
큰 걸 잃기도 하지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살아, 안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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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3 :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 불타는 사막에 피어난 꽃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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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를 독서 정체기에 빠뜨렸던 책이다. 워낙 방대한 이야기와 광활한 대륙에 얽힌 이야기를 하다보니 내용은 많고, 내가 알아야 할 중국의 숱한 나라와 민족들의 흥망성쇠에 따른 갖가지 문화유산의 이야기들을 따라가기 벅찼다. 조금씩 나눠 읽다보니 보통 하루이틀정도에 끝나는 책을 일주일 가량 붙들고 읽었던 것 같다.

사실 읽어도 전부를 읽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역사 무지랭이가 읽기에는 내용이 방대했다. 중국편을 전부 읽은 것도 아니고 이번 실크로드 답사는 오아시스 도시마다 약간씩 다른 도시의 이야기들이다. 유홍준 작가님께서도 실크로드 답사기는 여러 가지로 부담이 되었다고 한다. 역사가 많이 낯설기도 했지만 한두차례의 답사만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이유이다. 보통의 답사기를 쓸 때는 대여섯차례를 다녀온 뒤 집필하셨다고 한다.
작가님조차 낯설고 버거운 실크로드의 답사를 내가 한번 읽어서 뭔가 알아내기는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누란의 미인 발굴 이야기가 흥미롭다. 중화민국이 들어서고 한참 뒤에 발굴조사를 실시했고 누란의 미녀는 완벽에 가깝게 보존되어 있었다고 한다. 시신은 모직물과 양피로 된 옷을 입고 가죽 신발을 신고 짚으로 만든 바구니가 뚜껑에 덮여있을 정도로 복구가 가능했다. 무려 3900년 전의 시신이었고 사망 당시 나이는 40~45세로 추정한다고 하는데 몇 천 년동안 사라지니 않은 미라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랍고 너무 신기했다.

"이 쿰타크 사막은 두 가지로 이름높다. 첫째는 신선 시내 중심가에서 불과 1킬로미터 밖에 덜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세계에서 도심과 가장 가까이 붙어 있는 사막이라는 점이다.
둘째는 모래 입자가 아주 고와서 바람에 이동하는 유동사막으로 모래 언덕이 바람결따라 굽이치는 물결무늬를 그리며 무한대로 펼쳐진다는 점이다.

모래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녹음은 뒤로 물러나지 않으며 사람은 옮기지 않고 산다."

어느 답사나 마찬가지지만 가장 필수적인 것은 유적지에 대한 설명보다 그 곳의 역사를 아는 것이다. 중국의 오랜 역사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너무 많은 장소의 유적지와 쇠퇴하고 번성했던 나라들의 역사 이야기가 읽어나가기 벅찼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 중국의 역사를 배제할 수 없기에 공존했던 나라의 역사를 알아가는 여정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많은 것을 알려주고 싶은 작가님은 한두장 넘길 때마다 화려한 곳곳의 사진을 남겨서 유적지들을 다양하게 볼 수 있었고 환상적인 공간과 시간을 넘나들며 다양한 볼거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가 특히 주목해볼 만한 것은 각종 나무인형인데, 훙미롭게도 당시엔 페지의 재활용이 성행해서 페지로 망자에게 옷을 입히고 모자와 신발을 만들어주었으며, 나무 인형의 팔을 보면 종이를 꼬아서 만든 경우가 많다. 이것4이 오늘날에 와서는 페품이 아니라 엄청나게 중요한 생활사 자료가 되었다고 한다."

중국의 다양한 문화재와 더불어 비숫한 예로 우리 나라 고구려나 통일신라에 있었던 문서와 문화재 이야기를 함께 곁들여 호기심을 자아낸다.

중국은 학자와 시인을 기리는 일에 끔찍할 정도로 지극해서 유작을 빛내는 동시에 위업을 기리고 있다는 점이 부러웠다. 우리는 조상들의 학문적 위업을 기리는 데 너무 무심하고 새로운 것들과 유행에 너무 바삐 움직이느라 소중한 것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나는 어디를 가든 유적지 입구에 당도하기 전에 멀리 떨어져서 주변 경관과 함께 바라보기를 좋아한다. 내가 천수산석굴을 가면서 석굴이 홀연히 나타나기를 벼르고 별렀던 것은 바로 유적지 전체를 바라보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었다."

답사와 기행문의 섞어 유적지와 문화, 역사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작가의 감성적인 분위기가 곳곳에 묻어나서 딱딱하고 지루할 수 있는 책을 무난하게 넘길 수 있었다.

여행이나 유적지 답사의 즁요한 이유는 인간의 경험을 확대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크고작은 여행에서 여러가지를 보고 배울 수 있다. 문화유산 답사는 특히 인류의 역사와 인문정신을 가르쳐주고, 도시여행은 인간 삶의 다양한 면모를 엿보게 하며, 자연관광은 대자연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준다. 광할한 중국 대륙의 땅에서 바라보는 일은 생각보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경이로운 장면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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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초판본, 양장)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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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를 처음 읽은 것은 출간 50년 후에 베스트셀러에 올라 역주행의 신화로 세상이 떠뜰썩하던 몇 해전이었다. 2016년 즈음 큰 기대로 읽었던 책은 나에게 커다란 의미가 없이 지루하게 읽혀졌고, 그저 그런 소설로 제목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소설로 <스토너>를 꺼내면 의아하면서도 언젠가는 꼭 다시 읽어야겠다는 결심으로 2018년에 책을 사두고 차일피일 미뤄졌다.

스토너를 처음 만날때 내 모습은 때론 절망적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희망적이기도 했다. 어둡고 깊은 터널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언젠가 빛을 볼 수 있으리라는 작은 희망으로 혼자 애쓰며 헤쳐나오던 시기였다. 내가 힘들고 지친다는 이유로 스토너의 슬프고 고독한 인생을 마음에서 밀어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독히도 나와 닮아 있는 연민에 지루하다고 멀찍히 두고 바라보는 책이었다.

이번에 <스토너>를 다시 읽게 된 계기를 만들어 준 알에이치코리아 출판사에 감사한다.
<스토너> 초판본은 절판되었던 1965년 표지를 그대로 복원한 의미있는 사전 서평단 이벤트에 내 이름이 올라 기뻤다.
의미있는 책을 소장하게 되는 일은 굉장히 가슴이 벅차오르는, 내가 누릴 수 있는 작은 행복이다.

4년 전과 후의 내가 작게나마 어떤 성장의 진동이 있었는지 궁금해서 마음잡고 정독을 해 나갔다.
농부의 아들 윌리엄 스토너가 대학에 입학하고 문학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교수가 되어 사랑하고 결혼하며 쇠락해가는 가는 아주 평범한 이야기임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큰 기대는 없었다.
남들에게 인생소설이라는 것을 내가 느끼지 못해도 상관은 없다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처음 읽었을 때의 그 지루함이 아니라 젼혀 새로운 소설로 다가왔다.
마지막에는 나도 모르게 가슴 속 진하게 올라오는 뭉클함으로 눈물을 닦아 내고 있었다.

특별한 어떤 장치나 반전이 통쾌하게 그려지고 독자의 속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대목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연민이 뿜어져 나오는 잔잔한 이야기에 한동안 머물러 있게 되었다.
책은 그대로인데 내가 느끼는 감정은 확연히 달랐다. 스토너의 변화와 성장처럼 나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신경질적이고 예민하게 그려지는 이디스의 부분은 아쉬웠던 부분이라서 내가 여성 스토너가 되고 이해하지 못하는 이디스를 남자로 바꿔서 이입해 읽어보기도 했다.)

"길고 주름진 얼굴이 예전에는 얇은 가죽처럼 강인해 보였지만, 지금은 아주 오래돼서 바짝 말라버린 종이처럼 약해 보였다. 스토너는 그를 보면서 생각했다. 죽음을 향해 가고 계시는구나. 1년, 2년, 아니 10년 뒤라도 선생님은 돌아가시는 거구나. 때 이른 상실감이 몰려와서 그는 시선을 돌렸다.
그해 여름에 그는 죽음을 자주 생각했다. 전에는 죽음을 문학적 사건 또는 불완전한 육체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조용하게 마모되어 가는 과정으로만 생각했다. 전장에서 터져 나오는 폭력이나 파열된 목에서 쏟아져 나오는 피를 생각한 적은 없었다. 이처럼 다른 종류의 죽음이 존재하는 까닭, 그리고 그 차이가 지니는 의미가 궁금했다."

자신을 문학적인 세계로 인도해준 스승의 죽음을 감지하며 상실감을 느끼고, 전장에서 죽음을 맞은 친구의 죽음을 기억하며 씁쓸해하는 스토너의 마음에 애틋해졌다. 누구나 죽음을 맞는다는 사실을 잊고 살다가 가까운 친구나 지인의 죽음을 바라보고나면 크게 와닿을 때가 있다. 상실감은 인정하기 싫은 죽음의 공포와 충격이기 때문이다.
가족이 없는 슬롯을 땅에 묻으며, 죽음을 슬퍼하는 가족도 울어줄 사랑하는 사람도 없었기에 망자의 고독에 울음으로 보낸 사람은 스토너였다. 친구였으며, 동지였으며, 스승이던 교수 슬론의 죽음으로 함께 보낸 젊은 시절도 땅 속에 묻고 애착관계가 떨어져 나가는 마음에 가엾기도 했다.
죽음이 주는 상실감을 견디고 나면 삶에 대한 애착이 생기기도 한다. 남은 삶을 더욱 가치있게 살고 싶어지므로.

"나이 마흔셋에 윌리엄 스토너는 다른 사람들이 훨씬 더 어린 나이에 이미 배운 것을 배웠다. 첫사랑이 곧 마지막 사랑은 아니며, 사랑은 종착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

나도 나이 마흔에 아이와 둘이 세상에 떨어져 나와 살면서 남들이 일찍 알고 배워버린 세상과 사람에 대한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스토너의 마음에 내가 얹어질 수 있다는 점이 자연스럽게 편안한 마음으로 스토너의 서툰 사랑에 묻어가게 되었다.

"젊다 못해 어렸을 때 스토너는 사랑이란 운 좋은 사람이나 찾아낼 수 있는 절대적인 상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 뒤에는 사랑이란 거짓 종교가 말하는 천국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재미있지만 믿을수 없다는 시선으로, 부드럽고 친숙한 경멸로, 그리고 당황스러운 향수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 이제 중년이 된 그는 사랑이란 은총도 환상도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사랑이란 무언가 되어가는 행위, 순간순간 하루하루 의지와 지성과 마음으로 창조되고 수정되는 상태였다."

"젊었을 때는 잘 생각해 보지도 않고 거리낌없이 그 열정을 주었다. 아처 슬론이 자신에게 보여준 지식의 세계에 열정을 주었다. 어리석고 맹목적이었던 연애시절과 신혼시절에는 이디스에게 그 열정을 주었다. 그리고 캐서린에게도 주었다. 그때까지 한번도 열정을 주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그는 방식이 조금 기묘하기는 했어도,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열정을 주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 가장 온전히 열정을 바친 것 같았다.
그것은 정신의 열정도 마음의 열정도 아니었다. 그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힘이었다. 그 두 가지가 사랑의 구체적인 알맹이인 것처럼, 상대가 여성이든 시(詩)든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봐! 나는 살아 있어."

모든 것을 다 바쳤던 것들을 하나씩 정리해 가는
스토너의 인생에 대한 관점과 모습이 비쳐진다.
사랑하는 딸 그레이스를 향한 마지막 인사에 눈물이 났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며 살고 있을까?
우정을 원했다. 친구를 가까이 두고 친밀한 우정으로 살고 싶어한다. 그리고 열정적인 사람을 원한다. 하지만 실제로 사랑을 하게되면 포기할 것도 있고 혼돈 속에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기도 한다. 또한 꿈을 꾸고 그것을 향해 달려간다.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루는 사람이 있을까?
삶을 다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마지막 시간에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치는 내 모습이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나의 삶을 관조하게 될 때 실패와 성공의 기준이 있을까?

한동안 김훈 작가에게 빠져서 <자전거여행>을 읽으며 마음에 담아두었던 구절이 있다.
"갈 때의 오르막이 올 때는 내리막이다. 모든 오르막과 모든 내리막은 땅 위의 길에서 정확하게 비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비기면서, 다 가고 나서 돌아보면 길은 더욱 평탄하다."

인생을 돌아보면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의 연속이지만 어느 순간 안정된 평지에 이른다. 결국 마지막에는 그것들이 땅위의 길에서 정확하게 비기고 더욱 평탄한 길이 나온다는 표헌은 힘든 여정에 들어선 나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스토너>를 읽고나서 희망과 절망의 쌍곡선이 결국은 죽음 앞에서 평지가 되는 것이라는 절묘함이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너무나도 평범한 일생이기에 오히려 더욱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옮긴이의 말처럼 세월의 뒤안길을 돌고 돌다가 어느 날 거울 앞에서 마주한 누이같은 소설이라는 말에 동감이다.

자신의 삶을 실패라고 할 것도 없다. 희망과 사랑에 배신당하고 실패하고 실망과 불신을 만들고 나의 의도와 다른 삶을 살게 될지라도 결국은 그 자체로 나의 삶이 된다는 것을 인정하며 스스로 관조하는 삶을 만들어간다.
결국 내가 그토록 갈망하던 치열한 삶은 어떤 가치가 있을까?
어떤 쓸모도 없음을 느끼며 자신의 그 어떤 것도 가질 수 없고 만질 수도 없이 고요히 힘이 빠지며 침묵하는 삶으로 종결되는 스토너의 마지막 순간처럼 그것이 우리의 인생일지 모른다. 빛처럼 환하게 비추다가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는 것...
찬란한 빛 주변에 어둠을 기억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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