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Blue + Purple 세트 - 전2권 - 시로 쓰는 러브스토리 연인
이도하.이정하 지음 / 비엠케이(BMK)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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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하 시인.
가슴 설레도록 애절하고 애틋한 시를 무한정 내뿜는 애정 시인의 이름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들어앉은 듯 그리움의 언어들로 넘실대는 사랑꾼 시인. 이도하 시인과 함께 러브 스토리를 연애편지처럼 한 면씩 채워가며 달달한 사랑과 뭉클하고 저릿한 이별 시로 짝을 이루어간다.

이름도 비슷한 두 시인의 만남에 잔뜩 부풀어 올라서 책이 도착하는 날을 설레며 기다렸다. 사랑시도 많았지만 사랑한 후에 남자를 떠나 보내려는 여자와 그 사랑을 잡으려는 남자의 절절한 마음을 시로 녹여냈다.
사랑했던 두 남녀는 이별 앞에서 각자의 마음이 달라진다.
이렇게 끝나는 건가?
통증을 잊고 다음 생을 기다려 볼 마음으로 사랑해서 떠나 보낸다는 여자가 있다.
또 한편에는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나 사랑해서 떠날 수 없는 남자가 있다. 두 남녀의 사랑이 엇갈리는 순간까지 애틋함을 시로 주고 받은 마음을 시로 승화시켰다.

사랑이 아픈 것은
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루어질 수 없거나 이루어져선 안되는 사랑.
그러나 그럴수록 더욱 그 사랑에 매진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가슴이 평생 잿더미가 되는 것도 모른 채.
하지만 꽉 막힌 현실 속에서도 사랑은 어떻게든 빛을 낸다. 희미하게라도..

사랑을 해 본 기억이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추억을 선물하고 이별의 아픔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 시린 기억이 떠오를지 모른다. 만남의 설렘부터 세상의 모든 풍경들이 정지된 가운데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향하던 모든 시선과 마음들이 고스란히 아름다운 시어들로 채워진다.

세상에 수많은 길들이 있지만 한 사람을 향한 길은 오직 한 길 밖에 없는 것. 진흙 속에서도 고결하게 피어나는 연꽃처럼 아픔과 상처 속에서도 과연 꽃은 피어날까?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하루 모든 시간이 궁금해진다는 것이다.

"그 사람도 나를 궁금해할까?"
"스스로 감당할 길 없는 너를 향해 꽉 차 있는 이 마음,
네가 좀 덜어줄래?"

아...심쿵하는 이런 문장을 적어내는 이정하 시인은 사람 마음을 들었다놨다 심장이 들썩거리게 한다.
조용히 내리는 가랑비처럼 마음을 적시고
어두울수록 반짝이는 별처럼 따뜻하게 안아주고 달려가는 사랑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설렐 것 같은 시집이다.

헤어지는 이별을 고하기 전에 서로 열심히 아낌없이 행복하기 위해서 사랑을 하자.
이별 뒤에 홀로 남는 사랑같은 거 너무 아프니까..
오랜 휴식기에 있는 나의 연애 세포를 툭툭 건드려본다.
아직 살아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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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
김비.박조건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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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보랏빛 바탕에
내가 좋아하는 우산까지 홀로그램으로 반짝이고 있는 매력적인 표지인데 마음 한켠 후미진 곳에서는 왠지 모르게 차분하게 가라앉는 감정이 흘렀다.

김비 소설가는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박조건형 드로잉 작가는 우울증으로
서로의 결핍을 채우며 회복하는 부부의 이야기를 에세이형식으로 담았다.

세상에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을 때
오롯이 자기 편이 되어 줄 사람이 나타났다는 기쁨
자신보다 더 큰 손이 투박하지만 따스했던 기억
사랑은 그렇게 가뭇없이 작은 온기로 스며든다.

부부가 살면서 자기의 생일이나 결혼 기념일 같은 날을 굳이 챙겨가며 호들갑을 떨고, 이벤트가 없이 지나가면 무능한 남편, 센스없는 부인이 되기 십상이다.
이들의 기념일은 조용하다. 일상을 소소하게 감사하며 챙겨주는 날이 많아서 기념일에 굳이 이벤트를 열지 않아도 평범함이 이벤트가 되는 시간이라는 말이.
굳이 이벤트가 필요치 않다는 말이 꽤나 멋지게 들려온다.

"사랑은 표현하는 것이고
그 표현은 일상적이어야 힘이 있고 멋지다고 생각한다."
-박조건형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이 더 자연스러운 부부의 세계가 훨씬 이쁘고 이런 짝지를 만나 더없이 편안하고 재미있게 살아가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세상의 편견에 맞선 자신의 짝지를 위해
무조건 짝지 편이 되어준다는 든든한 남편.
그에겐 평생 따라다닌 우울증이 괴롭힌다.
오롯이 자신이 감당해야할 우울증의 무게를 함께 하면서 벽하나를 두고 마음으로 끌어안는 부부의 모습이 이쁘고 뭉클하게 다가온다.

나이 50을 트로피라고 말하는 김비 작가는
자신의 본명 김병필을 불러대는 유일한 사람 남편에게 사랑스러운 여자이다.
어릴 때부터 아팠고 허약했는데 게다가 감당하기 힘들었을 성전환수술까지 하느라 고단한 몸은 얼마나 살아갈 날이 남았는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전쟁같은 세상, 이기적인 세상에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우습게 들릴 수 있는 정글같은 사회에서
다시 한번 사랑을 믿게 하는 글들과
사랑할 용기를 아낌없이 퍼부어댄다.
연약한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의 약함을 숨기지 않고 회복해 나가는 일상이 아름다워서 반짝인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들처럼 아낌없이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랑이 두려워 머뭇거리는 연인들에게 사랑의 힘을 믿게 해주는 아주 사소한 기록만으로 감동적이다.
작은 것에도 감격하고 감사하며
미안한 일에 정확하게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면
서로에게 얼마나 위안이 될까.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을 하는 것이야말로
살아가면서 누릴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다.

아프지말고 행복하자는 말에 담긴 사랑
그리고 서로의 가족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날들이 많지만
이 사회가 던지는 질문에 언제나 대답을 해야하는 쪽은 자신이라는 것을 제대로 인지하는 어른다움이 있다.

"여전히 나는 여기 이 세상의 언어로는 규정할 수 없는 존재로 살지만, 그럼에도 다행히 나답게 살고 있다.
언제나 답을 찾는 일은 내 몫이다. 이 사회가 나에게 질문을 할 때마다, 나는 그 말들을 씹어 삼킨다. 어떤 말이든 꾸역꾸역 씹어 배 속에 밀어 넣는다"
-김비

김비의 글과 박조건형의 글이 서로 주고받는 대화처럼 차곡차곡 쌓인다. 성소수자로서 살아가는 부인을 가장 잘 이해하고 사랑하는 부인이 더이상의 아픔과 무례함을 적게 겪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과 사랑이 그대로 묻어났다. 사랑하는 남편의 우울증을 바라보며 무던히도 애쓰는 그 마음을 끌어안고 귀한 삶으로 인정하고 포기하지 않고 올곧게 서 있는 모습으로서 그들은 서로에게 완전한 의미가 되어간다.

결핍이란 때때로 사람을 든든하게 묶어주고 단단하게 결속시켜주는 힘이 있다.
서로에게만 무장해제되는 것
진정 살아있는 사랑의 참모습이 보인다.
어떤 우산이 되든 양산이든
서로에게 유일무이한 사람이 되어준다는 것,
그들이 말하는 자신만의 '짝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 축복일까 싶어 내심 부러웠다.

적어도 둘만이 사는 세상 안에서 그들은 가장 행복할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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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마리 유키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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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면 떠오르는 공포와 호러 장르의 책이다.
띠지에 적혀있는 홍보문구가 읽기도 전에 무섭게 만들어서 뒤로 미루다가 겨우겨우 읽었다.
게다가 책의 뒷면에는 주의사항까지 적혀있다.
*심약자는 반드시 해설을 먼저 읽을것!
공포감 조성이 대박이다...

[이사]를 주제로 일상의 가까이에 있는 것들이 공포로 돌아오는 리얼리티 호러의 진수라고 설명되어 있다.
문/수납장/책상/서랍/벽/끈​
6가지 이야기를 묶어놓은 연작 단편집이다. 으스스한 공포감이 감도는 도시전설을 소설화한 작품이라 읽기 전부터 망설였다. 워낙 공포영화도 잘 놀래서 보지못하는 지라 살짝 겁을 먹고 읽어야했다. 하지만 생각처럼 기함할 정도로 공포스럽지 않고 술술 재밌게 잘 넘어가는 읽을만한 괴담소설이었다. 긴장하고 읽기 시작해서 그런지 첫번째 소설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이사를 준비하다보면 이집 저집의 구석구석을 면밀히 들여다보게 된다. 이사를 결정하려던 집의 벽면에 구멍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한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공포스럽다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고나니 슬쩍 무서운 상상을 하게 될 것 같다.
오다 게이타로는 강간 및 살인 혐의로 체포된 인물인데 이 집은 아무래도 오다 게이타로가 살던 집인 모양이다. 잘못 배달된 우편물로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벽에 뚫린 구멍이 차츰 눈이 보이기 시작한다. 처음엔 무수히 뚫린 구멍의 정체를 몰랐지만 오다 게이타로가 살았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그는 피해자를 표적삼아 다트핀을 던지며 놀았다는 사실이 재판에서 밝혀진 바가 있기 때문이다.
소름~~~!!

편안하게 살던 집에서 어느날 불현듯 날아온 우편물로인해 그 전에 살던 사람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게다가 그의 이름은 살인범이었다니...
당장 다른 집으로 이사라도 가버리고 싶을 심정이 되지 않을까.

가끔 비가 내리고 어둑해지는 날엔 거실 불을 끄고 귀신 이야기를 하거나 알고있는 학교나 동네의 괴담이야기를 해준다. 아이들은 돌아가면서 자기가 알고 있는 가장 무서운 이야기를 하다가 자기들끼리 놀라 책상 아래로 숨어버린다. 지금은 높은 층에 살아서 그런 재미가 없어졌지만 1층에 살면서 공부방을 할 때는 비가 오는 날에 불을 끄면 귀신이야기 하기 딱 좋은 조명이 된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무서운 이야기의 절정에서 책상 한번 확 두드려주면 아이들의 공포감은 극대화가 된다. 꺅~!!!

귀신 이야기나 괴담들은 시대가 흘러도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주제이다. 실제로 귀신을 보았다던지 귀신 체험을 했다는 이야기들을 모아 소설로 만든 단편들이다.

사실,, 이사를 준비하면서 이 책을 본다면 섬뜩할지도 모르겠다. 수납장을 열며, 서랍을 열어보며, 끈을 잡아당기며, 벽의 구멍을 보며....갖가지 상상을 하게 될 것 같은 실화괴담들을 작가의 유쾌한 표현력으로 실감나고 흥미롭게 풀어냈다.
혼자 이사할 집을 보러 다니다가 이러한 일을 만나게 될까봐 살짝 정신이 혼미해지는 부작용을 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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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요, 커피 한잔 타 올게요
김경진 지음 / 메이킹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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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작가님의 책은 두번째 만남이다.
처음에 인연이 닿았던 <여전히 이기적인 나에게> 감성의 결이 나와 잘 맞아서 이번 책도 기대가 되어 한두편씩 가볍게 읽어내렸다.
시처럼 에세이처럼 생각을 글로 담아내는 것이 김경진 작가님의 표현방식인 것 같다.
시와 에세이가 겹쳐져 있어서 시인듯 하면 에세이 같고, 에세이인듯한 시들이 꽤 있다.
제목부터 편안하게 다가온다.

일상의 언어에는 한계도 있고 표현의 임계점도 있으며 곧이곧대로 표현되지 않는 말의 이면들이 있다. 그러한 다양한 어휘들을 작가님만의 잔잔하고 서정적인 언어들로 편안한 글로 내려앉았다. 마음에 닿는 문장들은 내 글 속으로 갖고 오고 싶을 정도로 자연스럽고 편안하고 익숙하게 흐른다.

「말의 이면​

내가 너에게 하는 말에 나는 의미를 숨겨두곤 한다.
함부로 하지 않는 나의 말은 항상 너에게 향해 있다.
밥먹자는 말은 너와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뜻이다.
커피 한잔 마시자는 말은 너를 조금 더 알고 싶다는 말이다.
술 한잔하자는 말에는 너에게 나를 더 많이 보여주고 싶다는 의미가 숨어있다.
너를 보고 싶다는 말을 이처럼 나는 어렵게 돌려서 말한다. 매일매일 한사코 보고 싶다고 말하면 보고 싶음이 가벼워질까봐서」

적당히 의미를 숨겨서 말을 하거나 에둘러 말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제대로 나의 뜻이 전해진다면 좋겠지만, 경계가 불분명한 모호함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엉뚱하게 어긋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정확하게 말하면 어쩐지 속내를 들킨것 같아 겸연쩍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밥먹자, 커피마시자, 술한잔하자는 말에는 골고루 다양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
함께 하고 싶기도 하고, 편안해서 좋으니까 또 만나고 싶고, 더 많이 알아가고 가까워지고 싶고, 시간을 보내고 싶기도 하고....

나는 혼밥이 싫다는 말을 자주 한다. 배가 고프지 않다는 말의 이면에는 뱃 속의 허기보다는 허전함이 더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혼자 밥먹기는 싫은데 배는 고프고, 혼자 먹는 밥이 익숙해질만도 한데 혼밥은 여전히 하기 싫다.
딸아이가 친구와 밥을 먹고 들어오는 오늘같은 날은 옥수수나 포도 한송이로 넘어간다.

밥을 먹을 때 같이 먹을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은 밥을 배부르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함께 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의 이면을 알아주는 사람이 생기면 좋겠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과연 나는 말걸음마를 어느 정도나 떼고 있는 것일지 궁금하다. 어디에서든 검증되지 않은 글을 혼자 잡다하게 늘어놓고 나면 속에 고인 물을 다 퍼낸 기분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워진다. 좀 더 고르고 걸러냈어야 했는데, 혹은 너무 길어지지 않게 짧은 말을 했어야 했나? 너무 감정이 섞인 언어보다는 논리정연한 말을 하고 싶은데 사람마다 갖고 있는 말의 성향이 달라서인지, 내겐 논리에 매달리는 일이 난해하고 힘들다.

듣자마자 바로 수긍이되는 투명한 언어들이 좋다.
바로 알아듣지 못하는 말은 받아들이는 사람이 나의 뜻을 그대로 전해받지 못할 때 안타깝다. 그러면서도 꼭꼭 숨긴 은유적 표현을 하는 작가들의 수려함에 탄복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언어를 택하는 기준을 부러워하고 조심스러워하면서도 겨우겨우 걸음마를 떼어가며 식상한 일상의 언어들을 배설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좀 더 강렬하고 절절하게 사람의 마음에 닿는 말사냥을 떠나고 싶다.

책의 글 자체가 김경진 작가 자신이라는 느낌이 오롯이 드러나는 책이다. 거짓없이 진솔하게 인간 김경진의 언어들은 바로 이렇다고 말해준다.
다양한 사물과 경험을 나의 글로 옮겨보는 일을 해보고 싶어졌다. 김경진 작가님의 글에는 사소한 것을 시처럼 에세이처럼 어떤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시와 산문의 경계에 걸쳐있는 시에세이를 겨냥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의 삶에도 경계가 뚜렷하지 않는 운문과 산문의 경계 어디쯤에 서성이는 언어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을지 모를 일이다.

잠시만요, 커피한잔 타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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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1 대한민국 스토리DNA 27
김진명 지음 / 새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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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김진명

책을 읽으면서 머릿 속을 들락거렸던 수많은 생각들을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 역사의식이 부족하고 표출하는 것조차 억압당하던 시절에 이렇게 당당하고 멋진 이야기를 써냈다는 것에 이미 감명을 받았다. 언제나 새움 출판사는 기대 이상의 책으로 감동을 준다. 김진명 작가의 30년 전 첫 장편소설을 양장본 두 권으로 재출간했다. 읽는 재미외 깨닫는 기쁨을 함께 한다는 다짐으로 대한민국 스토리DNA라는 구성으로 문학의 이야기에 주목하고 있다.

김진명 작가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아직도 읽지 못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새움 서포터즈 덕분에 얻은 좋은 기회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을 오롯이 마주하며 자신을 면면히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그린 작품을 읽고 가슴이 요동친다. 현실인지 픽션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첨예한 정치적인 그의 필력은 우리 역사속에서 대립하고 은밀하게 거래하는 세계의 정보 전쟁에 가까운 듯 쉽지않은 갈등을 실감나게 그려낸다.

여전히 한반도의 정세와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적상황은 지금이나 그때나 변한 것이 없는 듯하면서도 급박하게 변했다.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와 근본적인 해결방법이 없이 오히려 가상의 소설의 세계보다 더 예측하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이 책에서 굵직하게 던지고 있는 내용은 결국 평화로운 통일로 가기 위한 노력과 그 이후에 북한을 어떻게 할 것이냐하는 것이다. 또한 언제까지 미국의 등에 기대어 정치적인 세력을 보장받지 못하고 살것이며, 우리 민족만의 중요한 생각과 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북한과 하나라는 사실을 잊고 불필요한 관계를 청산하고 우리만 잘 살고 싶은 이기적인 생각이 팽배해져 있는 세대이다. 오히려 통일이 되는 것을 꺼리고 세계 강국과의 충돌이나 외교적 불화를 두려워하는 안타까운 나라에 살고 있다.

소설 속의 주인공들처럼 작은 일에도 나라를 생각하며 내재된 통일에 대한 염원을 불태웠던 기억이 언제인지 가물거릴 정도로 잊혀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만큼 중요한 한반도의 정세에 대해 역사적 정치적 가치를 생각할 틈도 없이 하루하루 나의 삶에 지쳐 살아온 것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인생이란 상식적으로 즐기고 사는 거예요"
"인생이란, 상식적으로 지키고 살아야 할 것도 약간은 있는 법이지"
순범의 독백이 조명등 빛 사이에서 어지럽게 흩어졌다.」

「개인이든 국가든 힘을 가지려고 노력해야만 하고 이러한 노력만이 장기적인 안전의 기틀이 되는 것은 역사의 정한 이치이다. 지난 날의 역사 속에서도 같은 나라 혹은 민족이면서도 갈라져 있었던 경우가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다시금 결합하여 강성해지는 국가는 비록 갈라져 있을 때라 하더라도 당장 눈앞의 상호 위협과 안전보장에 급급하여 주변의 강대국과 제휴하여 같은 민족에게 대응하는 경우는 없었다.」

「순범은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말할 수 없는 울분이 솟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런 천재가 우리 땅에서 외국의 앞잡이들 손에 목숨을 잃도록 수수방관하고 있을 정도로 우리는 미약한 민족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 그 존재조차도 모르고 있을 정도였다면 우리는 무엇을 하면서 살아오고 있었던 것인가?」

정치적 음모 속에 희생당해야 했던 황망한 죽음이 얼마나 많았을지 참담한 자괴감이 느끼는 경우를 나도 역사책을 읽다가 대면한 적이 있다. 정조대왕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쓴 김훈 작가의 <흑산>을 시작으로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로 이어지는 역사책을 읽고 피가 거꾸로 솟아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정치적 논란과 무능한 조정은 왕의 목숨도, 충신과 천재들의 목숨도 지켜주지 못했다. 정조가 더 오래 살아서 정약용의 형제들과 손을 잡고 계획대로 정치를 했었다면 어땠을까? 정치적 당파싸움으로 제대로 정치적 꿈을 펼치지 못하고 사라진 정조대왕의 역사를 마주할 때마다 이루말할 수 없는 참담함과 회의가 일어나곤 한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아끼지 않았던 천재 물리학자 이용후 박사와 대통령의 긴밀한 핵발명에 관련한 흥미진진한 이야기. 거대한 음모와 배후에 포진한 검은 세력 뒤엔 강대국과 손을 잡은 국가 정보기관이 있었고 그 하수인의 죽음을 캐던 권순범 형사 주변의 이야기들이 지루할 틈없이 긴박함을 더해간다.

힘이 없는 민족이기에 속에서 솟아나는 울분을 참기만 했고, 평화를 원하는 민족이지만 분명히 죄를 지은 상대에게는 죗값을 당당히 치르라고 요구하지 못했다. 죄지은 자들은 용서를 구하고 그에 합당한 일을 하도록 했어야 마땅하다. 숨겨서 되는 일이 아니었고 같은 민족의 아픔을 함께 나눠야 하는 일이었다. 힘이 없이 당했던 것은 민족으로서도 개인으로서도 힘든 역사이다.

나의 경우에도 개인적으로 억울하고 힘든 일을 당했을 때 쉽게 용서를 했더니 다른 곳에서 불안감을 조성하고 다니는 일을 보았다. 쉽게 용서해주는 것이 착하고 평화로운 처사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미치자 후회가 일어났다. 좀 더 강하게 사과를 요구하고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여러 사람들의 고통을 보고서야 뒤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조국이란 뭐고 민족이란 또 뭐에요? 그런 걸 들먹이는 사람들은 언제나 바보들이죠. 세상에 그런 것들은 없는 거예요. 그런 것은 한때의 기분이고 환상이에요. 아버지는 있지도 않은 조국과 있지도 않은 민족의 환영에 사로잡혀 죽음의 땅으로 들어가신 거죠."
"그러나 현실적으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단위는 국가 아닙니까?"
"국가가 국가다워야죠. 아무리 몽매한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제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뿌리치고 들어간 사람을 죽인다는 게 말이나 되는 얘기예요?" 」

책장을 덮고 조국을 생각하는 애국자가 단숨에 될 수는 없었지만 30년 전에 쓰여진 소설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의 치밀한 구성과 현실적인 외교 문제들이 속시원하게 풀리고 있었다.
역사는 재해석되기도 하고 후대에 의해 평가받게 된다. 이 소설은 오랜 시간 속에 가리워진 역사를 통째로 갖다놓은 것처럼 지금의 현실과도 동떨어지지 않아 현실감이 넘쳤다. 소설처럼 그대로만 현실에서 이루어졌다면 우리는 강대국이 떨만큼 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을까?
평화로운 통일로 가는 길에 북한이 좀 더 적극적인 수용을 하고 우리가 그들이 고립되지 않도록 노력을 했을까?


지난 역사 속의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는 앞으로 나라의 흥망성쇠를 위해 육중한 책임감과 선명한 윤곽을 잡아나갔으면 좋겠다.
과연 누가 이것을 이루어야하는 것일까?
모두 함께 가야할 길을 정치하는 특정 사람들에게만 무거운 짐을 주고 있었는지도 생각해본다.
역량있고 능력있는 사람을 시기하고 무너뜨리는 역사를 반복하지 말고 함께 가는 나라가 되어 아름다운 무궁화 꽃을 피우고 가꾸는 민족이 되기를 바란다.

작가의 놀라운 작품 속에 함께 숨을 죽이며 몰입해서 읽었던 며칠 동안 다른 생각이 들어올 틈도 없었다. 멋진 무궁화꽃을 그려낸 처연하고 숙연해지는 후회없는 며칠이었다.
산책길에서 바라 본 무궁화 꽃이 다르게 보였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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