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눈
딘 쿤츠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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딘쿤츠라는 작가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책이다. 미국의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로 스티븐 킹과 함께 서스펜스 소설계의 양대산맥으로 불린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몰입감과 강한 흡인력이 영화를 보는 듯 빠져들어 읽었다.

코로나 19를 예견한 소설답게 중국 우한 외곽 소재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바이러스 '우한-400'이라는 용어가 나올 때 섬찢했다.

"그녀는 이런 자신에게 화가 났다. 이제껏 스스로를 강인하고 유능하고 침착한 여자라고생각했다. 인생에 무슨 일이 생기든 잘 대처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대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함에 마음이 그저 착잡했다.
초반이 충격이 잦아들고 장례식이 끝난 뒤 티나는 어떻게든 트라우마를 극복해보려 했다.
그녀는 차츰차츰 대니를 떠나보냈다."

아무리 유능하고 침착하고 강인한 여자일지라도 자식의 죽음 앞에서는 오열하고 슬픔과 죄책감, 눈물과 쓰라린 마음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이것은 무능함과 다르다.
온 마음을 다해 아들 대니를 사랑했지만 대니는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티나는 언제부터인가 대니가 살아있는 악몽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티나는 마이클을 사랑했다.그래서 둘의 관계가 끝난다는 사실에 상처받고 슬퍼했다. 하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했다. 완전히 갈라섰을 때 그녀 역시 안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같은 해에 아이와 남편을 모두 잃었다. 남편을 먼저 잃었고, 그 다음엔 아들을 잃었다. 아들은 무덤으로, 남편은 변화의 바람으로 떠나갔다."

아들을 땅에 묻고 남편과 이별한 이후에 전문 댄서로서의 경력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 안무가로 열심히 일을 해 나가는 티나의 모습이 멋졌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일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우울한 중에 꿈꿔오던 일을 하게 될 때 어쩌면 비통함 속에서 공허함과 무의미함을 상쇄할 수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남편과의 대화 속에서 이혼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의 능력과 재능을 과소평가하고 집에서 있는 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다른 곳에 점잖은 척하는 남자라니,,,정말 최악이었다.

"이제 제작자 일도 실컷 해봤으니 다시 얌전한 생활로 돌아올 때도 됐잖아. 티나"
'실컷 해봤다고?' 속에서 화가 치밀엇다.
그는 여전히 티나를 라스베이거스에서 제작자가 한번 되어보고 싶어 안달 난 변덕스러운 여자로 여기고 있었다. 저 재수없는 자식! 너무 화가 났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기 일에 전념하는 티나를못마땅하게 여기는 남편이라니 생각만해도 끔찌하다. 물론 티나는 남편과 대니에 소홀하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들 대니는 엄마를 이해했지만 남편 마이클은 그러지 못했다. 티나의 열정과 성공을 못마땅해 하는 것을 넘어서 질투까지하는 남자였다. 자기 옆에 예쁜 여자를 두고 자부심을 느끼고 다른 여자를 필요로 하는 남자라면 티나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상처를 받지 않고 자유를 얻은 것은 정말 박수쳐 주고 싶은 일이었다.

아들 대니의 방에서 악몽같은 일이 일어난다.
대니는 죽지 않았다.
대니는 살아있다.
도와달라...

"죽지 않았어
죽지 않았어
대니는 살아있어
대니는 살아있어"

얼마나 무서울까.
하지만 모성은 강하게 아들을 향해 가고있다. 대니의 음성에 마음을 움직이며 불안해하기 시작한다. 산악에서 일어난 사고로 형체를 알아보지 못하는 충격에 시신을 확인하지않고 무덤에 묻은 사실을 알고나서,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한 티나를 도와주는 엘리엇과 갑자기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하며 아들의 생사를 확인해가는 여정이 스릴넘치고 흥미진진했다.

거기에 다정하고 든든한 엘리엇의 달달한 로맨스는 아주 부드럽고 서정적이기까지 했다. 중년의 로맨스는 이런 중후한 매력이 있을까?
사랑하게 된 티나를 위해 목숨을 걸고 함께 하며 지켜주는 모습도 마지막까지 응원하게 되었다.

"괜찮아요?"
엘리엇의 물음에 티나는 멍하니 고개만 끄덕였다.
"그래도 우린 아직 살아 있습니다."
엘리엇은 총부리가 티나의 반대편 문 쪽을 향하게끔 권총을 자기 무릎에 올려놓았다.
차 키는 그대로 꽂혀 있었다.
그는 시동을 걸었다.
손이 덜덜 떨렸다.
티나는 차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처참하게 부서진 차고 지붕에서 집 지붕으로 불길이 퍼져가고 있었다.
늦은 오후의 주홍빛 햇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넘실대는 불꽃이 길고 새빨간 혀로 그녀의 집을 게걸스레 핥고 또 핥아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서서히 떠오르는 <어둠의 눈>의 정체..
생명에 위협을 받고 위험에 처해질수록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들이 놀라웠다. 어떤 어려운 일에 타협하지 않고 오직 아들 대니의 마음을 읽어가는 엄마의 눈물겨운 탐험같은 이야기는 스릴러와 액션이 가미된 영화처럼 짜릿했다.
스토리나 서스펜스가 다양하게 독자의 마음을 훔친다.

도입부에서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는 티나로부터 도움을 받게 되는 절묘한 타이밍까지 읽는 동안 여러가지 감정이 오갔다.
과연 권력이란 어디까지 깊숙히 관여할 수 있는 것일까?

군사기밀이라는 통제아래에서 가족과 생명을 담보로 얼마나 많은 음모가 진행되고 있을지 상상을 할 수 있는 소설이었다.

로맨스로 시작해서 슬릴러와 액션이 가미된 이야기에 더불어 초자연적인 현상과 과학과 군사적인 요소까지 결합한 음모 등이 강렬한 공포를 주면서도 결말을 알고 싶어서 순식간에 읽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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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제가 아닌데 내가 죽겠습니다 - 가족만 떠올리면 가슴이 답답한 당신을 위한 생존 심리학
유드 세메리아 지음, 이선민 옮김 / 생각의길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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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이유로 헤어질 수도, 멀어질 수도 없는 사람들, 가족에게서 건강한 거리를 만들어 줄 심리학의 해법이라는 소개부터 마음에 와 닿았다.

*서른이 넘었는데 엄마가 내 메시지를 다 확인하려고 하고 안보여주면 화를 내요.
*사고 치는 동생이 그게 내 탓이래요. 나 때문에 자기는 손해만 봤대요.
*매사에 죄책감이 많이 들어요. 실제론 잘못한 것도 없는데요.
*엄마의 불행을 내가 보상해줘야 할 것 같아요.

주변에서 종종 가족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보상심리가 강해서 해 준만큼 받지 않으면 서운해 하신다는 엄마 이야기, 가족들이 한 말로 인해 상처받은 언어 폭력, 가족의 불행이 내 탓인듯 자책감을 갖는 사람, 내가 다 해 줘야 할 것처럼 가족을 책임지는 사람, 이혼한 자식의 아이를 돌보느라 울 지경이라는 할머니(아이가 셋인데 코로나로 개학이 미뤄지니 우셨다는 할머니 이야기는 엄마 친구분 이야기)

가족으로 인해 다양하게 이어지는 상호의존적인 문제가 심각하다.
우리 나라의 특성상 밀접한 가족의 관계성에서 나오는 심리적 불안감이려나 생각했는데 프랑스의 심리학자의 책이라니 놀라웠다.

실질적으로 가족 간의 도가 넘치는 사생활 침해 문제라든지 모든 것을 해결하고 지시하려는 부모들의 문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심각한 심리불안을 만들고 있는 모양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의존적 괴롭힘을 당하고, 서로가 피해자라고 우기는 사람들은 서로를 완전히 소진시키게 되어 관계에서도 좋지 않은 영항을 끼친다.
이런 상황에서 절실하게 벗어나기 위한 상담 사례들을 통해 가족간의 근본적인 변화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다.

가족이라서 모든 것을 참아내고 충성해야하는 상황의 지속이라든지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 일종의 암묵적인 약속처럼 정해진 존재가 집안의 모든 대소사를 떠맡기도 한다.

친구의 경우에도 삼남매가 있지만, 모든 일을 장녀인 내 친구가 일처리를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긴다. 친구의 성격탓도 있겠지만, 어머님이 혼자 되시면서 가까운 딸에게 의존성이 커진 이유가 크다. 나이가 드실 수록 서운함도 커져서 멀리있는 자식보다 가까운 딸에게 더욱 의존하므로 내 친구가 지치는 모습을 보았다.
정서적 의존도가 높다보니 종종 놀러가면 입으로도 이러다 독거노인으로 죽어도 아무도 모른다'는 말로 주변을 불안하게 만든다.

"우리 흔들림의 근본을 짚다
:실존주의 심리학

실존주의 심리학에서의 상담치료는다른 종류의 심리치료와 달리, 다음과 같은 젠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불안과 심리적 고통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마주하는 방식과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죽음과 비존재/ 실존적 고립/ 삶의 무의미성/ 자유와 책임"

여러가지 심리적 발달에 따른 불가피한 불안을 스스로 지키려고 애쓰게 된다. 방어기제라고 부르는 것들을 작동시켜 엉뚱한 생각이나 대상에 집착하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심리적 불안감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은 자신을 불쌍하게 만들어 동정심을 유발한다.
의존적 어른은 타인에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파악하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의존적 어른은 명백히 '어디에도'소속되어 있지 않고, '아무도' 아닙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공허함을 느끼며, 어디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지요.

가스파르는 이렇게 말했다.
"항상 가면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려요. 그리고 벽안에 완전히 갇혀 있는 느낌이에요. 이 곳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찾아 가면을 벗어 던진 뒤에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어요"

책의 내용에 어려가지 욕구들을 살펴보면 의존적 어른은 거리낌없이 가족들에게 비밀을 털어놓고, 자기가 살아가면서 겪는 사소한 일들까지도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더불어 투명성 강요는 상대방에게도 유효하게 이어진다. 자신이 말해준만큼 이야기하지 않으면 언짢아하는 심리이다.

심리학 도서를 읽다보면 나도 모르는 숨은 자아를 발견하게 될 때가 있다. 정확하게 심리학에 근거한 해답을 찾는 것은 무리지만 내 안에 상처받거나 숨겨놓은 불안 등이 무의식 중에 사랑받기 위한 행동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생긴 것 아닐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심리학과는 조금 다른 실존주의 심리학이라는 용어를 접하면서 사르트르의 말을 인용해 본다.

"인간은 먼저 존재한 뒤 서로의 만남을 통해 세상에 모습을드러내며.(중략)최종적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규정짓는다. 실존주의자는 인간을 이렇게 바라본다. 인간이 정의할 수 없는 존재라면, 본질적으로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이다. 아무것도 아니었다가 나중에 자신이 스스로 만드는 대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사르트르

실존주의 심리학은 실질적 경험에 대해 간단하지만 본질적인 질문들은 던지며 치료하는 과정인 것 같다.

어떻게 진짜 내가 될 수 있을까?
나는 과연 참된 나로 변화할 수 있을까?
내가 가진 창의성을 어떻게 제대로 발휘할 것인가?
어떻게 자유로워질 것인가?

만약 삶이 미리 졀정지어진 것이 아니라면, 각자가 자신의 모습그대로를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실존적 자유가 우리에게 놀라운 기회와 미래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어떻든지 언제든 이런 상황을 변화시키고 인생의 의미를 새롭게 만드는 것은 내 안에서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내 문제가 아닌데 나를 괴롭히는 것들이 있디면 적당한 거리를 두고 경계를 지키는 관계를 확고히 하는 것, 의존적인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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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괜찮아
니나 라쿠르 지음, 이진 옮김 / 든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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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과 메이블의 학창시절에 나눈 깊은 우정에 관한 책이다. 굳이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한다면 우정보다는 사랑 쪽에 가까운 감정에서 서로를 이해하며 성장해 가는 이야기다.

2018년도에 <우린 괜찮아>가 미국 도서관 협회에서 한 해 가장 훌륭한 청소년 소설에 수여하는 프린츠상을 수상하며 평단의 인정을 받았고, 숨막힐 정도로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으며 대중의 인기를 동시에 얻었다고 한다.

세상의 종말이 찾아와도 단 한사람의 친구만 있으면 될 것 같은 시간을 겪으며 사춘기와 청소년 시절을 지내게 된다.
마린에게는 메이블만 있으면 될 것 같은 시간들이 있었다. 그러나 유일한 가족이었던 할아버지가 거대한 파도 속으로 사라져 버렸을 때, 마린은 모든 걸 내팽개치고 뉴욕으로 숨어 버린다.
읽지 않았던 900개의 문자들 중 하나가 말한다. 나는 도망쳤고 메이블은 아직 나를 놓지 않았다.

"넌 슬픔을 쫓는 사람이야?
아니면 그냥 그 책이 좋은 거야?"​
"나도 모르겠어." 내가 말했다.
"내가 그런 사람안지 잘 모르겠어."
"나도." 메이블이 말했다.
"하지만 재밌는 말이긴 하네.'
나는 오히려 그 반대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슬픔을 차단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책에서 슬픔을 찾았다. 현실보다는 소설을 읽고 울었다. 진실은 틀에 갇히지 않았고 꾸밈이 없었다. 진실에는 시적인 표현도 없고, 노란 나비들도 없고, 엄청난 홍수도 없었다. 물에 잠긴 도시도 없고 똑같은 이름을 갖고 태어나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남자들도 없었다.
진실은 그 안에서 익사하고도 남을 정도로 광활했다."

마린은 소설을 읽고 <제인에어>에 푹 빠진 사춘기 소녀이다. 메이블과 긴밀한 교류를 하며 사랑을 갈구한다.
마린과 메이블은 호기심으로 시작한 비밀스런 애정도 나누고 각자의 사정에 의해 떨어져 지낸다. 사실은 메이블이 제이콥을 좋아하고 가까이하는 것을 알고 마린이 떠난 것이 맞다.
문득 사람들에겐 시간이 각기 다르게 지나간다는 생각을 한다.

"하늘은 가장 어두운 파란색이고, 별 하나하나가 환하게 빛난다. 무릎에 닿는 내 손바닥이 따스하다.
혼자인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것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다.
숨을 들이쉰다, 별과 하늘.
숨을 내쉰다, 눈과 나무.
혼자인 방식에는여러 가지가 있고,
내가 마지막으로 혼자였을 땐 이런 식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기분좋은 우정은 풋풋함으로 가득하다. 감정의 기복과 혼란스러운 성장과정을 혼자 견디는 마린에게 메이블이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함께 장을 보고 서로를 위해 선물을 사고 거리를 다니며 쇼핑을 하고 같이 잠을 자는 것은 지금의 학생들도 가장 좋아하는 친구관계와 별반 다르지 않다.
마린의 고통과 절망스러움, 하나 뿐인 할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누구보다 외롭고 절망적인 시기에 놓인다. 자기 자신이 속인 감정과 할아버지가 숨겨왔던 진실을 마주함으로 잠시 혼동의 세계와 맞딱뜨리게 된다.

"파도를 타는 데 일생을 바친 사람이라면, 바다가 냉혹할 뿐 아니라 자신보다 수백만 배 강하다는 걸 알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이 거기서 살아남을 정도로 노련하고 용감한 불사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거기서 살아남지 못한 사람들에게 마음의 빚을 지게 되는가 보다.
항상 누군가는 죽는다.
단지 누가, 언제 죽느냐의 문제 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손편지의 매력은
이 소설에도 등장한다. 자신을 키우는 할아버지로부터 사랑받고 사는 마린은 가족이 없다. 하지만 엄마로부터 오는 편지로 자신을 보호받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할아버지는 오는 편지와 사진들을 자신의 벽장속에 두고 간직하고 마린은 굳이 그 방에 들어가거나 편지를 확인하지 않는다.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진실을 알게 되고 혼란스런 마린의 마음이 걱정스러웠다.
차라리 모르는게 나을 수 있는 진실을 파헤치고 자연스럽게 마주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과연 진실만이 정답일까?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는 여름이었다. 다가오는 끝을 애써 외면하는 여름이었다. 무슨 요일인지, 몇 시인지도 모르고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여름이었다. 햇볕이 너무 더워서 그 열기가 영원히 머물거라고, 우리 앞에 더 많은 날들이 있을 거라고, 손수건의 피는 얼룩 제거를 연습하기 위한 것일뿐 소멸의 징후가 아닐 거라고 믿었다.
그것은 부정의 여름이었다."

만약, ~~했더라면...
만약이라는 가정법은 사람을 얼마나 애타고 부질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지 모른다.
마린은 생각한다.
할아버지의 거짓말들만 아니었다면.
버디가 글씨체가 예쁜 어떤 할머니였다면.
옷장에는 할아버지의 코트가 걸려 있고 할아버지가 자신의 폐가 시커멓다는 것을 알고 있고 아무 의심없이 자신의 위스키를 마셨더라면.
할아버지의 꿈을 꿀 수 있더라면......

자신을 자책하는 말들이다.
했더라면....

"너무도 불확실한 마음으로 그렇게 말하지만 또 누가 아는가, '언젠가'라는 건 열린 단어다.
그 말은 내일을 의미할 수도 있고 몇십 년 후를 의미할 수도 있다."

긴 고통의 터널을 지난 후에야 자신의 마음에 진실해진 주인공 마린과 할아버지가 자신을 속인 것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결국은 할아버지의 사랑이었음을 깨닫는다.
상실 속에서 마주하는 진실로 인해 우리는 한층 성장해 나간다.
슬픔 안에서 더욱 아름답게 빛나는 사랑과 사람의 진실한 관계를 비로소 발견할 수 있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하나의 또 다른 문이 열리듯 하나의 세계가 닫히고 찢어진다고 해도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는 순간임을 알려준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거치는 풍파의 여름을, 밤하늘을, 우정과 사랑을 그리고 세상의 진실을 아름다운 언어로 수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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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휴식하라 - 회복과 치유를 위한 33일간의 철학 세러피
안광복 지음 / 사계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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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에 금이 가면 무조건 병원에 가서 깁스를 하고 충분히 휴식을 취하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다. 우리의 마음이 부서졌을 때 제대로 치료를 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흔들리는 삶에 중심을 잡아주는
하루 15분 철학 처방전. ​
단단하게 나를 붙드는 철학의 지혜"

삶이란 행복하고 재미있는 일들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상처받음의 연속이다.
제대로 된 치료와 처방을 받지 못한 상처는 두고두고 아프거나 더 큰 상처를 내듯이
마음의 남은 상처도 다를 바가 없이 마음에 흉터가 남는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같은 분석심리학자들은 덮어 버린 마음의 상처들을 헤집으로 애써 드러내려 했다. 아픈 곳을 찾아내야 치료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픔을 그대도 방치하거나 치료하지 않은 채 회피하고 아무렇게나 봉합해 버린 상처들은 더욱 두껍게 덮여 치유하기 어려워질 지 모른다.

몸에 난 상처도 바로 치료하는 것이 빠른 치료가 되듯이 마음의 상처가 쌓이지 않도록 잘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즉시 낫는 상처는 없다.
회복에는 시간이 필요한만큼 마음의 병에도 그렇다. 충분히 아파하고 고민하며 의미를 찾는 시간이 필요하다.
자연치유라는 것이 우리 몸에 있지만, 마음의 치유는 자연치유로 방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긴 고통의 시간이 오히려 영혼을 피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상처받은 영혼이 위로를 바랄 때, 욕망과 집착으로 괴로울 때, 매너리즘에 빠져 허덕일 때, 세셍과 맞설 용기가 필요할 때, 미래를 여는 혜안이 필요할 때, 총 5장으로 나누어 33일간 짧은 철학적 명상을 도와준다. "내가 바란다고 우주가 가던 길을 바뀌지 않는다."
<바뤼흐 스피노자>

태풍이 부는 까닭은 내 인생을 결딴내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 일상을 힘들게 하려고 경제 상황이 꼬여 버린 것도 아니다. '필연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자세'는 삶의 고통을 누그러뜨린다. "인생의 모든 순간에 주인공일 필요는 없다."
<공자>

관객의 역할은 스타만큼이나 중요하다.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박수 쳐 주는 관객들이 없다면 스타도 없다.
또한 주연만큼 더 화려한 조연들도 눈에 띄고필요하다. 감초 역할을 잘 해내는 조연은 주연을 돋보이게도 하지만 스스로도 빛나는 작은 별이다.
모든 순간에 주인공이 될 필요는 없다.
나이에 맞는 지혜로 욕심을 내려놓는 혜안을 길러야겠다.

인생은 100세 시대를 향하고 있다. 나이에 걸맞는 지혜를 갖고 박수를 받을 때와 박수를 쳐야 할 때를 고민해 보아야겠다. '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은 오랫동안 유럽인들의 삶을 떠받치던 두 기둥이었다.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고 카르페 디엠은 "현재를 즐리라."는 의미다. 정반대의 가르침이지만 이 둘은 서로 통한다.

인간은 어차피 모두 죽기 때문에 잠시 잘 나간다고 우쭐할 것도 없고 못 견디게 괴로운 상황에 있다 해도 좌절할 필요가 없다.
무엇이건 영원하지 않다.
카르페디엠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음미하는 자세로 '지금 이 순간'을 살아야 한다고 알려준다.

주변의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
하루하루 지금 이 순간 현재에 충실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죽음이라는 것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유한한 삶이라는 것을 알기에 최선을 다하는 삶은 아름답다. 설사 실패했다해도 미련이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지금 여기를 행복하게 사는 자세는 삶을 튼실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타고난 조건에 매달려 원망하는 삶이 아니라 지금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기..
청춘에게 미래는 보이기 않고 노년들은 남은 인생이 두렵지만, 살아있는 동안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은 더욱 빛난다.

이 책은 짧은 철학자들의 말을 제시하며
두 장에서 세 장정도 하루에 15분이면 읽을 수 있고 사색에 도움을 주는 33일의 플랜같은 도서이다.
좋은 문구들이 많아서 따로 문장수집 포스팅에 하고 싶은 철학자들의 주옥같은 명문들이 가득했다.
어렵거나 긴 설명도 아니라서 하루에 조금씩 자주 철학으로 돌아가 마음을 쉬게 해 주는 것이 나의 행복을 위한 길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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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구 - 4.19혁명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윤태호 지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 / 창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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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이야기가
내일의 희망이 되기를"

'민주화 운동'을 젊은 세대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가기 쉬운 방법을 고민하느라 꼬박 2년이 걸린 작품이다. 만화라는 양식만 차용한 것이 아니라 만화 작가들의 시선으로 본 민주화 운동 이야기를 네 권의 책으로 나누어 제작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기획하고 창비 출판사에서 참여했다.

네 권의 책 중에서 어떤 책이 올 줄 모르고 신청했는데 윤태호 만화가의 4.19혁명 주제로 한 이야기가 왔다.
김홍모, 윤태호, 마영신, 유승하 네 분의 만화 작가들이 이 프로젝트에 발벗고 나서서 함께 해 주었다고 한다.
각각 제주4.3,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을 집필했다.
윤태호 작가는 실제로 4.19혁명을 겪은 장인의 이야기를 토대로 작업했다. "민주주의는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입니다." 우리 사회가 지금에 도달하기까지 거쳐온 노정을 통해 어제의 이야기가 미래 세대에게 내일의 희망을 전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주인공인 김현용이 죽고 난 이후에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회상과 고백처럼 이야기가
시작되어 흡입력도 좋다.
1936년 태어나서 보니 일본인의 세상이었다는 대사가 마음이 찢어진다. 일본인과 조선인의 차별이 당연했던 시절. 태어나보니 일본의 군림아래 해방의 기쁨도 잠시, 한국전쟁을 겪으며 피난길에 오른다.
우리 아빠께도 종종 듣는 전쟁의 아픔과 가난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는 감히 우리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있었지.​
한참이 지나 다시 학교에 등록했지만 세상은 역시 그대로였고.
귀를 막는다고 안 들리거나
눈을 가린다고 안 보이는 게 아니더라고,
세상이란 게" "겁쟁이.
학교 선생님이 꿈이랬지?
누가? 뭘 가르칠 건데?
우리한테 공감도 못하면서." 동생이 학생 운동에 동참하게 될까봐 노심초사하며 가세를 일으키기 위해 몸을 사리고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겁쟁이가 되는 자신을 보게 된다. 전쟁 중에 아버지를 잃고 형제를 키우는 어머니의 꿈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눈을 가리고 귀를 막으며 살아가려 몸부림을 친다.
옳고 바른 길이 무언지 알면서도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비애과 고민들이 만화로 잘 표현되어 있다. "하지만 죽어보니 알겠네. 훗날이란 없다는 걸.
그저 미루고 있었거나 회피하고 있었거나
외면하고 있었겠지." "정의가 부정당하고, 정의가 부정되고
일상의 모습마저 잃어버린 시대"
한때는 언론탄압으로 드러나지 않고 숨겨졌던 이야기들이 서서히 수면으로 떠올라 많은 이들이 제대로 된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투쟁을 한다.
나 역시 사회과학대 선배들이 모두 모여 데모하던 시대를 겪었다. 최류탄이 터지면 화염병을 밤새 만들어 놓은 것으로 대치를 하고, 잡혀가기 전까지 보도블럭을 깨면서 잡혀가지 않기 위해 방어를 하다가 결국 힘없이 잡혀간 선배들 면회도 가 보았다.
평화적인 촛불만으로 시위할 수 있다는 것을 이 때에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피끓는 청춘들이 정의를 외치고 불의에 맞설 때 힘을 가진 사람들은 외면하고 회피하고 정권에 힘을 실었다. 외로운 싸움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누군가는 비겁한 겁쟁이를 감수하며 살아간다.
결국은 격변하는 역사 속에서 진실은 규명되고 반드시 심판의 때가 온다.
시위에 직접 참가했든, 거리 한편에서 응원을 보냈든, 아니면 그저 지켜보기만 했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함께 촛불을 들었던 거리의 수많은 시민들과 함께 시대적 의미는 계승되고 있는 것을 믿는다.

오랜 시간 심혈을 기울여 기획하고 써 온 만화 덕분에 쉽고 자세하게, 민주화 과정을 알 수 있다. 괴정 뿐 아니라 생생하게 감정선을 따라 글과 만화로 잘 표현되어 있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을
억압받다 해방되었을 때
얻게 되는 것들이 너무 당연하다보니 새삼스레 느끼기 어려웠던 거지.
공기, 바람, 물, 자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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